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웰다잉’의 시대.생명의 상징 ‘우물’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2019. 1. 17. 16:50잡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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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곱게 늙고 아름답게 죽을 의무에 대하여

 

은퇴 후 30년은 더 살아야…‘웰빙’ 아닌 ‘웰다잉’의 시대

 

 

 

일러스트 전희성

 

 

 

“아, 리어, 리어, 리어여!

어리석음은 불러들이고 귀중한 분별력은 내쫓아 버린 이 머리통을 부숴 버려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King Lear)’에 나오는 리어왕의 독백이다. 고대 브리튼 왕국의 리어왕은 말년에 세 명의 딸 중에서 가장 효녀에게 왕국을 물려주고 자신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리어왕은 믿었던 막내딸 코델리아의 무덤덤함에 실망해 그녀를 매몰차게 내쫓았고 첫째와 둘째 딸의 감언이설에 속아 왕권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해 광야를 헤맨다. 마침내 다시 만난 코델리아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코델리아는 음모에 희생되고 딸의 주검 위에서 울부짖다가 리어왕 자신도 죽고 만다.

잘 다스려 온 가정과 나라가 말년의 판단 착오로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리어왕의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제48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1924~)를 한 번 살펴보자.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대위로 전역한 카터 전 대통령은 땅콩과 면화 농사를 지어 부를 쌓았다. 카터 전 대통령을 얕잡아 보는 사람들은 그를 ‘땅콩 농사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년의 극과 극, 리어왕과 지미 카터

 

이후 조지아 주 상원의원, 주지사 등을 거쳐 1976년에 미합중국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도덕 정치를 표방한 카터 전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 등 각국의 평화 유지와 인권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경제정책에 실패한데다가 이란 인질 사태까지 터지면서 무능하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 찍혀 재선에 실패하고 로널드 레이건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러나 카터 전 대통령은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인생 역전을 일궈 냈다. 재임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던 카터 전 대통령은 현재 ‘가장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은 물론 제3세계 인권과 환경문제에서부터 국제분쟁의 조정에 개입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해비타트 운동의 일환인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저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 상징하는 것처럼 카터 전 대통령은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리어왕과 뚜렷하게 대조를 이룬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라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라네.”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지은 ‘청춘’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이다.

 

나이가 많은데도 젊은이 못지않은 기백과 능력이 있는 사람을 우리는 노익장(老益壯)이라고 한다. 사무엘 울만이 말한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 노익장에 딱 맞는 예일 것이다.

 

중국 한나라 때 장군으로 마원(馬援)이 있다.

남만 정벌을 나서려는 그를 두고 광무제가 말렸다.

“경은 너무 연로하오!”

 

마원이 발끈했다.

 “폐하! 소신이 예순 둘이오나 지금도 능히 갑옷을 입고 말을 탈 수 있사옵니다.”

 

황제가 탄복하며 출정을 허락했다.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 궁할수록 더욱 굳세고, 늙을수록 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

(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마원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여기서 노익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삼국지’ 세계에서 노익장의 대표는 조자룡일 것이다. 오호장군(五虎將軍)의 한 사람으로 청홍검(靑紅劍)을 가지고 다녔으며 창술의 일인자였다. 오호장군은 유비 막하 5명의 맹장을 말하는데, 관우·장비·조자룡·마초·황충이 그들이다. 조자룡이 당양파 싸움에서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을 구하고 미부인이 죽으면서 맡긴 유비의 아들 아두(阿斗)를 품에 안고 단기필마로 적의 진중을 돌파한 일은 유명하다.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기 위해 북벌을 단행할 때 조자룡은 이미 나이가 일흔 살의 고령이었지만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출정해 조조의 대군에 맞섰다. 위나라 장수 5명을 혼자 상대해 전부 목을 베는 위용을 떨쳤다.

일을 맡기면 목숨을 걸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기에 유비나 제갈량의 신임이 두터웠다. 2008년에 나온 영화 ‘삼국지:용의 부활’은 백전노장 조자룡이 주인공이다.

 

‘파더 쇼크’ 넘어 ‘노인 쇼크’로

 

노익장 하면 황충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황충은 신궁(神弓)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활솜씨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한다. 풍부한 전투 경험과 탁월한 전략을 동시에 갖춘 노장 황충은 유비가 한중을 취하고자 할 때 나이 이미 70이 넘었지만 역시 노익장을 자랑하는 동료 장수 엄안과 함께 맹활약하며 요충지인 천탕산을 점령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정군산 전투에서는 조조의 최고 심복인 하후연의 목을 베어 엄안과 함께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된다.

 

오나라의 용장 황개도 빼놓을 수 없다.

