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풍향차보

2018. 3. 30. 15:41차 이야기

이 내용은 정민 교수가 쓴 글을 어느 네티즌이 모 카페에 올려놓았던 것으로 내용중 일부에 오류가 있는 것을 고치고,

해제(解題)도 보기에 좋도록 조금 손질을 하였지만 원문의 내용이나 체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는 1755년 또는 1756년에 지어진 우리나라의 다서(茶書)로 부안(扶安) 현감(縣監)으로 있던 이운해(李運海, 1710-?)가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 일원의 차를 따서 약효(藥效)에 따라 7종류의 향약(香藥)을 가미(加味)해 만든 약용차(藥用茶)의 제법(製法)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차에 관한 최초의 저술로는 흔히 1837년에 지은 초의(草衣, 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을 꼽는다. 2006년 정민 교수가 발굴(發掘)해 공개(公開)한 이덕리(李德履, 1728~?)의 ≪동다기(東茶記)≫는 그보다 50년가량 앞선 1785년을 전후하여 지어졌다. ≪부풍향차보≫는 이덕리의 ≪동다기≫보다 다시 30년이나 앞서는 다서로 우리 차문화사의 편년(編年)을 다시 한 번 앞당기는 중요한 자료(資料)가 아닐 수 없다.

* 이 부분은 조금 잘못된 것 같지만 그대로 정리했으나 국내 최고(最古)의 다서는 한재 이목(寒齋李穆, 1471~1498) 선생의 <다부(茶賦)>입니다.

 

저자(著者) 이운해(李運海)에 대하여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는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일기(日記)인 ≪이재난고(頤齋亂藁)≫에 그림과 함께 인용(引用)되어 있다. 분량(分量)은 두 쪽 밖에 되지 않아 더 자세한 내용을 담은 별도의 책자가 있었고, 여기 실린 것은 그 핵심(核心) 내용만 간추려 소개(紹介)한 것으로 보인다. ≪부풍향차보≫는 1757년 6월 26일자 일기 끝에 실려 있으나 원본(原本)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이 자료는 18세기 당시 조선(朝鮮)의 음다풍속(飮茶風俗)과 실상(實狀)을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재난고≫에 수록(收錄)된 ≪부풍향차보≫는 서문(序文)과 <다본(茶本)>, <다명(茶名)>, <제법(製法)>, <다구(茶具)>의 네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에는 이 일기를 쓴 지 19년 뒤에 황윤석이 적은 다음과 같은 저자 이운해(李運海)의 인적(人的) 사항(事項)에 관해 기술한 추기(追記)가 있다.

 

右李弼善運海知扶安縣 與其季前正言重海及從叔 曾游寒泉門下者 商確譜製者也

우이필선운해지부안현 여기계전정언중해급종숙 증유한천문하자 상확보제자야

 

余亦爲其有用 錄來今二十年 尙在巾衍 而弼善兄弟 俱作古人 哀哉

여역위기유용 녹래금이십년 상재건연 이필선형제 구작고인 애재

 

姑志下方 以示兒輩 丙申五月十四日 頤翁. -其從叔之子一海進士 與趙裕叔同硯云

고지하방 이시아배 병신오월십사일 이옹. -기종숙지자일해진사 여조유숙동연운

 

  필선(弼善) 이운해(李運海)는 부안 현감(縣監)으로 있었는데 그 막내 아우인 전(前) 정언(正言) 이중해(李重海) 및 종숙(從叔)과 함께 한천(寒泉)의 문하(門下)에서 노닐었던 사람이니 ≪상확보(商確譜)≫를 만든 사람이다. 내가 또한 쓸모가 있다고 여겨 기록해둔 것이 벌써 20년인데 여태도 보자기에 쌓여 있다. 하지만 필선 형제는 모두 고인(故人)이 되고 말았으니 슬프다. 잠시 아래 적어두어 자식(子息)들에게 보인다. 병신(丙申, 1776)년 5월 14일 이옹(頤翁). -그 종숙(從叔)의 아들 일해(一海) 진사(進士)는 조유숙(趙裕叔)과 동문(同門)이라고 한다.  

