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신앙과 불교

2016. 3. 29. 20:21경전 이야기

 


[펌] 지장신앙과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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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복사 조회 1686 11.10.02 06:19                                         


지장신앙과 불교

: 타력구제사상으로서의 지장신앙과 자력구제사상으로서의 석가모니불교

 

앞서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지금 한국의 불교는 석가모니 불교가 아닙니다.

석가가 없다고 주장한 '진아 & 아트만 & 영혼'을 대승에서 부활시킨 후

그것을 각 지역의 토속신앙과 연계시켜 해석함으로써 지금의 한국불교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속신앙(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과 도가사상이 크게 관여했습니다.

 

아래의 지장신앙의 경우는 초기(부파)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의 것으로

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까지 자신은 해탈하지 않겠다는 '대승적 판단'에 의해 성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지옥과 심판'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원시적인 사후관념입니다.

각 지역의 지배계급은 그 관점 안에서 스스로 예언자나 신의 대리인을 자청함으로써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관점은 '독립된 나(영혼 등)'를 필요로 합니다.

좋든 나쁘든 그 '나'가 행한 것을 스스로 돌려받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의 삶에서나, 죽어 천국이나 지옥에 감으로써 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아트만, 진아)과 환생이라는 관점이 이미 널리 퍼져있던 인도에서는, 지금의 삶 가운데서도 그 '업보'를 되돌려받는다는 생각이 역시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죽어서야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런 관점은 통치이데올로기로 사용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관점이었고, 그래서 인도를 비롯해 이런 '환생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독재(왕조)정치가 성행하게 됩니다.  

인도의 경우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삶을 실제로 지배하는 문화적 차원에서) 남아있습니다.  

 

석가가 참 멋쟁이인 것은 이때문입니다.

그는 풍요로운 삶을 보장받는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치이념으로 활용됐던 당시의 우주관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나(진아-아트만-영혼)'라는 것은 없다. 심판도 없다. 모든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해라.. 

자등명, 자력구제사상을 설파하며 삼법인과 팔정도와 같은 지침을 활용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십사무기라 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석가의 혁명적 우주관은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석가가 죽은 후 그의 사상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권력자들은 석가의 사상을 왜곡하여 이용합니다.

(물러서지 말고 직접 현실과 부딪치며 깨달아가라는 석가의 가르침이 민중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좋았겠지만)

대승에서는 석가가 부정한 '나'를 부활시킨 후,

그것이 심판받아야하는 이유와 (업과 원죄는 같은 맥락 속에 있습니다.)

그 심판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시켰습니다.

끝으로 자신들이야말로 중생과 속세의 악업을 떨쳐낼 수 있는 '신성한 존재'임을 주장했지요.

권력의 맛에 취해있던 그들이 스스로 '브라만계급'을 대신하여 성직자가 된 것입니다.

자력구제사상을 타력구제사상으로 변질시킨 후 스스로 구원자임을 자처한 것입니다.

 

 

대승적 차원에서, 친히 지옥에 내려가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계도하겠다는 말로

힘든 삶을 이어가는 백성들을 현혹한 그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마음을 준 백성들을 오히려 농락하고.. 그 위에 군림하고.. 

통치이념화된 종교의 전형적인 모습.. 

 

그들로서는(특히 대승불교) 당연히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지장신앙 [ 地藏信仰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1817


 


불교에서 지장보살을 신봉하는 보살신앙.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널리 신봉되었던 보살신앙 중의 하나이다. 지장신앙은 ≪대승대집지장십륜경 大乘大集地藏十輪經≫ 10권, ≪지장보살본원경 地藏菩薩本願經≫ 2권, ≪점찰선악업보경 占察善惡業報經≫ 2권 등의 경전을 근거로 하여 성립된 신앙이다. 대승경론에 등장하는 불보살은 심성(心性)의 권화(權化)를 저마다의 상징성으로 삼고 있는데, 지장은 ‘비원(悲願)’의 상징이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에 시현하여 영겁하도록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을 세운다. 특히,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혹은 염라대왕의 몸으로, 어떤 때는 지옥졸(地獄卒)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고통받는 지옥 중생에게 설법한다고 하였다.


 


방위(方位)면으로 보면 남쪽에 해당된다. 그 지장보살을 외호(外護)하는 관정대왕(灌頂大王)은 특히 지장신앙이 성행하게 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즉, 관정대왕은 세 가지 힘으로써 지장보살을 부르는 중생을 보호한다고 한다. ① 상대방 군사를 항복받는 제왕건립(帝王建立), ② 농사가 순조롭고 음식을 풍부하게 하는 전택건립(田宅建立), ③ 공업·상업이 순조롭고, 온갖 즐거움이 구비되는 재보건립(財寶建立) 등이다. 이에 따르면 보법보불(普法普佛)의 법(法)을 설하고, 지장보살의 예참(禮懺)을 행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것이 바로 지장신앙의 요체(要諦)이다.


 


중국에서는 그러한 신행(信行)을 ‘지장교(地藏敎)’라고 하였으며, 특히 수당대(隋唐代) 이후에 그 숭배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신행보다는 지장보살의 본원력에 따라 조상들의 사후(死後) 구원을 위한 믿음으로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문헌에 보이는 신라 지장신앙과 그 신앙의 모임인 점찰법회(占察法會)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진평왕 때 원광(圓光)의 점찰보 개설 및 비구니 지혜(智惠)의 점찰법회 개설에 관한 기록이다.


원광이 수나라에서 귀국한 직후, 가서사(嘉栖寺)에 점찰보를 설치하여 항규(恒規)로 삼았다는 것과 비구니 지혜가 안흥사(安興寺)의 불전(佛殿)을 수리할 때 선도산(仙桃山) 성모(聖母)의 현몽대로 그 일을 완수하였으며, 성모의 가르침에 따라 점찰법회를 설함을 항규로 삼았다는 것이다.


점찰보란 ≪점찰경≫에 의하여 윤리생활에 박차를 가하고 수도에 힘쓰는 신도조직이다. 신도들은 이 신행계(信行契)를 유지, 운영하기 위하여 토지 등을 희사해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한 다음 결사운동(結社運動)을 행하였다. ≪점찰경≫에 의하면 먼저 목간(木簡)을 만들어 그 위에 죄과(罪過)의 이름을 적어 놓고 이를 던져서 나온 죄과목을 보고,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고쳐 나갈 것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삼세(三世)의 죄과를 안 연후에 지장보살에게 예배하고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죄업중죄(罪業重罪)를 소멸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점찰보의 운영은 백성들의 윤리의식을 확립시키려는 새로운 불교운동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지장보살에 관한 현세 이익적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원시적 심성과 함께 재미있는 ‘놀이’ 욕구를 병행함으로써 점찰보를 운영하는 신라적 수용이었다.


