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름다운 고려청자(高麗靑瓷) 10

2019. 1. 14. 12:18美學 이야기

 

 

 

 

 

99. 청자철유상감화조문사이편호(靑磁鐵釉象嵌花鳥文四耳扁壺)

 

 

항아리를 빚어서 양면을 조금 두드려 편평하게 만든 형태이다. 청자 태토 위에 백토를 상감하여 문양을 나타낸 다음, 상감 문양 부위를 제외한 바탕에 철사유(鐵砂釉)를 발랐다. 이러한 기법을 보이는 파편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청자 가마터에서 상당량이 수집되었고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도 발견되었다.

 

청자 최성기인 12세기를 지난 시대의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는 점으로 보아 13세기쯤에 유행한 기법으로 여겨진다. 어깨에는 선을 한 줄 돌리고 그 선에 잇닿게 큰 여의두문(如意頭文) 띠를 돌렸고 굽 둘레에도 역시 선을 한 줄 돌리고 그 위로 연판문(蓮瓣文)을 둘렀다. 넓게 펼쳐진 몸체의 편평한 양면에는 겹선으로 마름꽃 모양(菱花形)을 만들고 그 안에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 한 마리씩을 나타내었다.

 

마름꽃 모양의 테두리 밖에는 어깨에서부터 굽에 이르기까지 세로선을 성글게 그어놓았다. 어깨 위 전후좌우에는 짐승 머리 모양의 고리를 장식하였는데 그 위에 청자유를 두껍게 입혀서 청자색으로 빛난다. - 국립중앙박물관

 

  

  

 

100. 청자퇴화문석류형주자(靑磁堆花文石榴形注子)

 

소문 순청자(素文純靑磁)와 더불어 12세기 전반에 세련기를 맞은 상형 청자(象形靑磁) 가운데 하나로, 석류 세 개를 모아놓은 후 그 위에 또 한 개를 쌓아올린 형태의 주자이다.

 

잎이 달린 석류 가지를 구부려 붙인 모양으로 손잡이를 만들었고 귀때부리는 석류꽃을 형상하여 만들었다. 겹쳐진 석류들 사이에 잎사귀가 장식되었고 손잡이 위에는 봉오리가 하나 있다. 석류들마다 표면에 백퇴점(白堆點)을 찍어서 벌어져 나온 석류알을 표현했고 위에 올려진 석류의 꼭지를 꽃 모양으로 벌려 입을 만들었으며 아랫단 석류들의 꼭지는 큰 백토성점(白土星點)으로 표현했다. 옅은 녹색을 머금은 비색유(翡色釉)가 비교적 두껍게 전면에 씌워졌으며 빙렬(氷裂)이 몇 가닥 나타나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101. 청자퇴화연당초문주자(靑磁堆花蓮唐草文注子)

 

  금속기에서 기형(器形)을 따온 몸체에 동물과 식물을 상형한 귀때부리와 손잡이, 뚜껑이 잘 조화된 작품이다. 뚜껑은 통(筒) 모양 위에 화려한 연화좌(蓮花座)를 두 단 만들고 위쪽 연화좌 위에 봉황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금속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다소 강한 분위기를 지닌 몸체에 죽순에서 막 뻗어오르는 대나무 모양을 본뜬 귀때부리와 역시 대나무를 휘어 붙인 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여러 겹으로 된 뚜껑의 연화좌 가운데 안쪽 꽃잎에 백토를 칠해 장식했다.

 

통 모양의 뚜껑 아랫부분과 맞닿은 몸체의 목 부분에는 중심선을 자토로 내리그은 백퇴화(白堆花) 연판문(蓮瓣文)이 이어져 있다. 몸체 전면에 풍만하고 유려한 연당초문(蓮唐草文)을 백토로 그렸고 아랫도리에는 연판문 띠를 돌렸으며 백토 무늬 둘레와 안쪽에 윤곽선을 음각하여 무늬를 도드라지게 했다.

