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전(展)을 보고

2016. 4. 6. 00:04美學 이야기


고려불화전(展)을 보고 | 전시회/연극/영화

구룡초부 2010.10.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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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월 12일부터 11월 21일까지 고려불화대전

(高麗佛畵大展)이 열리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흩어져 있어,

평상시에 구경하기 힘든 보물을 백 점 넘게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의도 첫날 여기를 관람할 예정이라고 한다.

 

 

 

 

후기를 적어 볼까 하고 인터넷을 뒤지니, 미사려구(美辭麗句)란

미사려구는 기자들이 벌써 다 써 버렸다.

 

…관세음보살이 비단 화폭 속에서 고고한 자태로 빛나고 있다…

 

….슬픈 듯 우수에 젖은 눈빛, 팔에 걸쳐진 채 발아래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베일, 버드나무 가지를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

 

…..손가락 끝에서부터 물 위를 스치는 옷자락 끝까지 흐르는 선(線)의 아름다움,

차분하면서도 단계적인 농담(濃淡)으로 효과를 준 색채감이 환상미의 극치를…

(조선일보 기사에서)

 

묘사가 참 관능(官能)적으로 나오는 것이 조선일보답다.

‘고고한 자태’부터 ‘우수에 젖은 눈빛’까지 나온 판에 내가 뭘 더 보탤 수 있으리오 만,

가장 인상 깊은 그림 몇 점 스캔해서 올리며 글이나 잠깐 붙여 본다.

 

대개들 이번 전시회 대표적 그림으로 이른바 “물방울 관세음보살”을 꼽지만,

나는 일본 정법사(正法寺-쇼보지) 소장 아미타불을 가장 인상 깊게 보았다.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 고려후기, 비단에 색. 190.0 x 87.2 cm,

일본 정법사(正法寺-소보지)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크기가 190cm 니 거의 실물크기-등신대(等身大)다.

 

이 그림이 왜 제일 좋았는지?

나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지식도, ‘우수에 찬 눈빛’ 식 문장력도 없다.

그냥 마음에 들 뿐이었다.

다만 나쁜(?) 걸 보았기에 이게 좋아 보이더라 는 말은 할 수 있겠다.

 

아래 사진은 고려가 아니라 일본 그림이다.



 

 

아미타성중내영도(阿彌陀聖衆來迎圖) 중 (部分圖)다.


일본 가마쿠라(鎌倉), 14세기, 비단에 색, 131.5 x 156.5c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가마쿠라 시대, 14세기라면 우리 고려불화보다 시대적으로 약간 뒤다.

그런데 고려불화와 비교하면 인체의 비례, 표정, 세부 묘사가 영 아니다.

이런 걸 보다가 우리 불화를 보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겠는가?

 

(일본 아니라) 같은 고려 아미타불도도 여러 점 있는데,

모두 평소에 보았다면 참 대단한 걸 하고 감탄할 불화(佛畵)들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한꺼번에 늘어놓고 보니, 차이가 한 눈에 들어 오면서,

정법사 소장본에 비하면 어딘가 조금씩 모자란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양 그림과 비교

 

   고려 불화의 연대는 대개 1100년 내지 1200년 경이다.

유럽으로 치면 로마네스크나 고딕 시대다.

로마네스크 시대는 성당이나 공예품은 있지만, 그림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전해 오는 것을 보면 우리(?) 불화에 비해 유치(?)..

으음…유치하다는 말은 취소하고..아무튼 세련되지 않았다.

그러니 로마네스크 보다 뒤인 고딕시대 그림을 하나 본다.

 

 

 

Giotto, The Lamentation, fresco (200 × 185 cm) - 1304-06,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지오토 애도(Lamentation)로써, 제작연대가 1304-6 년이니 고려불화보다

같거나 약간 뒤다. 서양미술사 책에 반드시 나올 정도로 유명하며,

르네상스 화가들이 모두 영향 받았다는 작품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인라서 그런지, 우리 고려불화가 훨씬 훌륭해 보인다.

 

 

정법사 소장 아미타불의 세부를 더 본다.

 

 

 

아미타불의 하반신이다. 발, 연꽃, 옷자락이 정교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서양에서 이 정도 작품이 나오려면 르네상스 시대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미타불께 죄송스럽게도 나는 이 옷무늬를 보고 이불보를 떠올렸다.