 


신라의 지장신앙은 삼국통일 이후 진표(眞表)에 의하여 또 다른 형태로 집약 발전되었다. 진표의 지장신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신방(神昉)이었다. 그는 현장(玄?) 문하에서 역경(譯經)에 종사하였는데, 지장신앙에 관한 교학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신방은 유식(唯識) 계통의 학승(學僧)이었으나, 신행면에서는 지장교의(地藏敎義)를 중심으로 하면서, 진표의 지장신앙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진표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스승 순제(順濟)에게서 ≪점찰선악업보경≫을 전수받았다고 하였다. 그 뒤 참회정진을 거듭하여 지장보살을 친견(親見)한 뒤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진표의 제자로는 영심(永深)·융종(融宗)·불타(佛陀)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스승 진표의 가르침에 따라 속리산의 길상초(吉祥草)가 있는 곳에 절을 세우고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점찰법회를 개설하였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볼 때 진표의 시대에 이르러 점찰보는 비로소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상면으로 볼 때, 진표의 지장신앙과 원광의 지장신앙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즉, 경덕왕 이후의 신라불교는 태평성세에 따르는 타력신앙(他力信仰)과 주술적 의식주의(儀式主義)가 왕성해졌다. 원광 때의 지장신앙은 통일을 향한 국민의식의 고양에 주안점이 있었지만, 진표의 경우 불교윤리의 타락을 경계하는 시대윤리에 대한 면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진표와 그 제자들이 보여주는 사신(捨身)과 살신(殺身)의 구도행(求道行)은 당시 불교계의 윤리의식 타락을 경계하는 ‘상징성’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진표의 지장신앙은 이후 신라 불교신앙의 주류로 인식되어 오대산신앙(五臺山信仰)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오대산신앙은 동서남북의 사대(四臺)에 중앙을 합한 각 오대에 별개의 불보살을 봉안하고, 그 예참을 행하는 신행결사(信行結社)이다.


이 오대산신앙은 7, 8세기경에 금강산신앙(金剛山信仰)과 함께 신라에 뿌리를 내렸으며, 오대 가운데 남방이 지장방(地藏房)이다. 그때의 수행내용은 낮에 ≪지장경≫과 ≪금강경≫을 독송하고 밤에 점찰예참을 행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신라인 김지장(金地藏)은 중국에 지장신앙을 펼친 인물로 주목을 모은다. 그는 757년(경덕왕 16)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794년(원성왕 10) 99세로 입적하였다. 중국 사람들은 그를 지장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믿었으며, 그 유골을 모신 탑을 육신전(肉身殿)이라 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김지장의 기일(忌日)을 맞아 향과 촉(燭)을 땅에 꽂고 유지(油紙)를 태웠는데, 그것을 지장향(地藏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기록은 지장신앙이 민간신앙으로 유포된 하나의 표본이며, 우리 나라 불교의 중국을 향한 신앙 역류현상의 한 단면을 나타내 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930년(태조 13) 강원도 보현사(普賢寺)에 지장선원(地藏禪院)이 건립되었다. 그것은 낭원대사(朗圓大師) 오진(悟眞)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선(禪)과 지장신앙의 습합(習合)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이다.


조선시대에는 지장신앙에 관한 영험적 사례가 주종을 이루는데, ≪동학사지장계서 東鶴寺地藏?序≫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는 특히 지장신앙을 예참하는 모임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모임은 주로 지장예참을 통한 지옥중생의 제도 등 이타행(利他行)을 통한 자리행(自利行)이 강조되었다. ≪지장경≫의 영험과, 지옥 중생제도를 위한 의식집(儀式集)으로는 ≪지장경본원참의 地藏經本願懺儀≫ 1책이 전해 오는데, 조선 중기·후기에 특히 널리 유통되었다.


고려·조선 시대의 지장신앙은 고매한 이론적 배경을 갖는다기보다는 현세 이익적인 민간신앙의 형태로 유포되어 왔다. 본질적으로 지장신앙은 말법신앙(末法信仰)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지장신앙 형태는 말세(末世)의 의식과 유토피아의 현현이라는 면보다는, 오히려 윤리의식의 고양에 그 목적을 두고 발전해왔다. 이것은 우리 나라 불교의 사상적 특성에서 연유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나라 불교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일승(一乘)의 회향(回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지장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파불교(宗派佛敎)를 형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여타의 신앙형태까지를 포섭함으로써, 하나의 전체로 불교신앙을 수용하고 있다.


도입 초기의 지장신앙은 불교 토착화와 윤리의식의 앙양이라는 점으로 평가될 수 있다. 후기에는 귀감적 참법(龜鑑的懺法)의 도입으로 이타행을 통한 자비의 실현과 새로운 가치질서 확립의 면을 강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다.


 


 


 


