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茶詩

2016. 3. 7. 18:00茶詩


한국의 茶詩

황세옥 2009.06.15 22:35
http://blog.daum.net/tasofhso/16132233               

      

한국의 茶詩

 

 

. 茶의 道具


차의 도구(茶具)는 차를 끓여 마시는데 이용되는 도구이다. 따라서 다구가 이용되어온 시기와 장소 그리고 계층에 따라 그 예술성과 문화성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차를 접하는 다인간에도 취향에 따라 소장품목이 다르고 혹자는 사치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상 차생활에는 탕관, 다관, 다잔, 다시, 다상 등 기본적인 것만 있어도 충분하며 또한 중저가용 다구라도 차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1. 탕관(湯罐)

물을 끓이는 직화용(直火用) 그릇으로 녹차와 같은 잎차일 경우는 물만 끓이고, 둥굴레차와 같은 것은 재료와 함께 넣어 끓인다.

탕관은 고려시대부터 이용해온 돌솥(石鼎)이 가장 좋고, 자기와 옹기는 다음, 은과 유리는 그다음으로 권장된다. 그러나 탕관의 재질이 철, 동, 알루미늄 등은 별로 권장할 만한 것은 못된다.

 2. 다관(茶罐)

탕관으로 끓인 물을 잎차와 함께 넣고 차를 우려내는 그릇으로 차의 재료가 뿌리, 줄기인 경우에는 필요없으나 취향에 따라 이용도 한다. 다관의 재질평가는 탕관에 준하며, 일반적으로 세가지 형태가 있다. 즉 손잡이의 형태에 따른 분류방법으로 윗손잡이형인 다관(茶罐), 옆손잡이형인 다병(茶甁), 뒷손잡이형인 다호(茶壺) 등으로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다관과 다병을 사용해오고 있다.

3. 다잔(茶盞)

찻잔은 차를 마실 때 이용되는 그릇으로 도자기 제품이 좋고, 색깔을 감상할 수 있는 백색계통이 좋다. 모양에 따라 잔(杯,盃), 주발(완), 술잔(鍾)형으로 나누며, 일반적으로 소형은 고급차를 대형은 저급차를 이용하고 있다.

4. 다탁(茶托)

찻잔받침으로 모양, 색상 그리고 재질 등 다양하며, 취향에 따라 이용한다. 차탁자 또는 차선이라고도 한다.

5. 다시(茶匙)

찻통의 차를 다관에 옮기는데 쓰이는 차수저(찻술, 차뜨개)이다. 역시 다탁과 같이 다양하다.

6. 다상(茶床)

찻상은 차를 나르는데 이용되는 것으로 차쟁반(茶盤)이라고도 한다.

7. 기타

물항아리, 차수건(茶巾), 차상포, 숙우, 차풍로, 퇴수기, 물바가지(杓子), 찻통 등이 있다.

 

 

 

   예로부터 선인들은 차를 즐겨 마셨다. 특히 사원에서는 부처님께 차 공양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고 또한 수행에 도움이 된다하여 승려들이 즐겨 마시곤 했다. 그러다보니 차 겨루기인 茗戰(명전)이란 풍습이 행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차, 물, 찻 그릇으로 품평을 하여 우승을 가리는 것이다. 또한 가까운 일본에서는 찻물을 마시고 나서 차의 산지나 이름을 알아 맞추는 놀이도 성행하였다고 한다. 한편,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차 제품을 파는 상인과 차를 달여서 찻물을 파는 茶店과 茶房이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귀한 사람에게 차를 선물하고 차를 소재로 시를 짓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차를 소재로 한 시를 茶詩라고 한다. 여기에 고려시대의 시를 몇 편 소개한다. 無衣子로 잘 알려진 진각국사 慧諶(혜심)은 지눌의 후계자로 선풍을 진작시켰던 고승이며 차를 즐기던 다승이기도 하다. 그의 '妙高臺上作'이란 시를 감상해 보자.

