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눈'으로 우주를 보다

2016. 2. 26. 22:06별 이야기



       중력파 직접 탐지 성공

'제3의 눈'으로 우주를 보다

한겨레21 | 입력 2016.02.26. 19:28

[한겨레21]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예측 100년 만에 중력파 검출… 육안 관측에서 전자기파, 이제 중력파로 ‘천문학 신기원’ 열어

   하늘을 바라보고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곳, 미지의 장소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관찰하면서 그 상상의 나래를 펼쳐왔다. 인간은 땅을 밟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동경은 수천 년의 인간 역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과학, 문학, 철학이란 이름의 문명 한켠을 차지해왔다.

미국 라이고(LIGO·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 리빙스턴 관측소. 라이고 과학협력단 제공
미국 라이고(LIGO·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 리빙스턴 관측소. 라이고 과학협력단 제공


   필자도 어린 시절 마당에 나가 별을 바라보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을 보면,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론 멀리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잠재적으로 각인된 것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우주론적 질문을 본능적으로 던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은 하늘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했고, 오래전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기록으로 남기는 초기 천문학이 시작된 것이리라.

천문학 역사는 망원경의 역사

갈릴레이가 만든 망원경(왼쪽)과 그가 그린 달의 변화 스케치(오른쪽). www.museumsinflorence.com
갈릴레이가 만든 망원경(왼쪽)과 그가 그린 달의 변화 스케치(오른쪽). www.museumsinflorence.com


   고대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관측하고 기록해온 천문학의 역사는 다름 아닌 망원경의 역사이다. 그 옛날에는 오로지 육안에 의존하여 별을 보고 위치를 기록했고, 이 별의 움직임에 대한 축적된 지식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뱃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지루하고도 고독한 밤에 하늘을 바라보며 별의 이동 경로를 기록하고 지도를 만드는 사명감으로부터 시작된 별에 대한 관측은 조금 더 발전된 관측 수단들, 예를 들어 대적도 혼천의와 같은 관측 기기를 개발하고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눈에 의존한 일이었다.

   인간의 눈에 가장 민감한 가시광선에 의존한 관측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관측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런 관측에 획기적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 바로 특별하게 설계된 기기에 의존하여 인간의 눈의 능력을 넘어서는 놀라운 기기의 발명이었다. ‘망원경’이라 이름 붙은 이 기구는 비로소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해서 본격적인 천체 관측 수단으로 발전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건으로서, 육안으로 관측하던 범위를 놀라울 정도로 확장한 천문학의 첫번째 혁명이었다. 실제 갈릴레이가 개선한 망원경은 30배율 이상 그 성능을 높여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후 요하네스 케플러 등에 의해 발전된 광학망원경은 천체를 관측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고, 빛의 성질에 대한 응용이 빛난 놀라운 성과였다.

   1865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빛의 운동을 아름다운 네 개의 방정식으로 요약했다. ‘전자기 이론’으로 불리는 이 이론은 그동안 별개의 성질인 것으로 이해되던 전기와 자기 현상이 ‘전자기파’의 다른 양면이라고 밝히고, 이들이 통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통일이론이었다. 이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는 그가 특별히 고안한 실험장치에서 이 전자기파가 실제로 존재함을 증명했다. 전자기파가 검출된 것이었다.

‘빛의 마법’으로 천문학 도약

오스트레일리아에 건설 예정인 거대 규모 전파망원경 네트워크(SKA) 조감도. 위키피디아
오스트레일리아에 건설 예정인 거대 규모 전파망원경 네트워크(SKA) 조감도. 위키피디아


   헤르츠의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전자기파가 횡파이며,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는 사실과 함께 가시광선·마이크로파·자외선·적외선·감마선·엑스선 등 다른 주파수 대역의 전파들이 바로 전자기파의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8년 뒤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헤르츠의 실험에 기초하여 장거리 무선통신을 성공시켰고, 이 공로가 인정되어 190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 전자기파의 이해를 통해 사람들은 우주로부터 오는 전파를 검출하기 시작했다. 1931년 벨연구소의 칼 잰스키는 우연히도 대서양 횡단 전파통신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연구하던 중 궁수자리의 은하수로부터 오는 강력한 전파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궁수자리 A’로 명명된 이 전파는 우주에서 발생한 강력한 전파원이었고, 이는 전파천문학의 탄생을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동안 가시광선에 의존한 광학망원경으로 관측하던 우주를 새로운 관측 수단인 다른 주파수 대역의 전파를 통해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 레이더 기술들은 전파천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속속들이 전세계에 전파망원경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벨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우주 탄생 초기에 발생하여 우주 전역에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CMBR·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가 존재함을 전파망원경으로 밝혀냈고, 이는 가장 큰 전파천문학의 업적 중 하나이다.

