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악학궤범  등가(登架), 헌가(軒架),

2017. 5. 8. 17:01율려 이야기



등가와 헌가


   등가(登歌)는 위패를 모시는 신전(神殿)의 대뜰 위에서 연주하는 합주단을 말하고, 헌가(軒架)는 마당 가운데 있는 신로(神路) 옆에서 연주하는 합주단을 말한다.
   등가는 편종·편경·방향·대금·당피리·아쟁·절고·장구·축·박·노래로 편성된다. 그리고 헌가는 편종·편경·방향·태평소·대금·당피리·해금·징(大金)·진고·장구·축·박·노래로 편성된다.



디지털 악학궤범등가

 등가

악기편성도 복원이미지
                    
완전악보
전폐 숙안지악 대려궁
전폐 숙안지악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 풍운뢰우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 풍운뢰우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 산천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 산천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 성황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 성황 대려궁

                    
철변두 옹안지악 대려궁
철변두 옹안지악 대려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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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폐 숙안지악 대려궁
전폐 숙안지악 대려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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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 수안지악(풍운뢰우) 대려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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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헌 수안지악(산천)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산천)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성황) 대려궁
초헌 수안지악(성황) 대려궁

                    
철변두 옹안지악 대려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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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폐
전폐

                    
초헌[풍운뢰우]
초헌[풍운뢰우]

                    
초헌[산천]
초헌[산천]

                    
초헌[성황]
초헌[성황]

                    
철변두
철변두

                    
명칭 : 풍운뢰우(風雲雷雨)의 등가(登歌)

                 

   바람ㆍ구름ㆍ천둥ㆍ비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풍운뇌우는 천신(天神)이다. 풍운뇌우단은 남교(南郊:지금의 숭례문 밖 청파역 부근의 소나무 숲)에 있으며, 중춘(仲春, 2월)과 중추(仲秋, 8월)에 길일을 택해 제사를 지낸다. 명(明)의 홍무예제(洪武禮制) 주현의(州縣儀)를 따라, 산천과 성황 신좌(神座)도 같은 단(壇)에 모셨다. 풍운뇌우의 신위(神位)가 중앙에 있고, 그 왼편(동쪽)에 산천이, 그 오른편(서쪽)에 성황의 신위가 있다. 풍운뇌우는 천신이고, 산천과 성황은 천신이 아니므로 그 쓰는 음악이 달라야 하지만, 같은 단에 있는 관계로 산천과 성황에도 천사(天祀)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천신의 제례에는 『악학궤범』권2 아악진설도설의 등가와 헌가로 음악을 연주하였다. 등가는 댓돌 위에 진설된 악대이며, 제례 절차 중 전폐ㆍ초헌ㆍ철변두의 절차에서 연주하는 악대이다. 등가는 절고ㆍ특경ㆍ특종ㆍ어(갈)ㆍ축(강)ㆍ금ㆍ슬ㆍ노래ㆍ편종ㆍ편경ㆍ관ㆍ약ㆍ화ㆍ생ㆍ우ㆍ훈ㆍ지ㆍ소ㆍ봉소ㆍ적의 악기로 편성한다. 천신의 제사에서 등가는 전폐에 숙안지악(대려궁), 초헌에 수안지악(대려궁), 철변두에 옹안지악(대려궁)을 연주하였다., 


   조선초기 악기편성은 태종대(1400-1418)에 허조(1369-1439)에 의해 제정되었고, 세종조 등가는 가종(歌鐘)ㆍ가경(歌磬)ㆍ금(琴)ㆍ슬(瑟)ㆍ노래[歌]로 편성된 지극히 단순한 형태이다. 『악학궤범』의 등가는 『세종실록』과 다른데, 이와같이 변화된 시기는 『국조오례의서례』 당시이다. 『국조오례의서례』에 금슬의 소리가 세미하여 특종ㆍ특경 외에 편종ㆍ편경을 설치하여 시의에 맞게하였고, 등가에 수(隋) 이래의 중고(中古)제도를 참조하여 금ㆍ슬ㆍ가(歌) 외에 포죽을 첨가하였다. 


