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차 團茶에 대한 한시 3수 外

2018. 3. 9. 15:09차 이야기


단차 團茶에 대한 한시 3首



      



간이집 제7권 / 갑오행록(甲午行錄)




입춘(立春) 날에 동파(東坡)의 시

입춘일병중요객(立春日病中邀客) 에 차운하다. 2수(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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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 최립(崔岦)
겨울 보낸 새 햇빛이 처음 쏟아져 비추는 날 / 臘盡新陽始布漫
황도 사람들 흥겨운 일 실컷 보게 되겠구나 / 皇都樂事剩堪看
사람들마다 머리에 꽂은 삐딱한 오색 장식이요 / 人人綵勝簪欹側
집집마다 또아리 틀며 올라가는 향연이라 / 戶戶香煙篆屈盤
새해맞이 약주는 모름지기 초주(椒酒) 백주(柏酒) / 小歲觴須椒柏醞
맛있는 음식 먹고 난 뒤 입가심은 봉룡단 / 羣羞壓用鳳龍團
나그네 마음은 명절 맞아 더욱 우울해지는지라 / 羈懷更覺逢辰惡
변변찮은 상 차리고 서로들 억지로 기분 내네 / 薄具相將亦强歡

원래는 납일(臘日) 전에 돌아가리라 여겼는데 / 本擬歸期在臘前
새해를 누가 처량하게 맞을 줄이야 알았으랴 / 誰知蹭蹬向新年
불현듯 생각나네 아내가 마련한 나물 소반 / 菜盤却憶貧妻具
어떻게 보랴 꽃을 꽂은 예쁜 딸의 그 모습을 / 花勝那看小女姸
저잣거리 찾아가면 맛 좋은 술도 사련마는 / 市上猶堪沽美酒
지갑 속을 뒤져봐도 돈이 남지를 않았는걸 / 囊中可奈乏留錢
타향에서 입춘첩을 굳이 써서 뭐 하리요 / 他鄕不用宜春帖
바다의 요기(妖氣)가 개기만을 말없이 기도할 뿐 / 默禱腥氛淨海天
[주-C001] 갑오행록(甲午行錄) : 
선조 27년(1594)에 중국 군대의 파병과 광해군(光海君)의 세자 책봉을 주청(奏請)하러 중국에 갔을 때의 시를 모은 것이다. 이때 주청사(奏請使)는 윤근수(尹根壽), 주청 부사는 간이(簡易) 최립(崔岦), 서장관(書狀官)은 신흠(申欽)이었다.
[주-D001] 동파(東坡)의 시 :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권14 첫머리에 나오는 〈입춘 날에 병석에 누워 있다가 안국을 맞아……[立春日病中邀安國云云]〉의 시를 말한다.
[주-D002] 사람들마다 …… 장식이요 : 
입춘 날이 되면 사람들이 오색 종이나 비단을 잘라 자그마한 깃발이나 제비, 나비, 금전(金錢) 등의 형상을 만든 뒤에 그것을 머리에 꽂고서 봄을 맞는 뜻을 보인 풍속이 있었다.
[주-D003] 새해맞이 …… 백주(柏酒) : 
새해 아침에 조상을 숭배하며 제사를 지내거나 가장(家長)에게 축수(祝壽)할 때 초주(椒酒)와 백주를 올린 고대 풍습이 있었다.
[주-D004] 봉룡단(鳳龍團) : 
봉룡단차(鳳龍團茶)의 준말로, 송(宋)나라 조정에서 최상품(最上品)으로 아꼈던 차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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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7권 / 시(詩) - 우세화시집(又細和詩集) 






새로 제조한 차[新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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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 밖에는 높다란 깃대를 세우고서 / 銷金帳外建高牙
게의 눈과 고기 비늘 안화가 가득하여라 / 蟹眼魚鱗滿眼花
가난한 선비는 점심 끼니도 채우기 어려워 / 貧士難充日中飯
새 샘물 떠다 부질없이 우전차를 다리도다 / 新泉謾煮雨前芽
백성의 근심은 신선 경계에서 묻지를 마소 / 民憂莫問群仙境
수액은 손 사절하는 집에 누가 나누어줄꼬 / 水厄誰分謝客家
스스로 믿노니 가슴속에 막힘이 없는데다 / 自信胸中無壅滯
청고한 맛의 차를 마시니 더욱 자랑스럽네 / 喫添淸苦更堪誇

항상 맑은 물로 늙은 치아를 닦고자 하여 / 玄淡常思潄老牙
몇 군데의 명산에서 선화를 보았던고 / 名山幾處見仙花
곡우 전에는 어떤 이가 호구차를 주었는데 / 雨前人致虎口味
구름 밖에선 누가 용정차를 전해 줄런고 / 雲外誰傳龍井芽
병든 몸 이미 말랐는데 마음은 죽지 않았고 / 病骨已枯心未死
옛 전원은 비록 있으나 꿈에는 집이 없다오 / 故園雖在夢無家
노동은 허물어진 집에 하 많이 굶주리면서 / 盧仝破屋多饑餒
양액의 청풍을 도리어 스스로 자랑하였네
/ 兩腋淸風還自誇
이상은 원중의 시이다.

문득 입 안에 진진한 맛 이는 걸 느끼어라 / 忽覺津津動頰牙
선생의 붓 아래 완연히 꽃이 피는 듯하네 / 先生筆下宛生花
사제는 몹시도 매운 향기가 떠 움직이고 / 麝臍酷烈浮香氣
작설의 새싹은 뾰족하게 새로 솟아나도다 / 雀舌尖新迸早芽
제조하는 법칙은 정채의 솜씨에 의거하고 / 碾硏法依丁蔡手
맵고 단 성미는 심서가의 장부에 알맞아라 / 辣甘性合沈徐家
시를 이루매 용육을 얘기한 내가 우스워라 / 詩成笑我談龍肉
오직 산나물이 있어 맛을 자랑할 만하다오 / 獨有山茹味可誇

이상은 외심의 시이다. 
[주-D001] 게의 …… 안화(眼花) : 
게의 눈과 고기 비늘은 곧 차를 끓일 때에 물이 부그르르 끓어오르는 모양을 형용한 말이고, 안화란 눈이 어른어른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주-D002] 우전차(雨前茶) : 
곡우(穀雨) 때에 채취하여 제조한 차를 이름.
[주-D003] 수액(水厄) : 
차를 무리하게 많이 마시게 됨을 이름. 진(晉) 나라 때 왕몽(王濛)이 차를 매우 좋아하여 손이 그의 집에 가면 반드시 차를 마시게 되므로, 당시 사대부들이 이를 매우 고통스럽게 여겨, 매양 왕몽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오늘은 수액(水厄)이 있을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선화(仙花) : 
차의 별칭이 선아(仙芽)이므로 차의 꽃을 이른 말이다.
[주-D005] 노동(盧仝)은 …… 자랑하였네 : 
노동은 당(唐) 나라 때의 시인인데, 허물어진 집이란 곧 한유(韓愈)가 노동의 〈월식(月蝕)〉 시를 칭찬하여 지은 시에서 “낙성에 살고 있는 옥천 선생은 허물어진 집 두어 칸이 있을 뿐이네.[玉川先生洛城裏 破屋數間而已矣]” 한 데서 온 말이고, 양액(兩腋)의 청풍(淸風)이란 바로 노동이 차(茶)를 좋아하여 차를 예찬하는 시에서 “ …… 다섯 잔을 마시면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 잔을 마시면 선령이 통하고, 일곱 잔은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두 겨드랑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남을 느끼게 된다.[五椀肌骨淸 六椀通仙靈 七椀喫不得 唯覺兩腋習習淸風生]”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6] 제조하는 …… 의거하고 : 
정채(丁蔡)는 송(宋) 나라의 정위(丁謂)와 채양(蔡襄) 두 사람을 합칭한 말인데, 복건성(福建省) 건주(建州)에서 생산되는 용단차(龍團茶)를 전후에 걸쳐 이 두 사람이 제조하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주-D007] 맵고 …… 알맞아라 : 
심서가(沈徐家)는 곧 당(唐) 나라의 심전사(沈傳師)와 서회(徐晦)를 합칭한 말인데, 심전사는 음식을 잘 먹었고 서회는 술을 잘 마시는 주호(酒豪)로서 일찍이 양사복(楊嗣復)이 말하기를, “서가(徐家)의 폐장(肺腸)과 심가(沈家)의 비장(脾腸)은 참으로 편안한가?"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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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제4권 / 시(詩)○갑진고(甲辰稿)

촉차〔蜀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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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임인년(1902, 광무6)에 나는 동년(同年) 송평숙(宋平叔)을 방문하였다. 평숙이 막 상해에서 돌아와 내게 촉차 사방 1치 되는 것을 주면서 이르기를, “촉 지방 선비에게서 얻었다.” 하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 차를 끓여 맛을 보았는데, 맛이 매우 향기롭고 시원하였다. 자주 맛을 음미하면서 그를 위해 시 한 수를 읊어 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월곡(月谷)으로 옮겨오면서 휴일에 옛 상자를 점검하였는데, 아직도 그 반이 남아 있었다. 드디어 기쁘게 한 사발을 시음하자니, 시가 뒤따라 이루어졌다. 대개 그 묵은 빚을 갚은 셈이다.

                                 ㅡ 황현(黃玹)
동년의 젊은이는 자가 평숙인데 / 同年少年字平叔
모습은 좌사이나 재주는 반육이네 / 貌如左思才潘陸
풍류는 본래 진나라의 인물들 같아서 / 風流自是晉人物
좁은 강산 싫어서 미련 없이 떠나갔었지 / 掉臂江湖厭局促
하루아침에 배를 돌려 상해에서 돌아와 / 一朝舟碾上海還
빻은 누룩 같은 덩이차를 내게 주었네 / 貽我團茶如破麴
그 말로는 서촉 사람에게 얻은 것인데 / 自言得之西蜀人
풍미가 일반 차와 크게 다르다고 하네 / 風味逈非凡茶族
명성을 들은 뒤로는 감히 가까이 못하다가 / 聞名便已不敢褻
날을 받아 달이면서 삼가 재계하였네 / 筮日煎烹謹薰沐
돌솥을 씻고 씻으니 청명한 빛 발하는데 / 石罐千洗發灝光
가득한 새벽 샘물은 더할 수 없이 맑네 / 汪汪晨泉奪?淥
순식간에 부글부글 거품이 가득하니 / 須臾洶洶魚眼盡
한 조각 떼어 찬 옥 속에 담그네 / 切以方寸浸寒玉
두터운 거품 가는 꽃이 잔 면에 가득하니 / 餑厚花細盞面勻
마시기도 전에 눈길을 먼저 끄네 / 未及下咽先奪目
담담하게 옆 사람과 대화하며 느끼나니 / 慘澹說與傍人知
색깔, 향기, 맛이 모두 과연 촉산(蜀産)이네 / 色香氣味無非蜀
탕화에는 가늘게 금강의 흰 물결 번득이고 / 湯華細翻錦江白
운각은 멀리 아미산의 푸름을 띠고 있네 / 雲脚遙帶峨眉綠
상상컨대 싹이 돋아 잎이 달릴 즈음이면 / 想當吐芽抽鎗時
천협의 산과 계곡에 가득 널렸으리라 / 布滿川峽衆山谷
노두의 시내 곁 숲이 아니면 / 除非老杜溪傍林
참으로 삼소의 사당 뒤 기슭이리라 / 定是三蘇祠後麓
만리 밖까지 유명한 차의 산지인지라 / 萬里歷歷茶産地
산천 풍물이 온통 마음을 자극하네 / 山川風物紛掁觸
중국 유람 평생토록 소원하던 바이지만 / 平生我欲游中國
생각나면 고서를 통할 따름이라네 / 思至惟將古書讀
천태, 안탕에 나막신 소리 울리고 / 天台鴈宕響屐齒
칠택, 삼상에 돛의 배가 불룩하네 / 七澤三湘飽帆腹
서홍조는 형으로 섬길 만하고 / 徐弘祖可兄事之
종소문은 아이처럼 기를 만하네 / 宗少文堪兒輩畜
어찌할거나, 꿈을 꿔도 길을 알지 못하니 / 爭奈夢中不識路
신마가 발해의 굽이에서 방황하네 / 神馬徬徨渤海曲
지금에 와 호락은 말할 필요 없으니 / 如今瓠落莫須說
부끄럽네, 백발 된 거울 속 귀밑머리여 / 靑銅羞對雙鬢禿
한 사발 차에 세 번 탄식하게 되니 / 一椀茶三歎息
어찌하면 이내 몸을 황곡으로 만들어 볼까 / 安得化身爲黃鵠
[주-C001] 갑진고(甲辰稿) : 
1904년(광무8), 매천이 50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
[주-D001] 송평숙(宋平叔) : 
평숙은 언론인이자 교육자였던 송태회(宋泰會, 1872~1941)의 자이다. 호는 염재(念齋)이며, 전남 화순(和順) 출생이다. 1888년(고종25)에 진사시, 1900년 박사시(博士試)를 거쳐 성균관에서 수업하였다. 1901년부터 1907년까지 중국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귀국하여 《대한매일신보》 기자로 활약하였다. 국권 피탈 후에는 낙향하여 1918년 전북 고창군(高敞郡)에 오산고보(吾山高普)를 설립,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하였다. 서예와 그림에도 뛰어났는데, 순천의 송광사(松廣寺) 등지에 글씨 및 그림이 남아 있다.
[주-D002] 좌사(左思) : 
중국 서진(西晉)의 문장가로, 자는 태충(太冲)이다. 10년 동안 구상하여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다가 당대의 문사 황보밀(皇甫謐)이 감탄하여 서문을 써 주자 너도나도 베끼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고 한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左思》 그는 생김새가 몹시 추하고 어눌하였는데, 한번은 반악(潘岳)이라는 미남자가 거리를 거닐 적에 여인들에게 환대를 받는 것을 보고, 그를 흉내 내어 거리를 걸어 보았으나, 여인들이 다투어 침을 뱉는 바람에 풀이 죽어 돌아왔다고 한다. 《世說新語 容止》
[주-D003] 반육(潘陸) : 
중국 서진의 문장가이자 미남자였던 반악(潘岳)과 육기(陸機)를 가리킨다. 모두 시문에 뛰어나 양(梁)나라 종영(鍾嶸)이 《시품(詩品)》에서, “육기(陸機)의 재주는 바다와 같고, 반악의 재주는 강과 같다.〔陸才如海 潘才如江〕”라고 평하였다.
[주-D004] 진(晉)나라의 인물들 : 
중국 위(魏)나라와 진나라가 교체되던 시기의 고사(高士)들인 이른바 죽림칠현(竹林七賢), 즉 혜강(稽康), 완적(阮籍), 완함(阮咸), 산도(山濤), 상수(向秀), 유령(劉伶), 왕융(王戎)을 가리킨다. 노장(老莊)의 정신을 숭상했던 이들은 항상 산음현(山陰縣)의 죽림에서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냈다.
[주-D005] 탕화(湯華) : 
찻물이 끓을 때 생기는 꽃, 곧 거품을 말하는 것으로, 송(宋)나라의 문인이자 차 전문가인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 “말발(沫餑)은 탕(湯)의 꽃〔華〕이다. 꽃이 엷은 것을 ‘말(沫)’이라고 하고, 두터운 것을 ‘발(餑)’이라고 하며, 가벼운 것을 ‘화(花)’라고 한다.” 하였다.
[주-D006] 운각(雲脚) : 
송나라 채양(蔡襄)이 지은 《다록(茶錄)》의 차말기〔㸃茶〕 조에, “차가 적고 탕이 많으면 구름〔雲脚〕처럼 흩어지고, 탕이 적고 차가 많으면 죽〔粥面〕처럼 엉긴다.” 하였다.
[주-D007] 천협(川峽) : 
중국의 익주(益州), 재주(梓州), 이주(利州), 기주(夔州) 등 천협사로(川峽四路)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의 사천성이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주-D008] 노두(老杜)의 시내 : 
노두는 당(唐)나라 때의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노두의 시내는 사천성(四川省) 성도시(成都市) 서쪽 교외 금강(錦江)의 지류인 완화계(浣花溪)를 말하는 것으로, 현실에 염증을 느낀 두보가 말년에 그 근처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였다. 성도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차의 생산지이다.
[주-D009] 삼소(三蘇)의 사당 : 
삼소는 송(宋)나라 때의 문장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일원이었던 소순(蘇洵)과 소식(蘇軾), 소철(蘇轍) 3부자(父子)를 가리킨다. 이들의 사당인 삼소사(三蘇祠)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미산(眉山)에 있으며, 원래는 삼소가 살던 집인데, 명(明)나라 때 사당으로 고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두보의 사당이 있는 성도(成都)와는 약 80리 거리에 있다. 미산은 죽엽청차(竹葉靑茶)의 산지로 유명하다.
[주-D010] 천태(天台), 안탕(鴈宕) : 
중국 절강성에 있는 명산 이름이다. 이 구절부터 ‘종소문은 아이처럼 기를 만하네’까지는 매천이 중국에 가 있는 것을 상상하는 내용인 듯하다.
[주-D011] 칠택(七澤), 삼상(三湘) : 
중국 호남성에 있는 저수지와 강 이름이다.
[주-D012] 서홍조(徐弘祖) : 
1586~1641. 명나라 말기의 지리학자로, 자는 진지(振之)이고, 호는 하객(霞客)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기서(奇書) 읽기를 즐겼다. 고금의 사적(史籍), 도경(圖經), 지지(地志)를 널리 읽었다. 22세에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30년 동안 화북, 화동, 화남, 서남을 두루 답사하여 산수, 풍속, 산물 등 지리적인 특징을 자세히 살펴 기록으로 남겼다. 3차례나 도둑을 맞고 4차례나 양식이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서하객유기(徐霞客游記)》는 명대 지리학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주-D013] 종소문(宗少文) : 
송나라 때의 서화가인 종병(宗炳)을 가리키는 말로, 소문(少文)은 그의 자이다. 금서(琴書)를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노장학(老莊學)에 정통하였다. 형산(衡山)에 은거하면서 조정에서 불러도 일체 응하지 않았다. 노년에 병이 들어 명산을 유람하지 못하게 되자, 그동안 다녔던 명승지를 그림으로 그려 걸어 놓고는 누워서 감상하며 노닐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宋書 卷93 隱逸列傳 宗炳》
[주-D014] 신마(神馬) :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조물자가 나의 꽁무니를 점점 변화시켜 수레바퀴로 만들고 나의 정신을 말로 변화시킬 경우, 내가 그 기회에 타고 노닌다면 어찌 다시 수레 같은 것이 필요하겠는가.〔浸假而化予之尻以爲輪 以神爲馬 予因而乘之 豈更駕哉〕”라고 하였다.
[주-D015] 호락(瓠落) : 
장자(莊子)가 혜자(惠子)에게 말하기를 “지금 자네에겐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큰 통으로 만들어 강호에 띄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것이 너무 커서 쓸데가 없다고 걱정만 하는가?〔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 한 데서 온 말이다. 《莊子 逍遙遊》
[주-D016] 황곡(黃鵠) : 
속세를 벗어나 은거하는 높은 재주를 가진 현사(賢士)를 비유하는 말이다. 《문선(文選)》 권33 굴원(屈原)의 〈복거(卜居)〉에 “차라리 황곡과 날개를 나란히 할까? 장차 닭이나 오리와 먹이를 다툴까?” 하였고, 유량(劉良)의 주에, “황곡은 일사(逸士)를 비유한다.” 하였다.








