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종묘와 영녕전의 제례음악이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종묘에는 종묘(政殿)와 영녕전(祖廟) 두 사당이 있는데, 종묘에는 공이 큰 임금 19분의 신위가, 영녕전에는 조선왕조의 공이 큰 왕족 15분의 신위가 각각 모셔져 있으며,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함께 제사하며, 이 때 연행되는 악(樂:보태평ㆍ정대업)ㆍ가(歌:악장)ㆍ무(舞: 일무) 일체를 ‘종묘제례악’ 또는 ‘종묘제례악무’라 부른다. 줄여서 ‘종묘악’이라고도 하며 현재 종묘제례악은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종묘제례의 절차는 총 8가지로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예물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 신에게 제물을 올리는 진찬례(進饌禮)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제기(祭器)를 덮는 철변두(徹邊豆)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을 보내는 송신례(送神禮) 순서로 치러지며, 이때 영신례와 전폐례, 초헌례에는 보태평지악을, 진찬례에는 풍안지악을, 아헌례와 종헌례에는 정대업을, 철변두에는 응안지악,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신례에는 흥안지악을 각각 연주합니다 [출처]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작성자 천상연 세종(1418~1450) 때 창제된 신악(新樂)의 한 곡명으로 현행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한 곡이며 일명 "형만년지악"(亨萬年之樂)이라고도 하며 본명은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으로 불려집니다. 정대업은 종묘제례의 아헌(두 번 째 술잔을 올리는 절차)과 종헌(마지막으로 술잔을 올리는 절차)에 쓰인 악무(樂舞)이며, 원래 정대업은 세종이 조상의 무공(武功)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직접 창제하여, 회례연의 음악(會禮樂)으로 사용하였으나, 이후 세조 때부터 지금까지 종묘제례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대업은 모두 11곡으로 이루어졌는데, 소무(昭武) . 독경(篤慶) . 탁정(濯征) . 선위(宣威) . 신정(新定) . 분응(奮雄) . 순응(順應) . 총유(寵緌) . 정세(靖世) . 혁정(赫整) . 영관(永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첫번째 곡으로 본래 세종(1418~1450) 때 지은 "소무" 악장은 5언(言) 1구(句)의 12구로 되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개작된 "소무" 악장은 12구가 4구로 축소되면서 음악도 함께 축소되었습니다. 곡명의 ‘소무’는 노래말 중 소성무(昭聖武)에서 따온 말로 축소된 "소무" 악장의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소무(昭武) "황천권동방(皇天眷東方)- 황천(皇天)이 이 나라를 돌보시사 독생아열성(篤生我列聖)- 우리의 성군들을 나게 하시니, 오황아열성(於皇我列聖)- 거룩할사, 우리 여러 성군님네 탄흥수성명(誕興受成命)- 크게 일어나 천명을 받으셨도다. 세철극초덕(世哲克肖德)- 여러 세대 명철한 덕이 내리내리 이으셔서 기무정궐공(耆武定厥功)- 높으신 무덕(武德)으로 큰공을 정하시고, 조아비비기(肇我丕丕基)- 큰 터전을 마련하사 이보아대동(以保我大東)- 우리 나라 보전하니, 황황무경렬(皇皇無競烈)- 거룩하신 막대한 업적 수유영무극(垂裕永無極)- 길이 드리워 끝이 없으리. 서용가차무(庶用歌且舞)- 이에 노래하며 춤을 올리니 간척혁이역(干戚奕以繹)- 간척(干戚)이 번득이고 찬란하외다"
세조시대 정대업-소무(昭武)악장 천권아열성(天眷我列聖) 계세소성무(繼世昭聖武) 서양무경열(庶揚無競烈) 시용가차무(是用歌且舞). | 하늘이 우리의 여러 성군(聖君)을 돌보아 주시어서 대대로 거룩한 무운(武運)을 빛나게 하시도다 거의 더 강할 수 없는 업적(業績)을 올리심이여 이럼으로써 노래하고 또 춤을 추나이다 |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두번째 곡으로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작되었으나 세조 때 개작, 축소되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된 뒤 현재에 이르는데 즉 현재의 「독경」은 세종 때 「독경」의 음악을 버리고, 당시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계우(啓宇)」를 축소한 기명(基命)을 평조(平調)에서 계면조로 바꾸어 만든 곡입니다. 독경은 노래말 중 ‘휼독기경(遹篤其慶)’에서 따온 말이며 목조(穆祖)의 무공(武功)을 노래한 곡으로, 원래 4언 12구의 한시였으나 현재는 4언 4구로 불려지며 원문과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독경(篤慶) "오황성목(於皇聖穆)- 크시도다, 거룩하신 목조(穆祖)께서 궐유윤색(厥猶允塞)- 큰 계획이 참답고 완실하도다. 택피삭방(宅彼朔方)- 북방에 자리잡으사, 조아왕적(肇我王迹)- 우리 왕업을 시작하실새 시건아독(始建牙纛)- 비로소 큰 기를 세우시니, 중내예부(衆乃預附)- 백성이 모두 즐거이 따라 붙었네. 인위이부(仁威以溥)- 사랑과 위엄이 널리 퍼지니, 주불외모(疇不畏慕)- 누구라 두려워 흠모하지 않으리, 율수제지(聿受帝祉)- 이에 하늘의 복을 받으시니 기경즉독(其慶則篤)- 그 경사 실로 돈독하도다. 즉독기경(則篤其慶)- 돈독할손 그 경사여, 명우동국(命于東國)- 우리 나라에 주시었도다." 세조시대 정대업-독경(篤慶) 오황성목於皇聖穆 건아우삭建牙于朔 휼독기경遹篤其慶 조아왕적肇我王迹 | 아아 위대하고 거룩한 목조께옵서, 친히 북쪽지방에 출정하시도다. 이에 그 선치(善治)하는 데 힘쓰시니, 우리 왕업의 시초를 닦았도다. |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세번째 곡으로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정대업지악의 제2변인 4언12구로된 「선위(宣威)」와 3언12구인「탁령(濯靈)」의 노랫말을 세조 때에 와서 축소하고, 탁령의 전반부 선율을 차용하여 만들어 종묘제례악에 채택한 곡입니다. 「탁정」이라는 곡명은 노랫말 중 우탁정(于濯征)에서 따온 것이며 환조(桓祖)의 무공을 노래한 곡으로, 3언 6구로 된 노랫말의 한시와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선위(宣威)
"유피완은(維彼頑嚚)- 조험이광 반란으로 소동하는 무리가 조험이광(阻險以狂)- 험한 곳을 믿고 미쳐 날뛰는지라. 오황성환(於皇聖桓)- 크시도다, 거룩하신 환조(桓祖)께서 수명우양(受命于襄)- 소탕하라 명을 받으셨도다. 난기극의(難旣亟矣)- 환난이 이미 극심하여 아시용급(我是用急)- 형세가 실로 다급한지라. 계려행매(戒旅行枚)- 사졸(士卒)을 신칙하고 말을 채쳐 행군하니, 기장기율(旣臧旣律)- 군법도 좋을시고. 절피쌍성(截彼雙城)- 깎아지른 쌍성으로 아사팽팽(我師彭彭)- 우리 군사 치달을 제, 면면익익(緜緜翼翼)- 줄기차고 씩씩하여 아무유황(我武維皇)- 나라 위엄 위대했네.
