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차문화 공간구성에 관한 기초연구

2019. 4. 3. 19:46차 이야기



한국 차문화 공간구성에 관한 기초연구| ▒한국의 차문화▒
 
수선화|조회 39|추천 0|2009.10.01. 17:51


 

 

한국 차문화 공간구성에 관한 기초연구


- 고문헌 분석에 의한 사적 고찰을 중심으로 -


이 재 근·,  현 영 조
(상명대학교 산업과학연구소)

  


목 차

Ⅰ. 연구의 목적과 배경 
Ⅱ. 연구의 범위와 방법
Ⅲ. 문화사 
Ⅳ. 본론
Ⅴ. 결론(대안)  
Ⅵ. 참고문헌

 

 

Ⅰ. 연구의 목적과 배경


1. 연구의 목적

   최근 차를 마시는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차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차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차문화가 행해지는 공간이 실내·외를 막론하고 제대로 갖춘 곳이 많지 않다.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전통과 중국의 차문화공간을 모방 또는 변조한 천태만상의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의 조형성도 아주 낙후된 것이 현재의 우리의 실정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차문화공간과 현대화된 한·일·중의 경우를 비교하여 현실성 있는 한국의 차문화 공간을 제시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2. 연구의 배경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중국과 더불어 차를 즐겼다.차를 마시는 것이 인간답게 살기위한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가 인간이 살아가는 훌륭한 계기가 된 것은, 중국의 육우 다경을 저술할 때부터라고 한다. 따라서 다경은 동양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最古)의 차고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사상도 불교, 유교, 도교의 정신과 연계되고 있다.


   즉, 차문화는 한·일·중을 막론하고 예의와 법도를 중요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접목시키는 차례, 다도, 다예를 합한 종합 예술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함축시키면, 「차문화란 예도예의 실천행위」라고 할 수 있으므로「예도예」를 실천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도예」를 실천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전통 차문화공간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것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차문화공간의 미래가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대부분의 차문화공간이 우리 정서에 적절치 못하므로 한·일·중의 전통적인 차문화의 지혜가 현대와 조화되어 정신문화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차문화공간의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한 배경으로, 우리의 차문화공간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형태로 조성되어 나가야 하므로 이를 연구하게 된 것이 본 연구의 배경이다.

 


Ⅱ. 연구의 범위와 방법


1. 연구의 범위
   한·일·중의 문헌에 나타난 차문화공간과 지금까지 실재 전하여 사용되고 있는 것을 범위로 한다.
 

2. 연구의 방법
   연구의 방법도 연구의 범위와 연계되어 한·일·중의 회화와 고전에 나타난 차문화공간을 토대로 공간의 종류, 형태, 기능을 확인한 후, 실내·외 공간과 조형성을 분석한다. 특히 현존하고 있는 전통적인 차문화공간과 상업적 공간을 지역별로 선별하여 케이스(case) 별로 연구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 차모임의 지도자와 직접 대화와 전화로의 설문을 겸할 수 있다.

 

 

 

 

 


Ⅲ. 문화사


1. 중국의 차 문화사
   중국의 차문화사는 당나라 육우「다경(茶經)」송나라 휘종대관다론(大觀茶論) 송나라 조여려가 지은 북원별록(北苑別錄), 그리고 당나라 소이가 지은 십육탕품(十六湯品) 등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육우의 다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茶之爲用味之寒爲飮最宣精行儉德之人」(→차의 씀씀이란 본맛이 시원한 것이라, 행실이 바르고 겸손한 덕을 가진 사람들이 마시기에 가장 알맞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중국 차문화의 정신이라고 할수 있다. 또한 대관다론」에서 차의 성질은 청(淸)을 다하여 화(和)를 일깨운다라고 하는 것 역시 중요한 다도정신이다. 그 밖에 여려, 소 이 등의 말처럼, 중국의 다도정신을 궁극적으로 중화라는 말로 종합할 수 있겠다. 특히, 대만에 위치한 불광사객당은 현대인들이 차를 마시기 위하여 현대화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2. 한국의 차문화사
   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고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 물론, 혹자는 삼국시대 이전(가야시대부터)이라는 설도 있지만, 문헌으로 종합해 볼 때, 차문화라는 것은 고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지방 이름으로 구다국(句茶國)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차가 귀중했던 것 같다. 또한, 굴뚝이 달린 이동화덕이 발달하였으며, 이는 들에서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데웠음직하다. 더구나, 고구려의 옛 무덤에서 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생전에 차를 좋아했거나, 불교나 도교와 연관이 있거나, 신도가 차를 좋아한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의 다도정신은 신라시대에 형성되었고, 그 기원은 원효대사화정사상을 기조로 한, 화랑도의 화백 사상에서 엿볼 수 있다. 또 신라시대 때는 무당이 차를 마셨으며, 가락국 김수로 왕의 왕비 허 황옥인도에서 차씨앗을 가져왔다는 전설이 있다. 서기 199년부터 차례를 거행하였지만, 신라시대에 이르러서야 다예가 정착되었다. 또한 야외중심의 음다풍(飮茶風)도 백제의 승려 행기(行基) 668년에 일본 도다이지 근처차나무를 심었으므로, 백제인들도 일찍이 음다하였으리라고 믿는데, 삼국시대의 사람들이 마신 차의 종류는 잎차, 말차, 단차였다.


