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선도(仙道)문화의 맥(脈)

2018. 3. 9. 03:14병법 이야기

 

 

 

 

 

 

선도문화 선도맥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을 흔히 유·불·선(儒·佛·仙)으로 압축, 표현한다. 실제 이 세 종교 중 불교는 삼국과 고려시대를, 유교는 조선시대를 이끌어온 중심사상이었으며 크게는 통치이념으로, 작게는 예의범절까지를 망라하는 문화(문명)체계였다.

 

그런데 선교(仙敎, 이하 仙道로 칭함)는 확실히 어느 시대를 장악했다고 하기에는 문헌과 기록이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선도는 역사의 위기 때마다 민족 심성 깊은 곳에서 불씨처럼 되살아나 활기를 불어넣고 민족단결의 견인차가 되었다.

 

통설에 따르면 선도는 삼국 이전의 고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고대사나 고대문화를 다룰 때 흔히 휘말리게 되는 '중국이 먼저냐, 한국[東夷]이 먼저냐'라는 난제에 봉착하는 것은 선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승려, 유림, 무당들 사이에서 선도가 전해내려온다. 한국 선도는 일찍이 선불습합(仙佛褶合) 과정에서 사찰의 산신각(山神閣)으로 포함되어 버렸으며 이에 앞서 선무습합(仙巫褶合) 과정에서 무교(巫敎)에 편입되어버렸다. 신선들은 선도에서 모시는 게 아니라 절집이나 당집에서 모셔지고 있다.

거리에 나가보면 종말론과 휴거를 주장하는 기독교인과 '당신은 도(道)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특히, 요즘 신문이나 TV 등을 통해서 단전호흡이나 기공수련에 대해서 많이 접하게 된다. 현재 국내에는 이같은 각종 행공단체들이 난립, '건강에 자신이 없는' 현대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이들 단체는 저마다 자신들이 정통이요, 뿌리라고 주장한다.

 

건강을 위한 수련장소로서의 의미를 넘어서서 종교로 둔갑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가장 약한 심리적 요소를 포교의 수단으로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종교적 형상을 띠지는 않았으나 행공단체들 중에는 창시자를 신성화·신비화시켜 '교주아닌 교주'로 만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김정빈 선도소설(仙道小說) 『단(丹)』이 나온 84년 이후 행공단체들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으며, 이 소설은 어쨌든 선(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크게 자극했다.

현재 국내에는 크게 3개 계열의 선도수련단체들이 있다. 먼저 전통적인 선법(仙法)을 이어받은 국선도(국선도법연구회) 계열이 있고 대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연정원(한국단학회연정원), 단학선원 계열이 있다.

 

국선도는 청산선사(현재, 비경도사)가 1967년 3월 3일 문공부에 개인등록(3호)함으로써 출범한 후 1971년 2월 21일 문교부에 정신도법교육회(제35호)로 등록, 전통적인 선도의 문을 열었다. 그후 정식 사단법인 출범은 1986년 10월 24일(서울시교위 제1∼263호) 사단법인 '국선도법연구회'라는 이름이었다.

 

청산은 12살 때 선도에 입문, 1960년대 중반 하산하여 선도의 대중화에 진력하다 1984년재입산.

국선도의 특징은 선도 본래의 정신수양, 양생, 그리고 선도의 이상세계인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추구하고 있다. 즉 순수성이 강하다. 청산이 하산한 후 근대 국선도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국선도는 처음 세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술시범 등 외공(外功)의 형태를 지향했으나 지금은 내공(內功)에 주력하고 있다. 외공은 한마디로 무술을, 내공은 정신수양을 뜻한다.

 

실제는 내외공이 갖추어져야 온전한 것으로 내외공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도(道)의 길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선도야말로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된 인간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선도는 정신과 육체,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관념적이나 언어적인 차원의 득도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또는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득도 또는 등선(登仙)을 원하기 때문이다.

▣ 박정진(1990)의 '잃어버린 선맥을 찾아서'에서 발췌·요약 되었음

 

 

선도의 맥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음주가무는 그냥 술먹고 노래부르며 노는 그런 단순한 유희나 오락의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숙한 의식이자 거대한 행사였다. 하늘과 조상을 받들고, 행복을 기원하고 한을 푸는 제단이었으며, 상하관민, 남녀노소 모두가 하나되어 어우러 지는 커다란 대동놀이엿다.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가장 오랜 기록인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을 살펴 보자. 이 시대 우리 역사는 고조선 멸망 후 부여(夫餘), 예(濊), 삼한을 거쳐 고구려 건국으로 이어지는 시기인데 이 때를 우리 조상들의 '주야음주가무'는 이랬다.