지장신앙의 역사와 사상
 http://blog.daum.net/dolt0914/95



│1-지장신앙의 발생│
지장신앙(地藏信仰)은 미타신앙, 관음신앙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3대 신앙으로 일컫는다. 특히 민간신앙을 대변할 정도로 신행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관음보살이 보이는 세계와 현실적인 삶을 담당한다면 지장보살은 보이지 않는 세계, 죽음, 저승 등 내세를 관장한다. 이에 지장신앙은 지장보살이 지옥중생을 먼저 제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서원에 나오듯 대승불교의 구현이라 하겠다. (이런 좋은 취지를 가진 불교가 왜 변질되었을까? 보살펴야할 중생들의 삶을 개선하는데에 왜 대승불교의 에너지가 쓰이지 못할까..) 이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에서는 지장전, 혹은 명부전의 주존으로, 또는 관음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로 봉안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민중의 신행으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나아가서 지장신앙은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들을 위한 추선공양(追善供養)의 대상으로도 신자들의 의식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장신앙의 경전적 근거는 지장삼부경, 즉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지장보살 본원경」, 「점찰선악업보경」에서 찾을 수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여래가 입멸한 후 미륵이 등장하기 이전인 56억 7천만 년간 이른바 부처님이 부재하는 동안 중생을 구제할 보살이다. 이에 부처님이 없을 때에 육도에 몸을 나투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중생을 구원하여 해탈시키겠다는 서원을 갖고 있는 대원대비의 보살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지장신앙은 여타 대승경전과 같이 보살도의 실천을 중시하지만 말법시대를 헤쳐가는 참회를 강조한다. 그리하여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지장보살을 예경하거나, 지장보살의 행을 찬탄하면 일곱 가지 공덕의 이익을 얻는다고 한다. 즉, 말법시대의 위기감에서 출발하지만 인과응보에 의거해서 죄업을 참회하고, 업장을 소멸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지장신앙은 지장보살의 서원에서 출발하지만, 그 신앙의 핵심은 인과응보이다. 업보설인 인과응보는 자작자수(自作自修)로, 선을 행하면 선보를 받고 악을 행하면 악보를 받는다는 논리이다. 이 업보설이 윤회설과 결합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인과응보, 육도윤회설은 중국의 영혼불멸설, 유교의 효 사상 등과 결합하여 지장신앙을 새로운 단계로 진입케 하였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49재, 예수재 등이다. 여기에서 지장신앙이 사후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일상적인 수행과 참회하는 실천수행으로 나갔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말법의식의 구현, 이상세계에 왕생하려는 신행보다는 윤리의식의 고양에 목적을 두고 널리 행해졌다. 이는 한국적 불교의 특성인 종합성, 원융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지장신앙이 종파적인 지향보다는 여타 신앙체계와 혼재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미타, 지장, 관음의 신앙이 결합된 것에서 단적으로 나온다.

│2-지장신앙의 역사적 전개│
지장신앙의 연원은 인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중앙아시아에서 독립적인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전파되는 경로를 따라 해당 지역의 민간신앙과 습합되면서 변질, 토착화되었다.



지장신앙은 인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지만 인도에서 신행적으로 성행하였다는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장신앙의 인도에서의 흔적은 8세기 무렵까지도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후 이 신앙이 중앙아시아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아래 비로소 독립된  보살로 신봉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배경하에 「지장십륜경」 등 관련 경전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티벳트를 비롯하여 중국, 한국 등지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의 지장신앙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에 걸친 진대(晉代, 265~316)에 와서 전해졌다. 중국의 지장신앙의 전개에서 유의할 대상은 용문석굴과 돈황석굴이다. 이 석굴이 중원의 귀족신앙, 변방의 민중신앙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석굴에 지장보살이 나타났다는 것은 신앙의 전파에서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7세기 후반에 이르면 용문석굴에 지장보살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이 때는 아미타상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이는 당시 중국불교의 신앙이 현세 지향에서 내세 지향으로 변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즉 아미타 정토신앙과 함께 지장신앙이 성행되었다는 것이다.

지장보살의 사상은 중국에 유입되면서 사상적 발전을 보았다. 여기에는 그 즈음 중국에서 성행하였던 정토교, 그리고 말법의식에 의해 성장하고 있었던 삼계교(三階敎)의 신앙과 혼재되면서 서서히 자리잡게 되었다. 말법(末法) 사상은 인도불교에서는 6세기경에 나타났고, 이 사상이 중국에 전래되면서 남북조 시대, 수나라가 건국되던 시기에 민중들의 의식에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그 무렵, 북주(北周)의 무제에 의해 야기된 불교탄압은 말법의식을 고양케 하였다. 말법 사상이 강렬하게 나타난 것은 6세기 후반이었는데, 말법의식에 의해 새로운 불교 종파가 등장하였거니와 그것이 바로 삼계교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정토교의 토착화로 나타났다. 이렇게 말법의식, 삼계교, 정토교가 혼재되면서 지장신앙도 서서히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에는 지장신앙의 경전인 「십륜경」의 일정한 영향도 개재되었다. 즉 말세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의 숭배가 크게 강조되었다. 요컨대 현세를 말세로 보는 사상이 사회에 확산되면서 지장신앙이 성립되었다. 바로 그 즈음에 지장의 경전이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도 동질적인 이해의 구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지장신앙은 독자적인 노선을 가기보다는 미타정토 신앙에 습합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는 수·당 이래로 지장보살에 대한 관념이 변모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송대 이후에 나온 『지장영험기』는 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내용에 나오는 다양한 영험담은 대부분 지장의 구원에 의해서 지옥에서 구원된 이야기가 많지만, 간혹 왕생의 장소가 미륵 정토와 정토 서방세계로 묘사됨은 정토신앙 내부에 습합된 지장의 모습들이다.  지장보살의 명호를 염하면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임종할 때에 지장보살이 몸소 맞이할 것이다 등은 그를 말해주는 것이다. 요컨대 지장보살에 의해 구제된 민중들이 미륵 혹은 미타 정토에 왕생한 실례가 그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러나 중국 지장신앙은 도교의 명부시왕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의 지장신앙은 어떠한 역사를 갖고 있는가? 한국에서 지장신앙이 유입된 것은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고구려의 경우는 현전 자료가 없고, 백제는 해외에 있는 일부 자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신라 및 통일신라 시대에는 『삼국유사』를 통하여 신앙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교의적 측면보다는 신앙의례를 통해 유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이라는 기조하에서 사상적인 발전은 없었으며, 의례를 통하여 존속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백제의 경우는 일본에 지장상을 보내준 사례를 갖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일본에 지장상을 보내준 백제의 지장상 조상의 연기설화로 보아, 역으로 백제 지장신앙의 단면을 추측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제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지장신앙에 대한 적극성도 엿볼 수 있다.