   신라의 다예를 계승한 고려의 다예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융성하였다. 성종(成宗981- 987)이 풀매로 손수 말차를 제조했을 만큼, 왕실과 사원에서 차를 중시하고 즐겨 마셨다. 궁중에는 차를 취급하는 다방이 설치되고, 사원에는 차를 재배하는 다소촌이 마련되었다.  한편, 대중용 차 가게인 다점과 여행자 휴게소인 다원이 설치되었다.


   고려인들이 마신 차의 종류 역시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잎차, 말차, 단차였는데 이중에서 말차의 음용이 가장 성했다. 고려 후기 때는 승려 중심의 음다관습과 문인 중심의 음다관습이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의 음다속의 골격은 풍류와 어우러진 것이었으며, 이는 다구와 다기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조선시대에는 대중화되었다. 전통혼례에서 신부가 시부모에게 배례할 때, 손수 달인 차를 올렸고 조상제사와 명절 때, 차례를 거행하였다. 사헌부의 관리들은 일정시간에 모여 차를 마시는 다시(茶時)를 가졌으며, 궁중 연회 시 주정(酒亭)과 나란히 다정이 반드시 놓인 것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궁중의 다방에는 다색과 같은 관리를 두어, 차를 취급하도록 하였으며,각 관청에는 차모(茶母)를 두었고, 지방관아에까지 차모를 배치함으로서 고려시대의 다점이 소멸되었다. 급격한 차 수요에 비해 생산이 부족하여, 일반인들은 제사 때 차 대신 술을 사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시대를 전후해서 시작된 차문화는 고려시대에 성하다가, 조선시대 임진왜란 후 급격히 쇠퇴하고, 다시 조선 말에 번창하게 된다. 이는 누각과 정자를 중심으로 한 다정이 발달했던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산대사와 초의선사의 다선일체의 차문화 정신은 차와 선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특히, 초의선사는 그의 시 동다송과 더불어, 조선시대 차의 성인이라고까지 부른다. 초의선사는 정약용의 문하생으로 다산초당에서 수학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두류산에 일지암을 짓고 차문화 생활에 높은 경지를 이룩했다.결국 한국의 차문화는 예도예(禮道藝)라 할 수 있다.


 

3. 일본의 차문화사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의 차문화도 백제와 비슷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중국에서 805년 덴교우(傳敎) 대사가 귀국하면서 「히에이」산(比山)에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도는 송나라의 유학생이었던, 임제종의 에이사이 선사(1141- 1251) 때라 한다. 그는 유명한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지은 사람이다. 그러나, 일본의 차문화나라의 「헤이안」시대 때 쇠퇴되었다가, 「가마꾸라」시대 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무로마치」시대로 접어들면서 「무라따 슈고우(1422- 1502)와 다께노 쇼오우」에 의해 형성되었고, 「센 리쿠」가 사사 받았다. 1555년 그가 34세 때, 스승인 「다께노 쇼오우」가 죽음으로 해서, 센 리쿠는 그 후계자로서 다명(茶名)을 올렸다. 이상과 같이, 차문화는 중국의 육우가 시조라고 보여지면, 한·일·중의 차문화는 불교, 유교, 도교의 본질적인 정신인, 예도예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일·중의 차문화 정신은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본뜻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Ⅳ. 본론


