呑空(탄공)스님과 開雲(개운)조사님 일화

2017. 3. 9. 04:50경전 이야기



       탄공스님과 개운조사님 일화


2017.02.14. 15:21


(펌)呑空(탄공)스님과 開雲(개운)조사님 일화


人傑(인걸)은 地靈(지령)이라. 修道(수도)도 그러하다

본인이
庚申년에 태백산에서
無雲(무운)선생으로부터
智異山에 계신다는
開雲(개운)조사님의 전설적인 법력을 전해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 때의 심정은 필설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大道人을 흠모함이 깊어 智異山을 비롯해서 여러 곳을 만행했으나
당시는
본인이 박복하여 인연이 닿지 않았던지
개운조사님의 道跡(도적)을 만나기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몇 년이 지나
道藏山(도장산) 부근에서 한 수행자를 만나게 되어
개운조사님의 道力에 대해
조금 듣게 되었습니다.
탄공선사님과 佛緣이 된 후,
庚午년에 이르러,
呑空(탄공)선사께서
開雲조사님에 대한 말씀을 조금씩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不空三藏(불공삼장)께서 번역하시고
開雲조사님께서 註解하신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도 수지하게 되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수능엄경은
밀교에 수록되어
인도의 나란타사에 秘藏(비장)하고
부처님 열반 후부터
절대로 국외에 유출되지 못하도록
당시에는 왕명으로 금한 경전입니다.

그동안 전해지고 있는 開雲조사의 행장은
모두가 놀라운 사실뿐입니다마는
開雲조사님께서 불가에 입문하라 해서
세수 50 이 훨씬 지난 늦깍이 스님이 되신 양성스님과
스님의 제자로부터 들은 얘기와
대선사님 말씀으로
본인이 알고 있는 조사님의 道跡(도적)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呑空선사께서 학가산에서 밀행중
노상에서 처음 開雲조사님을 친견했을 때 7拜(배)를 드렸더니
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佛家에 잘 입문했으니 마음 바꾸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 하시면서,
“너는 百歲上壽(백세상수)할 터이니
백살이 넘거든
辟邪書(벽사서)와 辟邪畵(벽사화)를 그려
因緣 있는 중생에게 보시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 呑空선사께서
과거 전국화공백일장(국전의 전신)에서 장원을 해서
高宗임금으로부터 수상한 사실도 아시고 계시더랍니다.
開雲조사님께서는
산속에서 藥草를 캐서 한약방에 갖다 주시고는
많던 적던
한약방 주인이 주는 대로 두말 않고 약초값을 받아서
용채로 사용하셨답니다.

몇날 며칠씩이나 禁食하시기가 일쑤이고
가끔씩 한 번 공양을 드실 때에는
보통 성인의 7~8배 가까이 되는 양을 드셨답니다.

開雲조사께서는
당시 150살이 훨씬 지났는데도
조사님의 용안이 세수 50세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답니다.

呑空선사께서 교통사고가 나서
온몸을 다치는 큰 중상을 입으시고
大田 소재 병원에서 입원을 하셨던 적이 있는데,
당시 主治醫가,
呑空선사는 노인이 턱뼈와 골반을 다쳤기 때문에,
3년 정도가 경과해야 완쾌할 수 있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呑空선사께서는 입원 며칠 만에
한밤중에 몰래 병원에서 사라져
온데간데없이 종적을 감추셨는데,
그 후 20여일 만에
淸州에 사는 보은성보살집으로
기적같이 온몸이 완쾌되어 찾아오셨더랍니다.

후일 呑空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병원에서는 치료 불가능하여 開雲조사께로 갔더니
開雲조사께서 토굴 앞 계곡물에서 18일 만에 치료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양성스님과 그 제자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
양성스님이 계신 곳으로 開雲조사께서 한 번 오셨는데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저 멀리 산 중턱에서 虛空을 타고 오시더랍니다.

문도 제자들이 재세시 뵌 바에 의하면 呑空선사님도 상상을 초월하는 도인이신데
呑空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開雲조사님은 정말 대단하셨지.
開雲조사께서 그리신 벽사서나 벽사화를 지니면
금방 죽을 사람도 최소 30년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
중생들은 모르지. 대단하신 어른이셨지.”라고 하셨습니다.