 

한가론 고개 구름은 걷히지 않고  

산골 물 뭣 때문에 바삐 달리나   

소나무 밑에서 솔방울 따다       

달인 차라 차 맛 더욱 향기롭네   

嶺雲閑不徹

澗水走何忙

松下摘松子

烹茶茶愈香

 

   솔방울로 차를 끓이는 이야기는 田藝衡(전예형)<煮泉小品> '만일 추운 겨울철에 솔방울을 많이 쌓아두고 차를 달이면 더욱 고상함이 갖추어진다'고 한 데서 보인다. 소나무 밑에서 딴 솔방울로 차를 끓이면 솔향 때문에 더욱 향기롭다. 고개 마루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 그 옆으로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솔방울을 주어다 차 끓이는 시인이 한데 어우러졌으니 이것은 선의 경지 곧 삼매의 경지에 들지 않았다면 구현하기 어려운 경계라고 이를 만하다. 고려말의 문장가이면서 성리학자인 도은 李崇仁(이숭인)은 '좋은 차는 아름다운 사람과 같다'고 하면서 차를 애호하였던 인물이다. 그가 삼봉 정도전에게 차 한 봉지와 안화사 샘물 한 병을 보내면서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송악산 바위틈에 가늘게 흐르는 샘물 알겠구나.

소나무 뿌리 엉긴 곳에서 솟아남을

사모를 눌러 쓰고 앉은 한낮이 길 것 같으면   

돌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들어보세나

嶺山巖 細泉榮

知自松根結處生

紗帽籠頭淸晝永

好從石 聽風聲

 

   안화사개경 송악산 자하동에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샘물은 <고려도경>에 기록 될 정도로 유명하다. 안화사는 송나라 황제 휘종의 친필 편액이 있는 곳이며 단청과 구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문을 나서면 붉은 언덕, 푸른 뫼뿌리가 가로 세로로 펼쳐져 있으며, 시내가 돌길을 따라 흐르는데 물소리가 마치 옥 소리 같으며, 사면은 소나무 잣나무만이 하늘에 닿아 있어 그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은 마치 병풍의 그림 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렇게 풍광 좋은 곳에서 나오는 샘물을 보낸 것은 더욱 맛 좋은 차를 끓이기 위함이다.


   艸衣<茶神傳>'차는 물의 정신이고 물은 차의 본체다. 참된 물이 아니면 그 정신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品泉에 깊은 관심을 가졌듯이 좋은 차의 기본은 좋은 물을 가리는 것이다. 그래서 차 달이기에 알맞은 물을 보내는 풍습이 예로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당의 장우신(張又新)<煎茶水記>에서 '본시 차란 산지에서 달이면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럴 것이 물과 흙이 차와 어울리기 때문인데, 그곳을 떠나면 물의 공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 바 있는데 도은이 어찌 이것을 모르고 보냈겠는가? 하여튼 차 한 봉지와 샘물을 보내니 지루한 날에 끓여 드시라는 내용이니, 삼봉이 이 선물을 받고 진한 감동을 받았음은 짐작하고도 남겠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돌솥의 솔바람 소리'도 재미있다. 차를 즐기는 이들은 찻솥에서 끓는 물소리를 특히나 즐겨했다. 고려 때 김극기는 '구리병에 와르르 소나기 오는 소리'로, 李衍宗(이연종) '차 솥에서 불어오는 솨솨 솔바람 소리, 그 소리만 들어도 마음 맑아지네'라 하였고, 이규보'처음에는 마치 목멘 소리 같더니 점점 생황 소리 길게 나네'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또 '지렁이 소리, 파리소리, 봄 강물의 음향, 급히 구르는 수레바퀴,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 등 그 표현이 다양하다

다음은 權定(권정)의 시이다. 권정은 여말선초의 문인이다.

 

남국의 친구 새 차를 보냈구나

낮잠 깨어 마시는 차 그 맛 더욱 좋다지만

사람의 잠 적게 한다니 도리어 싫어라

잠으로 걱정 잊는데 잠 적으면 어찌하나

南國故人新寄茶

午窓睡起味偏多

令人少睡還堪厭

睡可忘憂少睡何

 