  저자(著者)는 필선(弼善)이란 자(字)를 가진 이운해(李運海)로 그는 당시 부안 현감이었으며, 한천(寒泉)이란 호(號)를 가진 학자(學者)의 문하(門下)에서 수학(修學)했다고 하나 한천의 호를 쓴 사람은 여럿이어서 특정하기 어렵다. 이운해는 ≪부풍향차보≫ 외에도 ≪상확보(商確譜)≫란 책도 지었다. 황윤석은 그 쓸모를 인정(認定)하여 이를 함께 베껴 두었지만 ≪상확보≫는 일기에 초록(抄錄)해 두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다. 일기는 1757년에 썼고, 이 추기는 1776년에 썼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 보면 이운해는 1710년생으로 본관(本貫)은 전주(全州), 자(字)는 자용(子用)이며, 아버지는 이현상(李鉉相)이다. 영조(英祖) 16년(1740년)에 증광시(增廣試 : 조선시대(朝鮮時代) 때 나라에 경사(慶事)가 있을 경우(境遇)에 기념(記念)으로 보이던 과거(科擧)로 3대 태종(太宗) 1년(1401)에 처음으로 실시(實施)되었다 윈래는 임금의 등극(登極)을 축하(祝賀)하는 의미(意味)로 즉위년(卽位年) 또는 그 이듬해에 실시(實施)하였으나 14대 선조(宣祖) 때부터는 확대(擴大)되어 국가(國家)에 경사(慶事)가 있을 때마다 시행(施行)되었다.)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였으며, 뒤에 이름을 심해(心海)로 개명(改名)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왕조실록(王朝實錄)≫을 통해 그의 벼슬 이력(履歷)을 추적(追跡)해 보면 1741년 가주서(假注書)가 되고, 1746년 전적(典籍), 1747년 경상도사(慶尙都事), 1752년 장령(掌令)과 지평(持平)을 거쳐 1753년 정언(正言)에 올랐고, 1754년 10월 3일 부안 현감으로 부임(赴任)하였다가 2년 뒤인 1756년 10월 9일 다시 장령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1752년 1월 3일 충군죄인(充軍罪人) 이시번(李時蕃)이 이운해의 종족(宗族)이라 하여 대망(臺望)에서 삭제(削除)할 것을 청한 박치문(朴致文)의 상서(上書)에 대해 장령(掌令) 유현장(柳顯章)이 그 부당(不當)함을 논하면서 “이운해는 인망(人望), 문벌(門閥)과 문행(文行)이 동류(同類)들 가운데서 칭송(稱頌)받고 있는 사람이니 대선(臺選)에 통망(通望)된 것 또한 늦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충군(充軍)시킨 죄인(罪人) 이시번(李時蕃)의 시복친(緦服親)이 되는 소족(疎族)이라는 것으로 경솔(輕率)하게 낙점(落點)에 하자(瑕疵)를 제기(提起)하였으니 이렇게 하기를 마지않는다면 자못 장차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고, 이천보(李天輔)도 적극 두둔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보아 당시 상당(相當)한 명망(名望)이 있었던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哀惜)하게도 그의 문집(文集)은 물론 그가 지은 ≪부풍향차보≫와 ≪상확보≫의 원본은 모두 전하지 않고 있다.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란?

  ≪부풍향차보≫는 서문과 <다본(茶本)>, <다명(茶名)>, <제법(製法)>, <다구(茶具)>의 네 항목(項目)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문(序文)은 다음과 같다.

 

扶風之去茂長 三舍地 聞茂之禪雲寺有名茶 官民不識採啜 賤之凡卉 爲副木之取

부풍지거무장 삼사지 문무지선운사유명차 관민불식채철 천지범훼 위부목지취

 

甚可惜也 送官隸採之 適新邨從叔來 與之參 方製新 各有主治 作七種常茶

심가석야 송관예채지 적신촌종숙래 여지참 방제신 각유주치 작칠종상차

 

又仍地名 扶風譜云 自十月至月臘月連採 而早採者佳

우잉지명 부풍보운 자십월지월납월련채 이조채자가

 

  부풍(扶風 : 전북(全北) 부안(扶安)의 옛이름)은 무장(茂長)과 3사지(舍地) 떨어져있다. 들으니 무장의 선운사(禪雲寺)에는 이름난 차가 있다는데 관민(官民)이 채취(採取)하여 마실 줄을 몰라 보통 풀처럼 천하게 여겨 부목(副木)으로나 쓰니 몹시 애석(哀惜)하였다. 관아(官衙)의 하인(下人)을 보내서 이를 채취해오게 하였다. 때마침 새말(신둔(新邨)은 새로운 마을이란 뜻이다.) 종숙(從叔)께서도 오셔서 함께 참여하였다. 바야흐로 새 차를 만드는데 제각기 주된 효능(效能)이 있어 7종류의 상차(常茶)를 만들었다. 또 지명(地名)을 인하여 부풍보(扶風譜)라 하였다. 10월부터 11월과 12월에 잇달아 채취하는데 일찍 채취한 것이 좋다.      

