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별집(栗谷別集)》의 정오(訂誤) - 송자대전 제130권

2017. 2. 16. 16:05경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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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별집(栗谷別集)》의 정오(訂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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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답(太極問答)》을 주자(朱子) 문하(門下)옹계록(翁季錄)》에 모방함

   주자의 《옹계록》의 옹(翁)은 《옹록(翁錄)》, 계(季)는 《이계찰록(李季札錄)》으로서 《태극문답》과는 상관이 없다. 정자(程子)의 유집(遺集)이 구산(龜山 양시(楊時)의 호로 정자의 문인이었음)으로부터 나와 연평(延平 이동(李侗). 주자의 스승이었음)에게 전해졌는데, 중간에 유찰원(游察院)의 글이 섞여 들어갔다. 연평은 이에 대해 이 책의 전승 시원(始源)이 분명한데도 이런 잘못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 일은 오히려 모방할 만하다. ‘자근(玆謹)’ 이하는 삭제하는 것이 어떨는지 모르겠다.

김자장록(金子張錄)

정자(程子)나 주자(朱子)의 어록(語錄)은 그 기록된 문인(門人)들을 모두 이름을 쓰고 자(字)를 쓰지 않았다. 이것에 준거해서 이제 다 고쳐야 할 것이다. 아래도 같다.

김희원록(金希元錄)

《주자어류(朱子語類)》에는 모두 이름을 썼고, 정자(程子) 문하에서는 혹 자(字)를 쓴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여러 문인이 정자의 말을 기록할 때에 자기들끼리 서로 부른 명칭이니, 이는 주자의 서문(序文)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이 두 문하의 예를 따라 이름을 쓰는 것은 되지만, 바로 자를 쓰는 것은 후학(後學)이 선현(先賢)을 받드는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태극문답》의 주(註)에서 신재(愼齋 김집(金集))의 경우는 시호를 쓰고 있으니 더욱 부당하다. 대체로 이 글은 후학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문원공(文元公 문원은 김장생(金長生)의 시호)이라고 쓰는 것이 타당할 듯하나, 어떨는지 모르겠다.

태극문답(太極問答)》

   이것은 형이상적인 것을 탐구해 가는 큰 근원으로서 공자로부터 주자에 이르기까지 논설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어서 더 이상 부족할 것이 없다. 그래서 비록 뒷사람이 다시 의논하여 십분 결함이 없게 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옛말을 다시 엮는 격이 되어서 중복되는 현상만 빚고 말 것이다. 그런데 더구나 이 편에서 말한 것은 처음에는 비록 발명한 것은 없었으나, 그런대로 틀린 것은 없었는데, 중반(中半) 이후의 부분은 이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 문리(文理)가 역시 막히고 불분명하여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곳이 있다. 그윽이 생각건대 노선생(율곡 선생)께서는 원류(源流)를 보시는 것이 통투(通透)하고 쇄락(灑落)하여 그 문장이 도의 묘(妙)를 발명하는 데 가장 뛰어났으니, 결코 이같이 병폐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것을 논한다면 정자와 주자의 논설이 매우 잘 갖추어지고 지극하게 분명하여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논한 것은 분명하지도 않고 갖추어지지도 않아서 그것으로 가르침을 삼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 적지 않을까 염려된다. 바라건대 정밀하게 살피고 잘 선택하여 만일 전체를 산삭(刪削)하지 않으려면 그중에서 가장 정밀한 것만을 가려서 그대로 두고 제목 아래다 주석하기를 ‘김 문경공(金文敬公 문경은 김집(金集)의 시호)은 이것은 송구봉(宋龜峯 송익필(宋翼弼))의 저술이라 하였으나, 이경림(李景臨 이이(李珥) 서자(庶子))은 역시 율곡 선생의 저술이라 하므로, 우선 여기에 이렇게 기록하여 두고 뒷사람의 결정을 기다린다.’고 하면 될 것이다.