목은시고 제6권 / 시(詩)


전다 즉사(煎茶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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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계산 찾아드니 그림도 이만 못하리 / 春入溪山畫不如
가벼운 천둥이 밤새 적막을 진동시켰네 / 輕雷一夜動潛虛
꽃 자기잔의 흰빛은 조반을 먹은 이후요 / 花瓷雪色朝飡後
돌냄비의 솔 소리는 낮잠을 잔 뒤로다 / 石銚松聲午睡餘
달을 희롱해라 완연히 친면을 본 듯하고 / 弄月宛然親面見
바람을 타라 마침내 소생함을 묻고 싶네 / 乘風欲問到頭蘇
하얀 귀밑머리에 누가 기심 잊은 자인고 / 鬢絲誰是忘機者
흉중의 수많은 글을 깨끗이 씻은 이로세 / 淨洗胷中書五車

일찍이 공문에 가서 사여를 물을 적에 / 曾向空門問四如
차 향기 자리 가득코 창문은 공허했네 / 茶香滿座小窓虛
신심의 뭇 고통은 의당 다함이 없으나 / 身心衆苦知無盡
입속은 달콤하여 기쁨이 아직 남았다오 / 齒頰微甘喜尙餘
방달함은 도리어 이중을 찾아야겠지만 / 放曠却須尋二仲
문장은 하필 삼소를 배울 것이 있으랴 / 文章何必擬三蘇
문왕을 스승삼고픈데 지금 어디 있는고 / 欲師西伯今安在
곰 아닌 걸 점쳐 얻어 후거에 실었었네 / 卜得非熊載後車
[주-D001] 달을 …… 듯하고 : 
당(唐)나라 시인 노동(盧仝)이, 간의대부(諫議大夫) 맹간(孟簡)이 보내 준 월단차(月團茶)를 두고 지은 〈다가(茶歌)〉에, “봉함 열자 간의의 얼굴 완연히 보는 듯해라, 손으로 삼백 편의 월단차를 점열하네.[開緘宛見諫議面 手閱月團三百片]”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바람을 …… 묻고 싶네 : 
역시 노동의 〈다가〉에, “첫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셔 주고……여섯째 잔은 선령을 통하게 해 주네. 일곱째 잔은 마실 것도 없이, 오직 양쪽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일어남을 깨닫겠네. 봉래산이 어디에 있느뇨. 나도 이 맑은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구나. 봉래산 위의 신선들은 하토를 다스리지만, 지위가 청고하여 비바람과 격해 있으니, 어떻게 알리요 억조창생이 벼랑에서 떨어지는 고통 받고 있는 줄을. 문득 간의에게 창생의 소식을 묻는다면, 마침내 창생을 소생시킬 수 있지 않겠나.[一碗喉吻潤……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蓬萊山在何處 玉川子乘此淸風欲歸去山上群仙司下土 地位淸高隔風雨 安得知百萬億蒼生 命墮顚崖受辛苦 便從諫議問蒼生 到頭合得蘇息否]”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3] 사여(四如)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에, “일체유위의 법칙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나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 亦如電 應作如是觀]”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4] 이중(二仲) : 
한(漢)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양중(羊仲)과 구중(裘仲)을 합칭한 말이다. 은사 장후(蔣詡)가 일찍이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형극(荊棘)으로 문을 막고 집안에 세 길[三徑]을 내어, 오직 양중과 구중하고만 종유(從遊)했다고 한다.
[주-D005] 삼소(三蘇) : 
송대(宋代)의 문장가인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인 소식(蘇軾)ㆍ소철(蘇轍)을 합칭한 말이다. 송대에 삼소의 문장이 크게 행해져서 그 문장을 숙독(熟讀)하면 과거(科擧)에 급제할 수 있었으므로, 심지어 “소씨 글에 익숙하면 양고기를 먹고, 소씨 글에 서투르면 나물국을 먹는다.[蘇文熟喫羊肉 蘇文生喫菜羹]”는 말까지 있었다.
[주-D006] 곰 …… 실었었네 : 
주 문왕(周文王)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가면서 점을 쳐보니, 점사(占辭)에,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요, 곰도 아니요, 말곰도 아니요, 범도 아니요, 비휴도 아니요, 얻을 것은 패왕의 보좌로다.[非龍非彲非熊非羆非虎非貔 所獲霸王之輔]” 했는데, 과연 위수(渭水) 가에서 강태공(姜太公)을 만나 그를 후거(後車)에 싣고 돌아왔던 데서 온 말이다.







부상일록(扶桑日錄) / 9월 작음   ㅡ 남용익(南龍翼)

19일(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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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 명고옥(名古屋)나고야 에 닿았다. 대원으로부터 동쪽으로 1백 5리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데 의성이 앞에서 인도하였다. 15리쯤 가서 좌도하(佐渡河)에 이르러 부교(浮橋)를 건너는데, 그 제도는 양쪽에 큰 기둥을 세우고서 큰 새끼 및 쇠줄로써 배를 연달아 매었다. 배는 모두 중선(中船)으로서 길고 짧은 것이 균일하고 그 위에 목판을 깔았는데, 매우 정묘롭고 치밀하였다. 물가에서 관광하는 자가 참으로 많았다.

   주고(洲股)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여기도 관백(關白)의 장입지이다. 수관 등원광중(藤原光重)이 접대하였다. 오후에 곧 출발하여 연달아 흑가천(黑街川)ㆍ계천(界川)ㆍ흥천(興川) 세 부교(浮橋)를 건넜는데 그 제도는 한결같고, 계천이 제일 작고 흥천이 가장 큰 데 너비가 몇 리 쯤이나 되고 연달은 배의 수가 1백 90여 척이나 되었다. 어두워서야 명고옥(名古屋)에 이르니, 횃불ㆍ등불을 들고 와 길 양옆에서 영접하니 대낮과 같았다. 20리쯤 가서 층층 다락과 큰 집이 좌우에 끊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서야 비로소 관(館)에 이르렀다. 중납언(中納言) 원광의(源光義)의 식읍(食邑)이었다. 수관 성뢰준인정(成賴隼人正)이 접대하였다. 땅은 미장주(尾張州)에 속한다. 성중에 5층 누각이 있고, 인가의 번성함이 대판의 다음이 될 만하다. 서쪽에 대교(大橋)가 있어 그 밑으로 배가 통한다. 남으로 10여 리의 거리에 다시 해문(海門)이 있는데, 염분(鹽盆)과 장사배가 곳곳에 벌여 있어 생선과 소금 생산의 이익이 가장 많다.

큰길은 주고에 연했고 / 大路連洲股
긴 다리가 나루머리에 누워있네 / 長橋臥渡頭
물결을 질러서 쇠사슬이 비꼈고 / 截波橫鐵鎖
나무를 엮어서 배를 모았네 / 編木集蘭舟
땅은 무지개를 드리운 데 비할 만하고 / 地可垂虹比
공은 대[竹]를 벤 것과도 견줄 만하네 / 功應伐竹侔
진 시황은 신선의 연분이 없으니 / 秦皇乏仙分
돌을 채찍질하여 무엇을 구하려 했던고 / 鞭石欲何求
위는 부교(浮橋)

가는 곳마다 차 달이는 연기 길 옆에 자욱한데 / 隨處茶煙擁路傍
손으로 금사발 쥐고서 신선의 차를 올리네 / 手持金盌進瓊漿
촉도에 사마상여(司馬相如) 영접한다 자랑 말라 / 休誇蜀道迎司馬
당년의 소갈증 치료하지 못했네 촉도는 파촉(巴蜀)이어야 됨 / 未慰當年渴病長
위는 찻집

도중에 우연히 하경명(何景明)의 외로운 뗏목으로 일남국에 사신으로 와서, 만 리 밖에서 하늘 중간 정자에 시를 쓰네[孤槎奉使日南國 萬里題詩天畔亭] 란 시를 읊다가 14자를 나누어 운(韻)으로 하여 눈에 닿는 대로 시를 지음

아득히 바다가 넓은데 / 渺渺重溟闊
흔들흔들 일엽주(一葉舟)가 외롭네 / 搖搖一葉孤
긴 바람이 끊임없이 부니 / 長風吹不盡
밤낮없이 하늘 귀퉁이로 향하네 / 日夕到天隅
위는 배를 띄워 바다를 건너다.

삼신산(三神山)의 길을 밟으려고 / 爲踏三山路
팔월의 뗏목을 처음 멈추었네 / 初停八月槎
훨훨 나는 푸른 새 한 마리 / 翩翩一靑鳥
나의 자운거를 인도하리 / 導我紫雲車
위는 가마[轎]를 타고 육지로 행함.

붉은 일산 푸른 깃발 앞세우고 / 紅繖翠旗前
어서를 쌍수로 받드네 / 御書雙手奉
은구는 해와 별이 빛나니 / 銀鉤耀日星
길에 가득한 사람 보고 듣기에 용동(聳動)하네 / 滿路觀瞻聳
위는 앞에 인도한 위의(威儀)

월 나라 사람이 서로 이르되 / 越人相謂曰
오늘 아침에 한 나라 사신을 만났네 / 今朝逢漢使

어찌 이렇게 왕림하셨는지 / 何以儼然臨
여기는 오랑캐 땅인데 / 此是蠻夷地
위는 길 옆에서 관광하는 사람

금계(닭)가 밤중에 우니 / 金鷄半夜鳴
부상의 해가 지척이네 / 咫尺扶桑日
뜨거운 태양에 가까운 때문인지 / 爲是近炎暉
가을 바람이 싸늘하지 않네 / 秋風不蕭瑟
위는 부상의 새벽 해

땅은 주 나라 강토 밖에 있고 / 地居周服外
산은 월상의 남쪽에 연접했네 / 山接越裳南
가장 사랑스러운 비파호의 물은 / 最愛琶琵水
긴 물결이 쪽처럼 푸른 것이네 / 長波碧似藍
위는 비파호의 물

바닷물 달여 소금 만들고 산에서 구리쇠 캐어내니 / 煑海鑄山銅
물결 사이 한 큰 나라로세 / 波間一大國
장삿배 먼 데서 오니 / 商船自遠來
때때로 강남의 손이 있네 / 時有江南客
위는 생선 장수와 소금 장수

간 곳마다 목노가 천이요 / 處處木奴千
시가(市街)마다 인구는 만이로세 / 家家人指萬
너른 들판에는 벼꽃이 가득하고 / 長郊滿稻花
작은 동산에는 오이 넝쿨 거두네 / 小圃收瓜蔓
위는 원림(園林) 전포(田圃)

높디높은 분칠한 성첩(城堞)이 비꼈는데 / 峨峨粉堞橫
누각이 시장과 마을에 뻗쳤네 / 樓閣亘廛里
문 앞에 일만 등불 달았으니 / 門前植萬燈
그림자가 긴 참호(塹壕) 물에 떨어지네 / 影落長壕水
위는 물에 비친 화려한 등불

옥 굴레 금 안장 끼운 말이 / 玉勒金鞍馬
바람 앞에 우니 월제 울리네 / 嘶風響月題
금장니(錦障泥) 때문이 아니라 / 非關錦障懸
다만 발굽을 아낌이네 / 只是惜霜蹄
위는 신을 신은 준마(駿馬)

하얀 모래는 눈과 같고 / 皜皜沙如雪
맑디맑은 물은 하늘과 같네 / 澄澄水似天
물길이 육로로 바뀌니 / 居然波變陸
말도 타고 또 배도 타네 / 騎馬又乘船
위는 세 천(川)의 부교(浮橋)

중양절을 헛보내니 / 孤負重陽節
가을 풍경이 시에 들지 못하네 / 秋光不到詩
일천 산에 한 나무 붉으니 / 千山紅一葉
이 뜻은 늦단풍이 알리라 / 此意晩楓知
위는 한 나무 붉은 단풍

작은 용단을 달이니 / 烹得小龍團
아침 연기가 길가에서 나네 / 朝煙生路畔
도덕 높은 중이 도의를 입고 / 高僧披道衣
꿇어앉아 금 찻잔을 올리네 / 長跪進金盌
위는 찻집에서 찻잔을 올림

흙을 쌓아서 펀펀하게 길을 열었고 / 築土平開路
소나무를 심어 그늘지는 정자를 만들었네 / 栽松蔭作亭
퍼져서 천 리의 일산이 되고 / 布爲千里蓋
일 년의 푸름을 항상 머물러 두네 / 留得一年靑
위는 길 양옆에 심어 있는 솔
[주-D001] 공은……만하네 : 
두보(杜甫)의 시에, “대를 베어 다리를 놓았다.” 하였다.
[주-D002] 돌을……했던고 : 
진 시황(秦始皇)이 신선이 산다는 동해(東海)에 들어가 보려고 돌로써 다리를 놓는데 돌을 채찍질을 하여 가게 하였다.
[주-D003] 당년의……못했네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소갈병(消渴病)이 있었으나 차대접은 받지 못하고 위엄만 과시했다. 촉에 갔던 사마상여보다 자신이 더 대접 받는다는 뜻이다.
[주-D004] 월 나라……만났네 :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갔던 한(漢) 나라 때 육가(陸賈)의 고사.
[주-D005] 목노가 천이요 : 
목노는 귤의 별명. 오국(吳國)의 이형(李衡)이 가족 몰래 용양현(龍陽縣)에 귤(橘) 1천 나무를 심어 두고는 죽을 때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용양현에 천두(千頭)의 목노(木奴)가 있으니 장래에 너에게 해마다 비단 1천 필을 바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주-D006] 월제 : 
월제(月題)는 말의 이마에 붙이는 장식인데 모양이 달과 같다.
[주-D007] 금장니(錦障泥) 때문이 아니라 : 
진(晉) 나라 왕제(王濟)가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물을 건너기를 주저하였다. 왕제는 “이 말이 비단으로 만든 장니(障泥)를 아끼는 것이다.” 하고 장니를 벗겼다. 장니라는 것은 말의 안장 양쪽에 드리워서 진흙이 튀어 오르는 것을 막는 것이다.
[주-D008] 작은 용단 : 
송 나라 때에 지방에서 임금에게 바치는 차(茶)에 용단다(龍團茶)라는 종류가 있었다.

