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8. 20:57ㆍ詩
고운기 시인 소개 詩 책과 나 비빔밥 꿈에 귓밥을 파다 끼니 소가 아니라도 웃을 일 오줌 담배 10년 익숙해진다는 것 혼자 살다보니 가을 햇볕 산다는 건 눈치 채점 三田 문명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수화手話를 하지 않는 수화시간手話時間 새 터 나무는 바람을 만들고 가을 햇볕 할머니, 그것은 거짓말이었어요 빈방 약간의 오버 제비 강철의 발걸음 호수 예수가 우리 마을을 떠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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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기 시인 소개
대학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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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예쁜 여자 훔쳐오듯 데려와 살았다
어느새 방 하나를 요구한다 저의 방 하나 마련하려 살아가는 나날이다
한때는 요행히 방을 준 적도 있었다 정중히 헤어질 것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남의 집에 저를 맡겨두고 먼 데로 떠돌거나 가끔씩 들러 눈을 맞춰보기도 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정 깊어진 여자
하기야 깊이 사랑하고 자식을 낳기도 하였다 드디어 늙어서는 먼지만 쌓인 네 몸뚱어리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챙긴다
다시 욕구가 생길 때는 새 여자보다 헌 네 몸을 탐하게 될까
자식을 얻겠다는 생각은 웬만큼 사라지는 나이.
ㅡ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 2008.
~~~~~~~~~~~~~~~~~ 비빔밥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가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ㅡ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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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귓밥을 파다
한 움큼 귓밥을 파냈다 했더니 꿈 잘 푸는 마누라, 구설수口舌數에서 풀려날 조짐이라나
세상에 나와 세상에 이름을 알린 죄만으로도 입방아감이지 나는, 두 눈 뜨고도 차를 잘못 갈아타고 햇살 같은 계집아이들 종아리에 계단을 헛디디고
먼지야, 귓구멍 속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나를 간질여 어디로 데려가려고
먼지야, 밥이 되지 않는 먼지야
더러 헛디뎌 넘어져도 더러 의아疑訝한 정류장에 내려서서도 나를 찾아갈 어디가 있는 듯 두리번거릴란다 나는 돌아갈 어디를 아는 듯 태연할란다
자전거 타고 오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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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멀쩡한 제집 두고 때 되어도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은 茶飯事다반사 도대체 집은 뭐하러 있는 거야? 아침은 얻어먹고 사냐는 질문도 굳이 마누라 타박할 問法은 아니지 차라리 못살았다는 옛날 생각이 나는 거야 새벽밥 해 먹고 들일 나가 날라오는 새참이며 점심 바구니 끼니마다 집에서 만든 밥 먹던 생각 그것이 힘의 원천 저녁이면 큰 상 작은 상 각기 제몫의 상에 앉아 제 밥그릇 찾아먹은 것이 좋았다는 생각 무슨 벼슬한다고 이 식당 저 식당 돌아다니며 제 그릇 하나 찾아먹지 못하고 사노 먹는 게 아니라 때우면서 만주벌판 독립운동이라도 하나 멀쩡한 제집 두고 밖으로만 나다니면서
ㅡ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 창작과비평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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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아니라도 웃을 일 ㅡ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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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어려서 우리 옆집 할아버지는 내 오줌을 받아먹었다, 무슨 병이었는지 어린아이의 깨끗한 오줌이 약효가 있다 했다 동네 아이들 중에서 내가 선택된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이라도 드러낼 만한 자랑은 아니지만 세상에, 내 오줌으로 사람을 살린다니
술을 많이 먹고 난 아침 당뇨 낀 내 오줌은 아무에게도 쓸모없겠다 어느덧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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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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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진다는 것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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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다보니
마침 일요일 아침에 날씨가 화창하면 오늘 빨래하기 좋은 날이군, 한다
-날씨가 좋아서 빨래를 갔더니만 모진 놈 만나서 돌베개 뱄다네 덩기 둥당에 둥당덩*
옛날에 부르던 그런 노래도 흥얼거려보며
반짝 햇빛이 주어졌을 때 재빨리 내 몫만큼 챙겨야 마른 옷을 입지, 한다
-날씨가 좋아서 나무하러 갔더니만 모진 년 만나서 무르팍 까졌네 덩기 둥당에 둥당덩*
모진 놈 못 만나 빨래만 하고 모진 년 못 만나 나무나 하면서.
* 전남 해안 지방에서 널리 불리는 민요 '둥당에 타령'의 일 절. 가사를 변개해 가며 선후창先後唱으로 흥겹게 부른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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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볕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오래 흘러온 강물을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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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눈치
채점
三田
문명
귀족들 마차가 거리를 메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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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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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바람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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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볕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오래 흘러온 강물을 깊게 만들다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여고 2학년 저 종종걸음 치는 발걸음을 붉게 만들다, 묽그스레 달아오른 얼굴은 생살 같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다 그리하여 늦은 오후의 가을 햇볕은 멀어지려 해도 멀어질 수 없는 우리들의 손을 붙잡게 하고 끝내 사랑한다 한마디로 옹송그린 세월의 어느 밑바닥을 걷게 하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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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그것은 거짓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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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문을 열었을 때 함께 들어온 바람이 방 안을 먼저 살핀다. 어둠 속의 냉기冷氣 - 어쩐지 낯익은 듯 둘은 문득 몸을 섞는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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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오버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 창작과 비평사 ~~~~~~~~~~~~~~~~~~~~~
제비
2004년 6월 27일이었다 전북 고창군 미소사 요사채의 처마에 새끼 네 마리를 낳은 제비 부부와 만났다 밤이었다 일본의 옛 노래를 공부한 선생이 나지막이 불렀다 서기 6세기 귀족의 노래 -그대가 떠난 궁정에 그대의 옷자락 휘날리던 바람만 남았네* 제비 부부는 새끼들에게 둥지를 내준 채 처마 밑 전깃줄에 앉아 자는데 머리는 둥지를 향하고 있었다 궁정을 떠나듯 둥지를 버리리라 전깃줄만 남을 것이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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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手話를 하지 않는 수화시간手話時間
새 터
더러 강물은 바람에 일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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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졸아라 ~~~~~~~~~~~~~~~~~~~~
강철의 발걸음
호수
호수 앞에 앉으면 안경을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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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우리 마을을 떠나던 날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ㅡ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고운기 시인 소개 2011.10.14
cafe.daum.net/birdofnest/5vxm/205 천지문학 천지시낭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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