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다시(茶詩)의 이해

2016. 3. 7. 04:48茶詩



      

김기원/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다시(茶詩)의 이해| 문학탐구


화려한 겨울 |  2016.02.23. 23:58


 *한강문학 4호, 가을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다시(茶詩)의 이해

 

                                                                             녹동  김기원


 


“이 양반, 불편한 것 없소이까, 통나무 위에 찻자리를 펴이셔 차 한 잔 마시며 세상 이야기 좀 합시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 하하- 하하- , 이 내용은 매월당 김시습이 양반 선비를 만나 먼저 말 걸기하는 서두의 내용이라,

중학시절 김석기 역사선생님이 말하기를 “머리는 김시습을 닮고. 발명정신은 에디슨에 배우고 나라 사랑하는 자세는 이순신 장군처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라” 여러번 당부 하셨다


발명왕 에디슨, 이순신장군의 업적은 그래도 맹인 경 읽기 유도하는 소리처럼 틈틈이 들을 기회가 많으나 매월당 김시습은 그렇게 푹 빠져 옷적실 만큼 업적을 못 배웠다. 그런데 대학 시절 경주 기림사에 수련대회가 있어 매월당 김시습의 영각이 있는 사실을 알겠다. 절 마당 뒤뜰 언덕에 작은 영각이 세우진 곳이 매월당 김시습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그 곳 안내자에 매월당 김시습의 생애와 삶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이 인연이 되어 매월당에 관심을 갖게 된다. 기림사는 신라 호의 사찰로 그 방향이 불국사를 중심한 축이다 그 뒤 필자는 매월당 김시습이 재배하였다는 차나무 밭을 재조성하기 위해 1981년 가울 경남 하동군 화개동천 야산에 산재한 차나무 종자 40킬로를 수집하여 보냈고 당시 기림사 주지 무착스님은 1982년 2월 절터 밭에 심었다 그해 90% 발아되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였으나 그해 겨울 추위로 일년생 50%가 죽어 필자가 보유한 3년생 묘목을 30주를 더 심었다. 그 후 학술지에 매월당 김시습을 소개한 바로 2014년 12월26일 매월당 김시습 문학 본상을 받게 되어 이 글이 매우 의미를 부여하는 바이다


1. 천재(天才) 위에 천재(天才)는 방랑자

   조선의 과거제도를 통해 지방 선비 가운데 천재들이 많이 탄생하였다. 천재 위에 유일한 천재가 매월당 김시습을 꼽았다, 지방 천재들이 모여 지방 과거시험을 가져 합격자가 모여 중앙과거시험을 치른다 그 과거에 최고자를 장원으로 뽑았었다 매월당 김시습은 아홉 번을 장원을 차지하여 나라는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라이라 는 명칭이 불어 유학 발전에 기대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과 달라 세상에 나온 지 불과 8개월 만에 말은 더디었으나 정신은 놀라워서 글을 보면 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뜻은 모두 알았다. 그래서 시습(時習)이란 이름은 타고난 자질을 보고 유학을 크게 빛낼 대학자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유학의 최고 경전『논어(論語)』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취한 이름을 지었다.


   김시습은 신동답게 세살 때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통달하는 등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천재적 자질과 행적을 보여 신동(神童)이라고 걱찬받았던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년~ 1493년)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 생육신(生六臣) 한 사람,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벽산청 (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불교 법명은 설잠(雪岑)이고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

3세에 스스로 글을 지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질을 타고 났다 5세 때 이미 《중용》《대학》을 통달하여 신동이라는 이름을 들은 세종대왕이 어린 시습을 불러 글을 짓게 하니 바로 글을 지어 세종대왕에 고하니 문학 재능에 칭찬하여 비단을 선물하였다. 당대 석학 이계전 김반 윤상 등에 수학하였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였다


   수양대군인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선비들을 죄인으로 몰아 교살하자 통곡하며 사육신 시신을 수습하여 서울 노량진( 서울 노량진 사육신 공원)에 암장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책을 불 살라 버리고 세상을 등졌다. 21세에 머리를 깎고 속세를 등지고 출가하여 음둔 생활로 전국을 방랑하며 관리를 비유하거나 미친 듯이 술 마시고 거리를 방량하며 경기도 양주(楊州) 땅의 수락(水落), 수춘(壽春) 땅의 사탄(史呑), 해상(海上) 땅의 설악(雪岳), 등지를 두루 돌며 술과 차를 마시며 세상 허무함을 시로 읊었다