十九日庚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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晴。次名古屋。낭고야 距大垣東百五里。平明發行。義成先導。行可十五里。到佐渡河。渡浮橋。其制兩邊立大柱。以大索及鐵索連舟。舟皆中船。長短均一。鋪板其上。甚爲精緻。水邊觀光者信盛。中火于洲股。亦關白藏入也。守官藤原光重支待。午後卽發。二十里之間。連渡黑街川,界川,興川三浮橋。其制如一。而界川最小。興川最大。廣可數里。聯舟之數。多至一百九十餘隻。昏後到名古屋。篝燈之來候者夾路如晝。行可二十里。層樓傑閣。左右不絶。夜深始到館所。卽中納言源光義之食邑也。守官成瀨隼人正支待。地屬尾張州。城中有五層樓。人家之盛。可爲大坂之次矣。西有大橋。下通舟楫。南距十餘里。復有海門。鹽盆商舶。處處羅列。最有魚鹽之利。
大路連洲股。長橋臥渡頭。截波橫鐵鎖。編木集蘭舟。地可垂虹比。功應伐竹侔。秦皇乏仙分。鞭石欲何求。右浮橋
隨處茶煙擁路傍。手持金盌進瓊漿。休誇蜀道迎司馬。未慰當年渴病長。蜀道當作巴蜀○右茶屋
途中偶吟何景明 孤槎奉使日南國萬里題詩天畔亭 之句分以爲韻觸物成吟
渺渺重溟闊。搖搖一葉孤。長風吹不盡。日夕到天隅。右泛舟渡海
爲踏三山路。初停八月槎。翩翩一靑鳥。導我紫雲車。右乘轎行陸
紅繖翠旗前。 御書雙手奉。銀鉤耀日星。滿路觀瞻聳。右前導威儀
越人相謂曰。今朝逢漢使。何以儼然臨。此是蠻夷地。右路傍觀望
金鷄半夜鳴。咫尺扶桑日。爲是近炎暉。秋風不蕭瑟。右扶桑曉日
地居周服外。山接越裳南。最愛琵琶水。長波碧似藍。右琵琶湖水
煮海鑄山銅。波間一大國。商船自遠來。時有江南客。右魚鹽工賈
處處木奴千。家家人指萬。長郊滿稻花。小圃收瓜蔓。右園林田圃
峨峨粉堞橫。樓閣亘廛里。門前植萬燈。影落長壕水。右映渠華燈
玉勒金鞍馬。嘶風響月題。非關錦障懸。只是惜霜蹄。右着屨駿馬
皜皜沙如雪。澄澄水似天。居然波變陸。騎馬又乘船。右三川浮橋
孤負重陽節。秋光不到詩。千山紅一葉。此意晩楓知。右一樹楓葉
烹得小龍團。朝煙生路畔。高僧披道衣。長跪進金盌。右茶屋進甌
築土平開路。栽松蔭作亭。布爲千里蓋。留得一年靑。右松牌夾道





회사록(回槎錄) / 12월

29일(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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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리고 동풍이 불었다. 적간관(赤間關)에 닿았다.
새벽에 순풍이 크게 일어 매우 세차고 사나우므로 조금 늦추어지기를 기다려서 묘시(卯時)에 배를 출발시켜 차례로 돛을 달았다. 파도가 비록 세나 바람이 극히 순하므로 상관(上關)을 바로 지나서 밤새도록 행선(行船)하니 배 가는 것이 화살과 같았다. 1년이 장차 다 가려는 밤에 만경(萬頃)의 파도위에 부쳐 누워서 삽시간에 만겹의 운산(雲山)을 지나니 진실로 평생의 장한 놀음이었다. 내가 탄 배가 가장 빨라서 상사의 배가 뒤에 떨어졌기 때문에 때때로 돛을 내려 기다리는데, 화전(火箭)을 쏘아서 서로 응하고 큰 등을 달아 표시를 하였다. 일행 중의 사람들이 나의 생일이라 하여 작은 상을 차려 각각 한 잔씩 권하였다. 인하여 독축관과 더불어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인하여 2백 운(韻)의 배율(排律)을 지어 나그네 회포를 기록하였다. 이튿날 묘시 말(卯時末 오전 7시 전)에 적간관에 닿았다. 이날 일주야에 5백 리를 행하였다.


해가 마지막 가는 밤에 임금과 어버이의 생각을 견디지 못하여 입으로 불러서 독축관에게 보임

적성의 차가운 안개 해 저물녘에 부슬부슬 / 赤城寒靄晩蕭蕭
바람이 쌍돛대를 불어 주매 길이 멀지를 않네 / 風送雙帆路不遙
고국은 아직도 세 큰 바다에 막혔고 / 故國猶遮三大海
새해는 다만 하룻밤을 격하였네 / 新年只隔一良宵
고향이 생각에 들어오매 잠을 이루지 못하겠고 / 家鄕入望眠難就
행역이 관심되매 귀밑털이 시들기 쉽네 / 行役關心髩易凋
촛불을 불려고 억지로 선실에서 술마시니 / 呼燭强成篷底飮
화각의 소리는 내일 아침을 알리지 말라 / 莫敎殘角報明朝

장한 놀음 2백운

가오리 지역 삼한국이요 / 鰈域三韓國
오랑캐 고을 백월의 구역이로다 / 蠻鄕百粤區
풍기(風氣)는 지방을 따라 구별되고 / 風從方土別
습속은 말소리와 함께 다르구나 / 俗與語音殊
호호탕탕(浩浩蕩蕩)히 하늘이 바다에 연하였고 / 浩蕩天連海
창창량량(蒼蒼凉凉)히 해가 우이(嵎夷)에서 나오네 / 蒼凉日出堣
장사배가 먼길을 틔워 / 商舟開遠道
사신의 연산은 고구려 때부터네 / 使蓋自高句
옛적 고려의 말년에 / 逖矣當麗季
사신으로 큰 유자를 선택하였네 / 欽哉揀宿儒
우리 조정에서 개국하자 / 聖朝臨御肅
문덕으로 간척을 춤추었네 / 文德舞干敷
성의를 바쳐 늘 와서 복종하다가 / 納欵常懷附
틈을 타서 그윽이 엿보았네 / 乘機竊覬覦
용사에 액운을 당하여 / 龍蛇當運厄
독한 뱀이 변방의 걱정이 되었네 / 蠆虺作邊虞
다급하여 빈을 버렸는데 / 窘甚離邠邑
괵 나라의 길을 빌리겠다 소리쳤네 / 聲言假虢途
초가 위태로우매 능침이 욕을 당했고 / 楚危陵寢辱
연 나라가 격파되자 늙은이 어린이가 포로로 잡혔네 / 燕破耄倪俘
어린애를 창끝에 꿰었으매 잔학하기가 탁발(拓拔)과 같고 / 貫槊殘如拓
채찍을 던지매 군사 많기는 부견(苻堅)과 같았네 / 投鞭衆若苻
금사발이 마땅히 이지러지지 아니할 것이나 / 金甌宜未缺
적자(백성)가 마침내 무슨 죄이던가 / 赤子竟何孤
명 나라 조정에 통절하게 호소하니 / 痛切宸廷籲
끊어질 뻔한 나라를 붙들어 준 은혜 깊었네 / 恩深絶世扶
원씨(덕천(德川))가 화친(和親)을 청하매 / 源氏修隣好
정부(政府)에서 권도(權道)로 허락하였네 / 權宜出廟謨
탕이 갈백을 먹여 준 것이요 / 固知湯餉葛
월 나라가 오 나라를 잊은 것 아니로다 / 休謂越忘吳
고래 물결에 봉홧불 놀이 그쳐졌고 / 鯨浪烽無警
닭 잡은 맹세에 피가 변하지 않았네 / 雞盟血不渝
의관이 일기에 통했고 / 冠裳通一紀
신의는 중부에 합하였네 / 信義叶中孚
교화는 이미 복종하는 자를 회유(懷柔)하였으니 / 化已綏來者
때는 사신을 보낼만하였네 / 時當遣使乎
모수의 송곳은 원래 곧 보이는 것이요 / 毛錐元立見
조 나라 옥이 가장 먼저 팔렸네 / 趙璧卽先沽
젊은 나이에 계수나무를 거듭 휘어잡았고 / 妙歲重攀桂
맑은 운치는 홀로 아름다운 옥을 잡았네 / 淸標獨握瑜
명망은 장차 열도와 같을 것이며 / 名將閱道似
시는 의루와 같으려 하네 / 詩欲倚樓符
개제한 참 군자요 / 豈弟眞君子
옹용한 상대부로세 / 雍容上大夫
마땅히 꿈에 들 만하고 / 端宜惟夢在
시세의 필요에 바로 적합하네 / 正合應時須
그 다음 부사의 인선(人選)도 다음 되기 어려웠더니 / 副价難其次
겸전(兼全)한 재주를 여러 사람이 좋다 하였네 / 全才衆曰兪
웅장한 시는 한ㆍ위를 능가하고 / 雄詞凌漢魏
진정한 학파 수와 염을 사모하네 / 眞派慕濂洙
사마가 일찍이 기둥에 썼으며 / 司馬曾題柱
종군은 일찍 비단 조각 버렸었네 / 終軍早棄襦
위풍은 백간에서 났으며 / 威稜生白簡
곧은 소리는 청포에 떨쳤었네 / 直節振靑蒲
발탁되매 조정이 윤택하고 / 拔擢朝廷潤
상(賞)을 내리시매 은혜가 얽혔었네 / 便蕃寵眷紆
반근을 만나매 다 기구를 분별하겠고 / 遇盤皆別器
긍경(肯綮)을 거쳐야 칼을 시험할 수 있네 / 經綮可嘗觚
외람되이 여러 분을 따르매 / 忝竊追諸子
공소한 내가 부끄럽네 / 空疎愧殺吾
문장은 진임이 격문을 기초하는 것 아니요 / 文非草陣檄
지혜는 두루 묻는 것 돕기에 부족하네 / 智乏贊周諏
어찌 모래 헤친 보배를 가렸으랴 / 豈有披沙寶
참으로 천리마에게 붙은 둔할 말 같구나 / 眞如附驥駑
이 행차에 수행원(隨行員)이 훌륭한데 / 此行從者盛
우리를 기다려 함께 함께 왔네 / 吾客待以俱
이백은 시가 맑고 표일(飄逸)하고 / 李白詩淸逸
김생은 글씨가 굳세고 여위네 / 金生筆勁癯
정건은 글씨도 또한 절이요 / 鄭虔書亦絶
한간은 그림을 잘 그리네 / 韓幹畫堪摹
윤음이 내림을 공경히 받들었고 / 敬奉綸音降
조심하여 예단(禮單)의 폐백을 실었네 / 勤將禮幣輪
자단향(紫檀香)은 향기가 동하고 / 檀香動芬苾
인석은 옥빛이 찬란하네 / 鱗石燦琨㻍
채색 비단에 피폐를 겸하였고 / 彩錦兼皮幣
등롱에 악기(樂器)를 끼었네 / 燈籠間琴竽
서리털은 화악의 매요 / 霜毛華岳隼
붉은 땀이 나는 악와수의 망아지로다 / 汗血渥洼駒
자극(紫極)에서 깃발을 내려주고 / 紫極頒㫌旆
청명에서 도끼를 내리셨다 / 靑冥下鉞鈇
절하고 하직할 제 오히려 두려웠고 / 拜辭猶怵惕
출발할 제 잠깐 주저하였네 / 征邁暫踟蹰
가까이서 임금 말씀 들었으며 / 密邇承天語
연달아 내리신 음식에 배불렀네 / 翼翩飽澤需
부채와 약품을 나누어 주시고 / 殊私分箑劑
붉은 활도 내려주셨네 / 翼滄貺彤弧
한강에서는 온 조정이 전송하였고 / 漢水傾朝餞
여름 길에 종일토록 말을 몰았네 / 炎程盡日驅
몸이 병 있다고 말할 겨를이 없고 / 不遑言疾病
어찌 처자를 생각하랴 / 安得念妻孥
부모님께 이별을 고하기 위해 / 爲告親闈別
먼저 조령(鳥嶺) 넘기를 재촉하였네 / 先催大嶺踰
옷깃은 온교처럼 끊었고 / 褓憐溫嶠絶
뜰앞에서 이(鯉 백어(伯魚))가 종종걸음쳤네 / 庭隔伯鯉趍