세종시대 정대업-탁령(濯靈)
"무유황(武維皇)- 무공의 위엄이 위대하여 여뇌정(如雷霆)- 우뢰와 번갯불 같았도다. 종비휴(縱豼貅)- 맹호 같은 군사들로 우탁정(于濯征)- 활짝 풀어 소탕하니, 위천혁(威燀赫)- 쳐부수는 위세는 불길같이 빛나고, 사기증(士氣增)- 군사들의 용기가 더욱 왕성하였네. 군추잠(群醜熸)- 더러운 기운은 사라지고 분예청(氛翳淸)- 맑은 기운으로 덮이네 피구강(彼舊疆)- 저들의 옛 강역이 유아릉(維我陵)- 이제 우리의 땅이니 공지대(功之大)- 높은 공적이 수만령(垂萬齡)- 만세에 크게 남으리."
세조시대 정대업-탁정(濯征)
완지호(頑之豪) 거쌍성(據雙城) 아성환(我聖桓) 우탁정(于濯征) 저광망(狙壙亡) 척아강(拓我疆)." | 완강(頑强)한 무리가 쌍성(雙城)을 점거하도다 거룩하신 환조(桓祖)께옵서 가서 무찌르시도다 원숭이(도적놈들) 소굴이 망하니 우리 강토(疆土)를 개척하시도다. |
[출처] 정대업세번째 탁정[濯征 ] |작성자 천상연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네번째 곡으로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되어 정대업지악의 제2변이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제3변이 되었으며 이때 원래의 곡과 노래말은 버리고 세종 때의 「혁정(赫整)」의 곡과 노래말을 반으로 줄여 새로이 「선위」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선위」는 환조(桓祖)의 무공(武功)을 노래한 것이었으나 세조 때 개작된 것은 태조의 무공을 노래하고 있으며 곡명은 악장에 나오는 '재선천위'(載宣天威)에서 따온 것으로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혁정(赫整)
"여실기어(麗失其馭)- 고려가 통어(統馭)를 잘못했기 때문에 외모유극(外侮維棘)- 외적(外賊)들이 깔보기를 심히 했었네. 도이유오(島夷維鷔)- 섬 땅의 오랑캐가 함부로 덤비어서 탄서서북(呑西噬北)- 서쪽으로 침노하고 북쪽을 갉아먹고, 기피남토(曁彼南土)- 남방의 일부에는 죽이고 불질러서 도소태공(屠燒殆空)- 땅들이 거의 모두 빈터로 되게 되며, 납구공치(納寇孔熾)- 나하추(納哈出) 오랑캐가 극성을 부리어서 심입함홍(深入咸洪)- 함길도의 내지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포휴건유(包烋虔劉)- 엄포하고 살육함을 막지당봉(莫之當鋒)- 당할 수 없이 하고, 역유홍건(亦有紅巾)- 홍건적이 또한 있어 백만기병(百萬其兵)- 그 군사 백만이라. 장구광분(長驅狂奔)- 미친 듯이 달려와서 함아경성(陷我京城)- 우리 서울 함락하고, 원여보험(元餘保嶮)- 올라(兀刺)가 험한 곳에 버티고, 얼승구난(蘖僧構難)- 못된 중이 변란을 꾸미며, 급피호적(及彼胡賊)- 호발도(胡拔都)가 감령변환(敢逞邊患)- 변방의 환난을 일으키기에 이르렀었네. 오황성조(於皇聖祖)- 아아, 위대할사, 거룩하신 태조께서 유건병월(有虔秉鉞)- 엄숙히 부월(斧鉞)을 잡으시와, 환환사정(桓桓四征)- 용장하게 사방을 치옵시니, 숙아감알(孰我敢遏)- 어느 누가 감히 막을손가. 아사당당(我師堂堂)- 우리 군사 당당하여 불측불극(不側不克)- 빗나가지 아니하고 기승부리지 아니하도다.
세종시대 정대업-선위(宣威)
"유피완은(維彼頑嚚)- 반란으로 소동하는 무리가 조험이광(阻險以狂)- 험한 곳을 믿고 미쳐 날뛰는지라. 오황성환(於皇聖桓)- 크시도다, 거룩하신 환조(桓祖)께서 수명우양(受命于襄)- 소탕하라 명을 받으셨도다. 난기극의(難旣亟矣)- 환난이 이미 극심하여 아시용급(我是用急)- 형세가 실로 다급한지라. 계려행매(戒旅行枚)- 사졸(士卒)을 신칙하고 말을 채쳐 행군하니, 기장기율(旣臧旣律)- 군법도 좋을시고. 절피쌍성(截彼雙城)- 깎아지른 쌍성으로 아사팽팽(我師彭彭)- 우리 군사 치달을 제, 면면익익(緜緜翼翼)- 줄기차고 씩씩하여 아무유황(我武維皇)- 나라 위엄 위대했네
세조시대 정대업-선위(宣威)
자려실어(咨麗失馭) 외모교치(外侮交熾) 도이종서(島夷縱噬) 납구자휴(納寇咨睢) 홍건포휴(紅巾炰烋) 원여뢰희(元餘礨屭) 얼승발호(孼僧跋扈) 호괴육량(胡魁陸梁) 어황성조(於皇聖祖) 신무탄양(神武誕揚) 재선천위(載宣天威) 혁혁당당(赫赫堂堂)." | 아아 고려(高麗)가 통어력(統御力)을 잃으니 외부에서 모멸(侮蔑)이 불일 듯 하도다 왜적들이 멋대로 물어뜯는가 하면 누루하치(納哈出)가 방자히 눈을 부라리며 홍건(紅巾)의 도적들은 마냥 억세고 원나라 잔여(殘餘)도 마구 대들며 요망한 중놈(신돈(辛旽)을 뜻함) 함부로 발호(跋扈)하고 오랑캐의 괴수는 어지러히 날뛰도다 아아 위대한 할아버님(태조)께옵서 신통하신 무위(武威)를 크게 떨치시도다 이에 천명의 위엄을 널리 펴시니 빛나고 빛나며 당당하시도다." |
[출처] 정대업네번째 선위[宣威 ] |작성자 천상연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다섯번째 곡으로 신정이라는 곡명은 노래말 가운데 ‘기정무(耆定武) 신지위(神之爲)’에서 따온 말이며 태조의 무공(武功)을 노래한 곡으로 노래말이 원래는 3언24구의 한시였으나 지금은 3언12구로 불려지며 우리말 번역과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신정(神定)
"분궐무(奮厥武)- 흥분한 역정을 신성하게 진정하고 개시적(愾是敵)- 무덕의 분노를 풀기 위하여 모시석(冒矢石)- 화살과 돌팔매를 무릅쓰고 광방국(匡邦國)- 나라를 바로잡을 새, 아사제(我師齊)- 군대가 정제하고 아려국(我旅鞠)- 병력이 풍성하도다. 사고용(士鼓勇)- 사졸의 용기는 함호비(鬫虎羆)- 맹호가 우짖으니, 오성무(於聖武)- 거룩한 무위(武威)가 신지위(神之爲)- 신명의 시킴이라. 육기예(衄其銳)- 예봉(銳鋒)을 무찌르기 약고최(若枯摧)- 마른나무 찍듯 하니 혹부강(或負疆)- 완강(頑强)함을 자부(自負)하고 항천위(亢天威)- 천위(天威)를 항거하나, 당지부(螗之斧)- 버마재비 뿌다귀가 선즉미(旋卽麋)- 금시에 사라지네. 우동서(于東西)- 동쪽과 서쪽이며 기남북(曁南北)- 남으로 또 북으로 신과지(神戈指)- 신기한 창끝 앞에 세파죽(勢破竹)- 대쪽 쪼개는 형세로다. 인무적(仁無敵)- 어진 이는 적이 없어 주부공(奏膚公)- 큰공을 올리시매, 천우덕(天祐德)- 하늘이 복주시어 정대동(靖大東)- 나라 안정 이루도다.