1. 우리의 전통 차문화 공간의 구성과 실례


   차문화공간을 연구하려면 우리나라 차문화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차문화의 역사 고조선 시대의 선교(仙敎)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최근 (1998.8.25. 민경현 저) 발행된 「숲과 돌과 물의 문화」에서 밝히고 있다. 고조선 시대의 선가의 차문화는 삼국시대의 불가로 이어져 사찰과 궁궐에 보급되었다. 특히,신라시대에서는 화랑들의 수도과정에서 다원이 보급되게 된다. 즉, 우리나라의 전통다도는 신선사상에서 시작되어 불교사상과 접목되어 발전된다. 이와같이 다와 선이 관련되어 화랑들의 수도과정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 다원을 꾸며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 이후, 고려, 조선, 한국을 거치면서, 시대별, 계층별로 차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차문화와 차를 마시는 공간의 구성이 변모하고 있다.시대별로 공간 구성의 실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삼국시대 이전의 차문화 공간
  「삼국유사」에 보면, 가락국 수로왕의 왕후인 허 황옥(許黃玉)천축에서 차씨를 가져와 심었다는 설이 있다. 전설이긴 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차를 마셨으리라는 추측이 된다. 가락에서는 명절 때나, 제사에 차와 과자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차문화 공간으로서 궁궐을 택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2) 삼국시대
   대부분 궁에서 차회가 열리고 절에서는 헌다의식이 성행하게 되면서 차를 생산하는 다촌이 지정되기도 하였다.


①고구려시대

   고구려시대 고분에서 전차(錢茶: 중앙에 구멍이 난 엽전모양의 차)가 발견되었다. 고분에서 차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고분의 주인공이 차를 좋아했거나, 제사용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굴뚝이 붙은 화덕(도자기 제품으로 이용할 수 있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차를 준비하기 위한 생활도구라고 생각된다.


②신라

   신라의 화랑들이 사용했던 다구들이, 동해안 일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차를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돌부뚜막, 돌솥 등과 같은, 차를 끓이던 도구들의 발견은, 더욱더 확실한 근거가 된다. 특히 관동팔경 중에 하나인 경포대를 배경으로 7세기 중엽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한송정(寒松亭)은 신선도에서 유래된 화랑들의 다원으로 우리나라 다원 중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통일신라 때 경주에 한국 최고의 다실인 「다연원(茶淵院)」이 있었다. 1968년 경주 창림사터에서 「다연원」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연못을 내다보면서 운치있게 차를 마시던 다옥이다. 즉, 「다연원」은 연못 옆에 있었던 다옥이었을 것이다.


③백제
   7세기 중엽(668년) 백제의 스님 행기야외 중심의 다도를 위해, 그 씨앗 일본 도다이지(東大寺:나라)부근에 심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백제에서도 차를 즐기는 부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삼국의 차문화가 지역적으로 연계되어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중국(당과 송)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시대의 독특한 차문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상류계층부터 서민계층까지 차를 마시는 풍습이 보급되었다. 따라서, 고려의 차문화는 한국 전통 차문화의 기초가 된다. 이 시대에는 차를 마시거나 휴식하는 다점 외에 왕,고승, 부호 등 상류층 개인전용의 음다장소인 다정이 따로 있었다. 예컨대, 궁중에 다방을 두고 사원의 다촌을 두어, 외국손님을 접대하는 등, 실내·외 공간에서 차행사가 있었다. 


   또궁중 다례 속에는 「잔치 할 때, 우선 정원에 차를 달여 놓고, 연꽃 모양을 한 큰 주전자에 차를 담아들고 손님앞에 천천히 권한다」라고 쓰여있다. 고려중엽의 문장가이면서, 다인인 이 규보(1168- 1241)의 다시에 따르면, 그는 주로 여염집,절간의 방장, 산실, 모제 등에서 차를 마셨던 것 같다. 또한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이 색의 시 가운데,


得閱平安喜己多(득열평안희기다)
茶種照目便無邪(다종조목편무사)
鷄龍山下人烟少(계룡산하인연소)
坐相長江浸月華(좌상장강침월화) 


