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박세당의 장자 읽기 1 남화경주해산보

2016. 4. 9. 22:21경전 이야기



      

박세당의 장자 읽기: 남화경주해산보. 1  | 박헌순 옮김 | 유리창 | 2012년 12월 24일 출간

박세당의 장자 읽기 1 남화경주해산보

   
박세당|박헌순|유리창 |2012.12.24
페이지 552|ISBN ISBN 안내 레이어 보기 9788997918058|판형 B5, 188*257mm
도서관 소장 정보 국립중앙도서관
도서28,800 32,000 -10%

 

책소개

   조선 숙종 때 지식인 서계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의 ‘내편’ 부분을 최초로 완역한 번역서이다. ‘남화경’은 <장자>의 이칭이다. 당나라 현종이 <장자>를 보고 감동하여 ‘격을 높여’ ‘남화진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해 통용됐다.

<남화경주해산보>는 장자를 해설한 중국 지식인들의 주해를 모으고 박세당 자신의 주해를 곁들여 편집한 책으로 중국 송나라 때 임희일이 쓴 <장자권재구의>와 함께 가장 많이 읽힌 주해서이다.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는 장자 원본을 보여주고 중국 학자들의 주해를 필요에 따라 취사하여 요약해 나열한다음 박세당 자신의 주해를 곁들였다.

박헌순의 번역서 역시 원본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각주를 풍성하게 실어 이해를 도왔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원본의 글자를 한자도 빼놓지 않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세당의 주해 의도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이 책을 통해 장자를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편견이나 왜곡없이 장자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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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박세당

저자 : 박세당
   저자 박세당(朴世堂)은 1629~1703. 조선 인조~숙종 연간의 학자이다. 아버지 박정(朴炡)과 어머니 양주 윤씨(楊州尹氏)의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 부친상을 당하였고, 조부모, 모친, 부인 남씨 등도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생활이 곤궁하였다. 처남 남구만, 처숙부 남이성 등과 경학(經學) 토론을 많이 하였다. 1660년(현종1) 증광시에 갑과 1등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되었고, 이후 정언, 지평,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으며, 40세 때인 1668년(현종9) 파직되어, 양주 수락산 석천동(石泉洞)으로 들어가 교육과 연구에 전념했다. 《대학사변록》《신주도덕경》《남화경주해산보》《중용사변록》《논어사변록》《맹자사변록》《상서사변록》 등의 저술이 있다.

역자 : 박헌순
   역자 박헌순(朴憲淳)은 1957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와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상임연구과정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전번역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 한국고전번역원 사업본부장, 문화관광부 국어심의회 심의위원, 국역연수원 강사 등을 지냈고,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이다. 공역서 및 역주서에, 《효종실록》《광해군일기》《정조실록》《승정원일기》《홍재전서》《갈암집》《미수기언》《사가집》《매천집》《경모궁의궤》《기재기이》《논어집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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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채집제가성씨(採輯諸家姓氏)
박세당 머리말
제1편 소요유(逍遙遊) : 사람의 식견에는 크고 작음이 있다
제2편 제물론(齊物論) :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
제3편 양생주(養生主) : 이치를 따라야 천수를 누린다
제4편 인간세(人間世) : 마음을 비우고 재능을 감추어라
제5편 덕충부(德充符) : 덕이 가득 찬 자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제6편 대종사(大宗師) : 도를 깨달은 사람이 천하의 큰스승이다
제7편 응제왕(應帝王) : 자연 변화에 맡기면 제왕이 된다
내편총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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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조선 지식인은 장자를 어떻게 읽었을까?
   이 책은 조선 숙종 때 지식인 서계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의 ‘내편’ 부분을 최초로 완역한 번역서이다. ‘남화경’은 <장자>의 이칭이다. 당나라 현종이 <장자>를 보고 감동하여 ‘격을 높여’ ‘남화진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해 통용됐다.
<남화경주해산보>는 장자를 해설한 중국 지식인들의 주해를 모으고 박세당 자신의 주해를 곁들여 편집한 책으로 중국 송나라 때 임희일이 쓴 <장자권재구의>와 함께 가장 많이 읽힌 주해서이다.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는 장자 원본을 보여주고 중국 학자들의 주해를 필요에 따라 취사하여 요약해 나열한 다음 박세당 자신의 주해를 곁들였다. 박헌순의 번역서 역시 원본의 체제를 그대로 따르고 각주를 풍성하게 실어 이해를 도왔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원본의 글자를 한자도 빼놓지 않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세당의 주해 의도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이 책을 통해 장자를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편견이나 왜곡없이 장자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장자를 깊이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특히 한문 번역에 뜻을 둔 사람에게는 최고의 도구서가 될 것이며, 한국철학, 중국철학, 한ㆍ중 고전문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필독서 되겠다.

