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려사회와 청자

2019. 1. 14. 12:15美學 이야기

 

고려사회와 청자

 

임진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청자는 고려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고려청자가 품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도교’ · ‘귀족’ · ‘중국자기와 교류’ 의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 도교는 불교처럼 교단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종대(睿宗代, 1105?1122)를 중심으로 고려 왕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복숭아가 담긴 쟁반을 받쳐 든 인물 모양의 주자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복숭아 · 원숭이 · 기린 · 봉황 등 도교와 관련한 소재가 향로, 연적 등으로 제작되었다.

 

청자 사람모양주자, 고려 12세기, 국보 167호

 

청자 어룡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국보 61호

 

청자 구룡모양 주자, 고려 12세기, 국보 96호


또한 청자는 고려의 귀족 문화를 대표하는 미술품이다. 동시대 중국 북송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사대부 사회였던 북송의 도자에 비해 귀족 사회였던 고려의 청자는 그 밀도와 품질에 있어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12세기는 고려청자의 전성기로 알려져 있다. 전성기 고려청자의 특징은, 기종器種과 기형器形이 다양해지고 문양과 장식 수법 역시 다채로워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려청자의 비색翡色과 상감 기법은 고려청자의 독창성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청자 참외모양 병, 傳 인종 (1122~1146) 장릉 출토, 고려 12세기, 국보 94호

 

 

11세기에 고려청자 가마가 전남 해안의 강진에 자리 잡아 본격적인 제작을 시작하였고, 12세기에는 기술 수준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 11세기 말부터 고려와 북송의 단절되었던 국교가 재개되면서 북송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새로운 중국 도자의 유입과 이에 자극받은 고려청자의 활발한 생산으로 이어졌다. 고려청자는 일차적으로 중국 도자의 기형을 모방하였지만, 고려인의 미의식으로 재해석하여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표현해냈다. 문양은 한층 변화 발전시켜 세련되게 나타냈다. 그리고 비색의 빛깔과 정교한 상감 장식으로, 12세기 중반 이후에는 동시대 중국 도자의 절대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 위 내용은 2012년 10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중·근세관 고려 2실에서 임진아 학예사가 진행한 <314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글쓴이 : 국립중앙박물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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