呑空선사께서
“開雲조사께서는 戊辰년 가을에 182세로
智異山에서 소나무가지를 잡은 채 선 채로 입적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사님의 유일한 도반이던 林德基(임덕기)스님과 함께
智異山에서 직접 다비해 드렸다고 하셨습니다.

開雲조사께서는,
後學중에서 淺見博識(천견박식)한 사람이
나의(개운조사의) 根由(근유)를 오해하며
경(유가심인수능엄경환해산보기)의 출처를 알지 못하고서
비방하는 마음이 생겨 보리의 인연을 놓치고
惡途(악도)에 추락될까 걱정이 되신다 하셨습니다.

위의 經인 수능엄경에 남기신 ‘開雲堂遺書(개운당유서)’를 바탕으로
간략히 행장을 소개합니다.

開雲조사는 경북 상주 개운동에서 출생하셨습니다.
부친은 金씨이고 모친은 楊(양)씨였습니다.
부모님들께서 품에 一陽(일양) 金星을 안는 胎夢을 꾸고 잉태하셨다고 합니다.
세살 때 부친을 여의시고, 다섯 살 때 모친마저 별세하셨는데,
마치 황홀한 한 장면이 꿈만 같았답니다.
어리신 조사님을 상주읍에 계시는 외삼촌이 가엽게 여겨 길러 주었는데,
일곱 살 때 외삼촌마저 별세하고,
후손이 없었으므로 피눈물을 흘리며 3년상을 치루었고
아홉 살때에는 외숙모마저 별세했습니다.
그때도 3년상을 치루었으니 그 정성이 지극한지라
이웃에서는 조사님을 양노동(楊老童:외삼촌 성이 楊씨였음)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세간의 無常(무상)함을 깨닳고는
尊張(존장)을 만날 때마다 ,
사람이 죽어서 해탈하는 방법을 물으니 ,
사람들은 오히려 조사님을 비웃었다 합니다.

어느날 어떤 스님을 만나
처음으로 싯달태자가 4門에 놀러갔다가 生老病死 4가지 현상을 보고서
출가하여 수도하였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환하게 깨달아 짐이 있어서
마음이 크게 열려 마치 새장에서 벗어난 새와 같았답니다.
그래서 초기에 제사를 마치고서는 출가하여 입산하셨답니다.

鳳岩寺(봉암사)에서 어린나이에 머리를 깍고
慧庵(혜암)조사를 추종하며 불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조사님께서 세수 13세였습니다.
일년이 못가서 조부가 입적하셨다는데
망극하게 애모하다가 無生을 頓悟(돈오)하였습니다.
그 후 6년간 幻寂唵(환적암)에 머무시다가
19세때에 스승을 찾으려고 江山을 두루 돌아다니신 후
本寺로 돌아와 幻寂唵에 스승을 만나 법문을 들으셨고,
백련암에서 煉金(연금)하여 구슬을 얻으시고
심원사에서 保妊出胎(보임출태)하고 乳汁林經(유즙임경)하셨습니다.

그 후 여가를 활용하여,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의 원고를 抄(초)했으나
연기가 아직 일러 面壁(면벽)이 가장 급하였으므로 보류하여 刊行치 않고 ,
諸龍子(제용자)로 하여금 교대하며 수호하게 하시고는 智異山 묘향대로 향하셨다 합니다.
은거하시며 密修(밀수)하여 득도하신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조사님의 용모가 仙風으로 변한 것과 일마다 기적이 많은 것을 보고는
양봉래 출현했다 하면서 사방의 이웃에서 끊임없이 내방하므로
오래도록 선정하시기가 어려워서 부득이 멀리 한적한 곳으로 떠나셨다 합니다.
떠날 무렵 원고는 經架天藏(경가천장)에다가 깊이 비장해 놓으시고
後賢을 기다리며 바위에다 몇 가지 흔적을 남기시고는
그것을 믿고 수행하게 하셨다 합니다.
불성의 도력은 법계가 다 같은 것이나
그 수증 여하에 따라 만 가지의 순차가 생기는 것이니
힘써 정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년 이후에 큰 인연을 가진 자가 이를 인쇄하여 널리 배포할 것이니
그 공덕은 不可思議한 것으로서
필경에는 모두 보리의 인과를 이룰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信.解.修.證(신.해.수.증)함이 공이고
자신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함이 덕이다.”라고 하셨습니다.

