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제왕력 분류

2017. 2. 10. 04:07우리 역사 바로알기

백제왕력 분류


아래 숫자는 백제 왕의 재위 기간.


부여족 여씨(진씨)계열


1 온조왕(溫祚王) BC18 - AD28 백제 시조

2 다루왕(多婁王) 28-77 온조왕의 원자

3 기루왕(己婁王) 77-128 다루왕의 원자

4 개루왕(蓋婁王) 128-166 기루왕의 아들(자)


5 초고왕(肖古王) 166-214 개루왕의 아들(자)

6 구수왕(仇首王) 214-234 초고왕의 맏아들(장자)

7 사반왕(沙伴王) 234 구수왕의 아들(자)



말갈족 우씨 계열


08 고이왕(古爾王) 234-286 개루왕의 둘째아들(제2자)

09 책계왕(責稽王) 286-298 고이왕의 아들(자)

10 분서왕(汾西王) 298-304 책계왕의 맏아들(장자)

11 비류왕(比流王) 304-344 구수왕의 둘째아들(제2자)

12 계왕(契 王) 344-346 분서왕의 맏아들(장자)



부여족 해씨 계열


13 근초고왕(近肖古王) 346-375 비류왕의 둘째아들(제2자)

14 근구수왕(近仇首王) 375-384 근초고왕의 아들(자)

15 침류왕(枕流王) 384-385 근구수왕의 원자

16 진사왕(辰斯王) 385-392 근구수왕의 중자

17 아신왕(阿莘王) 392-405 침류왕의 원자

18 전지왕(전支王) 405-420 아신왕의 원자

19 구이신왕(久爾辛王) 420-427 전지왕의 맏아들(장자)




초고왕계 후손 부여족 여씨(진씨) 계열 재 등장


20 비유왕(毘有王) 427-455 구이신왕의 맏아들(장자) 또는 전지왕의 서자(서자)

21 개로왕(蓋鹵王) 455-475 비유왕의 맏아들


신라 모씨 계열

22 문주왕(文周王) 475-477 개로왕의 아들(자)

23 삼근왕(三近王) 477-479 문주왕의 맏아들(장자)


여씨(진씨) 계열


24 동성왕(東城王) 479-501 文周王弟昆支之子(문주왕제곤지지자) : 문주왕의 아우 곤지의 아들(자)

25 무령왕(武寧王) 501-523 동성왕의 둘째아들(제2자)

26 성왕(聖 王) 523-554 무령왕의 아들(자)

27 위덕왕(威德王) 554-598 성왕의 원자

28 혜왕(惠 王) 598-599 성왕의 둘째아들(제2자)

29 법왕(法 王) 599-600 혜왕의 맏아들(장자)

30 무왕(武 王) 600-641 법왕의 아들(자)

31 의자왕(義慈王) 641-660 무왕의 원자

32 (풍왕)(豊王)) (660-663) 의자왕의 아들




제가 보는 백제 왕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기] 삼한백제(왜) 시대 

초고(166) - 구수(214) - 사반(234) ------------- 여구(372) - 여휘(386) - 여영(416) - 여비(427) - 여경(455) - 여기(462) - (여대:479) - 여융(501) -여명 - 여창 -------- 여풍(663) 으로 이어집니다.


[2기] 해씨백제 시대

근초고(346) - 근구수(375) - 침류(384) - 진사(385) - 아신(391) - 전지(404 ) - 구이신(420-427)


[3기] 대백제시대 2백년

20 비유(여비 427) - 21 개로(여경 455) - 22.동성(여대 479) - 23.무령(여융 501) - 24.성명(여명 523) - 25.위덕(여창 554) - 26.혜 - 27.법 - 28.무 - 29.의자 - 30.풍(663)


[4기] 왜국(야마토) 시대 (390 - 2017)

15.응신(390) - 16.인덕 - 17.이중 - 18.반정 - 19.윤공 - 20.안강 - 21.웅략(여곤 456) - 22. 청령 ------ 아키히토


249년 삼한의 진왕이 고이백제를 흡수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왕권이 바뀐 것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왕은 여러 소국들을 연합하여 정권을 유지하였기에 자신들 스스로 "왜"라 불렀고 고구려도 "왜"라 하고 신라도 "왜"라 불렀습니다. 비문의 "왜"란 바로 삼한백제를 말하는 것이며, 신라가 줄기차게 왜라 표현한 세력이 바로 진왕인 삼한백제이죠. 

삼한백제란 말은 그저 "왜"를 표현하는 현대식 표현일 뿐입니다. 


그런데 4세기말에 들어가면 왜는 <임나가라>로 치소가 옮겨갔는데, 이때 진왕인 여구는 372년 스스로를 백제왕으로 호칭하고 중원으로부터 책봉도 받습니다.


