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뻗은 돌길 오르니, 자애로운 미소가…경주 남산

2019. 11. 22. 00:00여행 이야기


하늘로 뻗은 돌길 오르니, 자애로운 미소가…경주 남산 

 



   대구에 앞산이 있듯 경주 남쪽에 남산이 있다. 남산이라는 지명은 지역마다 있지만 대표적인 곳이 서울 남산과 경주 남산이다. 이름에 정성이나 불심은 없다. 이래 봬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역사유적지구다. 산 전체가 거대한 문화재란 소리다. 남산 찬가를 한둘이 부른 게 아니다.

산행 목적으로 보자면 돌산이다. 높지 않으나 널따랗다. 동서로 4㎞, 남북으로 8㎞다. 펑퍼짐하게 퍼져있어 언덕인가 싶으면 그렇지도 않다. 남산 주변으로 가지처럼 뻗어있는 경주의 자연 관광지는 이야기가 있어 다채롭다.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남산 산책 아니죠, 산행이죠.

   오르기 만만해 보이는 남산이다. 가장 높다는 두 봉우리 금오봉(468m)고위봉(495m)의 해발고도가 500미터가 채 안 된다. 콧방귀부터 뀌고 누구나 덤비기 쉽다. 남산 산책이라고 부르니 말 다했다. 하지만 넓게 퍼져 있어 코스마다 난도가 다르다. 특히 용장골~고위봉 이무기능선은 가벼운 산행이라 했던 자를 심문하고 싶을 정도다. 등산화 없이 올랐다가는 낭패다.



남산 입구 삼릉 주변 소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서 있다. 삼릉은 사진작가들의 출사 성지로 꼽힌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남산 입구 삼릉 주변 소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서 있다. 삼릉은 사진작가들의 출사 성지로 꼽힌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서쪽 남산이라 해서 서남산이라 불리는 삼릉이 시작이다. 뻥 뚫리는 들숨이다. 솔향기가 일품이다. 잊고 있던 감각이 돋아난다. 명불허전 소나무 숲이다. 쭉쭉 뻗은 금강송도 매력적이지만 구불구불하게 자란 소나무의 멋이다. 애잔함이다. 고초를 견뎌온 모양새에 숙연해진다. 그 매력을 탐하는 사진작가들이 몰린다. '소나무 앵글의 교과서'라는 별칭이 붙어 사진 좀 찍는다는 이들에겐 단골 출사지로 인식되고 있다.

   세 개의 왕릉이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이라 추정한다. 멀지 않은 곳에 신덕왕의 아들이자 경명왕의 동생인 경애왕이 자살한 곳, 포석정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는 연결고리를 만든다.

   남산을 오른 지 오래지 않아 '냉골석조여래좌상'을 만난다. 옷 주름과 선이 현실적이다. 불상 위에 옷을 입혔다 조각해 다시 옷을 벗긴 것처럼 세밀하고 자연스럽다. 슬프게도 목이 잘려나가고 없다. 손도 뭉개져있다. 1964년 계곡에 묻혀있던 것을 찾아낸 것이라 한다.

   남산에는 어디든 부처가 있다. 당시 석공들은 바위를 종이삼아 탱화를 그리려 했는지 모두 돌을 재료로 삼은 석불이다. 돌에 새긴 부처, '마애불'이라는 이름이 죄다 붙은 이유다. 하긴 탱화였다면 1천년 넘는 세월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석불에 남은 선도 대개 선명하지 않다. 묘선을 이끼가 덮었다. 세월의 채색이다. 설명이 없으면 단박에 알아볼 수 없을 부처다. 눈으로 선을 그린다. 그리고는 멀찍이 떨어져 윤곽을 이어 붙인다. 퍼즐 맞추듯 본래 모습이 완성된다. '선각육존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너럭바위 두 곳에 여섯 불상이 새겨져 있다.