   남녘의 친구가 차를 선물로 보내왔다. 낮잠에서 깨어 마시는 차 맛이야말로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본인은 짐짓 싫다고 한다. 걱정 많은 이에게 잠은 유일하게 근심걱정을 잊게 해주는 것인데 차를 마셔 잠까지 적어지면 긴 밤을 어쩌란 말인가? 라고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 대신 걱정이 먼저다. 그러나 어찌 차를 싫어했겠는가? 차를 마시면 잠이 적어진다는 것을 강조해서 표현한 것이리라. 차의 효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스님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소치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이 '이것은 차라는 것인데 세 가지의 덕이 있다오. 첫째는 잠을 쫓고, 둘째는 소화를 돕고, 셋째는 不發이 되는 것이라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소치기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즐거움인데 잠을 이루지 못하면 곤란하고,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데 소화가 잘된다면 곤란합니다. 하물며 마누라를 껴안을 수가 없게 된다니 딱 질색입니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낮잠에서 깨었을 때 차 맛이 좋다'고 한 것처럼 차를 마시기에 좋은 때가 있다고 한다. 茶山'아름다운 아침이 열리려 할 때, 맑은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다닐 때,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밝은 달이 시냇물에 떠돌고 있을 때' 라고 한 바 있다. 이렇듯 좋은 때에 바위틈으로 흐르는 산골 물 길어오고, 솔방울 따다가 불 지펴서 솔 향 가득한 차 한 잔 마시면 정말 盧仝(노동)이 말한 것처럼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다인으로는 초의 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를 꼽을 수 있다. 초의 선사(1786-1866)는 흥성 장씨로, 이름은 意恂, 자는 中孚子이다. 그는 한국의 茶經으로 불리는 「東茶頌」과 차의 지침서인 「茶神傳」을 저술하여 우리나라에 차를 재배하고 보급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초의는 당시 불교를 배척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정약용, 김정희, 김명희 형제, 신위, 홍현주 등 당대의 유수한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화운한 시가 60여 수에 이른다. 시로 이름을 남긴 승려가 적지 않으나 초의는 진정한 시승이라고 이를 만하다. 그의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石泉煎茶)>란 시를 감상하여 보자.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연기와 같다      

이곳에 와서 지낸 지도 어느덧 반년일세    

좋은 밤 몇 번이나 밝은 달 아래 누웠나    

맑은 강가에서 물새를 바라보며 잠이 드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원래 없었으니

비방하고 칭찬하는 소리 응당 듣지 않았네

소매에는 뇌소차가 아직 남아 있으니       

구름에 기대어 두릉의 샘물을 담는다네

天光如水水如煙

此地來遊已半年

良夜幾同明月臥

淸江今對白鷗眠

嫌猜元不留心內

毁譽何曾到耳邊

袖裏尙餘驚雷笑

倚雲更試杜陵泉

 

 

   이 시는 석천의 물로 차를 달이는 심회를 읊고 있다. 젊은 시절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였던 초의는 두륜산으로 돌아와 일지암 일대에 두어 칸 모옥을 짓고 그곳에서 차밭을 일구며 늘 차를 마시면서 생활하였다. 일지암에서 자연과 동화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물빛처럼 푸른 하늘, 맑은 강물이 흐르는 곳에차 끓이는 연기 피어오르고, 밝은 달 아래 눕기도 하고 백구와 짝이 되어 잠들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세속의 소리가 들리겠는가? 석천의 샘물을 길어다 차를 끓이며 다도를 즐기면서 티없이 맑은 정신을 잃지 않는 이 생활이야말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곧 선의 참 맛을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불법은 고차원의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곳에 있으며,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본래 '다선일미'란 표현은 趙州 선사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어느 날 두 스님이 조주 스님을 방문하였는데 조주가 한 스님에게 '일찍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하니 '예, 왔었습니다'라고 하자 '그럼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 또다시 다른 스님에게 '일찍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그 스님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조주 스님이 '그렇다면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스님이 '어찌하여 이곳에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온 적이 없는 사람이나 차나 마시고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이 '자네도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훗날 '끽다거(喫茶去)'라는 화두가 되었고 조주차는 선가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초의 선사는 해마다 봄이 되면 차를 법제하였는데 그 솜씨가 대단하여 차맛이 가히 일품이었다고 한다. 김정희의 동생 김명희가 초의 선사로부터 차를 선사받고 쓴 보자.

