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82) 설악산 울산바위 요반길 / 궁극의 크랙등반 "너 자신을 뛰어 넘어라"|

2018. 2. 5. 06:33산 이야기



       

연재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82) 설악산 울산바위 요반길 / 궁극의 크랙등반 "너 자신을 뛰어 넘어라"| 새 일칠산악회공식카페방


파랑새 | 조회 27 |추천 0 | 2014.10.08. 19:30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82) 설악산 울산바위 요반길 / 궁극의 크랙등반 "너 자신을 뛰어 넘어라"

 

 밤새 울산바위 위쪽으로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영동지방에는 등반당일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다. 비 때문에 또 한 번

요반길 등반을 접는 일이 생길까 새벽까지 뒤척였다. 간신히 눈을 붙였다 일어나 울산바위 앞 마당바위에 올라서니 아침 8시.

바람이 어찌나 차갑고 센지 바람막이를 입어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등반준비를 하다 유대장을 만났다. 비너스길을 등반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는

다음날 미륵장군봉 신선벽에서 아무런 인삿말 없이 떠났다. 클라이머는 때로 원치 않는 별리를 맞는다.

요반길은 울산바위 앞 너른 마당바위에서 볼 때 왼쪽으로는 사선크랙, 오른쪽으로는 PC샹그리라와 번개길을 놓고 선이 굵은
크랙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만한 첫 번째와 두 번째 마디를 지나 수직으로 곧추선 등반선은 다섯째 마디 물이 흐르는 지대에
이르러 좌측으로 크게 휘게 되고 여섯째 마디에서는 다시 전면으로 등반선이 바꾸어 선이 첫눈오름 하는 클라이머가
공포감을 느끼기도 하는 일곱째 마디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하여 굵은 크랙선을 따라 아홉째 마디에서 등반은 끝난다.

하람산악회의 송기승 대장(법무법인 로고스 기획실장)이 함께 등반할 자일파트너들과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다. 핏줄같이
붉은 자일을 안전벨트에 메고 벽 앞에 섰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 듯 깊고 긴 심호흡을 여러 번 반복했다. 벽 앞에 서면
클라이머는 만감이 교차한다.

아마추어로는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5.12+를 선등하려면 음식물의 양도 조절해야 하고 체중 또한 100그램 단위로 관리해야
한다. 그는 거의 매일처럼 세 시간씩 달리고 또다시 암장의 홀드를 잡는다. 마치 송곳처럼 갈고 닦는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요반길 등반. 두 손으로 홀드를 잡은 그는 왼발과 오른발을 바위에 순차적으로 올려붙여 드디어 지상에서 벽으로 붙었다.

크랙 구간을 줄곧 직상하여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우측에 나있는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슬랩등반으로 덧장바위까지
오른다. 이곳에 캠을 하나 설치후 덧장바위를 넘어 첫째 마디 확보지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확보하지 않았다.
다시 슬랩등반을 이어가 다소 까다로운 두 번째 볼트를 통과한 후 오른쪽 크랙으로 들어간 후 출발지점에서 잘 보이지 않는
둘째 마디 확보점에서 '완료'를 외쳤다.

첫째 마디는 평이한 크랙이다. 덧장바위를 안고 올라갈 때는 왼쪽 발끝에 신경을 써서 확실한 지지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마디 두 번째 볼트에 진입하는 슬랩구간은 제법 짭짤하다. 둘째 마디까지 등반을 마치니 "요반길도 사람이 등반하는 길은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요반길은 다람쥐나 등반 할 바윗길"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셋째 마디는 수직의 크랙. 인수봉 취나드A 상단크랙을 직각으로 세워놓은 듯한 형상이 이럴까? 첫 볼트가 멀다. 약 5미터
정도. 레이백으로 출발하여야 하는데 수직상태이므로 어떻게 홀드를 잡고 발을 어느 지점에 놓을지 면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중간에 캠을 하나 설치하고 첫 볼트에 퀵을 걸고 숨을 고른 후 남은 두 개의 볼트를 돌파해야 한다. 첫 볼트 오른쪽에
튀어나온 바위는 손과 발을 이용하기에 좋다. 이 구간을 통과하면 셋째 마디 등반을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다.

넷째 마디 역시 좌향의 실크랙을 잡고 약 20미터를 등반해야 한다. 첫 볼트가 역시 멀지만 출발지점 우측 약 3미터 지점에
있는 튀어나온 바위를 활용하면 된다. 볼트수는 6개로 그래도 촘촘히 박혀있다. 작은 실크랙은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있으므로 역시 캠을 적절히 치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상단으로 올라가면 오른발로 우측 바위벽을 치고 올라가는 일명 '뒷발치기'를 하며 약간은 수월하게 등반할 수 있다.