세조시대 정대업-신정(神定)
개아적愾我敵 융호비戎虎貔 고궐용鼓厥勇 약한비若翰飛 동구천動九天 정우기正又奇 당부항螗斧亢 선자미旋自糜 죽사파竹斯破 숙아지孰我支 기정무耆定武 신지위神之爲 | 우리 적을 분하노니, 병사들 맹수 같도다. 병사의 용기 고무시키니, 그 형세가 나는 듯하도다 온 하늘을 진동하게 함이여 정의와 신기함이로다. 적의 도끼가 아무리 버티었으나, 쫓겨 돌아가서 저절로 흩어지도다 대나무 쪼개듯 격파하였으니, 그 누가 지탱하였으리요. 무공을 정하여 주심은 신의 하심이도다 |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여섯번째 곡으로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정대업지악」의 제3변인 4언 18구의 한시「개안(凱安)」의 제1행에서 제5행까지의 가락과 그 노래말 18구 중 축소된 10구를 차용하여 「분웅」이라 이름 붙이고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한 곡이며, 태조의 무공을 찬양 하며 세조 이후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래말은 4언10구의 한시로 되어 있으며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개안(凱安)
"달아신무(撻我神武)- 우리 군사의 신기한 무공을 장려하니 업업혁혁(業業赫赫)- 공적이 장하고 빛나도다. 사방우정(四方于征)- 사방을 정벌하여 용탕흉적(用逿兇賊)- 흉적을 물리치니, 호견불최(胡堅不摧)- 어느 굳음이 꺾이지 않으며 호험불평(胡險不平)- 어느 험함이 무너지지 않으리. 영기유지(靈旂攸指)- 신령한 깃발이 이르는 곳마다 요분즉청(妖氛卽淸)- 요사한 기운이 일시에 맑아지도다. 아벌기장(我伐旣張)- 우리의 정벌이 벌어져서 아공기성(我功旣成)- 우리의 공적이 이룩되매, 아진아려(我振我旅)- 우리의 군사를 거두어서 언선아행(言旋我行)- 우리의 발길을 돌이킬 제, 삼군분약(三軍奮躍)- 삼군(三軍)의 장한 모습 씩씩하게 달리면서 주개등환(奏凱騰懽)- 개선의 노랫소리 우렁차게 울리도다. 집신유괵(執訊攸馘)- 포로(捕虜)한 도적들을 처참하고 다스리니, 연련안안(連連安安)- 나라가 잠잠하여 편하고 편하도다. 무모무불(無侮無拂)- 넘보는 자 없고 까부는 자 전혀 없어, 경일삼한(慶溢三韓)- 경사로운 우리 기쁨 온 나라에 넘치도다."
세조시대 정대업-분웅(奮雄)
아웅아분(我雄我奮) 여뢰여정(如雷如霆) 호견막최(胡枤莫摧) 호험막평(胡險莫平) 연연안안(連連安安) 주아신함(奏我訊醎) 신과일휘(神戈一揮) 요기숙곽(妖氣倏廓) 매매무불(每每無拂) 조아동국(祚我東國)." | 우리의 용맹과 우리의 분기(奮氣)는 천둥과 같고 벽력과 같도다 어떤 견강(堅强)인들 꺾을 수 없으며 어떤 험난인들 평정(平定)하지 못하랴 질서 있게 계속하여 정당하게 처리함은 우리의 문죄(問罪)와 형벌(刑罰)을 진행함이로다 신(神) 같은 간과(干戈: 즉 무기)를 한번 휘두르니 요사스런 기운이 재빨리 소탕되도다. 이제 능모(凌侮)하거나 반역하는 자 모두 없으니, 우리의 해 돋는 나라 길이 복되리라 |
[출처] 정대업여섯번째 분웅[ 奮雄 ] |작성자 천상연 정대업지악(定大業之樂)의 일곱번째 곡으로 세종(1418~1450) 때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의 곡조를 차용해 지은 이 곡은 세조 때의 "혁정"(赫整)과 같은 곡이며 세조 때 개작할 당시 세종 때의 정대업 중 "지덕"(至德)을 새로 고친 것으로 원래의 남려궁계면조(南呂宮界面調)에서 황종궁계면조(黃鍾宮界面調)로 바뀐 5음 음계의 곡이며 곡명은 하늘의 도(道)에 순하고 사람의 도에 응하여,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찬양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래 말의 원문과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지덕(至德)
"희피려계(噫彼麗季)- 딱하도다, 고려의 말엽에 주혼정학(主昏政虐)- 임금이 혼암하고 정치가 잔학하여, 대운장경(大運將頃)- 국운이 장차 기울어지니 천탈지백(天奪之魄)- 하늘이 혼을 앗았도다. 유월칭병(六月稱兵)- 6월에 군사를 일으켜서 감간상국(敢干上國)- 명나라 치기를 감행하니, 기지극간(旣之極諫)- 아무리 극진히 간하여도 청아막막(聽我藐藐)- 끝끝내 듣지를 아니했네. 수즉계행(雖則啓行)- 부득이 행군을 하면서도 중심시위(中心是違)- 중심엔 틀리는 일인지라. 순아인정(循我人情)- 당시의 인심에 순종하여 회아의기(回我義旂)- 정의의 깃발을 돌리셨네."
세종시대 정대업-순응(順應)
오삭의사(於鑠義師)- 아름다운 정의의 군사가 순언다조(順焉多助)- 순종하여 도움이 많았네. 천휴진동(天休震動)- 하늘의 명령이 떨쳐 움직이니 사녀열부(士女悅附)- 남녀의 백성이 기뻐 따르도다. 혜아래소(傒我來蘇)- ‘어서 오시어 우리를 살피소서.’ 호장이영(壺漿以迎)- 음식을 싸 가지고 기다려 맞이했네. 시사불역(市肆不易)- 저자와 가게들도 매매를 정지하니 숙요이경(孰擾以驚)- 요란하게 떠드는 자 누구라 있었던가. 척피예덕(滌彼穢德)- 더러운 묵은 인심 깨끗이 씻사오니, 동해영청(東海永淸)- 동해의 바닷물이 영원히 맑으리니, 재순재응(載順載應)-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호응하여, 혜아민생(惠我民生)- 우리의 민생이 은혜 받아 살리로다."
세조시대 정대업-순응(順應)
여주거간(麗主拒諫) 감행칭란(敢行稱亂) 아운신단(我運神斷) 아수아반(我帥我返) 천인협찬(天人協贊)." | 고려의 임금이 충간(忠諫)을 거부하고 감히 난(亂)을 일으키는지라 우리 태조께서 신성하신 결단을 내리시어 우리 군사를 송도로 회군(回軍)시키어시니 하늘과 사람이 함께 협조하도다." |
태조의 무공을 노래한 것으로 정대업"의 11곡 중 여덟 번째 곡이며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정대업지악의 제4변인 「휴명(休命)」에서 가락의 일부를 차용하여 그 음악으로 삼고, 노래말은 역시 세종 때 창제된 「휴명」 다음 곡인 순응(順應)의 4언 12구의 한시를 4언 8구로 줄여 세조 때 ‘총유’라 이름하고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된 곡입니다 ‘총수’라는 곡명은 악장의 다섯 번째 구인 ‘혜아총유(徯我寵綏)’에서 ‘총(寵)’자와 ‘수(綏)’자를 따른 것인데 세종대 <순응>의 악장은 경서에 “어진 자가 혼란한 지역을 평정하러 오면, 그곳의 백성들이 도시락과 물을 들고 와서 그들을 맞는다”는 내용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이러한 <순응>을 축소한 <총수>의 내용은 <순응>의 것과 같습니다. 세조(1455~1468) 때 종묘제례악으로 개작된 "총유"는 "분웅"·"순응"·"정세"와 함께 아헌(亞獻)과 종헌 절차 때 연주되며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래말의 원문과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휴명(休命)
"아기재회(我旂載回)- 우리의 깃발이 도로 돌아옴은 제명시순(帝命是順)- 상제의 명령에 <순응>함이신져. 수기창의(誰其倡義)- 정의를 내세움이 그 누구던가. 신단독운(神斷獨運)- 신령한 결단으로 홀로 실행하셨네. 노재환성(路載懽聲)- 길에는 환성이 가득하고 삼군도도(三軍陶陶)- 삼군(三軍)이 힘차게 행진하매, 기경기계(旣警旣戒)- 두루 경계하고 두루 신칙하니, 숙범추호(孰犯秋毫)- 누가 추호인들 감히 범할손가. 연도박수(沿途搏獸)- 길에서 짐승을 잡으면서 아서보작(我舒保作)- 스스로 휴양도 하셨도다. 대순이정(大順以正)- 큰 순리로 바르게 하여서 경명유복(景命維僕)- 하늘의 큰 명령에 따르셨도다."
