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통일교육원의 ‘북한의 문화재 실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인터넷언론 ‘통일뉴스’ 등을 통해 북한의 문화유산을 둘러본다.
◇경복궁·불국사가 북한 문화재?=북한의 문화재는 2008년 기준으로 2816점이다. 유물 208점(국보 87, 준국보 121), 유적 1916점(국보 193, 준국보 1723), 천연기념물 469점, 명승지 223점 등이다. 우리나라 1만1507점에 비해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문화재 정책이 유적과 유물 등 물질문화재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보 1호는 평양성이다. 남한의 국보 1호는 숭례문이다.
북한의 유적 중에는 ‘교시유적’이라는 것이 있다. 김일성·김정일이 특별하게 중요하다고 평가한 유적이다. 교시유적에는 경복궁·불국사·석굴암·첨성대·황룡사 9층탑 등 남한에 있는 문화재도 포함돼 있다. 북한에서 교시유적은 학술적 연구나 보존 사업에서 우선적인 대상이 된다. 이는 천연기념물의 영역에서도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자료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김일성·김정일이 직접 심은 ‘릉라도 산벗나무와 전나무들’이 북한 천연기념물 1호인 것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는 고구려고분군과 개성 역사유적지구 등 2개가 있다.
생물권보존지역으로는 백두산, 묘향산, 구월산, 칠보산 등 4곳이 지정됐다.
이 중 칠보산은 북한이 ‘함북 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산이다. 사시사철 풍경도 달라 봄에는 꽃동산, 여름에는 녹음산, 가을에는 홍화산, 겨울에는 설백산이라고 불린다. 북한에서 운전원이었던 탈북청년 김영남씨는 “북한 여행지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함북 칠보산”이라며 “금강산마냥 칠보산도 내칠보·외칠보·해칠보로 나뉘는데, 기암절벽이 금강산보다 빼어나다”고 자랑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고구려 고분벽화=세계유산 ‘고구려고분군’은 평양 부근에 있는 5개 지역 고분군 63기다. 평양시 역포구역 동명왕릉, 진파리 1호분 등 15기,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사신무덤 등 34기, 평안남도 대동군 덕화리 고분 3기,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강서세무덤 3기, 안악3호분, 독립고분 8기 등이다.
유네스코는 고구려고분군을 ▲고분 벽화는 고구려 문화의 걸작이며 고분구조가 정교한 건축공법을 보여주고 ▲고구려 매장문화는 인근 국가에 영향을 끼쳤으며 ▲고분은 고대 매장 양식의 중요한 사례라고 꼽았다.
고구려 고분은 분묘 형태상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돌로 쌓아 만든 돌무지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흙으로 덮은 봉토무덤이다. 이 중 평양 고구려 고분은 5∼6세기 후기 고구려 유적으로, 대부분 봉토무덤 형식으로 벽화를 그린 무덤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동명왕릉은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36호로, 427년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함께 옮겨왔다고 전해지는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무덤이다.
가로 34m, 세로 34m, 높이 11m의 원형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왕릉 뒷쪽에는 10여 기의 고구려 무덤이 있고, 앞에 정릉사지가 있어 현재 전해지는 고구려 왕릉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능구역이다.
고구려 고분군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안악 3호분과 강서대묘다.
안악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으며, 고구려 고국원왕릉으로 알려졌다. 이 무덤의 벽화에는 무악의장대, 주인공이 문무관을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장면, 시녀를 거느린 안주인, 외양간, 차고 등 생활지역 등이 그려져 있다. 특히 회랑에는 왕으로 상징되는 ‘백라관’을 쓴 주인공이 수레를 타고 문무백관·악대·무사 등 250여명에 달하는 인물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대행렬도가 그려져 있어, 당시 사회·문화 등 고구려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평안남도 강서룬 삼묘리에 있는 국보 제3호 강서대묘는 다양한 동물이 그려져 있어 주목받는다.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현무’ 그림이 있다. 북쪽 벽에 그려진 현무는 거북과 뱀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로, 청룡(동)·백호(서)·주작(남)과 함께 북쪽을 상징하는 신이다.
◇국제도시 개성…찬란한 고려=개성은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고려의 수도였다. 한때 인구가 70만 명에 이르렀다. 중국·동남아·아라비아 등과 교류한 국제도시였다.
개성의 역사유적은 크게 3개 분야로 나눠진다. 고려 왕실의 흔적인 궁궐터와 왕릉(고려왕릉·만월대·첨성대), 도심방어시스템을 보여주는 성벽과 대문(개성 성벽·남대문), 충신 정몽주를 기리는 각종 유적 및 교육기관(고려 성균관·숭양서원·선죽교·표충각)이다.
유네스코는 ▲고려왕조 이전 한반도에 있었던 여러 국가들의 문화적·정신적·정치적 가치의 동화를 보여주고 ▲5세기 이상 이웃국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된 증거를 보여주고 ▲통일국가 고려시대의 문명을 보여주는 특출한 증거라고 등재 이유를 설명했다.
개성 송악산 북쪽과 만수산의 남쪽 일대에는 고려시대 왕과 왕후의 무덤 20여 기가 남아 있다. 개성역사유적에 포함된 왕릉은 태조 왕건릉(북한 국보유적 179호)과 공민왕릉(국보유적 123호), 고려 29대 충목왕의 무덤인 명릉과 인근 무덤, 주인이 밝혀지지 않은 무덤군인 칠릉떼 등이다.
고려왕릉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유포된 풍수사상에 따라 주로 산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조성됐다. 3∼4층의 기단을 놓은 후 맨 윗단에 봉분을 쌓고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특히 공민왕과 부인 노국공주의 무덤이 나란히 놓인 공민왕릉의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규모·형식에서 조선왕릉의 원형이 되는 무덤으로 꼽힌다.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숭양서원은 1573년(선조 6년) 개성의 유림들이 정몽주의 집터에 세운 서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의 하나로 정몽주의 글씨와 초상화·지팡이·의상 등이 보관돼 있다. 숭양서원 인근의 선죽교는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살해된 곳이다. 1216년 다리가 만들어졌을 때 선지교(善地橋)로 불렸지만 다리 주위에 충절을 뜻하는 대나무가 돋아났다고 해서 선죽교(善竹橋)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고려 성균관 건물은 현재 고려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고려시대 유물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송악산 기슭에 있던 고려의 궁궐은 조선시대에 모두 소실됐다. 현재는 그 터인 만월대만 남아 있다. 궁궐은 사라졌지만 개성 남대문(국보급문화재 제34호)이 남아 고려시대 건축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남대문 안에는 연복사종이 있다. 이 종은 1346년 만들어져 금강산의 연복사에 있다가 1563년 절이 소실되자 이 곳으로 옮겨졌다. 20세기 초까지 타종돼 개성사람들의 ‘시계’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