[] 남헌 장씨(南軒張氏 장식(張栻))가 말하기를 ‘태극의 체(體)는 지정(至靜)하다.’고 하였으니, 태극의 체는 과연 정(靜)한 것인가? 지정(至靜)하다는 것을, 이발(已發)의 용(用)을 가리킨다면 어떠하며, 미발(未發)의 체(體)를 가리킨다면 어떠한가? 또 이발과 미발을 겸해서 말한다면 또한 어떠한가?
이 물음은 매우 의심스럽다. 이것은 소자(邵子)의 말과 같이 마음을 태극이라고 한 연후에 이발(已發)ㆍ미발(未發)을 논한다면 옳지만 이제 태극을 가지고 곧장 이발ㆍ미발을 논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천도가 계속되는 것이 선이다.[繼之者善]’한 것은 이른바, 성이 선하다[性善]는 것인데 ‘그를 이루는 것이 성이다.[成之者性]’는 데에 이르러서 바야흐로 기질(氣質)의 선악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선악을 나눌 수가 없는 것인가?
[] 성(性)이라고 이른다면 선악을 나눌 수가 없다.
‘성이라고 이른다면 선악을 나눌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의심스럽다. 공자가 말하기를 ‘성은 서로 가깝다.[性相近]’ 하였고, 정자는 말하기를 ‘악한 것도 역시 성(性)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다 무엇을 말한 것인가? 맹자는 오로지 선(善)의 일변(一邊)만을 말하였기 때문에 주자가, 그 정밀함이 오히려 정자만 못하다고 한 것이다.

[] 사람은 천지(天地)의 바른 기(氣)를 받았고, 물(物)은 그 편벽되고 막힌 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닭은 새벽을 알릴 줄 알고, 개는 낯선 사람에게 짖을 줄 알고, 소는 무거운 짐을 질 줄 알고, 말은 먼 데를 달릴 줄 알아 각기 제 일을 능히 해 내는데, 사람은 도리어 물(物)만 못해서 타고난 여건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여 자식은 효도하는 자가 적고, 신하는 충성하는 자가 적으니, 어째서인가? 신령스럽다고 이르는 사람이 도리어 꽉 막힌 물(物)만 못한 것인가?
[] 물(物)이 꽉 막힌 기품으로 천부(天賦)를 다 해 내는 것은 마음이 허령(虛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벌레만이 천부의 기능을 능히 한다.’ 하였다. 사람은 기질을 변화시킬 줄 알아서 불초(不肖)한 사람이 성현으로 되는 것도 역시 통(通)하였기 때문이고, 사람이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남의 치질을 핥고 부스럼을 빨다가 마침내는 아비와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등 금수도 하지 않는 일을 행하는 것도 역시 통하였기 때문이니, 두렵지 않은가.
이 대답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것들로 본다면 결코 선생의 저작(著作)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다만 우계(牛溪)가 인용한 선생의 벌레 소리에 대한 설[蟲聲說]을 살펴보면 그 쇄락하고 통투한 것이 이것과는 같지 않다.

[] ‘성인이 중정인의(中正仁義)로 정(定)하였다.’고 하니, 그 정(定) 자는 ‘자정(自定)’의 뜻인가, 아니면 ‘천하를 정(定)한다.’는 정(定)의 뜻인가? 정(靜)ㆍ경(敬)과 같은 뜻인가, 아니면 각기 다른 것인가?
[] 정(定)했다고 함은 그것이 인극(人極)을 세운 것이니, 즉 만사(萬事)를 정해서 인극을 세운 것이다. 도표(圖表)에서 동정(動靜)으로 말했기 때문에 정(靜)이라고 말하였지만, 정(靜) 자는 경(敬) 자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주자가 남헌(南軒)에게 보낸 ‘여러 설에 대하여 으레 허여를 받았다.[諸說例蒙印可]’로 시작된 답서(答書)에서 논한 것으로 본다면, 거기에서 논한 경(敬)과 정(靜)의 차이는 대단히 월등하다. 그런데 노선생이 혹 주자의 그 편지를 보지 못하여 이렇게 말한 것인가?

[]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정(靜)으로 성(性)을 말하는 것은 되지만 정으로 천지의 묘(妙)를 형용하는 것은 안 된다.’ 하였다.
악기에서는 다만 ‘사람이 나서 정(靜)한 것은 하늘의 성(性)이다.’는 것을 말한 것인데, 이제 정으로 성을 말한 것[以靜言性]을 가지고 곧장 악기의 말이라 한 것은 그 실상이 아니다.