박세당은 왜 이 책을 썼는가?
   박세당은 인조~숙종 연간의 ‘송시열의 나라’ 조선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은 비주류로 살아왔다. 소론의 태두로 35세에 인현왕후를 옹호하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유배길에 유명을 달리한 박태보가 그의 아들이다.
40세에 모든 관직생활을 정리하고 수락산 아래 석천동에 틀어박혀 저술활동에 힘써온 그는 《남화경주해산보》 머리말에서 왜 이 책을 썼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장자(莊子)가 비록 제자(諸子)를 비판하여 배척하기를 많이 하고 유가(儒家)와 묵가(墨家)까지 아울러 논평하였지만, 그 글을 저술한 목적은 본래 혜시(惠施)의 부류들과 논변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소요유(逍遙遊)>와 <천하(天下)>, 두 편을 모두 혜자(惠子)와 관련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수편(首篇) <소요유>에서는 혜시의 말을 빌려서 자기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혔고, 종편(終篇) <천하>에서는 혜시의 말을 깊이 배척하여 그 학술의 그릇됨을 분변하였으니, 그 글의 뜻이 처음과 끝이 매우 분명하다. 중간에 혜시를 끌어온 것도 또한 모두 서로 더불어 반복하여 변론하고 논란한 것이니, 우언(寓言)에 견줄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세상에 그것을 말한 자가 아직 없다. 그래서 이제 특별히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경신년(1680,숙종6) 9월 20일. 서계초수(西溪樵수) 씀.

   즉 명가의 혜시 부류들에 대한 장자의 판단을 적극 옹호하고 알리기 위한 저술인 것이다. 혜시는 당대에 고관대작으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렸고, 다섯 수레 분량의 저술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지금은 장자에 인용된 10가지의 역설만 전해지고 있다. 중국 철학에서 명가는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노론이 득세하던 시절, 비주류 지식인 박세당의 의도가 짐작되는가.
박헌순도 역자 머리말에서 이 책을 번역한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연구자들에게 도구서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주로 읽었던《장자》임희일주해서이다. 박세당의《남화경주해산보》가 나온 뒤로는,《장자권재구의》《남화경주해산보》가 장자 읽기 표준 텍스트가 되었다. 순조 때에 홍석주가 지은《홍씨독서록(洪氏讀書錄)》“세간에 곽상, 여혜경, 초횡의 주(注)가 전해지고 있지만 오직 임희일의《구의(口義)》와 박세당의 집주(集注)가 성행한다.” 하였다.
   조선시대 고전문헌을 번역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는《장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며,《장자권재구의》《남화경주해산보》를 통해 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이《남화경주해산보》 번역서가《장자》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시각을 연구하고 그들의 저술을 번역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2년 12월 《남화경주해산보》를 번역한 박헌순의 머리말에서

조선 지식인들은 장자를 어떻게 읽었는가
   조선 초기에는 조정에서 《장자》를 간행하여 배포하였다. 《세종실록》1425년(세종7) 1월 17일(무자) 기사에 “주자소(鑄字所)에서 찍어낸《장자(莊子)》를 문신(文臣)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였고, 《세조실록》1467년(세조13) 6월 22일(을묘) 기사에 선발한 문신들에게 《주역》.《장자》,《노자》,《열자》를 나누어주고, 기한을 정하여 다 읽게 하라.” 하였다. 이 때에 나누어준 《장자》는 임희일《장자권재구의》이다.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사재집(思齋集)》<척언(척言)>에 “일찍이 《장자권재구의》를 보았더니[嘗見莊子?齋口義]”라는 말이 있으며, 홍여하(洪汝河 1620~1674)의《목재집(木齋集)》<독서차기(讀書箚記)>에는 “임희일이 주해한 장자[林希逸註莊子]” 라는 말이 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사가문집(四佳文集)》보유(補遺) <진동문선전(進東文選箋)>에는 “남화경 10편의 글은 변화가 기굴하다[南華十篇書變化奇?]” 하였다. ‘10편’은 ‘10권 10책’으로 간행된 임희일의 《장자권재구의》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성종5년(1474)에 경상도 관찰사 김영유(金永濡)의 주도로 간행한 《장자권재구의》에는 당시의 함양군수 김종직(金宗直)발문이 붙어 있는데, 그 발문에 “세종 임금 때에는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새로운 주해서를 구해 오면 모두 동활자(銅活字)로 찍어냈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에 유행한 것은 대개 이 때에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나온 뒤로는 다시 찍지 않은 채 세월이 오래되어, 학사(學士)나 대부(大夫)의 집안에도 전하는 것이 드물다. 갑오년(1474,성종5)에 관찰사 김영유가 이 책 한 본을 구해서 각 고을에 분담시켜 간행하게 하여 경주부에서 취합하게 하였다. 이에 《장자구의》를 사람마다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후학에게 끼친 그 은혜가 지극하다.” 하였다. 발문 뒤에는 간행을 분담했던 경상도 17개 고을의 이름과 지방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을 보면, 선조(宣祖)는 장자를 매우 좋아하여 전교가 장자문체와 비슷하기도 하였고, 효종은 경연에서 송시열, 송준길과 장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선조 때와 숙종 때에는 시관이 국가시험에 장자관련 주제를 출제하여 추고를 당하기도 하였다. 노장(老莊)을 이단으로 배척했던 노론 우암학파 인물들도 장자를 읽었다. 송시열의 재전제자인 남당 한원진(韓元震)도 문인과 함께 《장자》를 깊이 읽고 《장자변해(莊子辨解)》라는 저술을 남겼다. -박헌순의 머리말에서

