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0)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 추억 / 선녀봉의 전설 향한 전용학의 등반열정 “벽만 보면 오르고 싶었다”

2018. 2. 5. 06:30산 이야기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0)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 추억 / 선녀봉의 전설 향한 전용학의 등반열정 “벽만 보면 오르고 싶었다”





[김성률 기자] 낮게 깔린 비구름만큼이나 마음이 어두웠다. 계속되는 비 때문에 이번 주에도 등반을 하지 못한다면 다음 주까지 3주일이나 기다려야 할 터수였다. 게다가 주말에 수도권에는 비소식이 있었다. 전국날씨를 보니 의외로 강원도 영동지방은 주말에 비교적 맑은 날씨가 예보되고 있었다. 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여름에 설악산 등반을 가지 않는다면 언제 가겠는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 여섯 명이 모였다.

주말에 맞춰 1박2일로 준비된 설악산 등반은 그러나 막상 금요일이 가까워오자 일요일 비로 일기예보가 바뀌었고 부득이 금요일 밤 12시 사당역을 출발하기에 이르렀다. 목적지는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 추억’ 길.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3시에 황태해장국으로 이른 아침을 들고 소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니 새벽 4시. 장비를 작은 배낭에 옮겨 담고 천천히 주차장을 출발한다. 매표소 옆 등반허가서를 받는 서류함을 보니 오늘 등반팀이 많지는 않다. 솜다리 추억길을 등반하는 팀은 우리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등반을 하노라면 앞팀이 있으면 등반시간이 지체되고 뒤팀이 있을 땐 쫓기는 느낌이어서 특히 설악산과 같은 원정등반에서 앞뒤팀이 없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표소를 지나 소공원에서 왼쪽으로 비룡폭포 가는 방향으로 접어든다. 돌다리를 지나 다시 왼편으로 발걸음을 돌리니 맑고 시원한 새벽공기가 코끝을 찌른다. 안개가 약간 끼어있기는 하지만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아서는 오늘 날씨가 맑을 것 같다. 중간에 몇군데의 식당을 지나 지난해까지 마지막 식당이 있던 곳까지 당도하니 식당은 간곳없고 비룡폭포지킴터와 신축한 듯한 화장실이 대신 들어서 있다. 화장실은 무척 깨끗해서 놀랐는데 수세식이어서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북한산 도선사주차장에 있는 것과 같은 환경친화식 화장실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랜턴을 켜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걸어가다 보니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중간중간에 쉬엄쉬엄 다리쉼을 하면서 비룡폭포를 지나고 약 15분 정도를 더 가니 왼편으로 바위 위에 '경원'이라고 써놓았다. 경원대 진입로였다. 이곳에서 100미터 정도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약 10미터 앞으로 커다란 혹같은 것이 붙어있는 나무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보면 경사가 다시 가팔라지면서 그리 어렵지는 않은 암벽을 우회해서 드디어 솜다리길 초입의 첫 볼트가 나타난다. 소공원주차장에서 이곳까지 느린 걸음으로 2시간이나 소요되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토왕폭이 아주 잘 바라다 보이는 출발지점은 비교적 넓은 공간이다. 어둠 속을 출발한 등반팀은 사위가 희붐하게 밝아오는 가운데 비룡폭포에 이르렀고 이제 이곳에서는 노적봉과 토왕폭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첫째 마디는 높이 솟은 암벽인데 일별하기에 위압감을 주어서 만만치만은 않아 보인다. 오늘도 선등을 맡은 조장래 클라이머가 릿지화를 신은 채 과감하게 두 동의 앞자를 묶고 출발한다. 둘째 마디 종료지점까지 발번을 제외하고는 등강기 등반을 하면서 등반시간을 줄여볼 작정이다. 등반팀에는 3명의 선등자가 있고 후등으로 5.10급은 무난히 등반하는 클라이머로 구성되어 있어 등반이 빨리 끝난다면 건너편 4인의 우정길을 등반하겠다는 다소 지나친 욕심의 포석도 있었다.

막상 붙어보니 홀드가 잘 찾아진다. 난이도는 높지 않아 5.8정도지만 직벽답게 고도가 급속히 높아지면서 고도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참 등반에 재미가 붙을 때쯤, 땀이 날까말까 할 정도가 되니 첫째 마디 종료지점. 거리는 약 25미터에 재미있는 크랙길이다. 첫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뒤를 이어 등반하는 등반자의 모습을 보니 정상을 향해 쑥쑥 올라오는 모습들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등반로의 오른편으로는 토왕폭이 계속 등반자를 격려해준다.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한여름답지 않게 서늘한 아침기온 속에 장쾌한 경치를 바라보면서 등반을 하자니 가슴이 다 탁 트여져오는 느낌이다.

