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육탕품(十六湯品) - 蘇廙(소이) 外

2019. 4. 3. 22:24차 이야기



십육탕품(十六湯品) - 蘇廙(소이)| 차도와 예절교실

화윤 | 조회 115 |추천 0 | 2004.06.29. 12:20

 



 십육탕품(十六湯品) - 蘇廙(소이)



   십육탕품(十六湯品)-蘇廙(소이)의 저서로서 원명은 “湯品”인데, 16종류로 나누어서 써 놓았기 때문에 16탕품이라고 한다. 이 책은 원본은 전하지 않고 송나라 때 지은 도곡이 지은 청이록 권4 명천부(茗천部)에 실려 있었다. 저술연대도 알 수 가 없다.

십육탕품(十六湯品)에서 湯은 茶를 살리고 죽이는 관건이다. 어떤 명차 일지라도 탕을 잘하지 못하면 평범한 말차(末茶)와 같은 것이 된다. 탕이 끓는 정도에 삼품(三品), 따르는 완급(緩急)에 삼품, 다기(茶器)를 표준으로 하는 오품, 나무(薪)에 오품(五品) 등 도합 16품이 있다.


제 1품. 득일탕(得一湯) : 불의 효과가 적평(適評)하며 적부족(適不足)이 없어야 한다. 즉 기울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제2품. 영탕(嬰湯) : 나무가 타기 시작해서 솥에 탕이 겨우 끓기 시작했는데 성급히 차를 넣었다가 곧 기울이는 것은 웃지도 못하는 어린이에게 어른이 하는 일을 시키는 것과 같다.


제3품. 백수탕(百壽湯) : 일명 백발탕(白髮湯). 사람이 백살을 먹으면 조쇠하듯 물도 열번 끓으면 늙어버려 본성을 상실한다. 이미 본성이 허약해진 탕수를 말한다.


제4품. 중탕(中湯) : 거문고 타는 사람을 보라. 소리가 속으로 기어들면 묘(妙)를 얻는다. 먹가는 사람을 보라. 힘이 속에서 합치면 진해진다. 탕을 따르는 데 완급(緩急)이 생기면 차는 버리게 된다.


제5품. 단맥탕(斷脈湯) : 차를 따르는 데 사람의 백가지 맥(脈)이 기복(起伏)하는 것처럼 하거나 기혈(氣血)이 단절되면 장수(長壽)할 수 없다. 차를 골고루 한결 같이 따라야 한다.


제6품. 대장탕(大壯湯) : 壯士가 바느질을 하거나 農夫가 붓을 쥐면 성공 못하는 것은 거칠기 때문이다. 한잔의 차는 二錢을 넘어서는 안된다. 잔에 육분만 따를 것이니라. 만약 쏟은 듯이 넘치게 하면 차도 도망하고 만다.


제7품. 부귀탕(富貴湯) : 금과 은을 탕기(湯器)로 쓰는 것은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탕기를 금과 은으로 만드는 것은 거문고를 만드는 데 오동나무를 쓰고 먹을 만드는 데 아교를 쓰는 것과 같다.


제8품. 수벽탕(秀碧湯) : 돌의 빼어난 기운을 울궈내어 마시는 것이다. 돌탕관에 끓인 탕을 수벽탕이라고 한다.


제9품. 압일탕(壓一湯) : 금과 은이 좋으나 손에 넣을 수 없고 동과 철은 싸지만 좋지 못하니 자기(磁器)가 마땅하다. 유현(遊絃)한 선비나 속세를 떠난 처사(處士)에게 적합하느니라. 값진 것 자랑하고 악취를 풍기는 녀석들 틈에 끼면 무엇하리오.


제10품. 전구탕(纏口湯) : 속세의 속물들이 어찌 다기를 선택하리오. 그들은 구리(銅), 쇠(鐵), 납(鉛), 백철(錫), 아무거나 쓰면 된다. 이런 것들로 탕을 해서 마시면 쓰고 떫고 악취가 풍기느니라.