 

◆바위 뚫고 나올 듯,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경주시내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상선암을 지나 금오봉 쪽으로 좀 더 올라야 한다. 바둑바위까지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는 곳이라는 바둑바위인데 평평한 전망대다. 형산강을 비롯해 김춘추의 처형, 보희가 오줌을 눠 서라벌을 잠기게 했다는 선도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바둑바위 인근에 '금송정 터'라고 있다. 통일신라의 악성 옥보고가 거문고를 타며 즐기던 곳이라 한다. 금송정이 있었다는 이곳 바로 아래에 높이 6m의 바위 불상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금송정이 남아있었다면 아래위로 볼 만했을 것이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바로 앞에서 보는 것보다 거리를 두고 보는 게 훨씬 신비롭다. 6m 높이다보니 가까이서 볼수록 전체가 한눈에 안 들어온다. 특히나 올해 말까지는 출입 통제기간이다. 주변 암벽이 풍화로 균열과 파손이 진행돼 낙석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낙석 위험으로 자주 통제되기에 전체적으로 잘 보이는 포인트를 찾는 게 숙제다. 고생하지 마시라고 알려드린다. 금오봉 가는 길로 300m쯤 더 가다 뒤를 돌아봐야 한다. 바닥만 보고 걷다간 놓치기 쉬운데 안내판이 친절히 대기하고 있다.

바위 속에서 부처가 나오는 듯한 모습이다. 부처의 얼굴은 바위에서 반쯤 튀어나왔고 아래로 갈수록 선으로 그려 몸은 바위에 있다. 만들다 귀찮아서 얼굴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입체감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는 걸 석양이 깔릴 때 제대로 알 수 있다. 합장이 절로 나온다.

 

◆신라 경애왕은 뭐 하다 죽었나, 포석정

전복 모양을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라는 포석정. 신라 경애왕이 죽음을 맞은 곳으로 사용 목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전복 모양을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라는 포석정. 신라 경애왕이 죽음을 맞은 곳으로 사용 목적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서남산의 이야기보따리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포석정 경애왕의 최후다.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에게 죽임을 당한, 견훤이 경애왕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한 곳이다. 연회 장소라는 추정 때문에 흥청망청하다 신라가 망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제례의식을 행하던 곳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왕건의 원군을 기다리며 신라의 국운을 빌던 차에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최후를 예감한 왕은 정신승리 혹은 기적을 바랐을 것이다.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면 나가서 싸우지 않았을까. 이미 신라의 영토는 경주 인근에 한정됐고 국력이라 할 것이 없었다. 1천년의 제국, 비잔틴제국이 오스만제국에 최후를 맞는 때와 닮았다.

멀리서 보면 전복껍데기처럼 생겨 포석정의 '포'는 전복 포(鮑)를 쓴다. 개당 22cm 길이의 화강암 63개로 이어 만들었다. 물을 채워 흘렸고 그 위에 술잔을 띄웠다고 한다. 술잔이 떠내려갈 때 술잔이 기울어지거나 벽에 부딪히지 않았다고 한다. 수로의 깊이를 정확히 측정해 술잔이 천천히 떠내려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포석정이 제례의식을 행하던 곳이었다는 주장에 힘이 빠진다. 눈금을 재가며 폭탄주 만드는 것과 비슷한데 요즘 말로 '쓸고퀄(쓸데없이 고급 퀄리티)'이다.

 

◆동남산의 미니수목원, 경북산림환경연구원

경북산림환경연구원 내 메타세쿼이아 숲길. 쭉쭉 뻗은 나무들만 보면 영화 트와일라잇의 배경처럼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경북산림환경연구원 내 메타세쿼이아 숲길. 쭉쭉 뻗은 나무들만 보면 영화 트와일라잇의 배경처럼 보인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동쪽에 있는 남산으로 넘어온다. 작은 수목원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는다.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이다. 호기심이 아니라 본능에 끌리듯 자동차 핸들을 돌린다. 다양한 수종의 단풍들과 만날 수 있다. 경상북도가 추천한 가을 여행지다. 산림 환경 조사, 산림 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등 산림을 연구할 목적으로 조성한 이곳은 몇 년 전부터 단풍 관광지로 떠올랐다.

특히 '통나무 다리'는 포토존으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최근 국내 제3호 국가정원 유치를 목표로 경상북도가 화랑정원 조성 공사에 들어가면서 사라졌다. 아쉽지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썩어도 준치라 했다. 썩기는커녕 여전히 눈을 호강시키는 나무와 숲길이 퍼져 있다. 단 한 곳을 꼽으라면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길고 뾰족한 메타세쿼이아 잎이 깔려 푹신푹신하다. 눈길을 밟는 기분만큼 독특하다.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 길은 바깥에서 봐도 눈에 띄지만 '우와, 저게 뭐야'라며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몰려 있어 놓치기 어렵다.