『국조오례의서례』아부 등가 도설에는 방향이 표시되어 있는데, 『국조오례의서례』에는 방향 표시가 없어졌다. 이것은 『국조오례의서례』에 비해 악기편성 방향에 변화가 있었다기 보다, 설명하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악학궤범』 시용 아부 등가는 고제를 제도를 벗어나 독자적 형태를 갖춘 것임을 보여준다.
아부 제악에 편성된 악기는 모두 아악기이고, 전체 악기편성의 수는 세종조ㆍ오례의 시용 모두 악생 62명으로 동일하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권59. 15년 3월 22일(을해).


   따라서 『악학궤범』의 시용 아부제악 등가 편성은 세종조 회례연 즉 연향의 등가 편성이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아부 등가 편성에는 62명의 악생1)이 연주를 담당하며, 편종과 편경 연주자는 서서 연주하고 나머지 연주자들은 앉아서 연주한다. 등가에서는 악생이 연주하는데, 복식면에서 악기 연주자와 노래하는 사람[導唱]의 두 종류로 나뉜다.
성종조 등가의 악생 62명은 개책(개적, 介)을 쓰고 비란삼(緋鸞衫)을 입고 백주대(白紬帶)를 매고 오피리(烏皮履)를 신는다. 속에는 백포말(白布襪)을 신고 백주고(白紬袴)를 입은 후 백주중단(白紬中單)을 받쳐입는데, 백주중단은 깃ㆍ섶ㆍ도련ㆍ소매 등 가장자리를 따라 검은 선을 둘렀기 때문에 비란삼의 둥근 깃 안쪽으로 백주중단의 검은 깃이 살짝 보이게 된다. 비란삼의 아래쪽으로는 흰 색의 백주고와 백포말이 보인다. 겉옷으로 입는 포(袍) 중에서도 강공복(絳公服)과 비란삼(緋鸞衫)은 넓은 소매 끝에 좁은 소매가 달려있는데, 이는 출토유물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성으로 굉장히 넓은 소매자락이 악기 연주에 방해가 될까봐 특별히 달아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조 등가 악생의 복식은 세종조와 같고, 오례의와 비교해서 허리띠가 백주대 대신 금동혁대(金銅革帶)인 점만 다르다. 금동혁대는 오례의, 즉 『국조오례의서례』(1474년)에서 아악의 악사와 악생이 맸던 허리띠이다. 무무(武舞)의 춤을 추는 악생 48명과 정(旌)을 든 악생 두 명을 제외하면 등가ㆍ헌가(軒架)ㆍ문무(文舞)의 악사와 악생, 그리고 무무의 순ㆍ탁ㆍ요ㆍ탁ㆍ응ㆍ아ㆍ상ㆍ독을 든 악생까지도 모두 금동혁대를 매었다. 이는 세종조나 성종조에 등가와 헌가에서 악생 또는 악공이 백주대나 백초대를 맸던 기록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세종 이전에는 옷만 있고 허리띠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다가 박연의 건의로 송나라 제도를 따라 말대(抹帶)로 정했는데, 그후 『국조오례의서례』에서는 보다 화려하고 격식을 갖춘 금동혁대로 정하였지만, 실제로 성종(成宗) 때에는 이전의 관습대로 말대(抹帶)를 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권59. 15년 3월 22일(을해).