다섯째 마디의 출발지점이 되는 넷째 마디 확보지점. 거의 80도 이상 수직의 벽에 스탠스가 좋지 않아 허리로 잔뜩 힘이
가해진다. 빌레이를 보기에 가장 좋지 않은 확보지점이다. 출발후 약 5미터 지점에는 폭이 약 2미터는 되는 검은 바위 구간에
물이 철철 흐른다.

물뿐이 아니다. 길게 자란 이끼가 머리를 풀고 물을 잔뜩 머금어 끈적하기까지 하다. 이 구간은 항상 물이 흐르기 때문에
자유등반이 쉽지 않다. 이 구간을 부를 마땅한 용어가 없느니 일단 '시냇물'로 부르자.

첫 볼트를 걸고 나면 그로부터 약 1미터 지점에는 오래된 하켄과 긴 슬링이 매달려 있다. 선등자라면 언더 홀드를 잡고
등반하기 힘들고 슬랩등반은 각도가 세고 트레버스를 해야 하는데다 볼트거리가 멀어 추락의 공포가 있다. 게다가
시냇물까지 흐른다.

한쪽 등을 벽에 붙이고 조금씩 밀며 조심스럽게 시냇물로 접근해서 중간 지점에 확실하게 캠을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첨벙소리가 나는 시냇물을 건너 다음 볼트에 퀵드로를 걸었다면 일단 한 호흡을 쉬면서 암벽화의 물을 옷으로 씻어 내자.
까짓 물과 이끼가 옷에 묻는 것은 무시하자. 미끄러지면 더 아프니까.

시냇물 구간을 지나서 미끄러워진 암벽화 바닥에 신경을 쓰며 조심조심 오르다보면 홀드가 좋아지는 후반부는 큰 어려움
없이 등반을 마칠 수 있다. 다섯째 마디는 역시 미끄러운 등반로를 돌파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섯째 마디 등반을 마치면
등반로가 우측으로 90도 확 꺾이면서 10여 명이 함께 쉴 수 있을 정도로 너른 공간이 나타난다. 취재팀은 이곳에서 준비해온
점심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웠다. 이제 전반전은 끝난 셈이다.

모두 9마디(10마디에는 앵커가 없다), 등반거리가 약 220미터에 달하는 울산바위 요반길은 1982년 요반구락부가 개척한
바윗길이다. 요반길은 개척후 3년이 지나고서야 요반산악회 김주환, 이재영 씨 등에 의해 초등되었다.

요반길은 비너스길, 번개길과 함께 울산바위의 3대 노가다길 중 하나로 불린다. 잊혀졌던 요반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요반산악회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요반산악회의 창립멤버들과 손정준(손정준클라이밍연구소) 소장. 윤대표, 이재영,
임근성, 김주환 씨 등이 힘을 합쳤다. 2012년 4월부터 9월까지 요반길의 부족한 볼트는 보완하고 확보지점은 모두
스테인리스 체인으로 교체보수한 것이다.

보수된 요반길은 손정준 소장이 자유등반으로 최초로 올랐고 수리산악회의 김재식 대표가 역시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그리고 여러 팀이 요반길을 등반했다고는 하지만 전구간을 자유등반으로 오른 팀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여섯째 마디. 벽등반을 통해 대형 침니를 빠져 나가는 구간. 첫 볼트가 다소 높이 있어 발디딤을 정확히 하고 올라 두 번째 볼
트에 확보를 하고 직상구간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애벌레처럼 기어가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손과 발 그리고 팔꿈치와 무릎을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여 바위를 밀다보면 이내 여섯째 마디의 확보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요반길은 2차에 걸쳐 개척되었습니다. 1차 개척 ㄷ대는 저는 참여 못 햇ㅅ습니다. 가장 어려운 크랙이 7피치라면
이미 볼트가 박혀 있었습니다. 이후 상단에 볼트 수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어 2차 개척에 들어갔는데 그 때
참여해 볼트를 박았습니다. 하단의 물길은 기억이 나는데 5피치 물길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네요.
('아름다운 시인' 김기섭 / 불의의 등반사고로 양손가락과 하반신이 마비된 김기섭 시인이 쓰는 글에는 쌍시옷과
쌍디귿이 없다.)


요반길 2차개척당시 '아름다운 시인' 김기섭 씨가 반침니 구간을 개척했다고 한다. 아마도 일곱째 마디를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이 구간 크랙과 반침니 구간이 확보물 설치조차 쉽지 않아 거의 죽기살기로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등반을 마치고
하강을 할 때에는 고도감에 자신도 모르게 콧물을 주루룩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도 다시는 이 바윗길을 등반하지 않았다.