 

당초의 순과 귀때부리의 죽순 껍질 가장자리 등에 간간이 자토를 칠해 액센트를 주었다. 부분적으로 빙렬빙렬(氷裂)이 있는 담담한 비색유(翡色釉)가 비교적 얇게 입혀졌고 밑바닥에 내화토(耐火土) 비짐눈 자리가 남아 있다. 이러한 주자(注子)에는 모두 승반(承盤)이 딸려 있었겠지만 대체로 따로 분리되어 전해지거나 경우가 많은데, 이 주자에도 깊숙한 승반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102. 청자누비문호(靑磁縷緋文壺)(청자누비문호)

 

신안 해저 인양 청자 가운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14세기 전반 원대 용천요(龍泉窯) 청자의 한 예이다. 입 부분이 높직하면서 안으로 조금 기울어졌고 몸체의 윗부분이 둥그렇게 부풀었다가 다소 급하게 줄어들었다. 맨 아래쪽 굽 둘레에는 둥근 띠가 둘리어 있고 입 부분과 굽 둘레를 뺀 몸 전체에 규칙적인 세로 주름 무늬가 있다. 몸 전체에 비취색 유약이 얇게 입혀졌으며, 입 둘레와 굽 아래쪽은 유약을 입힌 후 깎아내어 태토가 드러나 있다. 굽다리 안쪽 바닥은 구멍이 뚫린 상태로 만든 후 따로 만든 접시 같은 것을 끼워붙이는 식으로 만들었다. 이 항아리와 같은 모양의 항아리들이 여러 점 인양되었으며, 이 항아리의 굽다리 밑면에는 '…원자시(元字柴)…십삼호(拾參호)…장(匠)…'이라는 글자가 먹으로 적혀 있다. 용천요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용천현의 산간 지방에 밀집되어 있는 가마들을 말하며 11세기 후반부터 독특한 유형의 청자를 만들어 남송대에 절정을 이루었고 원대를 거쳐 명말에 그 명맥이 끊어졌다. - 국립중앙박물관

    

 

 

  

 

103. 청자다구병(靑磁多口甁)

신안 해저 인양 유물 가운데 가장 우수한 청자에 속하는 것으로, 종래 남송대(南宋代) 용천요(龍泉窯) 청자로 불리던 것들과 매우 비슷한 양식을 지녔다. 위쪽 가운데에 끝이 밖으로 젖혀진 입이 하나 있고 그 둘레에 원통형 입 네 개가 있으며 몸체에는 연판문이 양각되어 있다. 형태와 각 부분의 만듬새가 단정하며 양각 연판문은 다른 일반 청자들에 비해 매우 정연하며 깊고 예리하게 새겨졌다.

 

비교적 두껍게 입혀진 유약은 밝고 아름다운 비취색을 띠었고 회백색 태토는 치밀하고 정선되었으며, 안팎을 깎은 후 다시 밑면을 깎아낸 굽 역시 종래에 남송 성기(盛期) 청자들의 특징으로 꼽히던 것과 같다. 신안 유물은 대부분 원대(元代)의 일반 무역 청자이지만 그 가운데 이렇게 종래에 남송 용천 청자로 불려온 것과 같은 우수하고 세련된 청자들이 적은 수나마 포함되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104. 청자상감국화문탁잔(靑磁象嵌菊花文托盞)

 

고려 자기탁잔의 유형은 대체로 3-4가지로 구분된다. 《청자탁잔》, 《청자탁잔》, 《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 《청자상감국화문탁잔》과 같은 것이 가장 일반적인 양식이며 《청자동채탁잔》과 같이 잔받이가 잔처럼 생기고 아래위가 뚫린 것이 있고 이 탁잔과 비슷하지만 위에 잔이 없고 잔받이가 바로 잔이 되는 양식 등이 있다.

 

이 탁잔의 양식에는 11세기 이래의 고식(古式)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처럼 뚜껑을 갖춘 잔은 매우 희귀한 예이나 전문가에 의해 수습된 것은 아니다.

