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漢族 의 후예-하화족 外

2018. 10. 19. 04:11우리 이웃의 역사



[스크랩] 존재하지 않는 漢族의  후예 - 하화족| 지구조선사랑

지명선 | 조회 126 |추천 0 | 2010.02.20. 08:28


 

존재하지 않는 漢族의 후예 중국인의 역사


1. 개념의 정립

   오늘날의 차이나인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을 한족이라고 내세우고, 또한 중국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이렇게 부르는 데는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역사를 왜곡하자는 저의와, 또한 차이나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그 호칭에 속아 넘어가 주기를 바라는 저의가 숨어 있다. 한족이라는 명칭과 중국이라는 명칭은 차이나인에게는 남을 속이는 명칭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이는 명칭이기도 하다. 지금 차이나 사람들은 차이나 역사 5,000년 동안 존립과 존재가 불확실한 자신을 내세워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강대한 민족, 유구하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 사는 한 화교가 차이나문화원 게시판에 차이나가 거짓말쟁이임을 일깨워주는 글을 올려 세상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자존심이 강한 차이나 사람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선진사先秦史>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 그가 한 말은 늘 한족과 중화라는 명칭에 회의를 품고 있던 내게 본격적으로 그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中華民族都是虛構的族名。

중화민족은 모두 허구의 족명이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그는 중화민족은 허구의 족명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중화민국으로 지칭하는 대만정부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글이다. 그래서 오해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중화민족을 중국민족中國民族으로 바로잡기로 한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포괄적인 주제는 중국민족이다. 중국민족이라면 차이나 역사 5,000년 동안 차이나 땅에서 생성했다가 소멸하고, 혹은 다른 종족에게 동화하여 사라진 모든 종족을 다 지칭한다. 그러나 본고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선진사> 중에서 우리 조상에 해당하는 이족風夷族, 구려족九黎族, 동이족東夷族과 관련이 되는 하화족이 조상으로 내세우는 복희족伏羲族, 신농족神農族, 유망황제족楡罔黃帝族과 치우족蚩尤族, 하화족夏華族(차이나인은 華夏族이라고 한다. 본고에서는 하화족으로 쓰기로 한다), 상족商族, 은족殷族, 주족周族 등이다.  

   본고에서는 우리족의 종족과 하화쪽의 종족이 어떠한 동질성이 있고 또한 이질성이 있는가를 따져보기로 할 것이다.


2. 존재하지 않는 한족과 존재가 미미한 중국

古時的「中國」是指其古都河南的洛陽地區, 「中國人」是指洛陽地區的住民,也就是漢人

   옛날의 ‘중국’은 고도 하남의 낙양지구이다. ‘중국인’은 낙양지구 주민이다. 이들이 한인이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옛날에 중국은 하남의 낙양지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인이라고 할 때는 낙양지구에 사는 주민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고 하겠다. 이들이 한인 즉 한족이다. 그러므로 현재 차이나인이 말하는 한인이나 한족의 근원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후대에 한족이나 한인임을 표방하고 나온 종족이 낙양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공허한 주장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중국민족으로 부르고자 하는 한족은 역사상 소멸한 종족이다. 그러므로 현재에 중국 땅에 한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한족으로 부르고 싶어 하는 혼합종족이 있을 뿐이다.

漢族向為少數民族,早已被眾蕃包圍消滅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다른 새력)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한족은 소수민족이고, 이 한족은 주변의 여러 번에 포위되어 소멸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에 한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용문에서는 여러 번족蕃族에 포위되어 소멸하였다고 했으니, 역사상 번蕃을 종족명칭으로 쓸 수 있는 종족은 번조선番朝鮮이나 변한弁韓 뿐이다. 산동반도 일대에 존재했던 번조선을 구성하고 있던 종족을 번족番族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이 번성하여 번蕃으로 불렸다고 볼 수 있다. 산동반도 일대에서 존재했던 종족구려족句麗族이라고 하였고, 구려족의 나라를 구려국句麗國이라고 하였다. 구려국이 번조선番朝鮮이었다.

