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군 진평군은 백제의 식민지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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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군 진평군은 백제의 식민지인가 ? 백제와 일본 / 역갤에 올린 내 글

2015. 10. 12.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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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舊來夷馬韓之屬:   晉末駒驪略有遼東樂浪亦有遼西晉平縣

自晋已來常修蕃貢 -양직공도 백제국사재기 원문


"백제는 예로부터 오랑캐 마한에 속했다. (서)진나라 말 (고)구려가 요동,낙랑을 약탈하고 점유하자

백제 역시 요서 진평현을 점유하였다. (동)진나라 이래로 언제나 속국으로서 조공을 하였다." -올바른 해석


"○ 百濟國註 033
백제국百濟國註 034은 본래 고려高[句]驪와 더불어 요동遼東의 동쪽 1천여리 밖에 있었다.註 035 그후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註 036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晋平郡 진평현晋平縣이라 한다."
百濟國註 033
百濟國,註 034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註 035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註 036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송서 백제전 


* 진 = 진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글자 '진'.

즉 晋과 晉은 같은 글자.


"그 나라는 본래 [高]구려句驪와 더불어 요동遼東의 동쪽에 있었다. 진晋나라 때에 이르러 [高]구려句驪가 이미 요동遼東을 경략하자, 

백제百濟 역시 요서遼西·진평晋平 2군郡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註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世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양서 백제전


"그 나라는 본래 [高]구려句麗와 더불어 요동遼東의 동쪽 천여리 밖에 있었다. 진晋나라 때에 이르러 [高]구려句麗가 이미 요동遼東을 경략하자,註 022 

백제百濟 역시 요서遼西·진평晋平 2군郡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

 其國本與句麗俱在遼東之東千餘里, 晉世 句麗旣校勘 026略有遼東,註 022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註 023" - 남사 백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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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말기 = 서진제국 말기 (서기 3세기말~ 서기 4세기 전반)

이때 진晉제국의 평주平州 군현郡縣인 창려군 요동군 현토군 낙랑군 대방군이 요서군과 함께 모용선비의 지배 아래 놓인다.
모용선비는 사로잡아 데리고온 부여인들을 중용하여 요서군 , 진제국 평주 군현의 사무기구들을 맡게 한다.

고이왕 계통의 백제가 고구려와 힘을 합해 낙랑군 대방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려하자 부여씨 해적이 바다 건너가서 백제를 정벌하여 복속시킨 후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했다. 


* 걍 백제인이 사무기구 맡은거에 불과합니다

백제인 x 부여인 o

진나라 입장에선 모용선비가 중용한 부여인들이 요서군 진평군 관리하고 바다 건너 백제에도 백제군 설치해 관리하는거 보면서 백제인의 경략으로 표현하여 어떻게든 진제국이 건재하다는 걸 나타내려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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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군 진평군에 백제인들이 살다가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한 겁니다. 요동군 요서군 요동,요서이고 낙랑군이 낙랑인 것처럼 백제군도 백제 땅에 설치되어있다고 봐야합니다. 지도 고증 전혀 틀리지않습니다.


기록으로 봐도 요서군 진평군 2군에 백제(부여인들)가 거처한 후 스스로 백제군郡을 설치했다구 나옵니다. 


고이왕 계통 백제를 부수고 백제군을 설치해서 부여씨 왕조를 연겁니다.



백제 분서왕이 미소년 자객에게 암살당한 후 비류왕이 집권합니다. 비류왕의 둘째아들이 근초고이며 근초고는 부여씨입니다. 

중국 기록에서도 백제왕은 여구 때부터 중국에 조공 바칩니다. 여구 = 부여씨 성씨 가진 근초고.


서기 346년에 모용선비와 혼혈된 부여인 호족 요서 라마동고분(요서군 진평군을 관리하는 요서 부여)이 멸망합니다.

자치통감에는 모용황에 의해 멸망해 부여왕 현玄과 백성들이 사로잡힙니다. 


시경에서 현玄왕은 [계 혹은 설契]로 나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도 서기 346년 계契왕의 제위가 막을 내리고 여구가 근초고왕으로 즉위합니다. 그후 20여년 동안은 근초고왕 제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안 적혀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추리를 해볼 수 있습니다. 근초고는 백제 13대왕이며 근구수는 백제 14대 왕입니다. 근구수는 근초고의 아들입니다.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의 남편 중애천황은 야마토 제14대 천황입니다. 중애천황의 아버지는 오구나타케루 입니다.