신라시대의 지장신앙은 『삼국유사』의 자료를 이용하여, 그 개괄적 이해를 하고 있다. 그 대상은 주로 점찰법회(占察法會)이다. 점찰법회는 지장삼부경의 하나인 「점찰선악업보경」에 의거한 것으로서 신라에서는 수참법회(修懺法會)의 성격을 띠고 행해졌다. 그 대표적인 것인 원광법사의 점찰보(占察寶)와 진표에 의해 행해진 점찰법회이다. 그런데 점찰경에서는 참회와 정죄(淨罪)가 그 근본이었지만 신라의 지장신앙은 다분히 현세이익적이면서 구복적인 경향을 띠었다. 이 같은 지장신앙이 민간 차원에서 널리 유포된 것은 7세기 이후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지장신앙은 교의적인 측면보다는 신앙 차원의 의례의 성격을 띠고 민중사회에 퍼져 나갔다. 즉 신앙의례 의궤문인 「염라왕예수생칠왕생정토경」에 의해 지장신앙이 유포되었던 것이다. 이 경은 「예수십왕생칠경」, 혹은 「십왕경」으로도 칭하는데 고려 초기에 전해졌지만 고려말의 원 간섭기에 널리 퍼졌다. 하여간 이 시대의 지장산앙은 지장관계 도상(圖像)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 지옥 혹은 극락왕생의 관계가 나온다. 이는 지장신앙이 정토신앙과 밀접성을 띠고 있음을 은연중 말해 주는 것이다. 요컨대 고려시대의 지장신앙에서는 아미타불을 협시하는 위치에서 극락왕생 사상과 연결되어, 중생을 극락으로 유도하는 역할이 강화된 보살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사회 전반의 불교에 대한 배척으로 불교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세조 시대에는 지장경참법을 주해하고 승려가 지장경 1권을 베꼈다는 기록을 제시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그리고 「지장보살본원경」을 언해하여 『석보상절(釋譜詳節)』에 편입시켰다는 것도 간단한 사실은 아니다. 이처럼 지장경이 언해되었다는 것은 지장신앙이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음을 말해주는 단서이다. 조선후기에 지장경전이 누차 간행되었고, 『지장경영험전』이 간행되었음에서 지장보살이 민간 차원의 신앙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후기에 이르러 사후의 신앙과 연결되어 유행을 일으킨 지장신앙이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명부전(冥府殿)의 주존으로서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의식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명부 시왕신앙과 결합된 지장신앙은 지장전, 혹은 명부전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그 생명력을 갖고 있다.

│3-지장보살과 지장신앙│
지장보살은 중국에 전래되어 도교와의 융합으로 명부시왕신앙과 습합하면서 민간에 뿌리를 내렸다. 나아가서는 독자적인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그 신앙의 저변에는 지장보살에 대한 논리가 있다. 즉 대승보살의 개념의 하나로서 지장보살이 있는 것이다. 보살은 자리와 이타를 구현하는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이에 이타적 삶의 실천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로 삼고 보살적 행을 실천하려는 보살의 하나로 지장보살이 설정되었던 것이다.



지장은 석가여래의 입멸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56억 7천만 년 사이의 이른바 부처 없는 시대(無佛時代)에 몸을 나타내어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케 하는  대원대비(大願大悲)의 보살인 것이다. 더욱이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로서 여타 보살과는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으면서 민간에서 널리 신앙되고 있다.

이에 여기에서는 「지장삼부경」에 나타난 지장보살의 특성을 분류하여 그 신앙적 특색을 조망하려고 한다. 지장보살 전생담에서의 지장보살은 육도 중생을 제도 해탈시키지 못하면 자신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중생의 삶의 현장에서는 한시도 쉬지 않게 중생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그에 비례하여 미혹한 중생들이 지속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장보살은 끝내 성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제기된다. 이에 지장보살은 대비천제(大悲闡提), 그리고 천제보살(闡提菩薩)로 칭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기할 특성은 석가모니 부처가 입멸한 이후에는 참다운 부처, 진실의 구세주가 없다는 말법의식하에서의 보살로 볼수 있다. 이는 무불시대의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인데, 후대에 미륵불이 오기 이전에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지장보살의 임무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혼탁한 말법시대에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구세주로서의 보살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지장보살은 전생의 업에 의해 육도를 윤회하며, 삼악도에 빠져 고통을 받는 중생들의 구제자이다. 이는 지장보살이 업에 의해 현생은 이미 결정되었다는 업보를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한다. 업설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에 경도된 중생들은 더 이상의 수행을 하지 않는 나머지 지옥으로 가는 단순한 사고 행위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지장경에서는 견고한 정진과 서원의 힘으로 업의 사슬을 끊을 수 있고, 악업을 참회하는 자는 전생에 지은 악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악업을 감내하지 못하고 삼악도에 빠져 있는 중생들은 지장보살의 공덕과 비원에 의해 구제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에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의 구세주로 각인될 수 있다.

이에 자연적으로 지장보살은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고통받는 삶의 현장에 나타날 수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중생들을 자각 참회시키기 위해 지장보살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공간에 나타난다. 이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이라는 삼신사상의 논리가 지장보살에게도 적용됨을 말한다. 때문에 지장보살의 모습은 친밀하고 소박하게 다가온다. 흔히 지장보살은 삭발한 머리에 지팡이를 짚거나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즉 인간과 똑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보살상은 지장보살이 유일할 정도이다. 이는 지장보살이 성문승(聲聞僧), 비구승의 모습임을 칭하는 것인데 이의 근원에는 대비천제 보살로서 고통의 현장에 나아가서 악업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려는 근원적인 원(願)과 무관할 수 없다. 즉 지장보살은 대승보살로서 중생을 기필코 구제하겠다는 비장할 정도의 서원을 갖고서, 다른 한편에서는 중생의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불교사상을 명료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4-지장신앙의 사상과 신행│
중생을 구제하려는 강렬한 서원을 갖고 있는 지장보살의 사상적 근원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중국, 한국 등 동양의 민간 불교신앙으로 뿌리를 내린 지장신앙의 성립, 전개를 가능케 한 원동력을 살펴보자.
그는 무엇보다도 당시, 현세가 불교의 가르침이 혼미하고 부처도 찾기가 어려운 세상임을 느끼는 말법사상의 흐름을 지적할 수 있다. 불법이 소멸되고 있으며, 깨달은 자와 선지식을 만날 수도 없는 지경이면서 그리고 수행의 정도를 가지 않는 비구의 행태가 극에 달하여, 자신의 업보를 차단할 수도 없다는 의식이 곧 말법사상인 것이다. 여기에는 국가, 이교도 등에 의해 자행된 불교 탄압도 그를 촉진케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불교 내외에서 전개된 불법과 거리가 먼 현상을 자각한 그 자체가 말법의식이다. 이러한 말법사상이 극에 달하게 되면 자연 하근기에 맞는 사상 신앙이 대두되는 것이거니와 그 대표적인 것이 지장신앙이다.