249년경 삼한백제와 왜가 연합하여 결국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 이름이 <왜>라고 하고 또는 <삼한백제>라고 합니다.

백잔이란 국호도 있는데 이는 본백제의 잔재란 뜻으로 비문에 나옵니다. 이 나라가 근초고왕이 다스린 해씨백제입니다.


해씨백제는 근초고왕부터 구이신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427년에 삼한백제(왜)는 해씨백제를 병합합니다. 

그러면서 백제라는 국호도 인수한 것이지요. 해씨백제는 백제왕의 책봉을 받는 적이 없습니다.


416년 전지왕 때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국체는 삼한백제입니다. 

이때 진왕은 백제라는 국호를 계승합니다. 

진왕계인 여씨가 (실제로는 진씨지만) 백제의 정권을 잡으면서 동진에 사신을 보내 이전 진왕들의 계승을 주장하면서 백제왕의 책봉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열도의 초대 왕은 390년에 야마토를 건국한 응신입니다. 39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세기 중반에 말갈족인 우씨 고이왕은 삼한의 지원을 받으며 고구려를 침략한 위군을 견제하기 위해 위군의 배후인 낙랑군을 공격합니다. 

낙랑군이라면 백제의 입장에서 한인일 것입니다. 

삼한은 이 사건 직후 3세기 중반 또 기리영을 공격합니다. 


중국사서는 372년에 여구에게 백제왕이란 작호를 내려주면서 이때 부터는 삼한이란 명칭대신에 백제로 호칭하는 것입니다. 

해씨인 근초고왕 역시 책봉을 요구하지만 책봉을 받지 못하고 삼한의 왕인 여구가 받게 됩니다. 삼한이 백잔보다 강하였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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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는 그 뿌리를 찾아가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구태라는 이름은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부를 수 도 있습니다. 

구태, 우태, 고이,구이 등등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사람을 의미하는데,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게 부른다는 것이죠


구태는 삼국사기에 고이왕으로 보입니다.

고이나 구태나 우태나 다 같은 사람입니다.


부여족인 진씨세력은 249년경 가야에 새로운 터를 잡습니다.


이 진씨 세력은 이후 일부 세력이 390년경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토 국가를 건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씨세력이 커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진씨세력을 초토화 시킵니다. 

이 과정이 광개토왕릉비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씨 세력은 500년까지 규슈에서 왜5왕 시대를 열어갑니다 


그러다 455년경 왜왕 "제"가 다시 세력을 키워 해씨백제를 병합하여 통일백제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개로왕입니다. 근개루왕이라고도 하는데 부여족인 백제 개루왕의 체제를 계승하여 백제의 전통을 이어 받겠다는 의미도 있겠죠




백제의 종류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여러 종류가 있다.

 

일단 성씨로 보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 주요 왕씨의 성씨로는 


부여 계통의 백제 (시조 온조-다루-기루-개루)

초고 계통의 백제 (시조 초고왕-구수-사반)

고이 계통의 백제 (우씨: 시조 고이왕-책계-분서-비류----->대방 말갈 백제)

근초고 계통의 백제 (해씨: 근초고왕-근구수-침류-------->한성 부여 백제)

근개루 계통의 백제 (진씨: 시조 비유-개로(제)-동성(흥)-무령(무)---> 왜5왕

오진 계통의 백제왜 (진씨: 시조 오진왕-인덕--->열도백제)

 

성씨로 풀어본 백제의 종류이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광개토왕 비문에 있다.

또 일본서기는 이 문제를 푸는데 참고 할만 하다. 

일본서기는 대방백제의 역사를 적은 역사서이기 때문이다.


 

한성백제는 근초고왕이 시조라 할 수 있다. 해씨이다

해씨로 왕위를 잇는 왕은 근초고-근구수-침류-진사-아신-전지-구이신이다

구이신에 이르러 왜의 진씨(비유왕)에 의해 왜와 백잔이 백제로 통합된다. 

 

근초고왕이 초고왕의 대를 잇는 다는 명목으로 근초고왕이라 김부식은 기록한다. 

근초고왕은 부여족 해씨이고 초고왕은 부여족 여씨이다.

 

우씨인 고이왕은 대방에서 나라를 세웠다. 


그러던 중 249년경 삼한의 진(眞)씨에 의해 가야는 삼한의 세력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은 임나가라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광개토왕 비문에 쓰여있는 <왜>이다.

 

광개토왕은 근초고왕계의 백제를 백잔이라 불렀다.

 

당시 임나가라의 세력이 백잔보다는 월등히 앞선 상태이고, 

<임나가라>의 <왜>는 가야뿐 아니라 신라까지 신민으로 삼았었다. 후에 백잔까지 신민으로 삼았다.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조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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