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타락죽과 수유치

2017. 3. 25. 04:09건강 이야기



[황광해의 역사속 한식] 타락죽과 수유치

동아일보

입력 2015-10-20 03:00:00 수정 2015-10-20 04:02:24



    타락죽. 동아일보DB


    황광해 음식평론가

       조선시대에도 버터, 치즈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의 기록에 ‘수유치(酥油赤)’가 등장한다. ‘수유’는 버터 혹은 치즈다. ‘치(赤)’는 몽골식 표현이다. 장사치, 벼슬아치의 ‘치’다. ‘수유치’는 버터, 치즈 등을 만드는 사람이다. 수유치가 등장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병역 문제 때문이었다.  

    세종 3년에는 상왕(上王) 태종이 국방 외교 병권 등을 쥐고 있었다. 수유치는 ‘상왕 태종의 어전회의’에서 거론된다. 당시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 수유치 거주 마을이 있었다. 기록에는 ‘스스로 달단(달(단,달))의 유종(遺種)이라 하면서 도재(屠宰)로써 직업을 삼고 있었다’라고 했다. ‘달단’은 ‘타르타르(Tartar)’ 혹은 ‘타타르(Tatar)’로 몽골 혹은 몽골인이다. 북방 유목민족으로 고기, 우유를 다루는 데 능했다. 변방에 머물면서 도축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시쳇말로 ‘공익요원’으로 군역 등 부역을 면제받고 있었다. 그러나 ‘수유는 실로 얻기 어려우므로 혹은 한 호(戶)에서 몇 해를 지나도 한 정(丁)을 바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몇 호에서 공동으로 한 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게 되니’ 문제가 되었다. 더하여 멀쩡한 조선의 장정들까지 이 부락에 숨어들어 병역을 면제받았다. ‘서흥군에는 한 집에 건장한 남자 21명이 있었다’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병역 문제는 늘 골칫거리다.

    태종이 수유치 마을에 살고 있는 ‘병역 이탈자’를 찾아내 군역을 부과하라고 한다. 참의 윤회가 반대한다. ‘수유는 어용(御用)의 약(藥)에 소용되며 또 때때로 늙어 병든 여러 신하들에게 내리기도 하니 이를 폐지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수유는 국왕과 노신들의 보양식이었다. 태종은 한마디로 이 부분을 정리한다. ‘그대의 알 바가 아니다.’ 결국 수백 호의 수유치 집들이 폐지됐다.

    고려시대 기록에도 수유는 나타난다. ‘고려사’ 충렬왕 27년(1301년) 기록에 ‘병인 초하루에 사재 윤정량(司宰 尹鄭良)을 원에 보내 수유를 바쳤다’는 내용이 있다. 원나라에 수유를 조공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우유, 유제품 등이 있었지만 쇠고기, 우유, 유제품 등은 고려 후기 몽골의 한반도 침략을 통해 전래, 확산됐다. 고려 왕실은 우유소(牛乳所)를 통해 우유, 유제품 등을 관리했다. 우유소는 지금의 서울 대학로 부근의 낙산에 목장을 만들고 소를 길렀다. 젖소가 없던 시절이니 새끼 딸린 암소를 데려다 우유를 얻었다. 낙산의 소목장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우유 혹은 유제품을 유(油 혹은 乳), 낙(酪), 타락(駝酪), 수유(酥油), 유락(乳酪) 등으로 표기했고 우유, 요구르트, 타락죽, 버터, 치즈 등이 포함됐다. 우유와 유제품은 고위층 반가에서도 사용했다. 명종 20년(1565년) 명종의 생모인 문정왕후가 죽었다. 문정왕후 윤 씨의 남동생인 영의정 윤원형도 실각했다. 평소 윤원형은 각종 비리 악행으로 악명이 높았다. 탄핵안이 바로 터져 나왔다. 탄핵 내용 중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타락죽 남용죄’다. 궁궐에서 타락죽을 만드는 이는 낙부(酪夫)다. 윤원형은 궁중 낙부와 타락죽 기구를 자기 집에 배치하고 타락죽을 만들어 먹었다. 더하여 자기 집의 ‘자녀와 첩까지도 배불리’ 먹였다. 엄중한 탄핵감이다. 