   <조선기-이고선>에서, 단군왕검치세 때인 무오 51년(BC2283) 홍수가 국토를 휩쓸었다. 홍수가 대황大荒의 동쪽과 남해南海의 끝과 대산岱山 서쪽과 ?유의 동쪽에 미처 동서로 5천여 리요 남북으로 6천여 리를 휩쓸었다. 홍수가 차이나간 후에 나라의 땅을 나누어 제후를 훈신勳臣에 봉했다. 남서의 땅을 치우蚩尤에게, 동북쪽의 땅을 신지臣智에게, 동남쪽의 땅을 고시高矢에게, 태백산 동남쪽의 땅을 주인朱因에게, 흑룡강근처의 땅을 여기수余己守에게, 발해의 땅을 비천생緋天生에게, 예의 남쪽을 부여夫餘에게, 진번眞蕃을 부우夫宇에게, 구려句麗를 부소夫蘇에게 봉했다.”고 하였다.

   고조선의 지명에서 번蕃과 구려句麗가 나오므로, 이 시대에 설사 한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막강한 제후국들에게 포위되어 멸망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한족의 조상을 알 수 없다


   차이나의 송대宋代정초鄭樵가 지은 <통지通志>삼황세보三皇世譜는 송대宋代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여, 차이나의 시조를 유소有巢로, 유소 다음을 수인燧人으로, 수인 다음은 복희伏羲로 기록하였다. 복희 이후에 대정大庭 백황柏皇 중앙中央 율육栗陸 여연驪連 혁서赫胥 존노尊盧 혼돈混沌 주양朱襄 갈천葛天 음강陰康 무회無懷 등 15세 1,260년의 역사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들 조상 가운데에서 한족이 어느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조상의 후대에서 그 근원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의 기록은 서진西晋 때의 안정조나安定朝那 사람 황보밀皇甫謐(215-282)이 <백납본이십사사百衲本二十四史>에 등재한 것이다. 안정조나는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평량현平凉縣이다. 화정현華亭縣 북쪽에 있다.

   안정조나安定朝那는 조선나라를 평정하여 안정을 얻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곳이 옛 조선의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살던 곳에서 조선의 역사 고본을 발견하여 이 고본에 기록된 역사를 첨삭을 가하여 <백납본이십사사>에 등재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古時華夏人種稱呼洛陽盆地四周的外國人為,東夷、西戎、北狄、南蠻。這些外國人,土地大,人口 眾多,後來輪流統治「中國」四千多年,人口居於少數的漢族,血統上早已溶入居於多數的異族當中,亡國也亡種,那裏還有漢族?


   옛날에 화하인종낙양분지 四周의 외국인을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라 불렀다.

   외국인이 땅은 크고, 인구가 많아 후대에 흘러 들어와 중국을 4천 년이 넘게 통치했다. 인구가 적었던 소수의 한족은 혈통상 일찍이 다수의 이족에 녹아들어 망한 나라의 망한 인종이 된 것이다...... (출전, 차이나문화원 자유게시판 <어느 화교의 역사적 양심고백-중국 한족은 허구다> 2004.1.27.)

   중원 역사에서 서융 북적 남만이 준동하게 된 때는 조선이 진에게 멸망한 진시황 8년 이후였다. 그 전에는 풍이족으로 불리는 한국이나 구려족으로 불리는 배달나라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인이 동이 서융 북적 남만에게 둘러싸여 소멸하였다는 기록은 풍이족시대에 이미 한인이 소멸하였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동이, 서융, 북적, 남만이 4,000년이 넘게 중원과 만주를 다스렸다.

今日的中國歷史以 漢族為中心,是假歷史。… 四千六百年歷史當中漢族被蕃族統治四千兩百年

   오늘날 중국역사는 한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거짓역사다. … 4,600년 역사에서 한족이 번족의 통치를 받은 것이 4,200년이다. (출전 위와 같음)

화교는 분명히 한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는 거짓의 역사라고 말한다. 차이나 역사 총 4,600년에서 무려 4,200년이나 번족이 통치했으므로, 한족의 역사는 기껏해야 400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의 역사가 거짓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한족은 차이나 역사상 일직이 멸망한 종족이고, 중국이라는 호칭은 손문중화민국을 세우면서 국가적 명칭으로 쓰기 시작한   국가적 명칭으로서 일천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그 이전에 중국이라는 명칭이 낙양에서 생긴 것이므로 사실상 중국의 정체성을 말할 때 차이나支那 즉 차이나로 해야 맞을 것이다.

-민속학자, 작가 고담 노중평 씀-

 

 

 

 

 
지명선 10.02.20. 08:30
현중국사로 새로 만든 역사에는 중원의 조상이 없으나, 한겨레가 그곳에 지키고 있는 한 우리민족의 조상국은 환국 , 마고성으로 빛납니다.
 
