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수월관음도

2016. 4. 4. 12:00美學 이야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 불교 이야기

산바라기 2009.05.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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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니가야…” 세상 중생의 고난을 보살핀다는 자비의 관세음보살,

그의 그림 밑에서 불자들의 독경 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달빛 아래 보타락가산 암벽에서 관음보살이 진리를 찾는 선재동자에게 불법을 일깨우는 그림,

이름하여 ‘수월관음도’가 고고히 빛나고 있다.

 

 

 

 

작품명 : 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 수월관음도

제작시기 : 고려(1310년), 비단에 채색

작품크기 : 화폭 430×254cm, 전체 530×300cm 일본 중요문화재

소장처 : 원) 사가현(佐賀縣) 카츠라시(唐津市) 가가미(鏡) 가가미진자(鏡神社)

             현재) 사가현(佐賀縣) 현립박물관

 

 

   가가미신사 수월관음도는 현존하는 고려불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명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현재 세로 4미터 30센티, 가로 2미터 54센티의 거폭이지만 원형은 좀 더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놀라운 사실은 비단바탕 한 장에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비단 한 장에 그려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지만,

이와 같은 거폭의 비단이 존재하는 것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및 일본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례이다.

 

기록에 의하면 충선왕의 왕비였던 숙비(淑妃)가 8명의 궁정화가를 동원하여 1310년 5월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작품은 당시 왕실 최고 권력자의 발원으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화인들에 의해 공동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월관음은 고려불화에서 유행한 주제도로 40점에 달하는 작례가 현존하고 있다.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 실려있는 설화에 근거하여,

진실한 구도의 뜻을 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28번째 보타락가산 방문시 관음보살과 대면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배경의 죽림과 암굴, 청정한 계곡, 산호가 피어오르는 물가 등은 모두 성스러운 장소인 보타락가산을 나타낸다.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앉아있는 관음보살은 다른 수월관음도와는 반대로 화면의 왼쪽에 배치된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화면은 손상이 많지만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의 선재동자상에 이르는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반가하여 앉아 있는 관음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자애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관음은 머리 부분에 보관을 쓰고, 그 중앙에 아미타여래 화불을 모셨는데, 이 특징은 관음보살의 징표이다.

상반신은 금색의 피부를 노출하고 있고 빨강과 초록, 파랑 색색의 구슬 및 금으로 된 장식을 가슴과 팔에 부착하고 있다.

옷을 보자면, 다양한 문양을 시문한 치마를 두르고, 이것을 복대와 끈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투명하게 보이는 얇은 베일을 머리에서부터 쓰고 있는데, 이것이 부드럽게 전신을 덮고 있다.

기암의 한쪽 끝에는 한 줄기 버드나무가지가 꽂혀 있는 정병이 놓여 있다.

선재동자는 실재 아동의 크기에 맞게 구성되었으며 관음을 바라보는 강건한 눈은 인상적이다.

 

 

 

 

‘수월관음도’는 단 한 폭의 대형 비단이 화폭이다.

바위 위에 반가좌로 앉은 수월관음의 설법 자태를 화려한 색채 기법으로 그렸다.

가까이에서 보면 우선 현실과 전혀 다른 종교화 특유의 순수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만나게 된다.

금색 살갗에 귀갑문, 연꽃무늬 입힌 붉은 치마와 ‘시스루 패션’ 같은 투명 베일을 걸친

보살의 옷차림과 단아하면서도 영적인 자세가 눈을 쓸고 간다.

화면 오른쪽 하단의 작은 선재동자와 달리 거대 보살이

화면 상단과 하단을 압도적인 흐름으로 지배하는 시선의 구도가 숭고한 환영을 낳는다.

 

옛적 고려 화공들은 여백과 혼색을 싫어했다.

빨강, 흰색 등의 단순한 원색을 바탕색으로 칠하되 금물로 매혹적인 선묘를 부려 꽉 찬 화면을 만들었다.

