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구려 고분벽화

2018. 3. 11. 16:28美學 이야기

 

고구려 고분벽화

 

 

고구려 장군총의 전경.
고구려 옛 수도 집안에 있는 장군총은
초기 피라미드형과 아주 유사하다
장천 1호분 전실 서쪽벽을 가득 채웠던 생활풍속도 부분.

<left>중국 지안시 장천1호분 벽화 중 전실의 귀부인 나들이 모습.</left>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1고분 삼삭형 천장 받침돌의 모습. </left>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left>
<left></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 1호분 전실 왼쪽 벽의 생활 풍속도.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묘실 정면의 천장으로 올라가는 부분. </left>
탑 모양으로 차츰 좁혀 올라가는 다섯개의 계단에 온 세상을 담은 듯,
각종 동식물과 인물 형상이 가득 그려져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수렵도. </left>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left>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의 벽화 그림. </left>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천장 벽화중에 말 그림. </left>
오른쪽에 세계의 선으로 연결된 것은 별이다.
<left>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left>
고구려인들의 습속을 그린 그림의 한장면인데
화살촉이 석류처럼 생겼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①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left>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천장 받침돌 그림. </left>
학과 용을 타고 승천하는 신선과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묘실</left>
벽면의 부채를 든 귀부인의 인물도.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받침돌의 용그림. </left>
용의 몸뚱아리가 적-황-청의 보색대비로 그려져있으며
비늘은 지금도 선명하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②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묘실</left>
천장 받침돌에 그려져있는 달의 신.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left>
수레바퀴 만드는 신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left>
하늘을 나는 신선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left>
고구려 벽화 중 `해의 신.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 </left>
천장 밭침돌 벽화에 등장하는 농사의 신.
소머리에 벼이삭을 들고 질주하고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의 묘실 천장과 </left>
계단식 천장받침돌 벽화.
오회분 4-5호묘는 사신총과 함께 7세기 고분에 속한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의 묘실 입구로부터 </left>
묘실 전체를 담은 사진.
무덤의 구조와 벽화의 배치상태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①

<left>삼실총 제1실 남쪽벽의 행렬도. </left>
<left></left>삼실총 제1실 천장 고임면에 있는 주작(남쪽을 지키는 신) 그림. 
<left>도굴당한 뒤 고분 입구에 두껍게 시멘트를 바른</left>
중국 지린성 지안시의 삼실총의 최근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벽화의 </left>
신수 백호의 머리부분과 용의 몸통부분이 결합된 형상
<left></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에 삼실총에 나오는 새 그림.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②

<left></left>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의 고구려 여인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의 인물상. </left>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제3실 서쪽 입구 벽의 역사(力士)상. </left>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긴 칼을 찬 무장이
묘실의 무덤 주인을 보호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행렬도의 남자 인물상. </left>
11명으로 구성된 행렬도의 10번째 위치하는 것으로 봐서
평민으로 보인다
.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행렬도의 평민 복장 여인. </left>
오늘날의 애교머리를 닮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재미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통이 넓은 바지는
고구려 평민들의 전형적인 복식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총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총의 묘실에서 연도 쪽을 바라다 본 </left>
면의 그림. 삼각형 천장 받침대가 만나는 부분을 귀면 판석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벽화 모습. </left>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벽화. </left>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전형적 옷차림의 고구려여인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의 벽화. </left>
쪽구들에 앉은 부인들과 맨바닥에 의자를 놓고
걸터앉은 남편이 상위에 차린 음식을 즐기며 담소하고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묘실 왼족 벽면의 말과 마부. </left>
말의 등에는 안장이 놓여있고 마부의 손엔 채찍이 들려있다.
<left></left>서역인과 고구려인이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각저총 벽화.


[고구려 고분벽화] 북한 송죽리 고분

<left>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left>
1600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인의 모습
.
<left>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 
</left>
<left>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 </left>
부리부리한 눈의 고구려 호랑이.
훼손으로 인해 주위는 떨어져나갔다.

[고구려 고분벽화] 쌍영총

<left></left>
평남 남포시 쌍영총의 8각기둥과 주두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제1호분

<left></left>
황해도 안악 제1호분 벽화의 주두.

[고구려 고분벽화] 덕흥리 고분

<left></left>
평남 대동군 덕흥리 고분의 주두. 
<left>현재 북한에 있는 덕흥리 고분 전실 벽화. </left>
왼쪽에 묘지 주인공이 꽃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방에 앉아 있는 보습을 그렸다.
위에는 주인공의 신상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이름이 진이고,
요동태수와 유주 자사 등을 지냈으며 77세에 죽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제3호분

<left>현재 북한에 있는 안악 3호분의 마구간 그림. </left>
주인공의 생활 면모를 그린 동쪽 측실 벽화 가운데 하나다
마구간 구유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대륙을 달리던 고구려인들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left>수산리고분 현실 북쪽 벽에 그려진 귀신 얼굴모양 부채. </left>
묘지 주인공 부부의 시종들이 들고 있던 것으로,
부채 혹은 햇빛가리개의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귀신밑으로 S자 비슷한 손잡이까지 달려있는 것이 특 징
고구려 벽화에서 보는 유일한 형태이다 
<left>안악 3호분 전실 동쪽 벽면에 있는 수박놀이하는 역사(力士) 그림. </left>
상투를 머리 뒤로 묶고 아랫도리 일부만을 가린채
금방이라도 한번 맞붙을 기세다
. 역사들의 체구와 몸짓을 다소 희화적으로 과장되게 그렸다.
<left></left>
고구려 안악 3호묘 왕비복식

고구려 유물들 ①

<left></left>
금동여래입상 
<left>평양 동암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의복그림일부로 보이는 파편조각</left>
.
<left></left>
고구려 유물. 
<left>일본 나라 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고구려 승려화가 담징이</left>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법륭사 금당벽화 비천도 진본. 
<left>서기 756년 일왕 성무(聖武) 사후 작성된 법륭사 헌물장의 일부. </left>
왼쪽에서 네번째 줄 아랫부분에 "고구려 비단(高麗錦)"이란
구절이 보인다.

고구려 유물들 (2)

<left>1940년 평양에서 병기창공사를 하던 중 발견한 </left>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상"(왼쪽)과 6세기쯤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반가사유상"

<left>1998년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의 흉상.</left>
.
<left>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층이었던 말갈족 주거지로 </left>
추정되는 마리아노브카 토성에서 나온 삽 등 철제 유물들

<left>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동북평원의 </left>
왼쪽에 위치한 대싱안링의 고구려시대 흔적인 돌절구.

<left></left>
일제 어용학자들이 식민사관에 근거로 이용한 광개토대왕비,
일본인들이 비문을 조작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복제품 진품운 평양박물관

경복궁내 신축한 국립중앙박물관이
1996년 12월 13일 개관을 앞두고 6일 미리 공개됐다
. 사진은 고구려실에 전시한 금동투조장식 복제품.
진품은 평양 진파리 1호분에서 발굴돼
현재 평양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높이 14cm, 너비 23cm. 고구려하면 대륙적이고
강인한 것만을 연상하지만,
이 유물은 고구려가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을 지닌 국가였는가를
보여주는 명품이다.

<left>보장왕21년(서기662년)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은 </left>
평양 부근 사수에서 방효태가 이끄는 당군을 격파했다.

<left>고구려 소수림왕의 삽화. </left>

<left>갑주를 입은 고구려 보병의 복장을 고증을 거쳐 재현한 모습</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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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여법당(如如法堂)
글쓴이 : 이계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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