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5. 11:06ㆍ여행 이야기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 문화
아레스
동의어 증오와 파괴의 싸움꾼
어원과 태생
아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Ares’, 로마 신화에서는 ‘Mars’로 칭한다. ‘Ares’의 어원은 ‘불행’, ‘재앙’을 뜻하는 ‘are’라고 알려지며, ‘저주’를 뜻하는 ‘ara’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또한 재앙을 상징하는 붉은 별 화성(火星)에 아레스의 로마식 이름 ‘Mars’가 붙여진다. 아레스는 재앙, 불행, 저주를 잉태하는 전쟁의 신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로 알려져 있으나, 헤파이스토스와 마찬가지로 어머니 헤라가 홀로 낳았다는 설도 있다. 아레스는 야만의 땅이며 저주의 땅으로 평판이 나 있는 그리스의 북부 지방 트라키아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
전쟁의 신
아레스는 전쟁의 신이다. 그는 불화, 분쟁, 공포, 걱정을 상징하는 에리스, 에니오, 포보스, 데이모스 등을 대동하고 다니며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싸움꾼이다. 『일리아스』에서 아레스는 “미치광이”, “악의 화신”, “파괴자”, “피투성이의 살인마” 등으로 묘사된다. 제우스도 자식 중 그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다. 트로이 전쟁에 함부로 끼어들었다가 부상당한 채 징징거리며 돌아온 아레스에게 제우스가 호통을 쳐댄다.
“이 변절자여, 나는 올림포스의 신들 중 네가 가장 밉다. 너는 전쟁과 싸움질밖에는 모르는구나.”
같은 전쟁의 신이면서도 아레스는 아테나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아테나의 전쟁이 전략적이라면, 아레스의 전쟁은 맹목적이다. 아테나가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을 구사하는 지휘관이라면, 아레스는 그저 싸우고 죽이는 것 밖에 모르는 투사와 같다. 아테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지만, 아레스는 싸움 그 자체를 즐긴다. 아테나는 머리로 싸우지만, 아레스는 창칼로 싸울 뿐이다. 그래서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으로도 불리지만, 아레스는 전쟁의 신으로만 알려진다. 그는 항상 갑옷과 투구, 창과 방패로 완전 무장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레스는 인간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을 상징한다. 그의 마음은 항상 증오, 분노, 원망, 불평, 짜증, 저주, 질투, 심통, 복수심 등 격하고 악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쉽게 폭발시켜 버린다. 아레스는 같은 부모를 둔 유일한 형제인 헤파이스토스와는 너무나 다른 길을 간다. 마음속 깊이 끓어오르는 감정의 불덩어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두 신은 닮은꼴이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는 이 불덩어리를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서 예술가로 거듭나지만, 아레스는 이를 파괴적 에너지로 폭발시켜서 폭력배로 전락한다.
아테네 시에는 두 신이 남긴 유적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헤파이스테이온과 아레이오스 파고스이다. 헤파이스테이온이 대장장이 신의 예술의 혼과 장인 정신을 기리는 장엄한 신전이라면,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살인자를 심판한 법정이다. 아레이오스 파고스는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레스는 자신의 딸을 겁탈한 포세이돈의 아들을 때려죽인 혐의로 이곳에서 올림포스 신들로부터 심판을 받는다. 물론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기는 하지만 아레스는 신들 중 유일하게 법정에 서는 불명예를 얻는다. 한마디로 그는 ‘문제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프로디테의 정부로서 여신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초라한 예술가’ 헤파이스토스를 저버리고 ‘화려한 폭력배’ 아레스를 향했던 아프로디테의 마음은 ‘사랑이 언제나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웅변해 주고 있다.
아레스의 자식들도 아비의 폭력성을 닮았다. ‘공포’와 ‘걱정’을 뜻하는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악당 키크노스(Kyknos)와 플레기아스(Phlegyas)도 아레스의 자식들이다. 키크노스는 델포이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행인들을 습격하여 살육을 일삼다가 헤라클레스에 의해 처단된다. 플레기아스는 델포이로 가는 참배객에게 씨름을 걸어 죽이는 악당이다. 이번에는 아폴론이 같은 수법으로 악당을 죽인다. 트라키아의 왕 디오메데스(Diomedes)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 죽여 자신이 기르는 말먹이로 삼는 흉악범이다. 이 자 역시 아레스의 아들로서 헤라클레스의 철퇴를 맞는다. 호전적인 여전사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Penthesileia)도 아레스의 딸이다. 그녀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음을 당한다.
포세이돈의 괴물 자식들처럼 아레스의 악당 자식들도 ‘이성의 신’ 아폴론과 ‘정의의 사도’ 영웅들의 손에 사라져가고 있다. 무자비한 야만성과 폭력성이 이성과 정의의 힘에 제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을 신봉하는 그리스인들은 절제되지 않은 폭력성을 드러내는 아레스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를 심판한 아레이오스 파고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신전이나 기념물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아프로디테와의 질펀한 애정 행각 외에는 신명나는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로마의 마르스는 경우가 다르다. 로마인들은 그를 최고신 유피테르(주피터)에 견줄 만큼 사랑했다. 마르스는 전설적인 로마의 창건자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싸움꾼’의 피를 이어받고,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난 쌍둥이를 조상으로 둬서 그런지 로마인들은 살육과 정복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남기고 있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마르스가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통해서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의 본성을 식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을 깔아뭉개고 싶은 못된 마음을 가슴 깊이 품고 있다. 공격성과 경쟁심이 어우러진 검은 욕망이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욕망을 올림픽 경기로 승화시켜 인류의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남긴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이것을 적나라하게 표출시켜 검투사들의 ‘피의 향연’으로 즐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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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학박사. 신화 연구가.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신화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원형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문화의 이해’ ‘신화 구조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아르고호의 모험』이 있고, 평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이 있다. 저서로는 『신화, 세상에 답하다』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문화』(공저)가 있다.접기
출처
수천 년 동안 서양의 문학, 심리, 미술, 음악, 철학, 건축 등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그리스 로마 신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올림포스 신족, 인간 심리, 사랑, 여성 등의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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