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설악에 살다(5); 김성택과 송원기~사라진 산사나이들

2018. 2. 14. 10:11산 이야기

김성택과 송원기

 

비룡폭포 위에 설치한 베이스캠프를 배겨으로 토왕폭 등반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배종순.김원겸.한성진.이정희.권경업씨(왼쪽부터).

 

 

 

김성택.송원기 대원은 '싱글 앵커 해먹'(양쪽으로 매다는 일반 해먹과 달리 바위 절벽이나 빙벽에서 비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해먹)에서 잤다. 이 해먹 속에 들어가면 땅꾼 자루 속에 든 뱀처럼 몸이 도르르 말린다. 아무리 새우잠이라지만 이 때 만큼 등을 구부려야하는 새우잠은 없을 것이다.

하켄 하나만 치면 아무 절벽에서나 매달려 잘 수 있게 해주는 신장비임에는 틀림없으나 누구라도 그 해먹 안에서는 새우가 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잘 수가 없다. 토왕성 우측 벽에 매단 해먹 속에 들어간 김.송대원은 밤새 새우가 돼버렸다.

아래쪽에 있던 지원조가 올려준 떡국과 차를 마시며 두 새우는 "바로 이맛이지" 하면서 멀리 동쪽을 바라보았다.

고래 싸움에 왜 새우등만 터지겠는가. 그런 싸움이 벌어진다면 등이 터지고야 말 온갖 물고기들의 고향인 동해가 새우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고향은 지금 먹물을 풀어놓은 듯 검었다.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에 닿자 고향의 거친 파도가 아가미 껍질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바다에서보다 토왕의 벽에서 바라보는 속초의 빛이 더 찬란했다. 다음날 하늘은 여전히 맑았지만 베이스캠프는 영하 12도까지 떨어져 몹시 추웠다.

오전 5시부터 등반을 재개한 공격조는 톱(선등자)을 김성택 대원에서 송원기 대원으로 바꿨다.

그러나 첫 지점에서부터 연거푸 추락하는 바람에 송대원은 톱자리를 마운틴빌라의 '톱쟁이' 김대원에게 되돌려 주고 말았다. 역시 김대원은 '톱쟁이'답게 속도를 보였다.

점심 후, 장경덕 대장과 선용민 대원은 중단 설사면으로 설동(눈굴)을 파러 올라갔다. 서강대 등반대는 토왕폭 상단의 빙폭에 붙어 있었고, 마운틴빌라팀보다 더 오른쪽에 붙은 악우회팀은 우측 벽 상단을 40m 가량 올라가 있었다.

장대장이 설동을 타고 중단에서 내려다보니 김성택 대원이 하단 벽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상규.이해관 대원은 설동에 머물며 저녁에 올라 올 두 공격대원을 맞이하기로 하고, 장대장은 나머지 대원들을 데리고 하단 밑둥에 친 베이스캠프로 내려갔다.

등반 세쨋날 새벽녘부터 베이스캠프의 설동에서 김명선 대원은 버너를 켜고 눈을 녹여 떡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버너에 녹은 설동의 안벽은 무수한 물방울이 맺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거렸다. 장대장은 떡국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뒤 바깥으로 나가 기온을 쟀다. 영하 11도였다.

아직 별빛이 초롱초롱했지만 맑았다 흐려졌다 하는 날씨가 될 것 같았다.

오전 9시쯤, 한창 상단 벽을 오르며 땀을 흘리고 있어야 할 송원기 대원이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매우 풀 죽은 모습이었다.

"별일은 아니고요. 몸이 좋지 않아서…. 성택이 형이 내려가서 장대장님과 교대해 달라고 하라더군요."

 

 

 

장경덕의 악몽

 

1976년 1월 장군봉을 등반한 윤형규.장경덕.김성택씨(왼쪽부터)가 비선대 이글루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윤형규씨 제공]

 

 

송원기 대원의 기죽은 얘기를 들은 장경덕 대장은 곧 등반 채비를 갖춰 토왕폭 중단으로 올라갔다. 빙폭을 보니 서강대팀의 톱은 이미 상단을 70여m나 올라 있었다.

