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동아시아 고대사는 모두 거짓이다-요서 진평군

2018. 2. 28. 04:09우리 역사 바로알기


백제 진평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우리 국사가 비정하는 진평군의 위치


우리 역사는 물론 동아시아 역사는 지금의 랴오닝 반도를

고대 요동이라는 전제 아래 랴오허 서쪽을 요서라는 입장입니다.


필자는 수 없이 고대 요동은 산동반도라는 것을 말해 왔습니다만

백제 진평군을 통해서 다시 한번 고대 요동은

랴오닝 반도 일 수 없다는 것을 설명 하려고 합니다.


宋書 97권 동이열전 백제(5세기 후반)

其後 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晋平郡 晋平縣

그뒤 고려는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고,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이른다.

이 기록은 혹여 지금의 랴오닝 반도가 고대 요동이라 해도

한반도 서부의 백제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요서를 차지 할 수 있었는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백제가 육로를 통하여 랴오허 서쪽을 차지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백제가 요서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海路를 이용할 수 밖에는 없겠지요?


이때 백제가 북위와의 전쟁에 동원한 병력은 100만에 달했다고 합니다.


100만 병력을 해로를 통해서 요서에 진입을 했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억지 역사 해석 입니다.


요서를 백제는 晉平郡이라는 이름 붙입니다.


晉平이란 말 그대로 晉나라가 다스리던(平) 땅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요서 진평군은 春秋時代의 晉나라 영역 안에 존재 해야 함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자 또 한번 중화인민공화국의 위키 백과의 晉國에 대한 설명을 보도록 하지요.


晋国,是周代姬姓诸侯国,原名唐,领地在今山西省

始封君為周武王之子、周成王同母弟——唐叔虞

晉是重要的封國,是春秋五霸之一,也是稱霸時間最長的一個。

晋国国都最初为唐(今山西翼城西,一说太原西南),晋獻公迁都绛(今翼城东南),

别都为曲沃(今山西闻喜)。晉景公時遷都新田,稱之為新絳,遗址在今山西省侯马市


길게 해석할 필요도 없이 晉나라는 지금의 산서성 중남부 일대에 존재하던 나라입니다.

晉國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즉, 요서는 산서성 태행산맥 서남쪽이라는 설명이지요.


양직공도 백제국사(6세기 전반)

晉末 駒麗畧有遼東 樂浪亦有遼西晉平縣

진나라 말기, 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낙랑도 요서 진평현을 차지하였다.

이 기록은 백제와 낙랑을 동일시 하는 기록으로 보이지만 분명 하지는 않습니다.


양서 54권 동이열전 백제(7세기 전반)

晉世 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여기서의 晉世는 西晉(265년 ~ 317년)을 말하는 것으로서

고구리는 이미 서진 시대에 요동을 차지 했던 기록이며

그 후 백제 역시 근초고왕(재위 : 346년 9월~375년 11월

고국원왕을 전사 시키고 요서의 진평 2군을 차지하고

백제군을 설치 했다는 것입니다.


남사 79권 동이열전 백제(7세기 중반)

晉世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였다.


南齊書 58권 東南夷列傳 백제(6세기 전반)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이해 위노가 다시 기병 수십만을 보내어 백제를 쳐서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대를 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이 기록들은 모두 백제가 요서 진평군을 무력으로 점거했다는 기록이며

북위가 기병 수십만을 동원해야 할 정도로

백제가 만만치 않앗음을 말해 주는 기록 입니다.


즉 우리 국사가 주장하는 백제가 잠시 요서에 진출한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또 하나는 南齊書라는 역사서의 성격 입니다.


南朝와 北朝의 구분이 어찌 되는지 아신다면

어찌하여 백제가 남조의 역사서에 東南夷列傳 이라는 타이틀로 수록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南齊書 58권 동남이열전 백제(6세기 전반)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

去庚午年 獫狁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건무 2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지난 경오년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거꾸로 쳐서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 되었습니다.

건무 2년(620년)에도 백제는 요서를 두고 고구리와

150여년간 전쟁을 계속 햇음을 보여 주는 기록 입니다.


이것은 백제 근초고왕이 요서를 두고 371년에 고국원왕을 전사 시키는 기록으로도

백제는 적어도 요서를 두고 북위와 고구리를 상대로 150년 정도를

서로 100만 대군을 동원하여 전쟁 계속해 왔음을 보여 주는 기록 입니다.


