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도 / 단원 김홍도

2013. 8. 2. 01:45美學 이야기

 

 

 


정조(正祖)가 선왕(先王) 영조(英祖)의 어제(御製)를 봉안하기 위하여 1776년에 창건한 창덕궁(昌德宮) 후원(後苑)의 규장각(奎章閣) 전경을 그린 관아도(官衙圖)이다. 규장각을 주제로 삼아 그린 관아도이기 때문에 화면 중앙에 규장각을 실제보다 크게 강조하여 묘사한 다음, 그 전후좌우에 부속건물과 주변 경치를 에워싸듯 묘사함으로써 중앙의 주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부각시켜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상미(鑑賞美) 풍부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풍모를 갖추었다.


중앙에 위치한 대형 팔작지붕의 이층 다락집이 규장각 정당(正堂)이다. 상루하헌(上褸下軒)의 이층에서 일층이 규장각이요 이층은 주합루(宙合樓)이다. 왼쪽의 장방형 일자집은 정조가 규장각에 행차할때 신료들을 접견하는 서향각(書香閣)이며, 그 뒷쪽의 작은 정자는 숙종(肅宗) 희이 세운 희우정(喜雨亭)이다. 본디 터가 가파른 언덕이었기 때문에 많은 석단(石壇)을 쌓았고, 영조의 어제를 봉안한 성역(聖域)이기 때문에 주변을 벽돌담으로 둘러 차단하되 남쪽에는 취병(翠屛)을 가설하여 아름답게 꾸몄다. 담장의 사방에는 출입문을 가설하였는데, 취병에 설치된 남문은 규장각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이고, 동문은 등현문(登賢門)이며, 서문은 서성문(西成門)이다. 희우정 뒷편의 북문은 미상이나, 그 왼쪽의 북문은 공신문(拱辰門)이다. 동문 밖의 숲 속에 있는 장방형 일자집은 규장각신(奎章閣臣)들의 집무소인 이문원( 文院)이고, 서문 밖의 일자집은 이곳을 지키는 각감(閣監)들의 수직방(守直房)이다.


전경(前景)에 보이는 큰 연못은 태액소(太液沼)이다. 이 태액소 남쪽에 서 있는 작은 사모정자는 택수재(澤水齋)이며, 동쪽에 위치한 팔작지붕의 장방형 단층집은 전시(殿試)를 보는 영화당(暎花堂)이다. 영화당 앞의 작은 문은 의춘문(宜春門)이요, 그 옆의 작은 도랑은 태액소의 물이 흘러나오는 어구(御溝)인데, 그 위에 두개의 판석교(板石橋)를 가설하여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태액소 서쪽의 작은 정자는 술성각(述盛閣)(碑閣)이며, 그 위에 홍살로 사방을 가린 것은 어정(御井)이다. 술성각에서 서남으로 내려와 화면 좌하각에 의치한 큰 정자는 열무정(閱武亭)이고, 다시 그 동남쪽의 산 중턱에 서향으로 서있는 장방형 일자집은 열무정에 행차했던 어가(御駕)가 머무는 부속건물이다. 전경 우하각에 보이는 버드나무 밑의 논두렁과 논은 권농장(勸農場) 부근의 금원(禁苑) 수전(水田)이고, 그 바로 위의 넓은 마당은 과거시험을 보는 춘당대(春塘臺)이며, 다시 그 위에 위치한 토벽(土壁)의 큰 연못은 춘당지(春塘池)이다. 그리고 그 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작은 청록태점(苔點)을 찍어 나무를 묘사한 것은 왕실에서 친잠례(親蠶禮)를 행하는 채상단(採桑檀)이다.


후경(後景)의 규장각 뒷담 동쪽 끝에 보이는 숲 속의 장방형 건물은 어수당(魚水堂)이고, 그 앞의 작은 방형 연지는 불로지(不老池)이다. 그리고 멀리 안개 속으로 화면 상부에 묘사된 준수한 산봉우리는 백악산(白岳山)에서 뻗어내려 창덕궁의 뒷산을 이룬 응봉(鷹奉)이며, 그 왼쪽으로 멀리 살짝 내비친 암산(岩山) 봉우리는 삼각산(三角山)이다. 응봉은 주산(主山)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기 위하여 실제보다 다소 과장되어 묘사되었다.
화면 우상단에 ‘소신 김홍도 봉교근사’의 관서(款書)가 있는데, 관서의 묵색(墨色)과 묵흔(墨痕)이 그림의 묵색묵흔과 완전히 일치할 뿐만 아니라 저수량체(楮遂良體)의 ‘김홍도’필치가 1778년작 <서원아집도병(西園雅集圖屛)>의 ‘김홍도’ 필치와 유사한 점, 그리고 김홍도가 1776년 5월 정조의 특명으로 혼전도감(魂殿都監)에서 영조(英祖)의 보불(??)을 그릴 정도로 정조의 핵심측근에서 활동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규장각도>는 김홍도의 진작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이는 응봉의 준법(?法)이 1770년대의 김홍도 준법과 친연성이 많은 점으로도 반증된다.


화면에 간지(干支)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제작시기는 미상이다. 그러나 규장각이 1776년 7월 20일에 준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완성된 봉모당(奉謀堂)을 그리지 않고 아직 개조되기 전의 열무정(閱武亭)으로 묘사한 점을 볼 때 규장각이 완공되는 1776년 7월 전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역원근법(逆遠近法)이 심한 1770년대의 투시법(透視法)을 보이는 점에서도 양식사적으로 뒷받침된다. 따라서 이 <규장각도>는 김홍도가 32세에 그린 초기작품이며, 특히 초기의 본격적인 산수화풍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요 최초의 진경산수화풍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다만 근세의 후보(後補)과정에서 심하게 보필(補筆)되고 가채(加彩)되어 현재는 원작의 고아한 품격을 많이 잃은 상태이다.(자세한 내용은 논고편의<김홍도관 규장각도>참고)

 

 

규장각도

규장각도 (부분)


규장각도(부분)

 

단원 전시관 홈페이지에 가시면 그림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큰 이미지도

보실수 있습니다.

http://danwon.org/main.htm (단원 전시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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