이 책의 특징은

   이 책은 번역자 박헌순의 노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헌순은 이 책이 한문 번역 도구서로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머리말에서 밝혔다.
첫째, 의역보다 직역에 치중했다. 혹 다소 어색한 부분은 원본의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옮기겠다는 번역자의 의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문장을 다듬어보는 것도 수준 높은 독서법이다.
둘째, 풍성한 각주는 번역자의 공부 수준을 보여준다. 독자가 의문을 가지거나 궁금한 사항은 놓치지 않고 각주 처리를 해서 장자 뿐 아니라 각 주해자의 견해를 확실하게 밝혀 주었다. 이는 번역자가 《남화경주해산보》를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조선 지식인의 독서법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머리말 및 각주에서 보충설명을 하고 있듯 조선 지식인의 독서는 원작자의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번역자 박헌순이 ‘장자’ 뿐 아니라 장자를 포함한 ‘주해서’를 텍스트로 선택한 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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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북극 검푸른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이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이 붕새이다. 붕새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 기운차게 떨치고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닷물이 움직이면 장차 남극 검푸른 바다로 옮겨갈 것이다. 남극 바다라는 것은 ‘하늘못(天池)’을 말한다. ---「1편 소요유」 중에서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단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을 차며 3천 리를 달려서 회오리 바람을 타고 위로 9만 리를 올라가, 떠나서 6개월만에 쉰다. ---「1편 소요유」 중에서

   夫水之積也不厚, 則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요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물의 두께가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떠받칠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마당의 움푹한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도 배처럼 뜬다. 그러나 잔을 그곳에 놓으면 바닥에 붙는다.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 ---「1편 소요유」 중에서

   日月出矣, 而?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時雨降矣, 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해와 달이 솟았는데도 횃불을 켠 채로 두면, 그 빛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때에 맞는 단비가 흡족히 내렸는데도 여전히 물을 퍼 나르면, 농토를 적셔주는 일에 괜한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1편 소요유」 중에서

   초료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 不過滿腹.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지어도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새앙쥐가 황하에서 물을 마셔도 자기 배 하나 채우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1편 소요유」 중에서

  막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而年穀熟.
   막고야(막姑射)라는 산에 신인(神人)이 사는데, 피부가 마치 빙설(氷雪)과 같고, 몸이 부드럽기가 처녀와 같다.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을 들이쉬고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면서 사해의 바깥에 노닌다. 그 정신이 응결되면, 만물을 병들지 않게 하여, 곡물이 익는다. ---「1편 소요유」 중에서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無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無窮.
   이것이 또한 저것이고 저것이 또한 이것이다. 저것도 하나의 시비이고 이것도 하나의 시비이다. 과연 저것이니 이것이니 하는 것이 있는가? 과연 저것이니 이것이니 하는 것이 없는가?
‘저것’과 ‘이것’이 그 상대적 대립구조를 이룰 수 없음을 ‘도의 지도리[道樞]’라 한다. 지도리라야 비로소 그 고리의 중앙이 되어서 무궁(無窮)에 대응한다. ---「2편 제물론」 중에서