[] 부자(夫子)가 말하기를 ‘지(智)한 자는 동(動)하고 인(仁)한 자는 정(靜)한다.’ 하였는데, 주자(周子)가 이를 뒤집어서 지(智)를 정(靜)이라 하고, 인(仁)을 동(動)이라 한 것은 어째서인가?
[] 지(智)는 음(陰)에 속하니 이것이 바로 정(靜)이요, 인(仁)은 양(陽)에 속하니 이것이 바로 동(動)이므로, 주자(周子)는 음양을 주로 하여 말한 때문이다. 인은 또 안정(安靜)한 것이요, 지는 또 운용(運用)하는 것이니, 부자의 말은 각각 가리킴이 따로 있는 것이다. 또 주자(朱子)는, 인(仁)과 지(智)와 체(體)는 다 정(靜)하고 용(用)은 동(動)한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혹시 베껴쓰는 데 있어 잘못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덕(四德)은 모두가 체는 정하고 용은 동하는 것이다.
사덕을 총괄하여 말한다면, 인(仁)과 예(禮)는 양(陽)에 속하여 용(用)이 되고, 의(義)와 지(智)는 음(陰)에 속하여 체(體)가 되며, 이를 나누어 말한다면, 인ㆍ의ㆍ예ㆍ지가 각각 제 스스로 체와 용이 있으니, 상세한 것은 주자의 옥산강의(玉山講義)에 나타나 있다.

[] 만물의 끝과 만물의 시초가 간(艮)보다 성(盛)한 것은 없으니 간(艮)은 그친다[止]는 것이요, 그친다는 것은 바로 생식(生息 생겨나고 없어지고 함)의 뜻이다.
‘그친다는 것은 바로 생식의 뜻이다.’는 의(意) 자는 옳지 않으니, 만약 근(根) 자로 고치면 조금 나을 것이다.

[] ‘이루는 것이 성이다.[成之者性]’ 한 데 이른 연후에 기질(氣質)이 각기 다르다고 하면, 선악이 나뉘는 것은 마땅히 여기에 있을 것인데, 주자(周子)가 도리어 오성(五性)이 감동(感動)하는 곳에 이르러 선악을 나누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 성(性)은 선악이 없고 순선(純善)할 뿐이다. 정(情)이 동한 곳에 이르러 곧 선악으로 나누어지니, 여기에서 기질의 성(性)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명해서 부여해 준 시초를 논한다면 기질의 선악이 있고, 심성(心性)이 발용(發用)하는 시초를 논한다면 정의(情意)의 선악이 있는 것인데, 이제 합해서 논한 것은 선유(先儒)의 뜻을 잃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 부모의 기운을 받아서 태(胎) 속에 있을 때는 바로 ‘잇는 것이 선이다.[繼之者善]’는 데에 해당하고, 이미 태어나서 스스로 하나의 물(物)을 이루는 데 미쳐서는 바로 ‘이루는 것이 성이다.[成之者性]’는 데에 해당한다.
부모의 기운을 받아서 태 속에 있으면 그것은 성(性)을 이루는 곳인데 어찌해서 ‘잇는 것이 선이다.[繼之者善]’에 해당한다고 이르는가? 잇는다는 것은 오로지 음양이 묘합(妙合)하여 유행(流行)하는 곳을 말한 것이다.

[] 태극은 그것이 형체를 감춘 사물로서 이미 방향과 처소가 없고 또 그림자도 소리도 없는 것인데, 선유(先儒)가 이를 꼬집어 내서 그림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 사물이 없던 때에 있는 것이지만 사물이 있은 뒤에는 있지 않은 적이 없고, 음양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양 속에서도 운행하고 있어, 밝게 나타난 것이 이보다 더할 것이 없는데, 어찌해서 알지 못할 것인가.
묻는 자는 그림 만든 것을 제목으로 삼았는데, 대답하는 자는 ‘어찌해서 알지 못할 것인가.’라고만 말하였으니, 묻고 대답하는 것이 서로 관련되지 않는다.

[] 생겨 나오는[生出] 처음을 가지고 따지면 태극이 음양을 낳은 것이지만, 현재의 단서(端緖)를 보면 음양이 태극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현재의 단서를 보면’이라는 말은 뜻이 명석하지 못하니 ‘이미 생겨난 뒤를 보면[觀其旣生之後]’으로 고치면 조금 낫겠다.