부여: 납월(臘月;섣달)에 하늘 굿(天祭)을 올린다. 온나라가 한데 모여 며칠씩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이를 이름하여 이를 영고(迎鼓)라 한다. 이 때는 형벌과 옥사를 끊고 감옥을 열어 죄수의 무리들도 풀어준다.
고구려: 10월에 하늘 굿을 벌이는데, 온 나라가 크게 모인다 이를 동맹(同盟)이라 한다.
: 10월 하늘 굿을 올리는데 밤낮으로 술마시고 노래하며 춤춘다, 이를 무천(舞天) 이라 한다.
삼한: 5월 파종 10월 추수가 끝나면 밤낮으로 술마시고 춤을 춘다. 각 나라(國邑)마다 천군(天君)을 뽑아 굿을 주재케 한다. 또 각 나라가 소도(蘇塗)라는 별읍(別邑)을 두는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단다. 이 소도를 성스러이 여겨 도망자가 그 안에 들어와도 돌려보내지 않는다.


이 제례와 의식, 놀이들은 멀리 배달시대의 신선도에서 출발하여 이때에는 하늘굿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그 풍류와 신명은 곧 신라의 풍류도(風流道)와 화랑도(花郞道), 고구려의 조의선인과 백제 문무도(文武道)로 계승되었다, 그리고 그 맥은 고려시대 선랑(仙郞), 국선(國仙), 또는 국자랑(國子郞), 재가화상(在家和尙)으로 이어졌음이 국내외 여러 전거에 뚜렷히 기록되어 있다.

◈ 강기준(1997)의 '다물, 그 역사와의 약속'에서 발췌되었음

 

 

도교의 뿌리는 한국의 선도(仙道)

 

이(理)는 정신의 절대적 경지이고 기(氣)는 물질을 담는 빈 공간(그릇)이다. 이런 점에서 이와 기는 정신과 물질보다 더 폭넓은 개념인 것 같다. 그런데 동아시아, 좀더 구체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은 다 함께 옛부터 흔히 이와 기로 자연과 인간을 분석하고 종합(미적분)해왔으며 그연원은 천지인을 근간으로 하는 샤머니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선사시대의 샤머니즘 문화는 유교, 불교, 기독교 문명의 발생과 함께 주도권을 상실하지만 기원 전 7세기 이전에는 세계문명을 지배한 강력한 종교였다. 칼 야스퍼스는 오늘날 고등종교로 지칭되는 불교, 기독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등은 모두 신선교(후에 巫敎로 칭함) 이후에 일어난 파생종교로 보았다.

 

샤머니즘(지금의 무당과 다르다)은 종교의 원형이며 인간생활의 원형이다. 샤머니즘은 천 지 인 사상 이외에도 문화적 프로그램(노하우)을 한데 모은 복합적 특성(문화복합)으로 고대미개선사사회를 이끄는 문명체계를 이루었다.

 

더욱이 유교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고대 샤머니즘의 정신을 반영하거나 합리화하여 재구성한 부분이 많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孔子)에 이르러 재래의 사상과 원시유교가 집대성되고 합리화되면서 모양이 크게 달라졌지만, 샤머니즘의 천 지 인 사상 등은 유교체계의 기반을 이룬다.

불교도 중국을 거친 '격의불교(格義佛敎)'의 탓으로 한자말로 옮겨지면서 이(理)와 기(氣)라는 용어의 사용과 함께 도교와 습합된다. 그런 점에서 유교와, 불교, 도교 속에서 선맥(仙脈)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무교(巫敎)와 선도(仙道)는 고대에서 구분이 힘들 정도이며 단군은 무당이며 선인(仙人), 신선(神仙)이기도 하다.

 

도교(선도)의 연원이 중국인가, 한국인가? 중국도교와 한국도교(선도)는 무엇이 다른가? 도교(선도)와 샤머니즘은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질문들과 함께 도교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흔히 샤머니즘은 고대의 원초적인 종교현상, 또는 제정일치시대의 사회(국가)지도원리라고 보아왔다. 김범부(金凡父)에 따르면 '산'이니 '센'이니 하는 어원은 '샤먼'에서 온 것이다. 신잡힌 사람을 '사얀'이라고 한다. 상고시대에 '산'이 곧 무당이고 이는 선(仙)의 음(音)인 '센'에서 파생된 것이다. 샤머니즘과 선도 중 시기적으로 선후를 따질 때 선도가 앞설 것 같다.

 

선도는 천지(天地) 속에서 인간의 입지를 정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중개자를 설정하기보다 개인적 자연적(과학적) 삶의 순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샤머니즘은 샤먼이라는 중개자를 통해 천지를 통합함으로써 집단적 종교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선도는 종교 이전, 사상 이전, 역사 이전의 가장 비언어적인 수도적 삶의 원형이다.