31세로 부터 37세에 이르는 시절 경주 월성(月城)의 금오산(金鰲山) 즉 경주 남산에 은둔한 적이 있었다 책 10만권을 쌓이 두고 읽으며 수백 종의 화초를 기르고 각종 나무와 차나무를 기르며 읊었던 양차(養茶)란 시가 있다

 

해설/ 원문

해마다 차나무에 새 가지 자라는데           年年茶樹長新枝

그늘에 키우노라 올올 엮어 보호하여        蔭養編籬謹護持

육우의 다경에는 색 맛을 논하였는데        陸羽經中論色味

관가에서는 창기(槍旗)만을 취한다네.      官家榷處取槍旗

봄바람 불기 전에 싹이 먼저 피고             春風未展芽先抽

곡우절 돌아오면 잎이 반쯤 피어다네        穀雨初回葉半披

조용하고 따뜻한 작은 동산을 좋아하니     好向小園閑暖地

비에 옥같이 꽃 드리워도 무방하리니        不妨因雨着瓊 ?

 

 

   매월당은 나무를 심어 가꾸고 산야초를 심어 그 속에서 글 읽고 거문고 타며 자연의 순응대로 살면서 차나무를 가꾸었다, 차나무는 본래 양지식물이 아니라 반음지식물이라 그늘 밑에 생육이 좋았다. 예부터 차를 죽로(竹露)라 하였다. 매월당은 식물양생학을 통달하게 잘 알고 있어 이미 죽로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행하였다 즉 차나무는 해마다 새 싹이 나오니 질 좋은 찻잎을 얻기 위해 그늘에 키워야 좋은 찻잎이 생산되므로 올울을 만들어 보호하였다


   중국 당대 사람 육우는 다경을 저술하여 차의 색과 맛을 좌우함을 알려 관리들에게 어린 찻잎의 성장 수준에 따라 찻잎을 따라했다 그런데 차나무는 성질이 급하여 이른 봄기운 느낌을 얻기 전에 벌서 새 찻잎이 나와 눈 속에 새 찻잎을 따셔 만든 차를 설아차(雪芽茶)를 생산하지만 량이 적고. 경제적 가치가 부족하니 차를 따는 적기를 곡우절을 중심으로 1주일 전후이라 한다. 그러나 경주지방은 남부지방보다 기후기 낮아 찻잎이 반쯤 피었지만 기후의 변화가 적어 따뜻함이 이어져 빗물에 찻잎이 깨끗이 청소되어 옥같이 꽃을 드리워도 더 좋을 거라 감탄하였다.


   매월당 김시습 21살 때 발생한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옥좌에 오른 ‘왕위 찬탈 사건’에 천재의 운명을 ‘광인(狂人)의 삶’으로 바꾸어 버렸다.

당시 삼각산(三角山:북한산)에서 글을 읽다가 이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즉시 방문을 닫아걸고 사흘 동안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크게 울부짖고 통곡한 다음 읽고 쓰던 서책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광기(狂氣)를 일으켜 뒷간에 빠졌다가 곧바로 사육신을 거두어 매장하고 방랑길에 올랐다

매월당 김시습은 천재의 길 아니라 방랑의 길에 차를 약으로 마셨다 귀양살이, 방랑자에 필수 약이 차약이다 정처없는 떠돌이 방랑자가 옳은 시 가운데 땅화로 (지로地爐)란 시를 소개한다

 

해설/ 원문

산방은 맑고 고요한데 밤은 어찌 기는가.            山房淸悄夜何長

한가로이 등불 듣구며 흙마루에 누웠다네.          閑剔燈火臥土床

다행이 땅화로 있어 더욱 나를 배부르게 하네      賴有地爐偏饒我

손님 오실 때 다시 찻물을 끓인다네.                   客來時復煮茶湯

 

   산방은 어느 곳이든 고요하다 여름밤은 짧고 겨울밤은 길다 가을밤은 귀뚜라미소리에 잠 못 이른다,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 유배되어 18년 간 귀양살이를 했다 귀양살이의 죄인에게 한 치의 은혜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움, 그리움이 쌓인다, “ 다산은 봄에는 임 그리워 잠 못 이루고. 여름은 모기떼와 놀이하노라 잠 못 이루고. 겨울밤은 엄동설한 바람 소리와 가야금 놀이로 잠 못 이루어 차 마시고 글 읽고 글을 쓴다 ” 조선조 천재 중의 천재가 방랑 생활의 아픔을 솔직히 표현한 이 차시에서 방랑자 모습 그대로 느끼게 한다.