開雲조사님께서
스승을 만난 경위와 유가심인밀법과 함께 전하신 '유가심인정본수능엄경’은
유가심인의 밀법으로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징 언어로 설해진 비밀경전입니다.
본인이 그야말로 대도인이신 조사님의 행장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심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님의 遺書(유서) 중반부터는 한 字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깁니다.

..........................................................

“후세에 이 경을 봉독하는 자는
경(經)과 송(頌), 그리고 주(註)와 토(吐)에 있어서
한 자와 한 구라도 신중히 하고 고치지 말아라.
또 비방하는 요망한 무리는 반드시 신사(神司)가 벌을 내릴 것이다.
희양산 환적암은 선환화상(善幻和尙)이 입적한 곳이다.
오늘 도중에서 이 몸이 회원(回願)하니 강개(慷漑)함이 무량하다.
후세의 제현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산중에 무엇이 있던가? 고개위에 백운(白雲)이 많아라.
다만 스스로 기뻐는 할지언정,
그대에게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이니
각기 스스로 깨달아서 각기 스스로 기뻐하라.
내가 스승을 만나 법문을 듣고서
수능엄삼매의 실천공적을 수련한 것을 대강 보여주어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고 수행하게 하고자 한다.
그래서 죄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기(玄機)를 누설하는 것인데
믿지 않고 수행치 않음은 그대들의 허물이다.
10여년동안 풍우에 젖어 있다가
홀연히 고덕(古德)의
「공연히 쇠신만 닳게 하면서 동.서로 분주하게 다니네」 라는 글귀에 감동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환적암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나이 30이었다.
스승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침식까지 잊었다가
경배하는 기원이 잠시도 해이한 적이 없었는데
미색이 앞에 나타나거나,
천락(天樂)이 귀에 들리기도 하며,
맹호가 뒤따라오거나 큰 뱀이 몸을 휘감기도 하며,
황금과 비단이 방에 가득하거나
도적이 문을 부수기도 하며,
그 밖에 기쁘고, 두렵고, 믿음이 가고, 의심이 가는 등의 마사(魔事)들도 있으나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도 동심(動心)하지 않고
정직만을 고수(固守)하면서 계(戒) 정(定)을 성실하게 수련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1년 남짓하였을 적에
어떤 미친 듯한 중이 비틀걸음으로 들어오는데
신체는 수척하고 의복이 남루한데다
온 몸에 짓무른 부스럼이 나서 그 냄새가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공경히 맞이하여 성심껏 시봉하였는데,
꾸짖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였으며, 희롱도 하고 자비롭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한달 남짓하면서
역시 동심하지 않고 정직만을 고수하며
배나 더 공경할 뿐이고 한번도 의심하지 아니하였더니
어느 날 밤에 불러서 말하기를 ,
“너는 무심(無心)한 사람이구나.
꾸짖어도 괴로워하지 않으며, 때려도 성내지 않고
희롱해도 싫어하지 않으며, 자비를 베풀어도 기뻐하지 아니하니
마음을 항복 받았다 할 수 있는데
반드시 득도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불타 앞에서 축원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하므로
눈물을 흘리며 공경히 절하고 말하기를,
“지극한 소원은 참다운 스승을 만나 불법을 듣는 것이고
그 밖에는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말하기를,
“내가 너의 스승이 되면 어떻겠는가?”하였다.
나는 곧 슬픔과 기쁨의 감회가 함께 일어나 100배하며 애걸하였더니 말하기를,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인것과 마찬가지로 수도(修道)도 그러한 것이다.” 하고
나를 데리고 희양산에 올라갔는데
달이 낮처럼 밝고 안계(眼界)가 쾌활하게 전개되었다.
큰 반석위에 정사(精舍)가 저절로 세워지고
음식이 제때에 마련되었다.
나는 이러함을 보고서 신심이 100배나 솟구쳤다.
사자(師資:스님과 상좌)가 삼보(三寶)앞을 향하여 공경히 예배하고서
큰 참회와 깊은 맹서를 한 다음에 말하기를,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도를 함은 마음을 항복받는 것으로
시작과 끝마무리의 절요(切要)함을 삼는다.
학자(學者)가 만에 하나도 성도(成道)하지 못함은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 아만(我慢)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그리고 다시 설법한 다음에 토굴로 들어가게 하였는데,
7일만에 건혜지루진통(乾慧地漏盡通)의 인(因)을 증득(證得)하니,
우리 선사(禪師)가
「정본수능엄경」과 「유가심인록」을 나에게 부탁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보현존사(普賢尊師)에게 구결(口訣)로 받은 신.해. 수. 증(信 解 修 證)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진중(珍重)하게 받들어 간수하라.”
하므로 공경하게 배수(拜受)하였는데
또다시 대승(大乘)의 묘결(妙訣)을 구두로 전해주므로
이를 하나하나 터득하고 깨달았다.
수수(授受)하기를 마친 다음에 공경히 100배하고 삼보앞에 사은하니
우리 선사가 손을 잡고 고별한 다음 허공으로 날아가므로
공경히 100배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전송하고 돌아보니 정사가 없어졌다.
미증유(未曾有)의 일임을 감탄하고 백련암으로 내려와서
100일만에 10신(信)의 수다원 누진통의 과를 증득하고
그리고 7일 만에 초주분정도태(初住分定道胎)의 인을 증득하고서 도장산에 들어갔다.
어째서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 수도의 절요함이 되는가 하면,
성품이 움직이면 마음인데 그 이름이 ‘마음심(魔音心)’이고
마음이 안정하면 성품인데 그 이름이 ‘성품성(聖品性)’이다.
그래서 성품을 따르는 자는 성인(聖人)이 되고,
마음을 따르는 자는 마(魔)가 되는데
마와 성은 두 종류가 아니라
자신이 지은 것을 자신이 도로 받는 것이다.
후학은 이를 알아야 한다.
마음을 항복받은 다음에라야 수도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는 것처럼
사람이 마음을 항복받으면 도기(道器)가 되고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면 도기가 못된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불타가 마음 항복받는 것을 먼저 제시한 것이다.
인연이 있는 제현(諸賢)이 이 경을 읽고 불법을 깨달아서
전일(專一)하게 정진하면 보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니 ,
이는 내가 고심(苦心)하여 스승을 구하고 도를 깨닳은 본원(本願)이다.
51세가 되는 경자년 8월 3경일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여 뒤에다 덧붙인다.