[] 편벽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은 중(中)은 태극과 같은 하나의 이치인데, 선유(先儒)가 논하기를 ‘중을 극(極)이라 읽는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은 어찌해서인가?
[] 가리킨 것이 각기 다르다. 중은 과불급(過不及)이 없다는 뜻이요, 극은 더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대답은 전혀 설문(設問)한 뜻을 잃은 것이다. 대개 극(極)을 중(中)이라 한 것은 대범하게 말한 것으로, 극이라는 것은 항상 그 물건 가운데 있는 것이다. 즉 옥극(屋極)의 극은 옥(屋)의 가운데에 있고 북극(北極)의 극은 하늘의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요, 중을 극이라고 읽은 것은 아니다. ‘선유가 중을 극이라고 읽는 것을 그르다고 했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함이니, 상세한 것은 주자가 육상산(陸象山)에게 답한 편지와 황극변(皇極辨)에 매우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 《주역》에 이르기를 ‘한 음(陰)과 한 양(陽)을 도(道)라고 한다.’ 하였는데 소자(邵子)는 말하기를 ‘도가 태극이다.’ 하였고, 주자는 말하기를 ‘마음은 음양과 같다.’ 하였는데 소자는 또 말하기를 ‘마음이 태극이다.’ 하였다. 소자가 그 말을 달리한 것은 어찌해서인가?
[] 도는 유행하는 것이므로 소자가 ‘도가 태극이다.’고 한 것은 유행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마음은 만물이 통회(統會)하는 곳이므로 소자가 ‘마음이 태극이다.’고 한 것은 통회하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주역》의 ‘한 음과 한 양을 도라고 이른다.’는 것은 바로 ‘한 음과 양이 되게 하는 것이 도이다.’는 것이다. 주자가 마음을 음양과 같다고 한 것은 그가 이미 성(性)은 태극과 같다고 한 때문이다. 만 가지 이치가 다 한 근원에서 나왔으므로 통회(統會)라 하고, 만물(萬物)이 각기 한 이치를 갖추었으므로 유행(流行)이라 한 것이니, 강절(康節)의 말이 어찌 다를 것이 있겠는가. 도(道)는 그것이 태극이요, 심(心)과 성(性)은 두 물건이 아닌데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이미 말하기를[旣曰]’ 이하는 말이 짧아서 알기 어려우므로 ‘대개 성은 태극과 같고 심은 태극을 함유(涵有)해서 동정(動靜)이 있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로 고치고 싶고 ‘만물이 각기 한 이치를 갖추었으므로 유행이라 한다.’는 것도 역시 거꾸로 말한 것이니, 대개 한 기운이 유행해서 만물을 이룬 연후에야 만물이 각기 한 가지 이치를 갖춘 것이다.

[] 주자가 말하기를 ‘정(靜)이라는 것은 성(性)을 세우는 것이고, 동(動)이라는 것은 명(命)이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도 역시 동이 쉬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일동(一動)ㆍ일정(一靜)이 다 명(命)이 행하는 것인데, 동정(動靜)에 행하는 것이 곧 성(性)의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고 한 것이다.’ 했다. 동하고 정하는 것은 천리(天理)인데, 주자는 동정을 다 동에 소속시키고 도리어 정을 뺀 것은 무슨 뜻인가? 그런데 정자는 ‘동(動)하는 것도 정(定)이요, 정(靜)한 것도 역시 정(定)이다.’ 하였고, 주자(周子)는 정(靜)만을 주장하여 모두가 또 동을 빼 버렸으니, 그것은 무슨 뜻인가?
[] 태극에 동정이 있는 것은 천명(天命)의 유행이니, 그 정(靜)하는 것도 역시 명(命)이 행하는 것이므로 이는 천명을 주로 하여 말한 것이요, 성인이 동정(動靜)의 덕을 합하는 데 있어 항상 정(靜)에 근본하는 것은 수도(修道)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다.
주자가 동정을 다 동에 소속시켰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가.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정자가 이미 ‘동하는 것도 정(定)이요, 정한 것도 정(定)이다.’ 하였다면 어찌해서 동을 뺐다고 말하는가? ‘주자(周子)가 정(靜)을 주장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주자(朱子)는 정의(正義)를 정(靜)에 소속시키고 중인(中仁)을 동에 소속시키고서 정을 동의 근본으로 삼았는데, 어찌해서 동을 뺐다고 말하는가? 대강만 문리(文理)를 아는 자라도 반드시 그런 질문은 하지 않을 것인데, 참으로 괴이하다. ‘수도(修道)를 주로 하여 말한 것이다.’는 말은 매우 불분명하여 밝히기 어렵다.

