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력 분류

2016. 11. 24. 01:55우리 역사 바로알기




      백제왕력 분류|백제 토론방

      

조이 | | 조회 111 |추천 0 | 2016.11.17. 09:14 http://cafe.daum.net/alhc/3Cdg/816   


백제왕력 분류



제가 보는 백제 왕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기] 삼한백제시대 

--------------- 여구(372) - 여휘(386) - 여영(416) - 여비(427) - 여경(455) - 여기(462) - (여대:479) - 여융(501) -여명 - 여창 -------- 여풍(663) 으로 이어집니다.


[2기] 온조백제 시대

근초고(346) - 근구수(375) - 침류(384) - 진사(385) - 아신(391) - 전지(404 ) - 구이신(420-427)


[3기] 대백제시대 2백년

20 비유(여비 427) - 21 개로(여경 455) - 22.동성(여대 479) - 23.무령(여융 501) - 24.성명(여명 523) - 25.위덕(여창 554) - 26.혜 - 27.법 - 28.무 - 29.의자 - 30.풍(663)


[4기] 왜국시대 (390 - 2017)

15.응신(390) - 16.인덕 - 17.이중 - 18.반정 - 19.윤공 - 20.안강 - 21.웅략(여곤 456) - 22. 청령 ------ 아키히토


249년 삼한의 진왕이 고이백제를 흡수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왕권이 바뀐 것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왕은 여러 소국들을 연합하여 정권을 유지하였기에 자신들 스스로 "왜"라 불렀고 고구려도 "왜"라 하고 신라도 "왜"라 불렀습니다. 비문의 "왜"란 바로 삼한백제를 말하는 것이며, 신라가 줄기차게 왜라 표현한 세력이 바로 진왕인 삼한백제이죠. 삼한백제란 말은 그저 "왜"를 표현하는 현대식 표현일 뿐입니다. 


그런데 4세기말에 들어가면 대가야에서 <임나가라>로 이미 치소가 옮겨갔는데, 이때 진왕인 여구는 372년 스스로를 백제왕으로 호칭하고 중원으로부터 책봉도 받습니다.


249년경 삼한백제와 왜가 연합하여 결국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 이름이 <왜>라고 하고 또는 <삼한백제>라고 합니다.

백잔이란 국호도 있는데 이는 본백제의 잔재란 뜻으로 비문에 나옵니다. 이 나라가 근초고왕이 다스린 온조백제입니다.


온조백제는 근초고왕부터 구이신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427년에 삼한백제(왜)는 온조백제를 병합합니다. 

그러면서 백제라는 국호도 인수한 것이지요. 온조백제는 백제왕의 책봉을 받는 적이 없습니다.


416년 전지왕 때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국체는 삼한백제입니다. 

이때 진왕은 백제라는 국호를 계승합니다. 

진왕계인 여씨가 (실제로는 진씨지만) 백제의 정권을 잡으면서 동진에 사신을 보내 이전 진왕들의 계승을 주장하면서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것입니다. 


일본열도의 초대 왕은 390년에 야마토를 건국한 응신입니다. 39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세기 중반에 고이왕은 고구려를 침략한 위군을 견제하기 위해 위군의 배후인 낙랑군을 공격합니다. 

낙랑군이라면 백제의 입장에서 한인일 것입니다. 

삼한은 이 사건 직후 3세기 중반 또 기리영을 공격합니다. 


중국사서는 372년에 여구에게 백제왕이란 작호를 내려주면서 이때 부터는 삼한이란 명칭대신에 백제로 호칭하는 것입니다. 

근초고왕 역시 책봉을 요구하지만 책봉을 받지 못하고 삼한의 왕인 여구가 받게 됩니다. 삼한이 강하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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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숫자는 백제 왕의 재위 기간입니다.



