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고려의 위상(位相)

2016. 4. 4. 12:55美學 이야기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고려의 위상(位相) | 碩峰 조성학님의 한류와 글

석봉 | 조회 280 |추천 0 | 2014.04.28. 15:33 
   


敬覲見高麗佛畫  공경하며 고려불화 배알(拜謁)
今存佛畫製高   현존 고려 제작 불화는
八割姦贓掠島    섬 오랑캐(島夷)가 략탈해간 장물이 80%라.
九百秊過驚覲見    9백년 지나 삼가 경탄(敬歎) 배알하며
淸寧水月淹當    청정(淸靖)한 水月淨의 당시에 젖어든다.
不丹書綫仁柔輭    부탄(Bhutan)왕국의 어질고 유연한 기법이
西域遠回    서역을 멀리 돌아 글() 손에 옮아,
陸海宣揚文化祖   륙지와 바다에 문화 조상 선양하니
一生齊龠廣陽    일 生生 가지런한 화음의 보시라.
(七言律, ‘支’韻 → 麗 夷 時 移 施)






전시된 관음도와 설명 미흡
2009년 5-6월 통도사에 전시된 수월관음보살도는 고려시대 작품으로
왜구(倭寇)가 강탈해간 것이다.
 
왜구는 3세기(13c-16c)에 걸쳐 1,500회 이상, 생필품으로부터
그림, 도자기, 서책 등에 이르기까지 귀중품을 무차별 약탈해갔다.
강화도/임진강/예성강 등 수도권 일대가 주 약탈대상이었다.
임진왜란 때 문화재급을 싹쓸이 해간 다음 비로소 끊겼다.


빙산일각(氷山一角), 이번 전시 그림은 그 일부다.
이러한 고려작품을 일본에서 빌려다 전시한 것이다.
수년 전 서울 국립박물관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런데 설명에 아쉬움이 있었다.
① 사찰(寺刹) 전시가 무색할 정도로 상업적이었다.
    유사 그림 중에서 그 크기가 제일이라는 투부터 그랬다.


② 무가(無價, priceless)여서 대보(大寶)라는 식도 그러했다.
    본말전도(本末顚倒), 값이 천문학적으로 커서 대보가 아니라
    고려인만이 그릴 수 있었던 대보여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③ 수월(관음도)에 대한 설명이 너무 미약했다.
    홍보책자에 수월(水月)이라
    한문만 썼어도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④ 당시 고려의 문명수준과 국제 위상에 대한 소개가 소외되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수월(水月)은 물에 비추어 보이는 달이다.
광의로는 물에 비추어 보이는 사물 모두를 지칭한다.


관음(觀音)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약칭이다.
관세음보살은 부처의 하나다.
곧, 곤경에 처한 중생이 진정으로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대자대비(大慈大悲) 보살이다.


수월관음도는 물에 비친 관음보살상을 그린 불화(佛畵)다.
자연이 물에 비추인 모습을 그리려면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수월도(水月圖)의 정신세계
중생심수정 보살월영현(衆生心水淨 菩薩月影顯)
중생심의 물이 청정해지면 보살의 달그림자가 나타난다.
 
① 수면(水面)이 잠잠해야 한다.
    풍파(風波)가 없어야 수월을 볼 수 있다.


② 기약 없는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다.
    수경(水鏡) 상태의 수면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③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수면이 잠잠한 시간은 아주 짧기 때문이다.
 
④ 마음의 풍파(風波)가 없어야 한다.
    수면이 고요해도 마음에 파도가 일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이면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⑤ 관음보살을 정확히 알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재림 예수처럼 만나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⑥ 관세음보살 선정도 쉽지 않다.
    백의관음(白衣觀音),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천수관음(千手觀音) 등 보살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⑦ 깊은 불심과 일념(一念)의 기도를 요한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아무리 유능한 화공(畵工)이라도 계시(啓示)를 받아야
    비로소 물에 비친 관음상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⑧ 기약(期約)이 없다.
    통도사에서 전시한 관음상은 3년여에 걸쳐 완성되었다 한다.
    불심이 대단한 화공이었기에 그 기간에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관음도 앞에 수월(水月)을 붙였을까?
그림 자체보다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심경(心鏡) 상태 유지라는
정신수양과 마음 다스리기의 중요성을 강조함이 아니었을까?
 
고려의 위상(位相)
▲ 물건엔 품격(品格), 사람엔 인격(人格)이 있지만, 나라에 국격(國格)이란 말은 없다.
    國格은 국위(國威), 위상(位相)으로 써야한다.


고려는 일 만년 유사 이래 최고 문명국이었고 최대 부국이었다.
금속활자, 경전, 관음도, 자기, 비단, 차, 무역 등이 말해준다.
수월도, 청자, 다기(茶器), 시문 등에서 당시 문화수준이 보인다.


전시그림을 통해서도
당시 고려의 불심과 호국불교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고려의 직조(織造) 기술수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마치 나비/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한 직조기술이다.

둘째, 이음새 없이 4.5m가 넘는 광폭비단에 그렸다는 사실이다.

21세기에 보아도 놀랍지 않은가?


고려가 부국(富國)이었던 것은
-조선업이 발달한 최대 무역국이었기 때문이고
-무역국이었던 것은 장보고의 해상무역 로(路)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꼬리/고리/코리로 알려진 것이다.


♣ 코리아 → 고리 :코리아는 잘못된 발음이다.
   Korea는 고리(高麗)의 잉어 음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고리(高麗)라는 원명이 없는 잉문표기 Korea라 해도
   장음 이(ea)를 이아로 읽는 것 자체가 무리(nonsense)다.


그래서 금속활자 외에 많은 경전(經典), 청자, 고려비단, 수월관음도 같은
그림 등의 고려문물이 유럽 각처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 정도만 보아도 고려를 이성계 일당이 형편없는 나라로 비하한
고려사(高麗史)의 고려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고구려의 부여/단군조선 다물(多勿), 고려의 고구려 다물 정신처럼
   고려다물(되 물림, 고토회복)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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