둘째 마디는 딱 디에드르 형태의 직상크랙이다. 디에드르(diedre)는 책을 펼쳐서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를 말한다. 이런 바위의 사이에는 반드시 틈새가 있기 마련이어서 재밍을 하든가 아니면 양손과 양발을 벌리면서 지지하고 밀면서 올라가는 디에드르 클라이밍을 해도 좋다.



홀드가 좋은 크랙을 잡고 약 10미터를 올라가면 작은 동굴이 나타난다. 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등반장면을 잡으면 토왕폭까지 잘 보인다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의외로 좋은 구도를 잡기 어려웠다. 동굴을 지나 다시 10여 미터를 직상해서 턱을 넘어서면 둘째 마디도 끝난다. 거리 25미터에 난이도는 5.8.

둘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다소 넓은 테라스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솜다리 추억 길의 하이라이트인 셋째 마디 출발지점. 셋째 마디 자유등반의 난이도는 리지길로는 다소 높은 5.11b에 이른다. 때문에 솜다리 추억길은 상급 리지길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간을 인공구간으로 등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사실 이것은 개척자의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다.

높이 38미터의 직벽크랙을 선등자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출발한다. 손가락에 다소간의 부상이 있는 조장래 클라이머가 자유등반으로 도전한다. 셋째 마디의 크럭스는 셋째 볼트와 넷째 볼트 사이를 꼽는다.



출발지점에서 보면 무릎 위 높이에 좁은 계단 형태의 양호한 풋홀드가 있다. 왼손으로 왼쪽 크랙을 잡아 지지하고 오른발을 풋홀드에 딛고 일어나 오른쪽의 넓고 양호한 크랙을 잡아 올라 선다. 여기에서 첫 번째 볼트에 퀵을 걸고 양발을 적당히 벌리면서 지지하고 크랙으로 재밍과 홀드를 이어가면서 올라붙는다. 첫 볼트에서 위로 약 2미터 지점에 두 번째 볼트가 있다. 두 번째 볼트와 셋째 볼트 사이에도 크랙이 잘 발달되어 있다.

크럭스인 셋째 볼트와 넷째 볼트의 간격은 약 4미터 정도가 되는데 중간에 오래된 문고리 볼트가 하나 있다. 아마 개척당시에 박힌 볼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볼트들은 직선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지만 직상으로는 어렵고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한 다음에 홀드를 잘 살펴봐야 한다. 폭이 약 3cm 내외에 약간 투명하고 단단한 바위가 직상으로 띠를 만들면서 이어져 있는데 이 홀드를 이용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왼발을 좋은 홀드에 딛고 문고리 볼트에 퀵을 건 다음 왼손을 뻗어 양호한 홀드를 잡고 다시 오른손을 왼쪽으로 옮겨 잡은 다음에 넷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어야 한다. 무게 중심 이동이 키포인트.



넷째 볼트 앞에서 오른팔을 뻗으면 양호한 홀드가 툭 튀어나와 있다. 이 홀드를 잡고 또 하나의 문고리 볼트에 퀵드로를 건 다음 몸을 일으켜서 다시 왼쪽의 볼트에 퀵드로를 건다. 오른쪽 위에 큰 원형의 크랙이 보이는데 이 크랙을 잘 활용해서 다시 왼쪽으로 두 개의 볼트에 확보를 하게 되면 이제 셋째 마디 첫 번째 직상크랙 구간은 비로소 끝이 난다.

그리고 턱을 넘어서면 약 15미터 거리의 두 번째 좌향 직상크랙 구간이 나타난다. 기자가 등반해보니 아래의 직벽 구간보다 오히려 상단부의 직벽 구간 등반이 더 만만치 않다. 난이도 보다는 크랙등반이 계속되면서 힘을 많이 소모하게 되고 펌핑이 나기 쉽기 때문에 힘의 분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선등자가 등반완료를 외친 다음에 후등자들은 자유등반이 가능한 구간은 자유등반으로 그리고 힘과 기술이 부족한 구간은 인공등반으로 올랐다. 크랙이 계속되는 구간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여성등반자가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선등을 마친 조장래 클라이머가 후등자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확보를 한 상태에서 바위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열심히 촬영을 하는 가운데 후등자들도 속속 등반을 이어간다. 셋째 마디 등반을 마치니 토왕폭이 더 가깝고 멋지게 바라다 보인다.

