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곤 (쌍계제다 대표)
♠ 고려의 진다의식(進茶儀式)
고려시대에는 국왕이 참석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왕에게 차를 올리고 왕이 참석한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하는 진다의식을 행하였다.
편전(便殿)에서의 소회(小會)의식이 끝나면 다방(茶房-전회 참조, 茶事를 주관하는 정부기관)에서 과일상을 왕의 자리 앞에 설치하였다. 수존안(壽尊安)은 좌우 꽃으로 장식한 꽃상의 남쪽에 설치한다. … 근시관(近侍官)이 차를 올리면 집례관(執禮官)이 임금이 있는 전각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권한다. 매번 술과 음식을 올릴 때마다 집례관은 전각을 향해 몸을 굽히고 권하는데 뒤의 행사도 모두 이런 예절을 본받았다. 그리고 태자 이하 시신(侍臣)들에게 차를 하사하였다. 차가 도달해 집례관이 절하기를 알리면 태자 이하가 재배하고, 집례관이 마시기를 알리면 태자 이하 신하들이 마시고는 읍(揖)하는 예를 올린다. - <고려사> 권69, 禮11. 「上元燃燈會儀」
고려의 2대 명절인 봄 연등회와 가을의 팔관회(八關會) 뿐만이 아니라 외국사신을 맞을 때, 원자가 태어나거나, 공주를 시집보낼 때, 태자를 책봉할 때, 군신(君臣)이 연회를 베풀 때에는 위와 같은 진다의식이 행하여 졌다. 고려의 국가적인 의식을 정리한 <고려사>의 예(禮)편을 보면 길·흉·군·빈·가례(吉·凶·軍·賓·嘉禮)의 5례로 구분하였다. 임금이 직접 참석하여 치르는 경로잔치를 ‘노인사설의(老人賜設儀)’라 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의식을 모은 가례(嘉禮)편에 싣고 있다. 고려시대 경로잔치는 임금이 궁중에서 치르는 노인사설의와 기로회(耆老會)가 있었다.
기로회는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만든 친목모임이다. 당시 사람들은 말년을 즐겁고 한가하게 지내는 이들을 지상의 신선(地上仙)이라 하였다. 국가적인 중대사를 논할 때는 기로(國老라고도 하였다)들과 종친, 고위관리들이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기로연(耆老宴)은 조선시대 국가에서 나이 많은 문신(文臣)들을 위해 베풀어 주던 경로잔치였다. 매년 상사(上巳, 3월초의 巳日: 3월 3일)와 중양(重陽: 9월 9일)에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를 기로연 혹은 기연회(耆宴會)라 하였다. 고려의 노인사설의는 임금이 궁중에서 베푼 경로잔치로 모든 참석자들에게 차(茶)를 하사하였다.
♠ 고려임금이 차로 베푼 경로잔치 - 「老人賜設儀」
노인사설의는 <고려사> 68권 禮10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루 전에 의식을 치를 행사장을 준비한다. 왕을 위한 임시휴게소 2곳과 나이와 계급의 품계에 따라 좌석의 위치를 달리하여 준비한다. 행사 당일 새벽에 의장대, 경호원, 추밀관, 시신 등이 지정된 자리에 정렬하고, 곧 왕과 태자, 공후백작과 재신(宰臣)들이 지정된 자리에 들어온다. 우렁찬 주악이 울리고 의식을 행한 후, 왕은 휴게소에서 잠깐 쉰다. 다시 나와 모두에게 음식과 꽃, 술을 내린다. 다시 왕은 휴게소에서 쉰 후 구정(毬庭)으로 장소를 옮겨 주악 속에 음식을 대접한다. 해당기관에서는 참석한 모두에게 차등 있게 선물을 주었다. 이튿날 수궁서(守宮署)에서 늙은 홀아비, 늙은 홀어미,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병자, 불구자들을 구정에 모아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 고려사>의 노인사설의(老人賜設儀) 몇을 소개한다.
목종 10년(1006년) 7월 - 왕이 구정에서 민간 남녀 80세 이상 및 병자와 불구자 635명을 모아 왕이 직접 술, 베와 비단, 차, 약 등을 차등있게 하사하였다. 현종 12년(1201년) 2월 - 서울(개성)에 있는 90세 이상의 남녀 노인들에게 술, 밥, 차, 약, 베와 비단 등을 차등있게 하사하였다. 희종 4년(1207년) 10월 - 국로(國老), 일반노인, 효자, 기특한 손자, 절개를 지킨 부인과 의사(義士) 등을 초대하여 왕이 친히 술, 음식을 권하였다. (이튿날인) 병자일(丙子日)에는 늙은 홀애비, 늙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 병자, 불구자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차등있게 주었다. 각 주·부·군·현(州·府·郡·縣)에서도 이대로 시행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천여년 전부터 국가적인 행사로 경로잔치를 해왔었다. 고려를 정치문화의 황금기가 되도록 초석을 다진 성종은 “국가를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먼저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을 힘쓰는 데는 효도가 제일이다. 효도는 만사의 강령이요, 모든 선의 주체이다.”라 하였고, “부모봉양을 잘하는 자를 치켜줌으로써 풍속을 아름답게 하는 뜻을 표시하는 바이고 효자는 반드시 국가의 충신이 될 것이다”고 충효사상을 강조하였다.
임금이 직접 베푼 경로잔치인 노인사설의는 보통 2일 간 계속되었다. 첫째 날은 궁중에서 특별히 초대된 사람들을 위한 잔치였고, 둘째 날은 구정에서 신분고하나 승속(僧俗), 병자 등 누구나 관계없이 민간의 노인들과 고아들까지도 초대하여 접대하였다. 구정(毬庭)은 궁궐내에서 격구를 하기위한 운동장이다. 지금의 공설 종합운동장과 같이 국가적인 행사도 치루어 졌다.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문종은 백좌도장(百座道場)을 회경전에 설치하고 구정에서 1만명의 승려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차는 국가적인 행사에서는 진다의식이 있었고 경로잔치에서는 하사품으로, 공적있는 신하의 죽음에는 부의품으로, 국가 간의 예물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신라나 당나라에서 차는 신선들이 주고 받는 선물-선황(仙황)이라 하였다. 그러나 고려에 와서는 차가 국가의 중요한 예물이 된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