쌍 눈물 뿌리는 것을 금치 못하니 / 叵耐揮雙涕
조그마한 몸을 아낌이 아니로세 / 非關愛寸軀
조양에 웅장한 누각을 보았고 / 朝陽看傑構
고국에 남은 성터를 조상하였네 / 故國弔殘郛
다시 삼성랑과 모여 / 更會三星郞
함께 오월의 노수를 건넜네 / 同臨五月瀘
은구는 어필(御筆)을 맞이하였고 / 銀鉤迎宸翰
채색 살선이 큰길에 빛났네 / 綵繖耀通衢
좋은 날 선택하여 고기와 술을 물에 던져서 / 卜吉投牲醴
신령에게 기도하고 배를 준비하였네 / 祈靈理軸轤
푸른 깃발은 펄펄 나부끼고 / 靑旗飄颯颯
화각은 슬프게 오오 우네 / 畫角咽嗚嗚
하물며 장건의 자취를 따름이랴 / 況躡張騫跡
노 나라 첨지 뗏목 탄 것인가 의심되네 / 疑乘魯叟桴
장간(檣竿)이 꺾어진 것은 바람의 장난이요 / 折桅風作梗
갑판이 잠겼으매 물을 퍼내기 어려웠네 / 浸板水難㪺
염뢰퇴(灔瀨堆)에 뜬 것 같고 / 舍達師浮灔
창황하기는 호타하(滹沱河)를 건넘과 같았네 / 蒼黃劇濟滹
창졸간에 부지함을 힘입었고 / 扶持蒙造次
전복됨을 잠깐 동안에 면하였네 / 顚沛免須臾
악포에서 서로 만났고 / 鰐浦簪仍盍
사천에서 길을 돌았네 / 蛇川路轉迃
두 번 살아났으니 속절없이 꿈과 같았고 / 再生空夢寐
서로 보매 각각 놀라고 탄식하네 / 相見各驚吁
주길에서는 물결이 비단과 같고 / 住吉波如錦
천신에는 협이 무협(巫峽)과 같네 / 天神峽似巫
공궤(供饋)하는 것은 술통과 찬합이 연달았고 / 提呈聯桶榼
옹호하는 배가 서로 잇닿았네 / 擁護接䑳?
차례로 뱃줄을 풀고 / 次第擧舷䌫
찬란하게 장막을 둘렀네 / 輝煌繞帳㡡
섬 되놈은 영접하느라 구부리고 / 島夷迎傴僂
절 노승은 가부좌를 하였네 / 岩老坐跏趺
물 언덕은 인가를 둘렀고 / 水岸繞民戶
산 절에서 손님 음식대접 사치하네 / 山房侈客厨
성대한 연회에 비단 오려 꽃 만들고 / 盛筳花剪綵
가절에 풀에다 떡을 쌌네 / 佳節草包糊
달 아래 천가의 촛불 걸었고 / 月掛千家燭
바람은 오동 한 잎 떨어뜨리네 / 風凋一葉梧
북쪽으로 임금 얼굴 바라기에 애타고 / 龍顔勞北望
대붕새[大鵬]의 날개는 남쪽으로 가느라고 힘드네 / 鵬翼困南圖
안개 기운에 이무기[蛟]가 시름하고 / 霧氣愁蛟蜃
가을 소리에는 귀뚜라미 요란하네 / 秋聲撼蟪蛣
일기도에는 돛대가 아주 평온하여 / 壹岐帆正穩
천 리를 가도 해가 겨우 신시(申時)였네 / 千里日纔晡
발길은 남관을 거듭 찾고 / ?訪藍關重
혼은 반죽(班竹)의 피에 외로움이 애처로왔네 / 魂憐竹血孤
기의 종은 사수(泗水)의 솥과 같고 / 崎鍾同泗鼎
창현은 작은 번옹이로다 / 倉縣小番禺
안덕천황(安德天皇)의 사당이 아직 있고 / 安德祠猶在
문성에는 풀이 이미 무성해졌네 / 文城草已蕪
관이 나뉘었으매백마관이 의심되고 / 關分疑白馬
물가는 완연히 황고로세 / 渚別宛黃姑
오막살이 집은 궁뢰인 줄 알겠고 / 蔀屋知宮瀨
송패는 실외를 기억하네 / 松牌記室隈
좋은 밤에 수각에서 술잔 들었는데 / 良宵觴水閣
밝은 달이 얼음항아리에 거울이었네 / 明月鏡冰壺
쾌하기는 천주봉에 기댄 것 같고 / 快若憑天柱
시원하기는 무우에 읊조림과 같았네 / 淸如詠舞雩
때때로 여울은 황공(惶恐)이 있고 / 時時灘有恐
곳곳에 험하기가 구당과 같았네 / 處處險如瞿
노도에서 귀밑털 희어짐 더했고 / 老渡添凋髩
겸주에서 예루가를 불렀네 / 鎌洲賡刈蔞
반대는 바위에 솟았고 / 磐臺岩上出
복은 세간에 없는 것이네 / 福方世間無
원악에는 사람이 눈물 흘리었고 / 猿岳人垂淚
우창에는 돌이 나무로 화하였네 / 牛窓石化株
돛대는 진관에 막혔고 / 棹從津館滯
등불을 고주로 향해 불렀네 / 燈向庫洲呼
대판은 웅장하고도 화려하며 / 大阪雄仍麗
장하는 얕고도 탁하여라 / 長河淺更汙
누선은 난간과 헌함이 있고 / 樓船欄又檻
물가의 풀은 갈대숲 겸하였네 / 汀草荻兼蘆
잡화는 땅굴에 연하였고 / 雜花分連隧
층층의 성은 굽은 담을 안았었네 / 層城抱曲闍
평추(풍신수길)가 굴혈을 열었을 제 / 平酋開窟穴
이 땅에 도망 온 도적들 모였었다네 / 此地萃逃逋
모질고 용맹 있어 원수를 제거했고 / 桀騖除仇敵
간악한 올빼미 노예에서 일어났다네 / 奸梟起隷奴
쥐가 마침내 범으로 변했고 / 鼠早終變虎
이리가 또 승냥이를 낳았다네 / 狼猶且生貙
종자가 남김없었으니 / 種子遺噍類
앙화로 제가 다시 독을 받았네 / 殃應反毒痛
깊은 원수라 송장이라도 찢으면 싶은데 / 深讐屍可戮
한이 되는 것은 그 뼈다귀 이미 썩었네 / 遺恨骨先枯
높은 데 오를 가절(佳節) 만났으나 / 正屬登高節
술잔 잡고 즐기기도 어렵네 / 難成把酒娛
국화송이 따던 것 속절없이 생각하고 / 空思採菊蘂
다시 수유 꽂던 것 생각나네 / 更憶揷茱萸
정포에 대어 배를 멈추었고 / 泊淀停艑舶
못에 다다라 녹로를 당기었네 / 臨塘引轆轤
사람 가슴엔 죽도옥이요 / 人膺竹兜屋
말 등엔 금모호러라 / 馬背錦模糊
퉁소와 북이 긴 밤에 시끄럽고 / 簫鼓喧長夜
위의 갖추어 대도(왜경(倭京))로 들어갔네 / 威儀入大都
산은 애탕산이 높고 / 山高名愛宕
절이 웅장하고 부처가 크네 / 寺壯大浮屠
옹기 종기 모인 것이 모두 오랑캐인데 / 簇簇皆蠻獠
빽빽하기 개미나 거미 같네 / 森森若蟻蛛
극히 번성하매 땅이 좁은 것이 한이요 / 極繁嫌地窄
고루 생육시키매 하늘이 덮어준 것 유감이네 / 均育憾天幠
나라를 세운 지는 이미 오래나 / 立國雖悠邈
황이라 칭하는 것은 실로 꾸미고 속인 것이네 / 稱皇實矯誣
참람스럽기 남월의 조타(趙佗)와 같고 / 傲如南粤尉
교만하기 북선우보다 심하네 / 驕甚北單于
제전은 환구에 외람되고 / 祭典叨圜丘
궁중 옷은 곤룡포(袞龍袍)가 참람하네 / 宮衣僭翟褕
창업은 협야에서부터요 / 創從王狹野
쇠하기는 후제호부터라네 / 衰自後醍醐
자쾌는 신하에게 왕권(王權)을 달게 주었고 / 子噲甘心與
소공은 입이 쓰다가 죽었네 / 蕭公苦口殂
연호를 쓰는 것이 참으로 가소롭고 / 建元眞可笑
인장(印章)을 파는 것은 어찌도 그리 어리석은고 / 鬻印一何愚
다리를 만드는 데는 교묘하게 쇠를 녹였으며 / 作橋巧鎔鐵
기이한 것 더듬는 데는 구슬 단 것 보아라 / 探奇觀揭珠
동풍 안토령이네 / 東風安土嶺
근강호를 내려다보았네 / 下頫近江湖
바다로 흘러들매 조수가 다 응하고 / 赴壑湖皆應
도랑을 통했으니 땅이 가장 기름지네 / 通渠地最腴
언덕이 길매 초 나라 운몽이 떴고 / 陂長浮楚夢
숲이 빽빽하매 진교보다 낫네 / 藪密勝秦陓
좌읍은 초언으로 옮겼고 / 佐邑移苕霅
농주는 거와 주로세濃洲將莒邾
배를 엮어 교랑을 띄웠고 / 梁浮編舴艋
험한 산을 깎아 길이 평탄하네 / 路坦剗崎嶇
명고옥에는 보물 가게가 둘렸고 / 古屋繞珍肆
하성에는 주로를 대하였네 / 河城列酒壚
신령스러운 봉우리는 부사라 칭하고 / 神峯稱富士
웅장한 고개로는 임구를 지났네 / 雄峙邁臨胊
아직도 태고적 눈이 쌓여 있어 / 尙帶鴻濛雪
조화의 화로에도 녹이기 어렵네 / 難消造化鑪
상근은 큰 산기슭으로 달리고 / 箱根馳鉅麓
영택은 상모주를 눌렀네 / 嶺澤壓相模
무장의 들판은 형세가 바다에 연하였고 / 武野形連海
강호는 기세가 범이 산등성이를 짊어지고 버티네 / 江關勢負嵎
옹전과 기륙에는 / 雍田兼冀陸
초 나라 고운 춤에 오 나라 노래 섞였네 / 艶荊雜吳歈
찬란하게 비단이 화려하고 / 粲粲明羅綺
비늘처럼 큰 집들 연했네 / 鱗鱗亘欂櫨
병풍은 금공작을 펼쳤으며 / 屛開金孔雀
주렴은 자산호 갈퀴로 걸었네 / 簾掛紫珊瑚
가강의 창업을 생각하니 / 緬想家康業
오히려 담력이 크다고 칭하겠네 / 猶稱膽氣麁
재주는 멀리 나는 독수리와 같아 / 才如資遠鷙
대대로 위엄 빌린 여우가 되었네 / 世作假威狐
큰 자리를 동자에게 전했으니 / 大任傳童子
어린 나이에 한 마리 새끼와 같네 / 穉年類匹雛
권세를 잡은 것은 사슴 가리킨 것보다 더하고 / 操權逾指鹿
부를 누리는 것은 전유보다 지나네 / 享富過專羭
날을 선택하여 폐백 전할 것 재촉하고 / 擇日催傳幣
길을 정리하느라고 창을 잡은 이 많았네 / 除道盛執戵
잔에는 구장을 돌리고 / 酌傳枸醬椀
마루에는 계빈의 담뇨를 폈네 / 堂設罽賓毹
사신을 대할 제 어찌 걸터앉으랴 / 對使寧箕踞
바람 따라서 다 엎드려 절하였네 / 趍風盡拜膜
장차 황옥을 버릴 것이요 / 行將去黃屋
이미 단노를 공 바쳤네 / 已自貢丹砮
권현묘(權現廟)에 향을 사르고 / 現廟燒香篆
일광산에 중을 방문하였네 / 光山訪苾蒭
어필(조선국왕(朝鮮國王)의 글씨)은 먹이 아직도 빛나고 / 奎章墨尙煥
집은 단청을 처음 칠하였는네 / 堂構艧初塗
높은 폭포는 밝은 거울을 달았고 / 絶瀑懸明鏡
신령스러운 삼목은 백유에 가까웠네 / 靈杉近白楡
봉우리라고는 모두 옥처럼 섰고 / 有峯皆玉立
땅마다 금을 깔지 않은 데 없네 / 無地不金鋪
서복이 응당 직접 왔을 것이요 / 徐福身應到
유랑이 발을 반드시 적셨으리 / 劉郞足必濡
풍경은 비록 참으로 아름다우나 / 風光雖信美
습속 왜 그다지 밉살스러운고 / 習俗是何惡
대개 수염을 깎았고 / 大抵鋤髭髮
보통 머리를 드러내었네 / 尋常露頂顱
아로새긴 모습으로 말은 네네 하고 / 雕題言唯諾
까불까불 발은 맨발이네 / 挑撻足徒?
뜻에 순하여 잘 맞추고 / 順意能伺候
안색 따라 아첨을 좋아하네 / 承顔好謟諛
실낱 같은 은혜도 골수에 새기고 / 絲恩銘骨髓
털끝만한 원망도 갚고야 마네 / 毫怨報睢盱
죽은 사람 장사할 제는 가죽이 다 물커지고 / 送死皮皆爛
목숨을 가벼이 알아 배를 제가 가르네 / 輕生腹自刳
싸울 제는 함부로 찌르고 / 鬪爭紛剚刺
훔치고 숨기는 것은 담에 구멍 뚫는 것보다 심하네 / 攘竊甚穿窬
서당(書堂)이 없으매 누가 글을 지을꼬 / 闕塾誰摛管
모두 철퇴를 소매에 넣고 창을 메었네 / 袖椎悉荷殳
탄환을 쏘매 날아서 쾅 맞히고 / 鳴丸飛何礮
칼을 시험하매 촉루(屬鏤)보다 번쩍이네 / 試劍閃于鏤
다 평상의 적에 속하였고 / 總隷平箱籍
고루 식읍의 조세를 나누네 / 均分食邑租
신을 숭배하매 외람된 제사가 많고 / 崇神多黷祀
부처에 아첨하매 중이 많기도 하네 / 侫佛寔繁徒
바닷물 달이매 오왕 비를 본보고 / 煮海追吳濞
구슬을 감추매 고호를 배우네 / 藏珠學賈胡
재물을 무역하매 보배를 저장하고 / 遷財儲寶貝
이익을 노려서는 한푼을 다투네 / 射利竟錙銖
선물하는 비단은 무늬 수놓은 것을 가벼이 쓰고 / 賀絹輕文繡
저장하였던 은은 예물로 쓰네 / 庄銀當美紆
촛불 가게에는 백랍초(白蠟燭)를 광고하고 / 燭廛標白蠟
구리쇠 광산에서는 돈을 만드네 / 銅穴鑄靑蚨
따로 노화정이 있는데 / 別有蘆花町
그 가운데는 이빨에 물들인 미인이 많이 있네 / 中多漆齒姝
음란하고 사치함은 정ㆍ위를 본보고 / 淫奢遵鄭衛
요사스러운 꾸밈은 무염(無鹽)을 비웃네 / 妖冶笑鹽嫫
몸값을 흥정하는 데는 많은 돈을 다투고 / 賭價爭纏
손에 어찌 길삼을 만지랴 / 提工肯辟纑
거처는 모두 판벽을 곱게 꾸몄고 / 居皆粧板壁
지붕에는 흙을 바르지 아니하네 / 屋不用鏝圬
도리와 추녀에는 조각이며 그림이요 / 栱桷雕仍繪
담장은 흙을 다져 쌓았구나 / 垣墻築叉捄
수풀 뜰에는 가는 자갈을 깔았고 / 林庭鋪細礫
욕실에 둥근 통을 두었네 / 浴室貯圓杅
남녀가 다 아롱 옷이요 / 士女俱斑服
하인도 또한 비단 저고리로세 / 奏儓亦綺襦
지극한 존전에 사모 쓰고 띠를 띠고 / 極尊加帶帽
보통 존경하는 데는 건을 벗었네 / 庸敬脫巾?
짧은 소매를 항상 입었고 / 短袖常穿着
긴 잠방이를 매양 질질 끄네 / 長褌每曳婁
노 갓끈에는 꾸밈도 없고 / 繩纓謝綏飾
골 신에는 신총도 없네 / 菅屨乏綦絢
그림 새긴 합에는 안주가 세 겹이요 / 畫榼肴三疊
진기한 상에 밥 한 사발이네 / 珍床飯一盂
용단차는 몇 번이나 끓였나 / 龍團茶幾沸
홍련주를 자주 사네 / 鴻練酒頻酤
노귤은 꿀보다 달고 / 盧橘甘於蜜
포도는 윤택하기 타락과 같네 / 葡萄潤似酥
누런 꾀꼬리는 나무에 보기 어렵고 / 黃鸎難見樹
흰 꿩이 혹 그물에 걸리네 / 白雉或離罦
말은 털이 벗어져 머리가 중과 같고 / 馬禿頭依釋
원숭이는 길들어서 광대의 재주를 배우네 / 猿馴技學侏
상어 잡이는 그물을 많이 베풀었고 / 鱨鯊多設罶
전어는 통발에 들어오네 / 鱣鮪入施罛
토란 잎은 수수 잎 벼 잎과 섞였고 / 芋葉交秔稌
종려목 가지는 재목과 틈틈이 끼였네 / 椶枝間梓楰
육생이 지금 일을 다 마쳤는데 / 陸生今幹事
종자가……당하랴 / 鍾子豈嬰拘
행장을 챙기니 맑기가 씻은 것 같고 / 理橐淸如洗
배를 타니 날래기가 오리와 같네 / 乘槎快若鳧
거듭 와서 큰 물에 뜨니 / 重來浮混漭
좁쌀 한 알 같은 아득한 생각이 배나 더하네 / 倍覺渺秠稃
사업은 구리 기둥 세우던 것과 다르고 / 事業違銅柱
세월은 북두성 자루가 변하였네 / 天時變斗樞
불은 이미 봄 가을에 여러 번 고쳤고 / 火多更鑽燧
재는 이미 갈대가 움직였네 / 灰已動葮莩
돌아가는 배를 여러 번 매어 멈췄으니 / 屢遣歸舟繫
나의 말이 병이 든 것과 무엇이 다르랴 / 訓殊我馬瘏
노래는 풍환이 장검 퉁기는 것과 같고 / 歌彈馮鋏削
말은 학융의 추우를 배우네 / 語襲郝池娵
빽빽한 싸락눈은 더운 장기를 구축했고 / 密霰駈炎瘴
엄한 바람은 차가와서 고미를 떨어뜨리네 / 嚴風落冷菰
편지는 소무의 기러기가 드물고 / 書稀蘇武鴈
흥취는 계응의 노어를 생각네 / 興逸季鷹鱸
이번 행역은 말하면 이에서 신물이 나는데 / 此役言酸齒
어느 사람이 쓴나물 쓰다고 말하였나 / 何人說苦荼
간신히 돌아오는 길 반도 못되어 / 間關歸未半
문득 해가 바뀌었네 / 焂忽歲云徂
아득하게 우리 미인 바라보고 / 渺渺瞻余美
거듭 여수시를 외네 / 申申誦女嬃
거리 밖에서 바라는 걱정 깊을 것이요 / 憂深閭外望
화승 앞에서 기뻐해 드릴 안색이 멀리 계시네 / 色遠勝前愉
즐거운 형포가 그립고 / 樂爾懷荊布
희미하게 작은 토끼 보이네 / 依然見小菟
죽림에 놀던 것 방불하고 / 竹林游彷彿
지당(池塘)의 풀에 꿈이 나네 / 塘草夢飛揄
이날이 참으로 아깝구나 / 此日誠堪惜
밤중에 홀로 슬퍼하네 / 中宵獨自㥚
잠이 아니 오매 형초기(荊楚記)를 뒤적거리고 / 不眠披楚記
도소주(屠蘇酒) 마시나 흥취도 없네 / 無意飮屠蘇
상시는 여관의 등불에 시름하였고 / 常侍愁燈館
함양(咸陽)에서 저포(樗蒲) 육박(六博)을 하였네 / 咸陽戯博蒲
누가 장차 술을 올리려는고 / 阿誰將進酒
나의 현호 날인 줄 알았음이랴 / 知我屬懸弧
술잔의 즐거움을 억지로 지으며 / 强作盃觴樂
인하여 부모의 수고한 은혜 생각나네 / 仍思父母劬
지난 일이 역력히 추억되니 / 平生追歷歷
오늘밤에 비로소 첫울음소리 내었네 / 今夜始呱呱
처음 뜻은 이름 날려서 부모 드러내려 하였고 / 夙志期揚顯
깊은 은혜는 몸뚱이를 받아 났네 / 深恩受髮膚
백 년 동안 채색 옷으로 춤추며 즐길 것이며 / 百年歎舞綵
여가에 공부하여 문장에 힘을 쓰리 / 餘力解操觚
부를 짓는 데는 앵무가 부끄럽고 / 作賦漸鸚鵡
시를 쓰는 데는 자고가 부끄럽네 / 題詩愧鷓鴣
헛 이름은 도리어 송을 압도(壓倒)하고 / 虛名翻壓宋
허랑한 자취는 도리어 노보다 먼저로세 / 浪跡却先盧
계수나무 동산[桂苑]에서 저륵을 섞었고 / 桂苑收樗櫟
명주(明珠)의 반열에 무부가 끼었네
/ 珠班廁珷玞
봉산에 영광스럽게 사가(賜暇)하였고 / 蓬山榮賜暇
옥당(玉堂)에서 어주(御酒)를 내리신 총애를 입었었네 / 玉署寵頒酺
감격하여 마땅히 결초보은 할 것인데 / 感激當橫草
날라 드날리매 어찌 박[瓠]처럼 매어 있으리 / 飛騰豈繁瓠
긴 바다를 지척처럼 보고 / 長波看咫尺
오랑캐를 다람쥐로 보았네 / 異類視鼷鼯
평탄함과 위험함을 동일히 보는 절조 때문이요 / 自是同夷險
다만 주식(酒食)이나 얻어먹자는 건 아니었네 / 無爲只啜餔
성심을 가지고 오랑캐를 접하니 / 推誠待蠻貊
공경[敬]함을 행하라는 정자(程子) 주자(朱子)에 감복했네 / 行敬服程朱
학문을 함에 게을리 말고 / 進學休慵惰
말[言]에 당하여 더듬거리지 말라 / 當言莫囁嚅
증자의 삼성(三省)을 따르고 / 三追曾子省
중니의 절사(絶四)를 배우리 / 四絶仲尼毋
나는 익새[鷁] 길이 반드시 통할 것이니 / 路必通飛鷁
돌아가 응당 까마귀처럼 반포(反哺)하리 / 歸應趁哺烏
거의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함이 없었으니 / 庶幾無辱命
이로부터 착한 말씀을 진술하리라 / 從此可陳訏
글귀를 지어 뜻을 말하려 하니 / 覔句憑言志
밤새도록 수염을 배배 꼬았네 / 終宵費撚鬚
신정(新正)에 멀리 축하를 올리기를 / 新春遙獻賀
성주여 만년이나 사시옵소서 / 聖主萬年於


