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곽의 변관 : 나대경의 <산정일장> 번역

2016. 4. 17. 01:33



      호곽의 변관 : 나대경의 <산정일장> 번역 | 韓國篆刻

목천(원혁로) | 조회 88 |추천 0 | 2014.06.01. 05:46


첨부파일 20140415-山靜日長원고.hwp

 

[교재연구]

호곽의 변관 : 나대경의 <산정일장> 번역

정재경(鄭載慶/강촌전각회)

[설명]

   호곽(胡钁:1840-1910년)은 중국 청나라 말기의 서화가이자 전각가이다. 절강(浙江) 석문(石門:지금의 桐鄕)의 주천(洲泉) 도가패(屠家壩) 사람으로, 대를 이어온 관환세가(官宦世家) 출신이었다. 이름은 달리 맹안(孟安)이라고도 하였고 자(字)는 국린(菊隣. 국은 또 匊으로도 썼음)이며 호는 노국(老鞠), 만취정장(晚翠亭長) 등이라 썼다.

그의 <산정사태고 일장여소년(山靜似大古 日長如小年)>(1904년)은 65세 때의 작품으로, 출전은 중국전각사의 한 결집이라 할 명보(名譜)인 <정축겁여인존(丁丑劫餘引存)>(1939년)이다. 이 작품의 동기나 내력에 대해서는 상면(上面)의 변관(邊款)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鶴林玉露中語, 恬澹高風, 自得隱趣. 復葊新得靑田石, 乞匊鄰丈鐫此妙句, 竝鑿此語爲消夏錄. 光緖甲辰四月, 復幷記.

<학림옥로(鶴林玉露)>의 말들은 염담(恬澹: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음)하고 고풍스러워 절로 은일의 지취(旨趣)를 얻었다. 복암(復葊. 羅復堪:1872-1955년)이 새로 청전석(靑田石)을 얻고서 국린(匊鄰) 어른께 이 묘구(妙句)를 새겨달라고 하였고, 아울러 이 말들을 파는 것으로 여름날을 보낸 기록이 되게 하시라고 하였다. 광서(光緖) 갑진(甲辰:1904년) 4월에 복암이 어울러 적다.

 

  이처럼 호곽에게 이 작품을 부탁한 복암이란 사람은 원래 이름이 돈(惇)으로, 강유위(康有爲)에게 수업을 받았으며, 글씨를 잘 써서 현대 중국서예가 계공(啓功) 같은 사람도 기억하듯이 민국 시기에 ‘현대 장초(章草)의 제일인’이란 칭송을 듣기도 하고 그 뒤에는 대학들에서 서법 강의를 하였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원래 “산정사태고 일장여소년”이란 이 인문(印文)은 북송 말기의 시인이자 관리였던 당경(唐庚:1070-1120년)의 <취면[醉眠:취해서 잠들다]>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변관에 새긴 글은 백여 년 뒤인 남송나대경(羅大經:1196-1242년)이란 사람이 이 시를 읽고 쓴 <산정일장(山靜日長)>이란 산문이며 그가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란 책에 들어 있는 글이다.

   먼저 당경이란 사람은 미주(眉州) 단릉(丹棱:현재 四川省 眉山市 丹棱縣)태생으로 자(字)가 자서(子西)이며 사람들이 노국선생(魯國先生)이라 불렀다고 한다. 휘종(徽宗) 때 종자박사(宗子博士)가 되었고, 재상 장상영(張商英)의 천거로 승진하였다가 그가 실각하자 혜주(惠州:현재 광동성 혜주시. 홍콩 북쪽이며 광주의 동쪽)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소식(蘇軾:1037-1101년. 東坡)을 매우 존경하였고 또 그와 고향이 같은데다 같은 혜주 땅에 귀양을 갔다고 해서 ‘작은 동파[小東坡]’라 불렸다. <미산당선생문집(眉山唐先生文集)>이 있다. 그는 흔히 “누차 고치고 다듬어서 간결하고 세련된 시어(詩語)를 구사했지만 간혹 ‘교묘함을 쫓다가 졸렬해진’ 곳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중국 청대의 전종서(錢鍾書) 같은 사람은 그처럼 ‘농교성졸(弄巧成拙)’한 곳이 있긴 하지만 그는 “당시 아마 가장 간결하고 치밀한 시인”일 것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宋詩選註>). 사고전서(四庫全書)의 <송시초(宋詩鈔)> (청 吳之振 편, 권46)에 실린 오언율시(五言律詩) <취면>의 전문은 이렇다.