  이운해가 부안에 부임(赴任)한 것은 1754년 10월 3일로 오자마자 바로 차를 땄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서문을 쓴 것은 서서히 사정을 알게 된 이듬해인 1755년 또는 1756년의 일일 것이다. 또한 황윤석이 자신의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이를 초록(抄錄)한 것이 1757년 6월이다. 황윤석은 고창(高敞)에 살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고장과 관련된 내용을 적은 이 기록에 흥미를 가졌던 것이다.  

  이운해는 지금의 전북(全北) 부안(扶安)인 부풍(扶風)에 부임해 와서 근처인 지금의 고창(高敞)인 무장(茂長) 선운사(禪雲寺)에 좋은 차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관민(官民)할 것 없이 차에 대해 무지(無知)하여 보통 잡목(雜木)처럼 보아 부목감으로나 쓰기 일쑤였기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운해가 관노(官奴)를 고창 선운사로 보내 그곳의 작설차(雀舌茶)를 채취해오게 하였다. 때마침 부안에 들른 이운해의 종숙(從叔)도 새 차를 만드는 일에 합세하였으며, 모두 7종류의 상차(常茶)를 만들었다. 그런데 각 차별로 주치(主治 : 특정 증상(症狀)에 약효(藥效)가 있음)가 있는 향약차(香藥茶)라고 했으며, 차를 만든 곳이 부풍이었으므로 책 이름을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라 한다고 적었다. 서문(序文)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事實)을 짐작할 수 있다.

① 이운해는 부안 현감으로 오기 전에 이미 차에 대해 상당한 식견(識見)과 조예(造詣)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② 선운사(禪雲寺)에서는 좋은 차가 많이 났지만 관민(官民) 누구나 할 것 없이 차에 대해 무지해서 차나무를 잡목으로 취급하여 심지어 땔감으로 썼다.

③ 차를 만들었는데 그냥 차가 아니라 주치(主治)의 효능이 있는 약초(藥草)를 배합(配合)하여 일곱 종류의 상차(常茶)를 만들었다.

④ 부안(扶安)의 옛 지명이 부풍(扶風)이므로 책이름을 ≪부풍향차보≫라고 지었다.

⑤ 찻잎의 채취 시기를 이른 봄이 아닌 겨울로 잡고 있다. 

  

<다본(茶本)>

 

苦茶一名雀舌 微寒無毒 樹少似梔 冬生葉 早採爲茶 晩爲茗 曰茶曰檟 曰蔎

고차일명작설 미한무독 수소사치 동생엽 조채위차 만위명 왈차왈가 왈설

 

曰茗曰荈 以採早晩名 臘茶謂麥顆 採嫩芽 搗作餠 並得火良 葉老曰荈 宜熱

왈명왈천 이채조만명 납차위맥과 채눈아 도작병 병득화량 엽로왈천 의열

 

冷則聚痰 久服去人脂 令人瘦

냉즉취담 구복거인지 령인수

  고차(苦茶 : 쓴 차)는 일명 작설(雀舌)이라고 한다. 조금 찬 성질이 있으나 독성(毒性)은 없다. 나무가 작아 치자(梔子)와 비슷하다. 겨울에 잎이 나는데 일찍 따는 것을 차(茶)라고 하며, 늦게 따는 것은 명(茗)이 된다. 차(茶)와 가(檟), 설(蔎)과 명(茗)과 천(荈) 등은 채취 시기가 이르고 늦음으로 이름을 붙인다. 납차(臘茶 : 섣달차)는 맥과차(麥顆茶)라고 한다. 여린 싹을 따서 짓찧어 떡을 만들고 불에 굽는다. 잎이 쇤 것은 천(荈)이라고 한다. 뜨겁게 마시는 것이 좋다. 차가우면 가래가 끓는다. 오래 먹으면 사람의 기름기를 없애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마르게 한다.