탄탄한 기량의 클라이머였다. '그 정도면 별 어려움 없이 토왕폭을 완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 벽 상단 20m 지점의 테라스에서 김성택 대원이 장대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다음 테라스까지는 눈과 얼음이 뒤덮인 골짜기 형태의 직벽이어서 빙벽 등반 장비가 필요했다. 김대원은 비브람에 아이젠을 달고 아이스해머와 피켈을 휘두르며 오른쪽 바깥으로 울퉁불퉁 튀어나온 암벽으로 침착하게 나아갔다. 아이젠의 두 앞이빨만으로 몸의 균형을 잡으며 수직으로 일어선 빙벽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간다는 것은 곡예에 가까웠다.

김대원과 장대장은 세시간의 곡예 등반 끝에 다음 테라스에 도착,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오른쪽 2시 방향 50여m 위쪽에 악우회의 윤대표 대장과 유한규 대원이 등반하고 있었다. 악우회의 두 정예 클라이머의 동작이 믿음직하게 보였지만, 그들이 나아가는 속도는 굼벵이 같았다.

 

'좌서강, 우악우'의 한가운데로 오르고 있는 마운틴빌라의 장대장은 좌청룡과 우백호를 거느리고 등반하는 것 같은 희열에 빠졌다.

테라스 위로는 아주 작은 바위틈도 찾아볼 수 없는 7~8m 길이의 직벽이 가로 막았다. 어쩔 수 없이 바위에 구멍을 뚫고 박아 넣어야 하는 볼트라켄을 사용해야 했다.

볼트는 시간 잡아먹는 귀신인가. 네 개의 볼트를 치고서야 그 짧은 직벽을 겨우 넘어섰는데 해가 함지덕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진퇴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었다.

좌청룡의 서강대팀이 먼저 하산키로 결정했다. 순탄하게 오르던 톱과 달리 뒤따라 등반하던 라스트가 거듭 추락하는 탓에 등반 흐름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톱을 섰던 뛰어난 청룡은 퇴각하라는 대장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하강하고 있었다.

토왕폭 빙벽 상단의 정상을 불과 40여m 남겨놓고 뒤돌아선 청룡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장대장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좌청룡과 우백호, 그리고 그 사이로 오르던 곰은 토왕성의 벽에서 약속했다. 이 땅에서 가장 높고 가장 험한 곳에서 한 약속이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소박했다. 무사히 서울로 돌아가 청진동이나 무교동 낙지집에서 소주 한 잔 나누자는 것이었다.

"형, 이상한 상실감에 가슴이 저려요. 저들이 내려가는 걸 보니 내 속의 뭔가가 따라 내려가는 것만 같아요. 형, 그게 뭘까요?"김대원이 장대장에게 물었다. 그러나 김대원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담뱃불을 끈 다음 곧바로 출발했다.

 

 

야성의 토왕골

 

1975년 9월 설악산 울산암 릿지 등반 중인 윤형규.이상경.김성택.김대근씨(왼쪽부터)가 울산암 정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끔 아래쪽 토왕골의 검은 골짜기로 떨어지는 큰 돌덩이와 얼음조각도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그 순간에 "나 죽는다"는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르는 듯했다. 그 무시무시한 소리에는 외과의사로서 배짱이 두둑한 편인 장경덕 대장도 간담이 서늘해져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야릇한 두려움에 젖은 두 공격조는 그곳에서 10여m를 더 오른 뒤 오후 5시쯤 고정로프를 이용해 중단의 설동으로 내려갔다. 등반 7일째인 2월 8일 오전 1시쯤 악몽에 시달리던 장대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 기척에 잠이 깬 김성택 대원도 악몽을 꿨다고 하소연했다.

장대장과 김대원이 서로 꿈 얘기를 털어놓자 곁에 누웠던 김상규 대원이 '곰들의 개꿈'이라고 놀려댔다.