벌써 시장기가 몰려왔지만 넓은 테라스가 있고 전망이 좋다는 넷째 마디 종료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등반은 계속된다. 셋째 마디에서 자유등반을 하면서 너무 무리를 한 탓일까? 조장래클라이머의 손가락 통증이 심해지는 기색이 보이자 김철수 선배가 선등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미 솜다리 추억길 등반경험이 있는 그가 앞자를 매고 출발한다. 후배를 아끼는 선배의 따뜻한 마음이 훈훈하다.

넷째 마디 역시 디에드르 형태의 거리 15미터 크랙구간이다. 홀드가 좋아서 큰 어려움 없이 등반을 이어갈 수 있다. 모두들 셋째 마디에서 힘들을 많이 써서 그런지 이 구간에서는 잃었던 웃음을 되찾은 것 같다. 직상 구간을 넘으면 우측으로 우회하던가 아니면 한 번 더 직상을 해서 아주 넓은 넷째 마디 확보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전망이 탁 트여서 앞으로 노적봉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고 공제선과 맞닿은 능선에는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을 마친 등반자가 보인다. 토왕폭은 줄곧 등반팀을 지켜보며 함께 등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속초 앞바다의 수평선과 양양시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울산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뿐이랴 토왕폭 가까이 별따는 소년들 길에서는 등반자들이 마치 별을 따듯 조심스레 홀드를 하나씩 잡아가면서 등반을 하고 있고 저 아래 경원대길에서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참 아름답고도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등반팀은 새벽 4시에 설악산 소공원을 출발하여 6시부터 등반을 시작했는데 셋째 마디에서만 약 2시간을 소요했다. 넷째 마디 종료지점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0분 경. 이곳에서 준비해온 주먹밥과 간식들로 아침이라면 늦고 점심식사로는 이른 식사를 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김가예 클라이머가 준비해온 점심식사는 참치와 김치를 잘게 썰어 안을 채운 맨주먹밥에 즉석에서 김가루를 뭍인 주먹밥이다. 알맞추 맵싸고 알맞추 달콤한 것이 입맛을 돋운다.

더하여 수수떡, 모나카, 얼린 홍시 등 다양한 음식을 푸짐하게 즐겨본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설악산과 동해의 경치를 바라다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실컷 사진을 찍다보니 그만 이곳에 퍼져 앉아 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궁금증이 생긴다. 이렇게 멋진 길은 누가 개척한 길일까?

잘 알려진 대로 솜다리의 추억길은 전용학(코리아 마운틴 가이드) 씨와 산빛산악회 회원들이이 개척한 길이다.

7월22일 전용학 씨와 5명의 원정대는 그랑조라스 북벽을 완등하고 샤모니에 머물고 있었다. 그와 페이스북 친구사이인 기자는 12시50분경 페이스북을 통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코리아 마운틴 가이드 홈페이지로 가서 그의 경력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전용학

코리아 마운틴 가이드 팀장

1997년 정승권 등산학교 암벽 교육 수료
2000년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6기 수료
2001년 8월 설악 소토왕골 산빛jk (5.9/A4)개척
설악 적벽 2836 (5.8/A3) 개척
2007년 9월 자유등반으로 루트 작업 ‘자유2836’(4p/5.11b)
2002년 6월 설악 갱기 좌벽 붉은악마 (5.8/A4) 개척
8월 설악 노적봉 남벽 자유등반 (그들과 함께라면) 개척
9월 설악 노적봉 남동벽 릿지등반 (4인의 우정길) 개척
2004년 5월 설악 토왕골 선녀봉 자유등반 (솜다리 추억) 개척
2005년 5월 유럽 알프스 드류 남벽 단독 등반
2009년 7월 파키스탄 유스사르 서벽 (6,000m) 초등

전용학 씨는 현재 코리아 마운틴 가이드라는 타이틀로 국내외 산악인들의 산악가이드를 하고 있다. 그의 등반영역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있다. 한낮에 던진 기자의 질문은 그날 저녁 9시40분, 샤모니로부터 기자의 핸드폰으로 날아왔다.



“솜다리추억 루트는 70년대 부산동아대 산악부가 초등한 루트를 제가 정비하여 자유등반이 가능하게 한 루트입니다. 인터넷상으로 동아대 산악부의 의견을 듣고 싶어 연락했지만 답이 오지 않아 2004년인가? 루트가 아까워서 바로 산빛산악회 회원들과 작업한 루트입니다. 정확한 루트명은 ‘솜다리 추억’입니다”

‘4인의 우정’ 길을 개척하던중 “등 뒤로 뾰족하게 뻗은 독립봉이 너무 위압감을 주어 변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루트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바윗길을 개척하겠다고 갔는데 2피치 끝나니까 70년대 링볼트가 보여서 이마운틴 게시판에 공지를 올렸다고 한다. “제가 이 루트를 정리하고 싶은데 의견을 부탁한다”고.