세조시대 정대업-총유(寵綏)
의기재회義旗載回 순내다조順乃多助 천휴진동天休震動 사녀열애士女悅豫 혜아총유徯我寵綏 호장용영壺漿用迎 기척예악旣滌穢惡 동해영청東海永淸" | 정의의 군기가 돌아옴이여 천명을 순종함에 천조가 많으시도다. 하늘이 주신 경복이 진동하나니 남녀들 즐거움에 넘치었도다. 우리 님의 사랑과 평화를 기대하면서 단지의 음식으로써 맞이하였도다. 이제는 더러움과 죄악을 씻어 없앴으니 동해의 우리나라 길이 맑으오리. |
현행 종묘제례악 중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의 헌례(獻禮)에서 연주되는 정대업(定大業)의 아홉번째 곡으로 원래는 삼언일구(三言一句)의 12구로 되었으나, 세조(世祖)가 12구를 6구로 줄였으며 청황종조(淸黃鍾調) 계면조의 이 곡은 세종(1418~1450) 때의 정대업 중에 "탁영"(濯靈)의 후반부를 따다가 만든 것입니다. 정세의 악장은 정몽주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위덕(威德)을 기(忌)하고 해치려하므로, 태종 이방원(李芳遠)이 그 기미를 살피고 없앴다는 내용으로 곡명은 노래말 중의 세이정(世以靖)에서 온 것이며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래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정세(靖世)
려계혼(麗季昏)- 고려의 꽃이 혼미하여 명유속(命有屬)- 국운이 돌아갈 데가 있는데, 피고신(彼孤臣)- 저 외로운 신하가 불자탁(不自度)-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선화기(煽禍機)- 화란을 선동하여 재호흡(在呼吸)- 숨쉴 사이 없을 제, 아성고(我聖考)- 거룩하신 아버님께서 병기기(炳其幾)- 그 기미를 살피시고, 결신책(決神策)- 신기한 계책을 결정하여 전언이(剪焉夷)- 단연히 제거하시니, 난기정(亂旣定)- 화란이 평정되어 경무기(慶無期)- 경사가 한없이 화락하도다.'
' 세조시대 정대업-정세(靖世) 피고신(彼孤臣) 선화기(煽禍機) 아황고(我皇考) 극병기(克炳幾) 신강정(神講定) 세이정(世以靖)." | 저 외로운 고려의 유신(遺臣: 정몽주)이 스스로 화환(禍患)의 기운을 선동(煽動)하였나니 우리의 거룩한 아버님 태종(太宗)께옵서 잘도 그 기밀(機密)을 밝히시샷다 신기한 모책(謀策)을 결정하시니 세상이 이로써 평안하도다." |
세종시대 정대업-혁정(赫整)
여실기어(麗失其馭)- 고려가 통어(統馭)를 잘못했기 때문에 외모유극(外侮維棘)- 외적(外賊)들이 깔보기를 심히 했었네.
도이유오(島夷維鷔)- 섬 땅의 오랑캐가 함부로 덤비어서 탄서서북(呑西噬北)- 서쪽으로 침노하고 북쪽을 갉아먹고, 기피남토(曁彼南土)- 남방의 일부에는 죽이고 불질러서 도소태공(屠燒殆空)- 땅들이 거의 모두 빈터로 되게 되며, 납구공치(納寇孔熾)- 나하추(納哈出) 오랑캐가 극성을 부리어서 심입함홍(深入咸洪)- 함길도의 내지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포휴건유(包烋虔劉)- 엄포하고 살육함을 막지당봉(莫之當鋒)- 당할 수 없이 하고, 역유홍건(亦有紅巾)- 홍건적이 또한 있어 백만기병(百萬其兵)- 그 군사 백만이라. 장구광분(長驅狂奔)- 미친 듯이 달려와서 함아경성(陷我京城)- 우리 서울 함락하고, 원여보험(元餘保嶮)- 올라(兀刺)가 험한 곳에 버티고, 얼승구난(蘖僧構難)- 못된 중이 변란을 꾸미며, 급피호적(及彼胡賊)- 호발도(胡拔都)가 감령변환(敢逞邊患)- 변방의 환난을 일으키기에 이르렀었네. 오황성조(於皇聖祖)- 아아, 위대할사, 거룩하신 태조께서 유건병월(有虔秉鉞)- 엄숙히 부월(斧鉞)을 잡으시와, 환환사정(桓桓四征)- 용장하게 사방을 치옵시니, 숙아감알(孰我敢遏)- 어느 누가 감히 막을손가. 아사당당(我師堂堂)- 우리 군사 당당하여 불측불극(不側不克)- 빗나가지 아니하고 기승부리지 아니하도다.
세조시대 정대업-혁정(赫整) 도이비여島夷匪姑 건유아원虔劉我圉 원혁아노爰赫我怒 원정아려爰整我旅 만소가풍萬艘駕風 비도명발飛渡溟渤 내복기소乃覆其巢 내도기혈乃擣其穴 비피홍모臂彼鴻毛 요우방열燎于方烈 경파내식鯨波乃息 영전접역永奠鰈域). | 섬나라 오랑캐들이 생각도 못하고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살해하니. 이에 우리의 분노가 격발되고 우리의 군대를 정비하도다. 만척의 배는 바람을 타고 나는듯이 발해를 건너도다. 놈들의 소굴을 복멸하였고 놈들의 구혈을 무찔렀도다. 비유하면 저 기러기 털에 불이 붙어 화염을 뿜는 듯. 고래같은 파도가 이내 멎어 길이 길이 동방을 안정시키다." |
정대업지악의 열한번째 곡으로 아헌(亞獻:두번째로 술잔을 올리는 일)과 종헌(終獻:세번째, 곧 마지막 잔을 올리는 일)의 인출장(引出章)에 연주되며 세종(1418~1450) 때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곡조를 차용해서 창제 되었는데 본래 이 곡은 "정대업"의 12번째 곡인 "화태"(和泰)를 세조(1455~1468) 때 개작하여 종묘제례악으로 사용하였을뿐아니라 영관은 무악(舞樂)의 유종의 미를 노래한 4언14구의 한시였다가 지금은 이를 줄여 4언8구로 노래하고 있으며 곡명은 노래말 중 ‘영관궐성(永觀厥成)’에서 온 것으로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래말의 원문과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정대업-영관(永觀)
"오황열성(於皇列聖)- 장하실사 여러 성군, 엄유대동(奄有大東)- 이 나라를 다스릴새 수정궐가(綏定厥家)- 왕가를 안정함에 세유무공(世有武功)- 대대로 무공일세. 유공지성(維功之盛)- 무공이 왕성하고 유덕지숭(維德之崇)- 덕화가 높은지고. 아무유혁(我舞有奕)- 우리의 춤에 차례가 있어 요이형용(聊以形容)- 적이나마 형용해 보이도다. 염아간척(斂我干戚)- 간척(干戚)을 거두오니, 진지유정(進止有程)- 나아가고 그침이 법도가 있어 위위타타(委委佗佗)- 씩씩하고 평화롭다. 영관궐성(永觀厥成)- 큰 성과를 길이 보오리. 세조시대 정대업-영관(永觀)악장
어황열성(於皇列聖) 세유무공(世有武功) 성덕대업(聖德大業) 갈가형용(曷可形容) 아무유혁(我舞有奕) 진상유정(進上維程) 위위타타(委委佗佗) 영관궐성(永觀闕成). | 아아 위대하신 우리 여러 조상님이시어 대대로 무공이 있으셨도다 그 성덕(聖德)과 위업(偉業)을 어지 가히 할 수 있으리요 우리의 춤에는 차서(次序)가 있으며 나아가고 머물음에 법도(法度)가 있도다 유유하고 점잖하게 행하여 길이 그 끝마침을 보이도다. |
* 歸仁(귀인)
황의상제(皇矣上帝), 구민지막(求民之莫). 내권오구(乃眷奧區), 내천명덕(乃遷明德). 인불가실(仁不可失), 우서영종(于胥景從). 기종여시(其從如市), 비아지사(匪我之私). 비아지사(匪我之私), 유인지귀(維仁之歸). 유인지귀(維仁之歸), 탄계홍기(誕啓鴻基).