연유를 끓여 마시고 토왕폭의 사나이들은 다시 잠을 청했지만 누구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 탓이었을까. 장대장은 날씨 걱정으로 뒤척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장대장은 김대원과 함께 오전 9시쯤 전날 고정시켜둔 자일을 타고 테라스로 올라갔다. 그들이 설동을 나서기 한 시간 전쯤에 악우회의 윤대표 대장과 유한규 대원은 우측 벽 가장자리에 붙었다. 우백호들도 이날 안에 우측 벽을 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으리라.

테라스에서 김대원이 또 앞장섰다.

믿음직한 김대원의 등반 모습에 장대장은 늦어도 내일까지는 정상에 설 수 있겠다고 말했다. 만약 일기예보대로 폭설이 내리더라도 벽에 매달린 새우처럼 비박을 한 뒤 다음날 정상에 서리라는 결의를 다졌다.

겨울만 아니라면 가볍게 오를 수 있는 80도 경사의 절벽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한겨울이다. 업보처럼 무거워진 피켈을 휘두르며 바위에 얼어붙은 얼음을 조금씩 조금씩 까내야 했다. 이끼.흙.눈더미가 뒤엉킨 바위 틈새로 긴 앵글하켄을 막무가내로 박아넣는 폭력도 휘둘러야했다. 그러면서 김대원은 쉼없이 올라갔다.

낮 12시 무렵 장대장은 컨디션을 회복한 송대원과 교대했다. 송대원에게 김대원을 지원토록 하고 장대장은 일단 중단으로 내려갔다가 우측 능선으로 우회해 먼저 토왕폭의 정상에 올라가 나중에 올라올 공격조를 지원하기로 했다.

설동으로 내려선 장대장이 식량과 장비를 우측 능선으로 옮기고 있던 중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막탄이 터진 것 같은 짙은 산안개(산꾼들은 이런 안개를 '개스'라고 부른다)가 몰려왔다.

개스는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가 하면 어느 순간 불어온 바람에 무대 장막 걷히 듯 날아가 버렸다. 그러다가 도둑고양이처럼 불쑥 나타나 다시 시야를 가리곤 해 장대장은 가슴을 졸였다.

 

 

 

환상의 토왕골

 

1976년 1월 설악산 산행을 마친 윤형규(左).김성택씨가 설악산 입구에서 포즈를 취했다.

[윤형규씨 제공]

 

 

개스(산안개)와 바람은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씨름판을 벌이며 아가씨 마음 같다는 산 날씨의 변덕을 과시했다.

"어쩔 것인가? 후퇴냐 전진이냐?"

고심 끝에 장경덕 대장은 벽에 붙은 김성택 대원과 상의했다.

김대원은 "지금 올라가나 어두울 때 내려가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죠"라며 계속 등반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장대장은 장비와 식량을 빨리 정상으로 날라야만 했다.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해가 함지덕 머리 위로 넘어간 데다 개스가 잔뜩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찰그랑찰그랑하는 소리가 났다. 끝까지 등반하겠다던 악우회의 윤대표 대장과 유한규 대원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몸에 달고 있는 온갖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논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황소의 목에 달린 요령소리처럼 울렸던 것이다.

얼마 후 장대장을 그토록 애태우던 개스가 완전히 걷혔다.

시야가 탁 트였을 때 장대장은 전날 벽에서 김대원에게 젖어들었던 상실감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것은 지금 토왕골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보름달이었다.

그랬다. 달빛 받은 토왕골에는 김대원의 해머질 소리와 그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하나의 음악이 돼 울려퍼졌다.

그밖의 모든 소리들-토왕폭에 매달린 고드름질 얼음이나 그 위를 흐르는 실뱀같은 물줄기나 바람이나 별빛 등-은 그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그 순간 장대장은 달빛에 빛나는 소리의 선율을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토왕폭에서라면 수십리 밖에서 가늘게 떨리는 땅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하등동물처럼 사람도 시공을 뛰어넘어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돼 노래하는 그 순수음악을 듣고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토왕폭의 사나이들은 원초적 감성의 시간대에 놓여 있다. 지원품이 든 배낭을 지고 장대장은 달빛을 받으며 우측 능선을 올랐다. 이해관 대원과 그는 오후 8시쯤 토왕폭 우측 벽 상단에 이르렀다.

