다산 정약용의 사상에 대하여 옹골찬 학문적인 비평이 제기됐다. 지난 6월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17·18세기 조선의 외국서적수용과 문화변동’ 학술대회에서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동서비교철학)가 발표한 발제문 ‘유교와 천주교 사이의 다산’은 그 얌전한 제목과는 다르게 지정토론자인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동양철학)로부터 “이건 그야말로 엽기적인 주장이다”라는 말을 끌어낼 정도로 정약용의 사상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집요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이는 한형조 교수가 한국 유학의 지형도를 탈구축함으로써 통설과 다른 길을 걷는 독특한 학자라는 점을 상기할 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한자경 교수는 어떤 주장을 펼쳤는가. 글의 결론부에서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흔히 공맹의 인간관과 윤리관이 송대 성리학에서 형이상학화되고 우주론화되면서 변질되었다고 본다. 이는 주희가 유학의 도통으로 확립한 것이 오히려 유학의 왜곡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며, 동양철학의 전통에서 공맹의 인간관과 윤리관을 제대로 해석하는 형이상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조선유학의 4백년 역사를 자기왜곡의 역사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다산이 그렇게 이해했고, 우리 또한 다산을 따르면서 그렇게 받아들인다. 우리 사상사의 연속성과, 정신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판단에 이르게 됐는가. 다산 철학을 천주교 내지 서양 근대성의 이념에 따라 해석하려는 연구자들을 거론하며 글은 시작된다. 그들이 성리학의 기본이념인 “천일합일과 만물일체를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비현실적인 공허한 구호로 치부한다”라고 말이다. 가령 금장태 서울대 교수의 ‘다산실학탐구’(소학사 刊, 2001)가 이런 관점에서 다산의 새로운 세계관을 높이 평가하는 대표적인 연구서다. 그러나 한 교수는 “서구의 개별자 실체론이 동양의 만물일체론보다 진보한 사상인가, 천주교의 외재주의적 신관이 천일합일의 내재주의보다 깊이 있는 통찰인가, 개인의 자율적 선택권의 강조가 개인 심성 안에 내재된 보편적 천리의 주장보다 의미있는 주장인가”라며 근대적 인식의 자명성을 흔들어 놓는다.
공맹 이전 유학의 교과서로 꼽히는 ‘詩經’, ‘書經’, ‘周易’ 등이 “우주 만물을 주재하는 근원적 존재”를 외부에 있는 ‘타자’로 설정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외재주의와 신본주의는 上帝를 인간 바깥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감시하는 두려운 존재로 여기며 그 뜻을 헤아리려고 하는 세계관을 이룬다. 그러나 인본주의를 숭상한 공자와 맹자는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 가치를 인간 자신 안에 내재된 내적 가치, 내적 신성과 도덕성으로 간주한다”. ‘中庸’의 “하늘의 명을 일컬어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이라는 구절과 ‘맹자’의 성선설이 그것이다. 개체의 차별성은 표층 의식현상으로 간주하고, 그 심층에 보편적 본성이 존재한다는 이런 神性의 내면화는 하나의 인격을 심층자아와 표층자아라는 이중성으로 갈라놓는 작업인데, 한 교수는 동양인의 심성에 보편적으로 놓여있는 종교적 심성은 바로 이런 내재주의적 신관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산은 “태극, 신성, 덕성의 내재성을 부정”한다. 그는 유학의 본연지성의 논의를 불교로부터 도입된 그릇된 학설로 간주한다는 게 한 교수에 의한 다산에 대한 비판적 관찰의 시작이다. “만물일체, 그것은 옛 경전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말이다”라고 다산은 ‘中庸講義’에서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은 “다산이 성리학의 내재주의를 비판한다면서 공맹의 인본주의적 내재주의로부터도 멀어져 오히려 그 이전의 외재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비판은 이어진다. 그렇다면 신성이 만물 밖의 타자로 외화되면 그 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한자경 교수는 다산이 인간에 대해 ‘도의지심(好善의 본성), 기질지욕(惡을 행하기 쉬움), 權衡(선도 악도 가능)’이라는 세 구도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즉, 도의지심과 기질지욕의 갈등으로 다산이 파악한 인간의 이원성은 “단지 표층에서의 이원성”일뿐, 유학에서 우주적 근원이 내재화되고 심층화됨으로써 성립하는 인간의 양면성, 표층과 심층의 양면성, 인간 안에 갖춰진 인간성과 신성의 양면성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다산은 왜 이런 외재주의적 신관을 갖게 되었는가. 