[] 무릇 형상(形象)이 있어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은 기(氣) 아닌 것이 없는데 그처럼 광대하고 드러난 것은 도리어 작다 하고, 소리도 냄새도 없어서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은 이(理)인데 그처럼 미묘(微妙)한 것을 도리어 크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 기는 한량이 있고 이는 한량이 없는 까닭이다.
이와 기는 한번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니, 작으면 함께 작고 크면 함께 큰 것인데, 이 작고 크다는 글자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천지가 이미 한량이 없는데, 또 ‘대기(大氣)로 말하면 기도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하였으나, 기가 한량없는 것은 역시 이가 한량없기 때문이다.

[]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이(理)는 적고 수화금목토(水火金木土)의 기(氣)는 성한 것이다.
‘도심(道心)은 오직 적다.’고 하는 것은 옳지만 인의예지가 적다고 이르는 것은 옳지 않다. 《서경(書經)》에 이른바 ‘하늘의 밝은 도[天顯]’라는 것은 무엇인가?

[] 천지 조화의 묘(妙)로 말하면, 천(天)은 일(一)로써 물[水]을 생(生)하고 지(地)는 이(二)로써 불[火]를 생하며, 천은 삼(三)으로써 목(木)을 생하고, 지는 사(四)로써 금(金)을 생한다. 사람의 일신(一身)에 있어서도 역시 처음에 신수(腎水)를 생하고, 또 심화(心火)를 생하며, 수(水)가 또 간(肝)을 생하고, 목화토(木火土)가 또 폐금(肺金)을 생하니, 부모가 곧 천지인 것이다.
사람이 생(生)을 받는 데 있어 수의 기(氣)는 신(腎)이 되고, 화의 기는 심(心)이 되고, 목의 기는 간(肝)이 되고, 금의 기는 폐(肺)가 되고, 토의 기는 위(胃)가 된다. 그런데 지금 말하기를 ‘수가 또 간을 생하고 목화토가 또 폐금을 생한다.’ 하였으니, 이는 옳지 않은 말이다.

[] 진기수(陳幾叟 진연(陳淵))의 ‘달이 수많은 내에 비추매 곳곳이 다 둥글다.’는 비유와 북계 진씨(北溪陳氏 진순(陳淳)을 가리킴)의 ‘하나의 큰 수은(水銀) 덩이가 흩어져서 만만 개의 작은 덩어리가 되었는데, 낱낱이 다 둥글다.’는 비유에 있어서, 만이다, 하나다 한 데 있어 어느 것이 이(理)가 되고 어느 것이 기(氣)가 되는가?
[] 만이 되고 하나가 되는 것은 기요, 만이 되게 하고 하나가 되게 하여 둥글고 흠이 없게 한 그것이 이이다. 기로 본다면 비록 크고 작고 떨어지고 합해지는 구별이 있으나, 이로 본다면 모두 손익(損益)과 영축(盈縮)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달이 수많은 내에 비춘다.’는 것과 ‘수은이 흩어져 만만 개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한 근본이 만 가지로 갈라지는 이(理)를 비유한 것으로, 이것은 일종의 가설인데, 이제 대답한 말은 참으로 기(氣)가 달과 수은이 된 것이라 하고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이 이(理)라고 하였으니, 이는 본설(本說)의 뜻과는 크게 서로 어긋난다.

[] 도표(圖表)에 예(禮)와 지(智)를 중(中)ㆍ정(正)으로 바꾼 것은 무슨 뜻이며,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말하지 않고 도리어 예지인의(禮智仁義)라고 한 것은 또 무슨 뜻인가?
도표에는 다만 수화(水火)라고 말하였는데, 지금 예지라고 말하여 참으로 예지 두 글자가 있는 것같이 하였으니 온당치 못한 것 같다.

이 문답들은 첫머리에는 그래도 볼 만한 것이 있더니, 중반(中半) 이후에 이르러서는 도리에 어긋난 말들이 매우 많다. 율곡의 말만 이와 같지 않을 뿐 아니라, 구봉(龜峯)의 학문도 이와 같이 잡되지는 않으니, 이 한 편(篇)을 진실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박순경(朴舜卿)이 묻기를 ‘주자가 「충신(忠信)으로 수사(修辭)하는 것은 시종(始終)을 통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하자, 답하기를 ‘수사(修辭)라 함은 언사(言辭)를 수성(修省)하는 것인데 충신으로 수사하는 것은 성인이나 배우는 자나 다 통행(通行)할 수 있는 것이므로 「시종을 통해서 말한다.」고 한 것이다.’ 하였다.
소위 시종이라고 한 것은 성인이나 배우는 자가 행할 수 있다고 해서 한 말이 아니니, 이 말은 의심스럽다.

