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동이족東夷族과 화하족華夏族의 대륙의 역사 4편

2019. 2. 6. 03:24우리 역사 바로알기

 

지나 사서의 기록과 중국내의 양심적인 지성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지나인들은 사서에 ‘동이東夷’를 기록하길,

‘예기禮記’에서는, ~동방을 이夷라고 지어 부른다(東方叫作夷)~고 했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이夷는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며(東方之人), 활궁弓자와 큰 대大에서 따온 글자로, 그들은 순리順理를 따르는 성향이 있으며, 오직 동이東夷만이 큰 것을 따르니 대인이다.(惟東夷從大大人也) 이夷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마련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夷俗仁仁者壽故有君子不死之國) 살펴보면 그곳은 하늘도 크고, 땅도 크며, 사람 역시 크다(按天大地大人亦大)~고 했으며,

 

공자의 춘추春秋를 해설한 주석서인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동이東夷는 제齊의 땅으로, 고인이 5행 방위를 배열하니 동방은 목木이고, 목은 곧 봄이니, 만물의 맹아생장의 계절로 새로운 탄생을 재촉해 이루고, 새로운 탄생을 애호하고, 생장을 도우니, 인仁이라, 그러므로 이夷는 인人과 이二를 조합한 인仁이다. 고대 동이라 칭하는 풍속은 인仁을 행했으니, 인자仁者는 장수하므로 제지齊地, 제국齊國에는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之國’이라 부르니, 동이족의 풍속은 인仁하다 하여, 공자는 동이의 나라에 살고자 하였다~고 했으며,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에는,

~동방을 이夷라고 한다. 夷는 곧 뿌리이며,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한다고들 한다. 모든 것은 땅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道로써 다스리기 쉬워서 군자의 나라이자 죽지 않는 나라(不死國)가 된 것이다.~라는 기록 외에도,

 

사마천의 ‘사기’에는, ~은殷나라는 이夷(동이족)의 나라이고, 주나라는 화華(지나족인 한漢족)의 나라이다~라 하여, 동이족인 은나라 이후에 지나支那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은나라는 동이족이라 못을 박고 있다.

 

일부 중국의 학자들은 지나족支那族의 변천을, ‘동이족東夷族’에서 파생된 ‘서이족西夷族’이, 정복과 복속을 통해 ‘서하족西夏族’으로, 다시 ‘화하족華夏族’으로 개량되어, 진한시대에 지금의 ‘한족漢族’되었다 하나, 염제신농 나라의 마지막 왕인 유망이 황제에게 멸망하여, 황제의 땅과 유망의 땅이 합병된 이후를 화하족華夏族이라 봄이 대세이니, 화하족은 염제신농족의 마지막 왕인 유망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파악함에 무리는 없을 듯하다.

 

상기上記한 간단한 고대 지나사서支那史書의 동이東夷에 관한 기록 외에도, ‘의고학파’의 학문적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으나, ‘고사변古史辯’에 수록된 근현대의 지나 사학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자.

 

고힐강선생, 서량지선생, 임혜상선생등이 ‘고사변’에서 주장하길, ~중국 민족의 조상은 바로 동이족이다~라고 주장함에,

양관楊寬조차도, ‘고사변古史辯’에 ~현조玄鳥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의 조상신이다(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 또,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라, 인정함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20세기 중국 역사학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고사변古史辯’의 일관된 주장은,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태호太皋(=복희伏羲씨), 제준帝俊, 제곡帝嚳, 제순帝舜, 소호少昊, 설契(은나라를 세운 탕의 선조)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하였고,

 

‘의고학파’들이 무시했던 고대사서인 ‘산해경’에서도, ~삼황오제의 8대 임금들은 숙신(단군조선의 옛 이름)에서 나왔다~라고, 기록함과,

 

‘맹자孟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下’편의,

~순은 제풍에서 나고(舜生於諸風), 부하로 옮겼으며(移於負荷), 명조에서 졸하였는데(卒於名條), 동이의 땅이고(東夷之地), 순은 동이인이다(舜東夷之人也).~라 하여, 순舜을 동이東夷의 후손으로 밝히고 있듯이, 중국의 고대 사서에서나, 많은 근현대 사학자들이 삼황오제의 시대를 동이족의 역사로 정리함도 주목해야 한다.