   성종조 등가의 도창2)은 두 명인데, 복두(頭)를 쓰고 강공복(絳公服)을 입고 비백대대(緋白大帶)를 매고 목에는 방심곡령(方心曲領)을 걸고 오피리를 신는다. 이것은 세종조 회례연 등가 도창의 관복과 동일하다. 도창은 속에 백포말을 신고 백주고를 입은 후 백주중단을 받쳐입는데, 백주중단은 깃ㆍ섶ㆍ도련ㆍ소매 등 가장자리를 따라 검은 선을 둘렀기 때문에 강공복의 둥근 깃 안쪽으로 백주중단의 검은 깃이 살짝 보이게 된다. 강공복의 아래쪽으로는 흰 색의 백주고와 백포말이 보인다. 겉옷으로 입는 포(袍) 중에서도 강공복과 비란삼은 넓은 소매 끝에 좁은 소매가 달려있는데, 이는 출토유물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성으로 굉장히 넓은 소매자락이 악기 연주에 방해가 될까봐 특별히 달아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에 건 방심곡령은 관복 차림에 포함이 되는 품목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담고 있으며, 『악학궤범』중에서는 아악 등가의 도창만이 착용하는데, 항상 비백대대가 함께 착용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방심곡령과 비백대대는 고려시대 공민왕이 중국으로부터 하사받은 관복이나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제복(祭服), 문관과 무관의 조복(朝服)에서도 항상 세트를 이루어 나란히 등장한다.

<참고문헌> 『세종실록』 권59. 15년 3월 22일(을해). 

                          

용어해설

1) 악생 :중국계 아악을 전공하던 악인.
2) 도창 :노래를 바르게 이끌어 나가는 인도의 구실을 하는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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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악학궤범  헌가

  헌가

악기편성도 복원이미지
완전악보
영신 순안지악 임종궁
영신 순안지악 임종궁


                    
영신 순안지악 태주각(유빈궁)
영신 순안지악 태주각(유빈궁)


                    
영신 순안지악 고선치(응종궁)
영신 순안지악 고선치(응종궁)


                    
영신 순안지악 남려우(유빈궁)
영신 순안지악 남려우(유빈궁)


                    
진찬 옹안지악 태주궁
진찬 옹안지악 태주궁


                    
아헌·종헌 수안지악 태주궁
아헌·종헌 수안지악 태주궁


                    
송신 순안지악 송임종궁
송신 순안지악 송임종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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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 순안지악 임종궁
영신 순안지악 임종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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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 순안지악 태주각(유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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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 순안지악 고선치(응종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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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 순안지악 남려우(유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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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찬 옹안지악 태주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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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헌·종헌 수안지악 태주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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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 순안지악 송임종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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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사직(社稷)의 헌가(軒架)

                 

   아부 제례악은 풍운 뇌우ㆍ산천 성황ㆍ사직ㆍ선농ㆍ선잠ㆍ우사ㆍ문선왕 등 제례에 연주하는 음악을 말하며, 이 때 사용하는 악대는 등가와 헌가이다. 


   등가1)와 헌가2)는 아악의 악기 편성법으로, 고려시대 대성악의 도입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등가는 당상악이라고도 하며, 현악기와 노래가 중심이 되는 편성이다. 헌가는 당하악이라고도 하며 관악기와 타악기가 중심이 되는 편성이다. 


   헌가는 궁현ㆍ헌현ㆍ판현ㆍ특현의 네 종류가 있다. 궁현은 황제의 격에 진설하는 규모로, 편종ㆍ편경을 동서남북 사방에 배치하는 것인데, 이 네 면의 악기배치는 궁실을 상징한다. 헌현은 제후의 격에 진설하는 규모이며, 남쪽을 뺀 삼방에 편종ㆍ편경을 배치하는 것인데, 그 모양이 수레[車輿]와 같으므로 ‘헌현(軒縣)’이라 한다. 판현은 대부의 격에 진설하는 것으로, 동쪽과 서쪽에 편종ㆍ편경을 배치하며, ‘판(判)’은 반으로 나누었다는 뜻이다. 특현은 사(士)의 격에 진설하는 악대로, 동쪽 한 면에 편종ㆍ편경을 배치하는 방법이며, 한 방향에만 악기를 배치했기 때문에 ‘특현(特縣)’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중 헌현을 사용하였다. 