송(頌)
손으로 동천(洞天)이란 글자를 쓰고
손톱으로 ‘한좌(閑坐)’라는 글귀를 새기니
돌이 물렁한 흙처럼 부드러워서
나의 현명(顯名)을 받아드리네
맑은물 흐르는 반석(磐石)위에
용자(龍子)를 놀게 했노라
나의 조그마한 희적(戱跡)도
천추만추(千秋晩秋)에 전할 수 있는데
더구나 간경(看經)의 공덕(功德)이랴!
복해(福海)는 한이 없다네.
수학(修學)하는 제현(諸賢)들은
사생(死生)에 벗어나리.

위대하여라. 이 경의 공덕은 일컫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사의할 수도 없는 것이니라

자광(慈光)이 변만하여 험로를 비추며
혜검(慧劍)이 주류(周流)하며 죄근(罪根)을 끊네.
공경하고 공경하라.
초심으로서 천박한 무리는 이 사람의 말을 자세히 들어라.
대장부가 진결(眞訣)을 만나면
모름지기 그 뜻을 지키고 영원히 물러서지 말지어다.
..................................................

이상이 조사님의 유서의 끝입니다.
탄공선사께서는
불법의 密旨(밀지)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본존불로 하여
비밀한 법을 보현보살께서 친히 들으시고
남천축의 철탑 속에 모신 것을
용수보살께서 꺼내어
불교의 밀법을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중한 밀법이
開雲조사님으로부터
‘무주상보시의 보리’를 근본으로 한 선법맥을 이어 받으신 呑空선사님에 의해서
세상에 法身을 드러내었음.



blog.naver.com/k465477/22093510558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