북위와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고구리 전성기인 건흥제 시기에는 북위의 위상은

고구리의 속국 또는 동일체의 국가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 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요서의 전쟁은 고구리와 백제의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고구리나 백제 모두에게 요서는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 였지요


또한 고구리가 100만 대군을 보유 하고 잇는데 제 3자인 북위가

이 전쟁에 끼어 들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랫다면 고구리가 북위를 그냥 두엇을까요?


삼국사기 26권 백제본기 동성왕

十年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10년 (北)魏나라가 병사를 보내 쳐들어왔으나 우리에게 패하였다.


삼국사기 46권 열전 최치원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蠹


고구리와 백제의 전성기에 강병이 백만으로 남으로는 오나라와 월나라를 침범하고,

북으로는 유주와 연나라, 제나라, 노나라를 어지럽혀 중국의 커다란 좀이 되었다.

백제 전성기의 백제 영역은 吳, 越, 燕, 魯, 濟의 강역이 모두 백제가 차지 햇다고 하며

백제의 전성기란 근초고왕 시대를 말하는 것이지요.


결국은 고구리와 백제는 서로 100만 대군을 동원하여 남으로는

지금의 廣東(광동) 지역과 북으로는 산동반도를 오고 가면서

전쟁을 치열하게 치루엇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동아시아 역사 특히 오호십유국 시대를 지나는 역사에서 백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래 열거하는 역사 기록들은 모두 소설인 가요?

舊唐書)-백제전(百濟傳)

“백제의 영역은 바다 건너 월주(越州)를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리(高句麗)의 국경, 남쪽으로는 왜국(倭國)에 이르렀다.

백제는 동,서 두곳에 서울을 두었다.”

이때의 백제의 중심은 지금의  安徽省을 중심으로 형성돼 잇엇으며

백제의 남쪽은 장강의 남쪽인 적벽 일대로 보입니다.

관련 이미지

[삼국사기(三國史記)-최치원전(崔致遠傳)]

“백제는 전성기에 오(吳), 월(越), 연(燕), 제(齊), 노(魯) 나라를 모두 장악하였다”


주서(周書)의 백제전

“동진(東晋) 때부터 남송(南宋)과 양(梁), 나라(奈羅) 때까지

백제는 長江 양쪽을 다 점령하였다.”


일본 역사학계의 奈羅(나라)에 관한 설명을 봅시다.


奈羅訳語氏(ならのおさし)は古代の渡来氏族秦氏の一族。

己智(こち。己知、巨智、許知、許智)を祖とする(新撰姓氏録)。

楢曰佐奈良訳語とも表記する。

己智は百済の出身で欽明天皇元年(540年)2月に帰化


즉, "고대 도래계 씨족이며 秦氏 일족이며 己智(코지)를 조상으로 한다.


코지는 백제 출신으로 흠명천황 원년(540년)에 귀화 햇다."

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 백제는 어떤 상태 였는지 알아 봅시다.


강개토태왕과 건흥제 시절의 백제는 산동반도와 하남등을 모두 고구리에게 내주었지만

성왕 시절에는 백제의 반격이 시작 되엇고  523년 음력 5월에 聖王(성왕)이

부왕인 武寧王(무령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며 그해 음력 8월 浿水에 침입한

고구리군을 장군 知忠으로 하여금 물리치게 하였고 538년은 백제의 성왕16년) 때이며

백제의 도읍지를 웅진성에서 사비성으로 옮기는 때이며 사비성으로

도읍지를 천도를 한다는 것은 백제가 다시 北進(북진)에 성공한 것을 의미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浿水(패수)에 침입한...,"이라는 기록 입니다.


이것은 이때의 패수가 백제의 영토라는 것일 의미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국사의 주장 대로 라면 패수가 백제의 영토 엿던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국사의 패수는 지금의 대동강이며 고구리의 도읍지인 평양은

패수(대동강) 아래를 흐른다는 확고한 입장이지요.


그러나 泗沘城의 사수를 뜻하는 泗水와 沘水 

그리고 白馬河는 남사호로 흘러 드는 하천이며

필자는 南四湖를 고대 패수가 분명 하다 라는 입장 입니다.

南四湖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백제 성왕 시기는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강성하던 시기 입니다.


또한 성왕 시기에 백제는 왜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등 활발한 교류가 있었으며

이때의 백제는 장강의 양쪽을 모두 장악하엿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귀화가 아닌 백제의 관리가 왜로 임용되어 파견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코지의 종족 정체성이 秦이라면 秦韓을 의미 하는 것으로 보이며

결국 코지는 신라와 같은 종족이엇던 것으로 추정 됩니다.



출처 : 붉은까마귀
글쓴이 : 붉은까마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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