        타락죽은 쌀(찹쌀)을 불려서 곱게 갈고 우유를 더한 다음 뜨겁지 않게 끓인 죽이다. 식성에 따라 꿀 등을 더해 먹는다. ‘타락’이란 이름은 건조우유를 뜻하는 몽골어 토락(TORAK)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조선왕조실록 인조 편을 보면 ‘대비전에 타락죽을 비롯해 몇 가지 죽을 올렸으나 병환에 차도가 없다’는 내용도 나온다. 타락죽은 궁중에서 사용했지만 궁중음식은 아니다. 민간에서도 사용했다. 1540년경 유학자 김유가 기술한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정과, 다식 편에서도 타락을 언급한다.

    귀한 음식이었으니 궁중, 반가 모두 귀한 약처럼 사용했다. 정조 시절, 관리들이 ‘이제 10월(음력)이니 관례에 따라 타락죽을 올리게 하시라’고 권한다. 정조가 답한다. “아직 날이 차지 않으니 타락죽을 올릴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이야기하겠다.” 역시 한식의 바탕은 절제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51020/74263465/1#csidx409ef6699dfd190b739946076c49236



    dongA.com  문화


    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
                     


    타락죽

    다른 표기 언어 駝酪粥

    요약 테이블

    성격

    음식, 죽
    유형 물품
    재질 우유, 쌀
    용도 영양보충
    분야 생활/식생활

    요약 우유에 쌀을 갈아 만든 무리를 넣고 끓인 죽.


        타락죽
    타락죽

       우유에 쌀을 갈아 만든 무리를 넣고 끓인 죽으로 우유죽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의 일부 상류가정이나 궁중에서 애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

       우유죽이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 타락죽의 역사는 우유 식용의 역사와 함께 하였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우유를 언제부터 식품으로 썼는지 그 상한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으로 미루어 고려시대부터 유우소(乳牛所)가 있었고 낙수(酪酥)를 가공하여 상류층 일부에서 식용으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증보산림경제≫·≪규합총서 閨閤叢書≫·≪부인필지≫ 등에 조리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에서는 타락죽을 쑬 때 우유와 무리의 비를 부피로 1:0.8 정도로 하였다. 재료의 비는 다소 임의로 가감할 수 있다. 단, 우유보다 무리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


       죽을 쑬 때에는 먼저 무리로 되직하게 죽을 쑤다가 거의 익었을 때, 우유를 함께 넣고 뭉근한 불에서 고르게 섞으면서 반투명의 상태가 되도록 끓인다. ≪증보산림경제≫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우선 우유 한 되에 물 두 홉 가량을 섞어 뭉근한 불에서 서너번 끓어오르게 한 다음, 떠오르는 것을 거두어낸다.

    한편, 무리를 말려둔 것에 물을 넣고 끓여 익으면 우유와 함께 섞어 어울리게 하고, 소금물을 끓여 가라앉혀 밭친 염탕으로 간을 한다. 우유죽은 조선시대의 일부 상류가정이나 궁중에서 애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체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규합총서』
    • 『증보한국식품사연구』(윤서석, 신광출판사, 1985)
    • 『한국요리백과사전』(황혜성, 삼중당, 1926)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타락죽

    우유죽, 駝酪粥



    요약 테이블
    분류 밥류 · 죽류


       타락죽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보양식으로 먹던 음식이다. 얼마나 귀했는지 임금님도 아무 때나 먹지 못했으며 특별한 명절이나 몸이 아플 때 주로 먹었다.