오늘날 전파를 관측하여 우주를 이해하려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거대 전파망원경들은 모두 130여 년 전 헤르츠가 전자기파 검출에 성공함으로써 발전된,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이었던 것이다.

13억 광년을 날아온 신호

지난해 9월14일 포착된 중력파 신호의 파형. 라이고 과학협력단 제공
지난해 9월14일 포착된 중력파 신호의 파형. 라이고 과학협력단 제공


   2016년 2월12일 새벽(한국시각), ‘어드밴스드 라이고’라고 불리는 특별한 망원경은 1916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론적으로 존재한다고 예언했던 ‘중력파’가 실제로 존재하고 직접적으로 ‘검출’되었음을 전세계에 알렸다. 전자기파가 전기를 띤 물체가 운동의 변화를 일으킬 때 발생되는 것처럼, 질량을 가진 물체가 운동의 변화를 일으킬 때 마찬가지로 중력의 변화가 파동처럼 전파되는 것이 ‘중력파’이다. 이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고자 199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레이저 간섭계’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치의 망원경을 고안했다.

   중력파는 시공간에 전파되면서 그 수직인 방향으로 길이를 늘이고 줄이고 하는 방식으로 진동하기 때문에 이 진동에 민감하도록 ‘ㄱ’자 모양으로 양팔이 4km에 달하는 진공 튜브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안정된 레이저 빛이 서로 오가도록 했다. 만약 중력파에 의해 양팔의 길이 차이가 발생할 때 생기는 경로 차이로 인해 레이저 빛의 간섭무늬가 생긴다면 중력파에 의한 것이라고 알아채도록 고안된 장치였다.

   어드밴스드 라이고가 관측했던 것은 태양 질량의 36배와 29배가 되는 두 개의 블랙홀이 서로 충돌하여 하나의 블랙홀로 합쳐지는 순간에 방출되어 13억 광년을 날아 지구에 도달한 중력파 신호였다. 중력파의 ‘검출’이라는 사건은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이 고안한 어드밴스드 라이고라고 불리는 새로운 개념의 망원경으로 충돌하는 블랙홀을 ‘관측’한 것이다. 결국 어드밴스드 라이고는 천문관측 망원경인 것이다.

   초기 건설부터 이 시설이 검출기가 아니라 ‘천문대’(observatory)로 이름이 붙여진 까닭이다. 현재 존재하는 전세계의 광학망원경, 전파망원경처럼, 지금 가동되거나 건설되는 중력파 검출기 간섭계들은 이제 중력파를 매개로 하여 천체를 관측하는 새로운 시대의 천문관측소이고, 이것이 ‘중력파천문학’의 시작이다. 마치 갈릴레이의 광학망원경 발명으로 본격적인 ‘관측천문학’이 시작되고, 헤르츠의 전자기파 발견이 ‘전파천문학’을 견인했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중력파천문학’ 시대

   중력파를 통한 관측으로 얻게 되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우주는 중력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러운 소음을 질러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멋진 화음의 교향곡을 연주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듣기 위해서 중력파 망원경을 열어두고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우주에 퍼져 있는 중력파는 빛이 미칠 수 없는 천체들이나, 우주 초기에 빛이 생기기 이전 우주의 모습을 간직하고서 우리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들을 이해함으로써 인류는 처음 떠나온 태초의 고향에 대한 모습을 기억하고 경외를 표하게 될 것이다. ‘중력파천문학’을 통해 인류는 지식의 진일보된 영역으로 한발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중력파 소개하는 대중서 곧 출간
밤잠 설치고 위궤양 겪었지만…

   중력파는 시공간(중력장)의 출렁임이다. 그런데 그 정도가 매우 미세하다.

이번 검출에 이용된 장치의 정밀도는 4km 거리에서 10의 16거듭제곱(1경)분의 4cm 가량이 변화하는 것을 분별해낼 정도였다. 중력파가 포착된 시간은 0.15초, 날아온 거리는 13억 광년이다. 1916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한 지 100년 만에 실제 검출이 이뤄진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중력파를 단일 주제로 다룬 대중과학책이 국내에 없었던 것 또한 어색하지 않다.

한 권의 책이 2월 말 출간된다.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중력파: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 오정근(44)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총무간사)이 중력파 검출을 위한 인류의 수십 년 노력을 담았다.

   책 머리말의 한 대목. “밤잠을 설치고, 위궤양을 겪으면서도 그 시간들을 즐겁게 느낄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설렘’은 바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과 앞으로 수년 내에 다가올 중력파천문학의 발견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는 그런 ‘설렘’이었습니다.”전진식 기자seek16@hani.co.kr

오정근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총무간사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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