 

山靜似大古     산들은 먼 옛날인 듯 고요하기만 하고

日長如小年     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네

餘花猶可醉     남은 꽃에 그래도 취할 만하니

好鳥不妨眠     귀여운 새들도 단잠에 방해가 되지 않는구나

世味門常掩     세상 쓴맛에 문은 늘 닫아놓았고

時光簟巳便     시절도 돗자리가 이미 편안할 때라네

夢中頻得句     꿈속에 자꾸 좋은 시구 떠오르지만

拈筆又忘筌     붓 잡으면 또다시 어찌 말할지 잊고 만다네


    당경은 이때 혜주 땅에 유배 중이어서 조정의 당파(黨派) 논의에 갑론을박 추궁당하지 않으려고 이웃과도 알고 지내지 않으려고 하던 때였다고 한다. 마지막 ‘망전(忘筌)’이란 말의 ‘전’은 ‘전(詮)’의 차용으로 보아야 자연스러우며(위 전종서의 해설), 이는 어떻게 말할지 말을 고른다는 말이다(혹 <장자> 외물편의 ‘得魚忘筌’의 망전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그러면 對句의 의미가 여러 모로 살아나지 못함). 당경은 장상영의 당여였기에 유배를 갔으나 한미하거나 곤궁한 기색은 보이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유배지에서 재냈다. 연보에 의하면 당경은 1110년 40세 때 유배령을 받고 길을 떠나 이듬해에 아성(鵝城:혜주)에 당도하였고, 성남이씨(城南李氏)의 산원(山園)에 더부살이를 하였다(당경의 「李氏山園記」). 거기서 그는 기오재(寄傲齋)역암(易庵)을 짓고서 책을 읽거나 글을 지으며 서남쪽의 풍호(豊湖) 주변을 유람하며 지내다가 45세 때인 1115년 6월에 유배가 풀리고 복직되어 북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대경(羅大經:1196-1242년)은 길주(吉州) 여릉(廬陵:지금의 江西省 吉安市) 사람이며 자는 경륜(景綸)이나 자세한 생애가 알려져 있지 않다. 가정(嘉定) 연간에 태학생이 되었고 보경(寶慶) 2년(1226)에 진사(進士)가 된 뒤 말직에 있다가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고 하며, 그 후에는 여생을 유한(悠閑)한 산거생활(山居生活)로 보냈다고 한다. 그의 <학림옥로>는 산문집(散文集)으로 필기류(筆記類)의 수필들을 모은 것이며, 후대에 많은 고사나 일화의 전거가 되었던 책이다. 제목은 지은이가 서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두보의 시에서 따다 지은 것이다. 두보 「증우십오사마(贈虞十五司馬)」라는 시에 “맑은 기운은 드넓은 금천(金天:가을하늘)과 같고, 맑은 담론은 흠뻑 내린 옥 이슬과 같아라[爽氣金天豁 淸談玉露蕃]”라는 구절이 있다. 이 책은 문인과 학자의 시문(詩文)에 대한 논평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일화나 견문 따위를 수록하여 독보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일부 전거가 부정확한 것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1200년대 중반에 지어진 이 책은 현재 16권본과 18권본이 전하는데 중국에서는 주로 16권본이 통용되어 왔다. 하지만 일본을 통해 전해진 18권본이 원모습에 더 가깝다고 인정된다. 이는 갑·을·병 3편 구성에 편마다 각 6권씩이며 글마다 소제목이 붙여져 있고, <산정일장>은 병편 권4에 있다.(사고전서에는 16권본이 수록되었으며 소제목이 붙여져 있지 않음.) 조선에서는 중종 연간에 간행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대경<산정일장>은 앞에 당경 시의 첫구를 인용한 다음, 그에 빗대어 산중에 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하루 일과의 일들을 서경(敍景) 묘사와 더불어 죽 서술하고 나서 마지막에 그 시를 좋아하는 이유와 평가하는 말을 적었다. 이 글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많이 읽히며 회자되었고, ‘산정일장’이란 말은 산중의 고요함 가운데 시간이 아주 느리게 간다는 뜻으로 산속의 한거(閑居)를 가리키는 대명사처럼 쓰였다. 특히 회화 방면에서는 중국에서 명대의 문징명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화제(畵題)로 삼아 그림들을 남겼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겸재 정선에게 배운 김희성(金喜誠)은 18세기에 이 글을 주제로 6폭의 그림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간송미술관). 조선후기 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원문이 실려 있다(人事篇의 <安貧守分辨證說>).