해설을 보니 연화당초문(蓮花唐草紋)이라고 한다.

 

 

다음은 학자와 기자들이 (기자야 박물관에서 배급해 준 자료에다가 약간의

발림을 보탰겠지만) 하나같이 감탄하는 이른 바 물방울 관세음보살이다.

 

 

물방울 관세음보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42.0 x 61.5 cm, 일본 천초사(淺草寺-센소지) 소장

 

   보살을 물방울이 감싸고 있는 것 같다고 물방울 관음보살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이름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물방울같이 보이는 것은 실은 신광(身光)이다.

보살 오른손에 버들가지 곧 양류(楊柳)를 들었다고 일본에서는 양류관음도라고도 부른다.

 

보살이 왜 양류(楊柳)를 들고 있는지에 대하여 해설이 몇 있으나,

중국 당대(唐代)에 이별할 때 버드나무를 꺾어 주던 풍속과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게 들린다.

 

 

 

관음보살은 여신(女神)같은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으나,

이 그림에서는 확실한 남자-남신(男神)의 얼굴인데, 손톱은 또 길다.

 

 

 

   수월관음도 중 선재동자 부분이다.

한 구석에 있어 무심히 보았던 꽃을 확대해서 보니 매우 정교하다.

선재동자(善財童子)는 불화(佛畵)에 자주 나오는 재미있는 캐릭터다.

보통 순진무구하게 어린아이인데, 이 그림에서는 나이도 더 들어보이고

옆 얼굴이지만 어쩐지 (야비하다면 지나치고) 때가 묻은 것 같이 생겼다.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러 여러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다니다가

보타락가산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난다는 장면이다.

수월관음도란 달이 높이 떠올라 휘영청 밝은 가운데 관음보살이

물가 벼랑 위에 앉아서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한다고 붙은 이름이다.

 

 

 

아미타불과 미륵불

 

   아미타불-아미타바(Amitabha)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살면서

우리 중생을 구원하는 부처님이다.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무량수전으로 이름 나오면 볼 것도 없이 아미타불 모신 법당이다.

 

종교가 뭐 있나?

다 혹시 구원 받아 볼까 하고 믿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구원을 담당하는 아미타불을 중생이 제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불교관계 책을 들쳐 본 것이라고는 아주 기초적인 몇 권 뿐인데,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미륵과 아미타불의  차이였다.

아 물론 아미타불은 어떻고, 미륵불은 저떻다 하는 설명은 있고,

그 정도는 나도 찾아 보았다.

 

정작 궁금했던 것은 미륵불이 엄연히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데

왜 또 아미타불이 나올까 하는 점이었다.

미래불인 미륵불이 결국 다 구원해 줄 텐데, 중생들은 무엇때문에

또 아미타불을 필요했을까 하는 점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경쟁을 통해 단가 떨어뜨리려는 것도 아닐테고.

 

나는 종교, 신(神)이던 부처든 인간이 필요해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신론자(無神論者)라고 부르더라도 할 말이 없다.

 

불교가 관대해도, 이런 관점은 반갑지 않은지 제대로 된 설명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미륵불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56억 7천만년 뒤다.

원래 5억7천6백만 년이다. 뭘 곱한 뒤, 그걸 다시 곱하고 또 곱하고

거듭 곱해서 나온 계산이다. 세월이 지나며 뒤에 0이 하나 더 붙고,

7과 6의 자리가 슬며시 바뀌어 56억 7천만년으로 되었다.

 

10년과 100년의 차이는 크지만, 5억7천6백만 년, 56억 7천만년쯤 되면

으악 소리 나오긴 다 마찬가지다. 광대무변한 부처님이라면 몰라도,

우리 인간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기다리나? 말이 좀 되는 이야기를 해야지.

 

옛날 사람이라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리 없다.

이웃집 처녀 믿고 총각귀신 될 수 없다고, 새로운 부처님,

부르면 바로 오는 부처님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부처님이 바로 아미타불이 아닐까?

 

이상은 불교계에 공식 질의하여 받은 답변이 아니니, 아님 말고다

그런데 역사를 들쳐 보니, 난세(亂世)가 되면 처음 미륵신앙이 유행하다가

그 뒤 아미타불이 나왔다. 따라서 내 추측이 그렇게 허튼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회 작품의 대부분-결국 고려불화의 단골 소재는 아미타불이다.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아바타(Avatar)니 아미타불이나 마찬가지다.