지장신앙에는 지옥사상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즉 지옥사상이 지장신앙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지장신앙 성립의 전제에는 지옥, 아귀, 축생이라는 세계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상정한다. 그중에서도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기필코 구원하겠다는 지장신앙은 지옥을 배제하고서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장신앙에는 보살을 신뢰하는 믿음과 보살의 서원이 결합된 것을 주목할 수 있다. 이는 요컨대 보살의 본원(本願)사상을 칭한다. 불교에는 스스로 수행을 하여 깨치려는 흐름과 부처와 보살을 믿고, 의지하며, 가피를 받아 해탈하려는 흐름이 있다. 이에 전자를 자력불교, 후자를 타력불교라고도 한다. 지장신앙은 후자의 구도에 포함됨은 당연한 이해이다. 지장신앙의 성립, 신행에는 지장보살에 대한 신뢰, 지장보살의 본원(本願)이 굳건해야 한다. 지장보살 본원의 굳건함은 그가 보살로서의 책임감을 이행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지옥에 빠진 중생은 더욱 더 구제하겠다는 서원까지도 이행한다. 이는 대승정신의 구현이라 하겠다. 이에 지장보살은 자신의 서원을 이루기 위한 수행을 하였기에 선정(禪定)에 능한 이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강한 서원을 실행하는 원행(願行)의 길을 가게 된다.


이러한 대승사상은 곧 회향(廻向)의 정신의 다름이 아니다. 말법시대에, 수행하기 어려우며, 선지식을 만날 수가 없을 때에 지장보살은 자신이 수행한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주려는 것이다. 자신의 수행을 타인에게, 중생에게 돌리는 회향정신의 구체화를 볼 수 있다. 즉 대승보살의 회향정신이다.

지금부터는 앞서 살핀 지장신앙의 실천, 즉 신행(信行)에 대하여 살피고자 한다. 지장신앙은 지장보살의 본원력을 신뢰함에서 성립된 타력신앙이다. 요컨대 지장보살의 구제력에 의지하는 믿음이 근원인 것이다.
지장신앙의 최우선은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이다.
지장보살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불보살의 가피를 입으려는 행위이다. 이는 「지장십륜경」의 제1권(서품)에서도 확인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선정에 들기에 힘든 다수의 중생들은 지장보살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칭명염송(稱名念誦)하고, 귀의하면 근심과 고통을 떠나서 열반에 들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같은 간편한 신행은 민간의 하근기 중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러한 신행은 「점찰경」에서도, 한마음으로 지장보살마하살을 공양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 불보살의 가피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지장재일의 법회에서 지장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정근(精勤)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장신앙에서는 참회를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참회는 계율을 어겼을 때 행하는 것이다. 인간이 선악을 행하면 그에 따른 업보를 받거니와, 악업을 행할 경우에는 해탈에 장애가 된다. 이에 악업을 반성하고 다시는 악업을 행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하는 것이 진정한 참회이다. 지장신앙의 참회는 「점찰경」에서 집중적으로 교설되고 있다. 이는 말법시대의 중생이 수행이 미약해지고, 근기가 약하여 해탈에 많은 장애가 생기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점찰경」에서는 중생의 제도, 해탈을 위해 대중적인 참회법을 제시하였는바, 목륜상(木輪相)을 이용하여 자신의 업보를 점쳐서 그 결과에 따르도록 하였던 것이다. 모든 중생들에게 지장보살의 힘에 의지해서 목륜상을 이용한 점찰법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참회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참회의 법을 닦기 이전에 지난 세월에서 자신이 지은 악업의 많고, 적음, 그 내용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의거 참회의 법을 닦는 것이다. 이 같은 전제하에 참회의 의례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한 참회를 강조하는 것은 중생의 제도, 해탈을 위한 것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이기적인 해탈이 아니라 대승보살의 길을 가려는 지장보살의 서원에서 나왔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지장신앙의 신앙의 실천에는 업설(業說)에 근거한 인과응보 사상이 깔려 있다. 이 사상은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책임의식이라 하겠다. 이에 인간은 자신의 생존시에 자신의 악업에 대해 참회를 함으로써 해탈에 이르려 한다. 그러나 현세시에 참회가 부족하거나, 참회의 기회를 잃고 죽음에 이를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반 중생들은 이러한 경우가 상당하다. 여기에서 망자(亡者)를 대신하여 참회할 수 있다는 논리가 나온다. 이는 죽은 자를 위해서 자신의 공덕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구원하려는 선근(善根)인 것이다. 여기에서 지장보살의 본원, 서원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불자의 공덕, 회향사상이 나올 여지가 있는 것이다. 즉 지장보살의 수행공덕과 함께 중생들의 공덕을 통한 회향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불자들은 자신의 참회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의 참회와 죄의 소멸을 기원한다. 여기에는 죽은 자의 영혼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불자들의 상구보리와 화하중생이 동시에 행해지는 회향이 성립된다.

그러면 이 같은 지장신앙의 실천이 구체적으로 의례, 법회에서 어떻게 행해지는가를 살펴보자. 그 대표적인 것이 각 사찰에서 행해지는 지장재일, 예수재, 사십구재이다.



지장재일(地藏齋日)은 불교의 십재일의 하나로 관음재일과 함께 가장 보편적인 의례이다. 지장재일은 죽은 이를 위한 발원과 정근을 하여, 망자의 영가 천도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 지장재일은 고려시대 불교민속일인 팔관재에서 유래되었다. 그 경전적 근거는 「지장본원경」의 여래찬탄품이다. 여기에서 매월 음력의 10일 간 「지장경」을 읽으면 재앙이 없어지고, 현세 이익이 오기에 재일로 지킨다는 것이 나온다. 이런 십재일 신앙이 후세에 오면서 이 십재일에는 각 날짜마다 해당 불보살이 정해졌는데, 지장보살은 십재일 가운데 18일, 하루만 배정되어 있었다.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원하겠다고 원을 세웠기에 망자(靈駕, 孤魂 등)의 천도(薦度)를 간청하는 기도문인 지장청(地藏請)을 중심으로 매월 음력 18일에 행해지고 있다.