일곱째 마디. 요반길의 최대 크럭스이자 하이라이트인 구간이다. 오늘의 선등자인 송기승 클라이머는 쉽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첫 번째 볼트를 걸 때부터 '쎄다"고 외쳤다. 그리고 그 단어는 여러 번 반복해서 그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허벅지까지 완전히 들어가는 침니에 왼쪽 발 거의 전체와 왼팔을, 오른손과 오른 발로는 우측 바위를 짚고 마찰력을 얻어
등반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오프 위드 크랙(off-width crack)' 이다.

오프 위드 크랙은 한 손이나 한 발로 재밍을 하기에는 너무 넓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다 들어가니까. 그렇다고 몸통의
일부를 완전히 넣어서 등반하기에는 좁다. 이런 형태의 크랙등반은 인수봉이나 선인봉에서 찾기 힘들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역시 무조건 비비면서 애벌레처럼 본능적으로 등반을 해야 할까? 사실은 겹쳐끼우기(stacking)기술을 사용해야
한다. 2012년, 요반길 등반을 끝낸 손소장으로부터 오프Ÿ위드 크랙 등반에 대해서 잠시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기술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오프Ÿ위드 크랙은 두손, 또는 두발을 합쳐서 끼우며 등반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겹쳐끼우기는 3지점 등반이 되지 않는
고난이도의 등반이라고 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선등자는 마치 애벌레처럼,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등반한다. 요반길
일곱째 마디는 그만큼 힘들고 어려우며 체력소모가 큰 구간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볼트까지 어렵게 그러나 당당한 자세로 퀵드로를 걸고 확보를 한 송기승 클라이머가 이후로는 몸이 크랙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의 자유등반을 통해 확보지점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일곱째 마디를 자유등반하려면 먼저 무릎보호대, 팔꿈치보호대는 물론 발목보호대까지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왼발을
허벅지까지 다 집어넣고 왼팔도 집어넣은 채 허벅지와 무릎과 발끝 심지어 복숭아뼈까지 크랙에 비벼 마찰력을 얻자니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거의 온몸 재밍 식으로 직상 크랙을 출발하려다보니 엄청난 힘이 요구된다. 한 마디로 죽을 맛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일곱째 마디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된다. 자신을 최대한 겸손하게 낮추고 바위와 대화를 해보자.
어떻게 하면 너를 오를 수 있겠니? 그동안 익혔던 거의 모든 등반기술을 사용한다 해도 쉽지 않은 이 구간을 한땀 한땀
올라본다.

다행히 볼트수는 충분하다. 열 개. 그리고 거리는 멀지 않다. 30미터. 볼트에 다가가면 잠시 쉬고 또 다음 볼트까지 등반한 후
한번 쉬고… 그래서 일곱째 마디는 등반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일곱째 마디 등반을 끝내면 우측으로 약 3미터를 돌아 여덟째 마디가 시작된다. 마당바위에서 볼 때
아주 작은 돌멩이가 크랙을 막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지점이다. 돌멩이 바위를 말처럼 올라타서 밀고가기보다는
과감하게 돌멩이 밖으로 나와 올라타면 된다.

그 다음에는 일곱째 마디처럼 오프위드 등반이 시작되지만 일곱째 마디에 비하자면 아주 수월하다할만 하다. 경사가 훨씬
낮기 때문이다. 여덟째 마디 등반을 할 때부터 많지는 않지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설악산의 날씨.
그래도 끝까지 등반을 멈출 수는 없다.

여덟째 마디 확보지점에 서서 보면 아홉째 마디는 거의 수직의 침니구간이어서 부담이 느껴진다. 그러나 막상 붙어보면 두
발을 넓게 벌리는 스태밍 자세로 가볍게 등반을 마칠 수 있다. 거리 15미터의 짧은 구간이다.

드디어 요반길 아홉째 마디 확보점. 이것으로 요반길 등반은 모두 끝이 났다. 등반팀은 일곱째 마디 출발지점을 지나 건너편
바위 PC샹그리라 방면으로 하강하기로 했다. 비가 흩뿌린다. 안개가 자욱하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먹구름이 가득하다.

난이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클라이머가 가지 못할 길은 없다. 그리고 바윗길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도전해라. 그리고 너
자신을 뛰어넘어라. 세상에 태어난 지 30여년이 지금도 굳건하게 설악산 울산바위를 지키며 클라이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 바윗길.

한계에 도전하는 자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 바윗길, 궁극의 크랙등반을 원하는 이에게 꿈을 실현시켜 주는 바윗길,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새로 쓰고자 하는 클라이머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꿈의 바윗길인 요반길은 오늘도 당신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