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성신도(星辰圖-1)

2018. 3. 10. 14:12美學 이야기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성신도(星辰圖)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박병역기자 2016-08-12 (금) 10:30 795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성신도(星辰圖-1)

 

북부여 해모수[45년(BC 239-195년) 천제 


   북부여의 시조 단군(壇君) 해모수(解慕漱) 천제는 하늘에서 내려올 때 5룡거(五龍車)를 타고 백여 명의 시종들은 모두 백곡(白鵠:흰 고니)을 타고 채색 구름은 위에 띄우고 구름 속에 청아한 음악 소리가 들리었다. 해모수는 웅심산(熊心山)에 십여 일을 머무른 후 진한의 47세 단군 고열가 재위 57년이며, 秦始王政(진시왕정) 8년(임술 BC 239) 4월 8일 비로소 내려와 백악산 아사달(녹산)에 도읍을 정하고 蘭邊(난변:길림성 서란)에 궁전을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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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여 해모수

 

   천제 해모수는 영웅적 기질로서 용맹한 神人(신인)이며, 몸에서 빛이 났다. BC 239년 그의 나이 23세 때 왕위에 올라 항상 까마귀 깃털을 꽂은 조우관(烏羽冠)을 쓰고 용의 형상을 刺繡(자수)한 龍布(용포)를 입고, 허리에 빛나는 龍光劍(용광검)을 차고 오룡거에 오르면 백여 명의 시종들이 모시었다. 아침에 정사(政事)를 듣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시니 세상 사람들은 해모수를 천왕랑(天王郞)이라 불렀다. 


  성북(城北) 청하(靑河:중국 서북부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칭허(靑河)의 하백(河伯:여호와 하느님의 딸 복비)은 매우 아름다운 세 딸이 있었다. 장녀 이름은 유화(柳花)이고, 차녀는 훤화(萱花)이고, 계녀는 위화(葦花)라 불렀다. 그녀들이 청하로부터 웅심연(熊心淵) 위로 놀러나와 있었다. 그녀의 매력적인 자태는 신 같았으며, 용모는 빼어나게 아름답고 몸에 빛이 났다. 해모수 왕은 이들을 보고 좌우에게 말하기를 왕비(王妃)로 삼았으면 아들을 얻겠구나." 하자 그녀는 왕을 보자 즉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후략]

 

 [삼국유사,북부여]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해모수 천제는 임술(BC 239년) 4월 8일 하늘에서 내려와 5룡거(五龍車)를 타고 홀승골성(訖升骨城: 의주(醫州)에 있음)에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북부여라 칭하고 자칭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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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 223년 야훼하느님과 딸 복비[고주몽의 외할머니 하백]가 인간세상에 강림하시어 

조식(192-232)과 상면했을 당시를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낙신부도(洛神賻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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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3년 야훼하느님과 딸 복비(宓妃)[하백:고주몽의 외할머니]가 강림하시어

  인간 세상의 조식(192-232)과 상면 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시는 모습입니다.

 


◆. 하백은 여호와 하느님의 딸 복비이다.

   모두루비문과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서 하백(河伯)의 (외)손자이며 일월의 아들 추모성왕(동명성왕:고주몽)은 처음 [북부여 해모수의 아들]로 출생하셨다. 이 國郡(국군)에 계신 聖人(성인) 추모왕(동명성왕,고주몽)의 덕치가 최고라는 것을 천하 4방에서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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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고분벽화의 하백(河伯)-고주몽의 외할머니입니다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성신도(星辰圖)

 

고구려 사람들


   종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고구려 사람들의 종교는 중요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최고의 신은 천신 즉 하늘의 신 바로 [여와 하느님] 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신은 해신과 달신 등이었습니다..

 

   특히 고등신과 부여신은 고구려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고등신은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추모왕(고주몽)은 천신의 자손으로 믿어졌습니다. 천신의 자손이 세운 고구려에 산다는 자체가 고구려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고구려 시조 추모왕(동명성왕:고주몽)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죽지 않은 인간이자 신이었습니다.. 부여신은 추모왕(고주몽)의 어머니인 유화(柳花)부인입니다. 그녀는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도록 지혜를 준 지혜의 여신이었으며, 오곡 곡식을 준 농사의 신, 대지의 신이었으며, 물의 신 하백의 딸로 물의 신이기도 했습니다. 이 두 분은 매년 동맹 축제에서 주된 신으로 모셔졌습니다.. [주:하백은 여호와 하느님의 딸 복비입니다. 곧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은 여호와 하느님의 외증손자가 됩니다]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용그림.   용의 몸뚱아리가 적-황-청의 보색대비로 그려져있으며 비늘은  지금 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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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속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까마귀가 삼족오이다..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신앙은 《초사(楚辭)》 《산해경(山海經)》에서 볼 수 있는데, 세 발 달린 까마귀 설화는 전한(前漢) 시대부터 시작된 것 같다. 고유(高誘)가 쓴 《사기(史記)》《회남자(淮南子)》의 주석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태양이 하늘을 건너가기 때문에 조류와 관련시킨 얘기는 이집트나 한국의 고구려 벽화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한(漢)나라 때의 책인 《춘추원명포(春秋元命包)》는 태양이 양(陽)이고, 3이 양수(陽數)이므로 태양에 사는 까마귀의 발이 세개라고 풀이하고 있다.