 

여러모로,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 측의 ‘부도지’나 ‘한단고기’가 지나의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의 인물들이 모두 한웅시대의 후손으로, 같은 계보를 가지고 대륙에 문화를 창성, 전파, 정착시킨 것으로 기록하고, 다수의 주요 인물들을 동이계통으로 정리함을 두고, 무조건 위서라 매도하고 있으나,

 

중국의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초판)에서,

~세석기細石器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細石器文化部族 最初乃居住),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今西伯利亞的貝加爾湖附近他).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們乃中國傳說中的炎帝神農氏本族)~

 

~은과 주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4천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인 황제족은 부족연맹시대에 동이東夷로 스며들었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曆法實倉始於東夷),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而且小以前便已發明)~하여, 중국의 책력법冊曆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고,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로, 그의 혈통은 은殷(=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이며,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회색 질그릇의 문화, 배와 노, 활과 화살, 음악교육 등은 중국 역사 이전에 있었던 東夷문화라고 주장하였으며,

 

‘필장복’도 ‘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문자가 만들어진 것은(中國文字之制作),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必非始于中國中原).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而係遠始于寒的北方)~며,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문화적 특성 등을 통해, 중국 인종의 시원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방면이라며, ~동방 인종의 오행五行 관념은(東方人種之五行觀念),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原係創始于東北亞洲)~는 주장을 하며,

 

왕동령王桐齡도,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라는, ‘사기史記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기록에 의거하여,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주장하길,

~4천년전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지에는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하여,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었던 고대 동이족인 구려九麗의 한 지류였던 원주민이며, 구려九麗(=구려九黎·구이九夷)의 군주가 치우蚩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묘족은 구려九黎의 후예다(苗九黎之後). 묘족들은 구려를 선조로 삼고 있다(九黎爲苗民先祖)~는, ‘예기禮記’의 기록도 있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인터넷상에 떠도는, 오늘날 중국변방에 소수민족으로 남아 있는 묘족의 치우천황을 기리는 전통 구전가요口傳歌謠를, ‘오소운’ 선생이 번역함이 있어 잠시 소개한다.

치우만가蚩尤挽歌

천고기재 영웅이신 치우 천황을, 千古奇才横空贤(천고기재 횡공현)

염제씨나 황제씨와 어찌 비하랴! 可堪并论炎皇间(가담병론 염황간)

5병기와 형법까지 친히 만드사, 五兵刑法君始点(오병형법 군시점)

구려백성 사기 높여 충천케 했네. 九黎生气冲云天(구려생기 충운천)

중원땅의 하화연맹 쳐서 이기니, 席卷中原华夏联(석권중원 하화련)

오천년의 강의물이 피로 흐르네. 血染江河五千年(혈염강하 오천년)

탁록에서 패한 것이 원인이 아님은, 英名不因涿鹿败(영명불인 탁록패)

흑석산의 고운꽃이 증언 하누나.老黑石山百花선(노흑석산 백화선)

 

이처럼, 지나인들은 많은 사서史書에 기록된 전설상의 제왕인 인물들을, 전국초기에 ‘오제五帝’라 하여 ‘오제설五帝說’을 형성하고, 전국말기에 형성시킨 ‘삼황三皇’이란 단어마저도 한대漢代에 이르러 이론화하여, ‘삼황오제설三皇五帝說’을 정립시키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날에도 의견이 분분함은, 무조건 지나의 대시 조상으로만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거나, 1980년대에 들어 요녕성遼寧省의 서부 산악지대에서, 약 5천여년 전의 대형 제단과 여신사당, 적성총군 등의 유적이 발굴되어, 출토된 유물에 의거하여, 5천여년 전에 국가의 형태를 갖춘 원시문명사회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함에, 지나 문명사를 수천여년이나 앞당기고, 삼황오제의 전설에 대해서도 일차적인 증거들을 제공해주었다고 주장하나, ‘동이東夷의 문명’이라 다툼이 분분한 형세이긴 하나, ‘삼황오제설三皇五帝說’의 현실화가 힘을 얻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어떤 족속의 대시 조상인지를 앞으로 가늠함이 난제라 하겠다.

4편

 

출처 : 성주산포럼
글쓴이 : 날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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