 

중국의 도교와 한국의 선도(도교) 중 어느 것이 먼저냐를 따질 때 한국선도가 먼저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한국[東夷] 땅에서 신선술(神仙術, 神仙道)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도 역시 황제가 한국[靑丘] 땅에서 자부(紫府)선생으로부터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고 전한다.

 

중국도교의 연원으로 보는 『노자(老子)』에도 신선설(神仙說)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도교는 『장자(莊子)』에 이르러 신선이 언급되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 한국의 선도가 중국화하면서 도교로 되고 이 도교가 다시 한국으로 역류한 성격이 강하다. 한편 한국의 도교도 동명왕(東明王)이 창설했음을 문헌이 전한다.

 

한국문화는 선도(仙道)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선도는 고조선문화와 단군에서 비롯된다. 그후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오는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로써 선도를 중심으로 당시 유 불 선을 통합함으로써 부활, 아니 명맥을 유지했다.

▣ 본 글은 "박정진"의 저서 "잃어버린 仙脈을 찾아서"에서 발췌되었습니다

 

 

황제헌원과 신선사상

황제헌원의 조상은 소전少典이라는 사람이고, 소전은 신농神農의 조상이기도 하며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온 인물이다. 그런데 《사기》는 헌원의 호가 유웅씨有熊氏라 하여 그가 웅씨熊氏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그의 먼 조상인 소전이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기》 색은索隱에서는 신농과 헌원은 모두 소전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태백일사》의 내용과도 일치하는 내용으로, 그들의 뿌리, 즉 삼황오제의 뿌리가 동이족에 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헌원이 자신의 군대를 '운사雲師'라고 부른 것 또한 그가 배달국의 후손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리고 이를 '황제黃帝'라 일컫는 것은 그가 오행五行에서 중앙에 해당하는 흙(土)의 기운으로 제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치우 천왕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그는 치우 천왕에게 귀의하여 청구국 고유의 천부인 3개에서 유래한 신선도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신선도는 후대의 노자와 장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도교道敎를 일명 신선도교神仙道敎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뿌리가 청구국(배달국)의 신선도에 있기 때문이다.

 

진晉나라 때의 도인 갈홍葛弘(283∼343)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에는 헌원과 청구국의 신선도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황제黃帝가 동쪽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紫府 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으며 이로써 만신萬神과 어울렸다.』

 

황제헌원이 청구국의 신선(神人) 자부 선생으로부터 천부天符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은 뒤 이를 깨우쳐 도를 얻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사실은 《태백일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부紫府 선생이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들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궁궐에 진상하니 천왕께서 칭찬하시고 삼청궁三淸宮을 세워 그곳에 기거하게 하시니 공공共工·헌원軒轅·창힐倉詰·대요大撓의 무리가 모두 와 배웠다.』

헌원 등이 청구국에서 수학하였음을 말하는 내용인데, 이로써 헌원에서 노자로 이어지는 도교의 근원이 청구국(배달국)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사기》에서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는데 3교(도·불·유)를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이일봉(1998)의 '실증한단고기'에서 발췌되었습니다.

 

또 중국의 도교와 한국의 선도(도교) 중 어느 것이 먼저냐를 따질 때 한국선도가 먼저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한국[東夷] 땅에서 신선술(神仙術, 神仙道)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도 역시 황제가 한국[靑丘] 땅에서 자부(紫府)선생으로부터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았다고 전한다.

 

중국도교의 연원으로 보는 『노자(老子)』에도 신선설(神仙說)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도교는 『장자(莊子)』에 이르러 신선이 언급되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 한국의 선도가 중국화하면서 도교로 되고 이 도교가 다시 한국으로 역류한 성격이 강하다. 한편 한국의 도교도 동명왕(東明王)이 창설했음을 문헌이 전한다.

 

한국문화는 선도(仙道)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선도는 고조선문화와 단군에서 비롯된다. 그후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오는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로써 선도를 중심으로 당시 유 불 선을 통합함으로써 부활, 아니 명맥을 유지했다.

▣ 본 글은 "박정진"의 저서 "잃어버린 仙脈을 찾아서"에서 발췌되었습니다.