다음은 정대업 중 ‘영관(永觀)’의 가사와 해석입니다.
오황열성(於皇列聖), 아아! 위대한 열성께서는, 세유무공(世宥武功). 대대로 무공이 있으셨네. 성덕대업(盛德大業), 성한 덕과 큰 일을, 갈가형용(曷可形容). 어찌 모두 형용할 수 있으랴? 아무유혁(我舞有奕), 우리 춤은 차례가 있어 진지유정(進止維程). 나가고 그치는 것도 법도가 있도다 위위타타(委委佗佗), 의적하고 또 편안하니 영관궐성(永觀厥成). 길이 <나라가> 이루어짐을 볼 수 있네.
종묘제례악에 쓰이는 음악으로 종묘제례의 네 번째 절차인 초헌(첫 번째 술잔을 올림)에 보태평을, 그 다음 절차인 아헌(두 번째 술잔을 올림)과 종헌(마지막으로 술잔을 올림)에는 정대업을 각각 사용하는데 보태평은 종묘제례의 초헌에 연주되는 악무(樂舞)입니다. 보태평에는 희문ㆍ기명ㆍ귀인ㆍ형가ㆍ즙녕ㆍ융화ㆍ현미ㆍ용광정명 ㆍ중광ㆍ대유ㆍ역성 등 모두 11곡이 있으며 일무는 문무(文舞)를 춥니다 보태평은 조상의 문덕(文德)을 칭송하는 내용인데, 세종이 조선 초기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 등 기존음악을 기초로 하여 회례연에 사용할 목적으로 창작하였다가 이후 세조 9년(1463)에 개작하여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보태평은 용광장과 정명장을 합쳐 ‘용광정명’이라 하고, 새로운 ‘중광장’을 추가하여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 연주되고 있는 보태평은 세종 이후 변화를 거친 것이기도 합니다.
보태평 첫번째 희문[熙文] [출처] 보태평첫번째 희문[熙文 ] |작성자 천상연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찬양하는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첫 곡으로 현행 종묘제례악 중 영신(迎神) · 전폐(奠幣) 그리고 초헌의 인입장(引入章)에 연주되며, 문무(文儛)를 담당하는 일무(佾舞)의 무원(舞員)이 음악에 맞추어 족도(足蹈)하며 입장하고, 영신에서는 헌가(軒架), 전폐와 초헌에서는 등가(登歌)에서 음악을 아룁니다. 원래는 세종 대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되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곡이 축소되었으며, 세종 때의 노래말은 5언 12구의 한시였으나,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영신과 전폐, 초헌 인입장에서 각각 5언 4구로 변하여 현재에 이릅니다. 곡명은 초헌 인입장의 <희문> 노래말 중 '희운(熙運)'과 '문치(文治)'에서 온 말로 현재 불리고 있는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희문(熙文)
유천명불이(維天命不易)- 대저 하느님은 명하심이 쉽지 아니하매, 유덕즉이흥(維德則以興)- 덕이 있으면 흥하나니, 오황아열성(於皇我列聖)- 높으신 우리 여러 성군들께서 가재휴명응(假哉休命膺)- 크게 아름다운 명을 받으시어, 신모여성렬(神謨與聖烈)- 신령하신 계획과 거룩하신 공업이 비현차비승(丕顯且丕承)- 크게 나타나고 크게 이으시도다. 응운개태평(應運開太平)- 운수에 응하여서 태평을 이루시고 지인무려증(至仁撫黎蒸)- 지극한 사랑으로 만백성을 기르시며 계우아후인(啓佑我後人)- 우리의 다음 세대를 열어주고 도우시매, 만세상승승(萬世相繩繩)- 억만 대 영원까지 이어가고 이어가리. 하이소성미(何以昭盛美)- 이렇듯 장한 일을 무엇으로 나타낼꼬. 시의가송등(是宜謌頌騰)- 마땅히 노래하여 찬송을 올리오리
세조시대 보태평-희문(熙文)
<초헌 인입장> "열성개희운(列聖開熙運) 병울문치창(炳蔚文治昌) 원언송성미(願言頌盛美) 유이시가장(維以矢歌章)" | 여러 성군께옵서 빛나는 국운을 여셨으니 찬란한 문화 정치가 창성하도다 언제나 우리는 성한 아름다움을 찬송하오며 이를 노래에 베풀어 부르나이다." |
[출처] 보태평첫번째 희문[熙文 ] |작성자 천상연
보태평 두번째 기명[基命] [출처] 보태평두번째 기명[基命]|작성자 천상연 "보태평"(保太平) 11곡 중 둘째 곡명으로, 목조(穆祖)의 덕을 기린 음악이며, 원래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보태평지악」은 「계우(啓宇)」였으며, 계우는 4언 12구로 이루어진 한시이며, 곡명은 곡명은 한시의 열 한 번째 구인 “大啓厥宇(대계궐우)”에서 “계(啓)”자와 “우(宇)”자를 취하여 이름하였습니다. 그리고 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곡이 축소되고 곡명이 「기명」으로 바뀌었으며, 세종 때의 노랫말인 4언 12구의 한시에서 세조 때 곡명이 바뀌면서 4언 4구로 축소되었습니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초헌(初獻) 때 연주되는 이 곡의 악조(樂調)는 청황종조(淸黃鍾調) 평조(平調)이고, 16박을 한 주기로 하는 장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종(1418~1450) 때 회례연(會禮宴)에 연주되던 "보태평"은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연주되도록 개작 되었으며, 그 악보는 『세조실록』 권48에 전해집니다. 이 악장의 곡명은 노랫말 중 '기아영명'(基我永命)에서 따온 것으로5선보는 『한국음악』 권11에 전하고, 이 악장의 한글 번역과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계우(啓宇)
"천감재상(天監在上)- 하늘의 살피심이 위에 계시사 자아민청(自我民聽)- 백성의 소리부터 들은 민지유귀(民之攸歸)- 백성의 돌아오는 데에 대명이정(大命以定)- 큰명을 정하여 주셨네. 오황성목(於皇聖穆)- 크시도다, 거룩하신 목조께서 휼준궐덕(遹峻厥德)- 높으신 그 덕으로써 동부우해(東浮于海)- 동으로 바다를 건너시어 경흥시택(慶興是宅)- 경흥(慶興)에 자리를 정하셨도다. 인심경모(人心競慕)- 인심이 모두 사모하여, 귀부일성(歸附日盛)- 돌아와 붙은 자 날로 왕성하며, 대계궐우(大啓厥宇)- 크게 문호를 개방하여 기아영명(基我永命)- 영구한 운명을 터 잡았도다.