 

◆오랜 이야기의 시작, 서출지

   서출지는 조용한 곳이다. 물리적 공간이라고는 작은 연못과 그에 붙은 정자가 전부다. 풍경이 화려하지도 않다. 200m가 채 못 되는 둘레길이다. 늦가을 서출지는 빈약하다. 잎이 다 떨어진 배롱나무의 앙상한 나뭇가지가 노파의 뼈처럼 가늘게 드러나 있다. 갈대가 못 가장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화려하진 못하다. 겨울이 목전에 있다는 표시다. '이요당'이라는 오래된 건물이 풍경의 적요를 깨준다.


늦가을 서출지는 연꽃도 모두 져 갈대만 가득하다. 이요당이 서출지 주변의 고요한 적막감을 깨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늦가을 서출지는 연꽃도 모두 져 갈대만 가득하다. 이요당이 서출지 주변의 고요한 적막감을 깨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서출지 주변을 맴돌며 오랫동안 까마귀가 울어댄다. 까마귀도 이제 어엿한 텃새인가 싶다가 문득 서출지 이야기의 주연인 까마귀를 떠올린다. 까마귀가 영물 본능을 보인 이야기다. 현대적 웅장미가 물씬 풍기는 통일전을 옆에 둬 왜소해 보이는 연못이지만 1천500년 전 반전 스릴러의 무대였다. 불륜과 복수, 정의 실현이라는 주제의 서출지 이야기로 각색됐다.

   '왕이 행차하시는데 까마귀가 몰려들어 난리였다. 무사들이 까마귀를 쫓아 따라간 자리, 그 연못이 서출지였다.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편지를 전한다. '편지를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고,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는다.' 열어본 편지에는 '사금갑'(射琴匣, 거문고 집을 쏘라)이라 쓰였다. 왕은 궁으로 돌아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집을 향해 활을 쐈다. 거문고 집에서는 한 승려가 화살을 맞고 굴러 나왔다.'


   예언서(편지)가 나온 곳이라 서출지(書出池)다. 488년 신라 소지왕 10년, 왕이 선혜황후를 폐한 실제 기록과 서출지 설화가 합쳐진 이야기다. 정월 보름이면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 풍속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동안 까마귀는 억울했다. 우리의 오랜 이야기들 속 까마귀는 악행의 화신으로 분류됐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문경새재에서 왜군을 도와준 만행, 허수아비 병사를 세워놓은 조선군의 속임수에 왜군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까마귀가 허수아비 위에 앉아 머리를 쪼는 등 가짜임을 알려 척후병 노릇을 한 것 때문에 연좌제라 불러도 무리가 아닐 만큼 오랜 기간 증오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24일 폐막하는 2019경주세계문화엑스포

올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인기 공간으로 주목받은 '천마의 궁전'에서 펼쳐진 미디어 아트의 한 장면. 꽃길만 걷게 해준다는 듯 관람객이 움직일 때마다 꽃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올해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인기 공간으로 주목받은 '천마의 궁전'에서 펼쳐진 미디어 아트의 한 장면. 꽃길만 걷게 해준다는 듯 관람객이 움직일 때마다 꽃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경주는 어디를 가든 평타를 친다지만 세계문화엑스포공원도 가볼 만하다. 올해 세계문화엑스포 폐막일인 24일까지 전시·공연 등 20여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물론 엑스포 기간이 지나도 일부 시설은 상설전시실로 운영된다.

아파트 25층 높이의 경주타워에서 내려다보는 보문단지와 마지막 기력을 다해 짜내고 있는 주변 산의 단풍색이 일품이다. 경주시내 전체가 고도제한 구역인 탓에 고층 빌딩이 없어 82m 높이는 최고의 전망대가 된다.

사진명소로 통하던 엑스포공원의 연못들은 계절적 영향을 받는다. 경주타워 뒤편 '연지'는 수령 500년 아름드리나무와 아담한 다리가 자연색의 극치였지만 계절을 이길 순 없다. '아평지'는 그나마 낫다. 솔거미술관 제3전시실의 '움직이는 그림' 속 배경이다 보니 실내에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