 

 

국선도와 심신불이(心身不二):국선도 수련의 이론적 기초를 찾아서

심재룡(서울대 철학과 교수)

국선도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 운동입니다. 몸과 마음을 따로 닦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닦는다는 데에 국선도 수련의 묘미가 있습니다. 함께 닦되 몸과 마음을 둘로 보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이 국선도 행공의 이론적 기초를 토대로 그 몇가지 특징적 장점을 기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몸과 마음을 나누어 보는 이론은 심신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서양 근세를 철학적으로 정초한 데카르트에 의해서 주창된 이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런 이론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심신불이론은 심신이원론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본래 심신의 조화를 지향하는 우리 국선도의 행공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유불도를 막론하고 모든 종교 및 철학전통들이 마음과 몸에 대해서 심신불이론적인 이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 이론의 요점은 마음과 몸을 개념상 따로 떼어 보지 않는 것입니다. 기능상 구분이 가능하지만 존재론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서양의 스피노자도 이와 비슷한 이론을 제출했습니다. 동양적 이론만의 특징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몸이 하나되기란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이지 결코 마음과 몸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심신의 합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논점을 이제부터 하나하나 따져 보는 것이 저의 임무이겠습니다.

 

 

수양의 현대적 의미

수양(修養)에서 수(修)는 마음을 갈고 닦고, 양(養)은 마음의 심지를 기른다는 뜻이다. 수양이란 언어가 있다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한 실천적인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수양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않고 단절되었다. 따라서 어떻게 마음을 갈고 닦으면서 심지를 기를 것인가가 막연할 따름이다.

 

마음의 상태는 호흡에 그대로 나타남을 알 수 있는데 이 호흡의 유형이 물결형, 파도형, 마디형, 비단형 네 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마음을 갈고 닦는다는 것은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유형의 호흡을 비단결 같이 매끄러운 호흡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다. 즉 들뜨거나 거칠거나 옹이진 마디처럼 맺힌 마음을 호흡을 통해서 매끄럽게 가다듬는 것이다.

 

마음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련을 통해 본인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다. 호흡을 통해 마음을 갈고 닦으면 진정한 마음의 평안이 오며,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고 인간 관계나 일에서 오는 모든 갈등이 해소된다.

마음은 심지를 기르는 것이다. 심지는 마음의 뿌리와 같다. 호흡은 처음에는 가늘고 짧은데 수련이 깊어질수록 굵고 길어진다. 심지를 기른다는 것은 호흡을 할 때 진폭이 커지고 진폭의 축이 실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를 키움으로써 내적인 집중력과 의지력, 강인성과 지구력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외적으로 키우는 것이 요즈음 흔히 말하는 극기훈련이다.

 

집중력과 의지력은 자율성을 신장시켜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바탕이요, 뿌리이다. 나아가 자신의 뿌리가 튼튼할수록 적극적인 성향으로 바뀐다. 가치관과 사회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는 데서 현대인들은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해 혼란을 겪고 무기력해지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러한 자신을 붙잡기 위해 고집과 오기로 버티어 보기도 하지만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고집과 오기는 웅크리고 거머쥐는 속성이 있어서 나무의 옹이와 같이 자신이 응축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양의 원래 의미와 효과를 생각해 보면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양은 절실하게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 본 글은 임경택 교수(1998)의 저서 '숨쉬는 이야기'에서 발췌되었습니다.

 

 

국선도는 全人的 자기완성에 기여

金仟基 교수

발표논문 요지

21세기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대비한 미래의 교육방향은 전인적(全人的) 인간완성에 맞춰져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개혁은 공생공존과 상생(相生)관계를 증진시키고 일화통일(一和統一)적 관계를 중시하는 국선도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사단법인 국선도법연구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19일 상오 11시 서울국회의원회관내 대회의실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정신문명 국선도의 역할과 사명』이란 주제로 여는 학술세미나에서 전북대 金仟基 교수(교육학)는 이같은 요지의 『21세기 국선도의 교육적 의의』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다음은 발제요지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있는 시점에서 동양사상의 재발견이 새롭게 이루어지면서 교육에 있어서도 종래 서구식 교육사고의 틀에서 벗어난 동양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에서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동양사상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선도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특히 국선도 혹은 풍류도(風流道)에 대한 연구는 극히 미비하고 그것마저도 종교적인 측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국선도 수련법이 교육에 주는 의의는 무엇인가.

 

첫째 국선도의 목적인 전인적인 자기완성에서 그 교육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정신을 키우고 덕성을 길러주면서 동시에 강인한 몸을 갖도록 하는 전인적 수련을 통해 인간을 선인의 경지까지 이르게 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학교교육에서 소홀한 전인교육의 실현에 기여한다.

 

둘째 국선도는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수련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학교의 전인교육의 단편화를 재검토하도록 해준다.