김대원과 송원기 대원의 이마에 단 랜턴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장대장의 왼쪽 편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김대원도 장대장의 이마등에서 비치는 노란 불빛을 보고 "경덕이형, 우리가 먼저 올라갈거요. 천천히 와요"라고 소리치며 올라왔다.

장대장은 더욱 서둘렀다. 공격조의 김대원과 송대원보다 먼저 토왕폭 정상에 올라가 그들의 언 몸을 녹여줄 따듯한 차를 끓여 놓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앞길이 순탄치 않았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설사면이 눈사태에 휩쓸리면서 드러난 바위면이 몹시 미끄러웠다. 그 사이사이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에만 의지한 채 오르느라 장대장과 이대원은 고초를 겪었다. 숨을 헐떡이며 그들은 오후 9시30분쯤 토왕폭 상단 정수리에 올라섰다.

 

 

 

사라진 산사나이들

 

김성택씨가 1975년 가을 설악산 울산암을 등반하고 있다. 오른쪽 봉우리는 집선봉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김성택.송원기 대원이 없었다.

장대장은 '내가 먼저 왔구나. 차 끓일 시간이 있겠는걸'하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소나무에 고정시킨 자일을 타고 장대장은 공격조가 올라올 토왕폭 우측 벽의 최상단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63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처럼 설동을 팠던 중단의 설원과 눈 덮인 토왕굴이 달빛에 훤히 드러났다. 다만 김.송대원이 등반을 마무리하느라 애쓰고 있을 우측 벽 상단만 먹물 먹은 듯한 어둠에 잠겨 의뭉스레 숨어 있었다.

그 신비스러운 벽 쪽에서는 어쩐 일인지 김대원의 해머질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송대원의 이마에서 반짝이던 랜턴 불빛도 비치지 않았다. 어둠 속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장대장의 머릿속에 돌연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잃어버렸던 보름달을 다시 찾은 후배들이 벽에 없었기 때문이다.

장대장은 호흡을 가다듬고 후배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성택아. 원기야 어딨냐! 하이 빌라! 대답 좀 해봐! 안 들려! 하이 빌라! 성택아, 원기야 대답 좀 해!"

목까지 피가 올라오도록 불러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고함치던 장대장은 멀리 떨어진 베이스캠프 주변에 불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봤다. '공격조원들인가'하고 생각한 장대장은 다시 힘껏 고함을 질렀다.

그 절규가 하늘을 움직였는지, 3백50여m 아래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불빛의 주인공들은 김.송대원이 아니라 베이스 캠프를 지키던 김상규.이지원 대원이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벽 쪽에서 헤드랜턴 불빛이 비췄는데 어느새 그 불빛이 내려간 것 같다"는 베이스 캠프에 있는 대원들의 고함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송대원이 완등을 포기하고 지금쯤 중단 설동으로 내려가 대피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장대장은 그 가능성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기로 했다. 모든 사실은 날이 새야만 밝혀질 것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사실 장대장과 이대원도 뜬눈으로 다음날 아침해를 맞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해가 떨어지면서 기온이 영하 18도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온몸에 스며든 동상 기운을 참고 있던 이대원은 0시 무렵 도끼날 맞은 장작처럼 나뒹굴었다. 외과의사인 장대장은 이대원부터 살려야 했다.

구두를 벗기고 언 발을 우모복으로 감싸 온기를 돌게 한 다음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집으며 모닥불이라도 지필 나뭇조각을 주워 모았다. 이대원을 껴안은 장대장은 스물아홉해의 삶에서 가장 길고 혹독한 밤을 토왕성의 꼭대기에서 보내야만 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출처 : 우.리.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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