자기의 사욕만 이겨버리면[克己] 천리(天理)가 자연히 밝아지고 선(善)의 단서가 자연히 충족되어 넓어질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다만 자기의 사욕을 이겨버려서 인(仁)이 된다면, 공자가 의당 「사욕을 이기는 것이 인이다.[克己爲仁]」고 하였을 것인데 하필 「예에 회복한다[復禮]」고 말하였겠는가?’ 하였으니, 여기에 의거한다면 이 대답은 안 맞는 것 같다.

무릇 악(惡)이 되는 것은 별다른 일이 아니고, 다만 그 과(過)와 불급(不及)일 뿐이다.
과와 불급으로 인해서 악으로 흐르게 된다고 하면 옳지만, 바로 과와 불급을 악이라고 함은 안 맞는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사(師)는 과하고 상(商)은 불급하다.’ 하였으니, 어찌 상(商)과 사(師)를 곧 악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소인이 악을 행하는 것은, 오늘 무슨 일을 했다가 그 이튿날 즉시 바꾸고, 명일에 또 어떤 일을 했다가 그 이튿날 또 다른 데로 향해 가되, 오직 이(利)만을 좇고 결단해서 앞으로 곧게 나아가는 뜻이 없기 때문에 종내 지(志)라고 이를 수 없다.
‘소인이 악을 행하다.[小人之爲惡]’ 이하는 적당하지 못한 것 같다. 소인은 영화를 위해 남의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는 일에서부터 아버지나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데 이르기까지 어찌 결단하여 앞으로 곧장 나아가는 뜻이 없겠는가. 이런 곳은 기록의 잘못인가 여겨진다.

《사계어록(沙溪語錄)》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계 선생이 일찍이 퇴계의 축첩(蓄妾)과 회재(晦齋 이언적(李彦廸))의 을사년의 일을 물으면서 ‘회재와 퇴계가 똑같이 과실이 있는데, 선생께서는 유독 회재만 나무라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하고 물은 데 대하여 선생은 한참 있다가 대답하기를 ‘사람을 보는 방도는 마땅히 성덕(成德)하기 이전과 이후를 나누어서 보아야 하는데, 퇴계의 잘못은 젊었을 때의 일이고, 회재는 늘그막에 이런 실수가 있었으니, 구별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조항은 분란(紛亂)을 일으킬 것 같으니, 삭제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의례문해(疑禮問解)》에 의하면 율곡(栗谷)이 말하기를 ‘제예(祭禰 아버지 사당에 제사 지내는 것)는 풍우녜(豊于昵 아버지 사당에 제사를 풍부하게 지냄)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 조항은 마땅히 삭제해야 한다.

《장빈자호찬(長貧子胡撰)》에 이렇게 나와 있다. 내가 일찍이 우계정사(牛溪精舍)에 있었는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인한거장(小人閒居章)의 「그 폐간(肺肝)을 보듯 한다.」는 말을 율곡공(栗谷公)이 그대에게 무엇이라고 가르치던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였다.
이것도 《주자어류》에 분명한 말이 없으니, 이 조항도 마땅히 삭제해야 할 것 같다.

《부계기문(涪溪記聞)》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율곡이 처음 생원(生員)으로 반궁(泮宮 성균관과 문묘를 총괄한 별칭)에 와서 선성(先聖 공자를 가리킴)을 배알(拜謁)할 때에 통례(通禮) 민복(閔輻)이 장령(掌令)이 되어 율곡은 중[僧]이었기에 응시(應試)를 허락할 수 없다고 헐뜯었는데, 저녁 늦게 방(榜)이 나왔는바 율곡이 합격되었으므로 모두 실색하였다. 그러나 율곡은 표정이 태연 자약하여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을해년, 채진후(蔡振後)의 상소 중에 율곡을 헐뜯은 부분이 실로 여기에서 근거하였으니, 이 조항도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 있는 말들은 선생이 스스로 변명한 상소문과 내용이 어긋나 매우 타당하지 못하다. 서모(庶母)가 좋지 않았다는 설의 경우로 말하면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서모에 거역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이 때문에 입산(入山)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니, 이 조항도 삭제하지 않을 수 없다.