 

셋째 국선도는 전인적 인간의 완성이 서구교육의 특징인 개념조작적 지식교육만으론 안된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 물론 지식교육을 통해 이성을 계발하고 합리적 사고력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은 지식의 교습(敎習)을 본 뜻으로 삼되 반드시 심신수련이 구반되어야 한다. 현대교육에서 상실한 것은 바로 몸과 마음의 수련이다.

 

넷째 국선도는 전인적인 자기완성이 대자연의 힘에 참여하는 우아일여(宇我一如)와 천인합일(天人合一)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국선도에서 말하는 전인적인 자기완성은 개개인의 이기성과 경쟁과 성공을 중시하는 서구의 개체주의적 자유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바로 동양사상인 공생공존의 천지인 합일적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선도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상생과 공존이 천도 지도 인도임을 주장한다. 그것을 일화통일이라 부른다. 현재의 학교교육은 자신에만 집착하는 이기성을 부추긴다. 선도에서는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대우주심과 합일해야만 기(氣)와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교육개혁이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병폐와 문제를 해결하고 21세기 교육의 새 비젼을 제시하는데는 미흡하다. 21세기는 인류의 도덕적 정신적 파산을 초래할 수 있는 경쟁력 향상의 담론을 넘어서서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자연이 협동하며 공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미래교육의 전망을 생태중심 또는 생명중심의 동양사상에서 찾고자 한다면 또한 현실교육의 문제를 이러한 사상에서 새롭게 규정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면 21세기 미래교육에 국선도가 시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국선도와 서양 도수체조의 비교 검토

연구자: 권운택(한국체육대학)

 

논문요약

우리 한국인에게는 여러 훌륭한 전통 도수체조가 있다. 이같은 한국의 체육 문화에 속하는 전통 도수체조를 발굴하여 근대적 서구의 도수체조와 비교 분석을 거쳐 도수체조로서의 가치와 우수성을 입증해 냄으로써 우리의 체육문화를 통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함과 동시에 국민체조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이 오늘의 바람이다.

제 1장 국선도(國仙道)의 역사와 정신
제 2장 국선도 체조의 제 특징(諸 特徵)
제 3장 서양 닐스북 체조의 특성
제 4장 국선도 체조와 서양 도수체조의 비교검토

 

 

                    제1장 국선도(國仙道)의 역사와 정신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옛 기록들에서 밝달임금(檀君王儉)을 한얼사람(天神人, 王人, 神人)이요 신선사람(神仙人, 神人, 仙人)이라 하였다. 이 한얼사람과 신선사람을 한자로 天人, 神人, 仙人이라 하였다. 여기서 仙은 선( 天)이라고도 쓰는데, 우주를 한나라(國)로 보고 人과 天이 妙合(仙)하니 이러한 大自然의 길을 모아 이름하여 국선도라는 것이다. 국선도의 수련방법은 단전[丹田(下腹部)]를 중심으로 깊은 숨쉬기(深呼吸)를 통하여 정(精)을 충일시키는 축기방법(畜氣方法)과 함께 굴신(屈身) 동작(체조동작)을 천천히 하는 것이다. 이것을 행공(行功)이라 하는데, 행공을 하루 한두 시간씩 수도함으로써 도심(道心)과 도력(道力)을 체득하여 전인적(全人的)인 참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선도법이요 국선도이다.

 

국선도의 정신으로 충효사상과 건강장수사상을 들 수 있겠다.

 

첫째, 忠孝思想: 국선(국선), 선랑(선랑), 선인(선인) 등이 모두 같은 말로 배달임금 한배검으로부터 유래하였다. 단군왕검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자기의 얼로 삼았는데, 이것은 배달민족의 얼이요 국선도(화랑도)의 얼이 되기도 한다. 국조 단군왕검은 자기의 얼인 홍익인간의 발전적 전개로 하늘, 땅 숭배와 조상공경 그리고 애인(愛人), 즉 사람 사랑을 자기의 근본사상(根本思想)으로 삼는 동시에 우리 배달겨레에 가르쳐 주었고, 이러한 충효사상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衣仙人)을 통해서 일찍이 전수 발전되었고, 신라 화랑들의 기백과 기풍의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健康長壽思想: 우리 조상들은 심신의 모순이나 분리를 생각지 않았다. 한국인들에 있어 몸은 마음에 관한 일체의 표현이었으며, 마음은 몸의 생명인 실체란 고유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현대의 일반적인 신체관(身體觀)과 별 다름이 없다. 국선도의 건강장수사상은 단학(丹學)과 연관이 되는데 본성(本性)에 연결시킨 단학의 기본이념은 제하(臍下)의 1촌(寸) 3분(分)의 단전(丹田)을 기준으로 몸을 안정시키고 일호 일흡(一呼 一吸)을 잘해서 전신(全身)에 분산된 원기(元氣)를 단전(丹田)에 응집시킨 상태에서 유지, 보존하여 심신(心神)의 명징(明澄)함과 건강함을 지니면서 장생불로(長生不老)에 이르려는 것이다. 이것이 국선도의 건강 장생술의 근간이라 하겠다.