[주-D001] 배율(排律) : 
율시(律詩)가 보통 8구(句)인데 배율(排律)은 8구 이상 얼마든지 많이 짓는 것이다. 일반으로는 12구다.
[주-D002] 가오리 지역 : 
조선을 가리킴. 한반도 근해에 가오리[鰈魚]가 난다.
[주-D003] 창창량량 
해가 처음 뜰 때에 창창량량(蒼蒼凉凉)하다는 말이 있는데, 공자가 길을 가다가 동자(童子)에게 문답한 고사이다.
[주-D004] 우이(堣夷) : 
우이는 《서경》에 있는 말인데 해뜨는 동방을 가리킨 것이다.
[주-D005] 사신의 연산 
사신이 반드시 일산을 들고 간다.
[주-D006] 사신으로……선택하였네 : 
정몽주(鄭夢周)가 고려 말 왜국에 사신으로 가서 우대를 받았다.
[주-D007] 문덕으로……춤추었네 
순(舜)이 유묘씨(有苗氏)를 치다가 불복하매 두 뜰 사이에 간척무(干戚舞 문덕(文德)으로 교화시키는 춤)를 춤추니 유묘씨가 와서 복종하였다 한다.
[주-D008] 용사 : 
선조(宣祖) 때 임진(壬辰 龍) 계사년(癸巳年 蛇)의 왜란이다.
[주-D009] 다급하여……버렸는데 
주(周)의 태왕(太王)이 빈(邠)에 도읍했었는데, 갑자기 적인(狄人)이 침입해 오자 빈 땅을 버리고 기(岐)로 옮겨가 살았다.
[주-D010] 괵 나라의……빌리겠다 : 
춘추(春秋) 시대 진(晉) 나라가 우(虞) 나라에 길을 빌려 괵(虢) 나라를 토벌하겠다고 꼬여서 괵 나라를 쳐서 멸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 나라를 멸하였다. 임진왜란에 왜가 우리에게 명(明)에 들어갈 길을 빌려 달라고 위협하였다.
[주-D011] 초가……당했고 : 
전국 시대에 진(秦) 나라의 군사가 초(楚) 나라를 쳐서 초 나라의 선왕(先王)의 능을 불태웠는데 임진왜란에 왜군이 성종(成宗)ㆍ중종(中宗)의 능을 불태웠다.
[주-D012] 연 나라가……잡혔네 : 
전국 시대에 제(齊) 나라가 연(燕) 나라를 쳐서 백성들을 포로로 하였다. 이것도 임진왜란에 우리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것을 말한다.
[주-D013] 어린애를……같고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북방 탁발씨(拓拔氏)의 북위(北魏)가 남방의 송 나라를 칠 때에 온갖 잔폭(殘暴)한 짓을 다하여 어린애를 창끝에 꿰어 희롱하였다.
[주-D014] 채찍을……같았네 : 
중국 남북조 시대 전진(前秦)의 부견은 80만 대군으로 동진(東晉)을 공격해 왔다가 참패하고 곧이어 멸망했다.
[주-D015] 금사발이……것이나 : 
양 무제(梁武帝)가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금사발[金甌]처럼 결함이 없었다.’ 하였다.
[주-D016] 탕이……것이요 : 
은(殷) 나라 임금 탕(湯)이 갈백(葛伯)이란 오랑캐와 이웃하였는데, 갈백이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므로 탕이 물은 즉 곡식이 없다 하자 탕이 농부를 보내어 밭을 갈아 주고 점심까지 보내주었다.
[주-D017] 월 나라가……아니로다 : 
춘추 시대에 월 나라가 오(吳) 나라에 패하여 항복하고 온갖 곤욕을 당하다가 마침내 국력을 새로 일으켜 오에게 원수를 갚았다.
[주-D018] 고래……그쳐졌고 : 
바다에는 고래가 제일 크고 사나우므로 적국의 바다를 고래물결[鯨波]이라 한다.
[주-D019] 닭……않았네 
두 나라가 서로 우호(友好)를 맹세할 때에 닭ㆍ개ㆍ말을 잡아서 피를 마시며 맹세한다.
[주-D020] 의관이……통했고 
의관은 사행을 말하고, 1기(紀)는 12년인데, 12년 만에 다시 통신사가 갔다는 말이다. 지난번은 1643년(인조 21)이었고, 금년은 1655년(효종 6)이다.
[주-D021] 신의는……합하였네 
《주역》 중부괘(中孚卦)에, “신(信)이 돼지나 물고기에 미친다.”하였다.
[주-D022] 모수의……것이요 : 
전국 시대에 조(趙) 나라가 진(秦) 나라의 침략을 당하여 초(楚) 나라에 원조를 청하려 가는데 수행원(隨行員)에 문무겸전(文武兼全)한 인재 20인을 선택하는데 1인이 부족하였다. 평원군의 문하(門下)에 객(客)으로 있던 모수(毛遂)가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자천(自薦)하였다. 평원군이 묻기를 “자네가 나의 문하(門下)에 있은 지 몇 해인고?” 하니 모수가 답하되 “3년입니다.” 하였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훌륭한 인재는 주머니 속에 든 송곳[錐]과 같아서 그 끝이 곧 드러나는 것인데 자네가 나의 문하에 있는 3년 동안에 내가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자네가 특별한 것이 없는 것이다.” 하니 모수가 말하기를, “내가 오늘에는 주머니 속에 들겠습니다. 전일에 벌써 주머니에 들어갔더라면 끝만 나올 뿐이겠소, 송곳자루까지 다 나왔을 것입니다.” 하였다.
[주-D023] 조 나라……팔렸네 
초 나라가 조 나라의 박옥을 얻은 고사가 있다.
[주-D024] 젊은……휘어잡았고 : 
벼슬길에 나가려 과거시험 보아 합격하는 것을 “달 가운데 계수나무를 꺾는 데에 비한다.” 정사 조형(趙珩)이 20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주-D025] 맑은……잡았네 
포부가 훌륭하여 옥을 잡은 것과 같다는 말이다.
[주-D026] 명망은……것이며 : 
송 나라 조열도(趙閱道)가 이름난 재상이다. 이것은 이번에 상사(上使)가 조씨인 때문에 조씨의 고사를 많이 썼다. 위와 아래가 다 그 뜻이다.
[주-D027] 시는……하네 
당 나라 조하(趙嘏)의 시에 “긴 피리 한 소리에 사람이 다락에 기대었네. [長笛一聲人倚樓]”라 한 글귀가 있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조의루(趙倚樓)란 별명으로 불렀다.
[주-D028] 개제한 참 군자요 : 
즐겁고 간이(簡易)한 군자.
[주-D029] 옹용 : 
화평하고 조용한 것.
[주-D030] 부사의……어려웠더니 : 
한 나라 진식(陣寔)의 아들 원방(元方)ㆍ계방(季方)이 모두 훌륭하였는데 원방ㆍ계방의 아들들이 서로 그 아버지의 우열(優劣)을 자랑하여 그 할아버지에게 판정을 구하였더니, 할아버지 진식이 말하기를, “원방이 형되기 어렵고 계방이 아우되기 어렵다.” 하였다.
[주-D031] 웅장한……능가하고 : 
《시경(詩經)》, 《초사(楚辭)》 후에는 “한ㆍ위(漢魏)의 시가 제일이다.” 했다.
[주-D032] 진정한……사모하네 : 
수(洙)는 공자가 살던 곳의 물이요, 염(濂)은 주 염계(周濂溪)가 살던 고향의 물이다.
[주-D033] 사마가……썼으며 : 
한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고향인 촉(蜀)에서 장안(長安)으로 가면서 승선교(昇仙橋) 기둥에 쓰기를, “내가 사신이 되어 높은 수레를 타지 아니하면 이 다리를 다시 지나지 아니하겠다.” 하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다.
[주-D034] 종군은……버렸었네 : 
한 나라 종군(終軍)이 젊을 때에 산동(山東)에서 장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때의 법에 관문(關門)을 지나 장안으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비단 조각으로 표적을 하였다가 관문을 나올 때에는 맞추어 보고야 내보내는 법이었다. 종군은 그 비단 조각을 내어 던지면서 “내가 임금의 사절(使節)이 되지 아니하면 다시 이 관문으로 나오지 아니할 것인데 비단 조각은 무엇하나.” 하였다.
[주-D035] 위풍은……났으며 : 
백간(白簡)은 어사(御史)가 백관(百官)을 탄핵할 때에 흰 대쪽에 글을 쓴다. 여기서는 부사(副使)가 사헌부(司憲府)의 관원을 거쳤다는 말이다.
[주-D036] 청포 : 
청포(靑蒲)는 임금의 자리 앞에 신하가 더 들어가지 못하는 한계인데 간관(諫官)이 청포 앞에까지 들어가 곧게 아뢴다는 뜻이다. 부사(副使)가 간관(諫官)을 지냈다는 말이다.
[주-D037] 반근을……분별하겠고 : 
나무의 뿌리가 구불구불 서린 것은 칼이나 도끼로 다듬기 어려우므로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다. 어려운 정무(政務)에도 능력있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주-D038] 긍경을……있네 
긍경은 뼈와 힘줄이 붙는 자리로, 가장 우수한 포정(庖丁)이라야 여기를 잘 가를 수 있다.
[주-D039] 문장은……아니요 : 
중국 삼국 때에 조조(曹操)의 서기(書記) 진임(陣琳)이 격문을 기초(起草)하면 조조가 읽고는 본래 앓던 두풍(頭風)이 나았다 한다.
[주-D040] 지혜는……부족하네 : 
《시경(詩經)》에 사신이 나가서는 두루 풍속을 묻는다는 말이 있다.
[주-D041] 어찌……가렸으랴 : 
진(晉) 나라 육기(陸機)의 문장은 모래를 헤쳐 간간이 보배를 발견함과 같다 하였다.
[주-D042] 김생은 ……여위네 : 
김생(金生)은 신라(新羅)의 명필인데 글씨는 여위고 굳세었다.
[주-D043] 정건은……절이요 : 
당 나라 정건(鄭虔)이 시(詩)ㆍ서(書)ㆍ화(畫)에 삼절(三絶)이었다.
[주-D044] 한간은……그리네 : 
당 나라 한간이 말을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다. 이상에서 시인ㆍ명필ㆍ화가를 인용한 것은 당시 수행했던 서기ㆍ사자원ㆍ화원 등이 당대의 명가라는 말이다.
[주-D045] 서리털은……매요 : 
당 나라 두보(杜甫)가 매[鷹] 그림을 두고 지은 시에 있는 말이다.
[주-D046] 붉은……망아지로다 : 
한 무제(漢武帝) 때에 악와수(渥洼水)에 준마(駿馬)의 새끼가 나왔는데 땀이 붉었다. 예단(禮單)으로 매와 말을 가지고 갔다.
[주-D047] 자극 
좌극 청명은 모두 상제(上帝)가 있는 곳을 가리킨 것인데 여기서는 대궐을 말한 것이다.
[주-D048] 옷깃은……종종걸음쳤네 
온교는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출사하였고 공자의 아들 이(鯉)는 뜰에서 아버지 앞을 지나다가 교훈을 들었다. 필자 자신도 부모님의 당부 말씀을 들으며 사역(使役)에 나아감을 말한 것이다.
[주-D049] 염뢰퇴 : 
촉(蜀)에서 양자강(揚子江)으로 내려 오는 길에 가장 파도가 험한 곳이다.
[주-D050] 호타하를 건넘과 같았네 :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적병에게 쫓겨서 호타하(滹沱河)에 가까이 왔는데, 척후병(斥候兵)을 보내 보니, ‘얼음이 풀어졌고 배도 없어서 건널 수 없습니다.’ 하더니, 왕패(王覇)를 다시 보냈더니 왕패는 여러 군사의 마음이 실망할까 하여 임시로 “얼음이 단단히 얼었으니 건널 수 있습니다.” 하였다. 과연 와본즉 얼음이 얼었다가, 마지막 두어 기병(騎兵)이 미처 건너기 전에 얼음이 풀리었다.
[주-D051] 혼은……애처로웠네 : 
순(舜)임금이 남방에 갔다가 죽었는데 그의 이비(二妃)가 가서 울다가 죽었다. 그 눈물이 소상강(瀟湘江)의 대[竹]에 뿌려져서 아롱진 점이 되었는데 그것을 소상반죽(瀟湘班竹)이라 한다.
[주-D052] 기의……같고 
일본의 □기(□崎)바다에 종(鍾)이 물에 빠졌는데 수길(秀吉)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끌어내려다가 성공하지 못하였다. 사수(泗水)의 솥[鼎]이란 것은 한 나라 때에 사수(泗水)에 빠져 있는 주(周) 나라 솥을 건지려다 건지지 못하고 말았다.
[주-D053] 번옹 
번옹은 중국과 무역하는 보물이 많은 나라다.
[주-D054] 관이 나뉘었으매 : 
안덕천황의 사당은 하관(下關 시모노세키)에 있고, 조금 더 배를 타고 강호 쪽으로 가면 상관(上關 가미노세키)이 있다.
[주-D055] 천주봉에 기댄 것 같고 
중국 형산(衡山)에 천주봉이 있다.
[주-D056] 무우에 읊조림과 같았네 : 
공자가 여러 제자에게 뜻을 물으니 증점(曾點)이 최후에 일어나서 말하기를, “저는 모춘(暮春)에 춘복(春服)을 새로 입고 관자(冠者) 5~6인과 동자(童子) 6~7인을 데리고 무우(舞雩)에 바람쏘이고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주-D057] 여울은 황공이 있고 
중국에 황공탄(惶恐灘)이란 물 이름이 있다.
[주-D058] 구당과 같았네 : 
구당은 촉(蜀)에서 흘러오는 양자강의 상류(上流)로 물결이 가장 험한 곳이다.
[주-D059] 노도 
일본의 지명이다.
[주-D060] 돌이 나무로 화하였네 : 
본 《부상록》 상권 8월 25일(병자) 우창(牛窓) 조에 보면, 본련사(本連寺) 중의 시에 차운한 시의 원주에 “근일에 남목(楠木 녹나무)이 돌이 되었다.”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것을 인용한 듯하나 여기서는 그 반대로 표현하였다.
[주-D061] 국화송이……생각하고 : 
도연명(陶淵明)이 9월 9일에 국화를 따서 쥐고는 술이 없어 걱정했더니 강주 자사(江州刺史) 왕홍(王弘)이 술을 보내었으므로 마시고 취하였다.
[주-D062] 수유……생각나네 : 
중국의 풍속에 9월 9일에 수유(茱萸)를 머리에 꽂고 산에 올라 액(厄)을 피하는 풍습이 있다.
[주-D063] 참람스럽기……같고 : 
한 나라 때에 남월왕(南越王) 조타(趙佗)가 황제(皇帝)로 자칭하였다.
[주-D064] 북선우 : 
한 나라 여후(呂后)가 여주(女主)로 있을 때에 북선우 모돈(冒頓)이 강성한 국력을 믿고 교만하여 여후에게 편지를 보내어, “당신은 과부이니 당신의 몸에 없는 것과 나의 몸에 있는 것을 서로 합합시다.” 하였다.
[주-D065] 환구 
환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인데 천자(天子)만이 하는 것이다.
[주-D066] 곤룡포가 참람하네 : 
천자(天子)만이 입는 예복이다.
[주-D067] 쇠하기는 후제호부터라네 : 
막부(幕府)가 시작되기는 12세기 말부터였지만 이때는 권력을 분점하여 황가(皇家)와 무가(武家)가 양립하고 있었다. 그러다, 후제호천황이 실정(室町)막부에 반기를 들어 남북조로 나누어지고 무가가 세운 북조에 의해 통일됨으로써 천황의 실권이 완전 상실한 것을 말한다.
[주-D068] 자쾌는……주었고 : 
중국의 전국 시대에 연(燕) 나라 임금 자쾌(子噲)가 그의 신하인 자지(子之)에게 권력을 이양(移讓)하였다.
[주-D069] 소공은……죽었네 : 
양 무제(梁武帝) 소연(蕭衍)이 역적(逆賊) 후경(侯景)에게 포위를 당하여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입맛이 써서 길을 찾다가 얻어 먹지 못하고 죽었다.
[주-D070] 인장을……어리석은고 : 
일본 경도(京都)에 있는 천황(天皇)은 관백(關白)이 임명한 벼슬에 인장을 찍어 주고 사례금을 받았다. 앞에 기록되었다.
[주-D071] 진교보다 낫네 : 
중국의 수도 장안(長安), 진경(秦京)에는 길에 병목(幷木 나무 울타리)이 가득 서 있었다.
[주-D072] 거와 주로세 : 
중국의 춘추(春秋) 시대 거(莒)와 주(邾)는 가장 작은 나라였다.
[주-D073] 초 나라……섞였네 : 
중국에서는 초(楚)의 춤과 오(吳)의 노래가 유명하였다.
[주-D074] 위엄 빌린 여우 : 
여우가 범의 위엄을 빌렸다[狐假虎威]는 속담을 인용하였다.
[주-D075] 어린……같네 : 
외로운 새끼로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주-D076] 사슴……더하고 : 
덕천가강의 권세가 조고보다 더하다는 말. 진(秦) 나라 조고(趙高)가 임금을 속이고 권력을 빼앗으려고 사슴을 몰고 와서, “이것이 말입니다.” 하니, 모였던 신하들이 조고를 두려워하여 말[馬]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D077] 권현묘 : 
일광산(日光山)에 있는 덕천가강(德川家康)의 사당이다.
[주-D078] 바닷물……본보고 : 
한 고조(漢高祖)의 조카인 오왕비(吳王濞)가 반역하기 위하여 재물을 모으느라고 바닷물을 달여서 소금을 만들었다.
[주-D079] 구슬을……배우네 : 
서역(西域)의 보석을 장사하는 호인(胡人)이 자기의 몸을 쪼개어 보석을 감추었다 한다.
[주-D080] 정ㆍ위를 본보고 
중국 춘추 시대에 정(鄭) 나라 위(衛) 나라가 음란하고 사치하였다.
[주-D081] 무염 : 
무염(無鹽)은 제국(齊國)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다.
[주-D082] 육생 : 
육생은 곧 육가(陸賈)임.
[주-D083] 종자가 어찌 억류를 당하랴 : 
진(晉) 나라 종의(鍾儀)가 초(楚) 나라에 포로로 되어 갔다.
[주-D084] 사업은……것 : 
한 나라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토벌하고 그 경계에다 구리 기둥을 세웠다.
[주-D085] 세월은……변하였네 :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루가 달마다 방향을 변한다.
[주-D086] 불은……고쳤고 
고대(古代)에는 나무를 뚫어 마찰시켜 불을 내는데 해마다 새로 낸다.
[주-D087] 재는……움직였네 
동지가 되었다는 말. 동짓날 그 시각에 갈대를 태워 재[灰]를 만들어 땅에 묻으면 동지의 시각에 재가 날린다.
[주-D088] 나의……것 
《시경(詩經)》에, “임을 보고 싶어도 나의 말이 병이 들었네.”라는 문구가 있다.
[주-D089] 풍환이……것 : 
풍환(馮驩)이 맹상군(孟甞君)의 문객(門客)으로 있으며 대우가 좋지 못하므로 긴 칼을 퉁기면서 “칼아 돌아가자.” 하였다.
[주-D090] 학융의……배우네 : 
진(晉) 나라 학융(郝隆)이 벼슬이 만부 참군(蠻府參軍)이 되었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시를 짓는데 학융의 시에 “추우가 맑은 못에 뛰네.” 하는 문구가 있었다. 상관(上官)인 환온(桓溫)이 묻기를, “추우가 무슨 말인가?”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만족(蠻族)의 말에 물고기를 추우라 합니다.” 하였다. 환온이 “시를 지으면서 어찌 만어(蠻語)를 쓰는가?” 하니 그는 “천 리에 벼슬하러 왔다가 만부 참군(蠻府參軍)이 되었으니 어찌 만어(蠻語)를 쓰지 아니하겠소.” 하였다.
[주-D091] 계응의……생각네 : 
진(晉) 나라 장한(張翰)의 자가 계응(季鷹)인데 낙양(洛陽)에 와서 벼슬하다가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우리 고향 강동(江東)의 노어회(鱸魚膾)가 생각이 난다.” 하고는 곧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주-D092] 쓴나물……말하였나 : 
객지의 고생이 쓴나물보다 맛이 더 쓰다는 뜻이다.
[주-D093] 죽림에 놀던 것 
진(晉) 나라 혜강(嵆康)ㆍ완적(阮籍) 등 일곱 사람. 죽림 속에서 술을 마시고 자유롭게 놀았는데 그들은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한다.
[주-D094] 지당(池塘)의 풀에 꿈이 나네 : 
진(晉) 나라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그의 사촌 동생 혜련(惠連)을 꿈에 보면 반드시 아름다운 시가 나오는데 지당에 춘초가 난다[池塘生春草]라는 시가 가장 이름이 있다.
[주-D095] 형초기(荊楚記) : 
중국에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라는 책이 있는데 형초지방의 명절의 풍속을 기록한 책이다.
[주-D096] 저포(樗蒲) : 
저포(樗蒲)는 도박의 일종이다. 함양의 여관에서 저포놀음을 하였다는 것은 한유(韓愈)의 시에 있는 글귀이다.
[주-D097] 현호 : 
아들을 낳으면 문에 활을 다는 풍속이 옛적에 있었다.
[주-D098] 부를 짓는 데는 앵무가 부끄럽고 : 
한 나라 미형(彌衡)의 앵무부(鸚武賦)가 명작이다.
[주-D099] 헛 이름은 도리어 송을 압도(壓倒)하고 : 
당 나라 초기에 심전기(沈佺期)ㆍ송지문(宋之問)이 이름 있는 시인이었는데, 어느 시인이 그들과 함께 시를 지어 1등을 하고 돌아와서는 “내가 오늘 심ㆍ송(沈宋)을 눌러 넘어뜨렸다.” 하였다.
[주-D100] 노보다 먼저로세 : 
당 나라 초기의 시인, 왕발(王勃)ㆍ양형(楊炯)ㆍ노조린(盧照鄰)ㆍ낙빈왕(駱賓王)을 4걸(四傑)이라 칭하였는데, 양형이, “노(盧)의 앞에 이름이 있는 것이 부끄럽네.” 하였다.
[주-D101] 계수나무……끼었네 
보잘 것 없는 자신이 좋은 자리에 올랐다는 겸사. 계수는 좋은 나무이고 저 나무와 륵 나무는 아무 쓸모없는 나무이다. 무(珷)와 부(趺)는 명주(明珠)와 같으면서도 명주가 아니다.
[주-D102] 옥당(玉堂)에서……입었었네 : 
조선에서 장래가 유망한 문관(文官) 가운데서 사람을 선발하여 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였는데 여기서 봉산(봉래(蓬萊))은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데, 옥당(玉堂)을 신선과 같이 보았다.
[주-D103] 날라……있으리 : 
공자의 말에, “내가 어찌 박[瓠]이나 오이[苽]처럼 한군데 매어 살겠느냐?” 하였다.
[주-D104] 증자의 삼성(三省) 
증자(曾子)의 말에. “내가 하루에 세 번씩 나의 몸을 반성(反省)한다.” 하였다.
[주-D105] 중니의 절사(絶四) : 
《논어(論語)》에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으니 의(意)ㆍ필(必)ㆍ고(固)ㆍ아(我)가 없다.” 하였다.
[주-D106] 익새 
익(鷁)이란 새가 반드시 바람의 방향을 잘 알므로 배[舟] 돛대에다 익(鷁)을 만들어서 단다.



