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일체와 仁은 다르다...다산의 神性은 良心"

2016. 2. 17. 12:36다산의 향기



       "만물일체와 仁은 다르다...다산의 神性은 良心" 자료 / 보정산방

2011.03.22. 06:40

           http://sambolove.blog.me/150105173781

번역하기 전용뷰어 보기





 



1.
글을 쓴다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더욱 글쓰기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사유가 아닌 다른 사람의 그것에 대해 글 쓸 때가 그렇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더욱더 글쓰기는 어려워지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은 나의 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 고전을 지은 저자의 말에 경청한다는 것이며, 반면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아! 당신이 말하려는 것은 이거군요. 그러나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라고 화답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2005년, 6월 28일 한자경이 발표한 글은 죽은 자들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그녀의 생각을 말하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녀는 동양적 전통과 내재적 신론을 표방했다고 주희를 추켜세우면서 서양 기독교 문명과 외재적 신론에 귀의해버렸다고 정약용을 단죄해버리고 말았다. 만약 주희와 정약용이 살아있다면 그녀의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칭찬을 받은 주희는 기뻐했고 비난을 들은 정약용은 분노했을까? 

 

2.
한자경이 긍정하는 내재적 신론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심층의식에) 신성이 있다는 것, 따라서 자기수양을 통해서 우리는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희를 내재적 신론이라고 규정하면서 그녀는 그의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리학의 미발공부는 마음이 표층적인 대상관계를 멈춘 無念無想 絶思絶慮이되 惺惺하게 깨어있어 그 마음 자체 안에 내재된 우주적 근원, 우주적 원리, 태극, 신을 깨닫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만물일체의 仁을 체득하는 공부다.” 그러나 주희에게 있어 미발공부는 심층에서 해서는 안 되는 공부, 즉 평상시 표층에서의 공부다. “미발의 전에는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 단지 평상시에 경으로 함양공부해서 사사로운 인욕이 어지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호남의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중화를 논한 첫 번째 편지」) 그녀가 만물일체를 인과 쉽게 동일시하고 있는 반면, 주희는 만물일체를 인이라고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 “사물과 내가 하나라고 말하는 저들은 … 사람들로 하여금 흐리멍덩하게 만들어 조심스럽고 절실한 공부가 없도록 하여, 그 폐단이 사물들을 나라고 생각하게끔 만들도록 한다.”(「인에 대한 설명」).

 

3.
한자경이 서양 전통 일반이라고 규정짓는 외재적 신론은 우리 마음 밖에 신성이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신적인 존재가 되려는 수양을 할 필요가 없이 외부에 있는 신을 경외하고 찬양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약용을 외재적 신론이라고 규정하면서 그녀는 그의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을 경천의 대상, 마음의 표층적 의식작용인 사념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는 신을 만물과 인간 바깥에 타자로서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일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정약용에게서 신은 인간의 바깥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내면의 양심의 소리로 내재화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도심(道心)과 천명(天命)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없다. 하늘이 나에게 경고할 때 우뢰나 바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우리의 마음 안에서 간절하게 경고한다. 예를 들어 한 순간이라도 다른 사람과 외물을 해치려는 뜻이 싹트게 되면 마음의 한쪽에서 온화한 말로 저지하며 ‘잘못은 모두 너로 인한 것인데, 어찌 그 사람을 원망하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반드시 이런 말이 뚜렷한 천명임을 알아야 한다. … 군자가 계신공구하는 공부는 오로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용자잠')

 

4.
주희나 정약용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쓰인 한자경의 글은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주희나 정약용이 살아있었다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아마 두 사람은 한 마디만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학자라고. 그러고 보니 그녀의 글에는 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가족적 개체, 가족적 사회, 가족적 국가, 가족적 세계를 긍정했으며, 이런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가치덕목을 닦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유학자들이다. 주희와 정약용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이 유학자라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유학의 가치덕목들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방식이다. 그들의 정당화 방식의 차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사례일 것이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주희와 성리학자들은 이 때 생기는 측은지심이 바로 내 마음의 본성이 실현된 것이라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정약용은 어떨까?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그는 반드시 급하게 가서 그 아이를 구한 뒤에야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5.
주희나 정약용 그 누구도 측은지심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전자가 내적인 본성 쪽으로 정당화한다면, 후자는 외적인 실천 쪽으로 정당화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정당화는 어떤 주장을 누군가가 문제삼을 때 제공하는 합리화다. 그렇다면 주희의 경우 그리고 정약용의 경우 누가 유학의 가치에 도전해왔는가? 전자에게서 그것이 불교였다면, 후자에게서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청년 주희선불교에 심취했었다면, 청년 정약용?천주실의?에 심취했었다는 점이다. 청년시절이 지난 뒤 유학을 정당화하려고 했을 때 그들은 왜 불교나 ?천주실의?가 자신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들은 유학을 정당화하는 데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적으로도 정직했던 철학자들이다. 그들의 유학 정당화 작업에, 자신들이 평가하기에 불교나 ?천주실의?가 가지고 있는 합리적 요소를 비판적으로 흡수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로부터 우리는 어렵지 않게 왜 주희의 철학에는 불교의 냄새가, 정약용의 그것에는 ?천주실의?의 냄새가 풍기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희의 정당화 논리는 불교를, 또 정약용의 그것은 ?천주실의?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한자경은 주희에게서 풍기는 불교의 냄새와 정약용에게서 풍기는 ?천주실의?의 냄새에만 취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그들이 진지한 유학자라는 것을 간과하고, 그들의 정당화 논리에만 매몰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6.
주희는 결코 내재적 신론에 전적으로 몸을 맡기고 있지 않았다. 그의 만물일체는 한자경의 지적처럼 나=너=일자의 무차별적 동일성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나와 남이 구별되는 가운데, 조화로운 관계를 심층이 아닌 표층에서 확보해야 한다는 이념일 뿐이다. 또한 정약용도 초월적 신론에 전적으로 몸을 맡기고 있지 않았다. 그의 천은 한자경의 지적처럼 인간 외부에서 인간을 감시하고 처벌하려는 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윤리적 명령, 즉 양심의 가책이란 형식으로 실현되는 내재적 도덕성을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분명 주희는 내재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정약용은 외재적인 방식으로 유학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주희는 사물을 외재화하고 정약용은 천을 내재화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내재적 신론이냐 아니면 외재적 신론이냐라는 한자경의 거친 이분법적 도식은, 주희나 정약용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간파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 경솔하게 주희를 불교의 내재적 신론으로, 정약용을 천주교의 초월적 신론으로 몰고 갔던 셈이다.

 

【이 점에서 중요한 사족을 하나 달도록 하자. 다산의 성론(性論), 특히 ‘눈 앞에서의 좋아함[目下之耽樂]이라는 기호’를 ‘육체적 욕구[氣質之欲]’라고 보는 한자경의 이해는, 완전히 자의적인 해석일 뿐만 아니라 ?심경밀험?의 전체 문맥도 무시한 것이다.】

 

- 교수신문 2005.07.11, 강신주 연세대




  http://sambolove.blog.me/150105173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