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글씨의 흐름 (삼국시대-백제)

2019. 11. 26. 01:17글씨쓰기


우리나라 글씨의 흐름 (삼국시대-백제)|서예통론

하전|조회 52|추천 0|2015.06.11. 16:16http://cafe.daum.net/bbhy0003/S1GN/32 





우리나라 글씨의 흐름



p263

백제(百濟 BC18-AD660) 678년간

 

백제는 중국의 남조와 주로 교류하였으며

일본에 불교와 한문을 전하는 등 이미 국제성을 띤 국가였다.

그러나 서예유물은 그 숫자가 아주 적다.

무녕왕릉지석(武寧王陵誌石)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가 대표적이며

이 밖에 창왕명사리감(昌王銘舍利龕)이나

기와나 벽돌 또는 표석(標石)에서 백제글씨의 면모를 대할 수 있다.


(감실 감)

감실 (龕室) ; 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



 

무녕왕릉지석(武寧王陵誌石)

  1971년에 충남 공주군(公州郡)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녕왕이 죽은 2년 후에 성왕이 부왕의 시신을 매장할 때

새긴 지석(誌石)이다.

지석은 윤곽선과 세로선을 치고 새긴

행의를 띤 해서이다.

풍격은 다르지만 글자의 골격은

고구려의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와 통하는

유려한 필치이다.

비음(碑陰)의 글씨는 마모가 심하여 판독할 수 없다.

또 왕비(王妃)의 지석(誌石)도 같이 발견되었는데

형식은 비슷하다.

글씨는 단정하면서 세련되지 않은 해서이다.

비음(碑陰)의 글씨는 왕()의 지석과 통하며

그 보다 더 긴밀하여 세련미가 엿보인다.

백제인의 독특한 필치이다.


지석(誌石) ; 무덤 앞에 묻는 판석(板石), 또는 도판(陶板)

판석(板石) ; 널판같이 뜬 돌

도판(陶板) ; 도안이나 문양을 새긴 감상용 판상(板狀) 도자기



참고 도판








사택지적비(砂宅智積碑)


  1948년에 부여읍내에서 발견되었다.

의자왕 때에 사택지적이 만든 현존하는

백제유일의 비이다.

문체는 변려체(騈儷體)이며

서체는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해서이다.

비의 높이는 109cm 너비는 37cm이다.

비신의 왼쪽 부분은 단결(斷缺)되었으며

사행(四行)에 매행(每行) 14자가 남아 있다.

()과 날() 가운데 수당의 풍모가 엿보이나

성숙된 그 전려(典麗)함은

백제인의 미감을 느끼게 한다.



변려체(騈儷體) ; 중국 6조시대(六朝時代)에 성립된 문체.

                              4자와 6자로 이루어지며 대구(對句)를 많이 쓰고,

                          육기(陸機)의 문부(文賦)

                          그 선구라 하며 이백(李白)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梨園序)가 유명함

() ; 삐침

() ; 파임



참고 도판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