그리고 사소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솜다리의 추억’ 길의 바른 이름은 ‘솜다리 추억’이 맞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선녀봉의 전설에 맞게 당시 4인의 우정길 4인에 한분이 서강대 심종혁 신부님이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솜다리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무명봉이었던 봉우리도 솜다리봉이라 불려지기 시작했구요”

그의 말에 의하면 ‘솜다리 추억’이라는 이름은 솜다리가 보여서가 아니라 선녀봉 전설에 의해서 지은 것이다.

전용학 씨는 또 “솜다리 추억길을 선녀봉까지 이어져 ‘별따’와 만나 하산하게 만들었지만, 솜다리봉에서 탈출하게 만든 하강루트를 대부분 이용하더라구요. 사실 솜다리봉 이후 가는 루트가 재미도 없고 하산 시간도 많이 걸리니 당연할 듯해요. 그래서 하강루트를 정비 하였는데 아직 미흡한 것 같아 가을쯤 다시 정비하려고 합니다. 50m 하강을 나눠서 할 수 있는 것과 솜다리봉 정상 슬링 정비 등등을 말이죠”



‘솜다리 추억'은 처음에 인공등반으로 오른 후 나중에 자유등반길로 개척했다. 이것은 그가 적벽의 루트 '2836'을 처음에 인공등반(A4)으로 개척했다가, 앵커포인트에서 확보를 보며 자유등반이 가능하도록 볼트의 위치를 새로 정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부분에 대해서 그는 “11ab구간은 동아대산악부가 남긴 링볼트를 그대로 두어 A0 난이도로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하튼 등반은 가능하게 해야할 듯해서요”라고 말했다. 물론 자유등반 구간으로 바뀌기 전의 이야기다.

그는 끝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당시 저의 등반열정은 벽만 보이면 오르고 싶었던 같아요. 70년대 선배님들이 미등봉만 보면 오르려했던 마음처럼… 선배님들이 그러더라고요 70년대 나를 보는 것 같다고…”

바윗길의 개척자들은 대부분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누가 시키거나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등반 할 수 있는 바윗길이라면 그곳에 멋진 바윗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등반하고 행복해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마 이런 생각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 이 바윗길을 개척한 개척자의 등반열정도 잊지 말아달라는…



너무 많이 쉬었다. 다섯째 마디는 넷째 마디의 확보지점에서 바로 출발한다. 직벽의 왼쪽으로 살짝 우회해서 첫 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턱을 넘어선다. 거리는 약25미터에 난이도는 5.8. 이어지는 여섯째 마디는 거리가 약 15미터에 페이스성 구간인데 김철수 선배는 다섯째와 여섯째 마디를 이어서 한 번에 등반을 마쳤다.

이렇게 하면 솜다리봉의 등반이 모두 끝난 것이다. 하강포인트에서는 곧바로 10여 미터를 하강하고 하강줄을 계속 잡은 채 침니 위를 걸어간 다음 다시 마지막 구간을 하강해야 한다. 당황하지만 않고 천천히 하강하면 된다. 이제 어려운 등반은 모두 끝난 셈이다.



그리고 안자일렌 형식으로 약 60미터를 등반하고 다시 자일 없이 60미터 쯤을 등반하면 선녀봉에 이른다. 별로 볼 것이 없는 선녀봉 정상에서는 슬링줄이 많이 낡고 하강링에 다소 녹이 슬어있는 하강포인트를 통해 하강을 마친후 다시 별을 따는 소년 리지를 향해 한 번 더 쉬운 등반을 하고 걸어서 다소 긴 하산을 하게 된다. 이날 6인1조로 이루어진 등반팀의 등반시간은 9시간이 소요되었다.

솜다리는 찾을 수 없었지만 진한 추억을 남겨놓고 돌아온 솜다리 추억길. 무더운 한 여름의 뜨거웠던 어느 하루를 시원하게 보내게 해준 이 고마운 리지등반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고즈넉함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남다른 등반열정으로 행복한 바윗길을 개척해준 개척자에게 감사하며 하산하는 길에는 차디찬 석간수가 솟아올라 클라이머의 갈증을 서늘하게 씻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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