 
상상의행복 10.02.20. 12:29
이글은 옮긴 글인가요 ?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디가지가 그 옮겨진 내용인지요. 간간이 인용을 한 것처럼도 보이고 읽어보기에 혼란이 옵니다. 다시 정리해주시면 어떠하신지요.
 
 
러브 선 10.02.21. 09:18
한족은 차이나 역사상 일직이 멸망한 종족이고, 중국이라는 호칭은 손문이 중화민국을 세우면서 국가적 명칭으로 쓰기 시작한 국가적 명칭>>그 이전에 중국이라는 명칭이 낙양에서 생긴 것이므로 ....>> 이것이 윗글의 주된 내용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漢族 의 후예-하화족

2010.02.20

cafe.daum.net/greatchosunsa/75XT/2709   대조선사 연구회  





하화족 의 기원| 최남석 칼럼
필유니버최남석|조회 767|추천 1|2009.11.01. 11:41


   환국의 말에  안파견이  삼위산과 태백산을 내려다 보고 모두가 홍익인간을 할 수 있으므로 누구를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가첨이 말하기를  -

'''  서자에  환웅이 있는데 용기에 겸하여 어질고 지혜가 있습니다

일찌기 홍익인간으로 세상을 바꿀 뜻이 있으므로 태백산에 보내어 다스리게 함이 좋을 듯 합니다 '''

하므로 천부인 삼종을 주고 조칙하여 이르기를  ' 이제 사람과 물건과   업이 이미 만들어졌으니 군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서 개천하여 입교하고 재세이화하여 만세자손의 홍범이 되게 하라 ''' 하였다

 때에 반고 라는 자가 있었는데 기술을 좋아하여 길을 나눠서 가기를 청하므로 곧 그일을 허락하였다

마침내 재보를 축적하여 10간 십이지 신장과 공공 / 유소 / 유수를 거느리고 삼위산의 납목동굴에 이르러 임금이 되니 제견(諸犬) 이라 이르고 반고가한이라 하였다

 

인용 = [주해  한단고기]  -가나 출판사 (1985년) -  김은수

 

최남석 해설

 

위글은 삼성기전하 에 나오는 글 중 일부이다  삼성기전상은 안함노 리는 신라의 고승이 쓰셨고  삼성기전하 는 원동중이라는 분이 쓰셨다.

하화족인 이씨조선아 신해혁명에 의해 한반도로 이주해  기존의 유적에다 자기들 문패를 붙힌 후에 한단고기 안의 여러 저술 들은 지하로 도망가야 했다

지나에서 이런류의 사서들은 신해혁명이 성공하자 모두 소각 되었고  한반도에서는 신해혁명 4`5년후에 메이지 일본 이 만든 조선사편수회 가  모두 수탈하여 소각 하였다

 [한단고기] 를 위서 로 보는 사람 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남의 집 과 토지를  빼앗아 그 집주인 행세를 하려면  문패 바꾸고  안방의 가족사진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뺏은자는 빼앗긴 자의 역사를 지우는 것이다

[ 한단고기] 를 도피 시킨 그 분은  이 책을 하원갑자(서기1984년) 이후에 꺼내어 빛을 보게 하라고 유언하셨다 한다

아미도 서기 1984년 이후가 되면 동이족 이데오로기를 가진 분이나 하화족 이데오로기를 가진 분  모두 이세상에 있지 않을 것으로 보시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위 본문에서 반고는 하화족 의 조상이며 한울님 이다

 지금의 지나역사에서는  반고를 지나의 시원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유묘/ 유소/ 유수 등 도 모두 지나의 씨족신이다   일루미내티 들의 여호와 = 여왜씨도  유소/ 유수씨 보다 한참 후대 이다

 유묘는 최초로 씨앗을 심은 조상님이란 말이고  유소는 나뭇가지를 엮어  집을 만든 조상님 이고 유수는 불을 일상에 이용하는 법을 가르친 조상님이다

 위 본문에서는 이 들이 모두 반고의 신하라고 하였고  이들 을 통칭하여 제견 이라고 했는데 견은 견융으로 서융이고 서융이라는 말은 이들이 모두 동이 쪽에서 봤을 때 서쪽이라는 뜻이다