해씨 부여 계열


1 온조왕(溫祚王)) BC18-AD28

2 다루왕(多婁王) 28-77 온조왕의 원자

3 기루왕(己婁王) 77-128 다루왕의 원자

4 개루왕(蓋婁王) 128-166 기루왕의 아들


5 초고왕(肖古王) 166-214 개루왕의 아들

6 구수왕(仇首王) 214-234 초고왕의 맏아들

7 사반왕(沙伴王) 234 구수왕의 아들



우씨 말갈 계열


08 고이왕(古爾王) 234-286 개루왕의 둘째아들

09 책계왕(責稽王) 286-298 고이왕의 아들

10 분서왕(汾西王) 298-304 책계왕의 맏아들

11 비류왕(比流王) 304-344 구수왕의 둘째 아들

12 계왕(契 王) 344-346 분서왕의 맏아들



해씨 말갈 계열


13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비류왕의 둘째아들

14 근구수왕(近仇首王) 375-384 근초고왕의 아들

15 침류왕(枕流王) 384-385 근구수왕의 원자

16 진사왕(辰斯王) 385-392 근구수왕의 둘째아들

17 아신왕(阿莘王) 392-405 침류왕의 원자

18 전지왕(전支王) 405-420 아신왕의 원자

19 구이신왕(久爾辛王) 420-427 전지왕의 맏아들




여씨(진씨) 계열


20 비유왕(毘有王) 427-455 구이신왕의 맏아들 또는 전지왕의 서자

21 개로왕(蓋鹵王) 455-475 비유왕의 맏아들


신라 모씨 계열

22 문주왕(文周王) 475-477 개로왕의 아들

23 삼근왕(三近王) 477-479 문주왕의 맏아들


여씨(진씨) 계열


24 동성왕(東城王) 479-501 문주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

25 무령왕(武寧王) 501-523 동성왕의 둘째아들 또는 개로왕의 아들

26 성왕(聖 王) 523-554 무령왕의 아들

27 위덕왕(威德王) 554-598 성왕의 원자

28 혜왕(惠 王) 598-599 성왕의 둘째 아들

29 법왕(法 王) 599-600 혜왕의 맏아들

30 무왕(武 王) 600-641 법왕의 아들

31 의자왕(義慈王) 641-660 법왕의 원자

32 (풍왕)(豊王)) (660-663) 의자왕의 아들


성씨는 그 뿌리를 찾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온조백제는 근초고왕이 대를 잇게 됩니다. 근초고왕이 한성으로 내려와 한성백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구태라는 이름은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부를 수 도 있습니다. 구태, 우태, 고이,구이 등등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사람을 의미하는데,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게 부른다는 것이죠


구태는 삼국사기에 고이왕으로 보입니다.

고이나 구태나 우태나 다 같은 사람입니다.


진씨세력은 249년경 가야에 새로운 터를 잡습니다.


이 진씨 세력은 이후 일부 세력이 390년경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토 국가를 건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씨세력이 커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진씨세력을 초토화 시킵니다. 

이 과정이 광개토왕릉비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씨 세력은 500년까지 한반도 남부에서 왜5왕 시대를 열어갑니다 


그러다 455년경 왜왕 "제"가 다시 세력을 키워 온조백제를 병합하여 통일백제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개로왕입니다. 근개루왕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개루왕의 체제를 계승하여 백제의 전통을 이어 받겠다는 의미도 있겠죠





백제의 종류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여러 종류가 있다.

 

일단 성씨로 보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 주요 왕씨의 성씨로는 


부여 계통의 백제 (시조 온조-다루-기루-개루)

초고 계통의 백제 (시조 초고왕-구수-사반)

고이 계통의 백제 (우씨: 시조 고이왕-책계-분서-비류----->대방 말갈 백제)

근초고 계통의 백제 (해씨: 근초고왕-근구수-침류-------->한성 말갈 백제)

근개루 계통의 백제 (진씨: 시조 비유-개로(제)-동성(흥)-무령(무)---> 왜5왕

오진 계통의 백제왜 (진씨: 시조 오진왕-인덕--->열도백제)

 

성씨로 풀어본 백제의 종류이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광개토왕 비문에 있다.

또 일본서기는 이 문제를 푸는데 참고 할만 하다. 

일본서기는 대방백제의 역사를 적은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한성백제는 근초고왕이 시조라 할 수 있다. 해씨이다

해씨로 왕위를 잇는 왕은 근초고-근구수-침류-진사-아신-전지-구이신이다

구이신에 이르러 왜의 진씨(비유왕)에 의해 왜와 백잔이 백제로 통합된다. 

 

근초고왕이 초고왕의 대를 잇는 다는 명목으로 근초고왕이라 김부식은 기록한다. 

근초고왕은 말갈계 해씨이고 초고왕은 부여계 해씨이다.

 

우씨인 고이왕은 대방에서 나라를 세웠다. 