춥고 배고프고 지루한 생활, 어찌할 생각도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누웠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찬 냉기를 참다못해 땅화로(地爐)에 불집의 차 끓어 마시니 배고플 땐에 배를 채우니 다른 방랑자가 올까 찻물을 끓이는 정성. 옛말에 “콩 한 조각으로 10명을 나눔하고 한 쪼이 남았다”는 격언이 차의 나눔이고 조선조 선비의 정신이다 다부를 쓴 이목선생은 차의 구덕(九德)을 주장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은 하늘을 지붕 삼고 가는 곳마다 앉는 자리가 내 집이고 글방이며 차자리이라 머무는 곳마다 땅화로가 있어 차 끓어 마실 수가 있다, 벼슬, 권력을 위해 형제도 선비, 바른 말하는 사람을 죽이는 험난한 세상 모든 것 싫었다.

그래서 스스로 죄인, 방랑자로 자칭한 매월당은 스스로 하늘을 볼 없는 부끄러운 날날, 인기척 없는 밤에 나셔 찻물을 기르고 차를 다리고 풍류를 즐기며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생활이고 선비의 절개를 지켰다, 외로운 산방에 앉아 차를 끓이는 연기에 감탄하여 옮은 시가 차 끓이기(煮茶)란 시 있다

 

해설/ 원문

솔바람이 가볍게 일어 차 끓이는 연기                 松風輕拂煮茶烟

하늘 하늘이 홑 날리며 시냇가에 나부끼네           裊裊斜橫落澗邊

동창에 달 밝아도 잠 못 이루어                          月上東窓猶未睡

물병 들고 돌아가 차디찬 샘물 긷네.                   挈甁歸去汲寒泉

속된 세상 싫어하는 천성 스스로 괴이하지만        自怪生來厭俗塵

문에 봉(鳳) 봉자 쓴 이미 청춘 다보냈네              入門題鳳已經春

차 끓이는 누런 잎 그대는 아시는가                    煮茶黃葉君知否

시 쓰면 숨어 사는 일 누가 알까 두럽네               却恐題詩洩隱淪

 

“ 옛 말에 저녁때가 되면 아이와 바람은 잔다는 속언처럼 저녁노을이 길게 하늘로 늘어지는 차 끓이는 연기, 맑고 깨끗한 시냇물에 하늘이 움직이나 냇물이 음직이나 분간 못하는 순간마다 동창에 뜬 달, 차디찬 샘물을 길렀다

세속된 세상을 싫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봉 같은 사람을 찾았지만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아 전체가 평범한 세속 사람만이 있다고 탄식의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오직 시 쓰며 숨어사는 일이 누설될까, 이런 일들마저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런 환경적 사정에 푹 빠져 달이 떠오는 밤이면 스스로 샘물을 길어와 차를 끓어 마시며 스스로 풍류의 멋에 취하였다 천재 가운데 천재의 선비가 스스로 절개를 지키는 지조를 차와 더불어 풍류 묵객 모습이 은둔의 철인이다


   이런 조용한 풍류의 생활과 달리 유학자들을 만나 간신배를 규탄하였다 신숙주 . 정인지 정창손 등이 행차를 보게 되면 서슴없이 욕설을 날리며 세상을 탄식하며 성리학 사상에 염증을 포출 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은 스스로 차나무를 가꾸고 그 잎을 따서 만든 작설(雀舌)의 심오함을 시을 지어 울었다.

 

 

해설/ 원문

남국의 봄바람 가볍게 불려할 제                        南國春風軟慾起

차나무 숲 잎 사이 아래 뽀족한 부리 숨겼네         茶林葉低含尖觜

가려낸 연한 싹 진정 신령스레 통하여                 揀出嫩芽極通靈

그 맛과 풍류 홍점(鴻漸)의 다경에 실렸다            味品曾收鴻漸經

자초(紫芛)는 새순을 가려 뽑어아                       紫芛抽出旗槍間

봉병차와 용단차는 그 모양을 본 딴 거라             鳳餠龍團徒範形

푸른 옥병 속에 넣어 타는 불로 끓이면                碧玉甌中活火烹

게눈 같은 거품 일고 솔바람 소리로 울리네.         蟹眼初生松風嗚

산집은 고요한 밤에 손을 둘러 앉아                    山堂夜靜客圍坐

차 한 잔 마시니 두 눈이 밝아지네.                     一啜雲膄雙眼明

당가에서 조금 맛보니 본인은 촌사람인가            黨家淺斟彼粗人

어찌 알리라 설차가 그처럼 맑은 것을                 那識雪茶如許淸

 