   何謂朝三? 狙公賦?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 "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무엇을 조삼이라 하는가? 원숭이 기르는 사람이 도토리를 주면서 말하기를,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줄께." 라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줄께." 라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명칭도 실제도 변하지 않았는데도 기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였으니, 또한 ‘옳다고 여기는 것[是]’을 인한 것이다. ---「2편 제물론」 중에서

   至人神矣! 大澤焚而不能熱, 河漢?而不能寒, 疾雷破山, 風振海而不能驚. 若然者, 乘雲氣, 騎日月, 而游乎四海之外.
   지인은 신묘하다! 큰 숲이 타올라도 뜨겁게 할 수 없고, 황하와 한수가 얼어붙어도 춥게 할 수 없고, 빠른 우레가 산을 깨뜨리거나 태풍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놀라게 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자는 구름 기운을 타고 해와 달을 부리며 사해 바깥에 노닌다. ---「2편 제물론」 중에서

   旣使我與若辯矣, 若勝我, 我不若勝, 若果是也, 我果非也耶? 我勝若, 若不吾勝, 我果是也, 而果非也耶? 其或是也, 其或非也耶? 其俱是也, 其俱非也耶?
   나와 그대가 변론을 하고 나서,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대가 과연 옳고 내가 과연 그를까?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내가 과연 옳고 그대가 과연 그를까? 한쪽은 옳고 한쪽은 그를까? 둘다 옳거나 둘다 그를까? ---「2편 제물론」 중에서

   昔者, 莊周夢爲蝴蝶, 허허然蝴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거거然周也. 不知周之夢爲蝴蝶與? 蝴蝶之夢爲周與?
   예전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나풀나풀 영락없는 나비였다. 스스로 ‘뜻에 이렇게 딱 맞을수가!’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장주인 줄도 몰랐다. 얼마 뒤에 꿈에서 깨니, 현실의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일까?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2편 제물론」 중에서

   良포歲更刀, 割也. 族포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
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間,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
   아주 실력이 좋은 백정은 1년에 한 번 칼을 바꿉니다.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의 칼은 19년이 되었고, 잡은 소가 수 천 마리입니다. 그런데도 칼날은 마치 새로 숫돌에서 갈아낸 것과 같습니다.
저 마디라는 것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이라는 것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 있는 곳에 넣으면, 널찍히, 그 칼날을 놀리는 데에 반드시 남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19년이 되었는데도 칼날은 마치 숫돌에서 새로 갈아낸 것과 같습니다. ---「3편 양생주」 중에서

   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飮, 不기畜乎樊中.
   늪에 사는 꿩은 열 걸음에 한 번 쪼고 백 걸음에 한 번 마시지만 새장 속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3편 양생주」 중에서

   指窮於爲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저렇게 땔감은 땔감으로서의 역할을 하여 다 타서 없어지지만, 불이 전해지는 것은 그 끝을 모른다. ---「3편 양생주」 중에서

   瞻彼결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저 닫힌 방을 보아라! 빈 방에 흰 햇살이 퍼진다. 길상(吉祥)은 멈춰 있는 곳에 모인다. 대체 멈추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좌치(坐馳)라 한다. ---「4편 인간세」 중에서

   汝不知夫螳螂乎? 怒其臂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 是其才之美者也. 戒之! 愼之! 積伐而美者以犯之, 幾矣!
   그대는 저 사마귀를 모르십니까? 당차게 앞 다리를 들고 수레바퀴를 막아 서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마귀의 훌륭한 재능입니다. 경계하고 조심하십시오. 자신의 훌륭한 재능을 너무 많이 내세우며 상대를 범하면, 사마귀와 거의 같은 것입니다. ---「4편 인간세」 중에서

   夫愛馬者, 以筐盛矢, 以蜃盛溺. 適有蚊?僕緣, 而?之不時, 則缺銜毁首碎?. 意有所至, 而愛有所亡, 可不愼耶?
   말을 사랑하는 자는 대광주리로 똥을 받아내고 조개껍질로 오줌을 받아냅니다. 그러나 마침 모기나 등에가 붙을 때에 그것을 잡으려고 불시에 내리치면, 재갈을 물어뜯고 머리 장식을 부수고 가슴 장식을 깨뜨리며 날뜁니다. 의도는 매우 좋았지만 사랑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4편 인간세」 중에서

   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 桂可食, 故伐之, 漆可用, 故割之. 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也.
   산의 나무는 스스로 자신을 해치고 기름 불은 스스로 자신을 태운다. 계피나무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베어가며 옷나무는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채기를 낸다. 사람들은 ‘쓸모있음’의 쓰임은 모두들 알지만 ‘쓸모없음’의 쓰임은 아는 이가 없다. ---「4편 인간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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