날갯짓처럼 곡선 그리는 흰빛 실선으로 관음이 두른 베일이 투명하게 너울거린다는 느낌을,

입술을 금물로 덮었지만 위아래 입술이 맞붙는 곳과 언저리를 빨간색 톤으로 마무리 지어 색의 강약을 주었다.

투명한 베일에 흰 빛깔을 미묘하게 농도 조절하면서 구름과 봉황 무늬를 넣어 베일의 우아한 실존감을 드러낸 표현은 환상미의 극치다.

화면 왼쪽 하단의 대나무 바위 묘사는 수묵화의 먹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표면에 미세한 초록색을 덧입혀 먹색이 강해 보이지 않도록 조절했다.

 

이 그림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지난 8일 통도사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시로노 세지 국립도쿄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정밀 분석 결과 보살 이마 위 백호는 1㎜도 안 되는 세밀한 나선 모양의 선을 계속 되풀이해 그린 것이며,

아래 바위도 초록색 안료를 입혀 그늘을 드리운 효과를 연출했다”고 밝혔다.

 

명문을 보면, 이 불화는 1310년 충렬왕과 아들 충선왕을 대대로 모신 후궁이자 그들의 사후 고려 권력자가 된 숙비의 발원으로 태어났다.

이 그림이 당시 왜구의 주요 본거지였던 규슈 서해안의 가가미 신사에 1391년 봉안됐다는 다른 후대 기록 또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려 서해안에도 수시로 출몰했던 왜구들이 가져갔을 공산이 크다는 게 통설이지만, 명확한 진상은 수월관음만이 아실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는 선재동자가 인도 남쪽 바닷가에 연한 보타락가산에서 법을 설하는 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관음을 수월관음이라 부른다.

 

수월관음(水月觀音)이라 한 이유는 달이 높이 떠올라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이 물가의 벼랑위에 앉아서 선재에게 법을 설했기 때문이다.

마치 해변에 위치한 보타락가산의 물위에 달처럼 아름다운 관음이 현신하듯 말이다.

 

 


‘수월관음도’의 오른팔 부분. 팔에 걸쳐진 채 우아한 곡선으로 포개진 투명한 사라(베일) 자락이 보인다.

베일 표면에 피어오른 구름과 날아가는 봉황새의 자태가 아련한 필치로 그려졌다

 

 

 

수월관음도의 진실 / 노형석기자

 

   1392년 무인 이성계는 공양왕을 쫒아내고 조선왕조의 태조로 등극한다

그 여덟달 전인 1391년 11월,

고려를 괴롭히던 왜구의 유력한 본거지였던 일본 규슈섬 서해안 사가현의 가가미 신사에 고려 불화가 한 점 들어왔다.

 

료켄이란 승려가 바친 불화는 고려 왕실이 정성껏 발원한 <수월관음도>였다.

보관 쓰고 온몸에 베일 두른 관음보살이 달빛 아래 암벽에서 진리를 묻는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정경, 아름다운 불화였다.

 

그림 명문에는 1310년 고려 26대 충선왕(재위 1308~13)의 후궁이던 숙비 김씨가 화원 8명을 시켜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사>를 보면 숙비는 원래 충선왕의 아버지인 25대 충렬왕의 후궁이었다.

원나라 출신 왕비를 잃은 부왕을 위해 충선왕이 과부였던 숙비를 애첩으로 들여준 것이다.

1308년 8월 충렬왕이 죽자 숙비는 왕위를 이은 연하의 충선왕과 동침하며 다시 후궁이 되어 권세를 부린다.

게다가 충선왕은 등극 석달 만에 원나라로 떠나 다시는 고려 땅을 밟지 않고 편지로 정사를 보았다.

불화는 그 뒤 1310년 5월 그려졌다. 일본 기록에 불화가 나타난 건 다시 그로부터 81년 뒤다.

왜 불화를 발원했을까. 어떤 곡절로 일본으로 갔을까.

 

   학계에서는 발원 배경으로 충선왕의 아들 낳기 기원설, 다른 후궁 순비와의 권력투쟁설, 충렬왕의 원 왕비 추모설 등이 엇갈린다.