   작설(雀舌)이라 새 주둥이같이 뾰족할 때 어린잎을 따서 차를 만들면 맛 향 등 다섯 가지 맛이 동시에 풍기는 시기라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작설이란 이름을 지어 붙었고 작설차를 찬미하는 시를 지였다


   고려 공민왕과 우왕을 보좌한 한수(韓脩 1333-1384)가 경상도 안찰사가 보낸 햇차 작설을 찬하였다. 고려 말 조선 태종 때 사람 원천석(元天錫1330- ?)이 원주 치악산에 은거하며 <연고차>의 시속에 작설 재배 내용이 나오며 조선 신숙주(申淑舟 1417-1475)가 전남 도갑산의 시에 작설 시가 있으며 김시습이 경주 남산 용강골 차밭에서 만든 작설차를 선사받고 쓴 서거정(徐巨正 1429- 1488)이 지은 작설 시가 있다 또 요즘 <작설차> 란 상표가 붙은 차가 생산된다


   이 시구의 특징에서 남국춘풍연욕기(南國春風軟慾起)는 당나라 노동이 쓴 차 노래에 나오는 <겨울 잠자던 벌레들이 놀라 움직여 봄바람이 일어난다면 蟹蟲驁動春風起> 내용의 시구를 인용하였다 홍점(鴻漸)란 시구는 다경을 쓴 육우가 산가지에서 점쾌로 얻은 자(字)를 접목하였다

매월당 김시습은 물을 잘 끓어야 좋은 찻 맛을 낼 수 있다 옛 어른들이 물을 끓는 정도를 게의 입 거품이 일어나는 모양과 김이 나오는 정도, 물 끓은 소리로 판단하였다 즉 물이 끓기 시작할 때 게의 눈같이 거품이 일어남을 비유하고 물 끓는 소리기 조용하고 아름다운 정적 소리가 차를 끓이는 적당한 온도이고 차 맛을 좋게하는 시기로 보았다 차 한 잔이 잠을 쫓고 청정의 눈, 무명의 눈, 지혜의 눈 마음을 조용하게 선정(禪定)으로 인도함이 곧 차를 통해 얻는다,

 

   매월당은 전국 명성대찰 명승지 마다 매월당 김시습의 설화가 전한다. 1466년(세조 12)에 때 일화, 매월당 김시습은 충청도 공주군의 지역유지들과 함께 동학사숭모전을 증축하고, 숭모전 옆에 단을 쌓고 사육신과 단종에 관련되어 순절한 신하들을 추모하였는데 조정 관료들이 묵인하였다. 그때 선조는 등창으로 밤낮없이 신음할 때이라 한다 그 뒤 김시습이 증축한 건물은 영조 4년에 화재로 동학사가 불에 소실되었다가 후대에 1864년(고종 원년)에 만화(萬化) 스님이 다시 세웠다.

매월당 김시습이 어느 날 서강(西江)을 유랑하다가 서출로 한명회(韓明澮)의 시를 보고 운을 바꾸어 조롱한 시 내용을 소개한다.

 

한명회 시의 내용 ;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白首臥江湖

 

김시습 시의 내용 ;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靑春亡社稷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白首汚江湖

 

   매월당의 해학에 지나가는 사람마다 배꼽을 잡고 웃었고 이후 사람들은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평생 차를 즐기며 명산 대첩을 방랑생활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향년 59세(1493) 홍산 무량사에서 입적했으며 그의 유언대로 절 옆에 묻었다가 3년 후에 파 보니 얼굴이 산 사람과 같았다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은 그가 큰 한을 품었다고 하였다. 뒤에 부도(浮屠)를 세웠다.

그 뒤 중종은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으며, 선조는 이율곡을 시켜 김시습의 전기를 쓰게 하였고, 숙종 때에는 해동의 백이(佰夷)라 하였으며 집의의 벼슬을 추증, 남효온과 함께 영월 육신사에 배향되었다.

 

 

 

약력

녹동(鹿洞) 김기원 ; 67년 문학의 길.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사)새생명광명회 장 향토생활문화연구원장 국가원로회의 원로위원. 한국차학회,한국공무원문협 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이사. 한국문협 이사, 새부산시협 자문, 부산문협, 경남시협 회원. .(사)한국차문화학술원장. 한국문학신문 경남본부장,국민훈장 모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상, 대법원장상. 문학21 문학본상. 다촌차문화학술대상 .명원차문화학술대상, 문화관광부장관상 2회. 보건복지부장관 상. 전국문화원연합회장 상, 노천명대상 매월당문학 본상 진주시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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