그러던 중 249년경 삼한의 진( 眞)씨에 의해 가야는 삼한의 세력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은 임나가라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광개토왕 비문에 쓰여있는 <왜>이다.

 

광개토왕은 근초고왕의 백제를 백잔이라 불렀다.

 

당시 임나가라의 세력이 백제보다는 월등히 앞선 상태이고, 

<임나가라>의 <왜>는 가야뿐 아니라 신라까지 신민으로 삼았었다. 후에 백잔까지 신민으로 삼았다.




三國史記 第 二十四卷(삼국사기 제 24권)_097.近肖古王(근초고왕)  (0)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四卷(삼국사기 제 24권)_098.近仇首王(근구수왕)  (1)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四卷(삼국사기 제 24권)_099.枕流王(침류왕)  (0)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五卷(삼국사기 제 25권)_100.辰斯王(진사왕)  (0)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五卷(삼국사기 제 25권)_101.阿莘王(아신왕)  (0)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五卷(삼국사기 제 25권)_102.腆支王(전지왕)  (0)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五卷(삼국사기 제 25권)_104.毗有王(비유왕)  (0)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五卷(삼국사기 제 25권)_105.盖鹵王(개로왕)  (0)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十六卷(삼국사기 제 26권)_106.文周王(문주왕)  (0)2010.04.22
三國史記 第 二十六卷(삼국사기 제 26권)_107.三斤王(삼근왕)  (0)2010.04.22
三國史記 第 二十六卷(삼국사기 제 26권)_108.東城王(동성왕)  (0)2010.04.22
三國史記 第 二十六卷(삼국사기 제 26권)_109.武寧王(무령왕)  (0)2010.04.22



  1.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0.奈解尼師今(나해니사금)
  2.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1.助賁尼師今(조분니사금)
  3.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2.沾解尼師今(첨해니사금)
  4.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3.味鄒尼師今(미추니사금)
  5.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4.儒禮尼師今(유례니사금)
  6.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5.基臨尼師今(기림니사금)
  7. 2010.04.23 三國史記 第 二卷(삼국사기 제 02권)_016.訖解尼師今(흘해니사금)
  8. 2010.04.23 三國史記 第 三卷(삼국사기 제 03권)_017.奈勿尼師今(나물니사금)
  9. 2010.04.23 三國史記 第 三卷(삼국사기 제 03권)_018.實聖尼師今(실성니사금)
  10. 2010.04.23 三國史記 第 三卷(삼국사기 제 03권)_019.訥祗麻立干(눌지마립간)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물이사금(356~402), 실성이사금(402~417)|백제 토론방

조이|조회 0|추천 0|2016.11.23. 15:36  http://cafe.daum.net/alhc/3Cdg/831 

017.奈勿尼師今(나물니사금)


제17대 奈勿尼師今(나물니사금)  <356~402 재위기간 46년>

奈勿(내물) : 내물

一云那密(일운나밀) : 나밀이라고도 한다.

尼師今立(니사금입) :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姓金(성금) : 그의 성은 김씨이고,

仇道葛文王之孫也(구도갈문왕지손야) : 구도 갈문왕의 손자이다.

父末仇角干(부말구각간) : 아버지는 말구 각간이며,

母金氏休禮夫人(모김씨휴례부인) :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이다.

妃金氏(비김씨) : 왕비는 김씨이니

味鄒王女(미추왕녀) : 미추왕의 딸이다.

訖解薨(흘해훙) : 흘해가 죽고

無子(무자) : 아들이 없었므로

奈勿繼之(내물계지) : 내물이 그 뒤를 이었다.

末仇味鄒尼師今兄弟也(말구미추니사금형제야) : 말구는 미추 이사금의 동생이다.


論曰(론왈) : 아래와 같이 논한다

取妻不取同姓(취처불취동성) : 부인을 얻을 때, 같은 성의 여인을 얻지 않는 것은

以厚別也(이후별야) : 동성과 타성의 구별을 철저히 하기 위함이다.

是故(시고) : 이러한 이유로

魯公之取於吳(로공지취어오) : 노공이 오나라 왕실에서 아내를 얻고,

晉候之有四姬(진후지유사희) : 진후가 성이 같은 네 명의 첩을 가진 것을

陳司敗鄭子産深譏之(진사패정자산심기지) : 진 사패와 정 자산은, 몹시 비방하였다.