 

잔과 뚜껑, 잔받침의 가장자리에 모두 똑같은 양식의 완자문 띠를 둘렀으며 상감 양식으로서는 비교적 고식에 속하는 국화절지문(菊花折枝文)을 역시 잔과 뚜껑, 잔받침에 모두 넣었다. 유약은 녹색이 짙은 편이어서 12세기 전반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물 모양의 빙렬(氷裂)이 퍼져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105. 청자상감모란문(靑磁象嵌牡丹文)항아리

고려시대에는 청자와 더불어 각종 동기(銅器)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청자의 기종(器種)과 기형(器形) 가운데는 같은 시대에 사용된 동기를 그대로 청자로 옮겨 만든 것이 많다. 이 청자 항아리도 그런 예 가운에 하나로, 양쪽에 달린 수면(獸面) 손잡이는 동기의 의장(意匠)에서 유래한 것이다.

 

높이가 20.1cm로 고려청자 가운데서는 드물게 보는 큰 그릇인데 서울과 경기도 지방에서 방구리라고 불리는 질그릇과 크기나 형상이 매우 비슷하며 음료(飮料)를 담는 데 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른 잔 무늬는 없고 몸통 양면에 큼지막하게 모란꽃 가지를 흑백상감하였는데 크고 시원스러운 그릇 모양과 문양이 잘 어울린다.

 

백상감된 모란꽃의 꽃술과 꽃잎 둘레를 가는 흑선으로 둘러놓았고 가는 음각선으로 꽃잎맥을 표현하였다. 꽃 부분의 백토 상감은 매우 두터워서 일부 부풀어오른 곳도 있다. 맑은 녹색이 감도는 회청색 유약이 전면에 얇고 고르게 입혀져 있으며, 유약의 투명도가 높고 광택이 청아하며 세밀한 빙렬(氷裂)이 그릇 전면에 나타나 있다. 굽 밑은 얇게 깎아냈으며 받침눈 자리들이 남아 있다.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서 구워낸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106. 청자상감운봉문화형(靑磁象嵌雲鳳文花形)대접

여섯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 모양으로 형상된 대접으로, 13세기 전반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인다. 청자 상감 전성 시대의 후기라고 할 12세기 말부터 13세기 전반에는 황금기였던 12세기 후반기의 여세를 몰아 청자 상감이 계속 활발하게 제작되었지만 상감 의장이나 기형에 나타난 곡선의 성격에는 조금씩 시대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대접은 이러한 변조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에 만들어진 청자 상감의 예이다. 안쪽에는 구연에 당초문 띠를 돌렸고 바닥 한가운데에 쌍봉문을 놓고 둘레에 여의두문 띠를 둘렀다. 안쪽 벽 사방에는 날아오르는 봉황을 한 마리씩 나타내고 나머지 공간은 구름 무늬로 가득 채웠다. 바깥 면에도 구연에는 당초문 띠를 돌리고 그 아래에 퇴화된 형식적인 운학 무늬를 두었다.

 

아래쪽에 국당초 무늬로 보이는 서화 무늬 띠를 둘렀고 굽 둘레에, 연판문이 있다. 봉황의 머리나 학의 머리와 다리, 바깥 하단의 연판문 등 일부분에만 흑상감을 썼을 뿐 나머지 전체가 백상감으로 이루어졌다. 기형의 곡선도 매우 원만하고 상감 무늬에도 고려적인 특색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정갈한 회청색이 감도는 유약을 전면에 엷게 입혔고 그물눈 같은 빙렬이 깔려 있다.

  

 

 

 

 

107. 청자상감진사채국화문유병(靑磁象嵌辰砂彩菊花文油甁)

 

동화안료는 꼭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되었고 남용(濫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붉은 색이 고려인의 미감(美感)과 잘 맞지 않았던가 아니면 애써 설채(設彩)한 동화안료가(銅畵顔料)가 구울 때 쉽게 증발(蒸發)하여 완성품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였던가 생각된다.

 

이 유병은 약간 납작하게 된 동체에 반구형(盤口形)의 구부(口部)가 달린 형태로, 청자 전성기를 약간 지난 시기의 유병 형태이다. 구부 주위와 윗면 주연(周緣)에 각각 이조(二條)의 백상감대선(白象嵌帶線)을 넣어 문양대를 만든 후, 그 안에 인화된 국화의 화심(花芯)의 동채점(銅彩點) 중에는 안료가 증발(蒸發)되어 작은 점과 같이 된 곳도 있다.