의 세 번째 글귀에서 계룡산 아래에는 인기척이 드물고…라는 내용으로 보아, 차 문화의 공간으로 야외를 이용하여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4) 조선시대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유교를 숭상했지만, 외유내불의 이중적인 사회구조를 하고 있었다. 즉, 겉으로는 유교사상을 강조하지만, 속으로는 불교사상을 숭배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이중적인 정신구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례 때는 차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김종직, 서경덕, 이율곡, 정약용, 서산대사, 사명대사, 초의선사 등 유·불을 막론하고 수많은 다인이 있었다. 물론, 차문화공간에서 학자들과 승려들의 독특한 면이기는 하였지만, 서로 교류하면서 차를 즐겼다. 아울러 일례이기는 하지만, 일제 때 일본인이 연구한 차문헌 중, 일본인 諸岡存과 家入一雄이 공동저술한 「조선의 차와 선」에 대해 분석·연구한 논문인 「조선의 차와 선의 분석적 연구」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학설로 미루어보아, 더욱더 연구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현 시점에서, 비교적 역사적이 근거가 확실한 조선의 다인들이 차문화를 통하여 발표한 시를 중심으로 시대적 특징을 조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김 종직 (1431- 1491)
   조선(세종13- 성종23) 시대의 성리학자이다. 시인, 교육자, 학자, 정치가이며, 효사상이 투철한 차인이었다. 김종직은 다원을 만든 기쁨으로 다시(茶詩)에서「…이제야 두류산 기슭에서 얻었으니 우리 주민의 고통 한가지 덜어주어 기쁘다…」(…如今得頭流下且喜吾民覽一分…)라고 한 것만 보아도 당시 부임지인 함양의 주민들에게 차세(茶稅)를 덜어주는 일을 실천하는 차인 이자 지역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② 서 경덕 (1451- 1497)
   서 화담 이라고도 하는 이 분은, 중종 때 사람이다. 그의 다시(茶詩) 「구름바위 밑에 내살 곳 마련함은…차 한잔하며 고서 뒤적이네」(雲巖我下居…閱古古書)라는 구절에서 대자연을 벗삼아 차를 마시는 것으로 보아 ,바위도 차를 마시는 훌륭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③ 이 율곡 (1567- 1608)
   조선 중엽(명종- )의 성리학자로서 이이라고도 한다.그의 다시(茶詩) 중, 「…숲에서 말차 끓이는 연기 일어나네」(…林抹茶烟起)라는 구절로 보아, 숲에서 차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④ 정 약용 (1762- 1836)
   영조(영조38년) 때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재리(지금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에서 태어난 약용은, 부모 따라 전국 주요지역을 두루 다니며 자연과 접하게 된다. 약용은 영조·정조 때 벼슬을 하다, 정조가 급서하자 파직되어,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다.[유배시절 (1801- 1818)약용은, 강진의 만덕사에서 아암 혜장선사(1772- 1811)를 만나게 된다.] 마침, 유배지 뒷산에서 차밭이 있었다. 약용은 이 때부터 차생활을 시작하고, 다산으로 호를 정한다. 차를 가꾸고 마시기도 한, 다산을 그려볼 수 있는 구절로, 그의 차시(茶詩) 중에, 「바위샘물 떠와 차그릇을 씻네…」(岩泉手取洗茶甁…)라는 구절이 있다. 그는 차를 마실 줄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라고 까지 차를 중시했다. 특히, 다산이 병약해서 차를 마실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쓴 시에서, 그의 차문화공간의 구조(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봄철에 쓰는 약 잦아지니, 절구에 곰팡이 피지 않네.  차 달이는 일 드물어져, 화로에는 고요히 먼지만 쌓이네」(頻春藥曰煩無蘇稀煮茶爐靜有塵)뿐만 아니라, 다산초당의 공간의 특징을 살펴보면, 초당내부의 조그만 사랑채에서 차를 마시고, 초당의 외부에는 정자가 확 트인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고, 초당 앞뜰에는 널따란 자연석을 놓고, 뒤뜰 쪽으로는 산에 야생화가 있어 다산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초당 좌 후면에 있는 암천에서는 맑은 다수가 솟는다.지금의 초당은 초가 대신 기와로 지붕이 덮여져 있다.


   다산 정 약용은 산정 주변을 정원화하고, 중도형 방지와 인공폭포 등을 만들어 조선시대의 전통양식을 집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산마루에 야생차를 배경으로 한, 다산초당의 분위기는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이용하여 차 도구를 씻고, 샘물을 따라 차를 울구는 모습이 초당과 정자 그리고 정원에서 계절에 따라 연계적으로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특히 다산은 19세기 초(1809- ) 장의순(1786- 1866)을 제자 겸 말벗으로 삼았다.