若新羅則不止取同姓而巳(약신라칙불지취동성이사) : 

신라의 경우에는 같은 성씨끼리 혼인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았고,

兄弟子姑姨從姉妹(형제자고이종자매) : 사촌이나, 고종, 이종 누이들까지도

皆聘爲妻(개빙위처) : 아내로 삼았다.

雖外國各異俗(수외국각이속) : 비록 외국과 우리 나라의 풍속이 각각 다르다고는 하지만

責之以中國之禮(책지이중국지례) : 중국의 예법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則大悖矣(칙대패의) :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若匈奴之烝母報子(약흉노지증모보자) : 오랑캐들이 어미나 자식을 간음하는 것은

則又甚於此矣(즉우심어차의) : 또한 이보다도 더욱 심한 경우이다.


二年春(이년춘) : 2년 봄에

發使撫問鰥寡孤獨(발사무문환과고독) : 

왕이 특사를 보내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문하고,

各賜穀三斛(각사곡삼곡) : 그들에게 각각 곡식 3곡 씩을 주었다.

孝悌有異行者(효제유이행자) : 특별히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은 자들에게는

賜職一級(사직일급) : 직위를 한 급씩 주었다.



三年春二月(삼년춘이월) : 3년 봄 2월,

親祀始祖廟(친사시조묘) : 왕이 시조묘에 직접 제사를 지냈다.

紫雲盤旋廟上(자운반선묘상) : 보랏빛 구름이 묘당 위에 감돌고

神雀集於廟庭(신작집어묘정) : 신기한 새가 시조묘의 뜰에 모였다.


七年夏四月(칠년하사월) : 7년 여름 4월,

始祖廟庭樹連理(시조묘정수연리) : 시조묘 뜰에 있는 나뭇가지가 맞붙어 하나가 되었다.


九年夏四月(구년하사월) : 9년 여름 4월,

倭兵大至(왜병대지) : 왜병의 대부대가 공격해왔다.

王聞之(왕문지) : 왕이 이를 듣고

恐不可敵(공불가적) : 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造草偶人數千(조초우인수천) :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衣衣持兵(의의지병) : 옷을 입히고, 옷을 입힌 허수아비마다 병기를 들게 하여

列立吐含山下(열립토함산하) : 토함산 아래에 열지어 세워놓고,

伏勇士一千於斧峴東原(복용사일천어부현동원) : 용사 1천 명을 부현 동쪽 벌판에 매복시켰다.

倭人恃衆直進(왜인시중직진) : 왜인은 자신의 병력이 많은 것을 믿고 곧장 진격해왔다.

伏發擊其不意(복발격기불의) : 복병들이 갑자기 공격하여 허를 찌르니,

倭人大敗走(왜인대패주) : 왜인이 대패하여 도주하였다. 우

追擊殺之幾盡(추격살지기진) : 리 군사가 추격하여 거의 모두 죽였다.


十一年春三月(십일년춘삼월) : 11년 봄 3월,

百濟人來聘(백제인래빙) : 백제인이 와서 예방하였다.

夏四月(하사월) : 여름 4월,

大水(대수) : 큰 홍수가 나서,

山崩十三所(산붕십삼소) : 산이 열 세 군데 무너졌다.


十三年春(십삼년춘) : 13년 봄,

百濟遣使(백제견사) : 백제가 사신을 보내

進良馬二匹(진양마이필) : 좋은 말 두 필을 바쳤다.


十七年(십칠년) : 17년,

春夏大旱(춘하대한) :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었다.

年荒民飢(년황민기) :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多流亡(다유망) : 유랑자가 많이 생기자

發使開倉廩賑之(발사개창름진지) : 왕은 특사를 보내 창고를 풀어 구제하였다.


十八年(십팔년) : 18년,

百濟禿山城主率人三百來投(백제독산성주솔인삼백래투) : 

백제 독산성주가 백성 3백 명을 이끌고 투항하였다.

王納之(왕납지) : 왕은 이들을 받아 들여

分居六部(분거육부) :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百濟王移書曰(백제왕이서왈) : 백제왕은 글을 보내와

兩國和好(양국화호) : "두 나라가 화목하여

約爲兄弟(약위형제) : 형제처럼 지내기로 약속하였다.

今大王納我逃民(금대왕납아도민) : 

그러나 지금 대왕은 우리 나라에서 도망간 백성들을 받아 들였다.