세조시대 보태평-기명(基命)
오황성목(於皇聖穆) 부해사경(浮海徙慶) 귀부일중(歸附日衆) 기아영명(基我永命)" | 아아! 위대하고 거룩하신 목조(穆祖)께서 바다로 항행(航行)하사 경흥(慶興) 땅에 옮으시니, 귀부(歸附)하는 백성들 날로 많아져, 우리의 영구한 천명(天命)에 터 닦으셨나이다. |
원래는 임종(林鐘)을 주음으로 한 평조에 최상성으로 고선(姑洗)이 추가된 6음 음계의 곡이었으나, 세조 이후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의 5음음계로 바뀌었습니다.[출처] 보태평두번째 기명[基命]|작성자 천상연 세조(1455~1468) 때 개작된 "보태평"(保太平)의 11곡 중 세 번째 곡명으로, 종묘제향(宗廟祭享)의 초헌(初獻)에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 즉 "희문"(熙文)·"기명"(基命)·"귀인"·"형가"(亨嘉)·"집녕"(輯寧)·"융화"(融化)·"현미"(顯美)·"용광"(龍光)·"정명"(貞明)·"대유"(大猶)·"역성"(繹成)을 연주하며, 귀인의 용은 익조(翼祖)가 적도(赤島)로부터 덕원(德源)으로 돌아와 살 때 그를 따라오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것으로, 곡명은 노랫말 중 유인지귀(維仁之歸)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되었을 때는 의인(依仁)이라 하였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곡명도 귀인으로 바뀌었으며, 현재 불리고 있는 노랫말의 우리말 번역과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의인(依仁)
상제유혁(上帝有赫)- 하느님이 밝으시사 구민지막(求民之莫)- 백성 살 데 구하여서, 유차오구(維此奧區)- 덕원(德源)의 깊은 곳에 내천명덕(乃遷明德)- 밝은 덕화 내리시니, 민사경종(民斯景從)- 백성들이 따른지라 인불가실(仁不可失)- 어진이를 잃을손가. 월이종매(越以鬷邁)- 꾸역꾸역 몰려드니 기종여시(其從如市)- 저잣거리 같았도다. 기종여시(其從如市)- 저잣거리 같았으니 천소비의(天所畀矣)- 하늘의 준 바로다. 계아홍업(啓我鴻業)- 크신 업을 열었으니, 우천만사(于千萬祀)- 우리 나라 만만세.
세조시대 보태평-귀인(歸仁) 황의상제(皇矣上帝) 구민지막(求民之莫) 내권오구(乃眷奧區) 내천명덕(乃遷明德) 인불가실(仁不可失) 우서경종(于胥景從) 기종여시(其從如市) 비아지사(匪我之私) 비아지사(匪我之私) 유인지귀(維仁之歸) 유인지귀(維仁之歸) 탄계홍기(誕啓鴻基) | 위대하신 우리 상제(上帝) 민안(民安)함을 구하시사, 나라 구석 돌보시고, 밝은 덕의 임금 옮겨 살게 하셨도다. 어진 사람 잃을 손가 서로 향응(響應) 함께 좇네. 쫓음 마치 저자 같되, 사사로움 아니로고. 우리 용사(用私) 아님이여. 오직 인(仁)의 귀부(歸附)이네. 오직 인의 귀부여, 큰 터를 널리 열으셨소. |
1463년(세조 9) 최항(崔恒)이 지은 귀인이라는 이름은 사언절구(四言絶句)의 한 구절인 '유인지귀'(維仁之歸)에서 따온 것이며 청황종조(淸黃鍾調) 평조(平調)로 되어있고, 16정간보(井間譜)의 12장단의 악절로 구성된 이 곡은 초헌(初獻)의 "기명"(基命)과 "형가"(亨嘉) 사이에서 연주되었습니다. 원래의 임종궁평조(林鐘宮平調)에서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로 바뀐 5음음계의 곡이며 박(拍)은 매귀에 한번씩 들어가고, 한 자의 리듬은 5정간(井間)과 3정간의 연속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불규칙적입니다.
현행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한 곡명으로 "보태평"(保太平) 11곡 중 네 번째 곡입니다. 원래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만들어진 보태평지악의 제3변인 "형광(亨光)"을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하면서 음악을 축소하고 곡명을 바꾼 것이며 노래말은 익조(翼祖)와 도조(度祖)가 대를 이어 고려 임금을 섬기니, 고려 임금이 그들을 사랑하고 가상히 여겼다는 내용으로 원래 4언 10구의 한시였으나 세조 때 4언 6구로 축소되었으며, 곡명은 노래말 가운데 ‘대형이가(大亨以嘉)’에서 온 것으로 노래말의 번역문과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형광(亨光)
"오황성익(於皇聖翼)- 크시도다, 거룩하신 익조(翼祖)께서 소재지덕(昭哉至德)- 지극한 덕을 밝히시어, 익공익건(益恭益虔)- 공손하고 경건하게 이복궐벽(以服厥辟)- 그 임금을 섬기셨고, 성도계지(聖度繼志)- 거룩하신 도조(度祖)께서 그 뜻을 이어 맡아 종시무역(終始無斁)- 처음부터 나중까지 변함이 없으시매, 려주총가(麗主寵嘉)- 고려왕이 총애하여 권의사밀(眷倚斯密)- 돌보고 의지하기 더욱 긴밀하였으니, 유미충정(有美忠貞)- 충성으로 아름답고 유광전렬(有光前烈)- 공적으로 빛나도다."
세조시대 보태평-형가(亨嘉)
오황성익(於皇聖翼) 지복궐벽(祗服厥辟) 성도계지(聖度繼志) 권의사독(眷依斯篤) 대형이가(大亨以嘉) 경명유복(景命維僕)" | 아아 위대하고 거룩하신 익조께옵서는 그 임금에게 잘 복종하고 거룩하신 도조께서도 그 뜻을 이으시니 신임을 독실히 받았도다 넓게 창달하심을 아름다움으로써 하시니 크신 천명이 따르시었도다 |
[출처] 보태평네번째 형가[ 亨嘉 ] |작성자 천상연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송축하는 보태평(保太平) 11곡 중 5번째 곡으로 세종에 의하여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4언10구의 한시인 보예(保乂)라는 이름으로 회례연(會禮宴)에 쓰였으나, 1463년(세조 9) 이후 가사를 새로 짓는 등의 개작을 거쳐 제례악으로 쓰기 시작하였으며 악장의 이름은 노래의 다섯째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보예(保乂)
"쌍성단만(雙城澶漫)- 쌍성(雙城)이 멀기는 하지마는, 실유천부(實維天府)- 실상은중요한 곳이온데, 이실무수(吏失撫綏)- 관리가 정치를 잘못하여 민미안도(民未安堵)- 백성이 편히 살지 못하더니, 오황성환(於皇聖桓)- 크시도다, 거룩하신 환조(桓祖)께서 시리시주(是莅是主)- 이곳에 오시어 이곳을 주관하시매, 취후마부(吹煦摩拊)- 따스한 입김으로 어루만져 주시니, 인용녕밀(人用寧謐)- 인민들이 모두 다 편안하게 된지라, 총명시하(寵命是荷)- 은총의 명으로 책임을 받아서 봉건궐복(封建厥福)- 봉건(封建)한 지방을 복되게 하였네."
