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숙세에 무슨 죄가 있사옵기에 이런 악독한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까?” -관무량수경
부와 권력 모두 다 갖췄지만
아들 반역에 절망한 위데희
부처님 나투셔서 법문 펼쳐
비극적인 상황 아니었다면
부처님 법문 듣지 못했을 것
매일의 일상서 겪는 번뇌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가르침
▲ 작자미상, ‘관경서분변상도’, 고려, 비단에 색, 150.5×113.2cm,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
건강한 몸. 정원이 딸린 집. 평생 나오는 연금. 그리고 통장에 꼽아둔 현금 십 억…. 이 정도면 행복하겠지? 얼마 전에 친구들 모임에서 행복한 노년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오랜 설왕설래가 끝난 뒤 한 친구가 최종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위의 문장이었다. 그러자 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비실비실한데다 해마다 치솟는 전세금 맞추기도 허덕허덕한데 뭐? 십 억? 꿈도 야무져. 그러자 사방에서 동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맞아.나는 월말마다 돌아오는 마이너스통장 채우기도 바빠. 나는 정원이 없어도 괜찮으니까 내 집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어. 아유, 몸은 어떻구. 갈수록 더 보살펴달라고 아우성이야.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나도 나도. 얘기 한 번 거창하게 터트렸다가 기가 죽은 친구가 한마디 던졌다. 꿈도 못 꿔 보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는 오십대 초반여인들의 동창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꿈이라도 꿔보고 싶은 모든 조건을 다 가진 여인이 있었다. 위데희 부인이다. 위데희 부인은 부처님 생존 시 가장 강성한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왕비다. 왕비의 남편은 그 유명한 빔비사라왕이다. 빔비사라왕은 왕 중에서 가장 먼저 불교에 귀의했으며 부처님께 죽림정사를 지어 보시한 왕이다. 빔비사라와 위데희 사이에는 아사세라는 왕자까지 있었다. 이런 사람에게 무슨 걱정이 있을까. 겉으로 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정원 딸린 집과 십억의 현금이 문제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다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경전 구절은 위데희 왕비가 절규한 내용이다. 그녀에게도 근심과 고민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 가진 자의 고민이라니.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왕사성에 있던 위데희왕비는 아까부터 계속 안절부절하며 마음을 잡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지금 자신 앞에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아사세왕자는 친구 제바달다의 꼬임에 빠져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일곱 겹의 담으로 둘러싼 감옥에 가뒀다. 아무리 세상이 말세라고 하지만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그럴 줄은 몰랐다. 그렇게 귀엽고 영특한 왕자가 아니던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애지중지 기른 자식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다니. 왕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기가 막혔다. 그러나 지금은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남편이 굶어죽을 수도 있었다. 왕자가 벌써 며칠째 밥은 커녕 물 한모금도 들여보내지 못하게 막았다. 우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우선은 남편부터 살려야 한다. 왕비는 마음이 급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될까.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던 왕비의 머리에 전광석화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왕비는 떨리는 마음으로 왕이 갇힌 감옥으로 향했다. 손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것을 안 병사들이 별 의심 없이 왕비를 들여보내줬다. 왕비는 옥문이 닫히자마자 자신의 몸에 바른 음식을 왕에게 먹였다. 그녀는 왕을 위해 깨끗이 목욕하고 꿀에 밀가루와 우유를 반죽해 몸에 바른 다음 영락 구슬 속에 포도즙을 담아 왔다. 왕은 왕비가 준 꿀반죽과 포도즙을 먹고 겨우 기운을 차렸다. 정신이 든 왕은 부처님이 간절히 그리웠다. 평소에 부처님을 신봉한 마음이 돈독했던 왕은 부처님이 계시는 기사굴산을 향해 합장 예배하며 간절히 기원했다.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는 그와 친구 사이니 자비를 베풀어 팔재계를 주도록 해달라는 간청이었다.
기사굴산에서 왕의 기도를 들은 부처님은 목련존자와 부루나존자를 감옥으로 보냈다. 그들은 새매처럼 재빠르게 감옥에 도착했다. 목련존자는 왕을 위로하고 팔재계를 주었다. 설법제일 부루나존자는 왕을 위해 설법했다. 왕은 비로소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날부터 왕은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혔으나 평온한 나날이 계속됐다. 그렇게 이십일일이 지났다.