고려 귀족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여하히 구원받느냐였던 것이다.

쓰고 나니 너무 뻔한 소리했다.

 

 

아미타 삼존도(阿彌陀三尊圖)

 

 

아미타 삼존도(阿彌陀三尊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00.5 x 54.2cm, 일본 MOA 미술관 소장, 일본중요문화재

 


   가운데 아미타불이 있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이다.

삼존(三尊)이 극락에서 중생을 맞아 들이는 내영도(來迎圖)다.

위 삼존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생이 나오는 그림도 있다.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의 구도가 (내 눈에는) 삼각형으로 보인다.

르네상스시대 그림 해설을 읽다 보면 삼각구도가 어떻니 하는 소리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 삼존도로 보면 삼각구도가 서양애들 전유물도 아니지 않는가?

이번 전시회에는 삼각구도라고 생각되는 작품이 여럿 더 있다.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담산신사 소장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 후기,

비단에 색, 110.0 x 57.7cm, 담산신사(談山神社-단잔진자) 소장

 

   역시 수월관음도로 일본 담산신사 소장본이다.

나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아 이건 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다.

사람 눈은 다 같은지, 이번 전시회 리프렛에 실렸다. 곧 대표적 작품이다.

 

 

 

보살의 얼굴은 살집이 두둑하고, 수염이 났으며 머리엔 보관을 썼다.

붓 가는 대로 하늘하늘 옷자락 선은 살아 펄럭이고 있다.

 

 


후광(後光)과 광배(光背)

 

   동서양 종교화에서 공통점 중 하나가 후광(後光)이다.

서양에서는 후광(後光)-아우라(Aura), 불교에서는 광배(光背) 라고 부른다.

 

 

 

 

위 그림은 앞에서 한번 말한 지오(Giotto)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다.

1300년대 초 작품이니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보다 근 2백년 앞서고,

고려 불화와 거의 같은 시대다.

 

그런데 후광(後光) 처리가 우리 불화에 비해 졸렬하게 보인다.

관람객을 등지고 있는 사도(使徒)들은 얼굴 앞쪽으로 후광을 놓았다.

이렇게 앞에 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머리 위에 얹어 놓기도 하니

아우라(Aura)를 후광(後光)으로 번역하기도 어렵겠다.

 

 

 

담산신사본 수월관음도 중 하반신. 옷주름과 무늬가 세밀하다.

 

 

 

   선재동자 부분이다.

이번 동자의 얼굴은 맑다. 오른 편 밑에 있는 것은 산호같이 보인다..

서양 종교화에서 산호(珊瑚)는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의미라던데,

불화(佛畵)에서는 어떤 뜻인지 잘 모르겠으나, 선재동자 옆에 있는 것이 우연일까?.

 

 


고려불화와 일본

 

   이 훌륭한 고려불화는 현재 대부분 일본에 있다.

고려불화는 160여 점이 남아 있는데, 130여 점이 일본,  20여 점이 미국과 유럽에 있다.

국내에는 불과 10 여 점인데 그것도 최근 외국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도 일본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려불화가 대부분 일본에 가 있는 까닭을 왜구, 임진왜란, 일제시대 때

강탈당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조선시대 억불정책 아래 사대부들이

불화를 백안시하는 동안 일본인들이 열심히 수집한 면이 있을 것이다.

물론 도둑질 해간 것도 상당수 있을 것이나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그거야 물어 보지 않았지만, 일본인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조선다완(朝鮮茶碗)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완을 만든 것은 조선 도공이지만, 그 가치를 발견한 것은 일본인이다.

 

고려 불화에 대하여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니야 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자신이 좀 없다.

 이 부분까지 쓰다 보니 마음이 답답해지고,

그림 몇 점 소개하지 않았지만 사설을 풀다 보니 글을 마칠 때가 다 되었다.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돌아갈 그림들이 대부분이라,

다시 보기 힘들 테니 꼭 가서 보기를 바란다. 특별기획전이라 입장료를 받지만 싸다.

 

지난 5월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대영박물관전은 그래가지고 대영박물관이란

이름을 어떻게 붙였는지 욕이 나올 정도인데도 1만원씩인가를 또박또박 챙겼었다.

 

그에 비해 이번 전시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물을 보여 주면서도

나는 아주 가냘프나마 연줄(?)이 나타난 덕에 공짜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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