 

 

제2장 국선도 체조의 제 특징(諸 特徵)

국선도는 양생비법(養生秘法)인 동시에 道이다. 국선도의 성격은 제일의적으로 종교(宗敎)가 아니며, 신(神)이나 영(靈)을 직접 위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의 실존을 그대로 대상으로 삼는 실존생명(實存生命)의 자연과학(自然科學)일 뿐이다. 국선도 정신과 수련방법에 근거해 볼 때 국선도 체조는 조신과 호흡에서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조신(調身)이란 몸을 균형있게 고르게 움직여 주는 동작을 말한다. 그런데 국선도에서는 운동의 정도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즉 부분적인 운동은 전체적 운동만 못하고, 전체적 운동은 내공을 갖춘 전체적 운동만 못하며, 한편에 치우친 운동은 몸의 균형에 조신(調身)의 조화가 되지 못하여 신체적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사람은 숨을 쉬지 않고는 한 시간도 살 수 없으며, 한 사람의 건강을 진찰하는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숨쉬기는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준다. 그런데 국선도 체조에서는 단리를 응용한 돌단자리(下丹田)로 숨쉬고 몸을 고르는 동작을 하여 우리 몸안의 정력의 원천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돌단자리 숨쉬기와 고요한 몸놀림을 하는 가운데 정(精)이 충일(充溢)하면 기(氣)가 장(壯)하여 진다고 하여 이 원리를 정수기 기수신(精隨氣 氣隨神)의 단학원리(丹學原理)라 한다.

 

국선도 체조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그 효과를 높이고 또 성과를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신체 수련의 규범이 있고 현대 체조에서는 찾기 힘든 정신적 수련 규범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 체조가 대부분 서서 동작을 하는 데 비해 국선도 체조는 앉거나 누워서 하는 부분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

 

 

 

 제3장 서양 닐스북 체조의 특성

서양 도수체조(徒手體操)의 대표적인 닐스북 체조를 체조형(體操形), 체조구성(體操構成), 운동방법(運動方法), 신체효과(身體效果), 체조의 성격 등으로 분석해 볼 때 신체효과 측면에서 닐스북 체조는 리듬을 존중하고 탄력성(彈力性)을 이용한 동적인 체조이며 힘찬 운동이다. 율동(律動)이 끊어짐이 없이 연속적으로 흘러가며 하지(下肢)와 전신운동(全身運動; 跳躍, 走)이 많이 채택되어 있지만 각부(各部)는 균형이 잡혀져 있다.

 

닐스북 체조는 청년의 근육을 유연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기술이 고도의 것이었고 복합기술 및 연속기술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는 너무 수준의 차가 심하여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서양 도수체조인 닐스북 체조는 정지된 자세에 의한 것보다도 잘 구성된 활발한 율동적 동작을 구사하고 있다. 닐스북은 체조의 중요성을 유연성(柔軟性), 근력(筋力), 조정력(調整力), 혹은 민첩성(敏捷性) 발달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제4장 국선도 체조와 서양 도수체조의 비교 검토

국선도 체조와 닐스북 체조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유사한 면을 찾을 수 있다. 즉 아무런 기구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하며 공간 외의 다른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스프츠나 그 외의 모든 본운동전에 준비운동으로서 할 수 있으며, 남녀 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체조동작, 신체구성 면, 운동방법적인 면, 체조성격적인 면 등에서 거의 같다.

 

그러나 서양 도수체조인 닐스북 체조는 정지된 자세에 의한 것보다도 잘 구성된 활발한 율동적 동작을 구사하는 반면, 국선도 체조는 모든 관절과 근육을 여러 각도에서 무리함이 없이 조화있게 움직여 신체의 말단에서 기 중심부로, 다시 온몸으로 기혈을 순환시켜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한다는 체조로서 발생지가 동양인 점에서 서양의 그것과 다르다.

 

국선도 체조와 서양 도수체조인 닐스북 체조의 비교를 통해 그 우수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① 근대의 닐스북 체조는 그 체조의 운동이 모두 일상 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근육과 관절을 운동시켜서 스포츠 기능을 향상하고자 함에 반해서, 국선도 체조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지 않는 근육과 관절도 고루 운동시키는 점이 그 차이라 하겠다.