아사세왕자는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했다. 부왕이 갇힌 감옥의 문지기를 불러 아직도 아버지가 살아 있느냐고 물었다. 왕자의 문책이 두려웠던 문지기는 자신이 본 대로 거짓 없이 고했다. 얘기를 듣고 난 왕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자신의 명을 거역한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다. 화가 난 왕자가 칼을 뽑아들었다. 왕자가 어머니를 향해 칼을 막 내리치려는 찰나 월광이라는 신하가 왕비를 막아섰다. 개벽 이래 왕위를 탐내 부왕을 살해한 자는 많았어도 자기 어머니를 살해한 자는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왕자를 말렸다. 왕자는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다. 대신 어머니를 깊은 골방에 가두라고 명했다.
궁중 깊은 골방에 갇힌 왕비는 슬픔과 걱정으로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왕비는 기사굴산을 향해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복받쳐 오르는 슬픔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왕비의 애틋한 하소연을 들은 부처님은 왕비가 미처 머리를 들기도 전에 허공을 날아 왕궁에 나투셨다. 깜짝 놀란 왕비가 자세히 보니 부처님이 찬란한 자마금색의 몸으로 연꽃 위에 앉아 계셨다. 부처님 옆에는 목련존자와 아난존자를 비롯해 제석천과 범천과 사대천왕 등 여러 천신들이 서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있었다. 부처님을 본 왕비가 흐느껴 울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숙세에 무슨 죄가 있사옵기에 이런 악독한 아들을 두게 되었습니까.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세계를 자상하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마땅히 그 곳에 태어나겠사오며, 이 염부제와 같은 혼탁하고 사나운 세상에는 아예 살고 싶지가 않사옵니다. 이 더럽고 악한 세상에는 지옥과 아귀와 축생이 충만하고 못된 무리들이 너무나 많사옵니다. 저는 다음 세상에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고, 사나운 무리들을 만나고 싶지 않사옵니다. 지금 저는 부처님 앞에 오체투지하여 참회하오며 구원을 비옵니다. 진정으로 원하옵나니, 중생의 태양이신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청정한 업으로 이루어진 안락한 세계를 보여주옵소서.”
왕비의 간절한 소원을 듣고 부처님은 한량없는 시방세계에 있는 불국토를 비춰주셨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아미타여래의 찬란한 극락정토가 펼쳐졌다. ‘왕사성의 비극’으로 알려진 위의 내용은 ‘관무량수경’의 ‘서분’에 나온다.
고려시대 때 제작된 ‘관경서분변상도(觀經序分變相圖)’는 왕사성의 비극을 한 화면에 압축해서 그린 작품이다. ‘관무량수경’의 서분은 드리마틱한 내용으로 인해 ‘관경서분변상도’로 특화해서 제작됐다. 한 화면에 일곱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이해하기 쉽게 필자가 그림 속에 이야기 순서대로 번호를 삽입했다. 번호 순서대로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①위데희 왕비가 감옥에 갇힌 빔비사라왕에게 몰래 음식을 가져간 장면 ②목련존자와 부루나존자가 왕 앞에 나타나 허공에 떠 있는 장면 ③부루나존자가 왕을 위해 설법하고 재계를 주는 장면 ④모든 사실을 안 아사세왕자가 칼을 뽑아 어머니를 겨누자 신하들이 말리는 장면 ⑤부처님이 계시던 기사굴산 ⑥유폐된 위데희왕비의 요청으로 부처님이 제자들과 천신을 데리고 나타난 장면 ⑦위데희왕비가 부처님을 향해 울면서 설법을 청하는 장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누각과 나무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된다.
장엄한 극락세계를 한 화면에 펼친 ‘관경변상도’는 고려시대 때 많이 제작됐다. 일본의 서복사와 지은원, 인송사, 법륜사 등 여러 곳에 아직까지도 훌륭한 ‘관경변상도’가 소장되어 있다. ‘정토삼부경’에 포함된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은 모두 극락정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질문자와 스토리의 주인공이 조금씩 다르다. ‘무량수경’에서는 아난이 부처님께 극락정토에 대해 질문하고 부처님이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여래에 대해 설법한다. 경의 많은 부분이 극락정토에 대한 묘사로 채워져 있다. 더불어 우리 같은 중생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방법도 세밀하게 적혀 있다. 극락왕생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관무량수경’은 오늘 살펴보게 될 왕사성의 비극이 계기가 되어 설하신 법문집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사리불존자를 상대로 설법하신 내용이다.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의 뒤를 이어 두 경전의 뜻을 요약하셨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분량이 짧고 간결하다. 역시 극락정토를 찬탄하는 내용과 극락왕생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여러 차례 극락정토에 대해 설법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위데희 부인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라 했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듯 삶의 괴로움과 고통이 있어야 깨달음을 구한다. 왕사성의 비극이 없었다면 위데희 부인은 극락정토에 대한 법문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겪고 있는 번뇌 또한 보리를 얻기 위한 가르침이 아닐까.
[1247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