⑤ 서산대사 (1520- )
   서산대사는 중종(중종 15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서산이라고 부르는 묘향산에 오래 있었으므로 서산대사라고 부른다.
「…소나무 아래 돌에서 차를 끓인다.」(…煮茶松下石)
이 시에서도 소나무 아래 돌에서 차를 울구는 모습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풍류를 느낄 수있다.


⑥ 사명대사 (1544- )
   사명당은 중종(중종 39년)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명종(명종 16년, 1561년) 때 승과에 급제하고,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의승군을 지휘하여 왜군과 싸웠다.그는 서산대사와 더불어, 우리 불교사상에 큰 공적을 남겼으며, 많은 선시와 다시를 남겼다. 또한 그는 산속에서 선과 더불어 우리 불교사상에 큰 공적을 남겼으며, 많은 선시와 다시를남겼다. 또한 그는 산 속에서 선과 더불어 차를 즐기면서, 다선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차를 달이는 여가에 흰 구름을 본다네」(…煮茶餘閑看白雲)에서 느끼듯이 선과 차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조용히 생활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⑦ 초의선사
   다성(茶聖)이라고 불리는 초의(1786- 1866)는, 전남 나주 사람으로 운흥사(전남 남평)에 입산하여, 운흥사의 본산인 대흥사(전남 해남)에서 완호 선사에게서 배우고, 정 다산의 문하생으로 다산초당에서 수학하기도 했다.특히 초의는 해남 두륜산에 일지암을 짓고, 차생활에 대한 책을 저술한다. 그 중에서 동다송(東茶頌)은 그의 완벽한 차생활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할수 있다. 모두 31송으로 구성된 동다송은, 차나무의 색, 맛, 향료 등에서부터 차공간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차의 정신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동다송에서는 혼자 마시는 것을 신(神), 둘이면 승(勝), 서넛이 마실 때는 취(趣), 대여섯이면 범(泛), 칠팔 명이 마실 때는 시(施)라고 한다. 초의의 「동다송」에 의하면, 혼자서 마시는 차가 신(神)이라고 하였으니, 최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차문화에서는 물이 우선이고, 손님이라고는 달과 구름과 바람 뿐이다. 당연히 寒國의 전통적인 「차문화공간」은 자연속에서 선과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예도예의 공간을 창출하였다.

 

 


2. 한·일·중의 차문화 비교

 

 

 


1) 한국의 차문화공간

   우리의 차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지역적으로 시대와 계층별로 여러 형태의 특성을 가진 평면으로 보여진다.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의 전통적인 차문화공간은 고려와 조선을 연계적으로 연구할 필요 가있다. 궁궐과 사찰의 실내공간에서 또는 학자들의 사랑방과 승려들의 공부방과 암자… 등에서 이루어졌다. 일례로 남해지방다촌 마을에 전해지는 민요 가운데 「…늙은 부모 고기 생각 사랑방은 작설 생각…」라고 하는 노래가 있다. 다촌 사람들의 단합을 호소하는 민요지만, 차문화공간으로 사랑방이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다정다원을 만들고, 자연속의 일부로서의 차문화공간을 사용하였다.다시 말해서, 불교와 유교가 차를 매개체로 학문과 선과 풍류를 실내·외의 차문화공간에서 만끽하였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정약용다산초당초의일지암(一枝庵)은 그 대표적인예이다.

   서양음료문화의 유입으로, 우리의 차문화가 점차 잊혀져 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공간이 요구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정신이 담겨 있는 찻자리인 것이다. 한국의 현실은 전통과 현대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차문화공간 모델의 제시가 요구되고 있다.

 

 

 

 

 

 

 


2) 일본의 차문화공간
   일본의 차문화는 일반적으로 옥외보다는 옥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물론 차수옥외공간인 샘터에서 얻지만, 차를 준비하는 공간은 실내를 활용한다.일본의 전통건축 중에서도 차실은 가장 일본적이다. 일본의 차문화공간인 다실①죠- (疊:ジヨウ) ②다이메(臺日:だいめ) ③갹꾸죠- (客疊:きやくじよう) ④테마에죠- (点前疊:てまえじよう) 또는 도- 구죠- (道具:どうくじよう) ⑤로(爐:ろ) ⑥도꼬노마(床の問:とこのま)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도, 손님이 드나드는 곳과 주인의 출입구가 다르다.


