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동이족東夷族과 화하족華夏族의 대륙의 역사 3편

2019. 2. 6. 03:23우리 역사 바로알기

잠시, 중국 근현대 사학계를 둘러보자.

중국 근세사학의 단초가 된 ‘고사변古史辯’은, 호적胡適선생이 ‘고금위서고古今僞書考’의 점독点讀을 고힐강顧詰剛선생에게 위촉함을 계기로, 두 학자가 편지로 주고받은 연구 서간문을, 1926년에 ‘고사변古史辨’을 간刊하면서 1책冊 상편上編에 수록함이 시작으로, 1941년 7책까지 간행되었는데, 고힐강顧詰剛(=구제강顧頡剛,1893-1980), 호적胡適(1891-1962), 풍우란馮友蘭(1894-1990), 나근택羅根澤, 여사면呂思勉, 전현동錢玄同, 양관楊寬등이 참여한 중국의 고대사를 비판한 논문집이다.

이 논문집에 참여한 다수의 학자를, 고힐강이 이끄는 ‘고사변학파’ 또는 ‘의고파擬古派’라 하는데, 당시 학계를 이끌던, 전래문헌상에 기록된 고대의 전설상의 3황 5제나 요순시대를 별다른 검증 없이 역사화 했던 ‘신고信古학파’에 반발하여, 5.4운동 이후, 고사변을 통해, ~역사의 기록은 고대사일수록 당대에 기록함이 적은 후대의 기록인데, 과연 그 기록을 신뢰할 수 있느냐? 신화가 인간의 조작에 의해 역사화 되어감에 회의심하여, 모든 고대 전래문헌의 기록이 허구임에서 사고를 시작한다~하여, 신화나 전설을 시대 순으로 배열하여 후대의 위작 여부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모든 옛날 기록을 의심한다는 극단적 사고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공자도 알지 못했던 3황5제라던가, 사마천도 몰랐던 반고 등을 반증으로, 고대사 문헌을 통한 고대역사는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아, 전래문헌을 논리적으로 논파하여 허구성을 주장하면서, 문헌상의 하,상(은),주시대의 역사를 부정하여, ‘하상대공정'의 책임자인 ’이학근‘ 등으로부터 민족반역자로 몰리는 등의, 한 때 학계에 대단한 파장을 일으켜, 고사변파 학자들이 지나支那의 역사전통을 말살하는 매국노 취급을 당하기도 한, 중국의 초기 근대 사학계에 한 획을 그은 학파이다.

이들의 주장은, ~고고학적 증거가 뒷받침 되지 않은 학설은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왕국유王國維의 2중 증거법’ 학설의 ‘증고證古학파’에 의해 무너지는데, 1950년대 이후에 공산화된 중국정부의 지원으로 대대적인 고분 발굴 작업을 통해, 전설의 하,은,주 왕조에 관한, 갑골문胛骨文, 금문金文(청동기명문), 유적지등이 발굴되어, 사마천 ‘사기의 은본기’나 ‘춘추좌전’등의 기록들이 상당부분 일치함을 증명하여, 고고학적인 발굴성과인 지하자료와 전래문헌인 지상자료를 대조 분석 증명하는, ‘2중 증거법’ 이론으로, 고사변파 학자들에게 비판당하던 전래문헌의 가치도 되살리고, 중국의 자존심도 나름 살리게 된다.

이후, 중국 정부는 공산화와 자본주의적 시류 속에서, 선진 지도국으로 발돋음 하려는, 고대사에 대한 사회 정치적 국수주의적 분석에 진력하는데, ~고대 대륙의 족속들을 은, 동이, 회이, 서융, 초, 담, 진, 조로 대표하는 동방계 민족과 주, 강융, 촉으로 대표하는 서방계 민족으로 분류하여, 동서의 두 계통의 역사들은, 각기 서로 다른 신화나 전설을 분화 발전 시켰으나, 모순이 있는 전설이라도 거기에는 어떤 역사적인 사실이 숨어있다~는 이론의 ‘양관楊寬’으로 대표하는 ‘석고학파’나 마르크스 유물론계의 ‘곽말약’ 등으로 대표한다 하겠다.

 

이처럼, 공산화된 중국에서도 근대 사학의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소중화를 추구하던 조선을 거쳐, 일제의 식민정책과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서, 미약한 국권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우리는, 지나사서支那史書에 기록되어 있는, 대륙에서 한반도로 밀려나 살아온 동이의 역사를, 후손인 한韓민족들이 알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창피한 역사인식에 관한 일화를 알고가자.

일제의 대륙침략으로 중경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1887~1975)이,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이시영등 임정요원을 만찬에 초대하여, ~내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 하시는가?~하여,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일제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위로 했던 자리를, 김구 선생이 술회하시길,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가 지나국 땅인 양자강 이남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하고,

주은래周恩來(1898~1976)도, ~동북 지역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귀속 된다~하여, 지나 국수주의자들의 반지성적 행위를 지적한 바 있다 하며,

 

또, 문교부장관 재직 시의 안호상(1902-1999)박사와 임어당(1895-1976)선생의 여담이라 하는데, ~지나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까지 문제가 많다~하자, 임어당 왈,~그게 무슨 말이요?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 라고 핀잔을 들었다거나,

 

한글박사로 불리는 한갑수韓甲洙 선생과 대만학자 서량지徐亮之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 동기생일 때, 한韓 박사를 찾아와, ~귀국 해(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해(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하며, 한국식 큰 절을 올렸다는 등의 믿기 어려운 일화가 들린다.

사실이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우리의 역사에 관하여, 사료도 미천하였거니와, 서양식 학문 습득의 짧은 시간과 교육부재의 오랜 세월을 보냈다는 반증으로 이해하자.

 

중국 고대 왕조들이 국가이기주의적 차원에서 역사를 날조하는 국수주의적 사관에 의한 사서편찬을 시행했음도 분명히 밝혀지고 있는 현실이나, 장개석이나 주은래처럼,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역사인식론에 의한 양심적인 지성의 소리를 내었을 때는, 역사적 근거와 그들이 받은 교육에 입각함이 분명할 것이다.

이후, 국가 간의 정치적인 문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시류 속에서, 중국은 다시금 동북공정류의 역사 조작에 심혈을 기울여, 성과를 올리고 있는 현실임에 분명하지만, 3편

출처 : 성주산포럼
글쓴이 : 날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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