 

② 닐스북 체조는 부분적 개별적 복합적 연속 운동이 많이 포함되어 일반적으로 단련적이고 동작이 경쾌하여 안정적이지 못하나 국선도 체조는 동작이 정적이고 복합적이고 무리하지 않아서 중심과 평형 유지가 용이하며 또한 운동 상해도 방지될 수 있다.

 

③ 닐스북 체조는 힘을 발산시켜서 근육의 힘을 강화시키나 국선도 체조는 호흡을 통해서 조식, 조신, 조심(調息, 調身, 調心)의 효과로 안정되고 힘이 축적되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④ 닐스북 체조는 진동(振動), 굴신(屈身) 및 도약동작(跳躍動作)이 많으나, 국선도 체조는 굴신(屈身), 염전(捻轉) 및 전향동작(轉向動作)이 많아 장기(臟器)의 강화와 치료 효과가 크다.

 

⑤ 닐스북 체조는 단련적 연속적인 동작인 데 반해 국선도 체조는 충분한 정적인 운동으로서 정신통일의 효과가 크다.

 

⑥ 닐스북 체조는 서양의 선가주의적(仙家主義的) 애국심의 발로로 탄생되었으나 국선도 체조는 우리 고유의 토속신앙인 경천사상과 충효사상에 뿌리를 둔다.

 

이상과 같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극소수에 의해서만 비전되고 있거나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전통문화의 발굴 계승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매우 인간적이면서 과학적 이론이 뒷받침되어 있는 국선도 체조의 범국민 실용화 단계가 보다 앞당겨질 수 있도록 하는 후속 연구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단침과 열기

단전호흡을 통해 나타나는 단침과 열기는 하늘이 준 보약이다. 몸 안에서 스스로 정화하는 자정 능력, 치유력, 면역력과 복원력의 가장 핵심적인 원리는 "단침과 열기"이다.

 

♣단침이란 무엇인가?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을 때 생기는 것이 단침이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3∼4개월 정도 수련하면 단침을 느끼게 되는데 이 정도 수준이면 불면증이나 극도의 불안감, 편두통과 마음 속의 가슴앓이는 없어지게 된다.

 

♣열기란 무엇인가?
호흡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열기가난다. 그것은 정신 통일이 되어 간다는 증거이다. 이때 나오는 열은 기력의 원천이고 모든 염증을 없애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단전(丹田)이란 말 자체가 '열이 나는 밭' '열기가 나는 곳'이라는 말이다.

▣ 본 글은 임경택 교수(1998)의 저서 '숨쉬는 이야기'에서 발췌되었습니다.

 

 

김시습

15세기 한국사상사를 대표하는 김시습(金時習)은 문학사의 전개에 있어서 <금오신화>란 한문소설을 창작한 인물인 동시에, 유교의 이기철학(理氣哲學)과 불교의 화엄사상(華嚴思想), 그리고 선도의 내단사상(內丹思想)을 한몸에 지닌 사상가이면서, 세조의 찬탈로 인한 왕권교체의 충격을 감당해야 했던 불우한 선비의 전형이기도 하다. 김시습의 모순된 행적과 그의 사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논의를 전개하지 않고, 행적과 사상을 각기 개별적 현상으로 따로 다룬 관계로 그를 나쁘게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겠다.

 

김시습은 고려말 길재 등으로부터 전승된 도학정신을 계승하여 생육신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에 의탁한 행적이 문제되어 유학사에서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김안로가 일으킨 여러 차례의 옥사 이후에 사림의 정신적 지주가되어 매월당(梅月堂)으로 지칭될 정도로 사후에 그의 청절(淸節)이 인정되었다.

 

김시습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 사육신이 죽음을 당하자, 세상에 뜻을 잃고 스님이 되었다. 스님이 된 뒤로는 방방곡곡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는 한때 오세암에 은거했었다. 선가(仙家)에서는 그가 오세암에 머무는 동안 선도(仙道)를 닦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선 선가서(仙家書)인 <해동이적(海東異跡)>과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 자세히 쓰여 있다.

 

<해동전도록>에 따르면, 김시습에게 선도를 가르친 사람은 김고운(金孤雲)이다. 김고운은 원래 중국 사람으로 본명히 설현( 賢)이었다. 설현은 고려 때 우리 나라에 유람차 왔었다. 그는 지리산에 들렀다가 권청(權淸) 진인(眞人)을 만났다. 권진인은 영생불사(永生不死)하는 선인(仙人)이 되어 최치원 선생과 함께 지리산에 머문다는 분이다.

 

이 권진인이 설현을 선도에 입문시켰다. 훗날, 설현은 명오(明悟)라는 스님을 서대산에서 만났는데, 명오스님한테서도 가르침을 받았다. 설현은 명오스님의 지도에 따라 8년 동안 수행하여 득도(得道)했다.