   호곽방각(傍刻)에서는 나대경 글의 전문을 4면에 모두 새겼으나 고자(古字)나 이체자(異體字) 등을 많이 섞어 썼다. 아래는 이 글의 판본에 따른 글자의 출입 등에 대한 교열과 약간의 주석을 붙이며 번역을 한 것이다. 교열과 표점은 중국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당송사료필기총간(唐宋史料筆記叢刊)’의 하나로 나온 왕서래(王瑞來) 점교(點校)<학림옥로>본(1983년 초간, 2012년 5쇄본)에 따랐으며, 세 단락으로 구분한 것은 편의상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이 본을 원문으로 삼아 비교하며 방각의 석문(釋文)을 실었고, 원문과 다른 글자는 밑줄을 긋고 단락 밑에 밝혀 놓았다.


山靜日長

唐子西詩云: “山靜似太古 日長如小年.” 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蒼蘚盈堦, 落花滿徑, 門無剥啄, 松影參差, 禽聲上下. 午睡初足, 旋汲山泉, 拾枝, 煑苦茗啜之. 隨意讀周易․國風․左氏傳․離騷․太史公書及陶杜詩․韓蘇文數篇. 從容步山徑, 撫松竹, 與麛犢共偃息於長林豐草間. 坐弄流泉, 潄齒濯足.


당자서(唐子西)의 시에 이르기를, “산들은 먼 옛날인 듯 고요하기만 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다” 라고 하였다. 나는 깊은 산속에 거주하는지라 매해 봄과 여름이 엇갈릴 즈음이면 푸른 이끼가 섬돌에 차오르고 꽃은 떨어져 산길에 가득한데, 대문에는 두드리는 소리도 없고 소나무 그림자가 들쭉날쭉 짧아지며 새 소리만 오르내린다. 깜빡 든 낮잠에 막 흡족함이 느껴질 때쯤, 산속의 샘물을 길어오고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다 쓴맛 나는 좋은 차를 끓여 마신다. 마음 내키는 대로 ?주역?이나 ?시경?의 「국풍」, ?춘추좌씨전?이나 ?이소?, ?사기(史記)?를 읽든가 도연명(陶淵明)과 두보(杜甫)의 시, 한유(韓愈)나 소식(蘇軾)의 산문 몇 편을 읽는다. 조용히 산길을 거닐며 소나무나 대나무를 어루만지거나, 어린 사슴새끼들과 길게 뻗은 숲속 무성한 풀밭 사이에 누워 쉬기도 한다. 흐르는 샘물 가에 앉아 물장난을 치거나 양치질을 하고 탁족(濯足)도 한다.


【校】오가(吾家)는 원문에 여가(余家), 또 고지(枯枝)는 송지(松枝:솔가지)로 되어 있음.