알다시피 적벽대전을 앞두고 황개는 스스로 대도독 주유를 찾아간다. “제가 대도독께서 의견을 내면 대놓고 반대할 것이오니, 저를 엄히 문책해 태형(笞刑)에 처해 주시오. 그러면 앙심을 품은 척하며 조조에게 찾아가 거짓 항복을 하고 때를 보고 있겠습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이른바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황개는 거짓 투항했다가 적벽의 바람이 동남풍으로 바뀌어 불자 곧 바로 조조의 선단(船團)에 불을 질러 적벽대전 승리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파더 쇼크(Father Shock)’라는 말이 있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남성은, 특히 아버지는 밖에 나가 사냥만 해오면(즉 회사에서 돈만 벌어오면) 그것으로 임무 완수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오늘날의 남성들은 유사 이후 처음으로 가정 내부의 아이 양육과 가사 노동에 동참해야 하는 충격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부부 맞벌이, 핵가족화 등의 영향으로 양육과 가사를 돕던 조부모의 역할이 줄어든 때문도 있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지금 현대사회에는 ‘노인 쇼크(Eldery Shock)’라고 할 수 있는 급속한 변동이 갑자기 닥쳐왔다. 60세를 평균 정년 연령이라고 본다면 퇴임 후 몇 년만 더 살면 되던 시절을 지나 이제 길게는 30~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초유의 현실에 직면해 있다. 노인들은 심신 양면의 건강, 경제적 문제, 실업에 따른 역할 상실감 등 ‘4고(四苦)’만 걱정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이제는 늙지 않기 위해서(antiaging)가 아니라 잘 늙기 위해서(wellaging), 또한 단순히 잘사는 것만(wellbeing)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welldying) 하는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해야만 한다.

더구나 리어왕이 될 것인가, 지미 카터가 될 것인가는 개인적 선택 사항이 아니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과 사회 정책적인 배려가 함께 가야 할 문제다.

 

노인들이 조자룡이나 황충처럼 노익장의 기개를 뽐내던 시절은 이미 세월의 강물 속으로 흘러가 버린 것일까. 이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선언해야만 하는 걸까.

 

 

 

 

 

물을 가진 자, 생명을 얻으리라

 

식수 확보 소홀했던 마속…‘읍참마속’의 고사 낳았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 났네/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굴 찾아서/

이쁜이도 금순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1955년에 나온 가수 김정애의 ‘앵두나무 처녀’ 라는 노래다.

그녀는 한반도를 휩쓸고 간 전란의 포연이 우리 사회에 어떤 생채기를 남기고 갔는지, 그 한 단면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이 물 없이는 잠시도 살기가 어렵듯이, 인간 세상의 많은 일들이 물을 공급해 주는 우물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새로운 물로 앞의 물을 밀어내면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우물(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명력의 원천이자 재생력과 정화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심벌이었다.

 

동서고금 막론, 생명의 상징 ‘우물’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의 알에서 태어나 동천(東泉)이라는 샘에서 몸을 씻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지옥 입구에 ‘기억’과 ‘망각’이라는 이름의 두 개의 샘이 있다고 했다. 그중에 기억의 샘물을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한다.

 

예수는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마을 우물가에서 물을 길러 온 한 여인을 만난다. 당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만나는 것은 금기였다. 그러나 본래 거칠 것 없는 무장무애의 예수는 그녀와 영적인 대화를 나눈다.

“네가 내게 물 좀 떠주겠느냐?”,

“사마리아 사람인 제게 어찌 물을 달라 하십니까?”,

”네가 나를 메시아인 줄 알았다면 오히려 내게 물을 달라 했을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가 마시는 이 우물물은 육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은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수란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일상생활과 직결돼 있었던 우물은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조자룡이 장판파 싸움에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할 때 유비의 미부인은 단기필마의 조자룡이 상처를 입은 자신과 아두를 모두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아두를 부탁해요”라며 우물에 몸을 던진다. 낭랑정(娘娘井)이라고 불리는 이 우물은 지금도 남아 있다.

 

청나라 말기 의화단의 난이 일어나 서태후와 황제 일족이 서안으로 피신할 때의 일이다. 서태후는 자신이 황제로 세운 광서제의 애첩 진비(珍妃)를 자금성 안의 한 우물에 던져 버렸다. 이 우물은 진비정(珍妃井)으로 불린다.

 

다윗왕의 3남 압살롬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장남이자 이복형인 암논이 자신의 친여동생을 범했던 것이다. 다윗의 수하였던 요나단 등은 압살롬 군대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웠다. 다행히 덮개가 있는 우물 안에 숨어 있다가 위기를 모면했다.

