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潭 吳達濟 墨梅圖 [추담 오달제 묵매도] 족자 비단 종이위에 수묵. 108.8 x 52.9 cm. 병자호란 때 화의(和議)를 끝까지 반대하다 청나라에 잡혀가 죽은 충신 오달제(吳達濟)는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세칭 삼학사(三學士)로 일컬어지며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꼿꼿한 절의와 기개로 후학의 존중을 받았다. 조선 중기 묵매화의 대표적 화가 중 한 명이었던 그의 매화 그림은 부드럽고 능숙한 담묵 처리를 보여 그의 높고 깨끗한 충정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기백이 뛰어난 그의 묵매도는 조지운(趙之耘), 홍수주(洪受疇), 조희룡(趙熙龍) 등의 매화 그림에 영향을 주었다. 이 묵매도 그림은 왼쪽으로 휘었다가 오른쪽으로 가지를 뻗쳐 화면을 대담하게 분활하는 굵은 둥치와 가늘게 자라난 마들가리를 엇갈리게 배치한 구도가 인상적이다.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붓으로 꽃잎을 조그마하게 그리고 짙은 먹으로 꽃술을 점점이 표현하여 순수하고 청초한 매화의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매화꽃은 세 가지 중 잔가지가 좌우로 솟은 거의 화면 중심에 있는 가지의 사이사이와 새순 끝에 점점이 피었는데 다른 가지에는 눈만 붙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 시대 양식에 따른 것이지만 이 그림에 보이는 서릿발 같은 기백은 가히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숭엄해지게 한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둥치 가운데를 하얗게 남겨놓는 비백법(飛白法)과 몰골(沒骨)로 망설임 없이 매화를 그렸는데 죽죽 그어 올라간 필치는 기교보다도 능숙한 필력으로 활달하게 그어나간 기백이 힘차고 굳건한 느낌을 준다. 묵매도에는 숙종과 영조의 어제(御製) 2편이 씌어 있다. 그림 위에 이어진 비단 부분에 쓴 숙종의 시는 삼학사의 절의와 함께 오달제의 충효를 일깨우면서 충신의 후손이 이어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숙종 때는 오달제에 대한 추모와 현창사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시호 충렬(忠烈)이 내려졌고 돌아간 지 60주년이 되는 1697년(숙종 23년)에 유고집인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가 간행되었다. 1705년(숙종 31년)에 이르러서 정려(旌閭)하고 치제(致祭)하였다. 숙종의 어제(御製)는 같은 해 12월에 쓴 것으로 그 배경에 오달제에 대한 추모사업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화면에 있는 영조의 어제(御製)는 오언유(吳彦儒)가 받들어 쓴 것이다. 오언유는 봉사손인 오수일(吳遂一)의 손자로 오달제에게 현손이 된다. 영조가 오언유에게 어제(御製)를 내린 때는 병자년(1756년, 영조 32년)이다. 이날 영조는 동지(冬至)를 맞이하여 재신을 거느리고 창경국 명정전에서 망배례(望拜禮)를 행했다.영조실록에는 대사성 오언유가 숙종이 어제하고 충렬공 오달제가 그린 묵매 장자(障子)를 올렸고 영조가 여기에 제찬(題讚)을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영조의 어제에는 청의 침략이 있었던 병자년을 다시 맞는 감회가 드러나 있으며 숙종의 시를 이어 자신도 시를 지음으로써 선왕의 행적을 따른다는 의미도 아울러 나타냈다. 처음 그렸을 때 이 그림은 사군자의 하나로서 이른 봄의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의 고고한 품성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신하를 기억하는 왕의 찬시는 청나라의 회유와 압박에도 꺾이지 않는 오달제의 충정과 기개를 그림 속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보도록 이끈다. 담묵이지만 유달리 기백있는 필선은 청나라 조정을 통렬히 꾸짓었던 사대부의 기상을 나타내주는 듯한다. 숙종의 어제(御製) -1705년 숙종 31년- 妙筆吾東豈有二 [묘필오동기유이] 신묘한 붓놀림이 우리나라에서 어찌 둘이 있을까? 觀圖仍忽感前事 [관도잉홀감전사] 그림을 보니 갑자기 지난 시대의 사건이 느껴진다. 辭君不暫心忘國 [사군부잠심망국] 임금에게 하직인사하고 청나라 갈때도 마음은 잠시도 나라 잊지 않았고 對虜何嘗口絶詈 [대로하상구절리] 청나라에 끌려갔어도 그들을 통렬히 꾸짓지 않았는가? 節義昭昭三子同 [절의소소삼자동] 빛나는 절개와 의리는 세 분이 같지만 孝忠炳炳一身備 [효충병병일신비] 밝게 비추는 효성과 충성심은 오직 한 몸에 다 갖추어져 있다. 誰知嗣續終無傳 [수지사속종무전] 뒤를 이를 후손이 끝내 전승되지 않음을 누가 알겠는가? 於此難諶福善理 [어차난심복선리] 선행을 하면 복을 내린다는 이치를 참으로 알기 어렵다. 乙酉臘月下澣題 [을유납월하한제]을유년 섣달 하순에 지음 영조의 어제(御製) -1756년, 영조 32년 오언유가 씀- 忠烈公吳達濟梅花簇 [충렬공오달제매화족] 충령공 오달제 매화족자 御詩續贊仍賜其孫大司成彦儒 [어시속찬잉사기손대사성언유] 어시(御詩)를 이어서 짓고 그의 후손인 대사성 언유에게 주다. 今日望拜 緬億昔年 [금일망배 면억석년] 오늘 바라보며 인사를 올리니 아득히 지난 시대 일이 생각난다. 遙望中州 冞切愴然 [요망중주 미절창연] 중국 땅을 바라보니 더욱 더 처절하고 슬픈 생각만 豈幸此辰 得覽一簇 [기행차진 득람일족] 오늘 이 때에 충렬공이 남긴 매화족자를 볼 수 있음은 다행이 아닌가. 東閣一梅 忠烈筆蹟 [동각일매 충렬필적] 동쪽 건물에 있는 매화그림은 충렬공의 필적이다. 上有御詩 追慕興歎 [상유어시 추모흥탄] 윗부분에 있는 어시(御詩)는 충렬공을 추모하고 안타까워하였다. 韻律停久 敬續以贊 [운률정구 경속이찬] 오랫동안 공을 추모하는 시가 중단되어 삼가 이어서 이 시를 짓는다. 樹忠何歲 漢南夕雲 [수충하세 한남석운] 어느 때에 충성심을 세웠는가 한남에 저녁구름 때이다. 何以聊表 特賜其孫 [하이료표 특사기손] 어떻게 나의 마음을 나타낼까 특별히 그의 후손에게 준다. 崇禎紀元後 三丙子仲冬忠烈公吳達濟玄孫 [숭정기원후 삼병자중동충렬공오달제현손] 嘉善大夫行成均館大司成臣吳彦儒奉敎敬書 [가선대부행성균관대사성신오언유봉교경서] 숭정기원후 세 번째 병자년(1756년, 영조 32년) 11월에 충렬공 오달제의 현손인 가선대부 행 성균관대사성 신 어언유가 하교를 받들어서 삼가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