    조선 후기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 궁중에서 필요할 때 타락죽을 끓이는데, 특히 임금이 병이 났을 때 내의원 약국에서 타락죽을 진상했다고 나온다. 또 해마다 10월 그믐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만들어 원로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원로들에게 하사하는 겨울 특별 보너스였던 셈이다. 먹는 음식인 타락죽을 만드는 곳도 주방이 아니었다. 궁중 병원인 내의원 약방에서 제조했으니 음식이 아니라 보약으로 여겼다.

    타락죽은 그래서 아무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숙종 때 김창업이 사신을 따라 북경을 다녀와 《연행일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여기에 타락죽이 얼마나 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 사신들이 자금성에 도착해 황제를 알현하려고 기다리는 동안 타락차 한 병을 내왔는데 다른 사신들은 아무도 마시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일찍이 먹어본 적이 있어 맛이 좋음을 알았기 때문에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고 했다.

    당시 김창업은 서장관으로 따라갔으니 정사와 부사와 함께 황제를 알현하려고 대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사, 부사와 같은 고위직 벼슬아치가 타락차가 낯설어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니 고위직 관리라도 원로가 아니면 타락죽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듯 옛 문헌에서 임금님의 보양식으로 묘사한 타락죽은 도대체 어떤 음식이었을까? 지금 기준으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유죽이다.

    타락(駝酪)은 우유라는 뜻이다. 한자로 보면 낙타의 젖으로 만든 버터나 치즈 같은 식품이지만 우유의 한자 음역인 것으로 보인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타락은 본래 돌궐 말인 토락(Torak)에서 전해진 말이라고 했다. 고려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돌궐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목축을 담당했기에 우유를 돌궐 말로 타락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 최남선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우유에다 찹쌀을 넣고 끓인 죽이 바로 타락죽이니 고려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음식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 사람들도 디저트로 타락죽을 먹는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디저트인 아로스 콘 레체(Arroz con leche)가 바로 타락죽이다. 스페인 말로 아로즈는 쌀, 콘 레체는 우유로 만들었다는 뜻이니 우유인 타락으로 끓인 죽에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의 쌀죽인 부디노 디 리조 역시 이름만 다를 뿐 우유를 넣고 끓인 반액체의 음식이니 타락죽과 비슷하고 아랍과 인도에서 먹는 피르니,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우유죽인 소홀라도 모두 타락죽의 일종이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따져보면 타락죽과 서양 디저트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쌀로 만든 음식은 동아시아의 전유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랍 특히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쌀 음식이 발달했다.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발달한 쌀 요리는 우리처럼 쌀을 물에 넣고 끓여 수증기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쌀을 바로 우유나 버터, 올리브기름에 넣고 직접 익혀 먹는다.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볶음밥 종류인 아랍의 필라프가 스페인으로 전해져 파에야로 발전했고 또 이탈리아에서 리소토로 발달했다. 동쪽으로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전해져 필라(畢羅)라는 요리로 남았지만 크게 퍼지지는 못했다. 죽도 마찬가지였다. 페르시아의 쌀죽이 아랍과 인도에서 피르니로, 스페인에서는 아로스 콘 레체로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타락죽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임금님의 보양식 타락죽은 서역에서 전해진 외국 음식에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 서양에서 디저트로 남은 우유죽이 조선에서는 왜 귀중한 보양식이 된 것일까? 단순히 조선시대에는 우유가 귀했기 때문일까? 물론 우유가 많지 않았으니 보양식으로 먹었겠지만 서역의 타락죽은 원래부터 귀한 음식이었다.

    어떤 종류의 젖으로 끓였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젖이 흔했던 아랍이나 중앙아시아에서도 동물의 젖에 쌀과 향신료를 넣고 끓인 음식은 왕과 귀족들이 먹던 상류층 음식이었다. 서역에서 전해진 고급 음식인 데다 재료까지 귀했으니 임금님의 보양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체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덕노 전체항목 집필자 소개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2003년 매일경제신문사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했다...펼쳐보기

    출처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저자 윤덕노 | cp명 깊은나무 전체항목 도서 소개

    우리가 즐겨 먹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의 유래와 문화, 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 100가지에 얽힌 이야기를 모았다.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