다음의 의례로 예수재(豫修齋)가 있다. 예수란 생전에 사후의 깨달음을 위해 기원하는 불사이다. 즉 사후 중생의 천도를 위하여 행하는 의식이 49재라면, 이는 살아 있는 동안에 스스로 미리 재를 지내어 자신이 죽은 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스스로 하는 것이기에 자수(自修)의 성격을 갖는데, 윤달이 있는 4년을 주기로 하여 이 의식을 거행한다. 이에 대한 경전 근거는 「지장본원경」의 이익존망품에 나온다.  살아 생전에 미리 스스로 닦는 예수재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체계화하고, 신앙적으로 널리 알린 것은 「불설예수왕생칠경」이다. 예수재는 예전에 매월 초하루와 보름, 두차례에 행해지기도 하였다.


 


한편, 사찰에서 보편화된 의례는 사십구재(四十九齋)이다. 이 의례는 불자를 비롯한 전체 민중들의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지장재일이 망자를 위해 행하는 정기적인 의례라면, 이는 망자의 사후에 행하는 대표적인 의례이다. 이는 불자들이 부모나 가족 등이 사망하였을 경우 행하는 망자 영가의 추선공양이다. 사십구재는 「지장본원경」의 도리천궁신통품, 이익존망품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십구재는 칠칠재(七七齋)라고도 한다. 이는 칠일씩 일곱 번에 걸쳐서 망자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를 지내기 때문이다. 망자의 다음 생이 결정되는 마지막 날이 그의 사후 49일째 되는 날이다. 이 의례는 돌아간 부모, 친지에 대한 효도의 관념과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의례는 사찰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의례이다. 그러나 지장신앙을 행하는 불자들이 평소 생활을 하면서 수지독송할 수 있는 기도문인 지장보살예참문이 있다. 이는 지장보살의 서원과 공덕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지장신앙의 핵심이 잘 들어 있다. 이 예참문에는 지장신앙의 기본 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점찰선악업보경」 등의 사상이 드러나고 있다. 때문에 이 예참문은 지장신앙의 소의경전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러한 의례 뿐만이 아니라 생활에서 지장보살을 친근하게 접근한다면 현세에서도 지극한 이익을 얻는다는 「지장보살본원경」의 내용이 있다. 이는 불자들의 신심을 북돋우는 논리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우선 7종의 이익을 보자
1. 속히 성현의 땅에 오른다.
2. 악업이 소멸된다.
3. 모든 부처님이 지켜준다.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
5. 본원력이 더욱 더 커진다.
6. 숙명을 통달한다.
7.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

 

이 7종이익은 수행하는 이들의 신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음으로는 일상 생활을 하는 불자들의 이익을 거론한 10종 이익이 있다.
  
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
2. 집안이 안전하고 평안하다.
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
4. 현세의 가족들이 장수한다
5.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진다.
6.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
7. 재물의 헛된 손실이 없다.
8.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된다.
9. 출입할 때 신장들이 보호한다.
10. 성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지장신앙을 행하는 실천자들에 대한 이익을 설한 것이라 보여진다. 이 밖에도 28종 이익도 있는데, 이는 7종이익과 10종 이익에서 설한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시킨 것이다.
이 같은 각종 이익의 논리는 지장보살을 신봉하면 질병, 화재, 사고 등의 재앙은 사라지고 삶의 복이 이루어진다는 기복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장보살의 서원력을 믿고 일상의 삶에서 지장보살에게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경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지장신앙의 굳은 믿음하에 불자로서의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는 것이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고 자신의 삶도 희망찬 행보로 나가게 한다. [혜봉스님]


 


 


다음은 지장보살을 묘사한 그림과 상입니다.


http://cafe.daum.net/tnehdka/4Ysk/711?docid=qTVA|4Ysk|711|20110526073523&srchid=IIMcTEAk400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279호)


 



 


선운사 지장보살좌상 (보물 280호)


 



 


지장보살도 (보물 784호, 호암박물관)


 



 


지장보살삼존도 (보물 1287호)


 


 


정덕십년명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1327호)  


 



 


지장보살도


 



 


지장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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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지장신앙 이란?

글쓴이 : 용화사 날짜 : 2006-06-09 (금) 22:20 조회 : 914

                                  


지장신앙 이란?

사후세계보다는 윤리의식 고양이 목표
   지장신앙은 미타신앙(정토신앙) 관음신앙과 함께 불교의 3대 신앙에 들어간다. 관음보살이 보이는 세계와 현실적인 삶을 담당한다면 지장보살은 보이지 않는 세계, 죽음, 저승 등 내세를 관장한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들은 모두 관음보살에게 기도하고 돌아가신 분을 천도한다든지 영혼과 관련된 일은 지장기도를 드리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하지만 지장신앙에서 영가천도는 한부분에 불과하다.
중생을 모두 구제할 때까지 성불을 멈추겠다는 대원력과 자비, 참회 회향 등 지장신앙 속에는 우리가 빠트리고 있는 내용이 많다.

   지장보살은 범어 크시티가르바(Ksitigarbha)의 의역으로 크시티(Ksiti)을 의미하고 가르바(Garbha)모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마치 대지와 같이 무수한 선근(善根) 종자를 품고 있다고 하여 ‘지장(地藏)’ 이라고 한다.



   불교 성립 이전 고인도에서는 대지의 신을 신앙하였고 이 보살은 만물의 생육을 관장하는 모신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불교의 지장신앙은 고대 농경사회에 성행했던 대지신앙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지장사상은 기원전후 중앙아시아에 풍미하던 말세 심판사상이 불교에 흡수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미륵 부처님이 출현할 때까지 56억 7천만년 동안 이른바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부처님 공백기’ 동안에 중생을 구제할 보살이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대에 육도에 몸을 나투어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케 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대원대비(大願大悲)의 보살이다. 모든 중생이 구제되지 않는 한 자신도 성불하지 않겠다고 성불을 유보했기 때문에 ‘대비천제(大悲闡提)’ 또는 ‘천제보살(闡提菩薩)’이라고 불린다.

천제(一闡提라고도 함)는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을 말한다. 말세의 심판사상을 불교가 흡수 지장신앙은 다른 대승경전과 마찬가지로 보살도의 실천을 중시하며 특히 말법시대를 헤쳐가는 참회를 강조한다. 빈민 노약자 등 복지행을 하거나, 불탑을 보수하고, 경전을 출판 하며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최고의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했다.
또 지장보살의 명호를 듣거나, 지장보살 형상 앞에 예경하거나, 지장보살의 본원과 그 행을 듣고 수행하고 찬탄하고 우러러 예경하는 자도 악업이 소멸되고 숙명통을 얻는 등 성불에 이르는 는 일곱가지 이익을 얻게 된다고 했다.