   <다본(茶本)>은 차에 대해 기술(記述)한 것으로 고차(苦茶)의 이름이 작설(雀舌)인 것과 약간 냉하나 독이 없는 차의 성질을 말했다. 나무의 크기는 치자(梔子)나무 만하다고 적었다. 겨울에도 잎이 나는데 일찍 채취한 것을 차(茶)라고 하며, 늦게 딴 차는 명(茗)이라 한다. 그밖에 육우(陸羽)의 ≪다경(茶經)≫ 첫머리에서 적고 있는 차(茶), 가(檟), 설(蔎), 명(茗), 천(荈) 등 차의 이칭(異稱)을 소개한 후 모두 채취(採取)하는 시기에 따른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납차(臘茶 : 섣달에 딴 찻잎으로 만든 차)를 따로 맥과차(麥顆茶)라 한다는 설명이 이채로운데 맥과차는 갓 나온 차싹이 보리알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일창일기(一槍一旗) 이전 상태의 초출(初出)한 잎이다. 또 차를 만들 때는 여린 싹을 채취하여 찧어서 떡을 만들고, 불에 말린다고 했다. 따라서 당시 마시던 작설차(雀舌茶) 또한 찻잎을 채취한 후 증배(蒸焙)하여 절구에 찧어 덩이를 만드는 떡차 방식으로 만들었음이 확인된다. 또 쇤 잎으로 만든 차는 천차(荈茶)라고 하는데 뜨겁게 마셔야 하고, 차게 마시면 가래가 끓어오르는 부작용(副作用)이 있다고 했다. 또 차를 오래 마시면 몸의 기름기를 제거(除去)하므로 사람이 수척(瘦瘠)해진다는 지적도 남겼다. 이 내용은 당(唐)나라 때 기모경(棊母㷡)이 <벌다음서(伐茶飮序)>에서 차의 폐해(弊害)를 지적(指摘)하면서 한 말로 이운해의 차에 대한 이해(理解)가 상당한 수준(水準)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명(茶名)>

 

風 甘菊․蒼耳子 寒 桂皮․茴香 暑 白檀香․烏梅 熱 黃連․龍腦 感 香薷․藿香

풍 감국․창이자 한 계피․회향 서 백단향․오매 열 황련․용뇌 감 향유․곽향

 

嗽 桑白皮․橘皮 滯 紫檀香․山査肉 取点字爲七香茶 各有主治

수 상백피․귤피 체 자단향․산사육 취점자위칠향차 각유주치

  풍을 맞았을 때[風]는 √감국(甘菊)이나 창이자(蒼耳子), 추울 때[寒]는 √계피(桂皮)나 회향(․茴香), 더울 때[暑]는 백단향(白檀香)이나 √오매(烏梅), 열이 날 때[熱]는 √황련(黃連)이나 용뇌(․龍腦), 감기(感氣)가 들었을 때[感]는 √향유(香薷)나 곽향(藿香), 기침을 할 때[嗽]는 상백피(桑白皮)나 √귤피(․橘皮), 체했을 때[滯]는 : 자단향(紫檀香)이나 √산사육(․山査肉) 표점을 찍은 글자를 취해 칠향차(七香茶)로 삼으니 각각(各各) 주치(主治)가 있다.

  앞의 서문(序文)과 <다본(茶本)>에서는 작설차(雀舌茶) 이야기가 나오다가 <다명(茶名)>에 와서는 갑자기 약초(藥草)나 향초(香草)의 이름만 나온다. 내용을 보면 풍(風), 한(寒), 서(暑), 열(熱), 감(感), 수(嗽), 체(滯) 등의 7자에 각각 두 가지씩의 약초명을 적었는데 앞의 낱글자는 뒤에 나오는 차를 마셔야 할 증세(症勢)다. 서문에서 말한 각각 주치(主治)가 있다는 것이 이 뜻이며, 끝에서 표점(標點)을 찍은 글자를 취해 칠향차(七香茶)로 삼는다고 했다. 원본을 보면 국(菊), 계(桂), 매(梅), 황련(黃連), 유(薷), 귤(橘), 사(査)자(字) 위에 표점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풍증(風症)이 있을 때는 감국차 또는 창이자차를 마시고, 추울 때는 계피차나 회향차를 마신다. 더울 때는 오매차와 백단향차, 열(熱)이 날 때는 황련차와 용뇌차가 좋다. 감기가 들었을 때는 향유(香薷 : 목이버섯)차와 곽향차가 제격이다. 기침이 날 때는 귤피차나 상백피차가 좋고, 체했을 때는 산사육(山査肉 : 산사나무의 열매)으로 만든 차나 자단향차가 좋다고 하였다. 이로써 서문(序文)에서 말한 칠향상차(七香常茶)는 작설차(雀舌茶)에 일곱 가지 약초를 가미(加味)해서 각종 증상(症狀)에 맞춰 마시도록 한 상비차(常備茶)란 뜻이다.