이 들은 모두 천해 = 북해 의 서쪽 (지금의 카스피해)에 거주했다고 생각 한다  

 안파견 한울님과 같이 있다가  분가 해 간  반고 는 랍목동굴에가서  살았는데 실지로도 인류가 살은 거대한  동굴유적지 가 사마르칸트 서부지역에 아직도 존재 하고 있다  이른바 하 나라는  반고 의 후예로 최남석은 보고 있기에 따라서 하/은/주 와 기자도 하화족 으로 보는것이다

민족사관의 고명한 학자들이 기자조선 에서 기자에게 조선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위작 이라  고 언성을 높이며  하화족인 한나라가 낙랑 현토를 점령하여 지배 했다는 한사군설에도 크게 반대하는 이유도  최남석의  주장과 상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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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화족 의 기원
2009.11.01

 
김홍필 09.11.02. 12:07
최남석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위 본문 내용을 지금 당장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우므로 '진실'이라고 전제하고 말씀드립니다. 우선, 신해혁명(辛亥革命)은 가짜 역사가 아니고 실제로 (중국)대륙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즉, '진짜' 역사입니다. 설마 그것도 날조된 역사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일 자체도 유구한 세월 속에 여러 왕조(王朝)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면서 이루어진 '진짜' 역사라고 봅니다. 즉, 그것도 역사의 일부분(一部分)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진짜'라는 말은, 진실이라는 게 아니라,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뜻입니다.
 
 
김홍필 09.11.02. 12:30
어느 때 세상이 어떤 세력에 의해 바뀌면 그것을 합당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기존의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일입니다. 기존의 역사를 확대, 축소, 미화(美化), 폄하(貶下), 첨삭(添削)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든 (정치)세력을 정면에 내세웁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 (정치)세력에게 불리한 역사기록들과 유물들은 모두 소각(燒却)되거나 은폐(隱蔽)됩니다. 결국, 후세(後世)의 사람들이 역사의 '진실'(眞實)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일들은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진짜' 역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김홍필 09.11.02. 12:44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왜곡/날조의 결과물이 계속적으로 누적(累積)되면, 진실(眞實)은 아예 사라지거나 새롭게 만들어진 역사기록 속의 어딘가에 숨어있게 됩니다. 여기서 진실(眞實)이란 특정 시기에 왜곡/날조되기 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왜곡/날조 또한 과거에 여러 번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진실(眞實) 또한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역사 연구자들은 (현존하는) 왜곡/날조된 역사기록 속에서 어떤 진실을 찾고자 애를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세상에 공개되어 있는 모든 (역사)기록들을 살펴 볼 때에, 위서(僞書) 논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작금(昨今)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김홍필 09.11.02. 13:35
1백년 전의 역사조차도 그 진실을 확정하지 못하고 논란 가운데 있는데, 1천년 전이나 1만년 전의 역사를 논의한다고 한들,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부터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의 중국대륙, 한반도, 일본열도에는 여러 역사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각종 비장(秘藏)의 서적(書籍)들은 위서(僞書) 논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 제대로 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장(秘藏)이라는 말 자체도 믿기 어려운 현실이라서 더욱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홍필 09.11.02. 13:35
최남석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이성계(李成桂) 왕조(王朝)와 왜(倭)는 서로 같은 하화족(夏華族)이고, 이성계(李成桂) 왕조(王朝)가 조선(朝鮮)이라는 동이족(東夷族)의 국호(國號)를 사용하였고, 왜(倭) 또한 동이족(東夷族)의 국호인 일본(日本)을 사용하였는데... 그렇다면, 이성계(李成桂) 왕조(王朝)의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먼저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세계 기록 유산"(世界記錄遺産, Memory of the World)으로 유네스코(UNESCO)에 등록된 사료(史料)이기도 합니다.
 
 
김홍필 09.11.02. 13:38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참칭(僭稱)한 "조선"(朝鮮)이라는 용어와 함께, 왜(倭) 그리고 왜노(倭奴)들이 참칭(僭稱)한 "일본"(日本)이라는 용어가 매우 많이 나옵니다. 우선 이런 것들부터 세밀하게 검토하여, 그 지리적 위치만큼은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천년 전이나 5천년 전의 역사보다는 이성계(李成桂) 조선왕조(朝鮮王朝) 5백년의 역사가 있었던 현장부터 철저하게 검증하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개인적인 소망(所望)을 적어 보았습니다. 최남석 선생님, 늘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전재자 註 위서 논란이 있고, 정사(正史)가 아닌< 한단고기>를 인용하여 쓴 글이므로 참고하기 어려운 글로 보여, 본문의 오류나 오타를 수정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후한서/한족의 뿌리 하화족의 근원| 語原
붉은까마귀|조회 48|추천 0          |2015.12.10. 06:23