既歸竹下, 則山妻稚子, 作蕨, 供麥飯, 欣然一飽. 弄筆間, 隨大小作數十字, 展所藏法帖·墨蹟·畫卷縱觀之. 興則吟小詩, 或玉露一兩. 再苦茗一杯, 出步溪邊, 解后園翁谿叟, 問桑麻, 説秔稻, 量晴雨, 探節數時, 相與劇談一餉. 歸而倚杖柴門之下, 則夕陽在山, 紫緑萬狀, 變幻頃刻, 恍可人目. 牛背笛聲, 兩兩來歸, 而月印前谿矣.


이미 죽창(竹窓) 아래로 돌아오노라면 산처(山妻)와 어린 자식들이 죽순과 고사리 반찬을 만들어 보리밥을 지어내니, 기쁜 마음에 한번쯤 배불리 먹는다. 창가에서 붓을 놀려 크거나 작은 크기대로 수십 글자를 써보면서, 소장한 법첩(法帖)이나 묵적(墨蹟)과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고 마음껏 보기도 한다. 흥이라도 나게 되면 짧은 시를 읊조리거나, 혹은 옥로(玉露) 한두 조목의 초안을 잡아보기도 한다. 다시 쓴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나가서 시냇가를 거니노라면, 농원 일을 하는 노인이나 냇가의 늙은이를 만나 뽕나무와 삼 농사를 물어보며 멧벼 농사 이야기에 맑거나 비온 날을 헤아려 절기를 가늠하고 때를 점치면서 서로 더불어 잠시나마 유쾌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돌아와 사립문 아래서 지팡이에 기대 서보면, 석양은 서산에 걸려 있고 자색 녹색의 만 가지 형상들이 순간순간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광경이 황홀하게도 사람 눈에 들어온다. 소 잔등에서 피리소리 들리며 드문드문 돌아들 올 즈음이면 달빛이 앞 시내를 훤히 비춘다.


【校】원문에는 속자인 순(笋) 대신 순(筍)을 썼고, 창(囱)은 창(窗:窓), 지(至)는 도(到), 초(艸)는 초(草), 칙(則)은 단(段:단락)임. 또 철(啜:마시다)은 원문에 팽(烹), 해후(解后)는 해후(邂逅), 계수(谿叟)는 계우(溪友), 교(較)는 교(校), 계(谿)는 계(溪)로 되어 있음.


味子西此句, 可謂妙絶. 然其妙者蓋. 彼牽黄臂蒼, 馳於聲利之場者, 但見滾滾馬頭塵, 匆匆駒隙影耳, 烏知此句之妙哉! 人能眞知此妙, 則東坡所謂, “無事此靜坐, 一日是兩日. 若活七十年, 便是百四十,” 所得不已多乎!


자서(子西)의 이 구절을 음미해보니 정묘(精妙)하고 절륜(絶倫)하다 이를 만하다. 하지만 그 정묘함을 아는 자는 대개 드물다. 저 사냥개를 데리고 매를 어깨에 올려놓고서 명성과 이익을 다투는 데로만 내달리는 자들은 다만 말 머리에 잔뜩 피어오르는 먼지나 망아지가 총총히 문틈 사이로 지나가는 그림자만을 볼 따름이니, 어찌 이 구절의 정묘함을 안다 하겠는가! 사람들이 참으로 이 정묘함을 안다면, 소동파가

“일 없이 이렇게 고요히 앉아 있으니

하루가 이틀맞이와 같구나

칠십 년을 산다면

곧 백사십 년을 사는 셈이로다”

라고 이른 것도 얻은 바가 많지 않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校】원문에는 ‘然’ 다음에 “此句妙矣”란 말이 더 들어가 있으며, 지(知)는 식(識), 선(鮮)은 소(少), 무(騖:달리다)는 렵(獵), 곤곤(滾滾)은 곤곤(袞袞)으로 되어 있음.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