 

<제법(製法)>

 

茶六兩 右料每却一錢 水二盞 煎半 拌茶焙乾 入布帒 置燥處 淨水二鍾 罐內先烹

차육량 우료매각일전 수이잔 전반 반차배건 입포대 치조처 정수이종 관내선팽

 

數沸注缶 入茶一錢 盖定濃亟熱服

수비주부 입차일전 개정농극열복

  차 6냥에 오른쪽의 재료(材料) 각 1전(錢)을 넣고 물 2잔(盞)을 따라 반쯤 달인다. 차와 섞어 불에 쬐어 말린 후 포대(布袋)에 넣고 건조한 곳에 둔다. 깨끗한 물 2종(鍾)을 다관(茶罐) 안에서 먼저 끓인다. 물이 몇 차례 끓은 뒤 찻그릇[缶]에 따른다. 차 1전(錢)을 넣고 뚜껑을 잘 덮어 진하게 우려내어 아주 뜨겁게 하여 마신다.

   <제법(製法)>에서는 칠향상차(七香常茶)를 어떻게 만드는지 구체적인 설명(說明)이 나온다. 설명은 소략(疏略)하지만 먼저 6냥의 덩이차에 위에서 제시한 약초 각 1전(錢) 씩을 함께 넣고 물 2잔을 붓고는 물이 반쯤 줄어들 때까지 졸이면 차가 풀어지면서 약초(藥草)의 향이 배인다. 이때 차와 향료(香料)를 고루 섞어서 불에 쬐어 말리고 차가 바싹 마르면 포대에 넣고 건조한 곳에 놓아둔다고 향차를 만드는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설명은 음다법(飮茶法)에 관한 것으로 깨끗한 물 2종(鍾)을 다관(茶罐)에 부어 먼저 끓여서 물이 몇 차례 끓고 나면 끓은 물을 다부(茶缶)로 따른 후 그 물에 차 1전(錢)을 넣고 뚜껑을 잘 덮어서 우리며, 우릴 때는 진하게 우려서 아주 뜨거울 때 마신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구(茶具)>

 

爐可安罐 罐入二缶 缶入二鍾 鍾入二盞 盞入一合 盤容置缶鍾盞

노가안관 관입이부 부입이종 종입이잔 잔입일합 반용치부종잔

  화로(火爐)는 다관(茶罐)을 앉힐 수 있어야 한다. 다관(茶罐)에는 2부(缶)가 들어가고, 다부(茶缶)에는 2종(鍾)이 들어간다. 다종(茶鍾)에는 2잔(盞)이 들어가며, 다잔(茶盞)에는 1홉이 들어간다. 다반(茶盤)은 다부와 다종, 다잔을 놓을 수 있다.

  저자(著者)는 <다구(茶具)>항목을 두어 물의 분량(分量)이나 차의 양은 정확히 얼마나 될지 각종 다구의 이름과 생김새와 용량(容量)을 따로 표시해 두었다. 차를 끓이는 데 소용되는 다구는 다로(茶爐), 다관(茶罐), 다부(茶缶), 다종(茶鍾), 다잔(茶盞), 다반(茶盤) 등 모두 6종류로 다로는 다관을 앉힐 수 있는 크기라야 하며, 중간에 숯불을 넣는 구멍이 있고, 위쪽에 다관이 얹히는 구멍이 있다. 다관(茶罐)은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고, 양 옆에 손잡이가 달린 그릇으로 다관 하나의 용량은 2부(缶) 들이다. 다부(茶缶)는 다관에서 끓인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내는 도구로 다관과 생김새가 비슷하나 다만 크기가 그 반 만하여 체형이 조금 날씬하다. 다종(茶鍾)은 다부의 절반 들이로 1부에는 2종이 들어가며, 손잡이가 한쪽만 달린 큰 컵이다. 다잔(茶盞)은 한 홉들이 용량의 개인 잔으로 2잔이 1종이다. 그러므로 1다부로 4잔의 차를 만들 수 있으며, 한 번 다관에 물을 끓일 때 2부의 물을 붓기 때문에 두 차례 우려내면 모두 8잔의 차가 된다. 차를 두 차례 우리고 나면 ≪다신전(茶神傳)≫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다부를 찬물로 행궈 내어 씻어낸 후 다시 끓인다. 그리고 다반(茶盤)은 다로와 다관을 제외한 나머지 다부, 다종, 다잔 등을 함께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의 찻상이다.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와 향약차(香藥茶)