   일본의 대표적인 찻집안을 예로 든다면, 우라센께(裏千家:うらせんけ)유- 인(又隱:ゆういん)곤니찌안(今日庵:こんにちあん)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일본도 서양의 영향을 받지만, 주택이나 영업장소(로깡, 호텔…)에서의 차문화공간은 전통과 현대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현대화된 차문화공간은, 가장 일본적인 건축미를 새롭게 창출하고 있다고 할 수있다.

 

 

 

 

 


3) 중국의 차문화공간
   중국은 본토와 대만의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전통적인 차문화와 현대적인 차문화가 생활화되면서, 두 지역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중국의 차문화는 신농씨 운운…하지만 약 5000년 전, 문명이 시작한 이후, 한, 당, 금, 원,명, 청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와 유교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공자유어예(游於藝)적인 생활방법을 삶의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중국은, 그 모습이 차문화공간에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지역의 고급상업시설과 공원에서 그들의 모습을 흔히 볼수 있다. 자연 속에서 차를 즐기는 모습은, 중국도 우리의 과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의 일예이긴 하지만, 불광사 객당의 차문화공간은 전통 차문화공간을 헌대화하였지만,그들이 추구하는 생활 차공간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Ⅴ. 결론 (대안)


   차문화는 차 자체에 대한 연구와 도구, 그리고 물에 대한 관심이 어우러져 추구되는 생활양식이다. 차란, 처음부터 법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차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예도예의 철학적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우선 차생활문화는 허세보다 실리적인 생활철학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중국에서는 좋지 않은 물과 기름진 식사를 보완하는 기호식품의 역할이 컸다. 또한 차문화가 늦게 발달한 일본에서는 15세기 귀족과 무사들의 놀이문화로 시작하여, 다도인 들에 의해, 불교적 수양을 예능화시킨 음료문화가 되어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과 거의 같은 시대에 차문화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와 조선의훌륭한 차문화에 비하면,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한국의 전통 차문화는 중국 차문화를 모방하거나 재구성한 것과 우리만의 독창적인 차문화가 있다.

 

   현대의 차문화공간은, 상업적인 사고가 한·일·중의 차문화에 작용하면서, 엄청난 허세가 노출되고 있다. 즉, 작금의 차문화정신 결여 잘못된 생활태도가 차문화공간에 엄청난 오류를 범하면서, 차문화에 대한 우리인식은 점차 왜곡되고 있다. 차인은 모름지기 자유인이어야 한다. 차의 법에 정법은 없다. 차인의 생활은 오히려 일상의 생활에 뿌리내린 것이어야 한다. 거짓이 없고 허세가 아닌 차생활이어야 한다. 따라서 차생활공간은 실과 응접실 또는 자연과 정원에 딸린 차 시설물과 조형물, 그리고 다도구와 다기를 씻는 곳과 환경에 연관되어 차의 정신이 실천되는 장소이어야 한다. 더구나, 차문화공간에서 사용되는 그릇(다기)를 중국식이나 일본식의 잣대로 가늠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다기의 감상법은 우리의 정서에 의한 우리의 독창적인 멋을 찾아야 한다. 이런 것까지도 차문화공간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차문화공간은 예도예의 정신문화가 이 시대에 공간하는 예술적 공간이어야 한다.

 


 

 

 

 

 

 


 

 

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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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우리의 차문화와 그 특징 【문화와 나, 김대성, 1999.5.6 , 삼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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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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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中國茶文化【江西省中國農業考古硏究所·江西省社會科學院歷史硏究所, 1993.4, 江西省中國農業考古硏究中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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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い【川合由記, 1997. 2. 7, 千葉工業大學工業デザイソ學科】
7. 彦根藩井伊家煎茶席「樂園樂間」の室內意匠【內藤昌外3人, 1997. 10, 日本イソテリア學會】
8. 加賀藩前田家煎茶席「三葉亭」の室內意匠【內藤昌外2人1997. 10, 日本イソテリア學會】
9. 空間の多元的場の展開【渡邊有子, 1992.11, 日本イソテリア學會】
10. 茶室空間入門【船越徹外, 1995. 5.10,】
11. 茶室平面集【岡田孝男, 1992. 2. 25

 

009.10.01 | 카페 > Daum카페  http://cafe.daum.net/dasunm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