지장신앙이 말법시대의 위기감에서 출발했고 인과응보의 인과율에 근거했기 때문에 죄업을 참회하고 업장을 소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일반적으로 참회는 수행의 일환이지만 지장신앙의 참회는 말법시대에 근기가 약해진 중생들의 업장을 소멸하기 위해 마련되었기 때문에 참회방식도 대중적이고 쉽다. 바로 점찰법회가 그것이다. 점찰법회는 목륜상(木輪相)을 이용하여 자신의 업보를 점쳐서 그 결과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참회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이같은 점찰법회는 말법 시대의 하근기 중생들에게 보다 쉬운 형태로 자신의 업보를 깨우치고 참회하도록 하기 위한 의식이다. 점찰 참회법회 쉽고 대중적 점찰법회는 자신의 업을 살펴서 악업을 참회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중생의 해탈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장신앙은 맹목적인 지장의 본원력에 의지하는 타력신앙만이 아니라 참회를 통해서 스스로가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는 수행이기도하다.
〈지장보살본원경〉, 〈대승대집지장십륜경〉, 〈점찰선악업보경〉을 지장삼부경이라고 한다.

본원경과 십륜경은 지장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점찰선악업보경은 지장신앙을 실천수행화 대중화 시켰다.
지장신앙은 지장보살의 광대한 서원으로부터 출발하지만 핵심적인 사상은 인과응보다. 업보설의 기본 원리는 자작작수(自作自受)로, 선을 행하면 선보(善報)를 받게 되고 악을 행하면 악보(惡報)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업보사상은 원래 인도에서 불교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윤리도덕의 기초가 되었다. 업보설과 관계를 이루는 것이 윤회설이다.
생전의 선악행위에 의하여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인도. 천도, 아수라도인 육도(六道)를 떠돈다는 것이다. 윤회설은 영혼 전생 관념에 근거한다. 그러나 영혼 전생설은 불교에서 먼저 성립한 이론이 아니다.

불교의 영혼 전생설은 인도 브라만교에서 나왔다. 브라만교에서는 인간의 신분계급 관계는 윤회 중에 바뀔 수 없는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불교는 업보가 모든 중생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선덕(善德)을 쌓으면 다음 생에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날 수 있거나 더 나아가서는 천계(天界)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하여 브라만교의 이론을 더 발전시켜 폭 넓은 민중들의 지지를 확보하였다.

끝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대원보존 영가천도는 일부분… 핵심은 인과사상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의 ‘인과응보’사상이나‘육도윤회’와 같은 사상은 중국 전통적 ‘영혼불멸’ 사상이나 유교적 ‘효’ 사상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지장신앙을 탄생시켰다. 그대표적인 것이 망자를 위한, 49재 예수재 등이다.
또 ‘수륙재’,‘우란분회’등과 같은 불교 천도의식도 발전했다. 망자의 사후에 행하는 대표적인 의례가 사십구재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 따르면 죽은 후에 49일 안에 여러 좋은 일을 지어주면,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으며, 현재의 권속들도 이익이 한량없다고 한다. 49재 속에는 효사상이 깔려 있다.

예수재(豫修齋)는 말 그대로 ‘미리 닦는 재’로써 생전에 사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불사를 행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역수(逆修)라고도 한다.
사후 중생의 천도를 위해 행하는 의식이 사십구재라고 한다면 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스스로 자기 자신의 재를 미리 지내서 죽은 뒤에 극락 왕생을 기원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윤달이 드는 해 즉, 4년에 한번씩 예수재를 행한다.
초기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예수재를 치렀다. 이는 예수재가 단순한 사후 극락왕생을 위한 재의 차원을 넘어 일상적인 수행과 참회의 실천법 이었음을 짐작케한다. 한국서는 참회수행 강조 한국의 지장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성행했다.

중국 안휘성 구화산서 수도정진하다 열반 오늘날 까지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신라의 왕족 김교각 스님이 기원이다. 신라 진평왕때 원광법사와 비구니 지혜스님이 점찰보를 개설하는등 참회기도가 널리 성행했다.
그후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후(死後) 신앙과 연결되어 유행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지장신앙에 대한 영험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특히 동학사 지장계서에 의하면 지장신앙을 예참하는 모임이 성행했다. 지장예참을 통한 지옥중생 제도 등 이타행을 통한 자리행도 강조됐다.

한국의 지장신앙은 말세(末世) 의식과 유토피아 구현보다는 윤리의식 고양에 목적을 두고 발전해 온 것이 특징이다.
이는 다양성을 추구하면서도 일승(一乘)으로 귀결하는 한국불교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즉 지장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파를 형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타의 신앙형태까지를 포용함으로써 전체를 수용하는 것이다.

아미타 지장 관음신앙의 결합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49재 예수재 등은 널리 확산되고 있다. 철원 심원사, 고창 도솔암, 서산 개심사, 완주 송광사를 4대 지장기도 도량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의 형상 보관 쓰지 않은 삭발한 수행자 모습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279호)


사진설명: 보물 제280호로 지정된 선운사 지장보살상

   지장보살은 머리에 천관(天冠)을 쓰고, 왼손에는 연화를, 그리고 오른손에는 보주를 든 모습이었지만, 후세에 이르러 육환장(석장)을 든 수행자 모습이나 동자를 안은 모습도 보인다.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등 다른 불.보살상이 고대인도 귀족들의 복식을 본떠서 화려하게 조성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장보살은 평범한 중생의 모습에 가까운 소박한 모습이다.
이는 대승불교가 나타나면서 부파불교의 수행자상인 성문(聲聞)을 경시했다가 지장보살에 이르러 화합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지장보살로 추앙받는 김교각 스님의 형상이라는 설도 있다.

육환장(六環杖)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 육도를 상징하며,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의미다. 지옥문이 한해에 한번 열린다는 우란분절일에 육환장으로 지옥문을 열어 지옥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대승불교의 실천행인 육바라밀을 상징하기도 한다.