『악학궤범』의 시용(時用, 성종조) 아부 헌가는 사직ㆍ풍운뇌우ㆍ산천성황ㆍ선농ㆍ선잠ㆍ우사ㆍ문선왕의 제례악의 연주시 등가와 함께 편성되어 영신ㆍ진찬ㆍ아헌ㆍ종헌ㆍ송신의 절차에 음악을 연주하였다.


   등가의 경우 오례의와 시용의 형태가 같은데 비해 헌가는 오례의와 시용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 오례의 헌가는 『세종실록』길례의 사직 헌가와 같고, 따라서 시용 헌가는 『국조오례의서례』가 완성된 1474년(성종 5) 이후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헌가는 편종 9ㆍ편경 9ㆍ축 1ㆍ어 1ㆍ관 10ㆍ약 10ㆍ화 3ㆍ생 7ㆍ우 10ㆍ봉소 10ㆍ적 10ㆍ지 10ㆍ부 10ㆍ훈 10ㆍ진고 2ㆍ영고 3ㆍ영도 6으로 편성한다. 아부제악의 헌가는 등가에 비해 특종ㆍ특경ㆍ노래[歌]ㆍ절고가 없고, 부가 더 추가되었다. 또 헌가에는 제례의 대상에 따라 사용하는 북의 종류가 다른데, 사직에는 영고ㆍ영도를 사용한다.
사직의 제례에 헌가가 연주하는 악곡은 영신에 순안지악(임종궁ㆍ유빈궁ㆍ응종궁ㆍ유빈궁), 진찬에 옹안지악(태주궁), 아헌과 종헌에 수안지악(태주궁), 송신에는 순안지악(송임종궁)이다.
연주자는 모두 악생 124명이며, 등가의 연주자가 앉아서 연주하는데 비해 헌가의 연주자는 모두 일어서서 연주한다. 이렇게 서서 연주하는 연주자세의 전통은 전승이 단절되었고, 지금은 헌가 연주자도 앉아서 연주한다.


   성종조 헌가 악생의 복식은 성종조 등가의 관복과 같다. 성종때 아악을 베푸는 경우 등가의 악생 62명과 헌가의 악생 124명을 합쳐 186명은 전부 개책(개적)을 쓰고 비란삼(緋鸞衫)3)을 입고 백주대(白紬帶)4)를 매고 오피리(烏皮履)5)를 신는다. 속에는 백포말(白布襪)6)을 신고 백주고(白紬袴)7)를 입은 후 백주중단(白紬中單)8)을 받쳐입는데, 백주중단은 깃ㆍ섶ㆍ도련ㆍ소매 등 가장자리를 따라 검은 선을 둘렀기 때문에 비란삼의 둥근 깃 안쪽으로 백주중단의 검은 깃이 살짝 보이게 된다. 비란삼의 아래쪽으로는 흰 색의 백주고와 백포말이 보인다. 겉옷으로 입는 포(袍) 중에서도 강공복(絳公服)9)과 비란삼은 넓은 소매 끝에 좁은 소매가 달려있는데, 이는 출토유물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성으로 굉장히 넓은 소매자락이 악기 연주에 방해가 될까봐 특별히 달아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용어해설

1) 등가 :궁궐에서 댓돌 위에서 연주하는 악대.
2) 헌가 :궁궐에서 댓돌 아래에서 연주하는 악대.
3) 비란삼(緋鸞衫) :아속악 차비 공인이 입는 예복의 한 가지.
4) 백주대(白紬帶) :백주로 만든 띠.
5) 오피리(烏皮履) :아악 등가의 도창악사와 각 차비 공인, 속악 종묘, 영녕전의 문무, 무무와 의물을 드는 공인이 신는 신.
6) 백포말(白布襪) :아악 등가의 도창악사와 각 차비 공인, 속악 종묘, 영녕전의 문무, 무무와 의물을 드는 공인 및 처용이 신는 버선.
7) 백주고(白紬袴) :아악 등가의 도창악사와 문무와 무무 차비 공인이 입는 바지.
8) 백주중단(白紬中單) :아악 등가의 도창악사와 문무와 무무 차비 공인이 입는 예복의 한 가지.
9) 강공복(絳公服) :아악 등가의 도창악사가 입던 예복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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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
             
등가
동의어 당상악 다른 표기 언어 登歌

요약 테이블
시대 조선
유형 개념용어
분야 예술·체육/국악

요약 악현(樂懸), 즉 악기를 배열해 놓는 법식의 일종.