 

우물이 중요한 만큼 동양이나 서양이나 우물을 덮는 뚜껑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관우의 고향 하동 해현 상촌리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온 동네 우물이 바짝 말랐다. 이 고장에서 소금 장사로 돈을 모은 여웅이라는 자가 아직 마르지 않은 자신의 우물에 뚜껑을 만들어 덮어 버렸다. 게다가 물을 길러 온 여인네들을 성추행하기까지 하는 등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열혈 청년 관우는 의분에 차 여웅을 죽여 버린다. 관우의 부모는 자신들이 살아 볼모가 되면 살인자가 된 아들이 곤란해질 것을 알고 우물에 몸을 던진다.

 

이렇게 해서 고향을 떠난 관우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탁현에서 장비를 만나게 된다.

돼지고기를 팔아 생계를 잇던 장비는 더운 날씨에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자기 집 앞에 있는 우물에 고기를 넣어두곤 했다. 힘이 장사였던 장비는 엄청나게 무거운 돌을 뚜껑 삼아 우물을 덮어버렸다. 그리고는 “이 돌을 들 수 있는 자는 우물 안에 있는 고기를 다 가져가도 좋다”고 호기롭게 써 붙여 놓았다.

장비는 세상에 천하장사가 자기뿐인 줄 알았나 보다. 이 돌 뚜껑을 단번에 들어 올린 이가 바로 관우다. 도원결의 주인공 3형제 중에서 먼저 관우와 장비가 첫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이 우물을 장비고정(張飛古井)이라고 부른다.

 

조조가 원소와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싸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관도대전이다. 당시 조조가 축록영(逐鹿營)이라는 마을에 주둔하게 됐다. 축록(逐鹿)이라는 말은 사슴을 쫓는다는 말이다. 축록영은 천하, 즉 제위나 정권을 사슴에 비유해 이를 잡기 위해 다투는 것을 이른 데서 나온 지명이다.

조조가 이 축록영에 진지를 구축하고 판 우물이 조조정(曹操井)이다. 조조가 손권과 다투기 위해 합비에 주둔했을 때 식수용으로 팠던 우물은 옥상정(屋上井)이라고 한다. 우물 높이가 주변 건물들의 옥상보다 높아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정화수’로 치성을 드리다

 

익주의 옹개라는 자가 남만의 맹획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키자 제갈량은 분노했다.

“내 친히 이 자들의 목을 베리라!”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남만 정벌에 나선 제갈량은 초기에는 낯선 지형과 풍토 때문에 상당히 고전한다. 맹획은 공명의 군대가 먹지 못하게 인근 샘물과 하천에 모두 독을 풀기도 했다. 이때 공명이 사람을 시켜 식수용으로 판 우물이 쌍정(雙井)이다.

 

남만 정벌에 이어 유능한 부하 장수 마속의 책략에 힘입어 위나라 최고의 중신 사마의를 실각시킨 제갈공명. 공명은 드디어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리고 위나라를 치기 위한 대망의 1차 북벌에 나선다. 그 사이에 사마의는 다시 병권을 잡았다.

“사마의 이 자는 필시 가정(街亭) 지역을 빼앗아 우리 보급로를 차단하려고 들 것이다!”

바짝 긴장한 공명은 마속에게 신신당부한다. “마속, 그대는 반드시 이 지점에 군대를 주둔시켜 사마의가 가정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비하라!”

 

그러나 공명의 이런 다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속은 부장 양평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멋대로 엉뚱한데 진을 쳤다. 우물 하나 제대로 없어 식수를 전혀 확보할 수 없는 산꼭대기에 진을 친 마속. 천하의 공명이 낸 계책을 무시한 것이다. 애송이 마속이 노회한 사마의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결과는 참패.

한중으로 후퇴한 공명은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한나라 유방에 비해 수적으로 압도적 우세였던 초나라 항우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우물이 없는 곳에 진을 쳐 식수 부족으로 패퇴한 것과 동일한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사족.

이른 새벽에 길은 깨끗한 우물물을 정화수(井華水)라고 한다. 우리네 조상들은 이 물을 받아 놓고 치성(致誠)을 드렸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조선 사신들이 다니던 요동 땅에 냉정(冷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우리 사신들이 가면 물이 흘러넘치다가 떠나고 가면 즉시 말라버린다고 한다.

원래 요동이 조선 땅이라 기운이 서로 감응해 그런 것이다”라고 다소 국수주의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화수를 떠놓고 가정과 국가의 안녕을 빌던 우리 조상들의 순수한 마음, 우물물이 솟아나고 마르는 것조차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연암 선생의 소박한 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 한경매거진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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