 

   기존의 漢學子들이 역사서를 번역한 것을 보면 漢字 그대로를 여과 없이 번역한 관계사를 제법 이해 하는 저 같은 사람들도 도데체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영문을 번역함에도 직역과 의역이 있어야 하는데 역사서 역시 중국 사람이 쓴 역사서를 그대로 직역을 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학자분들은 역사적 사실은 모른채 漢字만을 있는 그대로 번역햇으므로 그 기록의 진실은 도외시한 채 번역 되었기에 오히려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믿게 하는 원인을 제공해 왔던 것이지요.


   그래서 본 필자는 우리 민족과 관련이 있는 기록들을 새롭게 번역하고 역사적으로 관련이 잇는 사실들을 덧붙여 새로운 역사 번역을 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과 다른 표현으로 번역이 되었더라도 알기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한 것이오니 읽으시는데 차질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及<武王>滅<紂>, <肅愼> 來獻石矢.

무왕이 주를 멸하자 숙신이 돌화살을 받쳐 왔다.


여기서의 무왕은 周나라를 건국한 무왕을 말하며

紂(주)은나라 마지막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肅愼은 흑룡강 유역의 부족으로 夫餘 挹樓 三韓 百濟 新羅 勿吉

靺鞨 女眞 文殊로 내려오는 만주족의 조상 부족이다.


   참고로 "肅愼"을 중국 사람들이 읽으면 "조선"으로 발음한다고 한다.


따라서 숙신은 조선을 뜻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숙신을 소위 말하는 위만 조선과는 전혀 별개의 조선으로 구분을 한다.


   실제로 <사기><한서><후한서>등에 존재하는 조선과 숙신은 별개인 것만은 분명하다.

숙신의 위치는 지금의 랴오허 북쪽의 흑룡강 주변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우리 국사가 말하는 단군 조선을 지칭하는 것이다.


   숙신의 땅에서는 쇠를 뚫을 수도 있는 강하고 날카로운 돌이 있는데 이 돌로 만든 화살촉은 귀한 것이었다.


숙신은 바로 이 돌로 만든 사살을 무왕에게 바친 것으로 보인다.


<管>·<蔡> 畔<周>, 乃招誘<夷狄>, <周公>征之, 遂定<東夷>.

관숙과 채숙이 주나라에 반기를 들자 주공은 이적을 이용하여 정벌하자 동이가 안정되었다.


관숙 채숙, 곽숙주무왕의 동생들이다.


   주무왕은 소수의 흉노계 북방 종족으로 소수였으며 환족의 전신인 회수 유역의 하화족을 정벌하는데 까지는 성공하지만 숫자가 많은 화하족을 직접 통치하기가 어렵자 하화족 출신인 무경하화족 왕으로 봉했다.


   주무왕은 하화족이 바난을 일으킬 까봐 그의 동생들인 관, 채 곽을 화화족 근방에 제후로 봉하고 화화족을 감시하였는데 이들을 삼감이라 하는 것이다.


   주무왕이 나라를 건국한지 3년만에 죽자 아들인 성왕이 즉위 하였으나  왕이 어려서 주 무왕의 또 다른 동생인 주공이 섭정을 하게 되자 관숙과 채숙은 주공이 나라를 뺏아으려는 저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난을 일으키는데 이를 "삼감의 난"이라고 한다.


《尙書》<武王>崩, 三監及<淮夷>畔, <周公>征之, 作<大誥>.

又曰, <成王>旣伐<管叔>·<蔡叔>, 滅<淮夷>.

<<상서>> 무왕이 죽자 회이와 더불어 삼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주공이 이를 평정하고 칙첩을 내리면서 말하기를 "성왕께서 관숙 채숙과 회이를 멸하였다"라고 햇다.


   여기서의 회이란 회수 유역에 존재하던 부족들을 말하는 것이며


회수란 지금의 長江과 黃河 사이의 강을 말하며 바로 이 회수의 이름이 "화이허"라고 하는 강이다.


지금의 한족이 나타나기 전의 한족들의 전 이름을 華夏族이라고 하는데 화하족은 바로 이 淮水의 이름에서 온 것이며 화하족의 근본은 이 회수 유역의 부족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동이를 구족으로 분류 하지만 淮夷 동이구족의 족보에 없는 종족이다.