二十九日己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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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東風。次赤間關。曉來順風大作。而勢甚緊猛。進待少緩。卯時發船。次第掛帆。波濤雖盛。風力極順。直過上關。達夜行船。船行如箭。一年將盡之夜。寄臥萬頃波上。瞥過萬重雲山。誠是百年壯遊也。所乘船最疾。以上船之落後。有時下帆進待。放火箭相應。懸大燈以表。行中之人。以余初度日。設小酌各勸一盃。仍與讀祝。達曙打話。仍述二百韻排律。以寫客懷。翌日卯初。到泊赤間關。是日一晝夜行五百里。
歲除夜不堪 君親之戀。口號示讀祝
赤城寒靄晩蕭蕭。風送雙帆路不遙。故國猶遮三大海。新年只隔一良宵。家鄕入望眠難就。行役關心鬢易凋。呼燭强成篷底飮。莫敎殘角報明朝。
壯遊二百韻
鰈域三韓國。蠻鄕百粤區。風從方土別。俗與語音殊。浩蕩天連海。蒼涼日出堣。商舟開遠道。使蓋自高句。逖矣當麗季。欽哉揀宿儒。 聖朝臨御肅。文德舞干敷。納款常懷附。乘機竊覬覦。龍蛇當運厄。蠆虺作邊虞。窘甚離邠邑。聲言假虢途。楚危陵寢辱。燕破耄倪俘。貫槊殘如拓。投鞭衆若苻。金甌宜未缺。赤子竟何孤。痛切宸廷籲。恩深絶世扶。源氏修隣好。權宜出廟謨。固知湯餉葛。休謂越忘吳。鯨浪烽無警。雞盟血不渝。冠裳通一紀。信義叶中孚。化已綏來者。時當遣使乎。毛錐元立見。趙璧卽先沽。妙歲重攀桂。淸標獨握瑜。名將閱道似。詩欲倚樓符。豈弟眞君子。雍容上大夫。端宜惟夢在。正合應時須。副价難其次。全才衆曰兪。雄詞凌漢魏。眞派慕濂洙。司馬曾題柱。終軍早棄襦。威稜生白簡。直節振靑蒲。拔擢朝廷潤。便蕃寵眷紆。遇盤皆別器。經綮可嘗觚。忝竊追諸子。空疎愧殺吾。文非草陳檄。智乏贊周諏。豈有披沙寶。眞如附驥駑。此行從者盛。吾客待以俱。李白詩淸逸。金生筆勁癯。鄭虔書亦絶。韓幹畫堪摹。敬奉綸音降。勤將禮幣輸。檀香動芬苾。鱗石燦琨㻍。彩錦兼皮帛。燈籠間琴竽。霜毛華岳隼。汗血渥洼駒。紫極頒旌旆。靑冥下鉞鈇。拜辭猶怵惕。征邁暫踟躕。密邇承天諾。聯翩飽澤需。殊私分箑劑。翼滄貺彤弧。漢水傾朝餞。炎程盡日驅。不遑言疾病。安得念妻孥。爲告親闈別。先催大嶺踰。裾憐溫嶠絶。庭隔伯鯉趨。叵耐揮雙涕。非關愛寸軀。朝陽看傑構。故國弔殘郛。更會三星郞。同臨五月瀘。銀鉤逆震翰。綵繖耀通衢。卜吉投牲醴。祈靈理軸轤。靑旗飄颯颯。畫角咽嗚嗚。況躡張騫跡。疑乘魯皮桴。折桅風作梗。浸板水難㪺。舍達師浮灎。蒼黃劇濟滹。扶持蒙造次。顚沛免須臾。鰐浦簪仍盍。蛇川路轉迂。再生空夢寐。相見各驚吁。住吉波如錦。天神峽似巫。提呈聯桶榼。擁護接䑳?。次第擧舷纜。輝煌繞帳幮。島夷迎傴僂。岩老坐跏趺。水岸繞民戶。山房侈客廚。盛筵花翦綵。佳節草包糊。月掛千家燭。風凋一葉梧。龍顏勞北望。鵬翼困南圖。霧氣愁蛟蜃。秋聲撼蟪蛄。一岐帆正穩。千里日纔晡。躅訪藍關重。魂憐竹血孤。崎鍾同泗鼎。倉縣小番禺。安德祠猶在。文城草已蕪。關分疑白馬。渚別宛黃姑。蔀屋知宮瀨。松牌記室隈。良宵觴水閣。明月鏡氷壺。快若憑天柱。淸如詠舞雩。時時灘有恐。處處險如瞿。老渡添凋鬢。鎌洲庚刈蔞。磐臺岩上出。福方世間無。猿岳人垂淚。牛窓石化株。棹從津館滯。燈向庫洲呼。大阪雄仍麗。長河淺更汙。樓船欄又檻。汀草荻兼蘆。雜花分連隧。層城抱曲闍。平酋開窟穴。此地萃逃逋。桀騖除仇敵。奸梟起隷奴。鼠早終變虎。狼猶且生貙。種不遺焦類。殃應反毒痡。深讎屍可戮。遺恨骨先枯。正屬登高節。難成把酒娛。空思採菊蘂。更憶揷茱萸。泊淀停艑舶。臨塘引轆轤。人應竹兜屋。馬背錦模糊。簫鼓喧長夜。威儀入大都。山高名愛宕。寺壯大浮屠。簇簇皆蠻獠。森森若蟻蛛。極繁嫌地窄。均育憾天幠。立國雖悠邈。稱皇實矯誣。傲如南粤尉。驕甚北單于。祭典叨圜嶠。宮衣僭翟褕。創從王狹野。衰自後醍醐。子噲甘心與。蕭公苦口殂。建元眞可笑。鬻印一何愚。作橋巧鎔鐵。探奇觀揭珠。東風安土嶺。下頫近江湖。赴壑潮皆應。通渠地最腴。陂長浮楚夢。藪密勝秦陓。佐邑移苕霅。濃州將莒邾。梁浮編舴艋。路坦剗崎嶇。古屋繞珍肆。河城列酒壚。神峯稱富士。雄峙邁臨胊。尙帶鴻濛雪。難消造化鑪。箱根馳鉅麓。嶺澤壓相模。武野形連海。江關勢負嵎。雍田兼冀陸。艶荊雜吳歈。粲粲明羅綺。鱗鱗亘欂櫨。屛開金孔雀。簾掛紫珊瑚。緬想家康業。猶稱膽氣麤。才如資遠鷙。世作假威狐。大任傳童子。穉年類匹雛。操權逾指鹿。享富過專羭。擇日催傳幣。除道盛執戵。酌傳狗醬椀。堂設罽賓毹。對使寧箕踞。趨風盡拜膜。行將去黃屋。已自貢丹砮。現廟燒香篆。光山訪苾蒭。奎章墨尙煥。堂構艧初塗。絶瀑懸明鏡。靈杉近白楡。有峰皆玉立。無地不金鋪。徐福身應到。劉郞足必濡。風光雖信美。習俗是何惡。大抵鋤髭髮。尋常露頂顱。雕題言唯諾。挑撻足徒跔。順意能伺候。承顏好諂諛。絲恩銘骨髓。毫怨報睢盱 。送死皮皆爛。輕生腹自刳。鬪爭紛剚刺。攘竊甚穿窬。闕塾誰摛管。袖椎悉荷殳。鳴丸飛何礮。試劍閃干鏤。總隷平箱籍。均分食邑租。崇神多黷祀。佞佛寔繁徒。煮海追吳濞。藏珠學賈胡。遷財儲寶貝。射利竟錙銖。賀絹輕文繡。庄銀當美紆。燭廛標白蠟。銅穴鑄靑蚨。別有蘆花町。中多漆齒姝。陰奢遵鄭衛。妖冶笑鹽嫫。賭價爭纏。提工肯辟纑。居皆粧板壁。屋不用鏝圬。栱桷雕仍繪。垣墻築又捄。林庭鋪細礫。浴室貯圓杅。士女俱斑服。奏儓亦綺襦。極尊加帶帽。庸敬脫巾?。短袖常穿着。長褌每曳婁。繩纓謝綏飾。菅屨乏綦絢。畫榼肴三疊。珍床飯一盂。龍團茶幾沸。鴻練酒頻酤。廬橘甘於蜜。葡萄潤似酥。黃鸎難見樹。白雉或離罦。馬禿頭依釋。猿馴技學侏。鱨鯊多設罶。鱣鮪入施罛。芋葉交秔稌。椶枝間梓楰。陸生今幹事。鍾子豈嬰拘。理橐淸如洗。乘槎快若鳧。重來浮混漭。倍覺渺秠稃。事業違銅柱。天時變斗樞。火多更鑽燧。灰已動葮莩。屢遣歸舟繫。訓殊我馬瘏。歌彈馮鋏削。語襲郝池娵。密霰駈炎瘴。嚴風落冷菰。書稀蘇武雁。興逸季鷹鱸。此役言酸齒。何人說苦荼。間關歸未半。倏忽歲云徂。渺渺瞻余美。申申誦女嬃。憂深閭外望。色遠勝前愉。樂爾懷荊布。依然見小菟。竹林游彷彿。塘草夢飛揄。此日誠堪惜。中宵獨自㥚。不眠披楚記。無意飮屠蘇。常侍愁燈館。咸陽戱博蒲。阿誰將進酒。知我屬懸弧。强作杯觴樂。仍思父母劬。平生追歷歷。今夜始呱呱。夙志期揚顯。深恩受髮膚。百年歡舞綵。餘力解操觚。作賦慚鸚鵡。題詩愧鷓鴣。虛名翻壓宋。浪跡却先盧。桂苑收樗櫟。珠班廁珷玞。蓬山榮賜暇。玉署寵頒酺。感激當橫草。飛騰豈擊瓠。長波看咫尺。異類視鼷鼯。自是同夷險。無爲只啜餔。推誠待蠻貊。行敬服程朱。進學休慵惰。當言莫囁嚅。三追曾子省。四絶仲尼母。路必通飛鷁。歸應趁哺烏。庶幾無辱命。從此可陳訐。覓句憑言志。終宵費撚鬚。新春遙獻賀。 聖主萬年於。



