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글씨의 흐름 (삼국시대-고구려)

2019. 11. 26. 01:01글씨쓰기



우리나라 글씨의 흐름 (삼국시대-고구려)|서예통론

하전|조회 57|추천 0|2015.06.02. 14:22http://cafe.daum.net/bbhy0003/S1GN/31 

 

 

 p259-263

우리나라 글씨의 흐름

삼국시대(三國時代)의 글씨

 

 

  삼국시대의 글씨는

중국글씨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이기는 한 것이지만

그 예술성의 정도는

그 당시 중국의 수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과감히 말하면 중국의 것보다

더 뛰어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고구려는 고구려대로 백제 신라도

마찬가지로 각각

그 독특한 고유성을 견지하고 있다.

 

 

 

 

p260

고구려(高句麗 BC37-AD668)

 

 현존하는 고구려의 글씨 유적은

종류가 다양하다.

마애비. 각석. 묵서. 호우(壺杅),

명문(銘文) 등이 그것이다.

 

 

호우(壺杅) ; 병과 사발 ?

명문(銘文) ; 금석(金石). 기물(器物) 등에 새겨 놓은 글

 

 

 

 

 

광개토호태왕비(廣開土好太王碑)

 

 

 이 비는 1882년에 발굴되기까지 천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혀 있었다.

현재는 중국 집안현(輯安縣)에 있다.

이 비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서예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비문글자의 획의 형태나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비의 형식

그리고 크기에 있어서

중국의 어느 것과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것이다.

고구려인의 기상을 대변해 주는

우리의 자랑거리이다.

연호는 고구려의 독자적인

‘영락(永樂)’을 쓰고 있어

고구려의 자주의식을 엿보게 한다.

서체는 고예(古隸)에 속하며

‘개(開)’자 같은 것은 초서의 형태로 썼는데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창(獨創)이다.

특히 글자의 획이 훈민정음 반포당시의

정음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고예(古隸) ; 팔분(八分)에 대하여 보통 예서 (파가 없는 예서)

 

훈민정음(訓民正音) ; 1443년 세종대왕(世宗大王)이 집현전 학자(學者)

                             정인지(鄭麟趾),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등의 도움을 얻어 창제(創製)한, 우리나라 국자(國字)를

                             반포(頒布)함에 있어서 이를 해설한 책


정음체(正音體) ; 한글 창제 직후에 나온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동국정운>> 등의

                       판본에 쓰인 글자를 기본으로 쓴

                       붓글씨의 글자꼴이다.

                       오래 된 글씨체라는 의미에서

                       고체, 또는 훈민정음을 본받아 쓴 글씨라는 의미에서

                       정음체라고도 불린다.

 

 

참고 도판

확대 본



 

광개토왕호우(廣開土王壺杅)

 415년 (장수왕 4년)

높이 19.4cm, 깊이 10cm, 지름 24cm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140호분(호우총)

국립중앙박물관 소재

 


참고 도판

 




 

평양성각석(平壤城刻石)

 평양성을 축조할 때

이용한 돌에 공사와 관련된 사실을 새긴 것.

남문동각석(南門洞刻石), 경상동각석(慶上洞刻石),

해운동각석(海雲洞刻石) 등 세 개가 전한다.

글씨는 북위 정희하비(鄭羲下碑)를 가늘게

새겨놓은 듯 한 필치이다.

글자를 축소해보면

마치 경필로 쓴 것 같이 보인다.

 

 

참고 도판




p262

모두루묘지명(牟頭婁墓誌銘)

 이 묵서(墨書)는

지금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太王鄕)에 있다.

호태왕의 신하인 모두루의 현실 입구

문지방에 해당되는 부분과 좌측벽면에

정간 선을 긋고 약 800자를

먹으로 직접 쓴 것이다.

글씨는 행의를 띤 해서인데 경묘(輕妙)한 필치이다

획의 태세(太細)의 변화가 많은데

특히 파임은 살찌고 끝은 뾰족하여

그 풍격이 마치 목간을 보는 것 같다.

이 또한 중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태세(太細) : 대단히 세밀하다?

경묘(輕妙) ; 경쾌하고 교묘함



참고 도판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

 1979년에 충청북도 중원군에서 발견되었다.

광개토대왕비를 축소한 것 같은 형태의

방주형(方柱形)의 것이다.

풍마우세(風磨雨洗)에 마멸이 심하다.

글씨는 고예(古隸)로 해의(楷意)를 띠고 있다.

국보 205호로 지정되었다.

 

방주형(方柱形) ; 네모진 기둥형의 모양 ?

풍마우세(風磨雨洗) : 바람에 깎이고 비에 씻김 ?

해의(楷意) ; 해서와 비슷한 느낌의 글씨?

 


참고 도판




前面(전면)



좌측면(左側面)과

우측면(右側面)




확대본



그외

籠吾里山城磨崖刻石(농오리산성마애각석)



참고문헌;  서예통론 인터넷 사전, 이천월전시립미술관 판, 운림당 출판 도서참고, 이규복저 한국서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