   따라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漢族임을 자처하면서도 자신들의 실질적 조상 국가로, 주나라를 시조 국가로, 주무왕 시조로 설정을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이중성은 여기서 여실히 들어 난다.


   周나라는 지금의 감숙성 사람들이며 감숙성은 전통적으로 흉노의 땅이기 때문이다.


<秦>幷六國, 其<淮>·<泗夷>皆散爲民戶.

진나라가 육국을 합병하자 기존의 회이와 사이의 백성들이 흩어져 진의 백성이 되엇다.


진시황에 의해 춘추전국시대가 마감 되자 장강 아래의 사이와 회이가 모두 흩어지면서 진나라에 복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陳涉>起兵, 天下崩潰,

진섭이 반란을 일으키자 천하가 어지러워 졌다.


진섭은 진나라 말기 사람으로서 화하족 출신 소작농이였다.


이름은 勝(승)이며 涉은 字다.


   진승은 진나라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는 농민 반란을 최초로 주도하는 사람으로서 잠시 張礎(장초)라는 이름의 나라를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토벌당하며 죽임을 당하지만 高祖 劉邦은 그의 휘하 장수였으며 유방이 진나라를 멸하고 나라를 세우는 단초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승이 소작농 시절 농지 주인과 대화를 하던 중에 그의 큰 포부를 말하자 농지 주인이

"참새가 어찌 고니를 따라 가려는가?'라며 비웃자

"燕雀安知鴻鵠之志"

즉 "제비나 참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라는 일화가 전해 진다.


 <燕>人<衛滿>避地<朝鮮>,

연나라 사람 위만이 조선땅으로 피했다.


우리 국사는 연나라를 중국의 일부 국가로 비정을 하고

이에 따라 연나라 사람위만중국사람으로 설정을 하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前書》曰[<朝鮮王><滿>, < 燕>人. 自始全<燕>時, 嘗略屬<眞番>·<朝鮮>,

전서에서 말하기 조선왕 만은 연나라 사람으로 진번과 조선이 늘 연에 속해 있었다


여기서 전서란 <史記> 또는 <漢書>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서 조선전><사기 조선전>을 바탕으로 쓰인 것으로 구분의 의미는 없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때의 진번이나 조선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燕나라의 지방 이름이라는 것이다.


爲置吏築障. <漢>興屬<燕>, <燕王><盧>反入<匈奴>, .

한나라가 일어 서자 연왕 노관이 흉노로 들어 갔다.


   연나라 사람위만 노관의 망명을 보듯이 이 시기에도 연나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국이 아니라 우리 민족과 밀접한 나라이며 한족과는 이질적인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국사는 위만과 노관을 연나라 사람이라 하여 이방인 취급하면서 연나라는 물론 위만 조선을 중국 역사로 취급을 하고 있지만 대단한 역사의 착각이다.


   이것은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이 서울에 와서 대통령을 했다 해서 대한민국이 마치 경상도 나라나 전라도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나 다름 아니 생각이다.


연나라는 지금의 하남과 하북을 근거로 하는 나라로서 위만 조선과 같은 나라이다.


<滿>亡命東走, 度<浿水>, 居<秦>故空地, 稍役屬<朝鮮>

위만은 패수를 건너 동쪽으로 망명하는데 조선은 옛부터 빈 땅으로 진이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여기서 "居"란 머물다, 살다라는 뜻이 아니라 의문 부호(?)가 없던 당시의 기호적 글자임을 알아야 한다.


즉 그들도 조선秦나라漢나라에게 세금을 징수 당하던 지역임에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그만큼 항하 하류 패수의 조선은 변방중의 변방이었던 것이다.


<蠻夷>及故<燕>·<齊>亡(任)[在]者, 王之, 都<王險>]也.

만이와 옛 부터 연나라와 제나라를 잃고 망명 온 사람들을 모아 도읍지를 세우고 왕검이라 했다.


우리 국사는 위만이 세운 왕검을 지금의 평양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왕검성은 훗날 고구리의 도읍지인 장안성 또는 평양성으로 불리우는데 평양성은 패수 북쪽에 있는 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왕검성은 하북이 시작되는 패수 근처인 것이다.

 



                                               후한서/한족의 뿌리 하화족의 근원
20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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