 

설현은 득도하자 곧 선계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도(道)를 전수해줄 제자를 만나지 못해 인연이 닿는 사람을 기다렸다. 이 때 이름을 김고운으로 고쳤다. 이름을 바꾼 뒤에는 경상도와 강원도를 오가며 백여 년 동안 어린이들에게 <통감>을 가르쳤다. 그사이 많은 사람들이 그와 교분을 맺었으나 누구도 그의 참모습을 몰랐다.

 

김고운은 조선 세종 18년(1436)에 드디어 선도와 인연이 깊은 사람을 만났다. 바로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두 사람은 춘천에서 만났다. 당시 매월당은 팔팔한 청년이었다. 또 자기를 극진히 아꼈던 세종이 아직 왕위에 있던 때였으니, 세상에서 큰일을 하고 싶었다. 김고운이 매월당에게 수도(修道)하라 권했지만, 매월당은 관심이 없었다.

 

그후, 매월당이 오세암에 머물 때 김고운이 그를 찾아왔다. 매월당은 이번에는 서슴지 않고 김고운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리고 열심히 선도를 닦았다. 김고운은 매월당에게 도를 전한 뒤에 수해선(水解仙)이 되었다. 수해선이란 몸이 물로 화(化)했다가 선계(仙界)로 올라가는 선인(仙人)을 일컫는 말이다.

 

<해동이적>은 매월당이 오세암에 머물 때에 있었던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김시습이 일찍이 설악산에서 은거하는데, 강릉 사람 최연이 친구 대여섯 명과 함께 제자가 되겠다며 찾아왔다. 김시습이 그들의 인물됨을 살펴보니, 최연이 제일 쓸 만했다.

 

이에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최연만을 제자로 삼았다. 최연은 오세암에서 매월당과 함께 지냈다. 두 사람이 사제지간이 된 지 어느덧 반 년이 지났다. 최연은 자나깨나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밤중에 어쩌다 잠이 깨어 눈을 떠 보면 스승이 온데간데없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최연은 김시습이 한밤중에 도대체 어딜 가서 뭘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자는 체하고 있다가, 김시습이 방을 나간 다음 곧바로 뒤쫓았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라져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 실패한 끝에 드디어 하루는 스승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김시습은 골짜기 하나와 능선 하나를 넘어 넓은 바위가 있는 데로 갔다.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먼저 와서 김시습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위에 앉아 한참 동안 얘길 나눴다. 최연은 그들이 하는 얘기를 너무 멀어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김시습은 최연이 몰래 숨어서 엿본 것을 알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김시습이 정색을 하고 최연을 꾸짖었다. "나는 너를 제자로 삼을 만하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네가 너무 번거롭고 조잡하여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다. 물러가라." 최연이 백배사죄했으나, 김시습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제관계는 반 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해동전도록>에 의하면, 김시습은 도(道)를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 등에게 전했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유명한 이인(異人)들이다. 정희량은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까지 지냈는데,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키게 될 줄 알고 종적을 감췄다.

 

김시습이 열반에 든 곳은 충남 부여에 있는 무량사다. 김시습은 열반에 들 때 스님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화장하지 말고 땅 속에다 3년 동안 묻어둬라. 그후에 정식으로 화장해 다오"라고 했다.

스님들은 그가 원한 대로 시신을 땅에 묻었다. 그리고 3년 후에 다시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려고 무덤을 열었다. 관을 뜯고 보니, 김시습의 시신은 살아 있는 사람과 똑같았다. 얼굴에는 불그레하게 핏기가 감돌았다. 누가 봐도 산 사람이지 시신이 아니었다. 스님들은 모두들 그가 성불(成佛)했다고 확신했다.

 

김시습이 열반에 든 지 7년 후의 일이다. 놀랍게도 제자 윤군평이 스승 김시습을 개성에서 만났다. "아니 스승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선화(仙化)하신 지 벌써 7년이 넘지 않았습니까?" 윤군평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서 스승에게 여쭸다. "나는 오고 감이 자유자재다. 요새는 서경덕에게 도(道)를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 왕래한 지 벌써 2년째가 된다." 윤군평의 물음에 김시습이 이렇게 대답했다.

 

김시습이 죽어서 3년이 지난 뒤에도 시신은 산 사람과 똑같았는데 얘기는, 이율곡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김시습전>에도 나온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세암은 선계(仙界)의 기운이 왕성한 곳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선인(仙人)이 되었다는 얘기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다

 

      

 

 

 

 
 

             


 

 
 

 

 

출처 : cio00700
글쓴이 : 천화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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