종묘제례악 / 등가

   궁궐의 섬돌 위와 같이 높은 곳에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내용

   궁궐의 섬돌 위와 같이 높은 곳에서 연주하는 것을 지칭한다.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특히 의식음악을 연주할 때는 으레 연주악대를 두 곳으로 벌여 놓았는데, 비교적 높은 곳인 당상(堂上)과 낮은 곳인 당하(堂下)가 그것이다.

따라서 궁궐 안의 구조로 볼 때 당상은 섬돌 위의 추녀 밑이 되며, 당하는 섬돌 아래의 넓은 전정(殿庭:궁전의 뜰)이 된다. 이처럼 연주악대를 둘로 갈라 놓은 것은 음양사상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즉, 등가(登歌)의 위치인 당상은 양(陽)의 위치이고 헌가(軒架:악기의 鍾이나 磬을 틀에 걺)의 위치인 당하는 음(陰)의 위치로서 이들 두 위치의 악대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종 때 박연(朴堧)은 종묘제향이나 사직제(社稷祭)에 당상이나 당하에서 모두 양률(陽律)의 궁(宮 : 주음)을 쓰고 있는 것은 음양조화에 어긋나는 것이니 옛날의 법식대로 당상에서는 음려(陰呂)의 궁을 쓰고 당하에서는 양률의 궁을 쓰자고 임금에게 상세히 소를 올린 적이 있다.


   등가라는 말에서 오를 등(登)자는 높은 당상으로 올라간다는 뜻이며 노래 가(歌) 자는 노래를 주축으로 한다는 뜻으로서, 금(琴)이나 슬(瑟)과 같은 현악기의 반주로 송시(頌詩) 같은 가사를 노래해가는 것이 등가의 주된 기능이다. 이처럼 등가에서는 노래를 위주로 하고, 당하악대의 일종인 헌가(軒架)에서는 죽관악기(竹管樂器)의 연주를 주축으로 하는 것이 본래의 고법(古法)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제는 시대에 따라서 많이 변질되어 중국에서는 당상에서도 팔음악기(八音樂器: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나눈 우리 나라와 중국의 악기)를 비치해서 쓰고 당하에서도 가공(歌工:악사)을 배치하여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같은 사례에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도 당하악에 가공을 쓰던 적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헌가와 세종조의 회례연헌가나 성종조의 종묘헌가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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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난계유고(蘭溪遺藁)』
  • 『익직(益稷)』(우서)
  • 『악서(樂書)』(진양)





종묘의궤 제1책

                                                                   





○ 등가는 당(堂) 위에 둔다. 가운데 어도(御道)를 열어 놓고, 특종(特鐘)은 동쪽에, 특경(特磬)은 서쪽에 두며, 박(拍) 하나는 그 남쪽 한가운데에 둔다. 다음으로 축(柷)은 동쪽에, 어(敔)는 서쪽에 두고, 아쟁(牙箏) 하나는 축의 서쪽에, 대쟁(大箏) 하나는 어의 동쪽에 두어 첫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노래하는 사람 6인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두어 두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방향(方響)을 중앙에 놓고, 현금(玄琴)과 편종(編鍾)은 동쪽에, 가야금과 편경(編磬)은 서쪽에 두어 세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절고(節鼓)를 중앙에 놓고, 당비파(唐琵琶), 향비파(鄕琵琶), 장고(杖鼓), 화(和)를 각각 하나씩 동쪽에, 당비파, 월금(月琴), 장고, 생(笙)을 각각 하나씩 서쪽에 두어 네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다음으로 필률(觱篥), 해금(奚琴), 대금(大笒), 당적(唐笛), 훈(塤)을 각각 하나씩 동쪽에, 필률, 퉁소(洞簫), 대금, 당적, 지(篪)를 각각 하나씩 서쪽에 두어 다섯 번째 줄이 되게 한다. 모두 북쪽을 향한다. - 공인은 모두 개책관, 비난삼(緋鸞衫), 백주중단(白紬中單), 백초대(白綃帶), 백포말, 오피리 차림을 하고, 악사는 복두(幞頭), 녹삼(綠衫), 오정대(烏鞓帶), 흑피화(黑皮靴) 차림을 한다. -