  황윤석(黃胤錫)은 그의 ≪이재난고(頤齋亂藁)≫ 속에 자신이 읽은 다른 사람의 저술(著述) 중 중요한 대목을 자주 베껴 놓았는데 대부분 필요한 부분만 발췌(拔萃)하는 방식이었다. ≪부풍향차보≫도 전체의 내용이 여기에 실린 이 것 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풍부(豊富)한 다른 설명이 있는 보다 완성된 형태의 저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내용만으로도 저자(著者)인 이운해(李運海)의 차에 대한 해박(該博)한 이해 수준이 십분 파악(把握)되며, 차의 특징과 성질, 증세에 따른 향차 처방, 향차 제조법, 향차 음다법을 차례대로 조목조목(條目條目) 설명한 흥미로운 저작(著作)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찻잎만이 아닌 향을 가미(加味)한 차를 차라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다산 정약용(茶山丁若鏞)이 ≪아언각비(雅言覺非)≫ <다(茶)>조에서 다음과 같이 자세히 말한 바 있다. 

 

茶者冬靑之木 陸羽茶經 一曰茶 二曰檟 三曰蔎 四曰茗 五曰荈 本是草木之名 非飮淸之號

다자동청지목 륙우다경 일왈다 이왈가 삼왈설 사왈명 오왈천 본시초목지명 비음청지호

 

周禮有六飮六淸 東人認茶字 如湯丸膏飮之類 凡藥物之單煮者 總謂之茶 薑茶橘皮茶木

주례유륙음륙청 동인인다자 여탕환고음지류 범약물지단자자 총위지다 강다귤피다목

 

瓜茶桑枝茶松節茶五果茶 習爲恒言 非矣 中國似無此法 李洞詩云 ‘樹谷期招隱 吟詩煮

과다상지다송절다오과다 습위항언 비의 중국사무차법 이동시운 ‘수곡기초은 음시자

 

柏茶’ 宋詩云 ‘一盞菖蒲茶 數箇沙糖粽’ 陸游詩云 ‘寒泉自換菖蒲水 活火閒煮橄欖茶’

백다’ 송시운 ‘일잔창포다 수개사당종’ 륙유시운 ‘한천자환창포수 활화한자감람다’

 

斯皆於茶錠之中 雜以柏葉菖蒲橄欖之等 故名茶如此 非單煮別物 而冒名爲茶也

사개어다정지중 잡이백엽창포감람지등 고명다여차 비단자별물 이모명위다야

 

東坡有寄大冶長老 乞桃花茶裁詩 此亦茶樹之別名 非以桃花冒名爲茶也

동파유기대야장로 걸도화다재시 차역다수지별명 비이도화모명위다야

  차(茶)는 겨울에도 푸른 나무로 육우(陸羽)는 ≪다경(茶經)≫에서 첫째는 차(茶), 둘째는 가(檟), 셋째는 설(蔎), 넷째는 명(茗), 다섯째는 천(荈)이라 한다고 하였다. 본시 초목(草木)의 이름이지 마시는 청량음료(淸凉飮料)의 이름이 아니다. ≪주례(周禮)≫에는 육음(六飮)과 육청(六淸)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茶)라는 글자를 환(丸)이나 고(膏)를 끓여 마시는 종류(種類)처럼 생각하여 무릇 약물(藥物)을 한 가지만 넣고 끓이는 것은 모두 차라고 말한다. 생강차, 귤피차, 모과차, 상지차(桑枝茶), 송절차(松節茶), 오과차(五果茶)라고 하여 습관적으로 항상 하는 말로 삼는데 그렇지 않다. 중국에는 이런 법이 없는 것 같다. 이동(李洞)의 시에 이르기를 “나무 계곡 은자 부름 기약하면서 시를 읊으며 백차(柏茶)를 다린다.”라 했고, 송시에서는 “한잔의 창포차요 몇 개의 사탕떡이다.”라고 했다. 육유의 시에서도 “찬 샘물을 스스로 창포수로 바꾸고 활화(活火 : 살아있는 불)로 한가로이 감람차를 다린다.”라고 했다. 이는 모두 다정(茶錠 : 차냄비) 속에 잣잎이나 창포, 감람 등을 섞은 까닭에 차를 이와 같이 이름한 것이지 단순히 다른 물건을 다리는 것이 아닌데도 함부로 이름하여 차라고 한 것이다. -소동파가 대야장로에게 도화차재(桃花茶裁)를 청하면서 부친 시가 있는데 이 또한 차나무의 별명(別名)일 뿐이지 복사꽃을 함부로 이름하여 차라고 한 것이 아니다.     