제11품. 감가탕(減價湯) :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는 토기(土器)는 물이 스며들어 흙내가 난다. 다기로 토기를 쓰면 발이 부러진 말을 타고 높은 곳 오르려는 소치임을 알라.


제12품. 법률탕(法律湯) : 무슨 나무든지 탕을 끓일 수 있다. 그러나 숯이 제일 좋다. 물은 정지하는 것을 싫어하고 나무는 타는 것을 싫어 한다. 이 법을 어기면 탕은 어긋치고 차는 실성(失性)한다.


제13품. 일면탕(一面湯) : 풀을 불사른 잿불이나 나무를 태워 버린 찌거기불(허탄)은 기운이 약해서 탕이 언제나 부드럽게 되고 좋지 않다. 숯은 탕의 좋은 벗이다.


제14품. 소인탕(宵人湯) : 차는 본시 영초이어서 오기가 섞이면 그 품성을 떨어뜨린다. 분화(분화,깨스)는 화력은 좋지마는 악성이 남아 있어서 향미를 잃는다.


제15품. 적탕(賊湯) : 대나무(죽) 솜대(조)의 가지로 탕을 하면 잘 타지만 체성은 본시 허약하여 중화를 잃어 차의 적이 된다.


제16품. 대마탕(大魔湯) : 차를 끓이는 것은 탕의 선악에 좌우된다. 탕은 연기를 싫어한다. 연기는 차에게는 대마이다.

 


金承鎬譯『韓國의 茶書』秋史體硏究室 墨聆會(비매품)



                                            육탕품(十六湯品) - 蘇廙(소이)  200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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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중국의 차(茶) 산업 ⑥ | 한자한문제자백가

문문 | 조회 19 |추천 0 | 2018.02.07. 13:47


61. 중국의 차(茶) 산업 ⑥
차 산업 발전으로 육우 ‘다경’ 등 전문 서적 발간 유행
2016년 01월 06일 (수) 18:24:57박영환 p-chonan@hanmail.net


   중당(中唐)1) 이후 매년 차 따는 계절이 되면 차상(茶商)들이 차(茶) 생산지역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어, 강남에서 생산된 차(茶)를 광대한 화북(華北)지방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마차(馬車)와 배가 즐비하게 늘어서고 포장된 차엽 화물들은 마치 산처럼 쌓이게 되었다.

   특히, 수주(壽州 : 안휘성 수현), 서주(舒州 : 안휘성 잠산현), 호주〔湖州 : 절강성 호주시(오흥현)〕, 악주(鄂州 : 호북성 무창현), 기주(蘄州 : 호북성 기축현 남쪽), 면주(綿州 : 사천성 면양현), 아주(雅州 : 사천성 아안시), 촉주(蜀州 : 사천성 숙경현) 등지의 명차(名茶)들은 멀리 서장(西藏)의 티베트(吐藩)족에게까지 수출되었다.

안휘성의 기문(祁門)에서 품질이 우량한 차화(茶貨 : 차 상품)가 생산됨에 따라 전국의 차상(茶商)들은 매년 2,3월이 되면, 많은 은괴(銀塊)와 비단 등의 견직물을 가득 싣고 왔다. 이곳에 이르는 자들이 줄을 이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았는데, 그들은 은괴와 비단 등의 견직물을 팔아 차를 사서 다른 군에 팔았다. 즉, 차상들이 차를 사들이기 위해 서로 앞을 다투어 각자 물건을 이고 지고, 수레에 싣고, 배에 싣는 등 갖가지 수단을 다 동원하여 몰려들어 안휘성 기문은 매우 번거롭고 바쁜 상황이 고조에 이르렀다.

   또한 낙양(洛陽)2) 상인 왕가구(王可久)란 자는 “매년 강남(江南)과 호주(湖州 : 浙西도에 속함) 간에서 차를 팔아 항상 풍성한 이익을 취하여 돌아갔다〔歲鬻茗于江湖間, 常獲豊利而歸〕.”3)고 한다. 여용지(呂用之)의 아버지 여황(呂瑝) 또한 “차를 파는 일을 생계로 삼아, 회남(淮南)과 절강지역(절서, 절동)을 왕래하였다〔以賣茶爲生, 來往于淮浙間〕”4)고 한다.