 

 

늙은 스님은 차 고르기를 부처님 고르듯

일창일기의 엄한 계율을 지켜

더욱 묘하게 덖고 말리는데 두루 통달하여

향기와 맛이 바라밀에 든다네 

老僧選茶如選佛

槍一旗嚴持律

尤工炒焙得圓通

從香味入波羅密

 

 

   초의의 <다신전>에는 차를 따는 방법에서 만드는 법, 보관법, 끓이는 법, 마시는 법, 다구에 관한 것 등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러한 엄정한 과정에 따라 차를 법제하였으니 그 맛과 향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 맛과 향으로 인하여 바라밀의 세계에 든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두고 '茶禪一味'라고 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대둔사에서 惠藏禪師를 만나 전통적인 차맛을 맛보고 차를 애호하게 된다. 그가 혜장 선사에게 차를 구하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듣자니 석름골에는

예로부터 좋은 차가 난다네

보리 이삭 팰 철이 오면

한 잎 두 잎 새싹이 자란다오

궁하게 사는 사람 채식에 버릇되니

노린내 비린내나는 고기 먹을 뜻 없어라

돼지고기와 닭죽 같은

호사스런 음식 먹기 어렵도다

현벽병의 고통이 있고

때때로 술을 마셔 깨지 않기 때문이라오

바라오니 스님의 숲에 있는 차

육우의 차솥에 조금만 채워 주소서

베풀어 주시면 내 병 물리치려니

나룻배로 건너 줌과 어찌 다르리오

법대로 불에 쪼여 말리어/ 물에 넣으면 그 차빛 맑기도 하리라

 

 

   위의 시에서 석름골백련사 서쪽에 있는 석름골로 보인다. 다산은 오랜 귀양살이로 채식에 길들여졌고 더군다나 현벽증(근육이 당기는 병)의 고통에다 술을 마셔 깨지 않는 정신을 위해 차가 필요하니 보내달라고 간청을 한다. 그 차는 다산이 안고 있는 병을 물리칠 수도 있을 것이니, 차를 보내준다면 그 고마움은 마치 나룻배로 강물을 건너게 해 주는 것과 흡사하다고 하였다.


   차의 덕목에 대하여 저술한 李穆이 읊은 <茶賦>에는 '한 주발을 마시니 굶주린 창자에 물대어 씻어내고, 두 주발을 다 마시니 상쾌한 혼이 신선이 되려 하고, 세 주발을 마시니 병든 몸이 깨어나고 두통이 나으며, 네 주발을 마시니 씩씩하고 날랜 기운이 일어나고 근심과 분한 마음이 없어지며, 다섯 주발을 마시니 색마가 놀라서 달아나고, 여섯 주발을 마시니 해와 달은 사방 한 치 넓이이고 많은 종류의 물건이 신기하게 보이고, 일곱 주발은 채 절반도 마시지 않았는데 맑은 바람이 옷깃에 불어서 천상계의 문을 바라보니, 봉래산의 많은 수목이 매우 가까운 거리인 듯 하더라'라고 일곱 주발의 효능에 대하여 말한 바 있는데 다산은 아마도 이러한 차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였던 것 같다. 다산의 시를 한 편 더 감상하여 보자.

 

 

비 갠 뒤 새 찻잎 깃발인 양 피어나니

차부엌 차멧돌 살펴야 하겠구나

동방엔 예부터 차 세금 없었거니

앞마을 개 짖는 소리 두려워 마라

雨後新茶如展旗

茶竈茶구 漸修治  *(구;石+ )

東方自古無茶稅

不 前村犬吠時

 

 

   비온 뒤 찻잎 싹이 돋아난 것을 보고 지은 시이다. 비온 뒤 돋아난 이 싹을 법제하여 향그런 차를 끓일 것이니 茶具를 미리 살펴야겠다는 시인의 마음에는 잔잔한 기쁨과 설레임이 엿보인다. 혹여 차 세금이라도 걷어갈까 염려도 되겠지만 동방에선 그런 일 없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찻세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종직<점필재집> '나라에 바칠 차가 경상도 함양에는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백성에게 찻세가 부과되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찻세가 있었던 것이다. 다산이 남긴 대부분의 다시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읊은 것이다. 그와 얽힌 차로는 햇볕에 쬐어 말린 일쇄차(日曬 茶), 다산(만덕산) 밑에 있는 만덕리 주민들에게 만드는 법을 전수한 만덕차가 있다. 또한 다산은 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강진을 떠날 때 다산 초당에서 가르친 제자들과 <茶信契>를 만들기도 하였다.  