완당전집 제4권 / 서독(書牘)

기사(其四) 與金君[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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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짓날이 이미 지났으니 아마도 주문(朱門)에는 황감(黃柑)을 전해 줄 건데, 들사람은 다만 팥죽을 사립에 뿌릴 따름이니 풍미(風味)가 사뭇 동떨어진 것도 역시 하나의 멋이라면 멋이 아니겠는가.
절에서 돌아온 뒤로 소식이 양쪽 다 막히어 천애(天涯)와 같이 아득만 하니, 한갓 강 얼음이 길을 끊어서만은 아니로세.
근래에는 또 어떤 식으로 소견(消遣)을 하는가. 차는 익고 향은 훈훈하여 족히 추위를 바꿔놓을 만한데, 묵금사(墨金社) 안에서 고아주(羔兒酒)를 가늘게 마시며 역시 생각이 날 같은 가난뱅이 백옥(白屋)에도 미치곤 하는가.
이곳은 바깥 사람을 향해 말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네. 벼룻물이 얼음 잡히려 하여 이만 쓰네.
동쪽 사람으로는 신라 시대 글씨가 중국과 더불어 병칭할 만한데 모두 오로지 구법(歐法)만을 익혔었네. 본조에 들어옴으로부터 이른바 진체(晉體)라는 멋이 나와서 면목이 크게 달라졌는데 그 진체라는 것이 마침내는 이후주(李後主)가 쓴 필진도(筆陣圖)임을 모르고서 비궤(棐几)의 진본으로 인식하였으니, 어찌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집에서 전해 내려오는 동서(董書)로 당인(唐人)의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쓴 것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로 건너오기는 이백 년이 가까우나, 세상에서 유행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네.
만약 녹의(綠意)의 수장한 병부첩(兵符帖)과 비교하면 부득불 그것이 이에 양보하지 않을 수 없으니, 동서의 어려움이 이와 같다네.
동서는 오로지 저법(褚法)으로부터 손을 들여 놓았는데 안평원(顔平原)도 역시 저(褚)를 배워 그 신수(神髓)를 얻은 것이라네.
그러므로 동서가 안서(顔書)에 더욱 가까우며 전ㆍ주(篆籒)의 기(氣)로써 들어가서 창아(蒼雅)하고 험경(險勁)한 뜻이 있는데, 지금 사람들이 다만 곱고 화려하다고만 치는 것은, 모두 가짜를 만드는 자들이 이런 줄은 모르고 함부로 그 형모(形貌)만을 그려냈는데, 이것을 보고서라네.
세상 사람들이 전혀 감별하는 안목이 없으니 가짜를 진짜로 인식하여 마침내 곱고 화려하다고 지목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장득천(張得天)은 평생을 두고 동서(董書)를 익혔으나 겨우 십에 그 이삼을 얻었을 따름이며, 그 공중으로부터 곧장 붓을 내려뜨려 바로 신성(神聖)의 곳에 참여하기란 인력으로 가능할 바 아니요, 특별히 천인(天人)의 마음과 손을 갖춘 사람이라야만 방불하다 이를 거로세. 우리나라 글씨로는 가장 석봉(石峯)을 일컫는데, 석봉의 필력은 동(董)에 비교하면 바로 가볍기가 새깃 하나지만, 세상에 이를 알 사람이 뉘 있겠는가. 대강(大江 양자강) 남북에 가서 물어 보면, 의당 인가(印可)할 자가 있으리라 믿네.
지금 자네의 임방(臨仿)한 것을 보니 자못 깊이 들어간 곳이 있고, 세속 사람들이 동을 익히는 안본(贋本)으로 단지 하나의 지분(脂粉)의 태(態)만 있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매우 반가운 일이로세.
요즘 사람들이 써낸 글씨를 보니 다 능히 허화(虛和)하지 못하고 사뭇 악착한 뜻만 많아서 별로 나아간 경지가 없으니 한탄스러운 일이로세.
이 글씨의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허화(虛和)의 곳에 있으니 이는 인력으로 이르러 갈 바 아니요, 반드시 일종의 천품(天品)을 갖추어야만 능한 것이며, 심지어 법이 갖추고 기(氣)가 이르러 가면 한 경지가 조금 부족하다 해도 점차로 정진되어, 스스로 가고자 아니해도 곧장 뼈를 뚫고 밑바닥을 통하는 수가 있기 마련이라네.

옛을 삼키고 이제를 머금어 / 茹古涵今
끝도 없고 가도 없으며 / 無有端涯
넘실넘실 넓고 넓어 / 渾渾灝灝
무얼 두고 견줄세라 / 不可窺校
흥이 넘쳐 풀어 놀 땐 / 及其酣放
굵은 가락 쾌한 글자 / 豪曲快字
종이 위에 솟아나서 / 凌紙怪發
징글쟁글 곱고 빛나 / 鯨鏗春麗
온 천하를 놀래었네 / 驚耀天下
그렇지만 그 가운데 정밀하고 교묘하며 / 然而栗密竊眇
맞은 글귀 편한 문장 / 章妥句適
정(精)코 능한 지극이라 / 精能之至
하늘 솟고 신(神)에 드니 / 入神出天
어허 이에 막혔구려 / 嗚乎極矣
뒷사람 더하자도 더할 수가 없고말고 / 後人無以加之矣

  이는 바로 황보지정(皇甫持正)이 창려(昌黎) 한유(韓愈)의 글을 논한 말인데 한갓 문장에만 이러할 뿐이 아니라 서도(書道)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임지(臨池)에 통할 만하므로 이를 가져 뽑아 보임.
[주-D001] 고아주(羔兒酒) : 
《제요록(提要錄)》에 “학사(學士) 도곡(陶穀)이 당 태위(黨太尉)의 고기(故妓)를 사서 얻었다. 하루는 눈이 내리자 도곡은 설수(雪水)를 가져다가 단다(團茶)를 달이면서 기생에게 말하기를 ‘당씨(黨氏) 집에서는 응당 이 맛을 모를 것이다.’ 하자, 그 대답이 ‘그는 추인(粗人)인데 어찌 이 경(景)을 아오리까. 다만 소금장(銷金帳) 안에서 천짐저창(淺斟低唱)하며 고아주나 마실 뿐이지요.’ 하였다.” 하였음.
[주-D002] 백옥(白屋) : 
백모(白茅)로 덮은 집을 이름인데 천인(賤人)의 거처임. 당음(唐音)에 “天寒白屋貧”의 구가 보임.
[주-D003] 이후주(李後主) :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후주 이욱(李煜)을 말함. 자는 중광(重光)인데 문사(文詞)를 잘하고 서화에 능하였음.
[주-D004] 비궤(棐几) : 
비목(棐木)으로 만든 궤를 이름. 《진서(棐書)》왕희지전(王羲之傳)에 “일찍이 문생(門生)의 집에 가서 비궤가 활정(滑淨)함을 보고서 진초(眞草)가 상반(相半)한 글씨를 썼다.”고 하였음. 그래서 산음비궤(山陰棐几)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뜻으로 쓴 것임.
[주-D005] 녹의(綠意) : 
미상임. 대고(待考).
[주-D006] 장득천(張得天) : 
청 화정인(華亭人)으로 이름은 조(照), 자는 득천, 호는 경남(涇南)이며, 관은 형부 상서에 이르고 서법(書法)이 매우 공(工)하였다. 고종(高宗)의 회구시(懷舊詩)에 “羲之後一人 舍照誰能若”이라 하였으니 그 견중(見重)이 이와 같았다. 시호는 문민(文敏)임.
[주-D007] 황보지정(皇甫持正) : 
당(唐) 신안인(新安人)으로 이름은 식(湜), 자는 지정이며 원화(元和) 진사로 벼슬은 공부 낭중(工部郎中)에 이르렀다. 일찍이 배도(裵度)를 위하여 복선사비문(福先寺碑文)을 짓는데 술이 얼큰하자 붓을 잡고 당장에 이루었다. 식은 이고(李翶)ㆍ장적(張籍)과 더불어 제명(齊名)하였고 저술은 《황보지정집》이 있음.

與金君[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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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至日已過。想朱門傳柑矣。野人只是豆粥涴扉而已。風味殊絶。亦復一趣。山寺歸後。信息兩阻。渺若天涯。非徒江氷截路也。邇來又作何等消遣法。茶熟香溫。足以煥寒。墨金社中淺斟恙兒。亦有念及於白屋吒吒中否。此中無足爲外人道也。硯濤欲氷。不儩。
東人羅代書。可與中國並稱。皆專習歐法。自入 本朝。謂之晉軆者出面目大異。不知晉體者。竟是李後主所寫筆陳圖。認以棐几眞本。安得不大異也。余家舊藏董書唐人七律者。東來爲近二百年。與世行者大異。若較綠意所收兵符帖。不得不讓與一頭。董書難如是耳。董書專從褚法入手。顔平原亦學褚得其神髓者。故董書於顔書尤近。又以篆籒氣入之。有蒼雅勁險意今但以爲姸麗者。皆作贋者。不知此而妄作其形貌。世人專無鑑別。認贋爲眞。遂以姸麗目之。張得天平生所習爲董跡。纔能十得其二三而已。若其從空直下。直參神聖處。非人力可能也。別具天人心手。可以彷彿耳。如吾東書。㝡稱石峰。而石峰筆力較董。卽一羽之輕。世孰有知此者哉。往扣於大江南北。當有印可之者。今所仿臨者頗有深入處。不作世俗習董之贋本。只一脂粉態者。甚可喜也。
近見作書者。皆不能虛和。輒多齷齪之意。殊無進境。可歎。此書之最可䙡者。卽在虛和處。此非人力可到。必具一種天品。乃能至。如法備氣到一境。差欠而漸次精進。自有不欲行而直詣透骨徹底處耳。
茹古涵今。無有端涯。渾渾灝灝。不可窺校。及其酣放。豪曲快字。凌紙怪發。鯨鏗春麗。驚耀天下。然而栗密竊眇。章妥句適。精能之至。入神出天。嗚乎極矣。後人無以加之矣。此是皇甫持正論韓昌黎文語也。非徒文章乃爾。書道亦爾。可通於臨池。持此示。



용헌집 제1권 / 시(詩)  ㅡ 이원(李原)


앞의 운자를 써서 춘정께 드리다〔用前韻呈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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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이 세차서 얇은 옷이 두렵고 / 朔風發發㥘輕紗
벼슬길이 구구하여 달팽이가 싸우는 듯 / 宦路區區等戰蝸
우리 도가 실처럼 물들어 서글픈데 / 吾道自悲絲欲染
그대 시가 붓끝에서 꽃피던 것 꿈꾸었네 / 君詩曾夢筆生花
병 뒤에 두릉의 기장술을 빨리 빚고 / 病餘催釀杜陵黍
잠이 깨어 간의 차를 그대로 끓이네 / 睡覺仍煎諫議茶
뜰 가득히 눈이 쌓여 사람 오지 않는데 / 積雪盈庭人寂寂
어린아인 밥 달라고 시끄럽게 울어대네 / 癡兒索飯獨喧嘩
[주-D001] 춘정(春亭) : 
변계량(卞季良, 1369~1430)을 말한다. 여말선초의 문신으로 자가 거경(巨卿), 호가 춘정이다. 고려 때에 전교, 주부(注簿) 등의 벼슬을 지냈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 예조 판서, 집현전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주-D002] 실처럼 물들어 서글픈데 : 
묵자(墨子)가 흰 명주실을 염색할 때 염료의 색에 따라 물들어서 본래의 색을 되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착한 성품이 한번 물들면 본성을 회복하지 못함을 슬퍼한 데에서 따온 것이다. 《墨子 所染》
[주-D003] 붓끝에서 …… 꿈꾸었네 : 
문장의 기량이 진보하여 문명(文名)을 떨치는 것을 말한다. 이백(李白)이 평소 사용하던 붓의 끝에서 꽃이 피어나는 꿈을 꾼 뒤에 재주가 날로 발전하여 천하에 문명을 떨치게 된 일을 빗댄 것이다. 《開元天寶遺事 夢筆頭生花》
[주-D004] 두릉(杜陵)의 …… 빚고 : 
두릉은 두보(杜甫)를 말한다. 그의 〈견의(遣意)〉 시에 “기력이 쇠한 뒤로는 기장술 빚어 달라 재촉하고, 보슬비에도 등자나무 아래로 피하네.〔衰年催釀黍 細雨更進橙〕”라고 하였다.
[주-D005] 간의(諫議) 차 : 
간의는 당(唐)나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낸 맹간(孟簡)을 말한다. 당나라 시인 노동(盧仝)은 간의대부 맹간이 보내 준 월단차(月團茶)를 받고 〈주필사맹간의신다(走筆謝孟諫議新茶)〉를 지었다. 여기서는 변계량이 보내온 차를 시인이 직접 끓임을 표현한 것이다.

用前韻。呈春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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朔風發發怯輕紗。宦路區區等戰蝸。吾道自悲絲欲染。君詩曾夢筆生花。病餘催釀杜陵黍。睡覺仍煎諫議茶。積雪盈庭人寂寂。癡兒索飯獨喧嘩。

用前韻。呈春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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朔風發發怯輕紗。宦路區區等戰蝸。吾道自悲絲欲染。君詩曾夢筆生花。病餘催釀杜陵黍。睡覺仍煎諫議茶。積雪盈庭人寂寂。癡兒索飯獨喧嘩。

  ***  이원 (李原 )  : 1368(공민왕 17)  1429(세종 11)
   이원은 조선 개국 초기에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제도를 확립하는데 공헌했다. 특히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곧고 바르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근과 정몽주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1385년 문과에 급제했다. 태종의 즉위에 협력하여 1401년(태종 1) 좌명공신에 책록되고 철성군에 봉해졌다. 공안부윤을 거쳐 대사헌으로 있을 때 순군 윤종을 구타해 파직되었다. 1408년 태조가 죽자 빈전도감판사가 되어 국장을 주관했으며, 1415년 외척간의 혼인을 금하는 상소를 올렸다. 세종이 재위기에 좌의정에 이어 영의정에 올라 세종의 정치 이상실현에 공헌했다. 1422년 태종이 죽자 정탁과 함께 국장도감도제조가 되어 장례를 주관했다. 1426년 노비를 강제로 빼앗았다는 모함을 받아 공신녹권을 회수당하고 여산에 안치되었다가 죽었다. 저서로는 <용헌집>, <철성연방집>이 있다.