<고려사>를 보면, 1310~1391년은 왜구들이 교동도에 진을 치고 개경 부근까지 노략질을 일삼아 천도까지 논의하던 시기였다.

흥천사의 충선왕 영정이 탈취당하고, 태조 왕건의 아버지 초상까지 털어갔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그래서 이 기간 왜구가 개경 부근 사찰에서 <수월관음도>를 가져갔다는 추정이 통설이다.

 

지난달 30일부터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전시중인 가가미 신사 소장 <수월관음도>는

바로 이 복잡다단한 역사적 곡절이 깃든 그림이다.

금물로 채색된 이 숭고한 걸작 앞에서 많은 이들이 옛 그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시 준비 과정을 지켜본 일부 미술사학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1년간 공들인 전시가 막판에 한 국내 방송사의 취재 탓에 좌초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는 후문이다.

불화를 위탁 보관하면서 한국 전시 대여를 준비해온 일본 사가현립박물관에 지난달 국내 취재진이 찾아와서는

대뜸 불화를 가져간 왜구의 후손을 취재하려 하니 알선해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대경실색한 박물관 쪽은 곧장 통도사에 강한 불쾌감을 전했고, 절 쪽은 전시가 무산될까 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신용철 학예실장은 “1년에 38일만 공개해온 불화를 선의로 빌려준 일본 쪽 인사들 앞에서 정말 난처했다”며

“추정 외엔 약탈 물증이 없는데도, 지레 약탈품으로 단정하는 듯한 태도는 역효과를 빚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빼앗긴 문화재는 돌려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 곳곳에 숨은 불화, 회화, 사경, 종 같은 근대기 이전 유출 문화재들은 성격이 다르다.

약탈 물증이 명확하지 않고, 유출 경위조차 모르는 경우가 숱한데, 피해의식만 내세운다면 유물들은 더욱 깊숙이 숨어버릴 것이다.

현지에 숨은 우리 유물들을 발굴·조사하는 양국 전문가들을 나라에서 제대로 지원하고 키우는 배려가 먼저다.

우리가 유출 문화재에 애정이 있음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실마리가 될 것이다.

 

오는 9월 국립중앙박물관의 100주년 특별전에 일본에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온다는 뉴스가 인터넷에 떴다.

당장 나붙은 ‘약탈’, ‘송환 불가’ 등의 댓글들에 한숨이 나온다.

 

(한겨레신문 2009년 5월 13일자)

 

 

 통도사 성보미술관 전경

 


   불지종가 통도사성보박물관은 1999년 신축개관 때부터 2008년까지 매년 춘추계로

전국각지의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는 괘불을 전시하고 있다.

2009년은 본관의 개관 10주년으로 조선시대 괘불을 제외하고

가장 대작 불화인 가가미신사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표구보함 전체높이 약 5.3미터)를 전시하기로 확정하였다.

금생에 다시없을 전시에 많은 사부대중들의 관람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전시목적

 

지난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 보존과 관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이때에

세계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고려 수월관음도를 전시함으로써 우리문화재의 우수성과 귀중함을 확인시키고

나아가 국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마련하고자 본 전시를 기획하였다.

또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통도사만이 갖는 특수성을 보여주는 각종 장엄물을 한자리에 모은

“도량장엄 의식구 특별전”을 동시에 개최한다.

 

전시개요

 

1. 전 시 명 : 제21회 괘불탱 특별전(일본 가가미신사 고려 수월관음도)

2. 전시기간 : 2009년 4월 30일 ∼ 2009년 6월 8일

3. 전시장소 : 통도사성보박물관 중앙괘불전

4. 주 최 : 통도사성보박물관

5. 후 원 : 영축총림통도사, 양산시, 가가미신사, 일본사가현립박물관,

               일본문화청, 카라츠시교육위원회, 동경문화재연구소



 

 

한겨레신문과 통도사 홈페이지 그리고 일반 자료를 찾아 편집했습니다 /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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