[주D-001]비난삼(緋鸞衫) : 붉은색의 난삼으로, 난삼은 난새 문양이 있는 적삼이다. 세종 때 박연(朴堧)은 당시 사용했던 오승포의(五升布衣), 즉 닷새 베옷이 적삼의 제도가 아니라 하여 난삼으로 바꿀 것을 건의한 바 있다. 《世宗實錄 15年 3月 22日》
[주D-002]백주중단(白紬中單) : 흰색 명주로 만든 중단으로, 중단은 조복(朝服)과 제복(祭服) 안에 받쳐 입던 옷이다.
[주D-003]백초대(白綃帶) : 흰색 생사로 만든 띠이다.
[주D-004]녹삼(綠衫) : 녹색 적삼이다.
[주D-005]오정대(烏鞓帶) : 검은색 가죽 띠이다.
[주D-006]흑피화(黑皮靴) : 흑색 가죽으로 만든 신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선종순 (역) ┃ 2008







국악사전

                                                                                

헌가

  • 작성일2014-11-16

【정의】당하(堂上)에 편성되어 연주하는 악대의 명칭.

【이칭(異稱)】당하악(堂下樂)

【유래 및 역사】옛 제도[古制]에 의하면 헌가악대는 포죽(匏竹), 즉 관악기를 위주로 편성했으나 시대가 흐를수록 그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세종대에는 음양(陰陽)의 제도를 따라 당하가 음양의 ‘음(陰)’에 해당하므로 양률(陽律)에 해당하는 조의 음악을 쓰고 당상이 ‘양(陽)에 해당하므로 음려(陰呂)에 속하는 조의 음악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며 그 주장은 일부 실현에 옮겨졌다.

【내용】헌가는 종묘나 문묘 사직 등의 제례를 거행할 때 음악을 연주하는 악대 가운데 당하, 즉 댓돌 아래 묘정(廟廷)에 편성되는 악대를 말한다. 길례에 연주하는 제례악 이외에 가례(嘉禮)나 빈례(賓禮), 군례(軍禮)의 예를 행할 때에도 당하에 편성된 악대는 헌가라 하였고 헌가가 연주하는 음악은 헌가악(軒架樂), 헌가지악(軒架之樂)이라 했다. 헌가는 제후국의 위격에 해당하는 악대의 명칭이므로 조선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사용되었으나 고종이 황제국을 선언한 1897년 이후의 대한제국 시기에는 그 명칭이 황제의 악대를 이르는 궁가(宮架)로 바뀌었다. 헌가의 악기 편성은 각각의 의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제례악을 연주할 때 헌가는 당상에 편성되는 등가(登歌), 일무(佾舞)와 함께 유가적 우주관의 기초를 이루는 천(天), 지(地), 인(人) 삼재사상을 반영한다. 당상 즉 댓돌 위에 편성되는 등가는 하늘을, 당하 즉 전정(殿庭)이나 묘정(廟廷)에 편성되는 헌가는 땅을, 등가와 헌가 사이에 위치하여 줄지어 서서 추는 춤인 일무는 사람, 혹은 사람의 일을 각각 상징한다.

【필자】송지원


【참고문헌】[서경]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서례] [악학궤범] [악서] [대한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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