   추사 김정희는 詩·書·畵에 능했던 예술가이면서 학자이면서 또한 다인이기도 하다. 초의 선사와는 동년배 知己로 우의가 두터웠다. 초의 선사가 법제한 차 맛이 그리워 '차를 비는(乞茶)'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수년 이래 햇차는 과천의 나의 집과 한강 정약용의 별저 밑에 맨 먼저 이르렀거늘 벌써 곡우가 지나고 단오가 가까이 있네. 두륜산의 중은 형체와 그림자도 없어졌단 말인가. 어느 겨를에 햇차를 천리마의 꼬리에 달아서 다다르게 할 것인가....만약 그대의 게으름 탓이라면 馬祖德山의 몽둥이로 그 버릇을 응징하여 그 근원을 징계할 터이니 깊이깊이 삼가게나. 나는 오월에 거듭 애석히 바란다네.''

 

 

   위와 같이 해학이 넘치는 글을 보내어 차를 청하기도 하였으며, 언젠가 초의가 추사에게 차를 보내면서 다른 친구 白坡에게도 전해 줄 것을 부탁하자 좋은 차에 욕심이 난 추사가 '나누어주신 차를 백파에게 주기가 아깝습니다. 큰 싹과 고아한 향기며 맛이 너무도 뛰어납니다. 한 포만 더 보내줄 수는 없는지요?'라고 쓴 편지도 있다. 김정희는 연경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맛 본 勝雪茶에 매료되어 차도에 접하게 되었는데 그 차맛을 잊지 못해 '勝雪道人'이라는 호를 쓰기도 하였으며, 제주도의 대정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죽로의 방(竹爐之室)이라는 휘호를 쓰기도 하였다. 죽로는 차 화로에 씌우는 대씌우개이다. 그가 남긴 다시 <혜산철명(惠山 茗)>이란 시를 감상하여 보자.

 

 

천하에 둘째가는 샘물

게다가 진·홍까지 더하였네

마실 만한 샘물이야 얻을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참으로 함께 하기 어려워라

天下第二泉

又重之秦洪

飮泉猶可得

二妙直難同

 

 

   혜산은 중국 강소성 무석시에 있는 샘물로 천하에 둘째가는 샘물로 秦峴과 洪稚存은 좋은 차를 들고 가서 차를 끓여 마셨다고 한다. 세상에서 차를 달이기에 알맞은 물을 구할 수는 있지만 차의 맛과 향을 아는 벗을 얻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표현한 시이다. 추사 역시 '참선과 차 끓이는 일로 또 한 해를 보냈다'고 한 시구가 말해주듯 누구 못지 않게 차를 즐겼던 다인이나 차에 관한 시편은 많이 남기지 않은 듯하다.

 

차 한잔에 마음 씻으니


해 저물녘
금주산 맑은 물
질 화로에 올려놓아
찻물 끓는 소리에
서리 서리 김서리어
꽃샘바람 잠재우네.

맘자락 앉혀 놓고
분청 다기 챙겨 들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차 한 잔 따르니
이것이 中正일세.

머무는 계절병
맘갈피에 고이 접어
옛이야기 쌓아두고
애증의 풍랑
차 한 잔에 잠재워
잔물결 만드네.

고은 찻빛으로 눈 밝히고
은은한 차향으로 해맑아져
정결한 차맛으로 마음 씻으니
사그러지는 삭풍
차 한 잔에 깨우치는 茶道
그 누가 알랴, 이같은 신기루를.....


 

초의송(草衣頌)


맘자락 땟자국 씻으려
맑은 물 질 화로에 올려 놓고
초의차 꺼내 놓아
선인(先人)의 음다풍(飮茶風)
두레박으로 퍼올리니
초의선사(草衣禪師), 찻빛 되어 앉아 있네.

백년 세월 속 다성(茶聖)되어
차향(茶香)으로 맞아드니
큰 별 품안으로 스며들어
천상의 고뇌 풀어주니
서산마루에 떨고있는 이 길손,
바라밀의 경지로세.