   그 외에도 백거이“늙어 장사꾼의 아내로 시집갔더니, 장사꾼은 이익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내와의 이별은 가벼이 여기네. 지난달 부량(浮梁)으로 차를 사러 간 뒤, 오고가는 강구(江口)에서 (나만) 홀로 빈 배만 지키네〔老大嫁作商人婦, 商人重利輕別離. 前月浮梁買茶去, 去來江口守空船〕.”5)라고 쓴 시와 왕건이 쓴 “수문은 저녁까지도 열려 있어 차상들은 여전히 북적거리고, 다리 위 시장엔 밤새도록 취객들이 다니네〔水門向晩茶商閙, 橋市通宵酒客行〕”6)란 시구에는 모두 중원지구에서 차상들이 매우 번거롭고 바쁘게 활동하였음과 그 당시 차엽무역이 매우 흥성했던 사회적 정황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2) 차 전문 저서(著書)의 출현

   차(茶) 생산의 발전과 차(茶) 무역이 흥성함에 따라 차엽경제는 국민경제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게 되었다. 이에 봉건정부도 곧 차세(茶稅)를 징수하여 국가 재정 수입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았다. 이렇듯 중국 전체 사회가 차엽경제에 대해 보편적으로 중시함에 따라 이에 적응하여 전문적으로 차의 생산과 가공(加工)기술 등을 비롯한 차사(茶事) 활동에 대해 기술하는 전문서 등이 줄을 이어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다.

   세계 최초의 다서로 유명한 육우의 《다경》은 육우가 몸소 차 생활을 실천하고, 여러 분야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였으며, 수많은 고서들을 인용하여 필생의 유작으로 심혈을 기울여 써낸 작품이다.

   그 뒤로도 배문(裴文)《다술(茶述)》, 장우신(張又新)《전다수기(煎茶水記)》, 온정균(溫庭筠)《채다록(採茶錄)》, 소이(蘇廙)《십육탕품(十六湯品)》오대 전촉(前蜀) 때의 모문석(毛文錫)《다보(茶譜)》등의 차(茶) 전문 저술들이 줄을 이어 세상에 출현하게 된다. 또한 유림(儒林)의 시인(詩人)ㆍ묵객(墨客)들은 더욱 차 마시는 일을 시의 소재와 제재로 삼아 창작활동을 하게 되어 이미 당시에 음차(飮茶)를 읊조리고 찬양하는 문장들이 문단에 가득하게 되었다.

   이는 당(唐)과 오대(五代) 시기‘중국차엽경제(中國茶葉經濟)’에 있어 그야말로 공전(空前)의 발전을 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 당대(唐代) 8대 茶區7)

  
  
  

주) -
1) 초당(初唐) : 고조 무덕 원년(高祖武德元年, 618년)에서 예종 태극 원년(睿宗太極元年,712년)까지의 94년간. 성당(盛唐) : 헌종 개원 원년(憲宗開元元年, 713년)에서 대종 영태 원년(代宗永泰元年,765년)까지의 52년간. 중당(中唐) : 대종 대력 원년(代宗大曆元年, 766년)에서 문종 태화 9년(文宗太和9年,835년)까지의 69년간. 만당(晩唐) : 문종 개성 원년(文宗開成元年, 835년)에서 애제 천우 4년(哀帝天佑4年,907년)까지의 71년간.
2) 여러 조대(朝代)에서 이곳에 도읍을 정함.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 .
3) 《太平廣記)》卷172
4) 《太平廣記)》卷290 <呂用之>
5) 《全唐詩》卷435 白居易 <琵琶行>
6) 《全唐詩》卷300 王建 <寄蘆州令孤相公>
7) 도표 출처 : 당(唐) 육우(陸羽) 《다경(茶經)》 <팔지출(八之出)>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61. 중국의 차(茶) 산업 ⑥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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