   본관은 고성.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 할아버지는 수문하시중 암(嵒)이고, 아버지는 밀직부사 강(岡)이며, 어머니는 청주곽씨이다. 어려서는 매부인 권근(權近)에게 배웠으며, 정몽주(鄭夢周)에게도 배웠다. 1382년(우왕 8) 성균진사과, 1385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어 사복시승·예조좌랑·병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ㅡ 중략

   1422년 태종이 죽자 정탁(鄭擢)과 함께 국장도감도제조가 되어 장례를 주관했으며, 1425년 진하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26년 노비탈점 혐의로 공신녹권을 회수당하고 여산에 안치되었다가 죽었다. 1455년(세조 1)에 공신녹권을 돌려받았으며, 양헌(襄憲)이란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용헌집〉·〈철성연방집 鐵城聯芳集〉이 있다.   /  <다음백과>




점필재집 시집 제10권 / [시(詩)]   ㅡ 김종직(金宗直)

다원에 대하여 두 수를 짓다[茶園二首] 병서(幷敍)

[DCI]ITKC_BT_0066A_0100_010_0060_2003_001_XML DCI복사 URL복사
  
   상공(上供)하는 차[茶]가 본군(本郡)에는 생산되지 않으므로, 해마다 백성들에게 이를 부과하는지라, 백성들은 값을 가지고 전라도(全羅道)에서 사오는데, 대략 쌀 한 말에 차 한 홉을 얻는다. 내가 처음 이 고을에 부임하여 그 폐단을 알고는 이것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지 않고 관(官)에서 자체로 여기저기서 구걸하여 납부했었다. 그런데 일찍이 삼국사(三國史)를 열람해보니, 신라(新羅) 때에 당(唐) 나라에서 다종(茶種)을 얻어와 명하여 지리산에 심게 했다 …… 는 말이 있었다. 아, 우리 군이 바로 이 산 밑에 있는데, 어찌 신라 때의 남긴 종자가 없겠는가. 그래서 매양 부로(父老)들을 만나서 그것을 찾아보게 한 결과 과연 엄천사(嚴川寺)의 북쪽 죽림(竹林) 속에서 두어 떨기의 다종을 발견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매우 기뻐하면서 그 땅을 다원(茶園)으로 만들게 하고, 그 부근은 모두 백성들의 토지이므로 그것을 관전(官田)으로 보상해주고 모두 사들여 차를 재배했는데, 겨우 수년 뒤에는 제법 번식하여 다원 전체에 두루 퍼지게 되었으니, 앞으로 4~5년만 기다리면 상공할 액수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시 두 수를 읊는 바이다.

신령한 싹 올려 성군께 축수코자 하는데 / 欲奉靈苗壽聖君
신라 때의 남긴 종자 오랫동안 못 찾았다가 / 新羅遺種久無聞
지금에야 두류산 밑에서 채취하고 보니 / 如今擷得頭流下
우리 백성 일분의 힘 펴일 것이 우선 기쁘네 / 且喜吾民寬一分

죽림 밖 황량한 동산 두어 이랑 언덕에 / 竹外荒園數畝坡
붉은 꽃 검은 부리가 어느 때나 무성할꼬 / 紫英烏觜幾時誇
다만 백성의 심두육을 치유하게 할 뿐이요 / 但令民療心頭肉
속립아 농에 담아 진상하기는 바라지 않네 / 不要籠加粟粒芽
[주-D001] 심두육 : 
심장(心臟) 위의 살을 이름. 섭이중(聶夷中)의 전가시(田家詩)에 “이월에 새 실을 팔고 오월에는 새 곡식을 내어서 눈 앞의 상처는 다스렸으나 심두육을 깎아내었네[二月賣新絲 五月糶新穀 醫得眼前瘡 剜却心頭肉]” 한 데서 온 말로, 즉 먹을 것이 없어 심장병을 얻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D002] 속립아 농에……바라지 않네 : 
속립아는 싸라기처럼 생긴 초춘(初春)의 차싹[茶芽]을 말한 것으로, 소식(蘇軾)의 여지탄시(荔支嘆詩)에 “그대는 무이 시냇가의 속립아를 보지 못했나 전정 후채가 서로 농에 담아 진상하였네[君不見武夷溪邊粟粒芽 前丁後蔡相籠加]” 한 데서 온 말인데, 전정 후채는 곧 송(宋) 나라 때 정위(丁謂)와 채양(蔡襄)이 서로 전후하여 맨처음 건주산(建州産) 용단다(龍團茶)를 개발해서 진상하였던 일을 가리킨 것이다. 《蘇東坡集 卷三十九》

茶園 二首。○幷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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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供茶。不產本郡。每歲。賦之於民。民持價買諸全羅道。率米一斗得茶一合。余初到郡。知其弊。不責諸民。而官自求丐以納焉。甞閱三國史。見新羅時得茶種於唐。命蒔智異山云云。噫。郡在此山之下。豈無羅時遺種也。每遇父老訪之。果得數叢於嚴川寺北竹林中。余喜甚。令建園其地。傍近皆民田。買之償以官田。纔數年而頗蕃。敷遍于園內。若待四五年。可充上供之額。遂賦二詩。
欲奉靈苗壽聖君。新羅遺種久無聞。如今擷得頭流下。且喜吾民寬一分。
竹外荒園數畝坡。紫英烏觜幾時誇。但令民療心頭肉。不要籠加粟粒芽。


김종직 (金宗直 ) :  1431(세종 13), 경남 밀양 ~ 1492(성종 23)
   조선 세조 때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계온, 효관, 호는 점필재이며 세종 28년 과거에 응시, <백룡부>를 지어 주목을 받았으나 낙방하였지만 단종 1년 태학에 들어가 <주역>을 읽으며 주자학의 원류를 탐구해 동료들의 경복을 받고 이해 진사시에 합격했다. 1482년 왕의 특명으로 홍문관응교지제교 겸 경연시상관에 임명됐으며 이후 두루 벼슬길에 올랐다. 이 무렵부터 제자들과 함께 사림파를 형성해 훈구파와 대립했다. 연산군 4년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의 내용이 문제가 돼 부관참시 당했다. 이 사건이 무오사화로 이어져 사림파의 후퇴를 가져왔다.

   재지사림(在地士林)의 주도로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이다.

세조의 즉위를 비판하여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를 불러일으켰다.


출신 

   본관은 선산. 자는 계온(季昷)·효관(孝盥), 호는 점필재. 아버지는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낸 숙자(叔滋)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홍신(弘信)의 딸이다.


   김종직의 가문은 고려말 선산의 토성이족(土姓吏族)에서 사족(士族)으로 성장하였으며, 아버지 대에 이르러 박홍신 가문과 혼인하면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중앙관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버지 숙자는 고려말·조선초 은퇴하여 고향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던 길재(吉再)의 제자로,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운 종직은 길재와 정몽주(鄭夢周)의 학통을 계승한 셈이다. 1446년(세종 28) 과거에 응시, 〈백룡부 白龍賦〉를 지어 김수온(金守溫)의 주목을 받았으나 낙방했다.


   그뒤 형 종석(宗碩) 등과 함께 황악산(黃嶽山) 능여사(能如寺)에 가서 독서에 힘써 학문을 크게 성취했다. 1451년(문종 1) 울진현령 조계문(曺繼文)의 딸이며 종직의 문인인 조위(曺偉)의 누나와 결혼했다.  ㅡ 중략


   이러한 사림파의 학문은 무오사화·갑자사화로 한때 침체했다가, 김굉필에게서 배운 조광조(趙光祖)·김안국(金安國) 등에 이르러서 크게 융성했다. 밀양 예림서원, 선산 금오서원, 함양 백연서원, 김천 경렴서원, 개령 덕림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점필재집〉·〈유두류록 遊頭流錄〉·〈청구풍아 靑丘風雅〉·〈당후일기 堂後日記〉, 편서에 〈동문수 東文粹〉·〈일선지 一善誌〉·〈이존록 彛尊錄〉 등이 있으며, 총재관으로서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시호는 문충이다.→ 무오사화    /   출처 : <음백과>




죽석관유집 제2책 / 시(詩)    ㅡ  서영보(徐榮輔)

초가을 날에 기쁘게도 채묵옹이 관사에 찾아와서 파집의 시에 차운하였는데, 기아와 김명원이 함께 읊고 나도 화운하였다〔初秋日 喜蔡墨翁來過官齋 拈坡集韻 箕兒與金明遠共賦 余亦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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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삭거하는 이 몸을 동정하여 / 索居憐歲久
들러 주신 깊은 우정 얼마나 고마운지 / 能過荷情深
술을 대함에 호탕한 기운이 여전하고 / 對酒猶豪氣
시를 논하며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네 / 論詩道苦心
장정에 말이 피곤할까 걱정이요 / 長亭愁馬倦
서늘한 나무에 매미 소리 애틋해라 / 凉樹愛蟬音
정녕 알겠노니 호향에 있는 그날 / 定識湖鄕日
그리우면 문득 오늘 일 얘기할 것을 / 相思輒話今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 내는 선비님 / 士有牢騷者
서리 내린 흰머리가 나는 너무 좋다나요 / 霜顚吾愛深
자리를 압도하며 용처럼 꾸미는 달변이요 / 傾座談龍辯
준마를 치달리려 했던 당년의 마음이라 / 當年躍馬心
먹으며 공부한 일도 들려주고 / 啖薺聞攻業
초동의 소리 안 것도 이야기하네 / 焦桐說解音
술 먹고 목마른 참에 단다가 왔으니 / 酒渴團茶
양털 붓 뽑아 지금 시험해 보시기를 / 羊毫抽試今

고거의 답답함도 날려 버릴 겸 / 高居散煩欝
극문 깊숙이 손을 붙잡았네 / 留客戟門深
빽빽한 나무숲 동산에 통하는 발길이요 / 密樹通園脚
통통한 연꽃의 못에 맑아지는 마음이라 / 膩荷凈沼心
붉은 오얏은 소반에 열매가 담기고 / 朱李呈盤實
거문고는 손가락으로 음을 안다오 / 玄琴辨指音
산골 집에 응당 술이 익었으리니 / 山家應酒熟
한잔 하며 오늘 일을 회상하리라 / 一酌緬懷今
[주-D001] 파집(坡集)의 시 : 
소식(蘇軾)의 〈광애사에 들러 삼학 연 스님을 뵙고, 양혜지가 조각한 보산과 주요가 그린 문수와 보현의 그림을 보다〔過廣愛寺 見三學演師 觀楊惠之塑寶山 朱瑤畫文殊普賢〕〉라는 제목의 오언율시 3수 중 셋째 수이다. 《蘇東坡詩集 卷9》
[주-D002] 기아(箕兒) : 
죽석관의 둘째 아들 서기순(徐箕淳)을 말한다.
[주-D003] 삭거(索居) : 
이군 삭거(離群索居)의 준말로, 붕우의 곁을 떠나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禮記 檀弓上》
[주-D004] 장정(長亭) : 
옛날에 여행객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길거리에 설치한 휴게소이다. 5리(里)와 10리마다 각각 단정(短亭)과 장정을 두었다.
[주-D005] 자리를 …… 달변이요 :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騶衍)은 하늘에 관해서 이야기를 잘했고, 추석(騶奭)은 추연의 학문을 받아들여 마치 용무늬처럼 꾸미기를 잘했으므로, 당시에 “하늘을 얘기하는 추연이요, 용무늬처럼 잘 꾸미는 추석이로세.〔談天衍 雕龍奭〕”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史記 卷74 孟子荀卿列傳》
[주-D006] 준마를 …… 마음이라 : 
벼슬길에 나아가 크게 출세해 보려고 스스로 다짐했던 그 당시의 마음이라는 말이다. 연(燕)나라 변사(辯士) 채택(蔡澤)이 제후들에게 등용되지 않자 관상쟁이 당거(唐擧)를 찾아가서 자기의 상을 봐 달라고 청하였는데, 당거가 채택의 기괴한 얼굴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고는 웃으면서 “성인(聖人)은 관상을 볼 수 없다고 하던데, 아마도 선생이 여기에 해당하는 듯싶다.”라고 하였다. 이에 채택이 “부귀는 나 자신이 갖고 있는 바이니, 수명이 얼마나 되겠는지 그것만 말해 달라.”라고 하였는데, 당거가 앞으로 43년은 살겠다고 하니, 채택이 웃고 사례하며 나와서 자기의 마부에게 “내가 고량진미를 실컷 맛보고, 준마를 채찍질하여 치달리며, 황금의 인수를 가슴에 품고 보라색 인끈을 허리에 매고서 군주의 앞에서 읍양하며, 고기를 먹고 부귀한 생활을 누린다면 43년을 살아도 충분하다.〔吾持梁刺齒肥 躍馬疾驅 懷黃金之印 結紫綬於要 揖讓人主之前 食肉富貴 四十三年足矣〕”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79 范雎蔡澤列傳》
[주-D007] 제(薺) : 
더덕과 비슷한 식물로, 송유(宋儒) 채원정(蔡元定)이 서산(西山)에서 공부할 적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이것을 캐어 먹었다고 한다. 제니(薺苨) 혹은 게로기라고도 한다. 《송사(宋史)》 권434 〈채원정열전(蔡元定列傳)〉에 “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배고픔을 참고 제를 캐어 먹으며 글을 읽다가, 주희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찾아가서 배우고자 하였는데, 주희가 그의 학문 실력을 시험해 보고는 크게 놀라면서 ‘이 사람은 나의 오래된 벗이라고 할 것이니, 제자의 반열에 두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登西山絶頂 忍饑啖薺讀書 聞朱熹名 往師之 熹扣其學 大驚曰 此吾老友 不當在弟子列〕”라는 기록이 나온다.
[주-D008] 초동(焦桐) : 
후한(後漢) 채옹(蔡邕)이 만들었다는 거문고의 이름이다. 채옹이 오(吳)나라에 갔을 적에, 어떤 사람이 밥 짓는 부엌에서 오동나무가 타는 소리를 듣고 그것이 좋은 나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타다 남은 나무를 얻어 명금(名琴)을 만들었는데, 이 거문고의 꼬리 부분에 타다 남은 흔적이 있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초미금(焦尾琴)이라고 불렀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後漢書 卷60上 蔡邕列傳》
[주-D009] 단다(團茶) : 
송나라 때 둥근 떡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위에 용봉의 무늬를 찍은 봉룡단다(鳳龍團茶)의 준말로, 최상품(最上品)의 차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귀전록(歸田錄)》 권2에 “차의 품질로는 용봉보다 귀한 것이 없는데, 그것을 단다라고 한다.〔茶之品 莫貴於龍鳳 謂之團茶〕”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0] 극문(戟門) : 
화극문(畫戟門)의 준말로, 관아(官衙)를 가리킨다. 화극은 채색한 목창(木槍)으로, 병졸들이 이 창을 쥐고서 관아의 문을 지켰다.


初秋日。喜蔡墨翁來過官齋。拈坡集韻。箕兒與金明遠共賦。余亦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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索居憐歲久。能過荷情深。對酒猶豪氣。論詩道苦心。長亭愁馬倦。凉樹愛蟬音。定識湖鄕日。相思輒話今。
士有牢騷者。霜顚吾愛深。傾座談龍辯。當年躍馬心。啖薺聞攻業。焦桐說解音。酒渴團茶至。羊毫抽試今。
高居散煩欝。留客戟門深。密樹通園脚。膩荷凈沼心。朱李呈盤實。玄琹辨指音。山家應酒熟。一酌緬懷今。

  *** 서영보(徐榮輔 )  :   1759(영조 35)  ~ 1816(순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달성. 자는 경재, 호는 죽석. 할아버지는 영의정 지수이며, 아버지는 대제학 유신이다. 1789년(정조 13)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했으며, 1790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함경도암행어사가 되었다.

   1792년 동부승지가 되었고, 대사간·대사성·호남위유사·승지·부호군·관찰사 등을 지냈다. 1804년(순조 4) 예조판서, 이듬해 홍문관제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808년 호조판서로 〈만기요람〉 편찬에 참여했다. 그뒤 평안도관찰사·대제학·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다. 저서로 〈죽석문집〉·〈풍악기 楓嶽記〉·〈교초고 交抄考〉 등이 있다. 시호는 문헌이다.  /  <다음백과 >

  창덕궁의 법전(法殿)인 인정전(仁政殿)의 현판 글씨를 쓴 명필가이기도 하다.  /  2009.02.08 | 블로그 > Daum블로그  http://blo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