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죽 駝酪粥 /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2022. 9. 2. 08:09잡주머니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타락죽

우유죽, 

임금님 보양식 타락죽의 정체

분류
밥류 · 죽류

타락죽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보양식으로 먹던 음식이다. 얼마나 귀했는지 임금님도 아무 때나 먹지 못했으며 특별한 명절이나 몸이 아플 때 주로 먹었다.

조선 후기 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에 궁중에서 필요할 때 타락죽을 끓이는데, 특히 임금이 병이 났을 때 내의원 약국에서 타락죽을 진상했다고 나온다. 또 해마다 10월 그믐부터 정월까지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만들어 원로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원로들에게 하사하는 겨울 특별 보너스였던 셈이다. 먹는 음식인 타락죽을 만드는 곳도 주방이 아니었다. 궁중 병원인 내의원 약방에서 제조했으니 음식이 아니라 보약으로 여겼다.

타락죽은 그래서 아무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숙종 때 김창업이 사신을 따라 북경을 다녀와 《연행일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여기에 타락죽이 얼마나 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 사신들이 자금성에 도착해 황제를 알현하려고 기다리는 동안 타락차 한 병을 내왔는데 다른 사신들은 아무도 마시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일찍이 먹어본 적이 있어 맛이 좋음을 알았기 때문에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고 했다.

당시 김창업은 서장관으로 따라갔으니 정사와 부사와 함께 황제를 알현하려고 대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사, 부사와 같은 고위직 벼슬아치가 타락차가 낯설어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니 고위직 관리라도 원로가 아니면 타락죽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듯 옛 문헌에서 임금님의 보양식으로 묘사한 타락죽은 도대체 어떤 음식이었을까? 지금 기준으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유죽이다.

타락(駝酪)은 우유라는 뜻이다. 한자로 보면 낙타의 젖으로 만든 버터나 치즈 같은 식품이지만 우유의 한자 음역인 것으로 보인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타락은 본래 돌궐 말인 토락(Torak)에서 전해진 말이라고 했다. 고려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돌궐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목축을 담당했기에 우유를 돌궐 말로 타락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 최남선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우유에다 찹쌀을 넣고 끓인 죽이 바로 타락죽이니 고려 때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발달한 음식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양 사람들도 디저트로 타락죽을 먹는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디저트인 아로스 콘 레체(Arroz con leche)가 바로 타락죽이다. 스페인 말로 아로즈는 쌀, 콘 레체는 우유로 만들었다는 뜻이니 우유인 타락으로 끓인 죽에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의 쌀죽인 부디노 디 리조 역시 이름만 다를 뿐 우유를 넣고 끓인 반액체의 음식이니 타락죽과 비슷하고 아랍과 인도에서 먹는 피르니,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우유죽인 소홀라도 모두 타락죽의 일종이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따져보면 타락죽과 서양 디저트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

쌀로 만든 음식은 동아시아의 전유물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랍 특히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쌀 음식이 발달했다.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발달한 쌀 요리는 우리처럼 쌀을 물에 넣고 끓여 수증기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쌀을 바로 우유나 버터, 올리브기름에 넣고 직접 익혀 먹는다.

페르시아에서 발달한 볶음밥 종류인 아랍의 필라프가 스페인으로 전해져 파에야로 발전했고 또 이탈리아에서 리소토로 발달했다. 동쪽으로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전해져 필라(畢羅)라는 요리로 남았지만 크게 퍼지지는 못했다. 죽도 마찬가지였다. 페르시아의 쌀죽이 아랍과 인도에서 피르니로, 스페인에서는 아로스 콘 레체로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타락죽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임금님의 보양식 타락죽은 서역에서 전해진 외국 음식에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 서양에서 디저트로 남은 우유죽이 조선에서는 왜 귀중한 보양식이 된 것일까? 단순히 조선시대에는 우유가 귀했기 때문일까? 물론 우유가 많지 않았으니 보양식으로 먹었겠지만 서역의 타락죽은 원래부터 귀한 음식이었다.

어떤 종류의 젖으로 끓였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젖이 흔했던 아랍이나 중앙아시아에서도 동물의 젖에 쌀과 향신료를 넣고 끓인 음식은 왕과 귀족들이 먹던 상류층 음식이었다. 서역에서 전해진 고급 음식인 데다 재료까지 귀했으니 임금님의 보양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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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

성균관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주립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다. 2003년 매일경제신문사의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권력대해부』, 『중국벗기기』, 『브랜드 사주팔자』, 『차이나쇼크』, 『하이테크 혁명과 미래의 충격』,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신의 선물 밥』, 『음식잡학사전』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월가의 황제, 불룸버그 스토리』, 『유럽의 세계 지배』, 『생각을 바꾸면 즐거운 인생이 시작된다』, 『벤처기업 성공이야기』, 『장자의 내려놓음』, 『자전거로 나를 세운다』 등이 있다.접기

출처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 윤덕노 | 깊은나무

우리가 즐겨 먹으면서도 미처 몰랐던 음식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음식의 유래와 문화, 역사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 100가지에 얽힌 이야기를 모았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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