  다산(茶山)의 주장은 차란 오직 차나무 잎을 법제(法製)하여 뜨거운 물에 우린 것만 차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에 그냥 어떤 것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다 차라고 말한다. 생강을 넣고 다리면 생강차, 귤껍질을 넣고 다리면 귤피차, 모과를 넣은 것은 모과차라고 한다. 상지, 송절, 오과를 넣으면 상지차, 송절차, 오과차가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백차, 창포차, 감람차라고 하는 것은 잣잎이나 창포, 감람만 따로 넣고 끓인 것이 아니라 차에 이런 것을 함께 넣어 가미한 것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차 아닌 차 즉 전통차(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용차라고 하지만 어디에도 대용차라는 것은 언급이 없으므로 전통차라고 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라고 하는 엄밀한 의미에서 차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다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부풍향차보(扶風香茶譜)≫의 일곱 가지 상차(常茶)는 찻덩이에 약물을 섞어 끓인 향차로 그저 이름만 차인 일반 전통차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제 ≪부풍향차보≫가 갖는 차문화사적 의의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부풍향차보(扶風香茶譜)≫는 1755년 또는 1756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다서로 초의(草衣)의 ≪동다송(東茶頌)≫보다는 80년, 이덕리의 ≪동다기(東茶記)≫보다는 30년이 앞선다. 

* 한재 이목 선생의 다부는 이보다도 300년 이상 앞선다.  

② 우리나라 최초로 작설차(雀舌茶)에 처방(處方)에 따라 주치(主治)를 두어 7가지 약재(藥材)를 조제(調劑)해서 만든 기능성 향차(香茶)다.

지금까지 차 산지(産地)로 부각(浮刻)된 적이 없는 전북 고창(高敞)과 부안(扶安)지역에서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차로 우리나라 차산지와 향유(享有) 공간을 확장시켰다. 

④ 차 그릇의 크기와 명칭(名稱)을 명확히 규정하여 도량(度量)의 기준을 제시(提示)함으로써 당시 음다풍(飮茶風)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 사마방목(司馬榜目)

조선시대(朝鮮時代)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의 합격자(合格者) 명부(名簿)로 사마시(司馬試)는 생원진사시의 별칭(別稱)이며, 대개 예문관(藝文館)에서 간행하여 관계자, 합격자들에게 반포(頒布)했다. 현존하는 판본은 활자본, 목판본, 목활자본, 필사본 등 다양하다. 책머리에는 ‘은문(恩門)’이라 하여 시관(試官)의 이름을 적었다. 방목(榜目)을 간행할 때 사마시에 합격한지 1주갑(周甲)이 된 사람들의 명단(名單)과 관직(官職)을 함께 수록하기도 한다. 명단의 기재방식은 문과방목과 같아 합격자를 합격순서에 따라 열거(列擧)하고 합격자마다 1행에는 이름, 자(字), 생년간지(生年干支), 본관(本貫), 거주지(居住地) 등을 적고, 2행에는 아버지의 관위(官位)와 이름, 3행에는 부모의 생존여부와 형제의 인적사항을 적었으며, 책 끝에는 시험장소, 시험제목, 시험일시 등 시험과 관련된 기록을 부기했다. 사마방목은 각종 방목 중 가장 풍부하게 남아 있어 현재 알려진 것만도 170여 종 이상이다. 조선시대 과거급제자의 성분분석, 인물기록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16세기부터 1894년 과거제도 폐지 때까지의 방목이 연속하여 전하므로 인쇄방식, 지질(紙質) 등의 변화를 살필 수 있어 서지학 연구의 기초자료로도 중요하다.

                                                                         <부풍향차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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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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