 

회청색 유약이 입혀졌으며 빙렬(氷裂)이 있다. 낮은 다리굽으로 접지면(接地面)은 동그랗게 다듬었으며, 굽안바닥 주연(周緣) 세 곳에 커다란 규석(硅石)을 받쳐서 구웠다. -국립중앙박물관

  

 

 

 

 

 

    108. 청자상감포류수금매죽문표형주자(靑磁象嵌蒲柳水禽梅竹文瓢形注子)

고려청자 특유의 유선미(流線美)를 보여주는 조롱박 모양 주자의 한 예이다. 뚜껑이나 손잡이, 귀때부리, 윗 몸체에는 무늬가 없고 아랫 몸체의 양면에만 흑백상감 무늬를 넣었는데, 한 면에는 물가의 수양버들 한 그루와 물에서 노는 오리 종류의 새 한 쌍, 물로 날아 내려오는 새 한 마리가 있고 다른 면에는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배경으로 백학 한 쌍이 노니는 모습이 있다.

 

귀때부리와 손잡이 밑에는 백상감으로 마름모꼴 무늬 띠를 돌렸다. 귀때부리의 곡선이나 조롱박 모양 허리의 맵시가 매우 대범하다. 상감 기법은 정교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림과 무늬가 회화적이며 운치가 있다.

 

매우 투명한 연한 회청색계의 비색 유약이 입혀졌는데 그물눈 모양의 빙렬(氷裂)이 전면에 나타나 있고, 가마 안에서 구워낼 때 부분적으로 산화되어 생긴 요변색(窯變色)이 약간 눈에 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가마에서 만들어진 것 가운데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109. 청자상감화접문(靑磁象嵌花蝶文)대접

 

청자 상감은 12세기 후반에 절정에 이르지만 13세기로 넘어오면서 태토와 유조(釉調), 문양과 구도, 기형(器形)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이완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그 무렵의 금속 공예나 조각에서도 같은 경향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대접은 기형과 문양 등이 모두 그 중간 과정을 보여주는 예이다.

 

안쪽 면에는 입 부분에 형식화된 좁은 당초 무늬 띠를 두르고 바닥에는 국판문(菊瓣文)을 넣고 둘레에 연판문(蓮瓣文) 띠를 돌렸다. 나머지 넓은 안벽 네 군데에 초화절지(草花折枝)를 넣었는데 꽃이 활짝 핀 가지와 아물린 가지가 번갈아 있으며 활짝 핀 가지에는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꽃가지 사이의 공간에는 벌 같기도 하고 나비 같기도 한 곤충이 두 마리씩 있다. 바깥 면에는 입 부분에 형식화된 좁은 당초 무늬 띠가 있고 바닥쪽에 연판문 띠를 돌렸으며 사이의 넓은 면에는 두 겹 선으로 이루어진 원 안에 국화 무늬를 넣고 나머지 공간에 국당초문(菊唐草文)을 가득 채웠다. 유약은 빙렬(氷裂)이 없고 옅은 녹색이 감도는 비색유(翡色釉)이며, 기벽(器壁)은 조금 두껍고 굽도 크고 두툼하며 아래에 큰 규사눈 세 개를 받쳐 구운 자국이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110. 청자양각만과문주자(靑磁陽刻蔓瓜文注子)

 

전체적으로 구형(球形)에 가까운 란형(卵形)의 동체에 단순한 형태의 주구(注口)와 파수부(把水部)기 부착된 주전자로 현재의 파수부는 후보(後補)된 것이다.

 

동제의 전후면(前後面)에는 오이과에 속하는 식물이 넉넉한 여백(餘白)을 남기면서 시문되었다. 잎과 열매의 균곽선은 반양각(半陽刻)으로, 엽맥(葉脈)등의 세부(細部)는 가는 음각선으로 아주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유약은 전면에 고르게 입혀졌으며 밝은 비색이어서 시문된 만과문(蔓瓜文)과 잘 어울려 전체적으로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굽은 아주 낮은 다리굽으로 굽 안바닥을 얕게 깎아냈으며 접지면(接地面) 주위의 유약을 1cm정도 닦아내고 일곱 곳에 모래가 섞인 내화토(耐火土)를 받쳐서 번조(燔造)하였다. -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 오디오와 컴퓨터
글쓴이 : 김인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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