오구나타케루는 케이코 천황의 둘째 아들입니다. 

일본서기는 오구나타케루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웅략의 기상이 있었다. 장년에 이르러 용모가 괴위하였다. 신장이 1장, 능히 솥을 들 수 있었다."로 적고 있습니다. 


   삼국사기는 여구(근초고)에 대해서 "근초고왕(近肖古王)은 비류왕(比流王)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식견이 넓었다. 계왕이 돌아가시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近肖古王 比流王第二子也 體貌奇偉 有遠識 契王薨 繼位

[네이버 지식백과] 근초고왕 [近肖古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라고 적는데. 표현이 오구나와 흡사합니다.


  여구의 아버지인 비류왕이 즉위하기 전, 분서왕이 낙랑태수가 보낸 미소년 자객에게 암살당합니다. 그후 비류왕이 즉위합니다.

일본서기,고사기에서 미소년 오구나타케루는 16세에 쿠마소와 백제 귀신들을 정벌하기 위해 '타케루'라는 왕을 암살하려고 (타케루는 근개루 큰개루로서 백제의 왕을 뜻하는 용어) 여자로 변장해 술잔치에 들어갑니다. 타케루 왕과 아우에게 희롱당한 후 잠자리에서 형제 타케루들을 다 죽여버립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서진제국 말기 동이교위 하감에 의해 부여 부흥정책이 시행됩니다. 당시 부여는 모용선비에게 박살나서 요서로 끌려왔는데 동이교위 하감이 구출합니다.

그 후 동이교위 하감과 모용선비가 연대를 맺습니다. 모용선비는 진晉의 요서군,평주군현,동이교위 하감이랑 충돌하는 대신 공존의 길로 갑니다.

모용선비와 부여족은 서로 화해합니다. 당시 요서 부여의 왕은 '의라'입니다. 

백제어로 왕을 '어라하'라 부릅니다. 어라하는 '어라'와 '카(하=사출도의 수장)'의 합체입니다. 

오구나란 이름 역시 '의라','어라하'와 관계가 있습니다.


  요서부여는 모용선비의 부하가 되서 요서군,진평군(진晉제국의 평주平州 군현郡縣 = 창려 요동 현토 낙랑 대방)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부여씨 해적들이 바다 건너 고이왕 계통 백제를 암살,전투 등으로 정복해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해 부여씨 왕조를 엽니다.


  오구나(=여구)는 형이 태자가 되자 열도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열도에서 '야마토 타케루 노 미코토(日本武尊)'로 불리며 야마토 정권의 영토를 넓혀줍니다. 

오구나의 쌍둥이 형인 '여구'는 근초고왕이 되고 쌍둥이 동생인 오구나는 열도에서 야마토 여왕과 결혼해 귀수를 낳습니다.

(오구나는 초고왕이라 불림.)

귀수는 야마토의 공주와 결혼해 공주는 후일 신공황후가 되고, 귀수는 중애천황이라 불리게됩니다. 

이 둘 사이에서 응신천황이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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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서군,진평군은 요서군과 진晉제국의 평주平州 군현郡縣으로 이해 가능하다. 모용선비가 전연을 세웟는데. 전연 땅엔 중국의 군현들인 요서군과 평주 군현(창려 요동 현토 낙랑 대방)이 여전히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무기구들의 관리들은 전부 부여인들,낙랑 피난민들이 맡았다. 부여씨 해적이 바다 건너 백제를 정벌하고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한다. 그 후 고구려와 대립한다.  모용선비 부하 동수가 황해도 안악에 대방군을 운영하며 진晉제국에 여전히 충성했다.  이런 역사적 사정으로 인해 요서군 진평군 사무기구들을 관리하는 직원들 부여인들은 '백제인'이라 불리게된다. 이게 요서경략의 실체다. 사실상 경략이 아님. 모용선비 부하일 뿐.




  3세기 말~4세기 전반, 부여인들은 모용선비에게 끌려와 요서 라마동고분에 거주하며 요서군현, 평주군현의 사무기구를 전반적으로 맡아 관리하였다.

그러다가 부여씨 해적들이 바다 건너 백제로 가서 백제를 격파해 백제군을 설치한다. 


고구려는 요서군,평주군,백제군의 사무기구들을 맡아 관리하는 부여인들을 '백잔'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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