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5. 06:44ㆍ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여기서는 제 자리에 있기 위해서도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하고, 어딜 가려면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지.”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은, 주인공 앨리스에게 그렇게 재촉한다. 그 나라는 모든 것들이 쉼 없이 달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앨리스가 거울 속 환상의 세계에서 겪는 갖가지 모험들로 가득한 그 동화는, 어린이들의 상상력뿐 아니라 학자들의 영감(靈感)까지 자극했다. 그것을 생태계의 경쟁을 설명하는 데 빌려 쓴 이들이 다윈주의 진화론자들이다. 그들은 생태계의 진화가 적자생존의 끝없는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면서, 이를 ‘붉은여왕가설’ 또는 ‘붉은여왕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이 가설은 자유방임적 초기정글자본주의로부터 최근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승자독식의 현실이나 경쟁숙명론의 근거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도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만을 당연시하진 않는다. 만약 강자만 살아남는다면 궁극엔 먹이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인간만 살아남을 것 아닌가. 하지만 진화의 역사는 오히려 ‘종 다양성’의 확대로 이어져 왔다.
생태계에서 가장 번성한 생명체도 인간이 아니다. 동물 가운데 종(種)이나 개체수가 가장 많은 것은 개미이고, 생명력이 가장 강한 생명체는 지의류라고 한다. 개미는 군집생활을 하는 가운데 경쟁보다는 협동과 공생을 생존과 진화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 지의류는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수분을 빨아들이는 균류가 상리공생(相利共生)하는 식물군으로, 그런 생존법으로 극지에서 열대우림까지 살지 못하는 곳이 없다.
‘공진화(共進化)’ 현상도 눈여겨 볼만하다. 수분을 곤충에 의탁하는 꽃들의 생김새와 벌·나비의 입모양은 서로에게 궁합을 맞추는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 사바나의 영양과 치타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빠른 발을 경쟁적으로 진화시켜 왔으면서도, 어느 한쪽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채 평형을 이룬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약자에게도 나름의 적응기재가 있는 것이다.
‘적자생존’ 개념을 처음 언급한 철학자 스펜서조차 그것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의 작용’으로 보았다. 절대적인 힘. 그것은 인간이 경험 속에서 유추해 낸 그 어떤 이론보다, 막연하면서도 오묘하게 실재하는 자연의 섭리 아닐까.
동화 속 앨리스는 쉼 없는 질주를 재촉하는 붉은 여왕의 손을 뿌리치며 이윽고 말한다. “목마르고 덥긴 하지만…, 저는 그냥 이쯤에서 쉴래요.” 아닌 게 아니라, ‘붉은 여왕의 나라’는 거울 속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엄연한 현실일지 모른다. 경제에서도 교육에서도, 무한경쟁만이 살길이요 절대선이라는 주장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런 속도전이 우리에게 삶의 질을 보장해 줄까. ‘빨리빨리’야말로 ‘인간파괴 바이러스’라는 각성이 점차 일고 있다. ‘느리게 살기’를 추구하고 ‘게으를 권리’를 주장하는 삶들도 있다. 나무늘보보다 치타의 삶이 값진 거라고, 붉은 여왕은 장담할 수 있을까.
김 병 우/충북 교육발전소장 <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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