명부전과 시왕신앙 사후세계 구상적 묘사는 방편
[사진설명: 양산 통도사 명부전 시왕탱화]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사찰속으로 옮겨놓은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하고,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망인천도의 재의식이 발달하였고 지장보살 또한 모든 중생을 성불시킨다는 맹세보다 명부시왕의 무서운 심판에서 망인을 구하여주는 유명계의 교주 역할만이 크게 강조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망인의 형벌 및 새로 태어날 세계를 결정하는 심판관 시왕과 망인을 자비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의 결합이 쉽게 이루어져 독립되어 있던 지장전과 시왕전이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후 승병의 활동으로 불교에 대한 억압이 약화되자 사찰마다 유교이념에 맞는 명부전을 앞다퉈 건립,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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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79호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 관음전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279호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 관음전 금동지장보살좌상

   사람은 누구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겪는다. 불교에서는 윤회(輪廻)라 하여, 죽은 다음 다시 태어나고 또 죽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이 세상을 마감하고 다시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지만, 천상과 아수라[阿修羅, 얼굴이 세 개, 팔이 여섯 개의 모습], 축생[동물], 아귀[餓鬼, 배고픈 영혼], 지옥에도 태어날 수도 있다. 이 여섯 개의 세상을 육도(六道)라 하며, 이곳에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고 하여 육도윤회라고 한다.

   불상을 만들고 소원하는 바를 적은 발원문에 삼악도(三惡道)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가끔 보인다. 삼악도란 육도 중에서 태어나길 원치 않는 동물, 아귀, 지옥의 세상을 말한다. 목련(目連) 존자의 어머니도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가 석가모니 붓다의 도움을 받아 아귀도와 축생도에 태어나기를 반복한 후 천상으로 올 수 있었다. 사실 지옥은 한번 떨어지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그 지옥이란 우리가 괴로운 일을 당하면 “지옥 같다”고 내 뱉는 그 지옥과는 차원이 다른,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이승과 저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남쪽 두성(斗星)은 인간의 이생 호적을 주관하고,
북쪽 풍도(?都)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조사한다.”
南斗主生籍
北?比死名







   도교적인 관념을 보여주는 그의 시에서는 이 세상이 남쪽에, 저 세상이 북쪽에 있다고 읊고 있다. 불교에서도 인간 세상을 남쪽 섬부주(贍富洲)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옥은 북쪽 어디에 있을까?

선운사

   석가모니 붓다의 열반 후, 여덟 번째 붓다인 미륵불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교화할 때까지 보살과 나한들이 붓다의 역할을 대신한다. 목련존자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지옥으로부터 구제해 주는 역할을 석가모니 붓다가 하였다. 보통 지옥으로부터 중생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지장보살이 맡는데, 석가모니 붓다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목련존자과 관련된 경전은 인도가 아닌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僞經, 인도에 원본이 없는 경전]이지만, 그 시대적인 배경은 석가모니 붓다가 인간 세상에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있을 때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붓다의 열반 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다음 대승불교시대가 전개되면서 등장한다. 석가모니 붓다의 열반 후, 재가(在家, 일반 신도) 중심의 대승불교시대에 지옥에 빠진 중생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할 보살이 절실히 필요하였고, 지장보살이 그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세계로 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혹시 지옥에 떨어지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은 그 두려움을 더욱더 크게 만든다. 사람들은 죽은 후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미리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지장보살과 관련되는 경전을 찬술하거나 보살상을 만들어 예배하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소원을 빈다.

선운사 관음전 금동지장보살좌상

금동지장보살좌상

   『대방광십륜경(大方廣十輪經)』과 같은 지장신앙과 관련되는 경전에서 우리는 민머리에 가사를 걸친 출가한 승려의 모습이나 두건을 쓴 지장보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보통 보관을 착용한 보살상과 달리, 민머리나 두건을 쓴 승려의 모습으로 조성되는 것은 다 이러한 경전적인 배경 때문이다.

   지장보살은 어떻게 지옥에 빠진 중생들을 구원해 낼 수 있을까? 조선 후기 이규경(李圭景)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지옥에 떨어져 모진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원할 것을 지장보살이 맹세하고, 지옥에 가서 육환장(六環杖)를 휘둘러 옥문(獄門)이 열리면 신수(神水)로써 고통 받는 중생을 씻어준 다음, 업풍(業風)을 불어 본래의 모습을 만들어 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장보살도에서는 한손으로는 고리가 여섯 개 달린 육환장을, 다른 한 손으로는 보주(寶珠)를 잡고 있다. 보주는 어두운 지옥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지장은 보살이다. 보살, 즉 보디사트바는 깨달음[보디]을 구하면서 중생[사트바]을 구제하는 존재다.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러 다니기 때문에 보살만큼 바쁜 분도 없다. 대부분의 보살들은 천상과 인간 세상을 오르내리며 중생들을 구제한다. 지장보살이 대단한 원력(願力)을 지닌 보살이라는 점은 다른 보살들이 가지 못하는 지옥까지 가서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사실이다. 지옥과 인간세상, 천상을 오가며 지옥의 중생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원력을 펼친다. 당연히 지장보살을 둘러싸고 일어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다. 선운사 관음전에 모셔져 있던 금동지장보살상에 얽힌 이야기는 대표적인 예다.

금동지장보살좌상 부분

금동지장보살좌상 부분

   지금, 금동지장보살상은 선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여느 지장보살상과 같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출가한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용히 앉아 있지만,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고민에 잠긴 듯한 분위기다.

1   936년 어느 날, 선운사 관음전에 모셔졌던 금동지장보살상은 도난되어 일본으로 팔려가게 된다. 그런데 그 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구입했던 일본인의 꿈에 이 보살상이 나타나 ‘나는 원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그러하니 나를 반드시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다. 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 일본인은 가산을 탕진하고 병까지 든 후에야 보살상의 영험함에 놀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다. 그것을 구입했던 또 다른 일본인들도 똑같은 꿈을 꾸자, 마지막으로 소장했던 일본인이 직접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돌려주었다고 한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선운사 관음전의 금동지장보살상에 얽힌 이 이야기가 몇 백 년 전인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불과 몇 십 년 전에 일어났던 사실이기 때문에 믿을 수는 있지만 동시에 놀라움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어떻게 보면, 지장보살상이 원치 않던 곳에 보내져 직접 지옥을 경험한 셈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강탈해 갔던 일본인들은 이 보살상이 지옥을 그 어떤 보살보다 잘 알고 있던 지장보살이라는 것을 정작 몰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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