세조시대 보태평-집녕(輯寧)
쌍성단만(雙城亶漫) 왈유천부(曰惟天附) 이지불직(吏之不職) 민미안도(民未安堵) 성환집녕(聖桓輯寧) 유리졸복(流離卒復) 총명시하(寵命是荷) 봉건궐복(封建闕福). | 쌍성(雙城) 고을이 멀리 떨어져 있다 이를 천부(天附)라고 불렀에라 관리가 직책을 다하지 않아서 백성을 안도(安堵)한 날을 보내지 못했거늘 거룩하신 환조(桓祖)께서 화기롭게 편안케 하시니 유리하던 백성들 마침내 복업(復業)했도다 천제(天帝)의 충애 받은 명이 이에 부하(負荷)되어 크게 그 복이 세워졌도다. |
[출처] 보태평다섯번째 집녕[ 輯寧 ] |작성자 천상연
원래 고려 속악인 <풍입송(風入松)>을 줄여 만든 곡으로 임종 궁평조(林鍾宮平調)에서 황종궁평조(黃鍾宮平調)로 세조 때 바꾸어진 5음음계의 곡이며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여섯번째 곡입니다. 이곡은 현행 종묘제례악 중 초헌의 헌례에 연주되며,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보태평지악의 제5변이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었으며 주로 태조의 덕을 찬양한 곡으로 노랫말은 모두 4언12구의 한시로 되어 있고, 곡명은 노랫말 중의 '신화융흡(神化隆洽)'에서 따온 것으로 노랫말의 원문과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융화(隆化)
"오황성조(於皇聖祖)- 크시도다, 거룩하신 태조께서 화기남북(化曁南北)- 그 덕을 밝히시와, 인수의복(仁綏義服)- 사랑으로 안유하고 의리로 복종시켜 화기남북(化曁南北)- 덕화가 남과 북에 퍼지니, 경피도이(憬彼島夷)- 먼 섬의 되족속과 급기산융(及其山戎)- 산속의 오랑캐들이 혁면공숙(革面孔淑)- 면목을 깨끗이 고쳐 막불솔종(莫不率從)- 모두모두 잇따른다. 제항헌침(梯航獻琛)- 산 넘고 물을 건너 보물을 바치면서 내동역역(來同繹繹)- 사방에서 모여 오니, 오혁궐령(於赫厥靈)- 빛나는 생명들이 가까운 데 편안하고 이안원숙(邇安遠肅)- 먼데까지 조용하였다."
세조시대 보태평-융화(隆化)
오황성조(於皇聖祖) 휼준궐덕(遹駿厥德) 인수의복(仁綏義服) 신화융흡(神化隆治) 경피도이(憬彼島夷) 급기산융(及其山戎) 공숙이회(孔淑以懷) 막불솔종(莫不率從) 항지제지(航之梯之) 관아역역(款我繹繹) 어혁궐령(於赫厥靈) 이타원숙(邇妥遠肅) | 아아 위대하고 거룩하신 태조께서 아 그 덕이 크시도다. 어짐으로 안정하게 하시고 의로 복종하게 하셨으니 신성하신 교화가 융성하고 흡족하였도다. 멀리멀리 저 섬 오랑캐로부터 저 산 오랑캐에 미치기까지 지극히 착하게 하시므로 포섭하시니 무리를 따르지 않는 자 없도다. 물을 건너고 산을 넘으시어 우리를 성복하게 하심 무궁하시도다. 아아 빛나는 그 신령스러움이여 가까운 데는 안도하게 하시고, 먼 곳은 엄숙하게 하셨도다 |
[출처] 보태평여섯번째 융화[ 隆化 ] |작성자 천상연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일곱번째 곡으로 원래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만들어질 때는 제6변으로 곡명이 <승강(承康)>이었으나, 세조 때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현미>로 바뀌었고 곡도 축소되었으며 노래말은 태종의 왕위사양을 찬양한 것으로 5언 10구의 한시에서 세조 때 5언 4구로 바뀌었고 곡조또한 원래의 임종궁평조(林鐘宮平調)에서 황종궁평조(黃鐘宮平調)로 바뀐 5음음계의 곡입니다. 곡명은 가사 중의 마지막 구인 ‘돈양현미덕(敦讓顯美德)’에서 온 것으로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승강(承康)
"오황아성고(於皇我聖考)- 크시도다, 우리 거룩하신 아버님께서 대계보사직(大計保社稷)- 큰 계획으로 사직을 보전하셨네. 혁위이위안(革危以爲安)- 위태함을 혁파하여 평안하게 하옵시니, 여정고소속(與情固所屬)- 여론과 인심이 잇따르게 되었네. 공열광혁혁(功烈光赫赫)- 공덕과 업적이 혁혁하게 빛나시되 돈양경미독(敦讓慶彌篤)- 돈독하신 사양이 아아 더욱 도타우셨네. 제명불가위(帝命不可違)- 상제(上帝)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시어 종연응보력(終然膺寶曆)- 마침내 보배자리에 응하셨도다. 수명기불태(受命旣不殆)- 천명을 받으심이 이미 평안하시매 억재하백록 億載荷百祿)- 억만세 길이길이 백록을 부리시리."
세조시대 보태평-현미(顯美)
어황아성고(於皇我聖考) 감난보종우(戡難保宗祐) 구가예망융(謳歌輿望隆) 돈양현미덕(敦讓顯美德)." | 아아 위대하고 거룩하신 아버님께서 국란을 극복하사 사직을 보하셨도다. 그 덕이 구가되고 중망이 높으셨으나 굳이 왕위를 양여하사 미덕을 나타내시었도다. |
[출처] 보태평일곱번째 현미[ 顯美 ] |작성자 천상연
당적·젓대·당피리·해금·아쟁·박·장구·절고·방향·편종·편경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불리어 지며 일명 "용광"(龍光)·열광정명(烈光貞明)이라고도 하는데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여덟번째 곡으로 초헌(初獻) 때 연주되며 본래 "용광"과 "정명"은 세조(1455~1468) 때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8번째와 9번째 곡명이었는데 1625년(인조 3) 선조대왕의 위업(偉業)을 기리기 위해 "중광"(重光)이라는 새로운 악장이 신찬(新撰) 되며 이 "중광"을 "정명"과 "대유"(大猶) 사이에 끼어 넣어 "용광"을 "정명"과 하나로 붙여서 "용광정명"이라고 불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곡명은 각각 노래말 중 ‘혁재용광(赫哉龍光)’, ‘기여정명(猗歟貞明)’에서 따온 것입니다. 노래말도 세종 때 태종과 원경왕후의 덕을 찬양한 4언10구의 (창휘)와 (정명)에서 줄여서 4언12구로 사용하였으며 용광정명의 곡명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열광정명"으로 바뀌어 오늘날 국립국악원에서 "열광정명"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용광"과 "정명"의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창휘(昌徽)
"천자방제(天子方懠)- 천자(天子)가 성을 내면 즉미가석(則未可釋)- 풀 수가 없는지라. 오황성고(於皇聖考)- 크시도다, 거룩하신 아버님께서 염아종우(念我宗祐)- 선대의 영위[宗祐]를 염려하시매, 기탄아예(豈憚我勩)- 몸소 수고를 어찌 꺼리시랴, 행매유극(行邁維亟)- 멀리 다니심이 몹시 바쁘셨네. 부주기명(敷奏旣明)- 사실을 보고함이 이미 분명하매 충성이창(忠誠以彰)- 충의와 정성이 밝게 드러났도다. 미우천자(媚于天子)- 천자(天子)도 기뻐하니, 혁재용광(赫哉龍光)- 빛나도다, 용광(龍光)이시여."
