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타려도, 사호위기도

2017. 7. 18. 04:23美學 이야기


       흥선스님 문화재 특강 / 진단타려도, 사호위기도| 내가 쓴.....자작글

정행심 | 조회 78 |추천 0 | 2017.03.24. 22:00


   지난 일요일(3.19) 오후, 김천시립미술관에서 흥선스님 문화재특강이 있었습니다.

스님의 유명세를 타고 서른 명 이상이 수강했고, 스님은 두 시간 넘도록 종횡무진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매번 궁금한 것은 인물의 생몰연대와 세세한 스토리를 어떻게 다 기억하는지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강의 내용은 우리나라 옛그림을 감상하면서 화가와 등장인물, 역사적인 배경을 畵題와 연관시켜서 한문도 함께 공부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우리가 배우는 것은 주로 해서이지만 실제 우리가 만나는 것은 해서는 적고 다른 서체가 많아요. ppt로 그림을 감상하면서 실전 한문을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부담 가지지 말고 편안하고 즐겁게 감상하고 오래하다 보면 안목이 저절로 높아지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두 시간에 두 개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화제를 공부했습니다.


 

1. 공재 윤두서의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언뜻 그림을 보면 인생의 좌절을 그린 <落馬圖>로 보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말이 아니라 당나귀이고, 불운한 표정이 아니라 나귀에서 떨어지면서도 희희낙낙한 표정입니다.

왜냐고요? 화제에 정답이 있어요.

중국 송나라의 시조 조광윤이 임금으로 등극했기 때문에 희이 진단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나귀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화제는 숙종이 해서로 적었고요.


 

 

**화제

希夷何事忽鞍

非醉非眠別有喜

夾馬徵祥眞主出

從今天下可無悝

    歲在乙未中秋上浣題

 

희이 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별다른 기쁨이 있다네

협마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군주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을미년 8월 상순에 쓰다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서--


   물 뿌리고 비질한 마당처럼 그지없이 깨끗한 길, 맑고 투명한 대기 속에 나뭇잎 하나 풀잎 하나까지 정갈해 보이는 아침, 뒤편 숲에는 상서로운 안개마저 서려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복건을 쓴 점잖은 선비가 갑자기 나귀 위에서 미끄러져 그만 고꾸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옆에서 따르던 동자 아이가 기겁을 하여 책봇짐을 내던진 채 주인을 붙들려고 내닫고, 반대편 길을 향해 가던 젊은 나그네는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동자만 혼자 허겁지겁할 뿐 정작 낙상을 코앞에 둔 당사자의 얼굴에는 상황에 걸맞지 않게 함박웃음이 만발해 있고, 또 이네들을 바라보는 나그네의 표정에도 아직 얼굴 가득 흐뭇함이 어려 있다는 점이다.


   위 시를 적은 글씨는 참으로 반듯하고 단아하여 보통 사람의 솜씨가 아닌 듯 싶다. 그 주인이 누군지 궁금하여 말미에 찍은 주문방인을 살펴보니 인문은 ‘신장(宸章)’이다. ‘신장’이라면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임금의 글’이라는 뜻이다. …… 당시의 임금은 바로 숙종이요, 그 재위 41년째 되는 때이다.


   먼저 그림의 주인공인 저 풍채 좋은 도사는 호를 희이선생이라 하는 진단陳摶이다. …… 희이선생은 난세 중에 여러 왕조가 번갈아 일어서고 새 황제가 등극할 적마다 여러 날 찌푸린 얼굴을 짓곤 했다고 한다. 그것은 저들이 천하를 길이 안정시킬 ‘참된 군주’가 아니라, 잠시 힘으로 권좌를 차지한 ‘거짓 군주’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은 흰 나귀를 타고 지금의 하남성 개봉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는 행인에게서 조광윤이란 인물이 송나라를 세우고 태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터 조광윤을 진정한 황제의 재목으로 생각해왔던 선생은 그 얘기를 듣고 박장대소를 하며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그만 안장에서 미끄러졌는데, 그 다급한 와중에서도 ‘천하는 이제 안정되리라!’하고 외쳤다는 것이다."

 

2. 이경윤의 <사호위기도四皓圍棋圖>

 

   첫 시간에 <진단타려도>의 정갈하면서도 익살스런 그림과 숙종의 짧으면서도 단정한 해서체 화제를 감상하면서 우리는 실전한문에 입문한 듯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림과 글씨에서는 기가 팍 죽었다. 오세창의 화제가 길기도 했지만 추사체 같은 괴이한 서체와 어려운 한자와 많은 인명에 어지럼증이 일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그림은 나오는데 화제는 나오지 않았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화제를 읽어냈을 때의 기쁨이라니~~~


 

**화제

원문은 생략.

이 그림은 학림정 이경윤(호가 낙파)이 그린 ‘사호위기도四皓圍棋圖’이다. 우리나라 명화는 종실에서 많이 나왔다. 비해당 이후로부터 이성군 관과 두성령 암이 있다. 선조 재위 시에 석양군의 대나무와 이성군 종증손 학림정 및 죽림수 영윤 형제의 산수 인물화가 한 세대 이름을 드날렸다. 뒤이어 허주 이징이 세상에 이름을 날렸는데, 학림의 셋째 아들로 아버지를 뛰어넘는 재주가 있다.


   ‘청죽화사廳竹畵史’에서 일찍이 학림의 그림을 논하기를

“고담한 가운데 정취가 있고, 고고한 가운데 색태가 있다. 충분히 단련되고 충분히 씻겨서 한 점의 거친 기운도 없다. 金禔에 비해 지나친 것은 있으나 미치지 못한 것은 없다.”


   진실로 정당한 평가로, 이 그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그림은 옛날에 박 금릉위 영효가에 있었는데 관지가 없는 연담의 인물화와 함께 궤짝에 숨겨져 있었다. 하루는 진위를 감별해 줄 것을 요청해서 내가 이에 어루만지며 탄식하며 말하기를, 옛부터 명화는 매번 관지가 없는 것이 많아서 안타깝다. 그러나 참되고 아름다우면 관지가 없는 것이 무슨 해가 되겠는가? 26,7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제 일인 것 같다. 뜻밖에 오늘 홀연히 늙은 눈에 비쳐서 다시 한 번 보니 ‘인금지감人琴之感’을 금할 수 없다.

  

   그림을 사랑하는 마니아는 차마 손에서 놓을 수 없어서 재빨리 주머니를 털어서 그림을 사서는 그림 옆에 그 내력을 기록했다. 명적을 오손시킬까봐 심히 당황스럽지만 후세에 그것을 증명시키려면 이것을 버리고 따로 말미암을 것은 없다. 또 알지 못한다. 연담의 그림이 홀로 어디에 굴러 떨어져있는지. 생각건대 학림은 인종 을사년에 태어나 지금 407년이 지났다. 이 그림은 허주가 태어난 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신사년은 지금의 신사년과의 거리가 여섯 번의 신사가 지나간 것과 같으니 360년이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종이의 질은 완벽하게 상태가 좋으며, 정미로운 색채는 손상되지 않아서 나무와 돌과 옷주름이 금방 그린 듯 생생하니 가히 보배로다!

     신사년 윤가을 무궁화꽃비 내리는 창가에서 늙은이 위창 오세창 쓰다. 나이는 78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