甚乖和親之意(심괴화친지의) : 이는 화친하자는 뜻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며,

非所望於大王也(비소망어대왕야) : 대왕에게 기대했던 바가 아니다.

請還之(청환지) : 청컨대 그들을 돌려 보내기를 바란다"고 했다

答曰(답왈) : 왕은

民者無常心(민자무상심) : "백성이란 항시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다.

故思則來(고사칙래) : 왕이 그들을 돌보아 주면 오고,

斁則去(두칙거) : 힘들게 하면 가나니,

固其所也(고기소야) : 백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大王不患民之不安(대왕불환민지불안) : 

대왕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而責寡人(이책과인) : 과인을 책망함이

何其甚乎(하기심호) : 어찌 이토록 심한가?"라고 대답하였다.

百濟聞之(백제문지) : 백제가 이를 듣고

不復言(불부언) : 다시 말을 하지 못했다.

夏五月(하오월) : 여름 5월,

京都雨魚(경도우어) : 서울에 비가 왔는데 물고기가 빗속에 섞여 떨어졌다.


二十一年秋七月(이십일년추칠월) : 21년 가을 7월,

夫沙郡進一角鹿(부사군진일각록) : 부사군에서 뿔이 하나인 사슴을 진상하였다.

大有年(대유년) : 대풍년이 들었다.


二十四年夏四月(이십사년하사월) : 24년 여름 4월,

楊山有小雀生大鳥(양산유소작생대조) : 양산에서 뱁새가 황새를 낳았다.


二十六年(이십육년) : 26년,

春夏旱(춘하한) : 봄과 여름에 가물어

年荒民飢(년황민기) :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렸다.

遣衛頭入苻秦(견위두입부진) : 위두를 부진에 보내

貢方物(공방물) : 토산물을 바쳤다.

苻堅問衛頭曰(부견문위두왈) : 부견이 위두에게 물었다.

卿言海東之事(경언해동지사) : "그대가 해동의 사정을 이야기함에 있어,

與古不同(여고부동) : 사용하는 언어가 옛날과 같지 않으니

何耶(하야) : 무슨 까닭인가?"

答曰(답왈) : 위두가 대답했다.

亦猶中國(역유중국) : "이는 또한 중국과 동일한 현상입니다.

時代變革名號改易(시대변혁명호개역) : 시대가 변하면 명칭과 호칭도 바뀌는 법이니,

今焉得同(금언득동) : 오늘날의 언어가 어찌 예전과 같겠습니까?"


三十三年夏四月(삼십삼년하사월) : 33년 여름 4월,

京都地震(경도지진) :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六月又震(육월우진) : 6월에 또 지진이 있었고,

冬無氷(동무빙) :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았다.


三十四年春正月(삼십사년춘정월) : 34년 봄 정월,

京都大疫(경도대역) :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二月(이월) : 2월,

雨土(우토) : 흙비가 내렸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蝗穀不登(황곡부등) : 메뚜기 떼가 생겼고 곡식이 잘 익지 않았다.





三十七年春正月(삼십칠년춘정월) : 37년 봄 정월, (392) 비문 391

高句麗遣使(고구려견사) :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 왔다.

王以高句麗强盛(왕이고구려강성) : 고구려가 강성했기 때문에

送伊湌大西知子實聖爲質(송이찬대서지자실성위질) : 

왕은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인질로 보냈다.


三十八年夏五月(삼십팔년하오월) : 38년 여름 5월, (393) 비문 392

倭人來圍金城(왜인래위금성) : 왜인이 와서 금성을 포위하고

五日不解(오일불해) : 닷새가 되도록 풀지 않으니,

將士皆請出戰(장사개청출전) : 모든 장병들이 나아가 싸우기를 요청하였다.

王曰(왕왈) : 왕이

今賊棄舟深入(금적기주심입) : "지금 적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깊이 들어 와서

在於死地(재어사지) : 죽음을 각오하는 마당에 있으니,

鋒不可當(봉불가당) :그 예봉을 당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乃閉城門(내폐성문) : 성문을 닫았다.

賊無功而退(적무공이퇴) : 적은 성과없이 물러갔다.

王先遣勇騎二百(왕선견용기이백) : 왕이 먼저 용감한 기병 2백 명을 보내

遮其歸路(차기귀로) : 그들의 퇴로를 막았다.