 

   고구려 벽화에는 풍속화, 초상화, 사신도 등과 함께 성신도(星辰圖:천체의 그림)가 많다. 성신도에는 해와 달, 별자리 등이 그려져 있고 해 속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까마귀가 삼족오이다. 해 속의 까마귀는 달 속의 개구리(金蛙, 혹은 두꺼비 金蟾)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 까마귀는 검은 색으로 되어 있고 다리가 셋이다.

이 세 발 달린 까마귀는 해의 상징으로 양(陽)의 뜻이고 개구리로 상징되는 달은 음(陰)의 뜻이다. 즉, 음양론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삼족오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호, 2호 고분, 개마총(鎧馬塚),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에 그려져 있다..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등의 고분벽화에는 마치 그리스의 헤파이도스신처럼 농사의 신, 불의 신, 수레바퀴 신, 대장장이 신 등 기능을 가진 신들이 보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보통 인간이 갖지 못한 기능을 가진 자들을 신으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종교적 의례를 담당하는 무당이나, 제사장, 제사에서 희생물을 담당하는 관리 등도 있었고, 수시로 신들을 받드는 의식이 치러졌으며, 추모왕의 사당을 비롯한 신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이 믿었던 신앙의 경전이나 교리체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고구려 종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은 372년에 소수림왕이 종교로 인정해준 불교였습니다. 불교는 구체적 신의 모습을 갖춘(神像)을 가진 부처님과 전문 신앙인의 조직체인 교단과 교리체계인 경전을 제대로 갖춘 종교였습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왕과 왕실 가족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며 곳곳에 사찰을 건립하며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정릉사, 장천1호벽화고분, 연가7년명금동일광삼존상 등은 대표적인 불교 유적과 유물입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해 준 것도 고구려였고, 삼론종을 발전시킨 승랑, 일본 호오류사 금당벽화를 그린 담징, 장수왕 시절 첩자로 활약한 도림 등 유명한 스님도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고구려인의 전통적인 천신신앙과 융화되어 일반 백성들에게 까지 서서히 전파되었지만, 신라, 고려만큼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고구려에 불교가 수용되어 발전한 것은 우리나라 종교발전에 큰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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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월신도(日月神圖),사람의 몸에 주작의 날개, 용꼬리를 지닌 특이한 형상으로 오른쪽에 일신이 왼쪽에 월신이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복희(伏羲)는 일신은 남자의 모습으로 해를 두 손으로 받들어 머리 위에 이고 있다. 그리고 해 안에는 고구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져 있다. 여와(女媧)로 불리는 월신은 여자의 모습으로 머리에 달을 이고 있다. 그 달 안에는 두꺼비가 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훼손이 심해 달과 두꺼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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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총 널방 벽화, 무용수가 음악에 맞추어 홀로 춤추는 모습은 안악3호분 벽화에도 볼 수 있다..통구12호분 벽화에는 한 사람의 거문고 반주에 맞추어 두 사람의 무용수가 춤추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앞으로 발을 내딛거나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펼치면서 팔을 움직여 소매를 너풀거리게 하는 고구려 춤의 특징이 잘 나타내 있다.. 

 

 

 

 

   무용총 널방 벽화의  군 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춤동작과 옷 색깔이 함께 변화하며 조화를 이루는 듯이 느끼게 하려 한 것이다.. 이미 고구려시대에도 춤과 같은 특수한 분야는 전문적인 기획과 연출을 바탕으로 공연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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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을 담은 듯, 각종 동식물과 인물 형상이 가득 그려져있다..

 

수렵도, 일월신도, 주악도, 수박도, 무용도 등이 화려한 원색을 자랑하고 있다. 채색이 지나쳐 키취(Kitsch)같은 느낌도 들지만, 어두운 무덤 속에 있던 그림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난 것 같아 한편으로 흐뭇하기도 하다. 고구려 고분벽화, 그것은 죽은 자를 위한 예술을 통해 고구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문화이다..

 

 

 
한태주/고구려 벽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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