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호 교수님의 시인정조… 수원화성·10] 세심대(洗心臺)에서 영성군(靈城君)의 운을 빌어

2016. 3. 6. 12:48茶詩



       [최동호 교수님의 시인정조… 수원화성·10] 세심대(洗心臺)에서 영성군(靈城君)의 운을 빌어

- 경인일보 | 최동호 교수님의 시인정조

김조민 | 2015.08.31. 15:32


 

 

영성군 박문수(1691~1756)의 영정(보물 제1189호) /천안시 제공

 


중신 대동하고 효심 담은 시 읊어
충신 박문수 기리는 마음도 표현

    영성군은 박문수(1691~1756)의 봉호다. 실록에 의하면 정조는 1795년 3월 영의정 홍낙성과 우의정 채제공을 비롯한 백관을 거느리고 세심대에 올랐다.

세심대는 지금 서울 종로구 신교동 1-1번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자리는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선희궁의 자리이기도 했다. 증조할머니의 사당이 있는 자리인 만큼 정조의 친족이 모두 이곳과 인연이 있을 정도로 의미 깊은 장소다.

1795년 3월 7일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혼례를 치른 50주년 기념일이다. 아마도 원행을 마치고 장락궁에서의 천세 만세를 축수하는 소리와 더불어 사도세자의 죽음과 충신이었던 박문수도 생각했을 것이다. 중신을 대동한 정조는 다음 시를 지어 보이고 신하들에게도 시를 짓도록 했다.

화창한 봄날 느리게 북쪽 대를 오르노니    春日遲遲上北臺
지금 길가 꽃을 구경하려는 게 아니라오    此行非是趂花開
새로운 시 지어서 관화곡을 다시 부르며    新詩更續觀華曲
만세토록 영원할 만수의 술잔 올리리라     萬歲長斟萬壽杯



   시의 후서에는 제1행의 ‘지지(遲遲)’라는 시어가 화성의 경계가 되는 지지대 고개를 지칭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부모와 조상을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제 3행의 ‘관화(觀華)’는 화성 원행에서 정조가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며 지어 부른 악장에 관화곡이 있었으므로, 이를 언급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모든 신하들의 충성과 왕실의 만수무강을 비는 마음을 나타낸 것으로 박문수의 충성과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본받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해마다 아버지의 산소 현륭원(顯隆園)을 배알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륵현 고개 위에 올라서 현륭원을 바라보며 선뜻 돌아서지 못하는 자신의 효심을 백성들이 알고 자신을 위해 대를 만들었으니, 그 대가 지지대(遲遲臺)라는 것이다.

시의 문면은 간단하지만, 그 유래나 내용은 위에 서술한 것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봄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으므로 정조의 마음에는 더욱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마지막 제4행에 ‘만수의 술잔을 올리리라’는 표현이 그러한 마음을 나타내준다.

지지대 고개는 북문을 나와 서울로 향하는 길에 있는데 그렇게 높은 고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조의 효심을 생각한다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 시인 최동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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