又遣步卒一千(우견보졸일천) : 그리고 또한 보병 1천 명을 보내

追於獨山(추어독산) : 독산까지 추격하여 양쪽에서 협공하여

夾擊大敗之(협격대패지) : 그들을 대파하였다.

殺獲甚衆(살획심중) : 죽은 적병과 포로로 잡힌 적병이 아주 많았다.


四十年秋八月(사십년추팔월) : 40년 가을 8월, (395)

靺鞨侵北邊(말갈침북변) :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므로

出師大敗之於悉直之原(출사대패지어실직지원) : 군사를 보내 실직 평야에서 그들을 대파하였다.


四十二年秋七月(사십이년추칠월) : 42년 가을 7월, (397)

北邊何瑟羅(북변하슬라) : 북쪽 변방 하슬라에 가

旱蝗(한황) : 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年荒民飢(년황민기) :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렸다.

曲赦囚徒(곡사수도) : 그 지방의 죄수를 특사하고,

復一年租調(복일년조조) : 1년 간의 세금을 면제하여 주었다.


四十四年秋七月(사십사년추칠월) : 44년 가을 7월, (399)

飛蝗蔽野(비황폐야) : 날아 다니는 메뚜기 떼가 들을 뒤덮었다.


四十五年秋八月(사십오년추팔월) : 45년 가을 8월, (400) 비문 399

星孛于東方(성패우동방) :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冬十月(동십월) : 겨울 10월,

王所嘗御內廐馬(왕소상어내구마) : 왕이 타고 다니던 궁중의 말이

跪膝流淚哀鳴(궤슬유누애명) :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슬프게 울었다.


四十六年(사십육년) : 46년, (401) 비문 400

春夏旱(춘하한) :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高句麗質子實聖還(고구려질자실성환) : 고구려에 인질로 가있던 실성이 돌아왔다.

 


四十七年春二月(사십칠년춘이월) : 47년 봄 2월, (402) 비문 401

王薨(왕훙) : 왕이 붕어하였다.




018.實聖尼師今(실성니사금)


제18대 實聖尼師今(실성니사금)  <402~417 재위기간 15년>

實聖尼師今立(실성니사금입) : 실성 이사금 이 왕위에 올랐다.

閼智裔孫(알지예손) : 그는 알지의 후손이며,

大西知伊湌之子(대서지이찬지자) : 대서지 이찬의 아들이다.

母伊利夫人(모이이부인) : 어머니 이리부인은

伊一作企(이일작기) : '伊'를 '企'라고도 한다.

昔登保阿干之女(석등보아간지여) : 석등보 아간의 딸이다.

妃味鄒王女也(비미추왕녀야) : 왕비는 미추왕의 딸이다.

實聖身長七尺五寸(실성신장칠척오촌) : 실성은 키가 7척 5촌이요,

明達有遠識(명달유원식) : 총명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식견이 있었다.

奈勿薨(나물훙) : 내물이 붕어하였으나

其子幼少(기자유소) : 그의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國人立實聖繼位(국인입실성계위) : 백성들이 실성으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元年三月(원년삼월) : 원년 3월, (402) 비문 401

與倭國通好(여왜국통호) :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이내물왕자미사흔위질) :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인질로 보냈다.


二年春正月(이년춘정월) : 2년 봄 정월,(403) 비문 402

以未斯品爲舒弗邯(이미사품위서불감) :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임명하고,

委以軍國之事(위이군국지사) : 군사와 정치에 관한 일을 맡겼다.

秋七月(추칠월) : 가을 7월,

百濟侵邊(백제침변) : 백제가 변경을 침범하였다.



三年春二月(삼년춘이월) : 3년 봄 2월, (404) 비문 403

親謁始祖廟(친알시조묘) : 왕이 직접 시조묘에 참배하였다.


四年夏四月(사년하사월) : 4년 여름 4월,(405) 비문 404

倭兵來攻明活城(왜병래공명활성) :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으나

不克而歸(불극이귀) :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는데,

王率騎兵(왕솔기병) : 왕이 기병을 거느리고

要之獨山之南(요지독산지남) : 독산 남쪽에서 요격하였으며,

再戰破之(재전파지) : 다시 싸워 그들을 격파하고

殺獲三百餘級(살획삼백여급) : 3백여 명을 죽였다.