세종시대 보태평-정명(貞明)
"사제성모(思齊聖母)- 성모(聖母)를 흠모[思齊]하시고 현천유정(俔天幽貞)- 천사(天使)같이 유정(幽貞)하시와, 빈아왕가(嬪我王家)- 우리 왕가(王家)에 들어오셔서 유덕지행(維德之行)- 덕으로써 행하시매, 재보종조(載保宗祧)- 조종의 묘당(廟堂)을 받들어 보전하고 찬모윤장(贊謀允臧)- 꾀를 도우심에 진실로 착하시며, 우아비도(佑我丕圖)- 우리의 큰 계획을 도우시어 이어방가(以御邦家)- 이 나라를 주름잡아 다스리시었도다. 극창궐후(克昌厥後)- 후손의 번창하심이 이룩되어 영보무강(永保無彊)- 길이길이 끝없이 보전하시오리."
세조시대 보태평-용광(龍光)
천자방제(天子方濟) 방인우황(邦人憂惶) 성고입주(聖考入奏) 충성이창(忠誠以彰) 미우천자(媚于天子) 혁재용광(赫哉龍光)." | 천자가 바야흐로 노(怒)하시니 국인(國人: 고려사람)들이 근심하고 두려워하도다 거룩하신 아버님(太宗)께서 천자께 말씀하와 충성된 마음을 나타내시도다 천자에게 어여삐 뵈이시니 아아 빛나도다, 임의 영광이여." |
세조시대 보태평-정명(貞明) 사제성모(思齊聖母) 극배건강(克配乾剛) 감정궐난(戡定厥亂) 찬모윤멸(贊謀允滅) 기여정명(掎歟貞明) 계우무강(啓佑無疆)." | 어여쁘시고 거룩하신 어머님(太宗妃)께서는 갈도 군왕의 배필(配匹)이 되셨도다 난리(鄭道傳의 난)를 평정하심에도 모의(謀議)에 내조하심이 실로 훌륭하셨도다 아아 그처럼 바르시고 맑으심이여 도움을 푸시기 끝이 없으리 |
곡명은 노래말 가운데 ‘준덕중광(峻德重光)’에서 따온 것으로 보태평"(保太平) 11곡 중 아홉 번째 곡명이며 이 악장은 1625년(인조 3) 선조대왕(宣祖大王)이 이룩한 광국중흥(光國中興)의 위업(偉業)을 기리기 위해서 새로이 창제 되었으며 이 악장의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황선조(於皇宣祖) 준덕중광(峻德重光) 격천소무(格天昭誣) 정아종방(正我宗枋) 항의제흉(抗義除凶) 전아봉강(奠我封疆) 수리계후(受釐啓後) 유구치창(悠久熾昌)." | 아아! 위대하옵신 선조(宣祖)께옵서 높은 덕이 거듭 빛나시도다 천자께 통달(通達)하사 무함(誣陷)을 밝히시어 우리 종묘의 종계(宗系)를 시정하셨으며 의(義)를 들어 간흉(姦凶)을 제거하시어 우리의 강토(疆土)를 진정하시도다 복을 받아 후손에게 열러주시니 유구(悠久)토록 성장함이 빛나리로다." |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열번째 곡으로 원래 세종 때 회례악(會禮樂)으로 창제된 보태평지악의 제8변「대동(大同)」을 세조 때 「대유」라 바꾸고, 그 음악을 축소하여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한 곡이이며 노랫말은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찬양한 곡으로 5언 12구의 한시였으나,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5언 4구로 축소되었습니다. 곡명은 노랫말 중 “대유하황황(大猷何煌煌)”에서 온 것이며 원문과 노랫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대동(大同) 악장 "오황아조종(於皇我祖宗)- 크시도다. 우리 조종(祖宗)들께서 수명기부장(受命旣溥將)- 천명을 받으심이 이미 넓고 크시도다. 계계부문덕(繼繼敷文德)- 대대로 문덕(文德)을 펴시어서 재용수사방(載用綏四方)- 이로써 사방을 안유하셨네. 측석구현준(側席求賢俊)- 자리를 기울이어 어진이들을 구하여서 숭문중유술(崇文重儒術)- 문덕(文德)을 숭상하고 유술(儒術)을 중히 여기매, 존려식진교(尊麗式陳敎)- 미려함을 정하여 좋은 교육을 시행하니, 치화선이흡(治化宣以洽)- 정치와 교화가 흡족하게 펴지도다. 예악극제작(禮樂極制作)- 예의와 음악이 극진히 제작되매 병울개융창(炳蔚開隆昌)- 빛난 문화가 융창하게 열리니, 연익이만세(燕翼貽萬世)- 자손 만대 위한 일 의여유열광(猗歟有烈光)- 장할사, 길이 빛나오리."
세조시대 보태평-대유(大猷)
열성선중광(列聖宣重光) 부문수사방(敷文綏四方) 제작기명비(制作旣明備) 대유하황황(大猷何煌煌)" | 여러 성군께서 거듭된 명덕을 베푸시고, 문화를 펴서 사방을 안치하시도다. 예와 악의 제도가 이미 완비되었으니, 크신 왕도여 어이 그리도 휘황할꼬 |
보태평 열한번째 역성 현행 종묘제례악 중 초헌(初獻)의 인출(引出)에 연주되는 보태평지악(保太平之樂)의 열한번째 곡으로 노래말은 끝 제사를 올린다는 뜻이며 조종(祖宗)의 문덕(文德)과 태평함을 찬양한 4언12구의 한시였으나, 세조 때 4언 8구로 축소되었으며 원문과 우리말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종시대 보태평-역성(繹成)
"천생열성(天生列聖)- 하늘이 여러 성군을 나게 하시니 총수대동(寵綏大東)- 이 나라를 사랑하고 안유하셨네. 세덕작구(世德作求)- 여러 대의 덕화로 애써서 구한 것이 솔유미공(率維敉功)- 어루만진 공을 잇따라 하심이니, 공성흡정(功成洽定)- 공이 이룩되고 정치가 안정되매 신화미륜(神化彌綸)- 신령한 교화가 널리 두루 펴지도다. 예악명비(禮樂明備)- 예의와 음악이 밝게 갖춰지매 환호기문(煥乎其文)- 문덕(文德)이 이에 찬란하게 빛나도다. 좌약우적(左籥右翟)- 왼편에는 약(籥)을 들고, 오른편엔 꿩깃이라. 왈기구변(曰旣九變)- 노래 곡조가 아홉 번 변하오매 희희옹옹(熙熙雍雍)- 태평하고 화락하옴 진미우선(盡美又善)- 진선진미하오이다.
세조시대 보태평-역성(繹成)
세덕작구(世德作求) 솔사수공(率絲數功) 광천태평(光闡太平) 예악방융(禮樂方隆) 좌약우적(左籥右翟) 왈기구변(曰旣九變) 식소광열(式昭光烈) 진미진선(盡美盡善). | 조상님이 쌓으신 덕을 끝맺으려 하와 그 거룩하신 사업을 좇나이다 그 빛이 태평함을 나타내니 예악(禮樂)이 바야흐로 융성하도다 왼손에 약(籥)을 들고 오른손에 적(翟)을 들 어 춤출 제 음악은 벌써 아홉 번이나 바뀌었다오 이로써 선조의 공렬(功烈)을 밝히오니 온갖 미(美)와 선(善)이 발양(發揚)되나이다." |
cafe.daum.net/atamk/IDO1/22 가곡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