그대, 다산(茶山)과 추사(秋史)와의
차 마시며 맺은 인연
다시(茶詩)로 열매맺고
천년 세월의 음다풍속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으로
차문화(茶文化)의 석탑 이루었네.

차는 물의 神
물은 차의 體
茶禪一味는 大道로 이어져
두륜산 일지암에 머무르니
청솔가지 바람 일어 호롱불 밝혀

그대, 저무는 세상 길잡이 되었다네.

 


하루에 한번쯤은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그림자
지나감의 진한 흔적은
자극으로 피어나고
너무도 짙은 절망이 두려워
오열을 터뜨리며
홀로 나그네된다.

회상의 빛바랜 연가 속에
오늘도 어딘가를 헤멜
그 영혼을 돌이키며
한잔의 진한 茶내음 속에서
입술을 적시는 뜨거움으로
피부에 스며드는 아픈마음이
무지개되어 하늘을 난다.

하루에 한번쯤은
매일 아침 茶 내음 음미하듯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연습이라도 한다면
맺힘은 술술 풀리지 않을런지

시시비비(是是非非)는 훗날의 이야기
인내하는 마음으로
그의 영혼이 지난날의 족쇄를
벗을 수 있도록 어루만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아닐런지

하루에 한번쯤은
그윽한 잔 옆에 두고
모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고
불어오는 바람
풀어헤친 가슴으로 맞는다.

 


찻잔에 인생 담고


차 한 잔에 하늘 실으니
훈훈한 정 별님되고
윤회의 격동사 돌고 돌아
미움 서린 잔해는
차향(茶香)으로 녹아들어
옛이야기 그득하네.

여한의 구름떼
찻빛 속에 묻히어
고운 노을빛 꿈꾸며
차(茶)에 스민 오미(五味)의 맛
인생 오미(五味)와 평행선 만드네.

먼훗날의 자화상
찻잔 속에 피어나
수줍게 삶의 품격 높여주니
차향은 연가되어 혀 끝에 인생싣네.


 

작설차 한모금


문살이 떠는
솔바람 소리
청솔가지 한아름
백자에 담아놓고
향 그윽한 작설차 한 모금에
찻물 소리 더불어 시름을 담네.

연두빛 물빛으로
고운 빛 닮고
감도는 향내음에
나만의 향기 풍기며
한 모금 맛으로
하루가 영글어 가네.

작설차 한잔
다기로 전달되는 따스함은
거실의 풍경
온기로 적시어
피어오르는 기쁨으로
가족 노래 시작되네

 


그저 차나 드시오


차 한 잔에 세상담아
공존의 냉각시대
따뜻하게 덥히어
몸과 마음 열어보아
情과 情을 맺어보세.

차 한 잔에 마음 깨워
禪의 길목 이르니
백자잔에 어리는
무지갯빛 환희
아, 이것이 詩禪의 경지로세.

당의 고승 조주선사
그저 차나 드시오
그말, 세상 독 씻어내는
오늘에 꼭 필요하니
혜안의 눈 밝힘은 茶禪一如이리라

 


찻빛 더욱 고와


내가 만들어 더욱 좋은
개구리 얹혀 있는 수반에 물을 담아
2월에 핀 철쭉 꽃잎 띄우니
우리집, 경주의 포석정일세.

튀어나올 개구리 언저리에
띄워 있는 연보랏빛 꽃잎보며
찻자리에 앉으니 찻빛 더욱 고와
마음은 퐁당 차 향기에 빠져드네.

졸음에 겨워 있는 옥같은 보석들이
줄줄이 찻자리에 모여들어
내 눈가 빛이 되어 반짝이니
포석정의 술자리, 신라의 왕 부럽지 않네.

 


차 한잔에 소망담아


평생 소원 품어 안고
차 내음 속
소망담으니
영혼을 깨워
날 일러 맺힘을 풀라하네.

찻잔에 어리는
회의(懷疑)의 바다
草芥라 하며
날 일러 썩으라 하네.

기원하는 마음
하늘에 닿으니
자리매김 속 재생의 환희로
날 일러 피어나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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