《만퇴유사(晩退遺事)》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율곡이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편지로 말하기를 ‘구봉(龜峯)이 와서 신응구(申應榘)를 헐뜯으므로 나는 그를 눈여겨 쳐다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였다.
소위 ‘어떤 사람’이란 누군지 모르겠다. ‘눈여겨 쳐다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율곡의 기상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이란 누군지 자세히 알고 싶다.

《노서기문(魯西記聞)》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선생이 비복(婢僕)과 말할 때는 일마다 극진히 타일러서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우계(牛溪)가 일찍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숙헌(叔獻)은 어찌하여 말이 이와 같이 많은가?’ 하니, 선생이 그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고봉가장(高峯家狀)》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선생이 일찍이 당시의 인재를 논하면서 ‘이숙헌(李叔獻)은 선뜻 일을 좋아하니 혼자서 일을 맡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였다.
이 조항도 마땅히 삭제해야 한다.

《우계언행록(牛溪言行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선생이 입성(入城)하는 날에 마침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현호지회(懸弧之會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계단에 이르러 기생이 나열해 있는 것을 보고는 주인에게 말하기를 ‘저 기생들은 오늘 연회에는 맞지 않는 것 같소.’ 하니, 율곡이 웃으며 말하기를 ‘검은 물을 들이려 해도 검어지지 않는 것도 역시 한 가지 도(道)일세.’ 하자, 선생이 마침내 자리에 올라가 앉았다.
이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조면주(曺冕周)의 기록
이것도 기옹(畸翁 정홍명(鄭弘溟))의 기록과 조목마다 같으므로 또한 마땅히 삭제해야 한다.

허봉(許篈)이 기록한 율곡의 빈접(擯接)에 관한 일 한 가지는 언문(諺文)으로 번역되어 세상에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란 김 문경공(金文敬公 문경은 김집(金集)의 시호)의 측실(側室)에 소장된 것인데, 그 측실은 실로 노선생의 서녀(庶女)이다. 문경공이 이를 직접 시열(時烈)에게 주면서 다시 한문으로 번역해서 가져오라고 하시기에 시열은 즉시 명을 받들어 돌려드렸다. 문경공이 이것은 마땅히 집에 소장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역시 보여 주실 곳에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나 내 손에서 나온 것은 한 권의 책인데, 지금 여기에 기록된 것은 매우 소략하다.


[주D-001]《의례문해(疑禮問解)》 : 인조(仁祖) 때 김장생(金長生)이 예론(禮論)을 모은 책으로 모두 4권 4책이다.
[주D-002]《장빈자호찬(長貧子胡撰)》 : 원서명은 《장빈거사호찬(長貧居士胡撰)》이다. 선조(宣祖) 때 장빈자(長貧子) 윤기헌(尹耆獻)이 엮은 수필로 1책이다.
[주D-003]소인한거장(小人閒居章) : 《대학(大學)》의 전(傳) 제6장인 성의장(誠意章)에 “소인한거……”라는 말이 나오므로 소인한거장이라 한 것이다.
[주D-004]《부계기문(涪溪記聞)》 : 인조 때의 공신 김시양(金時讓)이 함경북도 종성(鍾城)으로 귀양 갔을 때의 견문을 쓴 수필록. 부계는 종성의 이명(異名)이다. 1권 1책이다.
[주D-005]《기암잡록(畸菴雜錄)》 : 원서명은 《기옹만필(畸翁漫筆)》이다. 인조 때 사람 기암(畸菴) 정홍명(鄭弘溟)의 수필로 1책이다. 기암은 정철(鄭澈)의 아들이며 김장생의 문인이다.
[주D-006]《만퇴유사(晩退遺事)》 : 성혼(成渾)의 문인인 만퇴헌(晩退軒) 신응구(申應榘)의 문집 속의 유사이다.
[주D-007]《노서기문(魯西記聞)》 : 효종 때의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수필로 그의 문집인 《노서유고(魯西遺稿)》 속에 들어 있다.
[주D-008]《고봉가장(高峯家狀)》 : 고봉은 선조 때의 학자 기대승(奇大升)의 호이다. 그의 유고인 《고봉집(高峯集)》은 5권 5책이다.
[주D-009]율곡의 …… 일 : 1582년 율곡이 47세 때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명 나라 사신 황홍헌(黃洪憲) 일행을 맞아 접대한 일이 있다. 이때 사신들은 그가 천도책(天道策)을 지은 인물임을 알고 공경을 다했다고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권정안 (역) ┃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