五年秋七月(오년추칠월) : 5년 가을 7월,

國西蝗害穀(국서황해곡) : 서쪽 지방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 곡식을 해쳤다.

冬十月(동십월) : 겨울 10월,

京都地震(경도지진) :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十一月(십일월) : 11월,

無冰(무빙) : 얼음이 얼지 않았다.


六年春三月(육년춘삼월) : 6년 봄 3월에

倭人侵東邊(왜인침동변) : 왜인이 동쪽 변경을 침략하고,

夏六月(하육월) : 여름 6월에

又侵南邊(우침남변) : 다시 남쪽 변경을 침범하여

奪掠一百人(탈략일백인) : 1백 명을 잡아갔다.


七年春二月(칠년춘이월) : 7년 봄 2월,

王聞倭人於對馬島置營(왕문왜인어대마도치영) : 왕은, 왜인이 대마도에 병영을 설치하고

貯以兵革資粮(저이병혁자량) : 병기와 군량을 저축하여

以謀襲我(이모습아) : 우리 나라를 습격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我欲先其未發(아욕선기미발) : 그들이 공격해오기 전에

揀精兵擊破兵儲(간정병격파병저) : 먼저 정병을 뽑아 그들의 군사 시설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舒弗邯未斯品曰(서불감미사품왈) : 서불한 미사품이 말했다.

臣聞(신문) : "저는

兵凶器(병흉기) : '병기란 흉물스런 도구요,

戰危事(전위사) :전쟁이란 위험한 일이다'라고 들었습니다.

况涉巨浸以伐人(황섭거침이벌인) : 

황차 큰 바다를 건너 타국을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이보다 더할 것입니다.

萬一失利(만일실리) : 만일 실패한다면

則悔不可追(칙회불가추) :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니,

不若依嶮設關(불약의험설관) : 차라리 험난한 지형을 찾아 요새를 설치하였다가,

來則禦之(래칙어지) : 적이 올 때 이를 막아

使不得侵猾(사불득침활) :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便則出而禽之(변칙출이금지) : 우리에게 유리할 때 나가서 사로잡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此所謂致人而不致於人(차소위치인이불치어인) : 

이것이 소위 '내가 남을 끌어 당길지언정 남에게 끌려 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니

策之上也(책지상야) : 책략 중에는 상책입니다."

王從之(왕종지) : 왕이 이 의견을 따랐다.


十一年(십일년) : 11년, (412) 비문 411

以奈勿王子卜好(이내물왕자복호) : 내물왕의 아들 복호를

質於高句麗(질어고구려) : 고구려에 인질로 보냈다.


十二年秋八月(십이년추팔월) : 12년 가을 8월, (413) 비문 412

雲起狼山(운기랑산) : 낭산에 구름이 피어올라

望之如樓閣(망지여누각) : 누각처럼 보였고,

香氣郁然(향기욱연) : 향기가 퍼져

久而不歇(구이불헐) :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王謂(왕위) : 왕이

是必仙靈降遊(시필선령항유) : '이는 틀림없이 신선이 내려와 노는 것이니

應是福地(응시복지) : 응당 복스러운 땅이라고 하여,

從此後(종차후) : 그후로 이 곳에서

禁人斬伐樹木(금인참벌수목) : 벌목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新成平壤州大橋(신성평양주대교) : 평양주 대교를 새로 축성하였다.


十四年秋七月(십사년추칠월) : 14년 가을 7월,

大閱於穴城原(대열어혈성원) : 왕이 혈성 벌에서 크게 군대를 사열하고,

又御金城南門觀射(우어금성남문관사) : 또한 금성 남문에 행차하여 활쏘기를 관람하였다.

八月(팔월) : 8월,

與倭人戰於風島(여왜인전어풍도) : 왜인과 풍도에서 싸워

克之(극지) : 승리하였다.


十五年春三月(십오년춘삼월) : 15년 봄 3월,

東海邊獲大魚(동해변획대어) : 동해변에서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有角(유각) : 뿔이 있고

其大盈車(기대영차) : 수레에 가득 찰 만큼 컸다.

夏五月(하오월) : 여름 5월,

吐含山崩(토함산붕) : 토함산이 무너지고

泉水湧高三丈(천수용고삼장) : 샘물이 세 길 높이로 솟아 올랐다.


十六年夏五月(십육년하오월) : 16년 여름 5월, (417) 비문 416

王薨(왕훙) : 왕이 붕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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