알다시피 조선성리학은 심층의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표층의 자기를 부정하는 克己復禮, 한마디로 끊임없는 자기분열의 과정이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一者가 된다는 것에서 불교의 수행과도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산에 오면 ‘一者가 되어라’는 명령은 ‘一者를 좋아하라’는 명령으로 바뀌고 인간에게 짐지워진 힘든 과제가 외부로 떨어져나가게 된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밖을 향하게 된 인간의 시선은 “내가 가벼워진 만큼 타인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경세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한 교수는 조선 성리학이 수행을 강조함으로써 경학화, 예학화되는 것을 비판하고 구체적 삶, 정치경제적 사회문제로 눈을 돌린 이익, 안정복 같은 실학자들과 다산을 엄밀히 구분한다. 이들과는 달리 다산은 경세학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성리학적 인간관 자체를 버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단절’이 가능했을까. 한 교수는 다산이 “마테오리치로부터 천주교의 외재주의뿐만 아니라, 동양역사를 읽는 ‘눈’까지 배웠다”라고 비판한다. 마테오리치가 서양의 입장에서 동양의 역사를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인 ‘舶來品 세계관’에 기초한 다산의 사상은 그것이 경세적인 측면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는 하나, 장구한 정신적 맥을 끊은 자리에 천주교적 외재주의를 이식한 것이라고 말이다. 한 교수는 “어느 날 서양의 어느 한 철학자가 동양적 천인합일, 만물일체의 심오함을 말한다면 모두 다 거기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우리의 신은 정말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서양의) 하늘에 있는가”라며 글을 마친다.
한 교수는 이번 발제문에서 조선 후기 사상의 맥을 짚어온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의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미수에서 성호를 거쳐 다시 이용휴와 그의 아들 이가환을 통해 다산에서 열매를 맺는다”라는 정 교수의 정리가 잘못됐다며 “퇴계를 이은 남인의 맥은 성호, 순암, 돈와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승휴, 이가환, 다산 등으로는 맥이 오히려 끊긴 것”이라고 말한다. 한 교수는 또한 정 교수가 이 흐름의 매끄럽지 못한 이음새를 의식해 남인계열의 사상적 흐름이 일정 시기에 이르러 “실학풍으로 변질되었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산의 무게에 눌려 남인 실학파의 성리학적 맥을 변질로 간주하면서까지 이끌고 갈 필요는 없다”라고 실학이라는 대전제 아래 어영부영 넘어가는 국사학의 고질적 학풍을 꼬집기도 했다.
한편 토론자인 한형조 교수는 융단폭격과도 같은 이런 주장에 대해 철학적 실증성과 논리성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두가지 점에서 반박을 가한다. “한자경 교수가 말하는 내재적 절대가 무엇인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과 “절대자가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는 것은 다산과 주자의 사상을 볼 때 그리 명확하지 않고 넘나든다”라는 것. 그러면서 그는 주자학은 하나(the Zuxiism)가 아니라 여러 개(a Zuxiism)라며 다산은 여러 가지의 주자학 가운데 그 지류를 비판한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주자학의 안에 놓인다며 특유의 ‘당구장의 비유’를 들었다. 공의 위치는 바뀌지만 무대는 당구대 안이라고 말이다. 한형조 교수는 마지막에서 “퇴계와 율곡, 주자학과 양명학, 유교와 서학이 과거에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웠지만 지금 여기(근대)의 시선에서 볼 때 理學이란 점에서 한통속”이라며 “이제 멱살잡고 싸워야 할 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근대라는 리바이어던'이라며 작은 노선 사이의 싸움은 접을 필요가 있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식민지시기의 좌우합작 불발의 예를 들면서 말이다. 한 교수의 이런 발언은 '지금 여기'의 철학자들이 '구절' 하나에 집착하는 '구절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성', '리', '기', '미발-이발' 등의 용법에 집착해 생산적 토의를 잃어가는 풍조를 비판하기엔 적합하지만, 한자경 교수가 제기한 다산 비판에는 다소 부적합한 잣대로 비치기도 한다. 결국 문제는 다산이 주자학에 속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의 실학적 세계관이 '동양적 내면'의 枯死'를 불러왔다는 것에 있고, 그것이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확대재생산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 교수신문 200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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